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책 야한 문장, 웃긴 책 웃긴 생활, 귀여운 책 귀여운 인생
1
syo가 부지불식간(과연?)에 야한 문장을 썼다면, 그건 100% 필립 로스가 시킨 일이다. 『전락』을 읽고 있었다. 심지어 『죽어가는 짐승』에 연이어 읽었다. 흐흐.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해도 대충 무방하지 않을까.


2
이런 저런 번역을 통해 고골의 「코」를 세 번 읽었더니 이제 확실해졌다. 저 ‘코’는 사실 얼굴에 달린 코가 아니라 뭔가의 약자였다. 코!가 아니라 코(미디)였던 것이다. 이런 명백한 사실을 깨닫는데 3회독이나 필요했다는 것이 도리어 믿기 어려울 지경이다. 앞서 두 번이나 읽을 동안, 한 번을 웃지 않았단 말인가? 그게 가능하다고?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예절을 지키기 위해 남방셔츠 위에다 모닝코트를 입고 식탁에 앉아 파와 빵 위에 소금을 뿌려 식사 준비를 마친 다음, 나이프를 손에 들고 심각한 표정으로 빵을 자르기 시작했다. 빵을 두 조각으로 잘랐을 때 빵 속에서 무언가 하얀 것이 눈에 띄자 깜짝 놀랐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조심스럽게 나이프 끝으로 빵을 헤집은 다음 손가락으로 그것을 살짝 만져보았다.
“단단한걸.”
혼자 중얼거렸다.
“대체 이게 뭘까?”
그는 손가락을 쑤셔 넣어 그것을 빼냈다. 코다......!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양손을 얼른 움츠렸다. 눈을 비비고 다시 손가락으로 건드려보았다. 역시 코다. 사람의 코가 틀림없다! 게다가 아는 사람의 코 같았다. 이반 야꼬블레비치의 얼굴에 공포의 빛이 감돌았다. 하지만 그 공포도 아내가 터뜨린 분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아니, 여보! 어디서 남의 코를 잘라온 거야?”
그녀는 버럭 성을 내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사기꾼! 술주정뱅이! 내가 직접 경찰에 고발해야지! 이런 날강도가 어디 있어. 당신이 면도할 때 남의 코를 얼마나 세게 움켜쥐는지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
_ 니콜라이 고골 지음, 조주관 옮김, 「코」
모자란 감수성이오나, syo는 저 문단에서 크고 작은 웃음 포인트 10개 정도를 어렵지 않게 감지하였다.
하나. 역자의 주석에 따르면, 이반 야꼬블레비치는 멍청한데 감정도 없는 인간이라는 뉘앙스로 읽을 수 있다고 함.
둘. 파, 빵, 소금에 불과한 식탁 앞에서도 옷차림은 갖추는 허영.
셋. 근데 그 옷이 허접함.
넷. 그 와중에 표정은 또 심각함.
다섯. 빵 속에서 뭔가 엄청난 게 나왔는데 제일 먼저 한다는 말이 ‘단단한걸’.
여섯. 코다......도, 코다!도 아닌, 코다......! 에서 느껴지는 시간차 벙찜.
일곱. 눈을 비비는 동작을 통해 진부함과 멍청함이 아름답게 어우러짐.
여덟. 세상에, 그 코가 또 잘 아는 코.
아홉. 빵에서 사람 코가 나왔지만 아내의 분노에 비하면 사실 그리 큰일도 아니라하는데서 느껴지는 짠함.
열. 내가 벌써 세 사람한테서나 들었어......라는 대사에서 느껴지는 갖가지 정서.
나는 좋아, 작정하고 웃기려는 작가가 나는 좋아. 그들이 실제로 웃기는데 성공하면 너무 좋아......
3
카모메 식당으로 청년의 출근은 계속되었다. 그는 주방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사치에에게 수다스럽게 말을 걸었다.
“안 돼요, 지금은 바빠요.”
평소에는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치에지만, 일을 할 때는 일에만 몰두했다.
“아아...... 예...... 미안합니다.”
토미는 시무룩해져서 가게 한구석에 앉았다. 그리고 손님이 끊길 즈음을 틈타서 또 이런저런 말을 걸었다.
“아버지, 어머니는 어디입니까?”
“아버지는 일본에 있습니다요.”
“일본에 있습니까? 핀란드에 혼자입니까?”
토미는 신기해하는 얼굴이었다.
“그래요.”
“외롭고 슬프지 않습니까?”
“아뇨.”
사치에는 단호히 말했다.
“그러나 여자아이 한 사람 위험합니다.”
“여자아이? 누구?”
“사치에 짱입니다. 여자아이입니다.”
“아아, 뭐 넓은 의미에선 그렇겠지만......”
“넓은 의미? 그것은 무슨 말입니까?”
그가 필사적인 눈길로 물었다.
“아, 저기, 난 여자라는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지한 얼굴로 몇 번이나 크게 끄덕였다.
“학교는...... 갔습니까?”
“갔어요. 도쿄에서 대학을 나왔어요.”
“......”
