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2001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제목 잘 골랐다. 근데.. 또다시 불만은, 1권에서 이 여자가 그림을 별로 읽어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림 읽어 주는 여자'라고 구라를 친 까닭에, 이 책에서도 이 여자는 왠지 그림을 읽어주는 듯한 느낌을 깔고 있다.

그렇다. 진즉에 제목을 이렇게 붙여야 했다.

그리고, 글 참 잘 썼다. 그림과 글이 찰떡 궁합인 것들이 제법 보인다.

그림은 보는 사람에 따라서 다른 것이다. 제멋에 겨워서 보는 것이 그림이다.

그래서, 그림에서 인생을 배울 수는 있어도, 그림을 읽어 주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이 책에서 비로소, 한젬마라는 가능성 120%의 에너자이저를 만나게 된다.

그가 꿈꾼대로 '당신이 건너야 할 인생의 깊은 강물 앞에 보석같은 다리 하나 선사하고 싶다'던 희망이 어느 정도 건너오는 느낌이다.

첫 그림, 무너지지 않을까?의 무너질 듯한 조마조마한 벽돌들과, 어울린 이야기는 그미가 '꼴깞'하려고 이 책을 만들려 한 것일지 모른다는 나의 의심병의 혐의를 벗기에 족했다.

빨강의 키세와 파랑의 키스가 합쳐지면 보라색 키세스가 될 거라는 착각을 깨우치는 그림. 사랑은 보라색이 아니다. 빨간 엘과 브이, 파란 오와 이가 합쳐서 사는 것이 사랑이란 새로운 시각.

이 책에서 제일 맘에 드는 것은 윤석남이다.

"하고 싶으면 그냥 하는 거지, 뭘 따져요. 정말. 사람들 이해 못 하겠어요."

아무래도 현실의 고통을 잠으로 감싸안는 김원숙의 그림보다는, 한젬마의 성향은 윤석남일 듯 싶다.

관상이 그래 생겨 먹었다. 이쁘장한 얼굴에서 툭 튀어 나오는 고집. 하고 싶으면 하는 고집.

그의 활성화 에너지가 충분함을 보았으니, 오래오래 힘을 기르고 비축해서 좋은 책들을 내 주기 바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종이거울 속의 슬픈 얼굴 - 사람 담은 최민식의 사진 이야기
최민식 글, 사진 / 현실문화 / 2004년 12월
평점 :
품절


최민식의 사진,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작품은 '국회 공전.. 정상화'가 머릿기사로 쓰인 부산 일보를 오른 손에 들고 한 다리 한 팔로 처절하게 살고 있는 한 젊은이의 1985년 사진일 것이다.

86 아시안 게임, 88 올림픽을 앞둔 서울은 목동 아줌마들의 철거 투쟁으로 눈물 범벅이었고, 금호동, 사당동의 난쟁이들은 낙원구 행복동에서 <철거 계고장>을 받고 망연해 하던 그런 시기다.

최민식의 사진의 기본 의식은 <리얼리즘을 통한 인간의 탐구>라고 하겠다. 그는 인간의 사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직접적 경험을 통하여 사진기에 담는다.

그의 탐구 대상은 주로 가난한 사람들, 가장 힘든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그야말로 삶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 공간은 주로 부산이며, 간혹 안동 경주 서울 작품도 등장하고, 인도 마닐라 카이로의 작품들도 있지만, 그 대상은 마찬가지로 오늘의 삶 자체가 목적인 사람들의 모습이다.

삶의 무게에 지쳐 잠이 들어버린 모습이거나, 남들에게 어떻게 비쳐질까를 지나치게 걱정하는 요즘 배부른 인간들에 비해, 제 코가 석자인 인물 군상들이 그의 렌즈를 통해 필름에 각인된 것은 우리의 역사를 잊지 않도록 하자는 뼈아픈 새김인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있어서 사진은 물질도 관념도 아닌 <살아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의 가난한 민중은 저항의 시대를 웅변하고 있고, 흑백의 종잇장에 갇힌 인물들과 시간을 통해 우리에게 성찰과 반성의 체험을 던지는 의미를 갖는다.

우리 곁에 그와 같은 사진 작가가 있다는 것으로도 행복하다. 그는 행복을 보여주지 않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모딜리아니, 열정의 보엠 다빈치 art 2
앙드레 살몽 지음, 강경 옮김 / 다빈치 / 200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Modigliani. 철자를 보면 이탈리아 사람일 거라고 추측할 수 있는 이름.

유럽의 남국 사람답게 꽤나 열정적이었던 사람이었다. 이 책의 원 제목도 <La vie passionnee de Modigliani> 이다. 모딜리아니의 열정적 인생... 정도일까.

이 책의 제목을 보고 보엠(라 보엠 생각도 나고)을 인터넷으로 검색해 봤더니 보헤미안적 기질을 보엠이라고 한단다. 세상 참 좋아 졌다. 모르는 것 있으면 바로 검색이 되니 말이다. 며칠 전에 어떤 선생님이 <메리야쓰>가 어느 나라 말인지, 일본 말이아고 정확한 어원이 어딘지, 정말 속옷이란 뜻인지 갑자기 궁금한 질문을 던지신 적이 있다. 네이버 검색에서 멋지게 뽑아서 보여 드렸더니 좋아라 했다. 참고로 메리야쓰는 스페인, 포르투갈에서 건너온 말로써, 한 방향으로 짜는 직조 방식을 뜻한다. 양말처럼 날줄과 씨줄을 쓸 수 없는 방식.

