소풍
존 버닝햄 글.그림, 이상희 옮김 / 토토북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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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각 대장 존>의 작가 존 버닝햄의 신작이 나왔다는 반가운 소식과 함께 운 좋게 이 책을 만나보게 되었다. 꽤 큰 판형과 함께 글씨도 큼직큼직, 그림도 큼직큼직하다. 단순한 그림과 그닥 많지 않은 글이지만 그 속에서 정을 느낄 수 있었다.

언덕 꼭대기집에 여자 아이와 남자 아이가 살고 있다. 두 아이는 소풍 도시락을 준비한다. 수퍼남매에게 이 책을 읽어주었는데 이걸 보던 딸이 하는 말이 " 보통은 소풍 장소를 정해 놓고 도시락을 싸는데 여기는 거꾸로네?" 한다. 듣고 보니 그렇다. 두 아이는 어디로 소풍을 가려는 걸까?

두 아이는 소풍 도시락을 싸서 언덕을 내려가다 양, 돼지, 오리를 만나 함께 소풍을 가자고 제안을 한다. 마음결이 고운 아이들이다.

그렇게 다섯은 소풍 도시락을 들고 마땅한 소풍 장소를 물색하러 걸어간다. 목적지도 없이 가는 소풍이었다면 화를 낼 만도 한데 다섯은 즐겁게 길을 나선다. 소풍 가는 발걸음이 얼마나 즐거울까? 작가는 그들의 즐거움을 이렇게 노랑색으로 표현하였다. 보는 이의 마음도 덩달아 룰루랄라 즐거워진다.

그런데 뜻하지 않은 복병을 만나게 된다. 황소가 그들을 쫓아오는 게 아닌가! 이러다 모처럼 계획한 소풍이 엉망진창이 될 수도 있는데... 아무튼 지금은 황소를 피해 도망가는 게 우선이다.

아! 우리나라 말로는 황소로 번역되어서 유아들은 "어? 황소가 아니라 젖소인데?"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다.

황소는 겨우 피했지만 이번엔 또 뭐야~~? 양의 모자가 바람결에 휘익 날아간다. 그걸 찾느라 모두 야단법석. 다음에는 돼지의 공이 데굴데굴 굴러가고, 또 그 다음은 오리의 목도리가 없어지고....이러다 소풍을 갈 수 있을까 차츰 걱정이 된다. 만약 우리 가족의 소풍이이런 상황이었다면 난 어떻게 반응했을까 상상해 봤다. 나나 남편이나 투덜투덜 거리면서 짜증을 잔뜩 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일이 자꾸 꼬인다면서 소풍을 접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책 속 주인공들은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한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 이 말이 생각난다. 인성이 좋은 아이들이다.

드디어 소풍 장소로 마땅한 곳을 찾아 이렇게 돗자리를 깔고, 준비한 도시락을 맛있게 먹는다. 여러 가지 문제들을 만났음에도 짜증 한 번 안 내고, 합심하여 문제를 해결한 그들은 이 소풍을 충분히 누릴 자격이 있다.

이 그림책에서 내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한 장면이다. 두 쪽 가득한 그림은 즐거운 소풍 장면을 강조하고,점으로 표현된 풀밭은 정말 상큼하다. 존 버닝햄의 그림은 단순하지만, 정겹고, 개성적이다. 이 장면은 작가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소풍에 지친 동물 친구들을 두 아이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하룻밤 묵게 한다. 두 아이의 친절은 단순히 소풍 도시락을 먹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피곤한 동물들에게 편안한 안식처까지 제공하는 것에 이른다. 이 정도의 배려심이라면 어른인 나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침대 다섯 개가 배치되어 있는데, 이 장면을 보면서 나라면 침대를 어떻게 배치했을까 생각해 봤다. 이렇게 삐뚤삐뚤 안 하고, 가지런히 배치했을 것이다. 왼쪽에 2개, 오른쪽에 3개 이렇게 말이다. 작가는 그 점에서 통상적인 나와는 완전 다르게 이렇게 지그재그로 침대를 배치하여 역동적으로 보인다.

마지막, 존 버닝햄은 이 책을 읽는 독자에게 이렇게 물어본다.
" 오늘 밤 내가 어디서 자는지 알아 맞혀 볼까요?" 라고 말이다. 주인공이 바로 "나"로 바뀌는 순간이 아닐까.

내 기억에 소풍은 언제나 설레고 즐거웠다. 두 아이처럼 스스로가 준비한 소풍 도시락을 가지고 친구들과 함께라면 더 즐거울 것이다. 소풍 가다가 뜻하지 않은 문제를 만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즐거운 소풍을 방해할 수는 없다. 올 겨울 즐거운 나들이를 계획하고 있다면 이 그림책을 생각하면서 조금 문제가 생기더라도 참도록 하자.

하나 더, 존 버닝햄의 그림을 보면서 미술을 좋아하는 딸에게 이 그림의 구도와 채색을 잘 살펴보라고 했다. 다음에 그림을 그릴 때 도움이 될 듯해서이다. 길 표현하는 법이 대담하고, 채색도 쉬운 듯하면서도 잘 표현되었다. 그림을 두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예시 자료로 쓰면 좋겠다. 이런 그림을 모방하다 보면 그림에 자신감이 조금 붙을 듯하다.

이 그림책 덕분에 나 또한 눈과 마음으로 따뜻한 소풍을 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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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3-12-28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진 올려주셔서 재미있게 읽고 갑니다.^^

수퍼남매맘 2013-12-28 09:29   좋아요 0 | URL
그림책은 그림을 사진으로 찍어서 올려야 하는데(그림책이니깐)
게을러서 매번 그렇게 하지는 못 해요. ^^
이번에는 이벤트로 받은 책이라 사진을 올렸네요.

숲노래 2013-12-28 09: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런데, 참말 해는 저렇게 안 그리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해를 저렇게 그려 놓아서
이 그림을 한 번 보면
모든 아이들이 다 해를 저렇게 따라서 그리니까요.

어디로 가야 즐거운 소풍이 아니라,
싱그러운 바람을 마시며 들길을 거닐기에
즐거운 나들이가 되리라 느껴요.

그리고 그림에 나오는 소는 '송아지' 같은걸요.

수퍼남매맘 2013-12-28 09:32   좋아요 0 | URL
님 글 보고 빵 웃었어요. 맞아요. 애들 그림 속의 해가 다 저 모양이죠.
왜 돌려가며 그리는 해도 있잖아요.
아이들 그림에 있는 해는 저런 해 아니면 빙글빙글 돌아가는 해 두 종류잖아요.

그림책 속의 소는 젖소였어요. 이 그림에서는 작게 보이죠?
저도 보다가 이걸 왜 황소로 번역했을까 싶었어요.
우리나라니까 "젖소"로 해도 상관 없을 텐데 말이죠.

희망찬샘 2013-12-29 15: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렇게 표준화된 해를 보는 것도 좋던데요. ^^
그림을 보는 순간 존버닝햄이구나~ 했네요.

수퍼남매맘 2013-12-29 19:25   좋아요 0 | URL
다음에는 아이들한테 해의 여러 모습을 그려보라고 해도 좋을 듯해요.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창의적이니 색다른 해의 모습이 나올지 않을까요.

2013-12-31 10:2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2-31 2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