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두꺼운 책을 도서관에 사 두고 계속 못 보고 있었다.

세월호... 아이들 이야기를 모르고 싶었다.

 

이제 1,000일이 가까워오는데, (1월 9일)

세상은 더 암흑 속으로 깊어 가는데...

청와대의 7시간과 함께, 우병우의 개입까지... 악마는 들끓었다.

 

 

세월호는 비극이었지만,

그 비극은 현재 진행이며,

그 비극은 사람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아이들은 별이 되어 고래를 타고 광장을 유영했고,

진실을 향해 다가서게 하였다.

 

국가는 조직적으로 '여객선 사고'를 은폐하였고,

유가족을 모욕하였고,

진실을 덮으려고 온갖 수작을 다 부렸다.

 

정말 '여객선 사고'라면 그렇게 국가가 유가족을 사찰하고,

있지도 않은 구조를 뻥치고 방송했을 리가 없다.

이것은 '사고'가 아니라 <사건>인 것이다.

 

그날 최초 방송 보도는 9시 19분 YTN 뉴스 속보였다.(305)

그렇지만, 그날 아침 7시 20분 경, '굿모닝대한민국' 프로그램에서 자막으로

<제주도 여객선 사고>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아침 출근 준비 시각이어서 시간을 혼동할 수도 없다고 하는데,

다시보기 프로그램은 명백히 조작을 가한 흔적이 여실하다.

며칠간 다시보기가 되지 않았고, 나중에 올린 자료에는 자막이 지워진 흔적이 남는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미지가 전날 날짜로 기록되어 있었던 것처럼 머리가 아득해진다.

박근혜 부정선거때 쓰인 것처럼, <여객선 사고>와 <전원 구조> 소식이 예정되어 있기나 했던 것처럼...

 

8시 52분 최덕하 학생의 신고(429)가 있었는데,

굿모닝 대한민국 방송의 자막과 전원구조 소식은 의혹의 발단이었다.

인터넷에 '굿모닝대한민국'과 '세월호'를 검색하면, 며칠 뒤 리포터 뒤에서 욕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 리포터는 '열라 구조중'이란 거짓말을 하고 있고,

목소리는 '거짓말하지 마, 씨발련아'하는 욕설과 항의가 계속 들린다.

 

관심을 두지 않았던 기록도 있다.

 

손지태는 모텔에서 자고, 아내에게 카톡을 보낸다.

-오후 또 국정원 취조가 있을 텐디, 마스크 하고 나가유.(4,`7일 09:49:52)

-완전무장할 거유, 그나저나 워낙에 큰 사건이라 오래 시달릴거 같네요. 이제 카메라하고 기자는 피할 것 같은데, 경찰이 우리를 보호하는 느낌이 별이유, 삼류 인생들과 같이한 내 잘못이에요.(550)

 

그는 4월 21일 오전 11시경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으나 동료들의 신고를 받고... (551)

 

선장은 무기징역이고, 손지태는 3년을 받는다. 반면 신정훈은 징역 1년 6월이다.

대법 날자가 15. 11.12일이니 풀려났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신정훈(1항사)는 누구인가?

 

세월호 특조위를 조직적으로 방해한 새누리당과 청와대,

해경 123정 김경일(징역 3년, 곧 출소)를 보호하려 한 우병우 당시 청와대 수석,

유병언의 죽음에 대한 믿지 못할 증거와 주식회사 청해진에 대한 벌금 천 만원.(631쪽 기록)

수사팀에 외압을 가한 우병우의 기록까지 나온다.

 

http://v.media.daum.net/v/20161220204504840?d=y

 

사고부터 처리까지 모두가 의혹에 파묻힌 세월호,

이제 다시 파헤쳐야 한다.

 

'자로'라는 닉네임을 가진 네티즌이 곧 진실을 밝히겠다고 했는데,

과거 그는 '굿모닝대한민국'의 7시20분 자막은 없었다는 말을 열심히 하고 다녔다.

파파이스의 김감독과 힘을 합쳐 만들었다는 동영상을 한번 보고 그의 진심을 판단해야겠다.

