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베트의 즐거운 지혜
욘게이 밍규르 린포체 지음, 류시화.김소향 옮김 / 문학의숲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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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을 때 당신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충고는 아마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리라. "그건 단지 너의 생각일 뿐이야. 생각을 바꾸면 상황도 달라질 거야."-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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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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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만약 '나를 부르는 숲'이란 책의 판매 부수가 높지 않다면 그것은 모두 책 표지의 뜬금없고 허술한 디자인 때문일 것이라고 나는 단언할 수 있다. 물론 책 내용을 고려할 때 필자에게 '곰'이 갖는 의미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알겠으나 그래도 이것은 너무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동물도감도 식물도감도 아닌 듯한 어정쩡한 저 디자인이라니... 차라리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지도-책 속에 나오는 조악했던 지도라도-를 표지로 하는 것이 훨씬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도 든다. 고심하여 책 표지를 디자인한 분께는 더없이 죄송한 말씀이긴 하나 좋게 말하면 책 내용이 정말 최고였다는 말이니 이해해 주시길 바란다.(그래도 아쉬운 맘에 한 마디 더.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라는 책이 이 제목으로 얼마나 많은 판매 부수를 갱신했는지 기억한다면 이 책의 디자인이나 제목도 좀더 참신하게 바꾸어 보기를 동아일보사에 권해보는 바이다. 내가 이 책을 보며 깔깔거릴 때마다 내 주변의 지인들은 모두 하나같이 이렇게 말했다. "표지는 전혀 재미없을 것 같은데?" 물론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긴 하지만 내용에 맞는 형식까지 만난다면 더아니 좋을쏘냐!)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이란 한비야식 세계일주도 나름 흥미진진해 보이긴 하지만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소재로 한 이 책은 그야말로 뭐라 말할 수 없이 좋다. 장엄함과 유쾌함, 엄숙함과 경박함, 광대무변함과 변화무쌍함을 모두 뭉뚱그린 이야기를 이 책은 들려주고 있다. 일명 종합선물세트라고나 할까? 

 초반에 등장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라는 원대한 꿈을 품고서도 온갖 볼행한 상상을 하며 떨고 있는 소심한 필자의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자화상 그 자체였다. 

   
 

p15 

사실 숲은 위험으로 가득 차 있다. 방울뱀, 물뱀, 독사, 살쾡이, 곰, 코요테, 늑대, 야생 멧돼지, 거기다가 거친 곡주를 너무 많이 마셔 약간 돈 산사람과 스컹크,너구리, 다람쥐, 무자비한 불개미, 흑파리,독이끼와 독참나무, 옻나무, 불도마뱀...... 그뿐만이 아니다. 양순할 것으로 아는 사슴들도 뇌에 기생충이 파고들어 정신이 돌 경우에는 사람들을 향해 마구 돌진한다." 

 
   

  그야 말로 실상을 반영하고 있는 모습인 동시에 코미디 그 자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결심했으면서도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모든 상황을 떠올리는 그의 모습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에 쓰는지도 모르는 채 장비만은 최고급으로 구입하곤 하는 어수룩한 그의 모습-초보들이 늘 그렇듯이-에서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은 그의 여행 동반자인 카츠의 등장에서 시작된다. 이 장면만 보더라도 당신은 '빌 브라이슨'의 여행이 얼마나 흥미진진하게 진행될 지 기대가 마구마구 커질 것이다.  

   
 

p41 

카츠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보다 몸집이 훨씬 더 불어나 있었다. 과거에도 항상 큰 몸집이었지만, 지금은 매우 불편한 밤을 보내고 난 오슨 웰스를 연상시켰다. 조금 절뚝거리는데다가 20미터를 걸어온 사람치고는 너무 심하게 숨을 내쉬었다.  

"여보게, 배고파." 

그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한 뒤 나보고 자신의 가방을 들게 했다. 너무 무거워 내 팔이 바닥으로 푹 처졌다. 

"여기에 뭐가 들었니?" 

헐떡거리면서 내가 물었다. 

