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폰, 잔폰, 짬뽕>을 읽고 리뷰해주세요.
차폰 잔폰 짬뽕 -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
주영하 지음 / 사계절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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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형식보다는 실속이라고 얘기하곤 하지만 나도 모르게 외양에 확 끌리는 때가 있다. 이 책의 표지가 바로 그런 예이다. 하얀 바탕에 빨간 색깔의 면기 하나. 그리고 그 면기 속에 담긴 젓가락 세 벌(빨간 색, 옻칠한 색, 엷은 노란색). 그리고 왼쪽에 상단에 까만색 글씨로 쓰인 ‘차폰, 잔폰, 짬뽕’이라는 제목. 너무나 깔끔하고 선명한 책 표지 속에는 참으로 흥미진진하고 맛깔스러운 내용이 가득할 거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컸던 것일까? 표지와는 다소 거리가 느껴지는 책 내용에 다소 실망했다는 것이 나의 솔직한 소감이다.

이 책은 필자가 「신동아」에 연재한 글에다 몇 가지 이야기를 덧붙여 구성된 것이라고 한다. 필자는 음식 문화에 대한 논문을 쓰는 것이 아닌 만큼 생각과 마음이 가는 대로 편안하고 즐겁게 글을 슬 수 있었다고 했지만, 독자인 나로서는 전혀 편안하고 즐겁게 읽을 수 없는 글이었다. 나름 일본 추리소설을 즐겨 읽는 나로서도 일본 주인공들의 이름과 지명에 익숙해지기가 쉽지는 않은데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지명이나 음식 이름 역시 이물감을 느끼게 했다. 내용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가는 음식 이름이 아니라 왠지 물에 둥둥 떠다니는 기름처럼 겉도는 느낌만 받았다면 성명이 되려나?

한․중․일 음식의 역사라든지 각 나라 고유 음식의 기원 등이 맛깔스럽게 설명된 ‘미식견문록(요네하라 마리)’과 같은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려나 싶었는데 에세이도 논문도 아닌 어중간한 지점에 놓인 글이었다. 세계적인 음식이 되어버린 우리의 비빔밥 이야기, 매운 맛에 대한 동아시아 이야기도 어째 이야기하다가 만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나마 여덟 편의 연재에 덧붙인 ‘미래의 음식 문화’에 대한 그의 이야기가 나에겐 더욱 흥미로웠다. 세계화․대량화되고 있는 음식 문화 속에서 로컬푸드를 지향하고자 하는 움직임을 내보인 글은 인상깊었다. 필자의 자녀가 자라서 살아갈 2030년을 가정하여 그려본 그의 미래 음식 이야기는 정말 흥미진진하다. 자동차를 없애고 주차장과 공지를 논밭으로 만들어 먹을거리공동체 센터를 만들었다는 그의 가상세계는 우리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베란다 밖에 들려오는 논두렁의 개구리 소리와 작물들이 자라나는 냄새, 그것이 지금 우리가 바라는 유토피아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삭막한 도심지 가운데에 고추와 무를 가꾸고 계신다. 풀 한 포기 자라기 힘들 것 같은 그곳에서 싹을 틔운 씨앗이 고추를 맺고 있는 광경을 보는 것은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무엇 하나 제 손으로 가꿔본 적 없는 우리 세대가 그런 먹거리들을 통조림이 아닌 살아있는 식물로서 대하는 일이 잦아진다면 우리들 생활의 질도 달라질 것이란 생각을 문득 해 본다. 먹거리 하나를 기르더라도 씨앗을 뿌릴 땅을 일궈야 하고 물을 주고 가꿔야 한다. 그러한 과정을 겪으며 우리가 얻는 것은 식물에 달린 열매만은 아닐 것이다. 무형의 상품이 거래되는 세상에서 실제 숨쉬고 존재하는 것들의 만남, 자연과 사람과의 만남이 무성한 세상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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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를 읽고 리뷰해 주세요.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 두려움과 설레임 사이에서 길을 찾다
가야마 리카 지음, 이윤정 옮김 / 예문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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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에 대한 환상은 어디에서 비롯되 것일까? 결혼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한 것은 뭐니뭐니 해도 TV 매체일 것이다. 드라마 속에서 사랑 싸움을 하던 선남선녀 는 우여곡적을 겪은 끝에 사랑을 완성해 가는데 그들의 골인지점은 언제나 결혼이었다. 그래서 어릴 적 나는 ‘결혼’이 사랑의 종착역인 줄 알았다. 간혹 웨딩마치를 올린 후 보여주던 화목한 두 부부의 모습이 있긴 했지만 그것은 잠깐 곁들이는 장면에 지나지 않았다. 앞치마를 두른 아내가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남편을 맞아주고, 넓은 정원을 뛰어다니는 아이들과 강아지들의 천진난만한 모습, 여유롭고 너그러워 보이는 시부모들은 그냥 환상의 한 요소일 뿐이란 것을 안 것은 20대 아니 30대에 들어와서였다. 결혼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30대 후반으로 접어드는 이 시점에서 친구들은 시댁을 욕하고 남편에 대한 불평을 늘어놓기에 여념이 없고 여직 미혼인 친구들은 그런 불평이라도 하고 싶다며 푸념을 늘어놓는다. 도대체 누구의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결혼은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는 말이 아무래도 진리인 모양이다.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에서 저자는 결혼이라는 매커니즘에 담긴 다양한 의미를 사례를 통해 설명하고 있다. 좋은 사람이 없어 결혼을 못 하고 있다고 말하는 독자들이 바라는 ‘좋은 사람’의 정의를 나름대로 내려주고 있으며, 결혼을 결심하게 만드는 많은 사회적, 가정적인 압력과 강요도 열거하고 있다.

