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반정경湖畔情景 3

 

 

1

 

슬픔이라는 덩치 크고 멍청한 단어를 조리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내어놓는 일은 늘 탐탁치가 않지만, 빈곤한 역량은 언제나 나를 탐탁찮은 길 위에 세운다.

 

 

 

2

 

두 종류의 슬픔과 알고 지냈다. 일부러 드러내지 않아도 눈치껏 알아주었으면 싶은 슬픔과 무심코 드러내도 눈치껏 모른 척 해주었으면 싶은 슬픔.

 

 

 

3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사정이고, 친절한 친구일수록 마음 구석에 뭉쳐둔 눅눅한 슬픔까지 발견하여 다정하고 온유한 말로 닦아줄 가능성이 높다. 타인의 슬픔을 성분 분석하는 일은 과학보다는 미학이 맡은 재주라서, 내 젖은 슬픔과 비슷하게 생긴 타인의 슬픔이 그에게는 부서질 듯 건조한 슬픔일 수가 있다. 위로받고 싶은 슬픔을 무시하는 일은 위험하고, 무시되고 싶은 슬픔을 위로하는 일은 위태롭다. 어쩌면 슬픈 이의 취약한 마음에 내 무딘 지문을 불붙은 인두처럼 뜨겁게 눌러 찍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타인의 슬픔을 만지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다.

 

 

 

4

 

그럼에도 우리는 종종 좋은 마음으로, 그러나 명백히 섣부르게 타인의 슬픔을 건드리고 만다. 마치 조금이라도 빨리 그 불길을 잡지 않으면 내 정원도, 내가 공들여 길러놓은 여린 꽃들과 달콤한 열매들도 잿더미가 되어 버릴까 두려워 조바심치는 이웃사람처럼. 슬픔을 역병처럼 다루는 태도가 역병처럼 번져 있다. 감기, 수두, 홍역, 페스트. 아픈 사람이 아픈 사람을 미워하는 마음을 합리의 영역에 가져다 놓아도 괜찮다고 주장하는 매정한 병명들.

 

한 마음의 매운 기침 몇 번에 그를 둘러싼 모든 마음이 금세 각자의 기침을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슬픔의 전염성을 성토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도 같다. 하지만 자주 슬픈 사람은 그 장면을 조금 더 깊은 눈으로 들여다보고 싶다.

 

 

 

5

 

너로부터 옮은 바로 그 감기를 내가 앓아도 네 기침 소리와 내 기침 소리가 같지 않듯이, 나의 슬픔이 너를 슬프게 하여도 우리의 슬픔은 같지가 않다.

 

 

 

6

 

그리고 그것이 그대로 위로가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우리가 마주 앉았으나 서로의 눈을 바라보지 않았을 때, 혹은 바라보았으나 눈동자 뒤에 숨었을 무언가를 억지로 꺼낸다든지 짐작하려들지 않았을 때, 나의 슬픔이 나의 슬픔으로 온전하고 너의 슬픔이 너의 슬픔 그대로 드러나 서로의 슬픔이 맞닿되 섞이지 않았을 때, 그런 일이 있었지, 참 슬펐어, 딱 거기까지만 이야기해 주었을 때 가장 힘이 되었다고 일러주고 싶다. 나의 슬픔이 누군가 이미 극복하고 정복한 슬픔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는 사실이 나약하다고 비난받는 기분을 느끼지 않게 해주었고, 그럼에도 언제나 어디서나 누군가 슬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은 퍽 든든했다고 고백하고 싶다. 아무리 도망쳐도 결코 피할 수 없는 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는 싸움을 하고 있는 이가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진실을 조용하고 은밀하게 너는 전해주었다. 감추고 싶은 슬픔을 감추는 일이 내 몫이라면 만지고 싶은 슬픔을 만지는 일은 너의 몫이라서 내가 해변처럼 조개를 감추는 동안 너는 성큼 밀물로 왔다가 썰물로 그저 돌아갔다. 아무것도 두고 가지 않았고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았다.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


네가 내게 그런 사람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선잠 / 박준

 

그해 우리는

서로의 섣부름이었습니다

 

같은 음식을 먹고

함께 마주하던 졸음이었습니다

 

남들이 하고 사는 일들은

우리도 다 하고 살겠다는 다짐이었습니다

 

발을 툭툭 건드리는 발이었다가

화음도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입이었습니다

 

고개를 돌려 마르지 않은

새 녘을 바라보는 기대였다가

 

잠에 든 것도 잊고

다시 눈을 감는 선잠이었습니다

박준선잠」 전문 

 

고통이여너는 왜 나를 귀찮게 따라다니는가무엇 때문에 늘 나보다 한 발 앞서서 방에 들어가고너 아니면 기쁨과 안식이 기다릴 침대에 선수쳐 눕는가무엇 때문에 내 손길이 닿는 모든 것에서목을 축이려는 유리컵과 가까이 다가가는 입술 어디에서나 너의 자취가 느껴지는가고통이여나는 너를 가슴에 품고 애지중지하지 않는다너를 부둥켜안지도 않고 네 그림자를 숭상하지도 않는다울부짖으며 너를 부정하고활력을 불어넣어 스스로를 잊게 하는 기쁨을 소리쳐 부른다아름답고 고매한 수식어로 너를 꾸미지도 않으며네가 정의라고 믿지도 않는다다만 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고 너를 혐오할 뿐이다.

산도르 마라이하늘과 땅

 

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이곳저곳 항구를 떠돌며인간의 열기 속에서눈 내리는 날 강아지처럼 천진난만하게 구르고 싶습니다언제 제 생이 다할지 알 수 없지만그날이 올 때까지 소박하고 순수하게 작업에 정진하고 싶습니다.

하야시 후미코저는 인간을 좋아합니다 

 

 

 

--- 읽은 ---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 / 임미진 외 4인 지음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슬픈 인간 / 정수윤 엮고 옮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책 쓰자면 맞춤법 / 박태하 지음


댓글(5) 먼댓글(0) 좋아요(5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무식쟁이 2019-02-11 2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요한 파도가 되어주는 사람과 그런 이를 고마워 하는 슬픈 사람. 두 사람이 참 아름다워요. 마냥 꿈 처럼.

syo 2019-02-11 23:00   좋아요 0 | URL
좋은 사람 좋은 건 알고 알아도 끝까지 알지 못하는 일 같아요. 뒤지지 않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2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섣불리 위로하지 않는 법...제가 조금 일찍 배웠어야 하는 덕목 같아요 ㅠㅠ 친밀함의 적정한 온도 유지하기, 안전 거리 확보 이런 게 왜 이리 어렵고 서툰지... 성질 급하고 쓸데 없이 부지런한 사람들이 남의 슬픔 걷어 낸답시고 먼지털이로 툭툭 털어주다 슬픈 사람 매 맞은 것마냥 눈물 더 빼게 만드는 것 같아요...(반성하는 먼지털이맨 1인...)

syo 2019-02-12 10:10   좋아요 0 | URL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위로가 필요한 인간의 배부른 투정일지도 몰라요. 위로는 받고 싶으면서도 동시에 실낱같은 자립성도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랄까요...... 위로가 필요한 어떤 사람도 수동적 대상으로 완전히 전락하고 싶지는 않은 법이니까요. 두 개의 입장에서 다르게 생각해야하지 않을까요. 위로하는 사람일 때 적당한 거리를 생각하고, 위로받는 사람일 때 지나친 욕심은 아닌지를 생각하고..... 물론 말처럼 잘 될 리가 없겠지만요.

반유행열반인 2019-02-12 10:18   좋아요 1 | URL
브로콜리너마저-사랑한다는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https://youtu.be/eHG3LQCpVok
노래 제목만으로도...위로 받는 사람도 안 될 걸 알고 위로 하는 사람도 안 될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애쓰는 모습을 보이는 게 오히려 위로가 되는지도 모르겠어요. ‘섣불리’를 ‘조심스레’로 제대로 못 바꿀 것 같으면 그냥 입 다물고 주위를 빙빙 도는 편이 나을 것도 같고...조만간 위로할 일을 목전에 두고서 syo님 글에서 힌트를 얻을 듯 말 듯 뭔가 복잡한 마음이네요.
 

전하, 신에게는 아직 두 장의 수면바지가 있사옵니다

 

 

1

 

범인을 검거하였습니다.

 

 


2

 

syo, 그는 석 장의 수면바지를 가진 남자다.

