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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수가 500을 돌파하면서, 코로나 때문에 syo는 연말까지 사실상 스케쥴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한적한 인생. 좋은 친구 만나서 수다 떨면 그렇게 좋은데, 세상은 내가 좋아하는 꼴 안 보려고 온갖 종류의 참신한 박해를 생각해내는 것 같다. 이렇게 쓰고 나니 마치 syo가 세상의 주인공이고 그 주인공에게 작은 난관을 제공하려는 절대자의 의지가 세상에 역병을 돌게 만든 것처럼 읽힌다.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어. 너는 원오브뎀오브빅뎀오브그레이트뎀오브올일 뿐이야. 이렇게 자꾸자꾸 현실을 주입시켜줘야 한다. 사람 얼굴을 발견할 기회가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말고는 없는 하루를 이어나가다 보면, 어쩌면 내가 세상이라는 연극무대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착각에 빠지기 쉽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연극은 아무래도 <고도를 기다리며> 인 듯. 일단 재미없고, 아무리 기다려도 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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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절망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우리는 절망한 상태로 살아갈 수 있고, 심지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으며, 이따금 한순간 희망의 바람에 실려가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자문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그런 질문을 던지고는 이내 부정으로 대답하고, 그럼에도 끈질기게 버티는 것이다. 실로 뭉클한 광경이다.
_ 미셸 우엘벡, 『세로토닌』
그러다 그녀 이름으로 서명이 된 전보가 ― 난 그녀를 다시는 못 볼 줄 알았다 ― 왔다. '라피도 5호 차, 월요일 오후에 와요.' 전보는 유고슬라비아의 루블라냐에서 온 것이었다.
나는 기차역으로 마중을 갔다. 뒤에 가방을 든 짐꾼을 달고 플랫폼을 걸어오는 그녀를 보자 가슴이 두근거렸다. 어떤 것들은 그저 처음에만 좋지만 그녀를 보는 건 늘 처음 같았다. 나는 그녀가 "자기야,"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았다. 나는 내가 "경애하옵나이다"라고 말하리라는 걸 알았다.
_ 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스피노자는 인간의 주체적 오만을 질타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인간의 주체적 자각을 촉구하기도 한다. 너를 끌어당기는 맹목적 충동의 주어는 네가 아니다. 인간의 의지는 신에게서 비롯한다. 그러나 꽃이 피는 현상이 봄의 의지인 동시에 꽃의 의지이기도 한 것처럼, 인간에게 투영된 신의 의지는 항상 인간의 주체적인 결단으로 실현된다. 스피노자의 명제를 따르자면, 신은 우리가 할 수 없는 것이나 욕망하지 않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금지하지 않는다. 결국 만물의 의지가 실현된 그 모든 현상들이 신의 뜻이라는, 신의 절대성과 인간의 주체성을 모두 끌어안은 전복의 신학은 훗날 현대 철학의 거장 들뢰즈에 의해 '철학자들의 그리스도'라는 숭고한 지위로 추존된다. 즉 철학의 신약은 스피노자부터이다.
_ 민이언, 『밤에 읽는 소심한 철학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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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안 읽었지만, 스밀라는 아무래도 여간내기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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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단지 사소한 질문이다. 그렇지만 세상은 어쩌다 독신에다가 방패막이 하나 없는 여자가 내 나이대에 이르렀으면서도 결혼해서 귀여운 아기 둘을 기르면서 살고 있지 않은 건지 궁금해한다. 시간이 흐르면, 그런 질문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것이다.
_ 페터 회,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스밀라는 나보다 어리겠는데, 똑똑하고 말도 잘하고 잘은 몰라도 뭔가 특별한 능력도 있어 보인다. 우리가 닮은 거라곤 주변 사람들이 왜 결혼을 하지 않느냐고 묻는 것뿐인 듯하다. 하지만 그걸 묻는 사람이 점차 줄어들 거예요. 그리고 조용하고 안타까운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겠죠. 이 개똥같은 세상 엿먹으라고 하고 우리 힘차게 살아봐요. 그리고 힘든 일 있으면 연락해요. 서재에 댓글 남겨요. 커피 한 잔 사줄게요. 저 스벅 ‘벚꽃 피크닉 세트’ 쿠폰 못 쓰고 가지고 있거든요. 벚꽃 필 때 받은 건데. 심지어 그 벚꽃 2019 벚꽃……. 아무튼 연락해요!
아, 물론 거리 두기 1단계 되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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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는 사람이라면 독서량, 독서 방식에 관해서 저마다의 세계관이 있는 법이라, 다른 이들의 독서관이 내 관점을 침략하려 들 때, 독서가들은 소매를 걷어붙이고 책 두어 권 들면 후들거리는 그 여리여리한 팔뚝을 드러내며 종주먹을 휘두르게 마련이다. 관련하여 장강명 작가님도 언짢은 일을 몇 번 당하신 건지, 아닌 듯 하지만 말씀에 날이 섰다.
사실 내가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선호하고, 웬만하면 전자책으로 읽으려 한다는 말을 하면 놀라는 사람들이 꽤 많다. 어딘가 비석에 '진지한 독서가=종이책 애호가'라는 등식이라도 적혀 있는 모양이다.
독서가들 중에는 손끝에 닿는 책장의 느낌이니 종이 냄새니 하면서 종이책의 물성에 대한 애정을 호들갑스럽게 과시하는 이들이 있는데, 나는 그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한다. 책은 정보를 담는 매체지 시각이나 촉각을 만족시키려고 만든 기호품이 아닌데.