 

박근혜를 감옥에 보내는 일보다 더 어려운 일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일 것이다.

특검에서도 대통령의 뇌물죄는 명백한 듯이 이야기했고,

최순실 역시 방어가 불가능한 수준일 것이다.

문제는 출생의 비밀을 안은 정유라 조사와 독일에 은닉된 재산 등의 회수와 함께,

세월호는 도대체 왜 그렇게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는지를 밝히는 일은 '새로운 한국'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구할 수 있었다는 말의 반복이 마음 아프다.

이렇게 병들었는데,

누구도 아프지 않다는 듯, 사는 일도 아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리는 현재다 - 청소년이 만들어온 한국 현대사
공현.전누리 지음 / 빨간소금 / 2016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국제사회에서 청소년(Youth)은 13~24세를 일컫는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고도 만 24세가 되기까지는 유럽에서 반값 유스패쓰를 이용할 수도 있단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성인' 요금을 내야 영화를 볼 수 있는 호갱님인 한편,

참정권도 없고, 교복 안에서 타율학습의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현실이다.

 

지난 9월에 나온 '교육공동체 벗'의 <인물로 만나는 청소년 운동사>와 함께 읽으면 좋은 책이다.

작가는 같은 사람이다.

전에는 청소년들이 교과서 틀 안에 갇혀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그리고 언론에서 '전두환 가카 만세'를 외칠 때, 나도 그가 위인인 줄 알았다.

실제로 교과서에서도 가카와 함께 좋은 나라를 만들거라고 쓰여 있었고,

대학에 가셔야 '백기완', '리영희' 선생의 글을 읽으며 세상이 녹록치 않음을 알게 된 것이다.

 

요즘엔 그야말로 손가락질 몇 번이면 지식이 튀어나오는 세상이다.

이승만의 치부를 조사하는 일도, 국정 교과서의 부조리함을 조사하기도 참 쉽다.

아이들에게 조사하고 탐구하는 교육(R&E)이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직 청소년을 아기 취급하는 자들이 있다.

청소년들의 현실 참여를 비하하려는 정미홍 같은 인간이 방송을 탄다.

그저, 관심 종자 이상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 인간은 '세월호 청소년 6만원' 같은 소리를 지껄이는 걸로 보면,

많이 모자라거나, 그런 것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 평범한 악인인 듯 싶다.

 

이 책에서는 3.1운동과 학생의거, 그리고 역사의 격동기마다 굽이쳤던 학생 운동의 역사를 적고 있다.

고등학생의 움직임이 중심인데,

4.19, 광주 항쟁, 전교조 탄압기, 두발 투쟁 및 인권조례기, 광우병 촛불 집회 등의 기록이 담겼다.

 

좀 아쉬운 점은 서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인데,

청소년 운동의 한 측면을 기록한다는 일에 무게를 둘 수 있다.

 

청소년들과 날마다를 보내는 사람으로서 무거운 마음으로 읽었다.

작가가 더 오래 이 문제에 몰입해서,

진짜 청소년 기인 대학생 문제까지도 연결지어 주었으면 좋겠다.

 

세월호가 침몰한 이후,

아이들을 바라보는 내 눈은 그저 가엾게만 보였다.

아이들이 공부를 해도, 고민을 해도, 이런저런 일로 울어도 다 안쓰러웠다.

 

사는 일이 그렇게 힘든 것이다.

그렇지만, 살아 있으니 울기도 하고, 고민도 하는 것이다.

 

이 추악한 국가에서

청소년과 함께 살아온 내 교사 생활은 참 부끄럽다.

 

인터넷에서 '자로'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가 있다.

세월호 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 한다.

 

25일에 공개하겠다 하고, 티저 영상을 준비했다.

 

<세월호 사고 시각 8시 49분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눈물로 보아야 할 영상이 될 듯 싶다.

 

http://zarodream.tistory.com/24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9
은유 지음, 지금여기에 기획 / 오월의봄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홍구의 '사법부'를 읽던 기억이 난다.

박정희의 유신을 거치면서 사법부는 행정부의 폭거에 꼬리치는 개가 되고 말았다.

