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생각나무 ART 22
손철주 지음 / 효형출판 / 199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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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철주, 1953년생, 현재 국민일보 문화부장(98년 당시), 7년 동안 문화부 기자...

이 사람이 쓴 미술 에세이를 읽을만 하겠는가 어떤가... 아마 요즘 이런 경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책을 낼 염을 못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 책은 많이 실망스럽다.

제목이 그림, 아는 만큼 보인다 이다. 그럼, 작가는 그림을 어느 정도 아니깐, 내가 보여주는 대로 보면 그림이 보일 거란 생각일텐데...

이 책의 가장 큰 단점은 아는 척은 많이 하지만, 실상 그림도 없고 그림에 대한 해설도 턱없이 부족하다. 그게 불평의 전부다. 책은 그림과 작가, 작품, 우리 미술 등에 대한 개인적인 '가십'을 유감없이 펼치고 있다. 작가는 아마 나를 30년 지기 정도로 생각한 모양이다. 그가 "있잖아. 그 왜 전에 우리랑 같이 놀다가 만..." 하면 "아, 있었지. 그애가 왜?"하고 맞장구를 칠 줄 착각한 모양.

특히 현대미술에 많은 할애를 하고 있지만 내가 모르는 그 사람들에 대한 가십 거리는 정말 허탈하게 한다. 미술계에서 잰 체 하는 사람들이 잘 쓰는 말로 '아방가르드'라는 게 있다. 열린 마음, 트인 감각, 앞선 정신 이란 뜻이 들어있는 용어란다. 그는 자신이 미술 비평계의 아방가르드 기자라고 착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나는 왜 가끔 가다 한 권씩 미술책을 보고 싶어지는 걸까... 웬디 수녀님이나 오주석씨, 이주헌씨 등의 글을 좋아하는데... 이 책의 마지막에 내 마음을 읽어주는 이야기가 있어서 그나마 반가웠다.

<미술에 무슨 뜻이 담겨 있나> 피카소에게 '무얼 그릴 것인지, 어디가 아름다운 건지 통 모르겠어요'하고 물으면, "그러면, 산새 울음소리는 곱습디까?"하고 반문했단다. "물론 곱지요" "그러데 우는 소리에 무슨 뜻이 있는지 압니까?" "글쎄요..." "바로 그거죠. 새소리가 아무  의미없이 아름답듯이 미술의 아름다움도 마찬가지......."

<미술은 어떤 쓸모가 있을까?> 樹話 김환기가 서울에서 생활하던 시절 그의 서재엔 조선 백자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단다. 친구들이 "도자기가 있어 혼자 살아도 외롭지 않겠다"고 덕담하자 수화 왈, "다른 건 몰라도 글 쓸 때나 그림 그릴 때는 요게 꼭 제 값을 한단 말이야. 상이 떠오르지 않을라치면 백자 엉덩이를 손으로 슬슬 문지르기만 해도 신통하게 풀리거든."

내가 미술책을 보고, 전시회에 얼굴을 내미는 것도... 어떤 쓸모가 있어서가 아니라, 꼬여버린 머릿속의 회로를 풀어주는 마법에 취해보고 싶어서라고 해 두자. 그런 정도로 저자를 용서하자. 정년을 앞둔 교장들이 잡문집 한 권씩이라도 내려고 하듯, 한 가지 분야 일에 7년이나 종사한다면 이런 책 한 권쯤 쓰고 싶어지는 건 인지상정이라 생각하고... 그나마 이하응의 이 그림 한 점 건진 것이 소득이라면 소득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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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 나는 세상의 배꼽
김종근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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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중학교 때던가 봤던 달리의 '시간의 영속성'이란 그림이었다. 자신을 천재로 알다 간 미술가 달리의 삶을 잘 조명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1부는 아버지의 시각으로 어린 시절을, 2부는 달리의 시각으로 그의 삶과 갈라와의 만남, 그리고 예술 정신을, 3부는 비평가의 시각으로 달리를 분석하고 있다.

부산 BEXCO에서 살바도르 달리 탄생 100주년(100주년이란 게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전시회가 있었다. 달리의 브론즈들이 먼저 나를 맞았다. 나는 이런 전시회가 싫다. 나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조각이나 그림들, 그리고 나를 조롱하는 듯한 달리의 시선이 구석구석 숨어서 관음증을 즐기고 있고, 사람들은 달리를 좋아한다, 존경한다는 메모지들을 수두룩하게 붙여 둔다.

