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 갈 집을 계약했다. 겨우 찾은 마음에 드는 집이었는데 임대인이 계약 조건을 갑자기 바꾸는 바람에 날아가는 줄 알고 또 다시 극심한 실망감에 사로잡혔다가 극적으로 우리 조건에 합의하기로 타결. 그래서 그 마음에 드는 집으로 곧 이사할 예정이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나의 동거인이자 애인이자 같은 괭님들을 모시고 있는 또 다른 집사를 말한다.
이번에 집을 알아보면서 많이 싸웠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더 힘을 모아야 하는데 스트레스에 극도로 취약하고, 예민하기 짝이 없는 두 사람은(아니, 내가) 상대가 하는 말에 걸핏하면 성질을 내기 일쑤... 그러니까 내가 기분이 나빴던 것은 바로 책 때문이었다. 둘이 살기엔 좀 큰 평수를 알아보니 부동산마다 뭐 그렇게 큰 집을 찾느냐고 묻고, 나는 “짐이 많아서요.” 얼버무리면 그 사람은 “저희가 좀 책이 많아서.” “책장 놓을 공간이 많이 필요해서.” “책이 좀 많거든요.” 등등 자꾸만 이 이사의 모든 문제가 책에 있는 것처럼, 그런 책 더미를 만든 나에게 있는 것처럼(그렇게 들렸어!) 말하는 게 아닌가.
그날도 마음에 드는 집이 없어서 터벅터벅 힘없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그 사람이 다시 “책이 많아서 쉽지가 않네....” 중얼중얼 거리니까 성질이 확 나버렸다. “너는 이 이사가 온전히 책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그렇게 책이 짐스러우면 내가 따로 고양이 둘 데리고 나가면 되잖아!” 어떤 면에서는 책 때문에 가까워지기도 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말이 더 잘 통하기도 했다. 내가 책을 좋아해서 좋다더니, 내 책이 좋다더니 이젠 내 책이 짐스럽냐? 원망스럽고 화딱지가 났다. 아, 정말 고양이 둘 데리고 내가 살집 내가 알아보련다 하고 나 혼자 나갈 집을 찾아보기도 했다. 그날은 둘 다 저녁을 먹지 않고 각자 방에 들어가 문을 쾅 닫고 자버렸다. 우리가 저녁을 안 먹고 자버린 건 만난 지 10년 만에 거의 처음인 것 같다. 이런 싸한 분위기가 진짜 심각하다고 느낀 냥이들도 그날은 눈치 보느라 참 조용하더라.
그렇게 한랭전선이 생기고 언제 녹을지 모르는 나날...은 아니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그 사람이 이야기 좀 하잖다. 그래, 그래서 집 근처 치킨 집에서 1인 1통닭 하면서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화제는 그놈의 책, 책, 책- 책을 좋아하는 것도, 좋은 책을 모으고 싶어 하는 것도 다 존중한단다. 직업이 직업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을 거라는 것도 다 안단다. 그 마음을 모르는 게 아니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내 책이 증식하는 속도를 보니 무서워지기 시작했단다. 책장 놓을 공간이 없으니 벽을 둘러싸고 쌓기 시작한 책이 이제 사방을 두르고 있지 않느냐, 너처럼 책 좋아하는 사람은 100평짜리 자기 집에서 살아야 할 것 같다, 차라리 도서관을 지어라, 전세 살면서 이사 때마다, 그 늘어나는 책을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 책이 늘어나는 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책에는 한계가 없는 사람 같다. 그 생각을 하면 너무 답답하단다.