 

지난 여름, 부산에서 현대차가 급발진으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녹화 영상이 있어 누가 봐도 급발진 사고였던 불행한 일이었으나, 수사 결과 운전 부주의로 결말이 났다.

이건 '재벌'에 대한 예우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다.

 

대한민국은 '민주'도 '공화국'도 있어본 일이 없는, 국가라고 하기엔 쪽팔린 착취 기관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당 한 표, 원칙이 기본인데,

요즘 청문회에서 보면, 가진자들은 민주주의를 개무시한다.

공화국은 '공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나라'인데, 박-최 게이트에서 밝혀진 것처럼,

대한민국은 사익을 추구하려는 착취 기구에 불과했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 말로 지난 수십 년을 버텨온 대한민국.

그 막장이 요즘 드러나고 있는데, 깊어도 너무 깊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자유를 억압하고 자기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들이 아는 단 한 가지.

그 일을 하는 것들은 <중앙 정보부>였고, <안기부>였으며, <국정원>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7시간의 비밀에 <국정원>이 댓글사건과 얽혀 긴밀하게 연루된 사실 역시,

세월호의 앵커와 배의 급회전, 그리고 인양 거부, 화물칸 조사 거부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천안함의 막장드라마 이상의 메가톤급 비밀이 세월호 7시간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들의 야욕 사이에서 짓밟힌 '간첩'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국가의 폭력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다.

무조건 남산 지하실에서 두들겨 팼으며,

가족을 빌미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조작해냈다.

그것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살아온 길이다.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 지금, 다시 박근혜를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재정권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오직 반공에 두었다.(32)

 

예전엔 우리 사건을 생각하고 맨날 눈물이 나서 울었는데,

세월호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불쌍하고... 애들이 얼마나 불쌍해.

그 큰 배가 물에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 그 애들을 안 구하냐고.

진상을 밝혀달라는데 왜 안 밝히는 거예요.

떳떳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영화 <귀향>도 봤지만 서러워.

힘없는 사람들의 억울함, 잔인함이 서럽죠.

짐승도 저렇게는 안 한다.

저러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큰소리치고 뻔뻔하구나.

아직도 그 세상이에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나요?

힘없는 약자들은 말없이 죽어가고 있어요.

세월호, 위안부, 간첩사건... 다 아픈 거예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49)

 

고통은 사람을 저절로 눈뜨게 한다.

요즘 <자백>이란 영화도 나왔다.

간첩을 만들어낸 국정원의 이야기다.

그렇다. 그들은 1987년 대선 직전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 김현희를 사형시키지 않고 이듬해 봄 국정원 직원과 결혼시키는 것들이다.

위기가 닥치면 <칼>이 폭파되고 <세월호>가 터진다.

간첩단 사건이 약발이 떨어지니 대형사고로 이목을 옮긴다.

 

절망으로 가득하고 이룬것 없는 내리막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온다.

그것은 절망의 역전.(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 '내리막' 중)

 

이 책은 절망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그 절망은 좌절만을 낳지는 않는다.

내리막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많다.

 

배운 사람들 하는 짓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다.(109)

 

이런 것들이다.

김기춘, 우병우 들은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축들이다.

그러나 그 인간들이 하는 짓은, 인간의 짓이 아니었다.

그런 배움이라면 쓰레기만도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144)

 

이런 새끼가 검사라고...

 

서울 고법에서 이상한 지하 통로로 나를 데려 가더라고요.

판사가 재판장에 혼자 있어.

내가 어리둥절한데,

선고 재판 하겠다.

이러는 거야.

재판장님, 왜 비밀 재판을 하느냐.

내가 자네에게 긴히 할 얘기도 있고,

판사님이 증거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다.(213)

 

이런 새끼가 판사다.

 

행정부를 장악한 독재자는 처음에는 사법부가 무죄판결하는 것에 약이 올랐다.

그러나 유신이 오래 지속되자,

어느 법관, 검사도 두들겨맞고 구속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순치되서 독재자의 개들이 되었다.

김기춘, 우병우, 최재경, 조대환... 검사출신들이 권력의 옆에서 꼬리를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들은 인생을 잃었다.