 

(1) 올해도 가을은 이렇게 오시는 듯 가시는구나 싶을 때쯤 꺼내 입기에 적합한, 사각형 패치 무늬에 큼직한 별이 듬성듬성 박혀 있는 아이 : 별바지

(2) 또 한살 더 먹는 거야? 이렇게 한 것도 없는데? 싶을 때쯤 꺼내 입었다가 또 한살 더 먹었구나. 올해도 별 건 없겠지 싶을 즈음까지 애용하는, 밤하늘 빛 바탕에 똥그란 털덩어리 양과 별과 달이 송송 박혀 있는 아이 : 밤바지

(3) 마지막으로 최고의 두께감과 풍성한 기모 안감을 장착, 이 바지가 무너지면 이번 겨울은 그냥 와장창 무너지는 거라고 봐도 무방한 최종병기 두꺼운 아이 : 막바지

 

 

 

3

 

수면바지 착용 기간을 11-12-1-2-3 로 잡았을 때, 바지의 보온력과 기온 간의 상관관계를 고려하면 착용 순서는 당연히 별----별 이 되겠으나, 현실적으로는 별-별밤-밤막-막밤-별 정도로 보는 것이 타당하겠다. 실제로 1, 2월 추위는 밤바지와 막바지가 최선을 다해 방어해주는 중이다.

 

헐벗고 부끄러운 하반신을 처음 목도했던 얼마 전 그 기상장면에서, 간밤에 쳐들어 온 웬놈에게 무참히 정복당하고는 비몽사몽간에 패배의 증표로 수면바지를 공물로 바치옵니다, 하고 인형머리 위에 걸어놓았던 것은 아닐지 상상해보기도 하였으나 그럴 리가, 결국 제풀에 벗어 던졌겠지. 하지만 왜? 대체 왜 이런 몹쓸 짓을?

 

 

 

4

 

의문을 해소하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필요했다. 밤바지가 빨래통에 들어가고 막바지를 입고 자는 동안, syo의 아침은 하루도 부끄럽지가 않았다. 그런데 막바지가 빨래통에 들어가고 다시 밤바지를 착용한 바로 그날부터 다시 새벽의 탈의쇼가 시작된 것이다. 아하, 너였구나, 밤바지! 잡았다, 요놈!

 

여전히 알 수 없는 것은, 밤바지보다 막바지가 명백하게 방어력이 높다는 것이다. 그런데 땀은 왜 밤바지가 흘리는가...... 혹시 보송보송 귀여운 양 그림 때문일까?

 

 

 

5

 

밤바지는 일단 유배형에 처해졌다. 밤바지에게 사약을 내려야 하는가를 놓고 치열한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전하, 어찌되었건 저 바지 때문에 하반신이 군기를 어지럽히고 공연음란한 밤을 보내고 있다면, 처단하는 것이 마땅한 줄로 아뢰오...... 하오나 전하, 아직 저 창 밖에는 동장군의 사기가 드높고 공격이 매섭사옵니다. 현재 전장의 수면바지 보급 상태가 그리 넉넉지 않사오니 부디 통촉하시옵소서...... 그렇다면, 경이 직접 말해보라, 대체 이 난국을 어찌 타개하면 좋겠는가. 전하,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신에게는 아직 두 장의 수면바지가 남아 있사옵니다......

 

 

 

6

 

재활용 의류수거함에 담긴 옷들은 흘러 흘러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는 하늘과 땅 사이에 산다불멸의 신적인 것을 가슴에 품고 있지만방 안에 혼자 있으면 코를 후빈다내 영혼 안에는 인도의 온갖 지혜가 자리하고 있지만한번은 카페에서 술 취한 돈 많은 사업가와 주먹질하며 싸웠다나는 몇 시간씩 물을 응시하고 하늘을 나는 새들을 뒤좇을 수 있지만어느 주간 신문에 내 책에 대한 파렴치한 논평이 실렸을 때는 자살을 생각했다세상만사를 이해하고 슬기롭게 마음의 평정을 유지할 때는 공자의 형제지만신문에 오른 참석 인사의 명단에 이름이 빠져 있으면 울분을 참지 못한다나는 숲 가에 서서 가을 단풍에 감탄하면서도 자연에 의혹의 눈으로 꼭 조건을 붙인다이성의 보다 고귀한 힘을 믿으면서도 공허한 잡담을 늘어놓는 아둔한 모임에 휩쓸려 내 인생의 저녁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그리고 사랑을 믿지만 돈으로 살 수 있는 여인들과 함께 지낸다나는 하늘과 땅 사이의 인간인 탓에 하늘을 믿고 땅을 믿는다아멘.

산도르 마라이 지음하늘과 땅


날 둘러싸는 이것만으로도 숨이 턱 막힌다!

숨 좀 쉬게 내버려둬!

창문을 다 열어젖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창문보다 더 많이모두 열어!

페르난두 페소아 지음페소아와 페소아들

 

 

 

7



1845년 3월 24일 미하일에게 보낸 편지에서 도스또예프스끼는 이 전환기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내가 글을 쓰지 않을 때 무슨 일을 하는지 형도 궁금할 거야독서를 해끔찍할 정도로 많이독서는 내게 기괴한 영향을 줘예전에 읽었던 것을 다시 읽으면 새로운 힘이 솟아나서 모든 것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그것을 분명하게 이해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능력을 얻게 돼. (......) 문학에 관해선 나는 2년 전의 내가 아니야그때 난 어린아이 같았고 엉터리였지. 2년 동안 공부를 하면서 나는 많은 것을 얻었고또 많은 것을 잃었어.

이병훈 지음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73-74

 

끔찍할 정도로 많이 한다고 자랑스럽게 진저리를 칠 수 있다니, 끔찍할 정도는 대체 얼마 만큼일까?

 

잉여킹으로 살아온 기나긴 세월을 책으로나마 눅여보겠다고 설치긴 했지만, 사실 누구도 내가 읽은 양을 끔찍하다고까지는 생각해주지 않았다. 심지어 나조차도! 그래서 syo는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니라 syo가 된 것이다. syo가 도스토예프스키가 아닌 150709180198번째 이유가 발견되었군. 아무래도 억겁의 시간이 필요하겠어.

 

방구석에 처박혀 독서하는 일상에 들어선 것이 100퍼센트 자발적인 선택은 아니지만, 그런 사정과는 무관하게 어쨌든 얻은 것이 있고 잃은 것이 있어서, 인간 본성상 저울질을 해보게 된다. 그런데 어느 한쪽이(어느 쪽이라고 밝히진 않겠지만) 너무 치명적으로 무거워서 양팔 저울이 무슨 사다리마냥 벌떡 섰다. 삐딱하게 선 그 꼴이 보기에 건방지지만, 그게 누구 탓인지 생각하니 어쩐지 슬퍼져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떨군다...... 대체 나는 왜 이 따위로 사는가,

 

라고 또 쓰고 앉았다.

 

그리고 다 쓰고 나면 또 뭔가를 읽어 대겠지. 쯧쯔......

 


 

오랫동안 연필을 쥐고 있다가 난 결국 쓰는 사람이 되었다사람과 사람이곳과 저곳 사이보이지 않는 많은 선들을 지워가는 그런 글을 언젠가는 쓸 수 있겠지 느긋하게 생각한다꿈을 연필로 써나가는 일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조경란 지음소설가의 사물

 

나는 앞으로도 '이런 글은 나도 쓰겠다혹은 '이런 그림은 나도 그리겠다'에서 '이런 글'과 '이런 그림'이나 맡을 예정이다글과 그림으로 누군가에게 감동과 재미를 줄 수 없다면 자신감이라도 주면서 살고 싶다.

정은우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은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 (박완서)


아이 씨어떡하지.

이경미 지음잘돼가무엇이든 

 

 

 

--- 읽은 ---

카모메 식당 / 무레 요코 지음 / 권남희 옮김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이병훈 지음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한민 지음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새로운 엘리트의 탄생 / 임미진 외 4인 지음

슬픈 인간 / 나쓰메 소세키 외 지음, 정수윤 엮고 옮김

열두 발자국 / 정재승 지음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2-10 14: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국어사전에 찾아보니 ‘끔찍하다’가 ‘정성이나 성의가 몹시 대단하다’라는 뜻도 있었어요. 저는 ‘끔찍하다’가 참혹한 정도를 의미한 건줄 알았어요. syo님의 독서는 전자의 의미에 가까워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

syo 2019-02-10 18:37   좋아요 0 | URL
도스토예프스키의 경우 아마도 전자 반 후자 반 섞은 뉘앙스로 쓴 것 같은데요?
시루스 박사님이야말로 전자의 ‘끔찍한 독서‘를 대표하는 인물형이지요.

