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두 번은 사랑하지 못하는 병 - 사랑했으므로, 사랑이 두려운 당신을 위한 심리치유 에세이
권문수 지음 / 나무수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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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사랑, 그 끝나지 않는 화두……

국민학교 6년(요즘은 초등학교지만),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까지 내가 받은 정규교육만 하더라도 16년이다 거기다 가정교육에 사회생활에서 받은 교육까지 따진다면 난 참으로 오랜 시간 어마어마한 양과 다양한 분야의 교육을 받은 셈이다. 그러나 여태껏 그 누구에게도 사랑이 무엇인지, 맛난 만남을 위해 우리가 서로에게 해야 할 행동과 말은 무엇인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배운 기억이 없다. 그렇기에 또래들 간에 들려오는 정체불명의 속설에 의존하는 사람이 있을 것일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냈음에도 사랑에 대한 교육을 받지 못했다니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닌가?

물론 태어나기 전부터 받은 부모님의 사랑이라든지 지인들과의 관계 속에서 주고 받은 사랑, 형제 사이에서, 스승과 제자 사이에서, 동료 사이에서 주고 받은 우정 또한 사랑의 범주에 들어갈 테지만 그 누구도 입 밖에 끄집어 내어 구체적인 사랑의 정의라든지 사랑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해 준 이가 없었다. 그러기에 그에 대한 답을 찾고자 인류는 요즘도 저리 방방 뛰고 있는 것일 테지만. 물론 요즘이야 안면식도 없는 전화 상담원들마저 ‘고객님 사랑합니다.’라며 ‘사랑’이라는 단어를 외치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그런 사랑이 우리가 바라는 사랑은 아니지 않은가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가 남발될수록 어째 나는 사랑에 굶주린 느낌이 든다. 그래서 대중가요도 사랑을 노래하고, 드라마도 사랑 타령이며, 연인들도, 친구들도, 가족들도 저마다 사랑을 달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쯤 되면 누군가가 사랑학 강의라도 할 만한데 아직 그런 움직임은 없는 듯하다. 초등학교에서는 사랑을 표현하는 방법을, 중학교에서는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고등학교에서는 사랑을 나눠가는 법을 배운다면 세상은 분명 더욱 따뜻해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 글의 저자는 ‘사랑 그까이거 뭐 별거 아니다.’라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사랑은 별 것이다.’라고 대거리하고 있다. 그렇기에 ‘사랑병(Lovesick)’도 따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기까지 한다. 테라피스트로 살아가며서 자신에게 상담을 의뢰한 사라의 90% 이상은 사랑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통으로 오는 사람이란다.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나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뉴스에서 연일 나오는 살인사건도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한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고, 말다툼이 폭력으로 번지는 이유도 자기 말을 들어달라는, 사랑을 갈구하는 사람들이 저지르는 것이 아니던가! 이 책의 글쓴이는 엄밀한 의미에서 ‘상사병’과 엄연히 다른 ‘사랑병’을 언급하며 그것에서 파생된 여러 병명을 파트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사랑으로 인해 상처에 무뎌지고자 무감각을 처방한 사람들.

다시 사랑이 오지 않을까 불안해 하는 사람들.

사랑을 얻고자 했으나 오히려 사랑을 상실한 사람들.

바람둥이들처럼 이성에 대해 편력을 지닌 사람들.

사랑에 중독된 사람들.

금기시되는 사랑.

트라우마로 인해 사랑에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사람들.

오해 속에서 어긋나는 사랑들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들.

이별을 극복하는 자신에 대한 사랑까지.