 

아버지, 이제 내하고 인연 끊읍시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얘가 경찰 시험에 필기까지 합격을 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진거지.

필기도 붙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떨어질 이유가 없어.

나한테 그래놓고 올라가서 한 달도 안 돼서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거야.(220)

 

아...

얼마나 비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을까.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피해자가 된 사람들...

국가보안법이 만든 죄없는 죄수들...

 

이제라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빈다.

이런 책을 쓴 은유에게 희망을 얻어 간다.

고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고르게 가난한 사회 - 이계삼 칼럼집
이계삼 지음 / 한티재 / 2016년 2월
평점 :
절판


밀양송전탑 싸움을 통해 내가 얻은 가장 큰 학습은

정치 공간이 '허당'이 되어버릴 때, 국가와 시민이 직접 부딪힐 때 재난이 도래한다는 것이다.(229)

 

한국의 정당은 '김영삼당'과 '김대중당'만이 있었다.

그들이 죽은 지금, '야당'은 세월호 앞에서도 침묵했던 과거를 가지고 있다.

지금의 탄핵 지점에서 국민들이 촛불을 드는 것도, 그 야당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터널', '판도라', '해운대' 같은 재난 영화처럼,

세월호와 최순실 사태 이상의 재난은 만나기 힘들다.

 

이 정부 5년 안에 폭탄이 어떻게 터지든, 그로 인해 사회가 어떻게 격랑 속으로 빠져들든,

결국 문제는 민주주의인 것이다.

민주주의를 위한 반복된 투쟁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음을 예감하게 된다.

이 거듭된 반복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하리라.(259)

 

광장의 촛불은 이 반복을 사랑하게 된 지점이기도 하다.

눈이 내려도 오히려 촛불은 더 거세게 들불로 타올랐다.

이계삼의 칼럼집은 수년 전의 이야기들인데도, 세세한 사건들을 짚어가면서 의견을 제시한 측면이,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유용하다.

보통 칼럼집들이 지난 이야기를 늘어 놓으면서 맥이 빠지는 것과 다른 이 책의 '가치'다.

 

이계삼의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건'들을 통해 '맥락'을 잡아낼 줄 알고,

이 '사태'들의 핵심은 '정치'이며, 그 정치가 '권력 쟁취만을 위한 것'이 아닌

인간의 삶을 위한 '녹색'의 그것이어야 함을 철학으로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힘이 생긴 것이다.

 

홀로 공부하여 성공했고, 지금도 한 사람의 말만 들으면 되는 히키코모리형 관료들로 채워진 나라.

히키코모리형 지도자.

타자성을 체험하지 못한 교육은, 정치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 정권에 필요한 것은,

무수한 말, 토론, 수없는 혼란의 소용돌이이며 거기서 얻게 될 타자성의 체험이다.나라 망한다고?

세상은 지배자들의 탐욕과 사치로 망했으면 망했지,

민주주의를 향한 분출과 혼란의 소용돌이 때문에 망한 적은 없다.(263)

 

3년 전의 칼럼인데도, 마치 요즘 시국을 읽는 듯한 힘이 있다.

교단을 떠난 그가 요즘 화두로 삼은 단어가 <교육불가능>이다.

 

나를 있게한 모든 것들이 내 발목을 잡는다.(공각기동대, 98)

 

요즘 대학 입시 시즌이다.

아이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꿈도 희망도 아니다.

체제에 적응하도록 스스로 거세하는 자만이 승자처럼 보이게 되는 현실. 그것이 발목을 잡는다.

 

우리에게는 '가설극장' 같은 정당 정치를 구경할 시간이 없다.

자기 터전에서 벗들과 함께

일상과 공부를 나눌 튼튼한 집을 지어야 한다.

오래오래, 질기도록 싸우기 위하여.(103)

 

이 구절에서 '벗'이 마음에 남는다.

정당 정치에 마음을 주고 쉬면 안 된다.

벗들과 함께 꾸준히 광장에 나서야 한다. 질기도록...

 

탈핵운동과 반올림, 밀양송전탑의 흐름은 같다.

박원순 서울시장 역시 탈핵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는 알고 있다.

교육의 자리도 적당한 개혁은 있을 수 없음을 잘 안다.

