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이들에게도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 소년범들의 아버지 천종호 판사가 우리 사회에 던지는 따뜻한 메시지
천종호 지음 / 우리학교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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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있어 좋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런데 아빠는 왜 있지?(초딩의 글)

 

아이가 좋은 대학 가려면,

할아버지의 재력, 엄마의 정보력, 아빠의 무관심이 필수란다.

 

아이들을 들들 볶아서 대학을 보낸다고

삶이 행복해지진 않는데,

어찌된 일일까?

 

사회가 갈수록 신자유주의 물결로 양극화가 심화되고,

빈자들을 위한 보호막은 벗겨진다.

가난한 가정의 아버지들은 더욱 심각하게 고통받고,

아이들에게 심한 충격을 안겨준다.

 

문제 아이들의 배후에는 반드시 문제 가정, 문제 부모, 특히 문제 아버지가 있다.

 

인간의 숲과 자연의 숲은 비슷한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차이는 '간벌' 여부에 있다.

자연의 숲에서는 한 나무를 거목으로 만들기 위해 병단 나무나 거목이 될 만한 재목이 아닌 나무를 희생시키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의 숲은 간벌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도 안 된다.(작가의 글, 36)

 

아이들이 문제를 일으키면 솎아내려 들기 쉽다.

중학교 아이들의 문제는 '퇴학'을 못하는 데 있다는 말을 교사가 쉽게 한다.

진짜 문제는 '의무교육'이 아니라, '의무교육 이후의 시스템 방관'에 있다.

국가가 책임져야 할 일을 방기하고, 정치적 놀음만 일삼아 현실이 이렇게 된 것이다.

 

그대는 활, 그리고 그대의 아이들은 마치 살아있는 화살처럼

그대로부터 쏘아져 앞으로 나아간다.

그래서 활쏘는 자인 신은

무한의 길 위에 과녁을 겨누고,

자신의 화살이 보다 빨리 멀리 날아가도록 온 힘을 다해

그대를 당겨 구부리는 것이다.

그대는 활 쏘는 이의 손에 구부러짐을 기뻐하라.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사랑하는 만큼, 흔들리지 않는 활 또한 사랑하기에...(칼릴 지브란, 93)

 

휘어지는 활은 고통스럽다.

활은 부모이자 교사이자 판사이자, 보호자이다.

고통스럽다고 화살을 버려서는 안 된다는 지브란의 이야기는 매섭고 쓰다.

 

좋은 추억,

특히 어린 시절 가족 간의 아름다운 추억만큼 귀하고 강력하며 아이의 앞날에 유익한 것은 업다는 사실을 명심하라.

사람들은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말한다.

그러나 어린 시절부터 간직한 아름답고 신성한 추억만 한 교육은 없을 것이다.

마음 속에 아름다운 추억이 하나라도 남아있는 사람은 악에 빠지지 않을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추억들을 많이 가지고 인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삶이 끝나는 날까지 안전할 것이다.(118, 도스토예프스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

 

어린 시절, 삶의 설계도가 구축되는 시기,

손을 잡고 걸어줄 부모의 존재는 참으로 소중하다.

요즘처럼 많은 수의 아이들이 풍족한 어린 시절을 누리는 현실에서,

지나치게 가난하거나 결핍된 환경, 독이 되는 언어와 폭력 등은 아이들에게 더 큰 상처가 된다.

그들에게 부모가 없는 자리를 조금이라도 대신해줄 수 있는

사회적 '가정'을 위해 천종호 판사는 노력하는 사람이다.

허나, 아직도 입양에는 차갑고,

자기 자식에 올인해야 하는 각개 격파의 한국에서는 사회적 가정을 꾸리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고,

갈수록 복지에 눈 감는 정치적 환경은 청소년에게 더욱 가혹할 따름이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135, 쉼보르스카)

 

소외된 아이들의 마음에 따뜻한 온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는 사회적 장치가 절실하다.

그래야 우리 사회가 진정 소년들을 위한다고 할 수 있지 않겠나.

청소년회복센터장과 같이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할 짐을 대신 지고 있는 분들에게

존경과 감사의 박수를...(147)

 

소외된 아이들도 온기 속에서 돌아오기도 하고,

비행을 덜 저지르기도 할 것이다.