   
  쉽게 말해 결혼하면 꿈같은 생활이 기다리고 있다는 식의 사탕발림에 넘어가서 결혼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 반면, 결혼하지 않으면 이러나저러나 끔찍한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주위의 협방성 발언이나 본인의 불안은 여전히 먹히고 있다는 말이다.(p30)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결혼이라는 새로운 경험에 대해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을 갖기 마련이다. 그러한 모험이 행복만 가득하다면 성큼성큼 들어설 테지만 만에 하나 불안한 요인이 하나라도 있다면 엄두를 못 내는 것이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녀가 간과하고 있는 한 가지. 사랑에 빠지고 눈에 뭔가가 씌이게 되면 어느 순간 자기도 모르게 성큼성큼 걸어들어가는 게 아니라 달리고 있는 경우가 있게 마련이다. 누군가에게 이성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정신이 들고 나면 이미 결혼이라는 상황 속에 부속물이 되어있는 경우도 꽤 많다. 그건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요즘 들어 성인이 되면 당연히 겪게 된다던 결혼 생활에 대한 문제가 하나 둘 터지고 있다. 이 글의 저자가 결혼 생활이 어려운 이유로 꼽고 있는 것은 아내나 남편 모두 엄마와 같은 배우자를 원하고 있다는 것이다. 

   
  옛날 여성들은 결혼해서 아내가 되면 어머니가 하던 역할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그러나 요즘 여성들은 남편의 어머니가 되기 위해 결혼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구나 지금의 20~40대 여성들 중에는 아들보다 귀하게 자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아내도 남편으로부터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을 기대하고 있다. 결국 남편과 아내 모두 상대가 어머니처럼 챙겨주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야 원만한 결혼 생활을 꾸려가기가 힘겨울 수밖에 없다.(p38)  
   

그러고 보니 나 역시 남편이 아니라 엄마를 원한 모양이다.  나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나의 바람을 그가 어찌 알 수 있다고 그런 얼토당토 않은 바람을 가졌던 것인가? 