전 솔직히 후자쪽이 더 탐나긴 하는데, 전자건 후자건 ‘끔찍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큼의 수준에는 훨씬 못 미치는 것 같아요.ㅎㅎㅎㅎ

stella.K 2019-02-10 15: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요님 책 끔찍히 많이 읽는 거 인정!
그런데 누가 인정하고 안 하고가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스스로가 많이 읽는다면 많이 읽는 거고,
조금 읽는다면 조금 읽는 거죠.
우리 이제 누구와 비교하고 그러지 맙시다.
난 그러려구요.
누구와 비교하면 전 한없이 뒤쳐지는 사람입니다.
그냥 나에게 알맞으면 그것으로 되는 것 같아요.
난 분명히 스요님이 언젠간 자신의 길을 찾을 거라고 믿습니다.
그게 남들 보기엔 늦는 것 같아도 스요님께 가장 적당할 때 찾아질 겁니다.
단지 책 읽는 건 조금 줄이는 게 좋지 않을까 싶기도 해요.
이건 여담입니다만, 책을 너무 많이 읽어서 이 세상에 살지 못하는
사람도 있더라구요. 뭐 천에 한 두명 있을까 말까한 일이겠지만.
별얘기 다합니다. 그냥 방해 공작으로 여겨주시길...ㅎㅎㅎ

저도 수거용 의류함의 의류가 궁금하긴 한데
말에 의하면 괜찮은 건 수선해서 제3세계로 수출 나간다는 말도 있고,
또 담요 만드는데 들어간다는 말도 있고,
그런데 구멍난 내의류 같은 건 어떻게 해야하는 건지 모르겠어요.ㅋ

syo 2019-02-10 18:43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께서 저 힘내라고 끔찍하게 읽는다고 인정해주셨거늘, 전혀 기쁘지 않은 걸로 봐서 제가 바라는 것도 역시 그게 아니었나 봐요ㅋㅋㅋㅋㅋㅋㅋㅋ 뭐지? 나라는 인간은?? ㅋㅋㅋㅋㅋㅋㅋ

그렇지만, 뒤이어 하신 말씀들(특히 책 줄이라는 말씀)은 어쩐지 힘이 나네요 ㅎ
진짜 뭐지? ㅋㅋㅋㅋㅋㅋ 사실은 책 줄이고 싶어서 저러는 거였을까요? ㅋㅋㅋㅋ

stella.K 2019-02-10 18:58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 그렇다면 그런가 보죠.
물은 물이고, 산은 산 아니겠습니까?ㅋㅋㅋ

2019-02-10 19: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0 2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2-11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당나귀 반바지도 아니고 밤바지ㅎㅎ 웃겨요.

왜 이따위로 사는가 하셔서...
“박완서 문학이 묘사해내는 생활 감각은 탁월해서, 이웃의 갈망이 낳는 소소한 내면적 불편과 갈등이 잘 그려진 선생님의 소설을 읽고 나면 ”왜 이렇게 사나“하고 흔들리고는 했다.”(전성태) 『멜랑콜리 해피엔딩』중

데이비드 실즈가 페소아 『불안의 서』를 ˝동반 자살 약속에 첨부된 아포리즘˝이라고ㅋㅋ 페소아를 다자이 오사무 급이라고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실즈의 표현에 반박은 안 되는ㅜㅋㅜ;;



syo 2019-02-11 00:31   좋아요 0 | URL
말씀하신 대목에 공감이건 뭐건 할려면 얼른 『불안의 서』를 읽어봐야 할 텐데요......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고!

왜 이 따위로 사는가 222222

무식쟁이 2019-02-11 0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도 모르게 쇼님을따라 내 수면바지에 이름을 붙여보고 있다. (분명 나뿐은 아닐터!) 내바지는 소바지. 대체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

syo 2019-02-11 00:36   좋아요 0 | URL
물건에 이름 붙이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대요!
그리고 프로필 사진에 멍뭉이 쓰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 없대요!

와..... 쟁이님.....

무식쟁이 2019-02-11 00:53   좋아요 1 | URL
제가 좀 무해한 사람입니다. 하지만 유해한 사람을 보면 앙!! 뭅니다. 제가 오늘 읽은 책이 뭘까요~ (대체 나는 여기서 왜 이러고 있는가..222)

syo 2019-02-11 00:58   좋아요 0 | URL
정답! 최은영??

무식쟁이 2019-02-11 01:0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걸 또 열심히 맞춰주시고ㅋ
수학과교수님께서 초등학생 구구단에 장단맞춰주시는 훈훈한 광경 ^^
 


야한 책 야한 문장, 웃긴 책 웃긴 생활, 귀여운 책 귀여운 인생


 

1

 

syo가 부지불식간(과연?)에 야한 문장을 썼다면, 그건 100% 필립 로스가 시킨 일이다. 전락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죽어가는 짐승』에 연이어 읽었다. 흐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대충 무방하지 않을까.


 

 

 

2



이런 저런 번역을 통해 고골의 를 세 번 읽었더니 이제 확실해졌다. 는 사실 얼굴에 달린 코가 아니라 뭔가의 약자였다. !가 아니라 코(미디)였던 것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깨닫는데 3회독이나 필요했다는 것이 도리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앞서 두 번이나 읽을 동안, 한 번을 웃지 않았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예절을 지키기 위해 남방셔츠 위에다 모닝코트를 입고 식탁에 앉아 파와 빵 위에 소금을 뿌려 식사 준비를 마친 다음나이프를 손에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빵을 자르기 시작했다빵을 두 조각으로 잘랐을 때 빵 속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눈에 띄자 깜짝 놀랐다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조심스럽게 나이프 끝으로 빵을 헤집은 다음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만져보았다.

  “단단한걸.”

  혼자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뭘까?”

  그는 손가락을 쑤셔 넣어 그것을 빼냈다코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양손을 얼른 움츠렸다눈을 비비고 다시 손가락으로 건드려보았다역시 코다사람의 코가 틀림없다게다가 아는 사람의 코 같았다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감돌았다하지만 그 공포도 아내가 터뜨린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여보어디서 남의 코를 잘라온 거야?”

  그녀는 버럭 성을 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기꾼술주정뱅이내가 직접 경찰에 고발해야지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어당신이 면도할 때 남의 코를 얼마나 세게 움켜쥐는지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

니콜라이 고골 지음조주관 옮김

 

모자란 감수성이오나, syo는 저 문단에서 크고 작은 웃음 포인트 10개 정도를 어렵지 않게 감지하였다.

 

  하나.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멍청한데 감정도 없는 인간이라는 뉘앙스로 읽을 수 있다고 함.

  둘. , , 소금에 불과한 식탁 앞에서도 옷차림은 갖추는 허영.

  셋. 근데 그 옷이 허접함.

  넷. 그 와중에 표정은 또 심각함.

  다섯. 빵 속에서 뭔가 엄청난 게 나왔는데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단단한걸’.

  여섯. 코다......, 코다!도 아닌, 코다......! 에서 느껴지는 시간차 벙찜.

  일곱. 눈을 비비는 동작을 통해 진부함과 멍청함이 아름답게 어우러짐.

  여덟. 세상에, 그 코가 또 잘 아는 코.

  아홉. 빵에서 사람 코가 나왔지만 아내의 분노에 비하면 사실 그리 큰일도 아니라하는데서 느껴지는 짠함.

  열.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라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정서.

 

나는 좋아, 작정하고 웃기려는 작가가 나는 좋아. 그들이 실제로 웃기는데 성공하면 너무 좋아......

 

 

 

3



카모메 식당으로 청년의 출근은 계속되었다그는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치에에게 수다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 돼요지금은 바빠요.”

  평소에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치에지만일을 할 때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아...... ...... 미안합니다.”

  토미는 시무룩해져서 가게 한구석에 앉았다그리고 손님이 끊길 즈음을 틈타서 또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아버지어머니는 어디입니까?”

  “아버지는 일본에 있습니다요.”

  “일본에 있습니까핀란드에 혼자입니까?”

  토미는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요.”

  “외롭고 슬프지 않습니까?”

  “아뇨.”

  사치에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여자아이 한 사람 위험합니다.”

  “여자아이누구?”

  “사치에 짱입니다여자아이입니다.”

  “아아뭐 넓은 의미에선 그렇겠지만......”

  “넓은 의미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가 필사적인 눈길로 물었다.

  “저기난 여자라는 말이에요.”

  “그렇습니다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학교는...... 갔습니까?”

  “갔어요도쿄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

  말문이 막혔다이제야 자기보다 연상이란 걸 명백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

  그가 낙담한 것을 보고 사치에는 직구를 던졌다.

  “나 몇 살로 보여요?”

  “몇 살?”

  “내가 몇 살로 보이냐고요.”

  그는 점점 얼굴이 붉어지더니 작은 소리로 열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열다섯 살?”

  사치에는 깔깔 웃었다토미는 입을 한일 자로 꽉 다물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에요.”

  그의 동공이 커졌다순간눈앞이 캄캄해졌는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서른여덟 살은 삼십팔 개삼십팔 년과 같습니다.”

  “그렇죠.”

  “.”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사치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슬픕니다그러나 힘을 낼 겁니다울지 않습니다오늘은 안녕.”

  그는 축 처진 어깨로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치에는 중얼거렸다.

  “일찌감치 아는게 그를 위해서 낫지.”

  토미 군이 이제 가게에 안 오는 건 아닐까사치에는 걱정했다.

무레 요코카모메 식당, 44-47 

 

그러나 힘을 내어 가게에 계속 나온다, 귀요미 토미 군.

