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울 레이터의 사진은 그리움이다. 내가 가본 적 없는 장소, 만난 적 없는 이들을 피사체로 담았는데도 그의 사진을 가만히 들여다보노라면 마음속에서 무언가 그리움이 일렁인다. 뿌옇게 물기 어린 유리창, 촉촉하게 비에 젖은 거리, 만지기만 해도 바스라질 듯 보송보송해 보이는 하얀 눈…. 그리고 그 비에, 눈에 수증기에 가려져 뚜렷하게 형체를 드러내지 않는 남자, 여자, 아이, 노인, 사람들, 사람들…. <영원히 사울 레이터>의 표지 이미지도 그렇다. 물기로 뿌옇게 흐려진 창밖으로 한 남자가 보인다. 한 손에 우산을 든 그는 모자를 벗는 중인지 쓰는 중인지 아리송하다. 거리는 어제인지 오늘인지 흰 눈이 내린 듯하고, 때마침 창밖으로 노란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간다. 물기 서린 창문 위로 누군가가 손 글씨를 남겼다. 뭐라고 썼는지 그 또한 또렷이 알 수 없지만 뭉툭한 그 글씨는 이 모든 이미지들과 함께 마음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그리워하게 하는 흔적들.
<영원히 사울 레이터>의 표지 이미지는 사울 레이터의 사진이 지닌 힘을 단 한 장으로 완벽하게 보여준다. 사울 레이터는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집에서 60년 가까이 살았는데 그 거리를, 자신의 동네를 날마다 산책하면서 주로 평범한 사람들과 일상적인 거리의 모습들을 렌즈에 담았다. 창문과 거울을 이미지를 구획하는 덮개와 프레임으로 활용해 이미지를 추상화했고 눈과 비를 이용해 사진에 회화적 요소를 덧입혔다. 더욱이 그의 작품이 소개될 당시(1950년대, 아니 사실상 레이터가 활동한 기간 내내), 사진에서 컬러는 경시되는 분위기였는데, 그는 거기에 과감히 색을 입혔다. 노랑, 빨강, 초록 등등 그 컬러도 화려하고 선명하기 짝이 없다. 그리고 그의 이 과감한 선택은 그를 이제 컬러 사진의 선구자로 명명하기에 이르렀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 이어 <영원히 사울 레이터>를 한 장 한 장 넘겨보노라니, 내가 그의 사진을 정말 좋아하는구나 싶어진다. 빗방울 흐르는 창, 수증기 맺힌 창, 빨강 우산, 노랑 버스, 노랑 택시, 흰 눈이 하염없이 내리는 초록 가게, 꿈꾸듯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길, 혼자여서 고독하고 외로워 보이지만 어쩐지 집으로 돌아가면 누군가가, 그도 아니면 고양이 한 마리라도 살포시 반겨줄 것 같은 사람들, 카페 구석에서 글을 쓰는 여인…. 어렴풋한 수증기와 빗방울, 왠지 따뜻할 것만 같은 하얀 눈, 꿈꾸는 사람들의 눈빛으로 인해 그의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미 꿈속 어딘가를 거니는 것 같다. 어느덧 그리움이 밀려온다. 이미 지나간 시절, 1950년대나 60년대로 짐작되는 한때. 그 무렵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레이터의 사진은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이 꼭 좋았기 때문이 아니다. 그가 찍은 피사체는 하나 같이 쓸쓸하고 외롭다. 그런데도 그의 렌즈를 통해 바라보면 그 외로움은 희석된다. 물기 어린 창이나 부옇게 흐려진 거울이 필터처럼 외로움과 고독감을 걸러준다.
단순한 것이 지닌 아름다움을 믿는다.
전혀 관심을 끄는 데가 없는 대상도
굉장히 흥미로울 수 있다고 본다.
사진을 찍을 때 그림을 떠올리진 않았다.
사진은 찾아내는 것이지만
그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책을 소장하는 게 좋다
그림을 감상하는 게 좋다
인생을 누군가와 함께하는 게 좋아서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준다.
내게는 이것이 성공보다 중요했다.
레이터가 사진을 찍기 시작하던 1940년대 초기작부터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 10여 년 동안의 미발표작까지의 엄선한 사진들이 실린 <영원히 사울 레이터>는 전작인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에 비해 인간 사울 레이터, 한 사람의 모습을 더 오롯이 만날 수 있다. 피츠버그에서 태어난 레이터는 뉴욕으로 오기 전까지는 도서관에 틀어박힌 채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처음에는 회화를 사랑했고, 프랑스 인상주의 화가와 일본 우키요에 작가들을 깊이 존경했다. 랍비가 되라는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고 새로운 삶을 살고자 1946년 드디어 뉴욕으로 떠난 그. 그곳에서 그는 깜짝 놀랄 만큼 이국적이고 낯선 환경을 태어나 처음 접한다. 이 거대 도시는 레이터에게 비로소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세상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렇게 그가 60년 넘게 살았던 거리의 소소한 풍경들을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서 만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레이터의 자화상을 여러 점 살펴 볼 수 있고, 그의 벗이자 연인, 뮤즈였던 패션모델 솜스, 사울이 사진에 담은 최초의 모델이자 뮤즈인 두 살 어린 동생 데버라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인물 사진에서도 대상을 그저 대상으로만 표현하지 않는 레이터의 섬세한 시선이 느껴진다.
레이터는 “중요한 것은 장소나 사물이 아니라 자신의 시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91쪽). <영원히 사울 레이터>에서도 그의 그런 생각은 여전하다. 그는 “신비로운 일은 친숙한 장소에서 일어난다고 생각한다. 늘 세상 반대편으로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영원히 사울 레이터>, 196쪽) 말하면서 자신이 늘 산책하던 도시의 일상,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을 담았다. 그런데도 그가 빚어낸 세계는 아름답기 그지없다. ‘목적 없이 그저 세상을 바라본다’는 태도로 찍은 그의 소박하면서도 아련한, 꿈결 같은 사진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빨강 노랑 초록으로 빛난다. ‘특정 대상을 찍기 위해 촬영을 계획한 적은 없’지만 순간순간이 빚어낸 일상의 아름다움을 포착할 수 있었던 그, 세상을 단순하게 바라보지만 “세상은 무한한 기쁨의 근원”이라고 생각한 그. 그 모든 작품들이 “좋아서 한 일들”의 결과물이라고 말하는 그. ‘우리는 공개된 부분이 현실 세계의 전부인 척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이 세상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있다’고 말하곤 했던 그. 그렇게 생각했던 사울 레이터였기에 평범함 속에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그렇기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을 생각해보면 내 작품은 그리 대단하지 않다.”(136쪽)고 겸손하게 말할지언정, 그의 이 섬세한 사진들은 그가 믿고 싶었던 대로 분명 사람들에게 소소한 기쁨을 주었을 것이다. 성공보다도 “내게 마음써주는 이에게 나도 마음을 주는” 것이 중요했던 사람. 그런 사람이었기에 레이터의 사진은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게 아닐까. 오늘은 나도 손에 익은 평범한 카메라를 꺼내들고, 또는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를 켜고 내가 걷는 이 동네 구석구석의 모든 평범한 것들을 좀 더 애정 어린 마음으로 렌즈 속에 담아보고 싶게 만드는 사진, 사울 레이터의 세계가 그렇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