   
  사실은 정말 중요한 문제는 배우자에 대한 만족도의 차이가 아니다. 대개의 남편들은 만족도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고, 아내들도 남편에 대한 불만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심각한 문제이다. 앞에서 본 것처럼 아내들은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이 못마땅하면서도, 정작 남편에게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제대로 설명하지 못하는 것이다.(p41)
 
   

이 구절은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주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결혼 생활의 문제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에 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부모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신세대들에 대한 관찰도 나름 적중한 듯 싶다. 부모 그늘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그와 그녀들이 굳이 책임감 투성이인 결혼이라는 수렁에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갈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이는 아마 이미 수렁에 빠진 부모들이 그들의 자식만이라도 그곳에서 건져내기를 아니 아예 발을 담그지 않기를 바라는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이 글의 저자는 결혼에 개입하고 있는 사회의 입장에 대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친구들끼리 둘러앉아서 연애나 결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즐겁다. 하지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 정년도 얼마 안 남았으니 얼른 결혼하라는 재촉을 받을 때는 갑자기 부담스러워진다. 그만 좀 하라고 버럭 소리라도 지르고 싶은 심정이 되는 것이다. 본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문제여야 할 연애나 결혼이 느닷없이 사회성을 띠게 된 것이 두렵고 당황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족이나 직장 동료들이 결혼 문제를 자꾸 들먹이다 보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결혼을 사회적인 문제로 받아들이게 되고, 호화 결혼식이나 거창한 피로연에 대해서도 애초에 가졌던 거부감이 점점 사라지게 된다.(p170)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결혼을 장려하는 국가적인 노력. 국가가 우리들의 결혼에 나서는 이유가 우리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만이 아니라는 사실은 이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그녀의 말처럼 국가가 지원해야 하는 육아정책과 보육시설 확충은 복지정책을 위해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인 것이지 결혼과 출산으로 사람들을 꼬드기기 위한 유인책이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이 글의 저자는 미혼인 모양이다. 그렇기에 이렇게 냉정하고 결혼이라는 사실을 관찰할 수 있었겠지. 그러나 글을 읽으면서 내심 10%는 부족하다고 느낀 이유는 아마도 그녀가 미혼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그녀의 말처럼 치매 환자를 부모로 둔 의사만이 치매 환자를 치료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결혼한 사람만이 결혼문제를 논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녀의 이런 주장은 얼핏 설득력 있게 들린다. 아마 내가 미혼이었다면 나역시 이런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을 것 같다. 그러나 내가 결혼을 하고 나니, 결혼 전에 보았던 세상과 결혼 후 보게 되는 세상은 전혀 다른 폭과 깊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마도 치매 환자를 부모로 둔 의사가 치매를 더욱 잘 치료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환자나 가족들의 심정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일 것이다. 아는 것과 경험한 것 사이에는 엄청난 격차가 존재하고 있으니 말이다.