 파리로 건너가 그림에 빠진 그는 열에 들뜬 눈을 지니고 몽파르나스의 방랑자 생활을 하며 건강따위는 경멸하며 사는 가난한 화가의 삶을 마친다.

허약한 체질인데다 가난과 술, 마약에 빠져서 서른 여섯의 나이에 요절한 모딜리아니.

중고교 시절 교과서에 실린 그의 작품들은 사실적이기 보다는 <길쭉이 거울> 앞에 선 세계처럼, 긴 얼굴, 여섯시 5분 전으로 기울어진 머리, 기다란 사슴같은 목, 눈동자 없는 퀭한 눈에 가지런히 모은 손의 여인들을 그린 것들이었다.

오른 쪽의 잔느 에뷔테른느는 그의 그림치고 유난히도 명쾌한 인상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그림이었다.

이탈리아 청년답게 검은 머리에 수려한 외모로 숱한 여인들의 심금을 울렸건만, 산업화 사회의 빈곤 속에서 죽어간 숱한 예술가들과 같이 그도 삶을 마친다.

이런 책을 읽으면서 모딜리아니를 통해 피카소도 만나고, 르느와르도 만나고 하는 것은 미술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다.

그리고 중고교 시절에 보던 그림을 다시 만나면 뭔지 모를 신비로움을 느낀 그 시절의 감각이 살며시 되살아나는 듯도 하고...

여섯시 오분 전의 작가, 그 열정의 모딜리아니의 삶을 읽으며, 다시 달과 육펜스를 생각한다. 주려 죽을지언정, 6펜스에 기대느라 달님을 놓치지는 않으려던 고집스런 예술가들의 삶을...

 그 평전은 그럭저럭 평범해서 읽다가 졸기도 하고 했는데, 마지막에 모딜리아니의 죽음 앞에서 창문을 활짝 열어 젖히고 뛰어내린 잔느의 대목에서 목이 울컥 메이는 대목은 이 책의 돌연한 절정이라 할 만하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7-14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열화당에서 나온걸 봤습니다. 그림과 글이 아주 좋았어요.
작지만 예쁜 책이었죠.
님하고 겹치는 책이 많아서 좋습니다.
님이 방학 하시고 제가 이사가서 여력이 생기면 더 많아질래나요?^^

글샘 2005-07-20 2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겹치는 책이 많다는 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취향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요즘 글 많이 올려 주셔서 잘 보고 있습니다. 저는 방학을 맞아서 많이 읽지 않고 좀 어려운 책들을 읽어 보려고 생각중입니다. ^^
 
클림트, 황금빛 유혹 다빈치 art 9
신성림 지음 / 다빈치 / 2002년 7월
평점 :
절판


클림트, 그 이름의 낯섦이나 만큼 그의 그림 세계도 독특하다.

김영하의 소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에서 클림트의 그림을 만났던 적이 있다. 유디트였던가.

우연히 도서실에서 나를 부르는 눈빛이 있었다. 이 책의 제목이 새겨진 옆면이 황금빛이었다면, 더 일찍 눈에 띄었을지도 모른다. 이상하게도, 옆면은 푸른빛이다. 그런데, 제목과 도서관 라벨지 사이에서 작지만 매혹적인 유디트 1의 눈빛이 나를 끌었던 것 같다.

우선 클림트의 그림 중 몇 개는 상당히 유혹적이다.

그의 황금빛과 기하학적 문양이 어울린 키스, 충만이 그렇다. 특히 나는 그의 충만에서 어떤 종교적 환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의 유디트1,2도 클림트를 그대로 드러내 주는 그림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유디트 1,2야말로 클림트를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화가의 책들은 그의 인생 살이를 시시콜콜히 볼 수 있는 것도 재미라면 재미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가 적고 있듯이 클림트는 '그림으로 말하겠다' 일견 건방지고, 일견 당연한 주장을 펼치는 화가다.

요즘 텔레비전을 보면, <만능엔터네이너>라는 착각으로 가수는 노래를 부르지 않고, 연기자는 연기하지 않는 시시한 수다맨들을 많이 만나게 되는데, 세상이 모두 <퓨전>의 시대를 맞아 뒤헝클어져 가도, 클림트처럼, 화가는 그림으로 말할 뿐, 이란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은 신선한 충격이다.

이 책은 앞부분의 키스와 충만, 유디트 1,2, 다나에와 레다의 그림에서 클림트를 충분히 사랑스런 작가로 만들어 주었다.

이 책의 장점,
앞부분의 위 작품들을 설명하는 데 있어서는 설명과 그림이 적재적소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다.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확대 도면이 간혹 있었더라면 더 좋았을 거란 생각이 든다.