짧은 글 속에는 참으로 많은 양상의 사랑이 등장한다. 글쓴이는 이성 간의 사랑에 한정하여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으나 사랑의 속성상 이는 어떤 관계의 사람에게든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임에 분명하다. 노희경씨는 ‘사랑하지 않은 자 모두 유죄’라고 말했다. 그녀가 말한 죄인이란 사랑에 발을 담궜다가 상처받을 것을 염려해 사랑에 거리를 둔 어리석은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하지 않는 자들이 얻는 것은 안일한 삶일 테지만, 도전하다 실패한 자들은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자신감을 얻게 된다. 사랑 역시 마찬가지일 듯 하다. 상처가 두려워 머물러 있는 자들은 그냥 그런 단조로운 삶을 영위하게 되지만 사랑하다 실패한 자들은 인생의 단맛과 쓴맛, 떫은 맛과 신맛 등 참으로 다채로운 세상을 맛보게 된다. 그렇게 따진다면 결국 ‘사랑에 실패했다’라는 말은 어불성설이 될 것이다. 왜냐 하면 사랑에 실패란 없으니까 말이다. 마지막 장에 등장한 스님의 말처럼 그냥 인연이 거기까지였던 것이다. 그가 말했다.

“사랑도 변하고, 사람도 변하고, 나도 변한다. 그런데 변하지 않는 것이 딱 하나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그것이 무엇일까? 책은 여기서 막을 내렸는데 어디에도 분명한 답이 제시되어 있지 않다. 이 책의 글쓴이는 우리에게 화장실 갔다가 일을 덜 보고 온 듯한 찝찝함을 선사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이러한 찜찜함이 남아 있는 한 저 화두는 우리에게 계속 같은 질문을 던져줄 것이다. 그것이 대체 무엇일까? 나는 그 답이 바로 이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사.랑.은.계.속.된.다.’는 사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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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병법 교양강의>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손자병법 교양강의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2
마쥔 지음, 임홍빈 옮김 / 돌베개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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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18

「손자병법」을 일상생활에 활용할 수 없을까요?

당시 나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나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정치가 마키아벨리의 말 한 마디로 자네 물음에 답하겠네. 병법을 일상생활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일상생활을 지옥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네.”

 
   


  책을 덮고 나니 이 문단 하나가 가슴에 와서 박혔습니다. 소용없는 책이어야 할 이 책을 거듭 읽고 배우는 상황이 아이러니하기만 합니다. 도대체 우리가 이렇게 반복해서 읽는 고전이란 무엇이며 고전을 고전이라 부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오래전부터 많은 이들에게 귀한 가르침을 주어 그 가치가 인정되는 책이 바로 고전이 아닐까 혼자 묻고 혼자 답해보았습니다. 흔히 우리들이 고전이라 일컫는 책은 여러 분야에 존재합니다. 허준의 ‘동의보감’도 고전이고, 정약용의 ‘목민심서’도 고전일 테지요. 이렇듯 아주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인데도 늘 새롭게 다가오며 또한 늘 새로운 가르침을 주는 것이 바로 고전의 요건인 듯 싶습니다. 그 중 이번에는 군사전략의 고전이라 할 수 있는 ‘손자병법’에 관한 책을 읽게 되었습니다. 실제 전쟁이나 컴퓨터 시뮬레이션 전략에나 어울릴 법한 고대 중국의 병법서가 여태껏 회자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금하더니 이 책을 읽고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습니다. 무작정 앞뒤 가리지 말고 무기를 들고 엉겨붙는 것이 전쟁이라 믿었던 내 자신이 얼마나 무지한지를 깨닫게 한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손자병법’은 너무나도 유명한 책입니다. 간혹 ‘그게 무어냐’며 묻는 사람이 있다손 치더라도 ‘知彼知己면 百戰不殆’란 표현을 한 번쯤 못 들어본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생활 깊숙히 침투한 병법서가 바로 이 책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더군요. ‘마쥔’이 조목조목 풀이해 주는 병법의 구절과 그 속뜻은 이 책을 읽는 내내 입 안에서 감탄사를 머금게 했습니다. 활이나 칼과 같은 무기에서 총이나 핵을 이용한 전쟁으로 그 양상이 바뀌긴 했으나 ‘네가 죽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라는 전쟁의 기본적인 생각이나, 어떠한 기만술을 쓰더라도 전쟁에서는 이겨야 한다는 냉혹한 진리는 변함없는 전쟁의 진리이니 말입니다.