"아, 테이프 몇 개 하고 등산에 필요한 것들. 이 근처에 던킨 도넛 가게 없나? 보스턴에서 비행기를 갈아탄 이후로 아무것도 먹질 못했어." 

"보스턴? 보스턴에서 온 거로구나." 

"그래, 나는 한 시간 간격으로 뭔가를 먹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뭐라 부르지, 발작을 일으켜." 

"발작이라고?" 

이건 내가 그려본 재회의 시나리오가 아니었다. 나는 그가 쓰러뜨려도 금방 일어나는 오뚝이처럼 원기왕성하게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뛰어다닐 줄 알았다.  

"10년 전쯤 좀 상한 약을 먹고 난 뒤로 그래. 도넛 몇 개, 아무튼 뭔가를 먹으면 괜찮아져." 

"이봐. 우리는 사흘 안에 산으로 들어가게 돼. 거기에는 도넛 가게가 없다고." 

 그는 자랑스럽게 웃으면서 "다 생각을 해놨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니커즈가 잔뜩 들어있는 그의 가방을 의기양양하게 가리키던 '카츠'의 천진난폭한 모습이라니! 배낭 여행은 정다웁던 친구 사이도, 달콤하기만 하던 연인 사이도 갈라놓는다고들 한다. 여행이란 짧은 단거리 경주와 다른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저런 친구와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를 시도하다니... 나는 결코 그런 선택은 하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카츠의 등장은 나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웃을 일 전혀 없는 요즘의 나에게 미소도 아닌 박장대소할 만한 일들만 가득 선사했다는 말이다. 카츠는 무거운 배낭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정말 중요한 물품을 산 속에 버리기도 하고, 늘 숨을 헐떡대며 뒤쳐지길 밥 먹듯 하며, 불평을 늘어놓는 데에도 선수이다.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늘 그와 함께였다. 뒤쳐진 카츠를 데리러 걸어온 길을 돌아가기도 하고, 피곤에 지쳐 기신기신 널부러진 카츠를 위해 대신 텐트를 쳐 주기도 하는 수고를 해야만 했던 빌 브라이슨도 분명 카츠와의 여행을 즐거워했음이 분명하다. 왜냐 하면 그가 쓴 문장의 곳곳에 카츠에 대한 애정이 담뿍 묻어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그들이 메인주 마운틴 캐터딘을 보지 못하고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하는 모습은 괜시리 나의 코끝을 시큰하게 만들었다.  

   
 

p405  

"집으로 돌아가고 싶니?" 

내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응, 돌아가고 싶어."라고 말했다. 

"나도 그래." 

그래서 우리는 트레일을 떠나기로 결정했고, 우리가 산사람인 것처럼 굴지 않기로 했다. 왜냐면 결코 아니니까 말이다.  

 
   

트레일을 벗어나 길을 잃고 헤매다 지친 카츠가 집으로 가고 싶어 할 때 말없이 그의 뜻을 따라준 빌 브라이슨. 물론 그 역시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겠지만 단순히 그 이유 때문에 카츠의 뜻에 따른 것은 아닐 것 같다. 그들의 말대로 그들이 비록 마운틴 캐터딘을 보지는 못했지만 그들은 분명 애팔레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혹한 속에서도, 돌풍 속에서도, 폭염과 폭우 속에서도 말이다. 그곳을 걸었다는 사실. 그리고 아직도 가야할 곳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때까지 마운틴 캐터딘이 그들을 기다려 줄 거라는 사실은 분명하지 않은가! 사실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글 가운데 운동을 위해 차를 모는 어리석은 우리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p204  

그러나 여기에, 내가 말하려는 포인트가 있다. 내가 아는 범위에서 거의 누구도 어떤 이유로든 간에 아무데도 걸어 다니려 하지 않는다. 500미터 떨어진 직장까지 차를 몰고 가는 사람을 알고 있다. 400미터 떨어진 대학 체육관에서 러닝 머신에 올라타기 위해 차를 몰고 주차할 공간을 찾을 수 없다고 심각하게 열을 내는 여자를 알고 있다.(그건 나도 알고 있다^^;) 언젠가 그녀에게, 차라리 체육관까지 걸어가서 러닝 머신을 5분 정도 덜 타는 게 어떠냐고 물어 본 적이 있다.  

