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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ㅣ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2년 전에 고베-오사카-교토-나라 지방을 3박4일로 후다닥 다녀온 적이 있다.
패키지 여행을 따라 가는 거라서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다녀와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혀 사전준비없이 다녀왔던 기억이 아쉽다.
올해 아이들과 수학여행으로 다시 이 일대를 돌아볼 일이 있는데,
3월이 되면 또 바빠질 거라 미리 책을 찾아 본다.
교토는 한국의 경주, 중국의 시안과 같은 고도이다.
그렇지만, 교토를 다녀와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본의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인데,
서울대학교에 '일어일문학과'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를 가졌지,
새겨 지닐만한 가치로 남아이씨 않았던 모양이다.
가카께서 '한국근,현대사'라는 교과목을 폐지시키고 새로 '동아시아사'를 편찬하신 바,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노릇이긴 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무지가 사무치게 느껴진다.
속지에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저자의 육필이 남아있으나,
마치 박정희 시대의 삐뚜른 현판처럼 글씨가 좀 안쓰러울 뿐이고.. ㅋ
책의 서두에 시대별 유적지를 명기한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아스카, 나라(6-8세기), 헤이안(8-12세기), 가마쿠라(12-14세기), 무로마치(14-16세기), 에도(17-19세기) 시대
그 시대 구분은 마치 한국사의 신라시대, 고려시대, 고려말, 조선초기, 조선후기와도 대충 드러맞는데,
그 당시 건너지 못한 현해탄이 두 나라의 역사를 이만큼 갈라 놓았다.
한반도가 대륙의 열풍에 열병을 앓을 때, 그들의 문화는 차곡차곡 쌓여 남을 수 있었던 점은 부럽기도 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극찬했다는 목조미륵반가상.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28)
백제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발가락까지 꼬았다~'면서 비교하는 작가는 귀엽다.
조선이 그 멋진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도 한자를 고수했듯이,
일본에 건너간 백제 문화를 굳이 국적을 따지거나 우열을 따지려 드는 일은 참 '의미없다'.
후시미 이나리 대사에서 센본토리이(千本鳥居)를 보면서 일본의 상징색, 금적색을 설명한 부분은 멋지다.
긴아카라 불리는 금적색.
일장기의 히노마루의 빛깔이기도 한 금적색은 일본에서 기본적으로 신성함의 빛이다.
빨간 아카몬(赤門)에는 권위 또는 존귀함이 서려있다.
이 금적색 속에는 밝고 화사한 화려함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느끼는 화려함이란 왠지 축제 분위기의 감성적 희열이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라 비장감 같은 것이다.
왜 그런 느낌이 다가왔을까.
핏빛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선혈이 낭자한 핏빛.
근세 후시미성 전투에서 장수이하 2천명이 할복했고 그때 복도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나무판은 33간당 옆의 절을 지으면서 천장 목재로 사용했고, 이는 치텐조(피의 천장)이란 명물이 되었다.
우리같으면 당연히 불태워 없애버렸을 핏빛을 비장미로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
그런 것을 지워버리지 않고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금적색이 상징하는 바를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144)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워낙 유명한 명승지여서 설명이 충분히 잘 붙었다.
오토와 폭포의 세 가지 기원 중 두 가지만 선택하라는 교훈도 재미있다.
인생에서 가장 희망 사항인 지혜, 연애, 장수 중 둘만 택하라는 것은
하나만 택하라는 잔인함과, 모두 준다는 두루뭉술함을 넘어서
인생은 모든 것을 누릴 수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어서 그러하다.
뵤도인(평등원)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는데,
그 경치 또한 아름답지만, 운중공양보살상이라든지,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상징이라는 등꽃 피는 전경 등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10엔 동전의 문양이 된 평등원...
그 옆의 우토로마을까지 설명하는 깊이, 이런 것이 유홍준의 장점이다.
결국 평등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엔 평등원이라는 건축이 생겼고,
평등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현대사회엔 오히려 우토로 마을의 불평등이 생겼던 것.
나는 민주나 평등의 개념이 없었던 천년 전에 어떻게 그 이름을 지었을까 신기했는데,
그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평등이란 서로 개성이 다른 개성이 함께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평등입니다."(296)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고찰에서도 이런 것이 나왔다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육바라밀사의 초상조각 중 압권은 역시 '공야 상인 입상'이다.
깡마른 체구에 남루한 옷을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한 손엔 사슴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몸에 달아맨 바라를 치는 나무채를 쥐고 있다.
반쯤 뜬 눈은 무심한 표정인데 나무아미타불을 반복적으로 염불하는 그의 입에선
작은 화불이 줄지어 나오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거룩한 모습의 초상조각이 아니라 유행승으로 거리에 나선 스님의 도덕과 실천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309)
언어에서 부처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승려상이라니.... 굉장한 상상력이다.
이 책을 보면서 신라나 고려 불교 미술에 대하여는 감탄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일본의 문화가 마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스스로를 반성하였다.
오히려 신라나 조선의 불상이 개성 없이 밋밋한 반면,
일본의 조각상들은 어찌 그리도 박진감 넘치는 핍진함을 잘 살려냈던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표지가 된 평등원(뵤도인)이나 운중공양보살상 등을 보면,
어느 나라의 예술이든 상황이 다를 뿐, 그 미적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중국의 예술적 가치를 한반도에서 잘 살려 재창조 하였고,
그 조각이나 도예를 본받으려 애썼던 것이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근대를 거치면서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문화재를 팔아치운 불쌍한 민족의 역사도 하나의 역사이고,
일본의 문화 유산 역시 소중한 역사의 하나임을 새삼 배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유명한 말이 등장하지만,
유홍준의 가치는 디테일에 있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이 그의 힘이다.
몇 가지 오타가 보여... 적어 둔다.
75. 봄철이면 은목서향기가 아주 향기롭겠지... 은목서는 가을에 짙은 향을 풍기는 나무로 향기가 천리를 간다 하여 '천리향'이라 부른다.
138. 후시미 이나리 신사(大社)... 굉장한 규모로 정식 명칭도 대사라고 하는데... 굳이 한자 대사 앞에 '신사'라고 적은 것은 수정했으면 한다.
150-151. 의상대사의 법성계... '법성게'가 맞을 것이다. 한자도 (戒 경계할 계)가 아니라 '(偈 쉴 게)'로 적는 것이 옳다.
293. 긴바야시... 간바야시를 그림에서 '긴바야시'라고 오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