‘손자병법’에서 최고의 군사경지에 오르기 위해 갖추어야 할 조건으로 知, 全, 先, 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복잡하긴 하지만 이렇게 간단명료하게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뜻 글자인 한자의 이점일 테지요? 여튼 여기서 고위 지휘관이 갖추어야 할 知를 설명하는 이러한 구절이 있더군요.

  p96

마음의 지혜는 시야를 결정하고 시야는 구체적 짜임새를 결정하며, 구체적 짜임새는 운명을 결정하고 운명은 미래를 결정한다.

  일상생활을 영위하면서 하루의 계획도 세우지 못하는 저는 이 부분을 읽고 뜨끔한 마음이 들더군요. ‘그때그때 닥치는 대로 사는 거지 인생 뭐 있어?’라고 호기롭게 외친 제가 얼마나 無知했던지를 깨달았습니다. 이래서 지혜로운 자들은 인생에서 ‘우연’은 없다고 하는가 봅니다. 하나를 살피고 나를 살피면 남이 보이고, 세계가 보이며 그때 우리가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또한, 전쟁에 임할 때는 만반의 대비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는 말도 새롭게 새겨들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사람을 감탄하게 만드는 책이 손자병법인 모양입니다.

  p149

즉, 사람은 어떤 뉴스를 접했을 때 아무래도 자기가 듣고 싶지 않은 일, 보고 싶지 않은 일을 피하는 쪽으로 기우니까요.

  여기에 이르러서는 손자병법은 병법서가 아닌 심리학서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입니다. 사람들이 간과하기 쉬운 일들과 외면하고 싶은 부분까지 콕 집어 주면서 우리가 갖추어야 할 자세를 설파하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에 연신 고개를 끄덕입니다. 이 책 덕분에 ‘손자병법’의 심오한 가르침을 실제 사례를 통해 참으로 쉽게 접할 수 있었습니다. ‘손자병법 교양강의’는 한문 독해력을 갖추고 있다면 ‘손자병법’의 원서를 직접 독파하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인 입문서이자 해설서였습니다. 아마 원 저자의 능력과 옮긴이의 역량도 한몫을 한 셈이겠지요. 누군가가 무엇이 그리 마음에 들더냐고 묻는다면 특정한 부분을 지목할 자신은 없습니다. 그만큼 전반적인 내용 모두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생활을 해 나가기 위해 손자병법을 좀더 몸으로 익히면 좋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런 제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역자가 한 마디를 덧붙이더군요.  

p318

병법을 일상생활에 끌어들인다면, 그것은 일상생활을 지옥에 끌어들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네. 

그렇군요. ‘손자병법’은 군사전략인데 이를 현실에 적용하겠다는 소리는 현실을 전쟁판으로 만들겠다는 것이군요. 진실과 정의로 손을 맞잡고 나아가야 할 우리가 기만과 술수로 이 상황을 모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제가 잠깐 잊어버린 모양입니다. 그런데 따끔한 충고를 듣고서도 손자병법의 전술에 자꾸 눈이 가는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이미 내 주위가 적자생존이라는 이름하에 戰場이 되어버린 때문은 아닌가 씁쓸한 생각이 듭니다. 손무의 가르침을 십분 벤치마킹하여 전쟁같은 현실의 허와 실을 파악하여 우리가 원하는 따뜻하고 우호적인 분위기의 세상으로 적개심을 유인해 내서 격파해야 할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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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박치기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인생은 박치기다 - 재일 한국인 영화 제작자 이봉우가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전하는 희망의 책!
이봉우 지음, 임경화 옮김 / 씨네21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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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서평 대상 도서로 세 권의 책이 도착했다. 보자마자 끌린 제목은 '고등어를 금하노라'였고, 보자마자 밀쳐 둔 책은 바로 이 책, '인생은 박치기다'였다. 공격적인 제목을 통해 生에 대해 무엇인가를 말해 주겠다는 태도가 괜히 밉살스러웠다. 더구나 표지에 떡 하니 실린 잘 생긴 중년 남성도 왠지 책에 대한 거부감을 들게 했다. 인생을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있으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해야 할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그러나 生은 늘 의도하던 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닌 모양인지 가방에 처박아 둔 책이 이것밖에 없어 간간히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표지의 선전문구처럼 방황하는 청춘에게 희망을 주고자 쓴 책은 아닌 듯 했다. 재일한국인으로 유년기와 청년기를 보낸 한 남자가 영화 제작자가 되기까지 겪은 일련의 사건들과 영화에 대한 열정이 이 책의 주된 내용이었다. 일본에서 받는 유형무형의 천시와 냉대, 차별을 겪으면서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존재로 살아가야 했던 재일한국인으로서의 삶. 걔 중에는 죽음으로 막을 내린 지인도 있고, 그냥 그런 인생으로 묻혀 버린 사람들도 등장했다. 모든 사람들의 삶에는 나름 의미가 있기 마련인데 그렇게 쓸쓸하게 끝나는 지인들의 삶을 바라보는 필자의 마음은 몹시 아렸던 것 같다.  

