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존엄 사이 - 간첩 조작 사건 피해자를 만나다 대한민국을 생각한다 29
은유 지음, 지금여기에 기획 / 오월의봄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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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홍구의 '사법부'를 읽던 기억이 난다.

박정희의 유신을 거치면서 사법부는 행정부의 폭거에 꼬리치는 개가 되고 말았다.

 

지난 여름, 부산에서 현대차가 급발진으로 일가족이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녹화 영상이 있어 누가 봐도 급발진 사고였던 불행한 일이었으나, 수사 결과 운전 부주의로 결말이 났다.

이건 '재벌'에 대한 예우 이외의 그 무엇도 아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현재다.

 

대한민국은 '민주'도 '공화국'도 있어본 일이 없는, 국가라고 하기엔 쪽팔린 착취 기관이다.

민주주의는 한 사람당 한 표, 원칙이 기본인데,

요즘 청문회에서 보면, 가진자들은 민주주의를 개무시한다.

공화국은 '공적인 가치를 앞세우는 나라'인데, 박-최 게이트에서 밝혀진 것처럼,

대한민국은 사익을 추구하려는 착취 기구에 불과했다.

 

늑대가 나타났다...

이 말로 지난 수십 년을 버텨온 대한민국.

그 막장이 요즘 드러나고 있는데, 깊어도 너무 깊다.

<국가 안보>를 내세워 자유를 억압하고 자기들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이 그들이 아는 단 한 가지.

그 일을 하는 것들은 <중앙 정보부>였고, <안기부>였으며, <국정원>이 되어버렸다.

세월호 7시간의 비밀에 <국정원>이 댓글사건과 얽혀 긴밀하게 연루된 사실 역시,

세월호의 앵커와 배의 급회전, 그리고 인양 거부, 화물칸 조사 거부 등의 정황으로 미루어볼 때,

천안함의 막장드라마 이상의 메가톤급 비밀이 세월호 7시간에 담겨있는 것이다.

 

그들의 야욕 사이에서 짓밟힌 '간첩'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했다.

국가의 폭력은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다.

무조건 남산 지하실에서 두들겨 팼으며,

가족을 빌미로 있지도 않은 사건을 조작해냈다.

그것이 박정희와 전두환이 살아온 길이다.

그들을 처벌하지 못한 지금, 다시 박근혜를 처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독재정권은 자신의 존립 근거를 오직 반공에 두었다.(32)

 

예전엔 우리 사건을 생각하고 맨날 눈물이 나서 울었는데,

세월호를 생각하니 너무너무 불쌍하고... 애들이 얼마나 불쌍해.

그 큰 배가 물에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데, 그 애들을 안 구하냐고.

진상을 밝혀달라는데 왜 안 밝히는 거예요.

떳떳하지 못하니까 그런 거예요.

영화 <귀향>도 봤지만 서러워.

힘없는 사람들의 억울함, 잔인함이 서럽죠.

짐승도 저렇게는 안 한다.

저러고도 저렇게 당당하게 큰소리치고 뻔뻔하구나.

아직도 그 세상이에요.

우리나라가 해방이 됐나요?

힘없는 약자들은 말없이 죽어가고 있어요.

세월호, 위안부, 간첩사건... 다 아픈 거예요. 방법이 달랐을 뿐이지.(49)

 

고통은 사람을 저절로 눈뜨게 한다.

요즘 <자백>이란 영화도 나왔다.

간첩을 만들어낸 국정원의 이야기다.

그렇다. 그들은 1987년 대선 직전 <KAL기 폭파>사건의 주범 김현희를 사형시키지 않고 이듬해 봄 국정원 직원과 결혼시키는 것들이다.

위기가 닥치면 <칼>이 폭파되고 <세월호>가 터진다.

간첩단 사건이 약발이 떨어지니 대형사고로 이목을 옮긴다.

 

절망으로 가득하고 이룬것 없는 내리막에서

새로운 깨달음이 온다.

그것은 절망의 역전.(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시 '내리막' 중)

 

이 책은 절망의 기록이다.

그렇지만 그 절망은 좌절만을 낳지는 않는다.

내리막 속에서 깨달은 것들이 많다.

 

배운 사람들 하는 짓 보고

못 배운 걸 한탄하지 않았다.(109)

 

이런 것들이다.

김기춘, 우병우 들은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던 축들이다.

그러나 그 인간들이 하는 짓은, 인간의 짓이 아니었다.

그런 배움이라면 쓰레기만도 못한 것이다.

 

모든 것이 애매합니다만 사형에 처해 주십시오.(144)

 

이런 새끼가 검사라고...

 

서울 고법에서 이상한 지하 통로로 나를 데려 가더라고요.

판사가 재판장에 혼자 있어.

내가 어리둥절한데,

선고 재판 하겠다.

이러는 거야.

재판장님, 왜 비밀 재판을 하느냐.

내가 자네에게 긴히 할 얘기도 있고,

판사님이 증거 없다고 하지 않았나요.

어떻게 된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다.(213)

 

이런 새끼가 판사다.

 

행정부를 장악한 독재자는 처음에는 사법부가 무죄판결하는 것에 약이 올랐다.

그러나 유신이 오래 지속되자,

어느 법관, 검사도 두들겨맞고 구속되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순치되서 독재자의 개들이 되었다.

김기춘, 우병우, 최재경, 조대환... 검사출신들이 권력의 옆에서 꼬리를 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피해자들은 인생을 잃었다.

 

아버지, 이제 내하고 인연 끊읍시다.

아버지는 내 인생에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얘가 경찰 시험에 필기까지 합격을 했는데 면접에서 떨어진거지.

필기도 붙고 만능 스포츠맨이고 떨어질 이유가 없어.

나한테 그래놓고 올라가서 한 달도 안 돼서 한강에서 투신자살한 거야.(220)

 

아...

얼마나 비루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었을까.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피해자가 된 사람들...

국가보안법이 만든 죄없는 죄수들...

 

이제라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지길 빈다.

이런 책을 쓴 은유에게 희망을 얻어 간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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