이론상으로는 옳지만, 내가 먼저 선뜻 손을 내밀기는 쉽지 않다.

 

'경계선 지적 기능'을 가진 소년들처럼,

복지가 필요한 부분도 크다.

돌봐야 할 아이들의 부모 역시 복지적 차원에서 가려야 할 빗물도 많다.

 

오늘 그늘에서 쉴 수 있는 것은

오래 전에 나무를 심어 놓았기 때문.(179)

 

우리 사회가 이렇게 힘든 것은,

힘겨운 현대사를 관통해 오면서 나무를 심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제라도 심을 나무들이 많다.

결국은 돈 문제지만,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정치적 문제가 결국 돈을 좌우한다.

정치란 곧 돈을 어디에 쓸 것인지의 우선순위를 매기기 위한 작업이니깐.

 

이 세상이 창조되던 그 아침 나는 아버지와 함께 춤을 추었다.

내가 베들레헴에 태어날 때에도 하늘의 춤을 추었다.

춤춰라 어디서든지, 힘차게 멋있게 춤춰라.

나는 춤의 왕, 너 어디 있든지 나는 춤 속에 너 인도하련다.(201, 찬송가)

 

종교의 공통점은 내가 곧 '주인'이라는 것이다.

세상이 아무리 가혹해도, 춤추기 위하여 태어난 삶이니

즐겁게 춤추라는 듯...

그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분들이 있어 감사하다.

 

폭력과 절도 등의 범행이나

심지어 강간, 성매매, 살해까지 아이들의 비행은 끝이 없다.

세상이 말세여서가 아니라,

그들을 안아줄 아버지의 품이 부족해서라는 것이 호통판사의 판단이다.

 

관심과 반성이 필요함을 가르치는

죽비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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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가 인생 최후에 남긴 유서
프리모 레비 지음, 이소영 옮김 / 돌베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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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개인에게 숱한 생채기의 기억을 남긴다.

그 기억들 중에서 너무도 굵어서 누구나 알 만한 것들도 있고,

한 때의 소란으로 묻혀져가는 것들도 있다.

 

이 책은 프리모 레비가 수용소 안에서 겪은 일들에 대하여,

도대체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인간의 조건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며 써낸 책이다.

그의 마지막 남긴 유서가 되어버렸다고 한다.

 

그때 이후, 불확실한 시간에

고통은 되돌아온다.

그리고 나의 섬뜩한 이야기가 말해질 때까지

내 안의 심장은 불타리라.(새뮤얼 테일러 콜리지, 늙은 뱃사람의 노래 중)

 

트라우마라고 한다.

강력한 외상 후에 남는 정신적 이상 증세.

도대체 그들은 왜 그렇게 잔인하게 유태인을 학대하고 죽였을까.

 

어차피 죽일 것이었는데... 굴욕감을 주고 잔혹행위를 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요.

희생자는 죽기 이전에 인간 이하로 비하되어야 했다.

죽이는 자가 자신의 죄의 무게를 덜 느끼게끔.

이것이 쓸데없는 폭력의 유일한 유용성이라고...(152)

 

적은 죽어야 할 뿐만 아니라 고통 속에 죽어야 하는 것(145)

 

그 당시의 독일인들은 대부분 비겁하게 나치에 협력했다.

 

그들은 거의 대부분이 장님에 귀머거리, 벙어리였다.

잔혹한 짐승의 핵 주위에 있는 불구의 무리였다.(206)

 

독일 국민 대다수는 정신적 나태함, 근시안적 타산, 어리석음, 국민적 자부심 때문에 히틀러의 '아름다운 말들'을 받아들였다.

바로 그런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책임도 있었다는 사실은 분명히 해두어야 할 것이다.(252)

 

비정상회담이란 프로그램에 독일 청년이 나오는데,

그 청년은 상당히 똑똑하며 올곧은 사고를 가지고 있어 보인다.

그러나 현재의 독일에도 그렇지 않은 반동주의자가 있을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비극을 되풀이한다.

하물며... 국민에게 그런 비극의 역사를 가르치지도 않는 일본이야 말할 것도 없다.