 

훌륭한 교육 체제를 갖춘 나라들은

거의 200년에 가까운 갈등과 시행착오의 역사들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나라들 역시 우리가 200년 뒤에 이룩해야할 교육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특히 격동기를 거치고 있는 한국에서는,

가난을 겪은 세대가 아직 살아있는 여기에서는, 학교는 계급 상승의 장이기도 하다.

 

자식의 삶에 미칠 수 있는 부모의 영향력 또한 더없이 가녀린 시대에

부모가 자식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기울이는 관심은

대개 이 무한경쟁 시대를 살아가는 부모 스스로의 불안과

그간의 좌절의 기억에서 배태된 보상심리를 투사한 것일 가능성이 높다.

많은 경우, 가르치려 드는 부모보다 아이들이 더 나은 경우가 많다.(88)

 

386 세대의 부모들은 무식했다.

그래서 그냥 내버려 두었어도 그들은 잘 자랐다.

'실눈뜨고 볼 것'

이것을 배워야 한다.

 

이계삼의 칼럼들은 녹색 평론과 밀양 싸움 등을 통해 많이 접했던 것이지만,

책으로 만나니 새롭다.

 

칼럼이 몇 년 묵은 뒤에도 새로울 수 있음을 깨닫게 한 좋은 글들로 가득하다.

이 촛불의 광장에서,

박근혜만 물러난다고, 김기춘을 벌준다고 좋은 세상이 올 것이라 믿지 않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기를 바란다.

그렇다면, 이런 책을 같이 읽고 이야기하고 싶다.

좋은 세상은 어떤 곳일지를...

같이 꿈꾸자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안경환의 시대유감
안경환 지음 / 라이프맵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화양연화 / 김사인

 

  모든 좋은 날들은 흘러가는 것 잃어버린 주홍 머리핀처럼 물러서는 저녁 바다처럼. 좋은 날들은 손사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새나가지 덧없다는 말처럼 덧없이, 속절없단 말처럼이나 속절없이. 수염은 희끗해지고 짓궂은 시간은 눈가에 내려앉아 잡아당기지. 어느덧 모든 유리창엔 먼지가 앉지 흐릿해지지. 어디서 끈을 놓친 것일까. 아무도 우리를 맞당겨주지 않지 어느날부터. 누구도 빛나는 눈으로 바라봐주지 않지.

 

눈멀고 귀먹은 시간이 곧 오리니 겨울숲처럼 더는 아무것도 애닯지 않은 시간이 다가오리니

 

잘가렴 눈물겨운 날들아.
작은 우산속 어깨를 겯고 꽃장화 탕탕 물장난 치며
슬픔없는 나라로 너희는 가서
철모르는 오누인 듯 살아가거라.
아무도 모르게 살아가거라.

 

대통령이 범죄의 수괴인데,

대통령을 탄핵하려면 그의 <결재>를 받아야 한다?

이런 모순 앞에서 '쾌도난마'는 벌어질 수 있을까?

 

참담한 나날들의 연속이고, 분노가 길거리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인생은 외국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잘못 발음한다.(크리스토퍼 몰리, 414)

 

국가라는 제도 자체가 괴물일진대 '올바른 국가'를 상상하는 일 자체가 부조리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식민지ㅡ전쟁-분단-살육-독재-정경유착-빈익빈부익부-자유의 억압

이런 일이 유전자에 남아 '모난 돌이 정맞는다'가 살아남는 길이 된 나라에서,

선진국과 비교하여 끝없이 부족함을 느끼는 일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자신에게 정직하면서 타인의 내면을 겸손하게 해독하는 일,

쉬울리가 없겠지요.

그러나 그 불안감과 다소간의 무모함을 무릅쓰지 않는다면,

인간과 인간 사이에는 어떠한 소통도 불가능할 것입니다.

편지란 결국

타인의 눈으로 자신의 내부를,

그 내부의 희미한 움직임을 읽어내는 일일 테니까요.(정이현, 414)

 

독서도 그렇고, 모든 공부의 목표는 하나다.