필자는 대학에 진학하여 프랑스어를 전공하고, 이를 계기로 프랑스에서 유학하던 중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그러던 중에 우연히 프랑스에서 일본 영화를 접하게 되고, 영화와 관련된 일을 하고자 마음먹는다. 무모하다는 주위 여론을 뒤로 하고 친구의 도움으로 그는 영화 배급업이란 일을 시작하게 된다. 최초로 배급한 영화는 그가 감명 깊게 본 폴란드 영화 '카메라광'이었다. 그러나 의욕을 갖고 시작한 일이라고 모두 성공하는 법이 아닌 모양인지, 아니면 성공한 이들에게 늘상 있는 시련이었던지 이 영화로 그는 흥행의 참패를 맛보았고 또한, 친구에게서 빌린 돈의 절반을 날리게 된다. 밑천의 반을 날리고도 그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의 노력에 대한 대가인지 운인지 모를 운명의 부침에 힘입어 그가 배급한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면서 이제는 당당한 영화 제작자이자 배급업자로서 자리잡게 되었다. 그가 배급한 수많은 영화들의 판권을 따 내기까지 그가 겪은 에피소드만 하더라도 우리에겐 충분한 이야깃거리였다. 그런 면에서 그의 生이야 말로 한 편의 드라마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또한 가족의 불우한 사건(형의 죽음)과 재일한국인으로서 겪어야 했던 수많은 차별이 그에게는 하나의 걸림돌이자 디딤돌이 된 듯하다.  

이 책은 단순히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권하기보다는 영화 배급에 관련된 일이나 영화 제작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물론 영화 제작에 대한 여러 가지 일을 읽기 쉽게 쓴 그의 문장도 주목할 만하긴 하다. 더불어 이 글을 통해 나 역시 다양한 영화에 대한 소개나 영화에 얽힌 감독과 배우, 제작자의 열정에 대해서도 알게 되긴 했다. 그러나 뜬금없이 끼어든 단편소설 '늑대 여인'이라든가 필자가 본 영화소개에 대한 내용은 책에 대한 호감도를 떨어뜨리기에 충분했다. 다만 우리나라가, 아니 내 자신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재일한국인의 문제, 각지에 흩어져 살아가는 한국인이 외면하고 있는 한국인의 문제에 대한 논의는 계속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에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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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를 금하노라>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고등어를 금하노라 -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이들에게 외치다
임혜지 지음 / 푸른숲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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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과 얽혀 바쁘게 달리는 행복하고도 버거운 나날이 계속되는 요즈음입니다. 서평대상 도서들이 도착할 때마다 갖던 뿌듯하고도 설레는 감정이 슬슬 부담으로 다가올 즈음 도착한 책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고등어를 금하라.' 군사 훈련 중 군인들에게 전하는 명령같기도 한 어투의 제목에서 저는 늘 그렇듯이 많은 상상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서 '고등어'란 필히 무엇인가의 약자(略字)일 거란 생각도 했었답니다. '고등한 인간들의 등푸른 어제를 위하여'라든지 '고유하고 기세등등한 어미들'이 아닐까라는 생각들을 말입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여기서 '고등어'는 말 그대로 생선 '고등어'를 일컫는 것이었습니다. 그냥 쉽게 생각하면 될 것을 전 참으로 복잡하게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단순하게, 즐겁게 살아가는 필자와 복잡하고 고단하게 살고 있는 나의 모습을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아 시작부터 씁쓸했습니다.  