 

많은 학생들은 언론과 자신의 교사들이 말하는 '내탓'에 대해 진절머리가 난다고 잘라 말하기도 한다.(232)

 

현실 속 인간들은 이런 것이다.

 

이 책은 현실보다 고찰을 더 많이 담고 있으며,

소급적인 과거의 일들보다는 오늘날의 상황에 더 기꺼이 머무른다.

게다가 이 책의 자료들은 자발적으로든 아니든 당시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의 협력으로 형성된

많은 작품들에 의해 확고한 실체를 갖게 되었다.(38)

 

그의 대표작 '이것이 인간인가'에는 당시의 기록으로 가득하다.

이 책은 그 책이 나온 후 변화된 상황을 모두 고려하면서

독자의 서평이나 편지들까지 엮어 펴낸 고찰들이어서 생생한 현실감은 떨어지는 감이 있다.

 

우리 생환자들은 우리의 경험을 잘 이해했으며, 또 남들에게 잘 이해시킬 수 있었던가?

보통 '이해하다'의 의미는 '단순화시키다'란 말과 일치한다.(39)

 

아우슈비츠라는 공포의 공간에서는 나치라는 악과 유대인이라는 피해자만이 등장하는 것 같지만,

그건 지나친 단순화라는 것이다.

독일인 중에서도 간혹 인정을 베푼 경우도 있고, 같은 유대인 포로중에서도 잔인하기 그지없는 자도 있었다.

단순화는 그렇게 많은 부분을 잘라먹는다.

 

내가 아우슈비츠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느냐고?

나의 원칙은 이것이었다.

첫째도 둘째도 그리고 셋째도 내가 먼저라는 것.

그 다음은 아무것도 없다.

그 다음은 다시 나, 그리고 나서 다른 모든 사람들이라는 것이다.(두려움의 포로들, 빅터골란츠)

 

살아남은 자들 역시 어떻게든 죽지 않기 위해 줄을 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해되기 어렵다.

레비는 그것을 이렇게 적는다.

 

우리 생존자들은 각자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예외적인 경우이다.

과거를 쫓아버리기 위하여 우리 자신은 이 사실을 잊어버리려 애쓰는 것.(125)

 

독일인들 역시 악을 행한다는 의미보다는, '잘된 노동'에 열중했을 것이다.

 

잘된 노동에 대한 애정은 굉장히 애매모호한 덕목이다.

나는 나의 자유의지로 했던 모든 일을 할 수있는 한 최대로 잘해야 했다. 나는 그런 사람이다.(149)

 

 

오늘날의 한국에서 역시,

가라앉은 자들에 대하여, 돌아오지 못한 그들에 대하여, 침묵을 강요하는 현실을 목도한다.

 

어떤 일도 철저히 조사된 바 없고,

모든 일이 철저히 은폐되고 함구된 채로 1년이 흘렀다.

 

가라앉은 진실을 어떻게 밝혀야 하는 것인지,

과연 진실이 수면 위로 떠오를 날이 있기나 할 것인지,

수용소 안의 유대인들이 '그날'을 신뢰할 수 없었던 것처럼,

막막하기만 한 현실을... 어찌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자들도 있는데,

1주기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힘든

어떤 이름으로도 이해할 수 없었던 작년의 사건과 작금의 현실을 보면서...

가슴만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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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2 - 문종에서 연산군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2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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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2권에서는 문종에서 연산군까지를 다룬다.

3권이 선조까지고, 4권이 효종까지라 하니 그 다음은 숙영정조의 시대가 나올 것이고, 이후는 개화기까지 다루어 질 모양이다.

한 여섯 권은 나올 듯 싶다.

 

시도는 신선하지만,

조선의 '그날'이 과연 현대에 조망할 가치가 얼마나 클는지...

이 책에서 패널들이 이야기하듯, 실록은 결국 왕조 사관에 물든

수직 질서의 성리학자들이 편집해낸 승자의 기록일진대,

그 내용에서 얻을 것이 무엇인지는 의문일 수밖에 없다.

 

외려, 한국 근현대사의 '그날'을 다룬다면,

뭐, 지금 이 시대에 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얼마나 올바른 역사교육이 되랴 싶다.