 

아무 이유 없이 지쳤을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따뜻한 영화나 책으로 충전하는 법이다. 사실 지치는 데 이유가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하여튼 내가 왜 소진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도무지 왜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싶은 심심하고 아늑하고 바지런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는 작품이 좋다. 카모메 식당이야 널리 알려진 힐링 영화니 무슨 말을 덧붙일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중이기도 하지만, syo에게 귀여움이 이 세상을 구해줄 거예요라는 문장은 그 권위가 십계명만큼은 된다. 신앙처럼 귀여움을 믿고 있다. 그리하여 멍뭉이를 만나면 환장하며 냥이를 만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저쪽에서 누군가 아기를 품에 안고 걸어오면, 스쳐 지나면서 반드시 그 아이 얼굴을 보고야 만다. 눈 덮인 산을 등반하는 이들의 조끼 주머니에 비상용 초코바가 들어있듯, syo의 핸드폰에는 비상용 풍산개 새끼 사진이 들어 있다. 한없이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 하얀 생명체. 이제는 늙고 늙어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이 금방금방 움직여주지 않는데, 귀요미와의 접촉사고만큼은 언제나 감정의 쓰나미를 일순간에 몰고 온다.

 

활자도 syo에게 그런 짓을 한다. 멍청하게 책장을 넘기는 이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카타르시스가 듬뿍 담긴 귀여운 장면들. 그런 대목을 만나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4



syo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syo가 가장 사랑하는 빨강색으로 표지를 두른 책을 내놓았다. 우산이라 쓰였고 우산이 그려진 그 책은 긴 연휴가 끝났음을 알리듯 도착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괜히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표지를 넘기니 하얀 책날개에 오직 여섯 글자만 박혀 있었다. 황정은黃貞殷. 이 책이 황정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외에 그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듯이.

 

그리고 그 글자들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이름 석 자가 불러일으킨 신뢰, 추억, 감동, 기대 같은 것들, 다 서술하려면 넉넉히 삼만 자는 필요할 그것들을 세 개의 글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다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미 황정은을 사랑하는 syo를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여섯 글자짜리 작가 소개를 읽는데만 5분을 사용하고, 본문은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채 쓴다.




--- 읽은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전락 /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물고기들의 기적 / 박희수 지음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이병훈 지음

카모메 식당 / 무레 요코 지음 / 권남희 옮김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지음


댓글(31) 먼댓글(0) 좋아요(5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자목련 2019-02-08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겹치는 책이 있어 더 반가운 페이퍼네요^^
황정은의 소설은 정말 와락입니다!!

syo 2019-02-08 10:41   좋아요 0 | URL
오늘 어쩐지 제 북플은 빨간 바탕의 우산 그림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역시 황정은이지요! ㅎㅎㅎㅎ

다락방 2019-02-08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뻬쩨르부르그이야기, 카모메식당,캘리번과 마녀(읽는중), 디디의 우산(읽는 중)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죽어가는 짐승.
후훗. 저는 여섯권 겹치네요. 그런데 전락은 내가 읽었나 안읽었나..모르겠다... 확실한 건 여섯권 뿐이구려.

그나저나 캘리번과 마녀 시작했군요! 저도 주말에 열심히 읽을 참입니다. 후훗. 좋아라. 후후훗.

syo 2019-02-08 11:38   좋아요 0 | URL
뭐든 다 읽으신 다락방님. 다(읽으신다)락방님......

목나무 2019-02-08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syo님은 저와 라이벌이셨군요! 저의 가장 최애작가님도 접힌 우산을 가운데 둔 빨간 표지 책을 내셨는데!
정말 가끔 힐링이 필요할 때 넋놓고 보게 되는 영화가 있네요. 저는 <안경>이란 영화도 좋았어요. <요시노 이발관>도
사실 이 감독의 작품은 다 좋아해요. ㅎㅎㅎ
필립 로스의 글을 읽고 난 후의 syo님의 ‘45초‘ 스멜이 나는 페이퍼를 보고싶다!! ㅋㅋㅋ

syo 2019-02-08 11:39   좋아요 1 | URL
악 ㅋㅋㅋㅋㅋㅋㅋ 아무것도 못들은 척 <안경>이랑 <요시노 이발관> 보러 가야겠네요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08 11: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뭐.... 딴지 걸고 그러는거 아니구요. 오해 없이 들으시기 바래요.
제가 필립 로스 한국어로 나온 책은 다 읽은 사람으로서 하는 말이거든요.
필립 로스 다 읽어도 <얼굴을 만지는 방법> 같은 글은 안 나와요.
전락, 죽어가는 짐승, 유령 퇴장 또 야한 책이 뭐였더라..... 아, 포트노이의 불평.
연거퍼 연속으로 줄줄이 읽어도 그런 글은 안 나옵니다. 안 나옵디다.
그냥.... 인정해요. 인정하시지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쿨하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8 11:54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진심 필립 로스 마니아 단발님이 이러시면 어떡해요 ㅋㅋㅋㅋ

이 정도 대접(?)까지 받을 건 아니었잖아요 ㅋㅋㅋㅋ 손이랑 볼이랑 머리카락만 나왔는데 뭐가 야하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쿨, 그게 뭔데 ㅋㅋㅋㅋ

단발머리 2019-02-08 11:59   좋아요 0 | URL
그게 야한 거예요. 바로 그게.
다 나왔네. 손이랑 볼이랑 머리카락이랑......
어머나, 세상에! 댓글도 야해!!! 진심 못 살겠당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8 12:03   좋아요 0 | URL
ㅋㅋㅋ의 갯수만큼 증폭되는 논란.....
이쯤에서 적당히 숙이고 들어가겠지만 그래도 나는 못내 뭔가 억울하다!! ㅋㅋㅋㅋㅋㅋㅋ

무식쟁이 2019-02-10 23:45   좋아요 1 | URL
(조용히.... 보관함에.. 담는다....흠흠;)

stella.K 2019-02-08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짜 코가 코미디의 코 맞습니까?
그건 스요님 개인의 해석 아닌가요?
코를 읽어 본 적이 없으니 이럴 땐 웃어야할지.
암튼 대단한 발견을 한 것만큼은 분명해 보입니다.
스요님이나 되니까 3번이나 읽고 깨달은 거지 난 죽었다 깨어나도 알랑가 모르겠어요.

그렇지 않아도 스요님 귀여운데 있어요.
이 황량하고 거친 세상에 스요님의 귀요미로 세상을 구원해 주세요.ㅋㅋ

syo 2019-02-08 16:30   좋아요 0 | URL
죄송합니다 ㅋㅋㅋㅋㅋ 그 코는 아무래도 진짜 ‘코‘겠지요? ㅎㅎㅎ

세상을 구원하는 귀요미는 저 같은 무뢰배가 후천적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아무래도 타고난 것이 조금은 필요합니다.^-^

책읽는나무 2019-02-08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정은의 ‘디디의 우산‘은 얼마전 도서관에 신간서적 코너에 꽂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다른 책들 빌리느라 미적거리느라 놓친 것이 못내 안타깝네요ㅜㅜ
알라디너 매니아분들이 황정은의 소설을 올릴때마다 아~~탄식중이네요.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려면 또 한참을 기다려야할테고...
또 구입을 해야하나??
고민중입니다.
그래도 전 그나마 ‘카모메 식당‘저 이야기로 위안 얻고 갑니다^^
전 저 영화로 인해 시나몬 롤케잌을 언젠간 반드시 만들고 말테다!!!굳게 다짐하며 제빵 요리책을 탐독하기 시작한지가 몇 년입니다^^

그나저나 님의 글을 읽다가 놀라운 것을 발견했습니다.
진짜 고골의 ‘코‘가 ‘코미디‘의 코였어요?ㅋㅋ
저도 읽긴 했는데 당최 기억이 나질 않아서????
인용한 글도 생전 처음 보는 글들이라?????
이래서 책을 재독하라고 하나 봅니다.

ps.필립 로스는 단발머리님이 가장 먼저 떠오르긴 합니다.
워낙 영향력 있게 필립 로스를 몇 년 전부터 외쳤었던 분이신지라...ㅋㅋ
전 휴먼 스테인 1권만 읽고,2권은 아직 읽지도 않아 늘 단발머리님께 죄송할 정도에요ㅋㅋ
헌데 많이 야하다니 필립 로스의 책들도 언능 읽어봐야겠습니다^^

syo 2019-02-08 16:32   좋아요 0 | URL
제가 쓸데없이 진지를 떨어놔서 혼란을 혼란을 불러일으켰군요.
짐작하신대로 그 코는 당연히 그냥 코입니다 ㅋㅋㅋㅋㅋ 뻘소리였어요 ㅎㅎ

그런(?) 목적으로 필립 로스를 찾으신다면 결코 실망하지 않으실 겁니다 ㅎㅎㅎ

댓글을 보니, 갑자기 시나몬 롤이 먹고 싶어지네요. 영화를 보면서도 그런 생각을 안했었는데??