나도 입을 열었다. 나도 그래서 사보는 족족 알라딘에 되파는 책도 많다고. 도서관도 많이 이용한다고. 그랬더니 “책 사는 속도를 읽는 속도, 되파는 속도가 따라잡지 못하던데....” 할 말이 없었다. 맞다. 그래서 나는 “그럼 너는 고양이.” 그 사람이 응수한다. “그래 너 그 이야기할 줄 알았어.” 그래, 고양이 이만큼 늘인 건 내 책임이다. 그런데 그건 생명이지 않니.... 하, 그렇다. 첫째 고양이는 내 동생이 구조해서 임보하고 있던 걸 내가 데리고 왔다. 그게 시작이었다. 이제는 나의 최애캐가 된 우리 집 둘째는 길에서 죽어가던 걸 그 사람이 그냥 무작정 구조했고, 셋째는 내가 절대 안 된다고 반대하는데도 어느 날 비 내리는 새벽에 그 사람이 결국 데리고 들어왔고...... 그리고 지금 넷째가 될지 말지 모르는 녀석이 임보라는 명칭을 달고 6개월째 우리 집에서 살고 있다. 이 아이는 길에서 나도 많이 예뻐하던 녀석이다. 그런 녀석이 크게 다쳤고 거의 죽을 지경인데 외면할 수는 없어서 구조 후 치료하고 다 나을 때까지만 임보한다는 걸 말릴 수가 없었다. 사실 어쩌면 임보라고 집에 들이는 순간, 우리가 아니, 니가 내보내지 못할 거라는 걸, 다른 누군가에게는 안심이 되지 못해서 보내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말이다. 책은 어느 날 한꺼번에 되팔아버릴 수도 있고, 다 싫으면 내다 버릴 수도 있....(을까???)는 그런 물건이지만 고양이야말로 생명이고, 그 생명은 한번 들이면 버릴 수 없어. 죽을 때까지 돌봐야...해. 나는 늙어가고 있어. 너도 그렇고. 우리 둘 다 힘들지 않니? 여행도 어디론가 오래 떠나지도 못해... 야행성인 녀석들 때문에 밤에 잠도 설쳐... 이번에 이사 가면 또 얼마나 많이 밤을 지새워야 하니? 아니 이삿날은 또 녀석들 때문에 얼마나 난리를 쳐야 하니? 한 마리도 아니고 네 마리야! 털은, 똥은, 애들 늙어서 아프면? 내가 책을 안 늘리겠다고 다짐해도 책을 안 사고는 못 견디듯이, 그 사람은 동정심이 어마어마해서 불쌍한 고양이를 보면 외면을 못한다. 언제는 그런 모습이 좋았는데 요즘은 그런 모습이 버거워질 때가 있다. 니가 내 책이 짐스러워질 때가 있듯이.... 셋째가 마지막이라고 그렇게 호언장담하더니 저기 저 한 마리는 뭐니? 대체? 아무튼 그렇게 순식간에 1인 1닭과 맥주 4잔씩을 비우고는- 서로 한계가 있다는 걸 인정하기로 했다. 나는 책을 늘리는 데 한계를 짓기로, 그 사람은 더는 진짜 어디서 무슨 일이 있어도 냥줍하지 않기로. 근데 우리가 이게 진짜 잘 될까?
일단 나는 6월 이후로(사실은 6월 5일 이후로) 책을 안 사고 있기는 하다.... 그 사람도 괭이를 더 안 주워 오고 있기는 해... 그래... 그럼 됐어. 그리하여 이번 내 생일에는 이사 가는 집에 더 놓을 책장을 선물 받기로 합의. -_-;
독서괭님의 비법을 전수받아야겠다....

책을 늘리지 말라니... 냥무룩...시무룩...

그래, 바로 그거야! 독서괭과 새파랑의 방법을 써야겠어!

꺅- 넘나 귀여운 >_< 내 사랑 둘째~ (책 늘리지말라냐용...싸우지들 말라냐옹....)

집사야, 정말 책 안 늘릴 자신 있냐옹.....? 못 믿겠다냐용...

응?? 나불렀냐옹...... 이 집 등따시고 배부르다냐옹..

밥도 맛있다냐옹....

걍... 영원히 임보 안 되겠냐용??

너희들 올치즈에 딸은 없지 않냐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