  사람들은 매 순간 일어나는 상황을 분석하면서 ‘이건 책임감이고 이건 불평이야’라고 판단해 가면서 살아가지 않는다. 왜냐 하면 현실은 너무나 복잡다단한 일들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행복하면서도 불행하고 슬프면서도 기쁜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하고 있는 결혼 생활 역시 너무나 행복하고 너무나 불행하다. 왜냐고? 그건 내가 대답해 준다고 이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듯하다. 그건 직접 해 봐야 알 수 있는 문제라 뭐라 말할 수가 없다. 아마 내가 말하는 ‘너무 행복하면서도 너무 불행한 결혼 생활’은 기혼자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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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결혼의 자유를 許하라
    from 날아라! 도야지 2009-11-01 22:42 
    심리학이 결혼을 말하다 지은이 가야마 리카 상세보기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을 못 면한다’, ‘아들 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둘도 많다’ ...40대 이상 성인들에게는 낯익은 가족계획 구호들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최고의 가치였던 개발시대 높은 출산율은 국가 경쟁력 약화의 주요한 원인 중 하나였다. 그러나 가족계획이 지나치게 실천되어서일까? 2000년대 들어와서는 ‘아빠, 혼자는 싫어요’라는 기존과는 정반대의 구호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국의 책쟁이들>을 읽고 리뷰해 주세요.
한국의 책쟁이들 - 대한민국 책 고수들의 비범한 독서 편력
임종업 지음 / 청림출판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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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전 연예인들이 참으로 부럽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명예나 돈도 탐나긴 하지만 정말 탐나는 것은, 그들은 드라마에서 주어진 역할을 통해 또 다른 인생을 살아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흔히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고들 하는데 그들의 인생은 리허설 천지인 듯 싶습니다. 열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으로 때로는 넘치는 스릴감을 즐기는 스파이로, 때로는 엄청난 모험을 즐기는 도둑으로, 시한부생을 살아가는 환자로, 또는 입으로 담기 힘들 만큼 천박한 요부로도 살아보며 이미 사라지고 없는 과거 역사 속의 인물로도 살아보니 말입니다. 내 삶의 주인이 나인 것은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그들만큼 다양한 역할이 주어지지 않는 것이 못내 서운하기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책읽기란 그러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간접적인 창구입니다. 요즘 이런 나의 눈에 책과 관련된 제목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띕니다. ‘순례자의 책(김이경)’, ‘책의 세계(강유원)’, ‘탐독(이정우)’, ‘세상은 한 권의 책이었다(소피 카사뉴-브루케)’, ‘서재 결혼시키기(앤 패디먼)’, ‘내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게이 핸드릭스, 잭 캔필드)’, ‘한국의 책쟁이들’에 이르기까지. 요즘 출판계의 트랜드라고 해야 할까요? 아님 뭔가 음모이론이 있는 것일까요? 여튼 책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이 기쁘기만 합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내용도 있었고, 실망스러운 책도 있었지만, 여튼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기쁜 일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이번에 읽은 책은 ‘한국의 책쟁이들’입니다. 책 때문에 아파트가 무너질까 걱정하는 인물에서 책을 통해 세상을 만나는 사람들, 또는 책으로 만든 세상 속에서 침잠하는 연구자들까지 참으로 많은 고수들이 등장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책은 총 5부작으로 나뉘어 있는데 1부에서는 ‘꿈꾸는 자들의 책’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책을 통해 욕망에 이르고 있는 ‘성수선’씨를 보면서는 설레었고, 만화를 통해 세상과 소통하다 결국 만화 때문에 세상과 격절하게 된 만화 마니아 ‘박지수’의 이야기에서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좋아하는 일만을 하고 살아가기에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일이 너무나 무겁기만 하니 말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있는 일이 일치하는 이들이 그리 많지 않은 것이 현실이니까요. 