  이 글은 독일 생활을 하고 있는 한 가족의 생활일기 같은 글입니다. 홍세화씨가 프랑스의 '똘레랑스'를 소개하며 프랑스는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라고 묘사했던 것과 달리 이 글의 저자는 독일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는 자기네 가족들을 통해 독일을 관찰하고, 한국인으로 태어난 자신의 시각에서 한국인들의 모습을 조명해 주고 있습니다. 독일은 뭐든지 최고라며 미화하거나 인정주의적 한국을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비교하고 얘기해 주려한 그녀의 나름 객관적인 시각이 내내 마음에 들었습니다. 

  한국에서 살았던 시간보다 독일에서 살아온 시간이 훨씬 많은 그녀가 우리나라의 문제점을 콕 짚어줄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사회 속에 묻혀 살아갈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한 발 물러서서 살펴보면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일까요? 그녀는 한국인으로서 독일을 살펴보고, 또 독일인으로서 한 발 뒤로 물러나 한국이란 사회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내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완전한 독일인도 완전한 한국인도 아닌 이방인스러운 그녀의 처지 덕분이었을 것입니다.  

  자동차를 버리고 자전거를 택한 그녀의 생활은 환경보호라는 코드와 어울리고, 내륙지역인 독일에서 고등어를 금하고 그 지역 농산물만 소비하고자 하는 태도는 로컬푸드를 지향하는 사회를 생각하게 합니다. 나치에 대한 독일인들의 시각이나 처사는 친일파 청산에 대한 우리의 대처방안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도 하지요. 부모들의 과잉 치맛바람으로 일컬어지는 아이들의 교육문제 또한 그녀의 자녀 교육법을 돋보이게 합니다. 돈보다는 시간을, 그것도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선택한 그녀의 모습은 읽는 내내 나에게 부러움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녀가 단순히 자기 자식을 자랑하고 미화하는데 그쳤다면 "그럼 그렇지. 에세이 형식을 빌어 자기는 이렇게 완벽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자랑하고 있군. 책 역시 자랑을 위한 수단일 뿐이고."라고 치부하며 한껏 깎아내릴 수라도 있었을 텐데, 진솔한 그녀의 글은 하루하루 고민거릴 만들며 살아가는 내 옆에서 누군가가 조근조근 얘기를 들려주는 듯 했습니다. 듣고 있으면 나의 마음 역시 푸근해지는 조언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사진 속에서 인물들의 찡그린 모습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아마 고민이 가득할 때는 카메라를 들이댈 여유가 없기 때문일 테지요.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사진일 경우에는 더욱 활짝 웃고 있는 사진을 끄집어 내기 마련이구요. 적어도 남에게는 내가 행복하다고 말하고 싶은 우리들의 마음이겠지요. 그런데 그녀가 보여준 사진 속 인물들의 표정은 그야말로 다양하기 그지없습니다. 찌푸린 모습과 난감한 표정, 행복한 표정과 우울한 뒷모습까지. 그런데 그런 그녀의 인생살이를 듣고 있으면 부러운 것은 왜일까요? 아마도 자연스럽게 살아가는 그녀의 삶에 대한 태도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자유로운 만큼 상대도 자유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에 행복한 일인 모양입니다. 자유로운 가족을 꿈꾸는 가족들에게 외친 그녀의 목소리가 적어도 저에게는 헛된 울림은 아니었나 봅니다. 그녀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나 역시 그녀처럼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들이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생활을 꿈꾸고 있다면 그녀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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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행복을 꿈꾸거든 버려라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19 14:30 
    고등어를 금하노라 카테고리 시/에세이 지은이 임혜지 (푸른숲, 2009년) 상세보기 경제력과 행복지수는 비례할까? 꼭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통계청이 발간한 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명목 GDP는 IMF 집계치 기준 9,291억 달러로 세계 15위에 올랐다고 한다. 반면 영국 신경제재단이 전세계 143개국을 대상으로 발표한 행복지수(HPI)는 68위를 차지했다. 이 행복지수의 평가항목은 경제적 요인, 자립, 형평성, 건강,..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 - 수수께끼와 역설의 유쾌한 철학퍼즐 사계절 1318 교양문고 14
피터 케이브 지음, 남경태 옮김 / 사계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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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건과 고소영 열애설로 각종 사이트마다 난리다. 외면하려고 해도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인 양, 메일을 확인하려 해도, 검색을 하려 해도, 여기저기서 눈에 띄인다. 연예계에서 일어나는 일에는 무심한 양 생활하는 나도 장동건-고소영 열애 기사만큼은 눈이 가는데 다른 이들의 관심이야 일러 무엇할까 싶다. 그러면서도 꿈이었으면 싶은 마음은 왜 일까? 혹시 꿈인 걸까? 만약 꿈이 아니라면 그것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라는 사실은 누가 어떻게 증명해 줄 것인가? 도대체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이며 그것은 누가 증명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이럴 때마다 인용되곤 하는 ‘호접지몽’이 생각난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되니 장자가 나비가 된 것인가 아니면 나비가 장자가 된 것인가?