 그녀는 내 말에 가시가 돋쳐 있다고 생각했는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나서 "러닝 머신에는 내게 맞는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진정 우리가 다시 살펴봐야 할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이야기를 읽는 내내 등산화조차 없는 내가 자꾸만 트레일을 종주해보고 싶다는 망상을 하게 되었다. 곰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두려워하면서도, 빌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하며 산 속으로 뚜벅뚜벅 걸어가고픈 마음. 이것은 이 책을 읽은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책은 정말 시시때때로 폭소를 자아낼 정도로 재미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에서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아내느라 얼마나 눈물을 찔끔거렸던지 모른다. 다시 이 책을 읽는다면 그 곳은 부디 마음 놓고 웃을 수 있는 산 속이나 대청마루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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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8-27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개정판이 나왔군요.
전에 구입했다가 읽지 않고 누군가에게 선물했던 책인데.. 담아가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나무가 보이는 시원한 대청마루에 엎드려 읽으면 더 좋을까요?

sokdagi 2009-08-29 21:23   좋아요 0 | URL
혹 그런 대청마루가 있다면 물론이죠^^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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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박민규 작품은 무조건 산다. 핑퐁과 같은 것이려니 생각했는데 거기다 사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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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의 책
김이경 지음 / 뿌리와이파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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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서를 즐기는 사람치고 책에 대한 욕심을 가져보지 않은 이가 몇이나 될까요? 책이 좋아 책을 모으다 보니 내 책장에서 썪어가는 책이 아깝게만 느껴지는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리하여 과감히 책을 돌려 읽어도 보았지만 나처럼 내 책을 소중히 여겨주는 이가 별로 없더군요. 지인들이 와서 내 책장을 훑어보며 과감히 내 책을 뽑아 들 때에는 과장 조금 보태어 가슴이 섬뜩하기까지 하답니다. 소설 속의 애서가처럼 혼자만의 서재를 꾸며놓고 나의 보물을 감출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좁은 집을 탓하며 거실에 늘어져 있는 책을 안타깝게 바라만 봅니다. 거기다 호기로운 척, 내 책을 빌리고자 하는 지인에게 그러마 하고 빌려주기도 하지요.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요? 책은 커피에 젖어 돌아오기도 하고, 접힌 곳이 여러 곳이 되어 돌아오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이제는 웬만한 흠집은 태연하게 여기기도 하고, 또는 다른 이의 손으로 간 책은 선물 준 셈 치고 포기하기도 한답니다. 행방불명 된 나의 책을 애타게 기다려 봐야 돌아오는 경우는 적더라구요.  그나마 다른 이 역시 내가 흥미로이 읽었던 책에 대해 찬사를 보낼 때면 괜히 타지에서 고향 사람이라도 만난 듯 반가운 맘이 가득이지요. 그런 마음을 얻고자 요즘에는 제 책을 나눠주는 일도 많고, 다른 이가 읽었던 책을 나눠 받기도 하지요.  

  이렇게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나 혼자만의 여행을 즐기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습니다. 유한한 생 속에서 내가 경험하기 힘든 것을 책을 통해 경험한다는 것은 짜릿한 경험이지요. 이건 정말 겪어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랍니다. 그런 책 세계를 탐험하면서 나 역시 저런 책 한 권 정도 쓰고 싶다는 욕망, 차마 부끄러워 드러낼 수는 없지만 그 욕망이 밑바탕이 되어 있음은 부인할 수가 없네요. 책꽂이에 꽂힌 많은 책 중에 내 이름 석 자 적힌 책 한 권 꽂아 놓을 수 있다면 얼마나 가슴 뿌듯할까요. '순례자의 책'을 쓴 작가도 그런 심정이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그런 꿈을 드디어 이룬 셈이네요. 글쓴이를 부러워하다 못해 시샘이 커져만 가네요. 하지만 그녀의 방대한 독서량은 참고문헌 뿐 아니라 그녀의 단편 곳곳에 드러나더군요. 국경을 초월한 책에 얽힌 이야기들. 지어낸 이야기인 줄 뻔히 알면서도 현실을 잊게만 하는 그 이야기 속에 어제 종일을 허덕였네요.  