2부는 ‘사람을 읽다 책을 살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습니다. 그 중 저의 눈길을 끄는 사람은 다름 아닌 책 중간상 김창기씨였습니다. 그는 말합니다.

   
  “책은 물건이다. 그 물건은 펼쳐져 읽힐 때 책이 된다. 마지막 장이 덮이면 책은 다시 물건이 된다. 책이 책됨은 무척 짧다. 책은, 책으로서보다 책이 되려는 기다림으로 존재한다. 책은 곧 그러함일 터이다.”(p117-책 중간상 김창기)
 
   

책 욕심이 많은 저로서는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하는 말입니다. 물론 그가 책 중간상이기에 더욱 저러한 생각을 했을지 모르나 책에 대한 집착이 넘치는 이즈음의 저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끔 했다고나 할까요? 저에게 속한 책들이 물건이 아닌 책이 될 수 있도록 저만의 방법을 강구해야 할 듯 합니다. 
  3부는 “배움의 즐거움”입니다. 이 장에서는 종이에 인쇄된 활자만이 아니라 세상사 모든 것이 책이라는 가르침이 고수들의 입을 통해 흘러나왔습니다.

   
 

“책이 따로 있는 게 아니더군요. 저자거리가 책이고 사람들이 책이었어요.(p159-목재상 김태석)"

“앉아서 책읽기보다는 골목에서 뛰어노는 게 낫습니다. 삶은 상상이 아니라 몸으로 살기 때문이죠.(p183-재밌는 글쓰기․책읽기 가르치는 선생님 윤태규)
 

 
   

  4부는 “진리를 찾아서”라는 내용으로, 5부는 “사회를 생각한다”라는 내용으로 묶여 있었는데 솔직히 앞 부분보다는 전문가들의 전문적인 이야기와 웅대한 이야기가 많아 끼어들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냥 세상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해 나가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또 한 번 알게 되었고, 그들이 있기에 세상이 이렇게나마 굴러간다는 생각이 들어 숙연한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세상은 요즘 책 읽히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70년대 새마을 운동처럼 일사불란하게 다들 “읽자, 읽히자”라며 난리입니다. 책 속에 길이 있고, 책 속에 밥이 있고, 책 속에 모든 것 다 있다고 합니다. 청소년의 미래를 위해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 어쩌다 논술이 되어 논술 준비 책이 따로 마련되고, 직장인들을 위한 처세술과 외국어 관련 책이 널려있는 세상, 모든 독자들을 돈방석에 앉히고자 미친 듯이 팔리는 경제 관련 책들이 넘쳐나는 현실입니다. 부자 아빠가 되어야 하고 88만원 세대를 양산한 시대에 분괴해야 하는 세상. 인기를 끄는 드라마의 원작을 읽기에 바쁜 사람들. 늘 베스트셀러가 나오고, 스테디셀러가 있는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들은 읽고 읽지 않는 사람들은 읽지 않는 현실입니다. 그럼 정말 책만 읽는다면 이 세상의 모든 일이 술술 풀리는 것일까요?

  글쎄요. 이건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책쟁이 고수들도 말합니다. 책보다는 세상살이가 더 소중한 가르침을 준다고 말이지요. 사람은 한 권의 책이라고들 하지 않습니까? 어떤 이는 책으로 세상을 보고, 또 다른 이는 사람을 통해 세상을 보며, 또 여타의 사람들은 자연을 통해 세상을 보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책일 필요는 없을 듯 합니다. 다만 초보 독자인 저로서는 책이 소통의 창구가 될 수 있을 듯 하다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려봅니다.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똑똑한 척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성공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그럴 듯한 지위를 위해서도 아닙니다. 그것은 바로 서로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방법을 배우기 위해서인 듯 합니다. 서로의 주장만 내세우며 악다구니를 떨지 않기 위해서 잠시 입을 닫고 눈을 열어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새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열지 않을까요? 입보다는 귀가 먼저인 세상, 눈이 보배인 세상은 참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울 것 같습니다.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랍니다. 독서의 계절을 정해서 독서를 시켜야 할 만큼 우리 사회가 책을 천대하고 있기에 만들어진 말인 것만 같아 입맛이 씁쓸하기만 합니다. 독서에 좋은 계절이라면 놀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따뜻한 봄에도 더운 여름에도 선선한 가을에도 차가운 겨울에도 다 나름의 장점이 있는 계절인 만큼 각 계절 뿐 아니라 각 시간별로 즐길 수 있는 독서를 나름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의 필자가 말합니다. “돈과 이름값에 오로지 미친 세상에서 책에 미친 미련퉁이들이 있어 더불어 살 만하다.”고 말입니다. 정말 백배 공감입니다. 약삭 빠른 이들이 외치는 무엇을 위한 책읽기가 아닌 책 자체가 목적이고 과정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목적 없는 글읽기가 생활화되는 세상을 꿈꿔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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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끝 여자친구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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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의 한 권의 책이란다. 나 역시 그 생각에 동의한다. 그렇기에 나는 단편 소설보다 장편소설을, 장편소설보다는 대하소설을 선호하곤 한다. 사람의 다양한 굴곡을 이야기하기에는 단편은 너무 찰나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물론 '김중혁'의 <악기들의 도서관>처럼 찰나의 묘사에 매혹되어 한참을 허우적대기도 하지만 그래도 단편이라는 것을 알고서는 선뜻 손이 가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번 소설을 선택한 것은 오롯이 나의 실수 때문이었다. 당연히 장편이려니 생각한 나의 착각이 이 책을 사게 한 것이다. 물론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작가 '김연수'에 대한 믿음일 테지만 말이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난 이전의 내가 아닌 것이 되었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책을 읽기 전의 나와 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분명 다를 터이니 말이다. 
 