반유행열반인 2019-02-08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장바구니에 담아뒀던 필립 로스책 개인 셀러에게 주문했는데, 했는데!! 연락이 왔어요. 누군가에게 벌써 팔아버렸다고...품절이라고...아직은 저한테 안 다가 오네요 할배책이...나 센 거 좋은데...이누므 할배가 새 책 사 보라고 그러시나...

syo 2019-02-08 16:34   좋아요 1 | URL
그런 신통력을 발휘하는 걸 보니 필립 로스 할배, 하늘나라에서 높은 자리에 앉으셨나보네요.
야하면서 좋은(야하지만 좋은? 야하니까 좋은?) 책을 꾸준히 써낸 보람이 있게 되었네요.

카알벨루치 2019-02-08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군 댓글달기때는 탑/바텀 버튼이 있어야겠네요 스크롤하는게 힘드렁 ㅜㅜㅋㅋ

인제 도끼 읽으라고 준비하는감요?

syo 2019-02-08 16:35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 눈치가 빠르시군요. 역시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를 읽은 분 답습니다.

특별히 언급하지 않고 조용히 도선생님 순례를 시작하려 했는데......

카알벨루치 2019-02-08 16:43   좋아요 0 | URL
나 그거 꽂아두고 눈팅만 하는뎅~<태백산맥>넘어 ‘시베리아산맥’넘다가 도끼로 갈수도, 아님 톨스토이로 갈수도...응원합니다!!!!

syo 2019-02-08 17:21   좋아요 0 | URL
ㅎㅎㅎㅎㅎ 언제든 넘어오시기만 하면 되는 거죠 뭐.
저도 응원합니다 ㅎㅎ

레삭매냐 2019-02-08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예전에 필립 로스의 <네메시스>
독서모임에서 <죽어가는 짐승> 너무
야하고 재밌다고 했더랬죠.

다른 분들은 생각은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역시 나와 다른 이들의 관점은 다르구나
를 절실하게 느꼈지 싶습니다.

syo 2019-02-08 19:50   좋아요 0 | URL
그 맛에 독서모임 하는 거로군요!! ㅎㅎㅎㅎ 재미는 몰라도, 야하다는 데는 다들 동의하지 않을까요?? ㅎ

북다이제스터 2019-02-08 23: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카모메 식당 영화 보고 핀란드 카모메 식당 얼마 전 다녀 왔습니다. 식당은 별거 없었지만 핀란드는 정말 좋았습니다. 사람들이, 사회 시스탬이...

syo 2019-02-09 08:48   좋아요 0 | URL
역시 북다님 ㅎㅎㅎㅎㅎ 여행지에서 가장 감명받은 것은 그곳의 사람들과 사회시스템!! ㅎㅎ

무식쟁이 2019-02-10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가소개: 황정은 댓츠올. 캬! 멋지네요.
저 사실은... 쫌만 있으면 왠지 디디의 우산이라고 쓰여져 있는 뽀샤시한 빨강우산이 굿즈로 나올것 같은 예감에.. 책구매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
어디가서(요기와서) 황작가님 팬이라는 소리는 하지 말아야 겠어요;;

syo 2019-02-11 00:29   좋아요 0 | URL
세상에 황정은 작가님 샤이팬이 이렇게도 많다는 사실을 작가님이 알아야 되는데.....
저도 여기서 팬심 고백했지만, 다른 분 서재에서 보고 바로 두손 두발 들었거든요.

빨간우산 굿즈, 정말 나올까요? 쟁이님 평소에 이런 거 잘 맞추시는 편이세요? 어떠세요 ㅎㅎㅎ

AgalmA 2019-02-11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골의 『코』를 그렇게나 읽으셨다니 엠마뉘엘 카레르 『콧수염』도 꼭 읽으셔야 할 걸로 사료되옵니다. 엠마뉘엘 카레르가 또 러시아 빠 아닙니까. 『러시아 소설』이라는 자전적 소설도 쓰고 러시아 개혁파 시인 얘기 『리모노프』이야기도 쓰고ㅎ.『콧수염』 은 저도 아직 안 읽었는데 생각난 김에 읽어야 겠어요.

syo 2019-02-11 00:32   좋아요 0 | URL
전 엠마뉘엘 카레르라는 이름도 지금 처음 들어봅니다.....
이렇게 추천까지 똭 해주시니 제가 밀리의 서재보다 아갈마님의 서재를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거잖아요.ㅎㅎ

chaeg 2019-02-12 1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로 필립 로스를 읽으러 갑니다..^^

syo 2019-02-12 12:22   좋아요 0 | URL
야하고 유익한 시간이 되시기르흐흐흐흐흘ㅎㅎㅎㅎㅎ
 

 

오늘의 나와 나의 오늘을 위한 책

 

 

1

 

영문도 모른 채 마음 아픈 해질녘이 누구에게나 있게 마련이다. 내일 다시 해가 뜰 것임을 아는 게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 불안한 밤, 빈틈없이 밝은 빛 속에서 홀로 그늘진 마음을 숨기느라 끊임없이 초라해지는 한낮 같은 것들이 종종 끼어드는 것이 삶이라서, 때론 그저 산다는 이유 하나면 격려나 보상을 받을 자격이 충분한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2

 

우주공간에 박힌 별만큼 삶은 많고, 그 많은 삶만큼 책 또한 많기도 많아서, 세상에는 오늘의 나에게 꼭 맞는 한 권의 책이 반드시 있을 거라고 단단히 믿게 된다. 단지 우리가 서로를 스쳐 지나쳤을 뿐. 생각한다. 내가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어느 한 별을 손가락으로 가리킨 순간에서 몇 백만 광년이 지나 그 별에 사는 누군가가 역시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내 손가락 지문에서 태어나 어두운 우주를 헤엄쳐서 마침내 그 별까지 도달한 독특한 파장의 가녀린 빛을 포착하는 일에 대해서. 만났는지도 모르고 만나는 일에 대해서. 모든 결정적인 만남은 회상 속에서만 알아챌 수 있다는 신비한 법칙에 대해서. 그래서,

 

 

 

3


그때 그 책이 내 인생의 골목길에 모퉁이 하나를 점지하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데는 시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책이 나와 다른 장점과 단점과 관점을 가지고 그때와 다른 시점을 살고 있는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의미에도 도달하지 못하는 한낱 종이뭉치쯤으로 여겨지기도 한다는 사실을 넉넉히 받아들이려면 공간의 도움조차 필요하다. 마음의 넉넉한 공간.

 

 

 

4

 

그 공간 역시 사실은 시간이 열어젖힌다. 결국은 모두 시간이 하는 일이다.

 

 

 

5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도움으로 가끔은, 내게 꼭 필요한 순간에 꼭 필요한 책을 읽고 있다는 확신에 찬 손길로 책장을 넘기고, 자신감 있게 밑줄을 긋고, 여백에 짧은 글귀를 남기며 스스로 감탄하는 경험을 하기도 한다. 충만함, 지금 내가 내게 너무도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데서 오는 그 충만함에 듬뿍 젖어 있는 사람은 강하다. 깊게 읽고 빽빽하게 쓰며 넓게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조금씩 삶이 단단해진다. 흔들리지만 흔들리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고, 둘러가지만 둘러가는 일을 어려워하지 않게 된다. 축복처럼 쏟아지는 결맞음의 경험. 그래도 한 번은 겪어봤고, 그게 어떤 기분인지 잘 안다는 사실만으로 만족해야 할까?

 

 

 

6

 

내게 필요한 책을 읽고 싶다.

 

푸슈킨 문학은 기본적으로 밝고 경쾌합니다슬픔에 빠져 있을 때 감정을 끌어올려 줍니다정신 건강에 좋다고 할까요레르몬토프나 고골 같은 작가로 가면 정신 건강에 조금 유해합니다독자에게도 체질에 따라서 맞는 작가들이 있어요평소에 기분이 너무 고양돼 있는 분들은 푸슈킨하고 잘 안 맞습니다같이 가벼우니까요그런 경우에는 끌어내려 줄 수 있는 좀 우울한 작가들이 좋습니다그 대신 평소에 좀 우울하다 싶으면 푸슈킨을 많이 읽으세요그러면 도움을 얻을 수가 있어요물론 푸슈킨의 모든 작품이 그런 것은 아닙니다유해한 작품도 몇 편 있어요청동 기마상이나 스페이드 여왕같은 작품에서는 주인공이 미치는 걸로 되어 있어요푸슈킨도 미칠 지경일 때 쓴 거라서 그렇습니다.