타인의 눈으로 자신을 들여다보며 읽으려 애쓰는 일.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부터 '인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으나, 결국 이명박이 몰아낸다.

촛불시위 이후의 일이다.

 

격동기와 안정기는 다르다.

정치도 외교도 이제는 일상적인 정의를 세우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

끊임없는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이성과 합리에 기초한

흔들리지 않는 정의의 체계를 만드는 일에 주력해야 할 것이다.(157)

 

아아...

지나고 보니,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업적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과오가 이것이었다.

<격동기>를 <안정기>로 착각한 일.

 

한국은 아직도 격동기의 와중인데,

독재자들을 사면하기 이전에 엄벌을 내렸어야 했고,

부역자들을 같이 처벌했어야 할 일인데,

이성과 합리를 내세워 대화와 토론을 하려 했으니 일이 이렇게 틀어진 것이다.

 

지금의 <청와대>와 <검찰>, 그리고 여당의 <친박과 그 출신들>과 싸워 이겨야 한다.

그리고 그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

그러지 못하고, <퇴로를 만들어 주는 열린 마음>으로 지나가면

언젠가는 다시 볼드모트가 되어 나타날 것이다.

 

인권위라는 독립기구가 해야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서 그는 <유감>을 표명한다.

'유감'은 '어떤 감정이 든다'는 뜻이 아니다.

'유감'은 못마땅한 것이다.

이 시대와 불화할 때 쓰는 말이다.

[유감]마음에 차지 않아 못마땅하고 섭섭한 느낌  .

 

이명박의 시대에는 그저 못마땅하고 섭섭한 '유감'정도로 표현했을지 몰라도,

지금 시대는 '유감'을 뛰어넘는 시대다.

 

잠이 보약이고 자괴감드는, 시크릿 가든의 길라임... 새누리와 신천지, 7시간과 여자의 사생활,

가장 심각하고 진지해야할 정치가

가장 저질스러운 처지에 놓여있다.

초등학생이 '금붕어에게 미안하지만, 그여자는 금붕어같다'고 할 정도.

 

국민과 불화하는 역겨운 정치가들을 반드시 처벌하겠다는 시민의식이 이렇게 높았던 적은 없었다.

다만 매일 불같이 화가 나는 일이 연속이어서,

이 분노가 나라를 태워버리지 않기를...

그저 '유감'인 정도를 넘어 분노가 승리의 시기까지 달려가기를... 바란다.

 

다시 '김수영'의 시대가 도래했는가...

 

만약에 나라는 사람을 유심히 들여다본다고 하자

그러면 나는 내가 ()와는 反逆(반역)된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 것이다

 

山頂(산정)에 서있는 마음으로

나의 자식과 나의 아내와

그 주위에 놓인 잡스러운 물건들을 본다

 

그리고

나는 이미 정하여진 물체만을 보기로 결심하고 있는데

만약에 또 어느 나의 친구가 와서 나의 꿈을 깨워주고

나의 그릇됨을 꾸짖어주어도 좋다

 

함부로 흘리는 피가 싫어서

이다지 낡아빠진 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리라

먼지 낀 잡초 우에

잠자는 구름이여

고생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세상에서는

철늦은 거미같이 존재없이 살기도 어려운 일

 

방 두간과 마루 한간과 말쑥한 부엌과 애처로운 ()를 거느리고

외양만이라도 남과 같이 살아간다는 것이 이다지도 쑥스러울 수가 있을까

 

()를 배반하고 사는 마음이여

자기의 裸體(나체)를 더듬어보고 살펴볼 수 없는 詩人(시인)처럼 비참한 사람이 또 어디 있을까

 

거리에 나와서 집을 보고

집에 앉아서 거리를 그리던 어리석음도 이제는 모두 사라졌나보다

날아간 제비와 같이

 

날아간 제비와 같이 자죽도 꿈도 없이

어디로인지 알 수 없으나

어디로이든 가야 할 反逆(반역)의 정신

 

나는 지금 산정에 있다――

시를 반역한 죄로

이 메마른 산정에서 오랫동안

꿈도 없이 바라보아야 할 구름

그리고 그 구름의 파수병인 나 (김수영, 구름의 파수병)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