  나는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라는 작품으로 작가 '김연수'를 처음 만났다. 그 책을 읽고 기억에 남는 것은 사람들이 들고 나는 역 앞 빵집이라는 배경에서 많은 군상을 바라보던 겉늙은 아이의 시선과, 추억은 항상 즐거운 쪽으로 예감은 항상 불길한 쪽으로 기울어지기 마련이라던 그의 문장 정도가 전부이다. 그 책을 읽으면서 내심 나는 다음에는 이 작가를 피해야겠구나 생각했다. 그것은 책에 대한 막연한 나의 기대가 깨졌기 때문이리라. 물론 나보고 그와 같은 작품을 쓰라면 나는 한 자도 쓰지 못할 테지만 독자로만 여러 해를 살아온 나만의 안목으로는 그의 글이 나의 성에 차지 않았다. 그러나 '김연수'를 나의 독서 목록에서 완전히 제명시키지 않은 것은 사람들의 어제와 오늘은, 특히 작가들의 어제와 오늘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을 나 역시 어렴풋하게나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접한 책이 <여행할 권리>라는 책이었다. 너무나 많은 곳을 다니는 그의 삶이 부러웠고,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듯 써내려간 그의 글이 사무치게 좋아지기 시작했다. 거기다 <밤은 노래한다>라는 글과 이상문학 수상집에 실린 <한 달을 가서 설산을 넘으면>이라는 글까지. 내가 집어든 김연수의 작품은 그야말로 연타석 홈런이었다. 이제 두근두근해 하면서 그를 기다리게까지 되었다고나 할까? 그래서 난생 처음 저자의 친필 사인이 들어간 책을 예약 구매하기에까지 이르른 것이다. 이 책이 누구에게 갈지 알지도 못하고 쓴 사인일 테지만 동그란 ‘ㄴ’ 받침으로 쓴 ‘이천구년’과 단호하게 꺾어진 듯하면서도 여지를 둔 각진 ‘ㄴ’이 들어간 ‘김연수’라는 이름에 혼자 미소까지 지어보았다. 다름 아닌 그의 글씨이기에... 서두가 길었다. 결론적으로 이 소설에 대한 나의 감상평은 대만족이다. 각각의 단편들이 장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하는 걸 보면 분명 그러하다. 작품 내내 흐르는 순간적인 사건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는 이야기들, 남의 고통과 소통하는 순간 그 고통은 이미 이전의 고통과는 다른 것이 되어버린다는 그의 말이, 크나 큰 불행 속에 허우거리다 다시 살겠다고 마음 먹는 것은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것이라는 소설 속 인물 ‘해피’의 전혀 해피하지 않은 말들이 내 마음 속에서 떠나가질 않는다.

   
  p27

고통을 피하려는 건 인간의 본능이다. 그러므로 때로는 고통을 피하려고 스스로 죽기도 한다. 해피에게는 아이 없이 살아가는 삶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계속 살아가겠다고 마음 먹게 되는 건, 희망을 찾은 게 아니라 희망을 버렸다는 뜻이었다.

p179

나의 삶의 어느 특정한 순간에 나만이 느꼈다고 생각했던 뭔가를 또 다른 누군가도 봤으리라고 짐작하게 되는 일이 얼마나 기이하면서도 따뜻한 경험인지 깨닫게 됐다.
 
   

작가는 말한다. 나만의 고통이 나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때 우리가 받는 위로에 대해. 그것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부여잡고 있는 마지막 위안이 아닐까 싶다. 