  책 표지 재료로 인피를 사용한 일, 이야기꾼을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 방대한 서적을 개인 도서관으로 만든 이야기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곧 책이라는 이야기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더군요. 내 이야기를 소설로 쓰면 열 권도 모자른다고 외치는 사람들에게 정작 글을 쓰라고 하면 열 장이 나오기가 힘들기 마련이지요. 하지만 그들의 삶 자체가 책일 수도 있다는 것은 모두가 공감할 일이 아닐른지... 사람들의 삶에는 단순한 한 문장으로 정리하기 힘든 무언가가 있기 마련이니까요.  거기다 시작하는 이야기부터가 사람을 사로잡더군요.  

   
 

어쨌거나 저승은 그 모든 상상과는 조금치도 닮은 데가 없었다. 그건 그러니까, 어마어마하게 큰, 기다란 주랑이 한없이 이어진 거대한 도서관이었다. 

저승에서 할 일은 한 가지요. 책을 쓰는 거지, 자기에 대한 책, 일종의 자서전이랄까?  

 
   

  저승은 거대한 도서관이고 그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자신에 대한 글을 쓰는 것이라니 이 얼마나 참신한 발상인가요. 거기다 주인공이 그곳에서 발견한 엄마의 책을 보고 느끼는 서글프고도 뭉클한 감정은. 우리가 서로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피상적인 것인지도 알게 해 주는 짧은 문장들. 그래서 이 책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네요.  

  '책과 세계'라는 책에서 저자 '강유원'은 "행복한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병든 자만이 책을 탐닉한다"와 비슷한 말을 한 듯 합니다. (행복한 사람은 시계를 보지 않는다라는 은희경의 책 제목도 있었는데... 행복한 사람은 그렇다면 무엇을 하는 걸까요?^^;)워낙 오래 전에 읽은 책이라 기억이 변색되고 나름 각색마저 되어 제 나름으로 변형되었을 테지만 여튼 제 기억에는 야생의 사자가 책을 읽는 것을 보았느냐면서 생활의 현장에서 부딪히고 살아가는 자는 그 자체를 즐기지만 머리만 쓰는 사람들은 책에 빠져 허우적댄다고 했던 걸로 기억이 되어 있네요. 여튼 그 비슷한 의미로 전 이해를 했지요. 상당히 짧은 책이었는데 저에겐 강렬한 인상으로 다가왔지요. '순례자의 책'을 읽으면서 갑자기 그 책이 생각났습니다. 책을 비판하는 모든 자들, 책의 적으로 선정된 모든 이들 역시 책의 힘과 책의 내용을 알고 있는 독자였다는 사실에는 공통점이 있으니까요.   

  소설을 통해 글쓴이는 말하고 있습니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학문을 탄압한 자도 있고, 독단적 신앙심 때문에 사상 최대의 도서관을 파괴한 자도 있습니다. 고발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그들의 죄를 물었습니다. 처음으로 나쁜 사례를 만든 죄, 책을 능멸한 죄, 가치를 알고도 부인한 죄, 타인의 정신을 짓밟은 죄. 이유는 다르지만 이들은 모두 책을 파괴했습니다. 책이 문제가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요. 당장 위협이 될 수도 있고 장차 위험을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았던 거죠.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요? 왜 책에서 위협을 느꼈을까요? 그건 이들 모두 책을 읽은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책을 읽었고 책이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책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만약 이들이 책을 몰랐다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니까 제 생각엔, 좀 어이없는 발상이긴 한데, 책이 문제의 근원 같아요. 