말문이 막혔다. 이제야 자기보다 연상이란 걸 명백히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
그가 낙담한 것을 보고 사치에는 직구를 던졌다.
“나 몇 살로 보여요?”
“몇 살?”
“예. 내가 몇 살로 보이냐고요.”
그는 점점 얼굴이 붉어지더니 작은 소리로 “열다섯 살”이라고 말했다.
“열다섯 살?”
사치에는 깔깔 웃었다. 토미는 입을 한일 자로 꽉 다물고 긴장한 얼굴을 했다.
“나는 서른여덟 살이에요.”
그의 동공이 커졌다.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는지 벽에 머리를 부딪혔다.
“서른여덟 살은 삼십팔 개, 삼십팔 년과 같습니다.”
“그렇죠.”
“헹.”
그는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소리를 내면서 사치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조금 슬픕니다. 그러나 힘을 낼 겁니다. 울지 않습니다. 오늘은 안녕.”
그는 축 처진 어깨로 가방을 들고 가게를 나갔다. 그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사치에는 중얼거렸다.
“일찌감치 아는게 그를 위해서 낫지.”
토미 군이 이제 가게에 안 오는 건 아닐까, 사치에는 걱정했다.
무레 요코, 『카모메 식당』, 44-47쪽
그러나 힘을 내어 가게에 계속 나온다, 귀요미 토미 군.
아무 이유 없이 지쳤을 때는 아무 이유 없이 따뜻한 영화나 책으로 충전하는 법이다. 사실 지치는 데 이유가 없기야 하겠는가마는. 하여튼 내가 왜 소진되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면, 도무지 왜 힘이 되는지 모르겠다 싶은 심심하고 아늑하고 바지런한 이야기가 잔뜩 들어 있는 작품이 좋다. 《카모메 식당》이야 널리 알려진 힐링 영화니 무슨 말을 덧붙일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라는 제목의 책을 읽는 중이기도 하지만, syo에게 “귀여움이 이 세상을 구해줄 거예요”라는 문장은 그 권위가 십계명만큼은 된다. 신앙처럼 귀여움을 믿고 있다. 그리하여 멍뭉이를 만나면 환장하며 냥이를 만나면 다리에 힘이 풀린다. 저쪽에서 누군가 아기를 품에 안고 걸어오면, 스쳐 지나면서 반드시 그 아이 얼굴을 보고야 만다. 눈 덮인 산을 등반하는 이들의 조끼 주머니에 비상용 초코바가 들어있듯, syo의 핸드폰에는 비상용 풍산개 새끼 사진이 들어 있다. 한없이 아무 생각 없는 표정으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는 하얀 생명체. 이제는 늙고 늙어 어지간한 일에는 감정이 금방금방 움직여주지 않는데, 귀요미와의 접촉사고만큼은 언제나 감정의 쓰나미를 일순간에 몰고 온다.
활자도 syo에게 그런 짓을 한다. 멍청하게 책장을 넘기는 이를 정신 번쩍 들게 하는 카타르시스가 듬뿍 담긴 귀여운 장면들. 그런 대목을 만나면 다시 한 번 힘을 내어 읽어보는 것이다.
4
syo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syo가 가장 사랑하는 빨강색으로 표지를 두른 책을 내놓았다. 우산이라 쓰였고 우산이 그려진 그 책은 긴 연휴가 끝났음을 알리듯 도착했다. 책상 위에 올려놓으니 괜히 마음이 벅차기도 했다.
표지를 넘기니 하얀 책날개에 오직 여섯 글자만 박혀 있었다. 황정은黃貞殷. 이 책이 황정은의 손에서 탄생했다는 사실 외에 그 어떤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는 듯이.
그리고 그 글자들을 오래 바라보면서, 그 이름 석 자가 불러일으킨 신뢰, 추억, 감동, 기대 같은 것들, 다 서술하려면 넉넉히 삼만 자는 필요할 그것들을 세 개의 글자를 마주하는 것만으로 다 느낄 수 있을 만큼 이미 황정은을 사랑하는 syo를 다시 사랑할 수 있었다.
여섯 글자짜리 작가 소개를 읽는데만 5분을 사용하고, 본문은 한 글자도 읽지 않은 채 쓴다.
--- 읽은 ---



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 페터 한트케 지음 / 안장혁 옮김
전락 / 필립 로스 지음 / 박범수 옮김
물고기들의 기적 / 박희수 지음
--- 읽는 ---







뻬쩨르부르그 이야기 / 니콜라이 고골 지음 / 조주관 옮김
우리가 함께 장마를 볼 수도 있겠습니다 / 박준 지음
숙련자를 위한 고전노트 / 이수은 지음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 이병훈 지음
카모메 식당 / 무레 요코 지음 / 권남희 옮김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 지음 / 황성원, 김민철 옮김
디디의 우산 / 황정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