3.1운동의 그날,

해방의 그날,

남북 분단의 시발이 되던 48년 두 정부의 수립의 그날,

김구가 죽던 그날,

그리고 동족상잔이 시작된 그날,

이승만이 도망가던 그날,

박정희가 총맞던 그날,

전두환이 광주를 짓밟던 그날,

노태우에게 정권을 물려주려다 저항에 부딪친 그날과 6.29의 그날, 그리고 부정선거로 정권을 잡던 그날.

삼풍백화점이, 세월호가, 성수대교가, 서해페리호가, 천안함이 가라앉고 무너지고 붕괴되던 그날,

민주 세력이 군부에 기어들어가던 민자당의 그날,

그리고 최초의 민주 정부가 들어선 그날,

대통령을 탄핵하던 그날...

 

정말 공영방송이라면... 해야할 방송은 너무나도 많다.

눈 감고 조선의 뒷이야기를 씹어대는 패널들을 보노라면... 이 시대의 한계를 느낀다.

그러고 보면, '대통령의 시간'이라는 편집된 자료의 원조가 조선왕조 실록이 아닌가 싶다.

그 책을 읽을 자신은 없으나(혈압이 높은 관계로) 노유진이 읽어주는 것을 들어 보면,

조선의 실록 편찬 체계와 상당히 비슷한 길을 걸어온 것으로 보인다.

 

실록은 기본적으로 사초를 바탕으로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실록이 편집된 자료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기록된 사초를 전부 싣는 게 아니라 그 중에서 후대에 남길 만한 내용들만 뽑아 쓴다는 거죠. 중종반정 이후에 편찬된 ‘연산군일기’는 아무래도 불리한 내용을 많이 담고 있는 것은 분명할 겁니다. 그래야 반정의 명분이 사니까요. 따라서 연산군의 패륜적인 행위라든가 국고탕진, 사치, 향락 이런 것은 아주 작은 일이라도 넣고, 잘한 내용은 오히려 빠뜨렸을 가능성이 있죠. (207)

 

왕이 후원에서 나인들을 거느리고 종일 희롱하고 놀며 노래하고 춤추었는데, 이날은 곧 폐비 윤씨의 기일이었다. 왕은 또 발가벗고 교합하기를 즐겨 비록 많은 사람이 있는 데서도 피하지 않았다. (연산군일기, 214)

 

원래 패자는 말이 없다.

그래서 의자왕은 있지도 않은 삼천 궁녀와 뒹굴던 비정상적 임금으로

경순왕은 전복닮은 포석정에서 계집질이나 하다가 나라를 말아먹은 맛이 간 임금으로 그렸던 모양이다.

그래도 연산군의 실록은 참으로 하품난다. 굳이 저런 비루한 표현을 써야하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

 

계유정난은 ‘편안히할 정(靖)’에 ‘어려울 난(難)’을 씁니다. 난을 편안케 했다... 철저하게 승리자 쪽에서 붙인 용어죠.(43)

 

이렇게 용어 하나도 모두 날조다.

정치적인 난(政亂)이라고 하면 모를까, 어려움을 편안하게 한 것이 조카를 죽이고 왕이 된 것이라니, 한심하다.

그런 것을 조선의 기록의 철저함이라고 떠받드는 자들을 보면, 아직도 왕조국가에 사나 싶다.

하긴, 민주 공화국과 한국은행의 이름 아래 '임금, 임금의 스승들, 임금을 위해 싸운 장군, 임금 스스의 엄마'를

초상으로 쓰고 있는 정체 불명의 나라이니 기본이 모자라도 한참 모자란다.

 

문종은 부치지 못한 편지같은 느낌이에요.

우리 역사에 세종이라는 보름달이 있죠. 문종은 그 보름달이 서서히 기울어진 그믐달의 이미지로 연상됩니다.

그런데 사실은 문종이 세종과 보름달을 같이 만들었단 거죠.(38)

 

이 책이 주는 재미는 이런 것들이다.

우리가 태정태세문단세를 국사 시간에 배울 때,

태조의 업적, 태종과 세종, 세조의 업적은 배워도,

정종과 문종은 그냥 패쓰하기 쉽다. 단종은 뭐 드라마 주인공인 어린이고...

