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 오브 까치
1
비나 바다에 관해 쓰는 것은 채산이 잘 맞는 일이었다. 비와 바다에 관해서라면 누구에게나 남길 만한 추억 하나쯤 있는 법이니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최소한 나에겐 더욱 그래서, 비라는 것은, 그리고 바다라는 것은 튼튼하게 잘 만들어진 액자 같았다. 물기가 부족한 날에 걸어두면 좋은 그림이 마음 안에 언제나 잔뜩이고, 비라고, 바다라고 적는 것만으로 내 좁은 영역은 촉촉과 축축 사이의 어느 지점을 단숨에 돌파해버린다. 그래서 아무래도 저 어휘들을 버릴 수가 없는 것이다. 나는 비 오는 날에도 비를 찾고, 바다 앞에서도 바다를 그리워하다가 조용히 조용해질 운명이다.
이러다가는 내일도
바다가 나를 채갈 겁니다
자꾸 울면
내 눈에만 보이던 게
내 눈에만 안 보일 겁니다
_ 이원하, <나는 바다가 채가기를 기다리는 사람 같다> 부분
2
아침이 웃음소리로 요란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사는 골목 너머 앞집에 사람이 잔뜩 들었다. 생신 각이다.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재롱둥이손주들 잔뜩 모여 아침부터 분주하다. 반면, 도움닫기만 제대로 하면 두 집 창문을 연속으로 통과해 우리 안방까지 다이렉트로 날아들 수 있을 만큼 가까운 이 집에서는, 기모 자리 위의 기모 이불 속에서 기모 자켓을 입은 기모 인간 三이 뒹굴며 핸드폰을 만지는 기묘하고 기모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 그는 최근 주식으로 벌어먹었던 돈을 최근 주식으로 말아먹었다며 겁나 씁쓸한 표정을 하더니만, 잠시 후에는 또 단타로 치고 빠져서 금방 6만 원을 벌었다며 거실로 나와 덩실덩실 춤을 추고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다. 애가 방에서 나올 때부터 입가에 미소가 그득하길래 무슨 말을 하려나 했는데, 곧바로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어쩐지 속물 같아 보일까 봐 걱정이라도 한 건지, 아무 이유없이 싱크대를 30초 가량 내려다보며 시간을 끌다가 더는 못참겠다는 듯이 폭발적인 스피드로 6만 원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다. 그 모든 과정 중에 입꼬리는 저기 입인가 귀인가 싶을 만큼 치솟아 있었고.
저렇게 일희일비하는 거 보면, 쟨 역시 커서 인물 되긴 글렀다. 저거 까딱 잘못하면 주식으로 탈모 오겠구나…….
3
『성의 역사』는 힘이 빠졌다. 푸코도 모를 소리를 하고, 그 모를 소리를 알아들을 만한 소리로 바꿔보겠다고 아등바등한 syo조차도 결국 모를 소리나 보태고 마는 거라면, 모를 소리를 위한 모를 소리만 늘리는 것보다 이미 있는, 거장의 모를 소리 하나만 유지하는 게 오히려 세상을 위해 이롭지 않나 싶기도 해서. 두어 페이지 틱 넘겨보다 턱 덮어놓고 다른 책으로 손을 뻗치게 된다.
올해 들어 스스로 자주 묻고 끝내 답을 낸 질문 가운데 하나는 ‘나는 쓰기 위해 읽는가, 읽기 위해 쓰는가’였다. 읽기와 쓰기가 한몸이며, 나선형으로 성장한다는 말은 쌀로 밥 짓고 배추로 김치 만드는 소리다. 아름답고 있어 보이는 두루뭉술한 말들은 산 중턱쯤 오른 사람들이 거기까지 오른 자신의 멋진 모습을 사랑하는 데 쓰기 좋게끔 만들어져 있어서 등산객의 발목을 잡아챈다. 아, 여기까지 올라와 보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느껴진다- 하는 감각은 잠깐 즐기고 말아야지, 아직 거기까지 오르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말을 해주는 자신의 모습에 취해 오래 머물다가는 이번생은 그냥 거기 그 중턱에서 대충 묏자리 봐야 하는 꼴이 생긴다.
오래, 세심히 들여다보면 분명히 보인다. 모든 사람은 쓰기 위해 읽거나, 읽기 위해 쓰는 둘 중 하나다. 세상에 50cm짜리 물건이 있다는 것은 증명하기 어렵다. 50.00000001이나 49.99999999나 우리 눈엔 대충 50으로 보인다. 그건 어쩔 수 없지만, 60이나 40을 50으로 보는 무딘 짓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확실히 읽기 위해 쓰는 사람이고, 내 쓰기의 최대 수혜자이자 유일한 수혜자는 나인 것 같다. 그저 내가 다음 책을 읽기 위해 내가 써야 한다.
생각건대 내 안에는 글쓰기가 다른 일보다 훌륭한 일이라는 믿음이 늘 잠복해 있었던 것 같다. 그게 아니라면 적어도 결국에는 글쓰기가 더 훌륭하다는 게 입증되리라는 믿음이. 미망이라 해도 상관없지만, 나의 내면에는 우리가 했던 모든 것이, 그러니까 우리 입 밖으로 나온 말들, 맞이한 새벽들, 지냈던 도시들, 살았던 삶을 모두가 한데 끌려들어가 책의 페이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고집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존재하지 않게 되어버린다는, 존재한 적도 없게 되고 만다는 위험에 처할 테니까. 만사가 꿈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때가 오면, 오직 글쓰기로 보존된 것들만이 현실로 남아 있을 가능성을 갖는 것이다.