이현우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56



책은 다방면으로 사용할 수 있다슬플 때 얼굴을 가릴 수 있다얼굴을 가리고 조금 울 수도 있다마음이 펄럭일 때 납작한 돌멩이처럼 배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잡생각이 가득할 때 같은 문장을 반복해 읽으며 생각의 둘레를 걷고걷고또 걸을 수 있다운이 좋으면 생각의 둘레에서 벗어나 책 속으로 걸어들어갈 수도 있다다정한 목소리를 듣고 싶을 때 펼치면 아늑해진다나는 운이 좋게도 다정한 목소리를 내는 작가를 여럿 알고 있다내 모습이 싫을 때 가장 먼 곳으로 재빨리 데려다주는 것은 책뿐이다어떤 비행기도 하지 못한다돌아오는 것도 쉽다음악이나 영화에서 빠져나오려면 버튼을 눌러야 하지만 책은 간단하다눈을 떼면 된다내 몸처럼 붙었다 다른 몸처럼 떨어진다혼자 행하지만 외롭지 않은 일이 독서다좋은 책을 읽고 난 뒤 책장을 덮는 순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심심할 땐 책이 좋다내가 책을 읽는 첫번째 이유는 '재미'때문이다신기하게도 모든 재미있는 일은 나를 변하게 하고삶을 변하게 하고세상을 변하게 만든다.

  그러니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고 가벼운무기를 사야 한다면책을 사야 한다.

장석주박연준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399-401 

 

나는 어릴 적에 그림을 볼 때 거기에 묘사된 사물이 실제로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알고 싶어했음을 다시 떠올렸다예를 들어 우리 집에는 빙하 풍경을 담은 유화가 한 점 있었는데그 그림의 아래 가장자리 부분에 알프스의 움막 농가가 그려져 있었다나는 이 풍경과 움막 농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심지어 화가가 서 있던 위치까지도 알아낼 수 있다고 믿었다그래서 사람들이 이 그림은 상상화일 뿐이라고 말해도 믿을 수가 없었다그림은 그냥 그림일 뿐그것에 관해서 상상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을 하면 오랫동안 거의 질식할 것 같은 상태에 있곤 했다글자 읽는 법을 터득할 때도 상황은 흡사했다존재하지도 않은 것에 대해 무언가를 기술한다는 것을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학교에서 배우는 독서교본에 나와 있는 장소는 분명히 존재했다비록 내 소유는 아니지만 근처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로서 심지어 그곳이 어딘지도 알고 있었다내가 처음으로 읽었던 책들은 항상 일인칭 시점의 이야기들이었으며일인칭 화자가 등장하지 않는 책을 접하면 끔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페터 한트케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122-123 

 

 

7


 

이 소규모 서클의 급성장에 경악한 경찰은 1898년에 트로츠키를 비롯한 회원들을 체포했다트로츠키는 감옥에 갇혀 있는 2년 동안 많은 책을 읽고 많은 글을 썼다그가 처음으로 레닌의 몇몇 저작을 읽고프리메이슨의 역사를 다룬 마르크스주의 저작을 처음 쓴 것도 이때였다그는 또동료 재소자들 사이에서 선동을 하기도 했다비록 효과는 없었지만 극적인 모자 착용 투쟁을 벌였다가 한동안 독방에 갇힌 적도 있었다.

마이크 곤살레스 외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216


우스티카 섬의 교도소에서 다른 공산주의자들이나 반파시즘 투사들과 함께 즐겁게 지낸 몇 개월을 제외하면그람시는 형기 내내 사실상 격리돼 있었다정권의 의도대로 그의 건강은 나빠졌다특히 폐결핵동맥경화증척추카리에스(척추가 차츰 파괴돼 등의 근육을 따라 고름 종기가 생기는 병)가 그의 몸을 점차 망가뜨렸다그람시가 가장 두려워한 것은 몸이 너무 아파서 특별 대우를 해달라고 간청하며 정권에 굴복하는 것이었다그러나 그는 결코 그러지 않았다.

  그람시는 믿기 힘든 강인한 의지력으로 역경을 헤쳐 나갔고온갖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1929년부터 1935년까지 노트에 다양한 글을 썼다그 노트들은 천신만고 끝에 안전하게 밖으로 반출됐다. <옥중 수고>는 엄청나게 어려운 조건에서 그리고 마르크스주의 고전을 전혀 열람할 수 없는 상황에서 쓰였다(그람시는 순전히 기억에 의지해서 마르크스주의 고전들을 인용했다). 그람시는 노트 33권의 2848쪽을 빽빽하게 채워 넣는 데 성공했다.

같은 책, 318-319


감옥에서 읽거나, 읽어서 감옥이거나. 감옥에서도 읽고 쓰는 이들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감옥에서도 밖에서처럼 읽고 쓸 수 있어서 감옥이 감옥이 아니었습니까, 아니면 감옥 밖에서도 감옥에서처럼 읽고 쓸 수 있어서 온 세상이 감옥이었습니까?

 

가끔은 읽는 일이 감옥에 스스로를 가두는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읽는 일은,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집착을 갖게 한다. 많이 읽어보면 안다. 그 집착은 양에 대한 집착, 질에 대한 집착 따위로 단순하고 추상적이면서 무신경하게 이름붙일 수 있는 성질이 아니라는 것을. 이를테면 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읽을 때 총론서와 각론서의 수적 비율과 읽는 순서에 대한 집착 같은 것. 총총각총각각총각총각과 총총각각총각총각각총 중에서 어느 쪽을 골라야 할지에 대한 벗어날 수 없는 고민 같은......

 

 

 

 

 

--- 읽은 ---

돈 후안 외 / 티르소 데 몰리나 지음 / 전기순 옮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이현우 지음

불교입문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지음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 마이크 곤살레스 외 지음 / 이수현 옮김

 


--- 읽는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슈퍼맨은 왜 미국으로 갔을까 / 한민 지음

전락 /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물고기들의 기적 / 박희수 지음

하늘과 땅 / 산도르 마라이 지음 / 김인순 옮김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4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비연 2019-02-07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중에 필립 로스의 <전락>만 읽은...;;;;

syo 2019-02-07 14:20   좋아요 0 | URL
<전락>을 2년쯤 전에 읽었다가 이번에 다시 읽었는데 거의 처음 읽는 거랑 진배 없더라구요..... 저기 나열되어 있는 다른 애들도 아마 비슷한 운명이겠지요ㅠㅠ

jeje 2019-02-07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읽고 있는 책을, 어제 급하게 만난이에게 선물했어요. 저에게 너무 좋은 책이었는데, 그 사람은 어떤 느낌으로 읽게 될지 정말 너무너무 궁금했어요. 언젠가 읽게 된다면 어땠는지 꼭 얘기해주기로 했습니다. 내가 좋아한 책이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도 좋아하면 더 좋은 책이 될거같아요. 기대됩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ㅎㅎ

syo 2019-02-07 23:56   좋아요 0 | URL
jeje님께서 선물하신 책이 선물 받은 분께서도 좋아할 만한 책이었으면 좋겠네요. 그렇지만 내가 좋아해서 권한 책이 다른 이에게 그만큼 좋은 책이 못 되는 경험도 생각해보면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니더라구요. ^-^

카알벨루치 2019-02-08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불교입문>도 읽으심????? ㅋㅋ

syo 2019-02-08 09:2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 호기심천국ㅋㅋㅋ

카알벨루치 2019-02-08 10:30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AgalmA 2019-02-11 00: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감옥이라서 <주역> 같은 오래 읽을 수 있는 동양철학 책을 봤다는 신영복 선생님 얘기에 제가 감옥에 가면 뭘 읽을까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일단 감옥이나 병원에 들어가기 전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다 읽을 생각입니다. 그런 데에 곧 들어가진 않을 거 같아서 답답한 심정에ㅎ;

읽고 쓰는 게 감옥이라는 정서는 다들 공통적으로 느끼는 점인 듯요.

syo 2019-02-11 00:35   좋아요 2 | URL
읽고 쓰는 게 감옥이라서 감옥에서 읽고 쓰는 게 더 치열해지는 구조인가요......
오, 생각해보니 비슷한 경험 있다.

감옥은 아니지만, 논산에서 훈련받을 동안 정말 읽을 게 궁해지니까 교회에서 나눠준 포켓 사이즈 신약성경을 불침번 서면서 3회독을 하게 되더라구요ㅋㅋㅋㅋㅋㅋㅋ

무신론자 협회에서 배교자라고 잡으러 오는 거 아닌가 몰라....

AgalmA 2019-02-11 00:38   좋아요 0 | URL
군대가서 책 열심히 읽는 분 많더군요^^ 그래서 거기 책도 많이 비치하잖아요. 자기계발서 같은 거만 많이 읽지 않길 바랄 뿐ㅎ;

syo 2019-02-11 00:42   좋아요 0 | URL
제 때는 1Q84가 들어와 있었는데, 야한 장면 있는 부분만 손때가 타더니 결국 얼마 못가 소실되고 만 일이 있었지요...... 하루키를 그렇게 배운 아이들이 제대를 하였는데, 제대 후에도 꾸준히 하루키를 읽어주고 있는가 모르겠다.