아이를 잃은 슬픔을 제 정신이 아닌 한 여인이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살려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아이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기에 죽은 아이를 부여잡고 울던 여인을 안타까이 지켜보던 이웃들은 그녀에게 근방에 이름난 성인(聖人)이 있다고 하니 거기 가서 도움을 청해 보라고 뀌띔해 준다. 이름난 성인이 말했다. 사람이 한 명도 죽지 않은 집에 가서 겨자씨 하나를 얻어오면 방법을 알려주겠노라고. 그러자 이 여인은 모든 집을 돌아다니며 혹 누군가 죽은 사람이 있느냐고, 없다면 겨자씨를 달라고 청하게 된다. 그러나 그녀에게 겨자씨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없다. 발 아프게 돌아다니며 그녀가 깨닫게 된 것은 사람이 죽지 않은 집은 한 집도 없다는 사실, 지금 자신이 겪는 고통 역시 그녀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크게 깨우쳐 부처의 제자가 되었다고 했던가.-<티베트의 즐거운 지혜>에서 읽은 기억이 어렴풋하게 떠올라 적어 본다.- 이렇듯 고통이 혼자만의 고통이 아니라는 당연한 사실을 우리는 언제나 망각한다. 나만의 고통이라는 생각이 얼마나 삶을 두렵게 만드는지 겪어본 사람들은 모두 알 것이다. 

소통이 부재하는 현재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행복의 나라로 가자는 터무니 없는 선동이나 환타지가 아니라 고통을 나눌 수 있는 소통일 것이다. 그 통로에서 더러는 주저앉기도 하고 엉엉 울어보기도 하며 서로를 바라볼 수 있다면 그것은 분명 내가 이전에 느낀 그런 고통은 아닐 것이다. 

또 작가는 말한다.

   
 

p316

우리는 대부분 다른 사람들을 오해한다. 네 마음을 내가 알아, 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그보다는 네가 하는 말의 뜻도 나는 모른다, 라고 말해야만 한다. 내가 희망을 느끼는 건 인간의 이런 한계를 발견할 때다. 우린 노력하지 않는 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런 세상에 사랑이라는 게 존재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사랑하는 한, 우리는 노력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른 사람을 위해 노력하는 이 행위 자체가 우리 인생을 살아볼 만한 값어치가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러므로 쉽게 위로하지 않는 대신에 쉽게 절망하지 않는 것, 그게 핵심이다.

 
   

 그래 이게 핵심일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통의 전제 조건일 것이다. 다른 사람을 이해한다고 단언하기 전에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너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즉,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사실부터 인정해야만 우리도 비로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수줍게 고개를 들면서 말해봐야 한다. 나는 너를 잘 모른다고. 그렇기에 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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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9-17 2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대만족이시군요.
우선 담아갑니다.~

sokdagi 2009-09-18 08:43   좋아요 0 | URL
개인적인 취향인지라... 부디 님도 맘에 들었으면 좋겠어요. 늘 좋은 시간 보내세요~~
 
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류시화.김소향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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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연타석 홈런을 친 듯한 기분이다. 손에 드는 책이 족족 맘에 든다. 알라딘 독자들의 평가지수를 십분 참조해 산 책들이 다들 좋다. 입말이 제격인 '고미숙'의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도 재미났고,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도 유쾌했으며, 이번 '티베트의 즐거움' 또한 너무나 잔잔히 나의 가슴을 울린다. 읽는 내내 뭔지 모르게 나에게 평화를 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류시화시는 일 년에 명상 서적 두 권 번역을 업으로 삼는다고 했던가? 여튼 참으로 대단하신 분이다. 참으로 존경스럽다. 린포체가 알려주는 명상법을 귀에 쏙쏙 들어오게 들려주는 그의 성의가 몸으로 느껴진다. 그런데 잔잔한 책의 내용이 끝에는 조금 반복되는 듯이 느껴져 별 하나 뺀다. 그러나 정말 읽어볼 만한, 읽어봐야만 할 책이었다. 맘에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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