_ 제임스 설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천변에 물은 흐르지 않았다. 나는 움직이는 물을 보고 싶었던 것인데.
언제 이렇게 다 얼었는지. 언 물을 보고 있자니 얼마나 단단할지 궁금했다. 행여 발이 빠진다 해도 다시 나올 수 있을 테니. 이상한 모험심이 들었다. 나는 잠깐 올라서보기로 했다.
밟고 올라서자마자 발바닥에 우지끈함이 느껴졌다. 깨지지는 않았다.
이왕 물에 올라서봤으니, 그 위를 아주 걷는 것은 어떨까 싶었다. 물이 충분히 얼지 않은 것 같았지만. 나는 해결하고 싶었다. 순간의 충동, 설명되지 않는 고집, 하잘것없는 마음을. 충분히 지루해질 때까지 물 위를 걷고 싶었다. 나는 좀 지루할 필요가 있었다. 더 느리게. 더 늘어지고 싶었다.
_ 김엄지, 『폭죽무덤』
4
‘까치’라는 출판사는 더없이 좋은 책들에 더없이 구린 표지를 입혀서 세상에 내놓는 곳으로 유명했다. 아직도 클리셰처럼 떠도는 ‘사람은 외모 보고 만나는 게 아니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라는 충고 말씀과 엮어 생각해보면, 그야말로 ‘사람은 책이다, 책은 사람이다’ 정신을 구현하고 있는 올곧은 출판사라 하겠다. 다 소싯적 이야기다. 지금 어떤 평을 듣는지는 모르겠다. 2020년 새로 출판된 『거의 모든 것의 역사』의 표지는 뭐라 표현하기가 애매하지만 일단 내 눈에 구판보다는 나아 보인다. 고작 2년 전인 2018년 1월에 개역되어 나온 같은 작가의 『나를 부르는 숲』이 조금도 나를 부르지 못하는 것과 비교하면서, 2년 사이에 출판사에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할 뿐이다.
그런 까치에서 까치 책 표지 100개를 그대로 축소한 엽서 100장을 제공하는 이벤트를 시작했다고 한다!
와정말갖고싶어요
이렇게 써 놓으면 비웃는 것 같겠지만, 막상 이벤트 창을 열어보면 (놀랍게도) 귀여워 보이는 애들이 꽤 있다! 그간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오늘의 내가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자꾸 배우게 되는 요즘이다. 이참에 『근대세계체제』랄지, 『지중해』랄지 이런 애들 갖춰볼까? 어쨌든 정말 좋은 책들을 꾸준히 번역해 내놓는 든든한 출판사임은 틀림없으니까 뭔가 해주고 싶은 마음은 언제나 굴뚝이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나를 부르는 숲』만큼은 피하고 싶다. 숲에 미친 빼빼 마른 안경잽이 식물학자가 밀짚 모자에다가 똥색 반팔셔츠와 반바지를 갖춰 입고(곤충채집망도 들었을 것이다) 숲으로 들어가 3년쯤 무단거주하다가 숲의 지배자 갈색곰한테 들통나 마지못해 쫓겨나오면서 기록한 회고록 같이 생겼다. 아아, 아임 쏘리 엉클 빌…….
--- 읽은 ---
214. 고양이 사용 설명서
미스캣 지음 / 임지영 옮김 / 재미주의 / 2017
표지가 귀여워서 한 번 읽어봤다.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아이 귀여워 이러다가 끝났다. 귀엽고 허망한 시간이었다.
215. 방구석 미술관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0
재독이다. 처음 읽었을 때만 해도 이 정도까지 될 책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10만 부를 넘겨 스페셜한 에디션으로 표지를 갈아입고 나타났다. 1회독 감상을 뭐라고 적어놨는지 가보겠다. 2년 전이었고, 미술 공부의 문을 작품보다 화가로 열어나가는 게 더 좋을 수 있다는 떨떠름하면서 우호적인 평을 남겨 놓았군.
이번이라고 딱히 다른 말을 덧붙이고 싶지는 않다. 화가들의 인생사 에피소드에 관한 기억이 그나마 오래 살아남았다가 또 얼마 못 가 사라지겠지.
216. 말장난
유병재 지음 / arte / 2020
말 잘하는 사람 중 글도 잘 쓰는 사람과, 글 잘 쓰는 사람 중 말도 잘하는 사람의 비율을 비교하면 어느 쪽이 더 클까? 뭔가를 끄적거리는 라이프를 오래 유지하다 보면, 아무래도 후자 쪽을 더 후하게 쳐주는 쪽으로 마음의 편향이 생겨나는 듯. 그러니까 전자의 유형에게는 ‘말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글도 잘 쓰네?’ 하는 어쩐지 얕잡는 식의 칭찬을 하고, 후자에다가는 ‘저 말하는 것 좀 봐봐, 글솜씨 어디 가겠어?’ 하는 당연하다는 식의 칭찬을 한달지.
말을 다루는 뛰어난 능력 때문에 오히려 글솜씨가 묻히는 느낌. 이 사람은 조만간 ‘에세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딱 떠오르는 그런 유형의 ‘에세이’를 들고 돌아올 것 같다. 그치만, 이 함량으로 16,000원은 조금…….
--- 읽는 ---
성의 역사 1 / 미셸 푸코
내가 예민한 게 아니라 네가 너무한 거야 / 유은정
원자핵에서 핵무기까지 / 다다 쇼
존 리의 부자되기 습관 / 존 리
니체 / 정동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 페터 회
아주 친밀한 폭력 / 정희진
불교는 왜 그래? / 장웅연
쓰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 제임스 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