무식쟁이 2019-02-11 01: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쇼님글 참 좋아요. (아이고 참. 이 답답한 표현력; )
 


얼굴을 만지는 방법

 

 

1

 

행동으로서는 명백하지만 그 의미하는 바가 명백하지 않다는 사실 덕에 역설적으로 명백하게 의미를 갖추는 동작들이 있다. 예컨대 얼굴을 만지는 일.

 

얼굴을 만지는 일은 어떤 관계에서는 단지 동작으로서만 작용하지 않는다. 그 관계 안에 있는 이들에게 사실, 얼굴을 만지는 일은 없다. 오직 얼굴을 만져주는 일과, 얼굴을 만지게 해주는 일만이 존재한다. 오직 주는 일과 주는 일이 마주할 뿐이다. 어떤 사랑은 그렇게 생겼거나, 그렇게 생겼다고 받아들여진다.

 

우리는 몰두한다. 얼굴을 만지는 일에는 불필요할 섬세함이, 얼굴을 만져주는 일에는 요구된다. 그래서 그 일은 충분히 연구의 대상이 되고, 서로는 아무리 연구해도 충분하지 않은 대상이 된다. 우리가 충분히 몰두할수록, 우리는 몰두하기에 충분해진다.

 

가령, 핸들을 잡고 있는 당신의 얼굴에 손을 가져갈 때, 나는 연구한다. 손등 방향으로 당신의 얼굴을 스치는 방식이, 손바닥과 붙어 있는 손가락 안쪽 마디를 평행하게 눕혀 당신의 볼을 귀에서 턱 방향으로 스치듯 훑어 내려갈 때 그 동작이 악셀을 밟고 있는 당신의 다리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생각한다. 목 옆쪽으로 떨어지는 머리칼을 쓸어내릴 때, 어느 높이에서 시작해야 할지, 몇 개의 손가락을 동원해야 할지, 손가락 사이사이에 머리칼은 얼마만큼 품어 넣어야 할지, 손이 훑어 내려오는 속도는 벚꽃이 떨어지는 것보다 빨라야 할지 느려야 할지, 나는 천천히 그 모든 경우의 수를 음미한다. 그 모든 경우의 수가 내게서 무엇을 꺼내 당신에게 무엇을 가져다줄지 살뜰히 짐작하는 일이 기껍다.

 

그 작은 얼굴에 손 하나 닿는 방법이 무수하여 무수한 시간동안 나는 당신을 무수히 생각할 작정이다.

 

내 심장에서

느티나무 같은 밤이 자란다.

너를 향해

내 발바닥엔 잔뿌리들 간지러이 뻗치고

너를 만지고 싶어서

내 모든 팔들에

속속 잎새들 돋아난다.

황인숙밤의 노래」 부분

 

나는 겨우라는 붓에 기대어 날마다 사과 한 알씩을 먹으며 당신을 사랑합니다사랑은 하나의 성냥개비가 척하고 불꽃을 일으켰다가 꺼지는 찰나의 사건이지요내가 '당신의 첫'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이라는 첫'은 저 오클랜드 서쪽 바다의 일렁이는 너울같이 내게 연이어 다가오는 첫사랑입니다당신이 첫사랑이 아니라면 옆에 있는데도 이토록 당신을 그리워할까요당신은 옆에 있지만 멀리 있어요당신은 찰나이면서 그 찰나가 품은 영원입니다.

장석주내 몫의 사랑을 탕진하고 지금 당신을 만나

 

아내가 뒤척거리며 반대로 돌아누웠다그 바람에 발목이 담요 밖으로 빠져나왔다장길도는 아내의 새하얀 발을 잠시 들여다보았다원래 저리 하얬던가모를 일이었다한 사람의 전부를 알려면 우주만큼 장수해야 할 것 같았다.

박형서당신의 노후

 

 

2


무릇 인간이란 남을 지배하든가 남에게 섬김을 받든가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존재라는 건 잘 압니다누구에게나 맑은 공기가 필요하듯 노예란 필요하지요명령하는 것은 곧 호흡하는 것이니까요여기에 동의하시죠가장 불우한 사람조차도 숨은 쉬게 마련입니다사회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도 배우자나 자식이 있고 독신일 경우엔 개가 있지 않습니까요컨대 핵심은상대는 대꾸할 권리가 없으나 자신은 화를 낼 수 있다는 겁니다. '아버지한테 말대답해서는 안 된다'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습니다알고 계시죠어떤 면에서 보면이 말은 좀 이상합니다자기가 사랑하는 사람한테가 아니면 대체 누구한테 말대답을 한단 말입니까그러나 달리 보면 꽤 설득력이 있는 말입니다누구에게나 대적할 수 없는 상대가 하나쯤은 있어야 하기 때문이지요그러지 않으면 모든 이유들이 서로 대립할 수 있고결국 끝이 나지 않을 테니까요이와 반대로권력은 모든 것을 단번에 끝내줍니다많은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우리는 이것을 터득했지요가령당신도 알아차렸겠지만우리의 늙은 유럽은 드디어 꽤 쓸 만한 방식으로 문제를 논의하게 되었습니다우리는 이제 순진한 시절에 그랬듯 "나는 이렇게 생각합니다여러분의 의견은 어떻습니까?"라고 말하지 않습니다다들 냉철해졌거든요대화도 통보로 대체해버렸습니다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말하지요. "이상은 사실이다당신들은 언제든 이것을 검토할 수 있으나그것은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다몇년 후경찰이 당신들에게 내가 옳다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알베르 카뮈전락, 46-47 

 

내가 도달한 나이는 콘수엘라에게 커다란 의미가 있어노신사와 사귀는 여자아이들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그러는 게 아니야-나이에 끌리는 것이고나이 때문에 그러는 거야왜냐고콘수엘라의 경우 그건 엄청난 나이 차 때문에 자신이 굴복하는 것을 스스로 허용할 수 있어서인 듯해내 나이와 내 지위가 아이에게합리적으로 항복해도 좋다는 허가장을 주고그러면 침대에서 항복하는 게 불쾌한 감각이 아닌 거야동시에나이가 훨씬훨씬 많은 남자한테 친밀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줌으로써 이런 젊은 여자는 젊은 남자와 성적인 수작을 할 때는 얻을 수 없는 권위를 갖게 돼굴복의 쾌락과 더불어 정복의 쾌락을 누리는 거지여자의 권력에 굴복하는 남자아이그렇지 않아도 매력이 넘치는 존재에게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하지만 세상을 아는 남자가 오로지 자신의 젊음과 아름다움의 힘 때문에 굴복한다면완전한 관심을 얻고다른 어떤 영역에서도 접근할 수 없는 남자에게 절실한 열정의 대상이 되고다른 방식으로는 자신에게 열리지 않을 숭배하는 삶에 진입한다면-그것은 권력이야그것이야말로 아이가 원하는 권력이지.

필립 로스죽어가는 짐승, 46-47 

 

두 거장이 각자 자기 책 46-47쪽에서 권력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권력이라는 단어를 만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전적인 동시에 추상적인 층위에서의 의미, 그 의미를 손으로 가리고 생각하면, 두 거장이 말하는 권력은 기이할 정도로 닮아 있지 않다. ‘권력이라는 것이 현미경을 대고 관찰하기에 좋은(혹은 그렇게 관찰해야 옳은) 단어라는 반증이 아닐까. 정황과 화자와 청자를 모두 고려하면 수백만 가지의 미시적인 의미차이가 발생하는 단어, ‘권력

 

그러나저러나 문장으로 이름난 작가의 책을 연속으로 읽는 일은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단 글쓰기가 싫어지고, 억지로 써놓고 보면 꼴 보기 싫다. 에잇, 다 죽어버렸으면!

 

, 맞다, 죽었지......

 

죄송합니다......

 

 

 

3



현재까지 확보된 수많은 증거에 따르면 낙랑군이 평양 지역에 있었다는 것은 움직일 수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그런데도 낙랑군을 한반도 밖에 있었던 것으로 주장하고 싶어 하는 심리 저변에는 크게 두 가지 요소가 있다.

  첫째는 식민지 콤플렉스다고대 한반도 내에 외부 세력이 설치한 식민지가 존재했다는 것이 감정적으로 싫은 것이다그러나 고대에 설치된 중국의 군현을 근대의 식민지 개념과 동일시하는 것은 부적절할 뿐더러설령 낙랑군이 평양이 아닌 한반도 바깥에 있었다 하더라도고조선이 기원전 108년 한나라와의 전쟁에서 패해 멸망하고 그 자리에 낙랑군이 들어섰다는 역사적 사실이 변하는 것도 아니다낙랑군이 설치된 곳이 한반도 안쪽만 아니면 돼라는 것은 그야말로 유치한 태도다.