 
   

  역시 책을 통해 책을 비판하는 듯 보이지만 결론은 책을 옹호하는 것이겠지요? 저 역시 동감입니다. 수년 전 전자책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인쇄된 책은 사라질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예견했었죠. 컴퓨터 사용이 많아지면서 그 의견에 동의하는 사람도 많아졌구요. 그때에도 전 굳건히 인쇄물이 유지될 것이란 견해를 가졌습니다. 타당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기보다는 제가 책을 좋아하고, 화면으로 보는 것보다는 종이로 보는 게 더 좋았기 때문이지요. ^^ 인터넷을 떠돌다 보면 저같은 분들이 엄청 많더라구요. 그래서 책은 꽤 오랜 역사를 가져온 만큼 앞으로도 그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순례자의 책' 덕분에 책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해 보는 계기가 되어 좋았습니다. 책에 파묻힌 사람들의 행복한 미소가 떠올라 웃음 지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답니다. 덕분에 정말로 오랜만에 서평이란 것도 끄적여 봅니다. 여러분도 이 책에 얼굴을 한 번 묻어보심이 어떨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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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14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7-23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예인 2009-07-22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내용이나 문체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수필가가 되어도 무방한 단아한 문체를 가지고 있군요.
오랜만에 인터넷에서 좋은 글을 감상했습니다. ~~

sokdagi 2009-07-23 12:4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칭찬으로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어주시는 재주가 있으시네요. 기분이 마구 좋아집니다. 오늘 하루도 잘 보낼 수 있을 듯....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위저드 베이커리 - 제2회 창비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구병모 지음 / 창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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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제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끌어 당겼다. 늘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도 아이들이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해지곤 한다. 그들만의 소설이란 것이 따로 있지는 않을 텐데 그들에게 전해줘야 할 이야깃 거리를 생각할 때면 늘 막막해진다. 딱히 교훈을 주는 계몽적인 소설은 건네기 싫고, 그래도 재미는 있으면서도 뭔가 마음 속에 생각할 거리 하나씩을 던져줄 수 있는 소설이 늘 목말랐다. 이순원의 '19세'라든지 이영서의 '책과 노니는 집',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 번'이나 '문학의 숲을 거닐다.'와 같은 책들이 그나마 아이들의 마음을 살짝이나마 건드려 주곤 했다. 그 책을 주었을 때 아이들의 반응이 꽤나 열렬했으니 말이다. 그러던 찰나에 우연히 창비에서 '완득이'란 원고 초판을 보내주셔서 읽게 됐다. 정말 꽤나 재미있게 읽었을 뿐 아니라 우리 아이들에게도 몇 권을 사 주었는지 모른다. 창비가 장사를 잘 한 셈이다. 샘플 하나 보내주고 몇 권을 팔았으니.....^^;;  

그래서 2회 창비청소년 문학상이란 이름에 이 책도 선뜻 집어들었다. 환상적이면서도 괴기스럽고 그러면서도 흥미로운 이야기. 아마 아이들도 지루하다고 덮지는 않을 듯 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빵,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할 수 있게 만드는 쿠키 등 이 소설에서는 정말 섬뜩하면서도 호기심이 느껴지는 빵이 많이 등장한다. 그래서 순식간에 읽혀졌다. 내용은 '완득이'보다 조금 약하지 않나 싶긴 했지만 그래도 재미있고 의미있는 이야기란 사실엔 동의한다. 게다가 마법에 의지해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도피하는 내용이 아니라서 더욱 맘에 든다. 자신에게 닥친 문제는 피한다고 해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 것이 현실이기에 더욱 그러하다. 이것은 비단 청소년 뿐 아니라 모두에게 해당되는 사실이리라. 시간이 가면 상처에 새살이 돋고, 기억이 흐릿해지겠지만, 아물지 않은 상처는 영원히 속내를 멍들게 하기 마련이다. 자신이 품고 있는 문제를 하나 둘 해결하고 싶다면, 해결할 용기를 얻고 싶다면 참고해볼 만한 책이다.  

아마도 제3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 또 나온다면 어김없이 장바구니에 담아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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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2-18 16:01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