쉬르리얼리즘의 중심에서 회화와 조각, 의상 디자인까지 그의 현실을 초월한 감각은 프로이트의 전령이 되어 상업주의와 연을 맺는다. 이 책을 읽는다고 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예술가들이 지향하는 초월적인 시간과 공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달리의 그림들을 간략하게나마 설명한 것, 그리고 갈라와의 사랑에 관한 부분은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초현실주의 자체가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이 책을 읽은들 달리를 친숙하게 느끼기는 어렵다. 달리를 읽고, 그의 작품들을 보았지만, 왠지 그 자신이 세상의 배꼽이라는 공언은 '박제가 되어 버린 천재를 아시오?'로 시작하는 이상의 날개가 품은 허언으로 들려 씁쓸하다.

뭔가 이해할 만 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소리지르고 싶었다. 임금님이 벌거벗고 있다고. 그 그림을 이해할 수 있느냐고. 그리고 벡스코의 멋드러진 초현대식 외관과 대조적으로 추하게 드러난 전시장 바닥은 손님이 왕인 자본주의 시장에서 손님을 조롱하는 행태로 밖에 볼 수 없었다.

 

2.24

내가 제일 좋아하는 달리의 그림, 환각제적 투우사.

그런데, 이런 좋은 그림들은 전시회장에 하나도 없었다. 불쾌한 전시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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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4-11-25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윽 평단문화사
 
웬디 수녀의 나를 사로잡은 그림들
웬디 베케트 지음, 김현우 옮김 / 예담 / 200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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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디 베케트 수녀님의 글은 참 편안하다. 그런데 이해인 수녀님의 글처럼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고 때로 격정적이고, 때로 매혹적이다.

이 책은 영국에 있는 여섯 개의 미술관을 순례하고 수녀님의 마음에 드는 작품들을 간략하게 설명한 글이다.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인가? 하는 책도 있지만, 루브르는 프랑스 박물관이 아니다. 대영박물관과 더불어 루브르 박물관은 식민지 역사 박물관이라 할 만하다. 이 책에도 유럽 여러 나라의 작가들이 등장하지만, 약탈의 냄새가 없어 좋다. 그리고 그 미술관들의 외관을 잔디밭과 함께 찍어 놓은 사진들을 보노라면, 마치 내가 그 한적한 잔디밭에 드러누워 대서양의 섬나라 햇살을 따스하게 받고 있는 느낌이다. 물론 그 섬나라의 일년 중 절반은 을씨년스런 겨울이지만, 이 책에 수록된 그림들은 정말 따사로워 보였다.

수녀님을 사로잡은 많은 그림들 중, 나를 사로잡은 그림을 몇 점만 기억에 남기자.

주세페 데 리베라의 '데모크리토스'라는 작품을 보는 순간, 아, 이 작가가 추구하는 정신 세계는 이런 것이구나'하는 예술의 진실성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이 화가가 모델로 삼은 사람은 며칠을 이 자세로 버티고 있어야 했겠지만, 부스스한 머리칼에 터프해보이는 표정, 소매가 해어지긴 했지만, 책을 뒤적이고 있는 지적인 손매와 가장 편안해 보이는 자세의 구도는 '조르바'가 현존한다면 이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정도의 그림이었다. 문학에서만 진실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도 진실성을 느낀 작품이랄까?

얀 리벤스의 '예술가의 어머니'도 맘에 든다. 수녀님이 적은 대로, 아무 설명 없이도, 작가가 드러내고자 하는 연륜과 노인의 독서, 그 찡그린 콧날에서 우러나는 삶에 대한 외경이 사무치게 와닿은 그림이다.

숱한 남자 화가 중 홍일점으로 '골로빈 백작부인'을 그린 엘리자베트 비제-르브룅의 작품도 명쾌한 붉은 색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림, 아는 만큼 보이고, 그때 보는 그림은 전과 같지 않게 해 준 수녀님의 설명이 돋보인 그림도 몇 편 기억에 남는데,

구에르치노의 '감옥에 갇힌 성 요한을 방문한 살로메'의 설명은 한 편의 그림이 갖춘 철학적 깊이를 느끼게 했다. 갇힌 자의 밝고 편안한 공간과 자유로운 자가 얽매인 창살의 대비는 삶의 의미를 깊이 깨우치는 글이다. 수녀님의 글이 좋은 이유는 삶의 깊이를 아는 분이기 때문이다. 늘 밝은 쪽만 바라보는 수녀님의 글은 삶에서 동떨어지기 쉬운데, 웬디 수녀님의 글을 읽다보면, 공감가는 부분이 참 많은 편이다.

티치아노 베첼리의 '타르귀니우스와 루크레티아'도 설명을 들으면서 보면 작품을 일별했을 때 보지 못했던 것들을 캐치할 수 있다. 이 점 역시 '큐레이터'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수녀님의 설명 없이도, 감동적인 작품, 오귀스트 르누아르의 '바람'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순간을 잡아낸 그림이다. 역시 르누아르라는 생각이 든다. 르누아르의 시력은 평범한 사람보다 빛에 반응하는 세포가 몇 배 발달했던 것이 아닐까. 어쩜 보이지 않는 봄의 공기의 흐름까지도 인지하고 그려내는 것일까... 존경의 념이 저절로 우러나는 그림이었다.