  둘째는 고조선이 대륙에 존재했던 아주 큰 나라였다는 영토적 허영심을 충족하는 것이다사이비 역사가들은 실제 일제 식민사학자들이 광대한 대륙을 호령했던 우리 역사를 반도로 축소했다고 열을 올려 주장한다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대륙의 역사는 우월하고 반도의 역사는 열등하다는 잘못된 인식을 내포하고 있다는 점에서 문제다넓은 영토에 대한 환상과 욕망에 취해 정작 우리가 발을 디디고 살고 있는 한반도를 혐오하고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이것이야말로 과거 식민주의 사학이 파 놓은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다.

젊은역사학자모임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59-60 

  

물었다. 근초고왕 때 요서지방까지 진출했다는 사실을 아냐고. 대답은 이런 식이었다.

 

- 근초고왕이 누군데?

- 백제가 전라도야 충청도야?

- 요서가 북한에 있는 거야?

 

역사가 내게 무슨 짓을 저지를 수 있을 만큼 힘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래서 역사를 놓고 다투는 이들의 꼴이 더욱 웃겨 보인다. 저게 뭐라고.

 

잘못된 역사관이 자라나는 아이들을 어쩌구저쩌구 하는 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광개토대왕이 만주벌판의 어디까지 말발굽을 찍고 왔는가 하는 역사적 사실보다는,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지나가는 듯한 CF속에 숨겨져 있는 코드들이 인간의 의식과 무의식에 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게 21세기 자본주의 세계다. 요컨대 저들은 진영과 무관하게 자신들의 영향력을 너무 과신하고 있다.

 

어차피 모든 역사는 이데올로기다. 기록은 승자의 기록이고, 출토된 유물은 영토와 영토 사이에 확고한 금을 그어주지 않는다. ‘사실은 없거나 약하고, 최소한 사실을 내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고자 하는 사람이 사실보다 더 많고 열정적이다.

 

역사로 뭔가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로 다 별로고 짜증나지만, 그래도 자기 배 불리려고 헛소리하는 사람들은 차라니 견딜 만하다. 어차피 나는 안 믿을 거고, 그들이 역사로 국을 끓여 제 배를 채운다고 내가 배고플 일은 아니니까. 그러나 역사의식이니 뿌리민족적 정체성이니 하는 소리를 입에 올리는 인간들, 특정한 국가에 태어났으니 받아들여야 옳은 윤리적/사상적 규범조항과 피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될 의식적 원형이 있다고 주장하는 인간들, 그걸로도 모자라서 자기네들에게 그 규범과 원형을 발굴하고 해독해 낼 자격이 있다고 믿는 인간들은 혐오스럽다.

 

 

 

--- 읽은 ---

욕망 너머의 한국 고대사 / 젊은역사학자모임 지음

전락 / 알베르 카뮈 지음 / 유영 옮김

맑스주의 역사 강의 / 한형식 지음

죽어가는 짐승 / 필립 로스 지음 / 정영목 옮김

 


--- 읽는 ---

돈 후안 외 / 티르소 데 몰리나 지음 / 전기순 옮김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 이현우 지음

후설의 현상학 / 단 자하비 지음 / 박지영 옮김

불교입문 /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 지음

처음 만나는 혁명가들 / 마이크 곤살레스 외 지음 / 이수현 옮김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마르크스 평전 / 프렌시스 윈 지음 / 정영목 옮김

 


댓글(24) 먼댓글(0) 좋아요(5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카알벨루치 2019-02-04 1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이렇게 읽어대다니 혹시 그대 알라딘 쇼군 AI? 치킨만 먹는 독서AI??? 왕부럽삼

syo 2019-02-04 13:45   좋아요 1 | URL
내일부터 놀 거예요!! 이번 연휴는 이걸로 땡처리ㅎㅎㅎ

stella.K 2019-02-05 19:07   좋아요 0 | URL
지금 놀고 있습니까?
아닐 것 같은데...ㅋ

박형서 소설 끌리는군요.^^

syo 2019-02-05 19:48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그러믄요. 지금도 술판인데요 ㅎㅎㅎ

stella.K 2019-02-05 19:53   좋아요 0 | URL
ㅎㅎㅎ 어쩐지 거짓말 같아요.
그러면 술판에 집중해야지
이런 훌륭한 댓글을 휘리릭 남기다니...ㅋㅋ

박형서 소설 리뷰 부탁해요.^^

syo 2019-02-06 10:03   좋아요 1 | URL
조만간 다시 읽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만, 그 전에 그냥 한 번 읽어보시는 것도 권합니다.
장르는 본격국민연금스릴러 라고 할까나요...

2019-02-04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4 21: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공쟝쟝 2019-02-05 1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요.. (웅?)
새해 첫날부터 ...

syo 2019-02-05 18:41   좋아요 0 | URL
응???????

단발머리 2019-02-05 17: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
새해 첫날부터..... ^^

공쟝쟝 2019-02-05 17:34   좋아요 0 | URL
그쵸!! 야하죠? 저만 그렇게 느낀거 아니죠? ㅎㅎㅎㅎ🤓

단발머리 2019-02-05 17:4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은근 야한 경우와 쫌 야한 경우와 와우! 야한 경우가 있죠. 이번 경우는 ..... 으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19-02-05 18:41   좋아요 0 | URL
으응????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ㅋㅋㅋㅋㅋㅋ

정말요??😣

공쟝쟝 2019-02-06 09:54   좋아요 0 | URL
어머어머 쇼님 능청 ㅋㅋ 무슨 사람이 얼굴을 저렇게 야하게 만지나여!!!???🥴

syo 2019-02-06 10:05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런 건 표정이 중요해요 😃 이런 표정으로 만지면 하나도 안 야함니다ㅎㅎㅎ

독서괭 2019-02-07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 야하다........ 야하네요. 야해.
옆에서 저렇게 만지면 운전할 수 있겠나요? 안전운전!ㅋㅋ
늦었지만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syo 2019-02-07 10:10   좋아요 0 | URL
괜찮아요, 우리에겐 갓길이 있잖아요.......응?
ㅎㅎㅎㅎㅎㅎㅎㅎㅎ 독서괭님도 새해 귀여운 애기와 함께 복 많이 받으소서!

AgalmA 2019-02-11 00:2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들이 다 죽어서 syo님에겐 더 이득인 점도 있죠. 그들이 못쓴 걸 쓰시면(그걸 알면 내가 이러고 있겠소!) 나 왜 자문자답하고 있나;

요즘은 역사보다 ‘과학적 증거‘가 더 쟁점 아닌가 싶군요. 과학적으로 증명하면 승자가 되는~ 그러니 창조론자 같은 웃지 못할 세력이 있는가 하면 그들이 미국에서 교과서에 다윈의 진화론 대신 창조론 넣으려고 기를 쓰는 코미디가 연출되기도 하는; 박근혜 때보다 더 한 거죠. 한 나라가 아니라 인류의 역사 전체를 날조하려는 음모가!

syo 2019-02-11 00:39   좋아요 1 | URL
어차피 될놈될이니, 그들의 생사여부와 무관하게 전 안 되잖아요 ㅎㅎㅎㅎ 그냥 괜히 맨날 투정만 부리는 거죠 뭐.

‘과학적‘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과학적으로 정의가 된 상태인지, 과학적으로는 정의가 되어있는데 사회적으로 합의가 안 되 있는 건지, 하여간 니 과학과 내 과학이 서로 다른 과학이라 세상에는 과학이 난무하는데 과학적인 세상은 오질 않는 것 같아요.....

AgalmA 2019-02-11 00:43   좋아요 0 | URL
현재로서는 ‘과학적‘이라 하믄 김상욱 박사의 이 표현이 적절하리라 싶네요. “과학은 단지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혹은 방법”, “과학은 불확실성과 확률을 현명하게 다루어 확실성을 얻는 방법이다.”(<떨림과 울림>)
이게 사회적으로는 잘 먹히고 있지 않은 거 같지만;

syo 2019-02-11 00:57   좋아요 0 | URL
앞의 표현은 저도 방송을 통해 들었었는데요. 유시민 작가님도 되게 감동받으신 것 같았구요.

그런데 저는 별로 와닿지가 않았던 게, 앞의 말씀은 ‘삶의 태도‘로서의 과학이고, 뒤의 말씀은 ‘인식론‘이나 ‘지식의 확장‘으로서의 과학적 방법론 같은 건데, 두 가지가 그리 매끄럽게 붙는 것 같지가 않아요. 확실/불확실이 수치적으로 어느 정도인지도 쟁점이 되는 문제인 것 같고......

˝지식이 아니라 세상을 대하는 태도 혹은 방법˝이라는 표현은 철학 입문서에서 맨날 보던 말이라서 식상하기도 했고......

삶의 태도로서의 과학과 인식론으로서의 과학이 따로 있다는 것이, 필드마다 그 필드에 최적화된 과학이 있다는 식으로 받아들여져서, 더 혼란스럽다고 할까요;;

2019-02-11 0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11 16: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