이 책의 지루함, 클림트의 삶 자체가 흥미롭게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에 뒷부분으로 가면서 지루해 진다. 뒷부분에서 재미있는 것은 저 유디트의 모델이 누구일까 하는 것이었는데, 그가 임종에서 부른 에밀리라고 미리 생각한 나는 에밀리의 사진을 보고 아무래도 유디트와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가 잘못 본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뒤로 가서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1,2>를 만나곤 '아, 이 사람이 모델이야!'라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 눈빛. 황금빛 둥근 원형들 위에 빛나는 팜므 파탈의 눈빛으로 말이다.

그의 그림 세계의 변화를 읽으면서, 신화와 사랑의 시대, 죽음의 시대, 여인과 모성의 시대의 변화를 느낀다. 마치 인류의 시대 변화와 유사하지 않은가 하면서... 저 그리스의 신화의 시대, 그리고 십자군 전쟁에서 9.11 테러로 이어지는 죽음의 시대, 우리가 지향해야할 임신과 출산의 모성의 시대를...

나에 대해 뭔가 알고 싶다면 - 물론 화가로서의 나 - 내 그림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그 속에서 내가 누구인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으라... 는 용기를 배운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5-11 13: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둥이 클림트 얘기야 다 아니, 그림해설만으로도 족한 책인가요?
구독하고 싶어요.

해콩 2005-05-11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두고 아직 읽지 못한 책이예요. 클림트의 제자(아니 그저 영향을 받았다 정도로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중에 누드화로 유명한 '에곤 실레'의 책과 함께 샀는데 아무래도 저는 누드화가 더 땡기더라구요. 호호 샘께서 '벌거벗은 영혼'을 그렸다는 그의 누드화를 보신다면 어떤 리뷰를 쓰시게 될지 벌써 궁금해지는걸요.

글샘 2005-05-12 09: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림트가 바람둥이였나요? 저는 잘 모르는 사람이라서... 여우님은 그림을 잘 아실테니 오히려 제가 물어 봐야지요.^^
이 책에도 에곤 실레의 그림이 몇 점 수록되어 있지만, 저는 클림트의 몽환적인 그림, 유디트의 끈적대는 눈빛 쪽이랍니다. ㅎㅎ

블루 2005-05-12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여행중에 키스 원화를 보고 와서 이 책을 사서 읽었어요.오스트리아 미술관에 걸린 진짜 키스 그림 앞에선 실제로 키스를 하는 연인들도 많대요.그림속의 여자 표정을 보면 이해가 가기도 해요 ㅎㅎㅎ

글샘 2005-05-13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평화로워보이고 행복해 보이지.
난 클림트가 좋은 점이, 삶의 충만함을 그림에 가득 담은 것 같아서야.
이런저런 고민 투성이인 인간을 행복하게 만들어 줬으니 훌륭한 예술가지.^^
 
그림 읽어주는 여자 명진 읽어주는 시리즈 1
한젬마 지음 / 명진출판사 / 1999년 9월
평점 :
절판


언젠가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그 이유는 표지가 너무 매혹적이었기 때문. 새뜻한 고동색은 나무 줄기처럼 책 중심을 받치고, 그 나무를 치켜 보듯 땡그랗게 뜬 눈으로 고흐를 받치고 앉은 한젬마의 도발적 연기가 '그림 읽어주는 여자'라기 보다는 '그림 읽어주는 여자란 책을 읽게 만드는 여자'로서 기능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림을 읽어주는 책으로 치자면, 나는 오주석의 책이 가장 좋다. 정말 그림을 읽어 주니깐...

이 책은 그림에 간단한 에세이들을 삽입해서 <그림 에세이>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그림을 읽어주기를 기대했다가는 오산이고, 착각이다.

십여 년 전에 서울 영등포구민회관에서 유홍준 교수의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수업 다 마치고 오후 여섯 시인가에 시작해서 몹시 피곤했지만, 교수님이 읽어주는 미술의 스크린들은 내 무거운 눈꺼풀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그림을 읽어준다는 것은 숨은 그림도 찾고, 숨은 의미도 찾고, 작가에 얽힌 이야기도 찾고, 일반인들이 낯설어하는 이야기들을 들려주는 것이다.

한젬마의 글은 아직 푹- 숙성되지 않았다. 그림에 대한 애정이 아직 따끈따끈하여 사랑의 바람을 주체하지 못하여 통통튀는 수준이라 생각한다. 사랑이 오래 되어 정이 되면, 즉 숙성의 기간이 지나고 나면, 훨씬 차분한 톤의 설명을 들려주지 않을까? 그럴 재주가 있는 인물이라고 생각되니, 어디, 기다려 볼 일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파란여우 2005-03-18 14: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 책값이 너무 비싸다는 생각을 합니다.
물론, 천연색 그림이 삽입되어진 이유지만 내용면으로 따져보면 비싸다고 봐요...
아, 제게도 오주석씨의 그림해석이 당근 최고였습니다.

글샘 2005-03-18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돈주고 책 산 지 오래 되어서... 얼만지는 모르지만, 아마 비쌀 것 같네요...^^ 표지에 들어간 꼴값(?)이 포함된 것 아닌가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