_ 장강명, 『책, 이게 뭐라고』
syo는 새 책을 사면, 아무도 없는 조용한 공간에 숨어들어 문을 잠근 다음, 몸 안에 있는 숨을 할 수 있는 데까지 방출한 후, 책을 펼쳐 코를 박고 다시 할 수 있는 데까지 숨을 들이켜는 의식을 치른다. 그냥 평범하게 책 냄새를 킁킁 맡는 일도 자주 있고, 그런 간단한 정도는 남들 앞에서도 하곤 하지만, 저런 의식은 좀 남들 봬 주기가 아무래도 좀 그렇지. 하지만 이런 행동까지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됐다고 하긴 어렵지 않을까?
그래서 장강명 작가님의 저 말을 물성파 입장에서 들으면 부당하게 가혹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 들긴 해도, 사실 스펙트럼의 관점에서 보면 저런 마음도 완전히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냄새 맡는 syo’는 ‘쓰다듬는 누군가’를 당연히 이해할 수 있지만, 판권 페이지를 아래에서 위 방향으로 ‘핥는 사람’을 이해하긴 좀처럼 어렵고, 가장 야한 대목이 나오는 페이지에 페니스를 끼우고 책을 흔드는 방식으로 자위해서 30초 만에 사정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이대로 저 ㅅㄲ를 패고 시원하게 영창 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것이다. 물성이란 진짜 무엇이며, 인간이란 어디까지 갈 수 있는 동물인가.
사람들이 전자책의 장점이라고 하는 다른 특징들은, 나는 잘 모르겠다. 멀티미디어 기능이라든가 읽어주기 기능은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도 않고 이용하지도 않는다. 색인을 쉽게 검색할 수 있다든가, 궁금한 점을 하이퍼링크로 바로 확인할 수 있다든가 하는 특징도 마찬가지다.
사실 하이퍼링크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은 장점이 아니라 단점이다. 하이퍼링크는 단행본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독서를 방해한다. […]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종이책의 물성이 아니라 책이라는 오래된 매체와 그 매체를 제대로 소화하는 단 한 가지 방식인 독서라는 행위다. 세상에는 그 매체를 장식품, 장신구, 장난감, 부적, 팬클럽 회원증, 후원금 영수증 등으로 소비하는 이들도 있다. 그것은 소비자의 자유겠으나, 그런 소비를 독서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
_ 같은 책
그럼에도 장강명 작가님의 책과 독서에 관한 관점은 일견 협소하다 싶을 만큼 꼿꼿한 데가 있어서, 뒤이어 이런 대목을 쓰셨으니 말씀드리고 싶긴 하다. 독서라는 행위에 대한 애정을 과시하는 게 ‘이상한 자부심과 선민의식에서 비롯된 건 아닌가 의심’받으실 수 있음을.
밤하늘의 셀 수 없는 별들이 그러하듯 사람 마음의 모양은 전부 다 다르다. 선을 긋지 않는다는 건, 모양이 없는 액체 괴물처럼 살아가라는 말로 들린다. 그러니까 선을 긋는 건, 여리고 약한 혹은 못나고 부족한 내 어딘가에 닿았을 때 '나의 이곳은 이렇게 생겼어'라고 고백하는 행위다.
_ 김이나, 『보통의 언어들』
--- 읽은 ---
223. 상대성 이론은 처음이지?
곽영직 지음 / 북멘토 / 2019
처음 아녜요.
수식이라는 게 하는 일이 이해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라면 저 과학자들이 미치지 않고서야 수식으로 작업을 할 리가 없다. 수식은 이해를 도울뿐더러 수식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들도 잔뜩 있다. 단지 그 도구를 사용하는 기술을 따로 배워야 한다는 문제만이 있을 뿐이다.
상대성이론을 수식 없이 설명하려는 과학책을 많이 봤다. 생각보다 잘하는 책도 있었고, ‘설명하려면 수식을 써야 하므로 여기에서는 더 깊게 설명하지 않겠지만’ 하는 식의 주객전도가 이루어진 책도 있었다. 아무리 애를 써도 언어는 수식보다 정밀하기 어렵다. 이과 나온 분들께는 권하지 않겠습니다.
224. 나의 첫 미술공부
최연욱 지음 / 메이트북스 / 2020
미술에 대해서 공부해 봐야지 하고 덤벼들었는데 막상 책이 진짜 공부시킬 듯이 덤벼드니까 덤비지 않을게 덤비지 마라 싶다. ‘공부’한다는 말을 함부로 쓰지 말아야겠다. 나는 진심 미술 공부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던 것으로.
225. 피그말리온
조지 버나드 쇼 지음 / 김소임 옮김 / 열린책들 / 2011
syo는 버나드 쇼의 그 쇼인지를 물어본 사람이 있었다. 그 쇼는 Shaw이므로 당연히 그럴 리가 없을뿐더러, syo는 Shaw의 작품을 하나도 읽어본 적이 없는 상태여서 아주 간단히 아닙니다- 하고 대답할 수 있었다. syo는 그간 Shaw에 대해서, 영국의 극작가이고, 노벨문학상 수상자이고, 끝내주는 독설로 무장한 페이비언 사회주의자라는 정도로만 알고 있었지, 그의 글이라고는 그 유명한 한 줄짜리 묘비명 말고는 도무지 아는 바가 없었다.
큰 기대를 가지고 읽어 본 결과, 역시 극본이라는 건 뭔가 글로 보면 매력이 반감되는 걸 피할 길이 없다는 느낌과, 남자가 이런 멘트를 치면 여자가 왜 그렇게 대꾸하고 그 대꾸를 들은 남자는 또 왜 저렇게 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는 느낌과, 그래도 고도에 비하면 레알 삼백 배쯤은 재미있구나 싶은 느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앞으로 한동안은 극문학을 읽지 않겠구나 하는 느낌 등등이 휘몰아쳤다. 아, 복잡한 독서였다.
--- 읽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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