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살고 싶은 집은 - 건축가 이일훈과 국어선생 송승훈이 e메일로 지은 집, 잔서완석루
이일훈.송승훈 지음, 신승은 그림, 진효숙 사진 / 서해문집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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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종 국어과 연수에서 찾아가 이분을 뵌 적이 있습니다. 낭랑한 목소리에 늘 밝은 표정. 괜시리 사람을 끌리게 만드는 선생님이십니다.  힘든 업무를 맡고 계시면서도 내색 한 번 안 하시고, 늘 새롭고 즐거운 방법을 제안하시는 분으로 저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런 곤란한 일이 생겼는데 어떡하죠?"라고 누군가 질문을 건네면

"대충 하십시오. 그래야 오래 하실 수 있습니다. 하하하"라고 대답하시는 유쾌한 장난꾸러기 같은 분인데 결코 그 대답이 대충이 아니라 듣는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면서 그득 채워주시는 분이셨죠.

 

  그런 분이 집을 지으셨다는 얘길 이곳저곳에서 전해들었습니다. 처음 드는 생각은 "돈이 많으셨구나"라는 것, 두 번째는 "역시 남다르시구나"라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선뜻 이 책을 펼칠 수가 없었습니다. 부러움에 지쳐 샘이 나버릴까봐 말입니다. 그러나 책과의 인연 역시 막으려야 막을 수도 없는 것이 사람과의 인연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학교 도서관 서가를 지나치다 책등을 보았습니다. 결코 외면할 수 없이 꺼내들자마자 읽어내려갔지요. 건축주와 건축가의 편지글. 총 여든 두 통의 편지라던가요? 누군가의 편지를 엿본다는 사실이 책을 읽는 데 흥미를 더해 주기도 했고, 내밀한 그들의 속삭임이 묘하게 사람을 귀기울이게 만들었습니다. 그분의 독서량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집 한 채를 짓기 위해 그렇게 많은 건축관련 서적을 읽어내셨다는 게 놀라울 따름입니다. 거기다 직접 건축물을 찾아가서 느낌을 말하고, 좋은 점과 나쁜 점을 말하는 그 모습이 하염없이 부러웠습니다. 말하고자 했으나 말하지 못해 삼켜야 하는 일이 많은 요즘으로서는 자신이 원하는 것을 조근조근 말하고, 상대방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모습이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그건 단순히 돈으로만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요. 송승훈 선생님의 물음에 기꺼이 답해주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쉽게 이어가 주시는 이일훈 선생님 역시 그분 못지 않게 훌륭하게만 여겨졌습니다. 대가는 대가를 알아보는 것일 테죠.

 

  읽고 나니 집짓는 일이 얼마나 엄청난 일인지 알 것 같습니다. 작년에 잔서완석루에 갈 기회를 놓친 게 두고두고 후회가 됩니다. 그곳을 직접 보고 왔으면 더욱 절절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지요. 집은 짓는 것이 아니라 구입하는 것이라고 나도 모르게 학습한 모양인지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그리라는 요구에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게 됩니다. 만들어진 집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집은 엄청나게 많은 내 모습을 담고 있겠지요. 그래서 다시 한 번 나를 돌아보게 될 테구요.

  욕망은 허공에 대고 꿈꾸는 것이 아니라 본 것을 기초로 생긴다고 하더군요. 자신이 살고 싶은 집을 자신이 만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나니 나에게도 욕망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넓고 큰 집이 아니라 조그맣더라도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과 살고 싶은 집, 약간은 불편하고 번거로울 수도 있지만 나를 움직이게 하는 거친 집. 언제 즈음 지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그런 공간을 조금씩 꿈꾸어 보고 싶어집니다. 이미 욕망을 엿본 이상 못 본 척 눈감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지요.

 

 제가. 살.고.싶.은 집은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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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3-06-10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멏번인가 그냥 패스했는데 드디어 담아갑니다. 님의 페이퍼가 그렇게 이끄네요. 그것도 피할 수 없는 책과의 인연이겠죠. 그러고보니 제목이 내가살고싶은집이 아니라 제가살고싶은집이군요. 지은이의 심성이 엿보입니다. 싱그러운 유월 보내고 계시죠^^

sokdagi 2013-06-19 13:54   좋아요 0 | URL
가끔 글을 쓰고 가끔 보는지라 알라디너 분들을 잘 모르는데 님의 아이디는 기억이 나네요. 괜히 반갑고 인사하고 싶고 그러네요. 님도 잘 지내시죠? 장마라는데 간혹 줄창 비만 내리는 것도 아니고 빛과 물이 오락가락 해서 저는 괜히 기분이 좋네요. 님데 그런 나날들 되시길 바랍니다. 조만간 님의 서재에도 놀러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