웬디 수녀님과 함께한 간단한 여행이었지만, 비록 고등학교 도서실이 부족하더라도 이런 책을 서점에서 사 보지 않고  빌려 볼 수 있는 처지인 것이 더할 나위없이 행복하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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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를 가르치는 독설
피에르코랑 / 디자인텔 / 199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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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오래된 서사시, Le Roman de Renart 이야기다.

르나르라는 여우를 통해 구전되던 이야기를 피에르 코랑이란 작가가 입심 좋게 채록해서 책으로 엮었다고 하는데... 프랑스어를 통해 느껴졌을 법한 감동은 우리 말로 느낄 수 없음이 아쉬웠다. 우화이지만 서사시인 이런 작품은 역시 그 나라 말을 도구로 해서 읽어야 맛진 느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데...

그렇다고 지금 프랑스 말을 공부할 엄두는 나지 않는다. 삼 년을 두고 중국어를 공부할 원을 세웠기 때문에. 한비야가 일 년에 이룬 경지를 삼 년에 하려고 하는 것도 욕심인 줄은 안다. 그렇지만 삼 년 정도면 고급 수준은 안 돼도 중급 수준은 이를 수 있단 걸 알기 때문에 욕심을 가져 본 거다.

우리 고전의 옛날이야기처럼 늑대와 여우는 골탕먹일 궁리로 늘 교활하다.

그리고 위선과 부도덕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우리는 너무 도덕적이지 않았나? 우리 소설들 속의 도덕적 인물들처럼 춘향이, 심청이, 흥부같은 존재들은 너무 어리숙하지 않았던가. 놀부처럼 경제적 욕구를, 변사또처럼 법을 준수하려는 기준을, 뺑덕어멈과 같은 상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움직임을 이야기하던 꾀쟁이 토끼나 호랑이를 속였던 해와달이 된 남매 이야기들이 우리 역사엔 많이 살아있었다.

우리도 꾀쟁이 토끼를 놀부를 뺑덕어멈을 살릴 부분을 살리고, 배울 부분은 배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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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러브 뮤지컬
김기철 지음 / 효형출판 / 200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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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뮤지컬을 한 번도 극장에서 본 적이 없는 문외한이다. 서울에 십 년을 살면서도 세종문화회관(여긴 행사장이라 멋진 극장도 아니다.)이나 예술의 전당 가본적도 없는 비예술적 인간이다. 아, 국립극장에서 하는 백조의 호수는 한 번 본 적이 있고, 소극장은 가끔 가 보기도 했다.

화려한 무대 예술과 배우들의 노래로 꾸며지는 뮤지컬은 아무래도 비용이 부담스러운 잘사는 나라 취향인 모양이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고 지난 여름 런던의 거리를 지나가면서 몇 번이나 라이언 킹을 스쳐지나갔고, 그 옆의 임방크먼트 역에서 지하철도 탔으면서 뮤지컬 하는 줄도 몰랐으니... 옆의 안내자가 몰랐던 탓이 더 컸지만, 만약, 내가 이 책을 런던 가기 전에만이라도 읽었더라면 30파운드(66000원)정도의 뮤지컬은 관람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뉴욕의 브로드웨이는 들어본 적이 있지만, 런던의 웨스트엔드는 듣기마저 처음이다.

뮤지컬은 우선 제작 비용의 문제때문에 대중화되긴 어려운 장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 년에 한 번 정도 십만원 정도를 투자할 정도로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지 않은가. 작년에 캣츠를 보러갈 기회를 놓친 것도 아쉽고, 내가 사는 마을엔 뮤지컬이 잘 들어오지도 않지만, 나자신 무관심하기도 했다.

공연 직전 리허설에서 최선을 다해 자기 순서를 끝낸 댄서가 기둥에 등을 기댄 채 스르르 주저앉는 장면을 무척 인상적이라고 할 만큼 이 글의 작가는 뮤지컬과 그 배우들을 사랑하는 사람이다.

줄거리의 간략한 소개와 현대 뮤지컬의 흐름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한 책이다. 많이 아쉬운 점은 뮤지컬이란 장르가 개발도상국의 정서와 거리가 느껴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것이라고나 할까...

어제 설악산 단풍을 보고 왔다. 차가 많이 밀려 서있는 동안에나 붉고 푸른 색색의 나뭇잎들과 수직으로 낙하하는 낙엽들을 바라볼 뿐이었는데, 서럽게 붉은 단풍의 서정은 마음을 정화하기라도 하려는 듯 우련 붉었다. 쌀쌀한 날씨에 붉어지는 나뭇잎처럼 짙은 서정을 아로새길 뮤지컬 한 편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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