이제 말하게 될 책은 이러한 철학적 문제를 다루고 있는 ‘로봇이 인간이 될 수 있을까?’라는 책이다. 제목으로 짐작하기에는 과학과 관련된 문제나 인간 복제와 관련된 윤리 문제가 아닌가 싶었는데 내용은 철학적 퍼즐로 구성되어 있었다. 흔히 우리가 궁금해 하면서도 파고들지 않았던 문제들을 하나 둘 툭툭 던져주는 것으로 책은 전개되고 있다. 교수형에 처해질 위기에 놓인 사형수가 교수형을 피하기 위한 방법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가 믿고 있는 도덕적 신념은 절대적인 ‘선’이라고 할 수 있는지, 현재와 과거와 미래라는 시간의 개념은 도대체 누구의 관점에서 나누는 기준인지 등등 이 책의 저자는 매 장마다 어려운 질문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친절한 사례를 유머러스한 이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긴 한데 저자나 번역자의 의도와는 달리 그리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 게 흠이다. 나의 무지 탓이려나? 그러나 나의 무지함은 또 어찌 증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럼 지금 이 글을 쓰는 나는 그 글을 읽은 내가 맞다는 말인가?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역시 이야기는 끝이 없기 마련이다.

책은 서른 세 개로 정리된 다양한 철학적 명제를 쉽게 설명하는 동시에 각 장과 연관되어 생각할 수 있는 문제의 장을 화살표 표시해 주고 있다. 시키는 것을 좀처럼 거부하지 않고 순응하고자 하는 나로서는 게임의 말처럼 주사위에 나온 숫자대로-책에 표시된 지시대로- 갔다가 오기를 반복해 보다 조금씩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가 시키는 대로 왔다 갔다 하다 보니 이걸 보았던 듯도 싶고 보지 않았던 듯도 싶어 오히려 읽는 행위 자체가 나의 정신을 혼란시키곤 했다.(이것이 총평에서 별 하나를 뺀 이유다) 그러다 어설픈 나의 순응성을 거부하고 자유의지를 가진 양 다시 책을 처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딱히 순서가 상관이 없는 구성인 만큼 그냥 하나의 이야기를 독립적으로 읽으면서 ‘진작 자유의지(?)를 따를 걸’이라고 생각하며 이전의 나의 순응적인 태도를 후회하기에 이르렀다. 저자의 설명대로 우리와 동떨어진 철학적인 사고를 현실로 끌어주었다는 면에서는 나 역시 이 책에 찬사를 보내는 바이다. 하지만 이전에 먹은 음식이 워낙 달콤했던지 이번에는 도통 맛이 느껴지지 않는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잭 보웬’이 쓴 ‘드림 위버’라는 음식이 계속 뇌리를 맴돌 뿐이었다. 그 책에 비한다면 이 책은 머리 속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떠들어 대는 소리로만 느껴지곤 했다. 그래서 별 하나 더 뺐다. 여튼 철학자들만 생각할 법한 철학에 대한 논의가 점점 연구실에서 벗어나 우리 주변으로 슬금슬금 다가오는 것은 머리가 아플 만큼 기쁜 일이다. 고통에는 그에서 벗어날 개운한 해결책도 함께 올 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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