문종을 재조명하는 것도 좋지만, 이런 문학적 비유를 통하여 강하게 보여주는 기법이 좋다.

 

김종서의 아들과 수양대군의 딸의 사랑?

세조의 눈물?

역사의 승자들이 정사를 꾸밀 때 그들만의 허구를 만들 듯이

패자들 역시 다른 방법으로, 즉 전설 내지는 야담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게 아닐까 싶어요.

금계필담의 이야기가 그 대표죠.(70)

 

드라마로도 나온 모양인데, 이렇게 자료를 한번 해석해 주는 것도 매력이다.

이 책에는 수능특강 강사도 등장한다. 족집게 강사.

 

훈구파는 조선 건국에 많은 역할을 했던 사람들인데,

이들의 영향력이 너무 강하다 보니 성종은 고려말 온건파 사대부를 등용합니다.

최초로 사림파를 등용한 것이죠. 성종은 최초의 사림 등용, 별표 다섯 개.(177)

 

역사란 지나간 이야기들이므로 암기할 것도 필요한 법.

그리고 그 강사는 여성이어서 이렇게 여성의 눈으로 해석하는 것도 신선하다.

 

폐비 윤씨는 폐비 당하기 전날 생일이었대요.

그런데 남편이 그날 다른 후궁의 처소에 있으니,

산후우울증이 있는데 그러니 속상했을 거 같아요.(184)

 

남성의 사관으로 쓴 실록에 어찌 산후 우울증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으랴.

특히 조선 중기를 거치면서 여성의 지위는 급전직하하는 계기를 갖게 되었으니,

그것을 성리학적 이데올로기의 공고화와 연결짓고,

어우동과 폐비의 케이스를 다루는 것도 재미있다.

 

인수대비가 ‘내훈’을 쓰고 성리학적 이데올로기로 나라를 만들어가던 그때,

어우동처럼 방탕한 여인은 죽음(1480)으로 일벌백계하며,

폐비 윤씨가 사약을 받은 게 1482년.

결국 성리학 이념이 강화되고 여성다운 여성의 기준을 세우는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

둘 다 시범 케이스로 과시적 처벌을 받은 것 같네요.(186)

 

왕조 사회는 무섭다.

말로만 법치지 사실은 그 법의 입법, 사법, 행정의 모든 권한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다.

 

오늘자 뉴스에 대통령을 처형... 운운하는 개인간 통화를 적발하여 영장을 청구했다는 이야기를 보았다.

왕조 사회의 그림자가 드리운 느낌이 가득했다.

 

아직도 왕조 사회의 그날들은 이어지는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한 번도 민중의 힘으로 정부를 수립했던 적 없었으니 그 자유의 소중함을 배우려면

아직도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187. 인순대비 - 인수대비의 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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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조선 편 1 - 태조에서 세종까지 역사저널 그날 조선편 1
역사저널 그날 제작팀 지음 / 민음사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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텔레비전에서 역사를 다루는 것은 양면성을 가진다.

한편 공정하게 어떤 사안을 다룰 수 있어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편으로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치장하거나 패쓰할 수도 있는 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시도가 신선하다.

전문가인 역사학자들만 나와서 떠든다든지 하면,

흥미를 반감시킬 수도 있는 것인데,

류근같은 시인이나 전진석 같은 작가들이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토크쇼의 분위기를 낼 수 있게 진행이 된다.

 

물론 방송은 대본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다.

돌발 행동이나 애드리브는 편집될 것이고,

전체적인 흐름에 방해가 되면 또 잘릴 것이다.

 

이 책에서는 조선 초기의 그날들이 등장한다.

시도가 새로운 만큼 읽기도 쉽고 재미있다.

 

정도전이 이성계를 만난 날,

이성계가 왕이 되던 날,

왕자의 난이 나던 날,

양녕이 폐위된 날

대마도 정벌

세종이 집현전 열던 날

조선의 세금 투표하던 날

창덕궁 가던 날...

 

실록이라는 책을 세계적 유산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디까지나 승자의 기록이라는 면에서,

그리고 '수정실록'이 등장할 정도로 권력의 최첨단에서 쓰여진 책이라는 점에서,

그것은 '왕조 사관'이 철저하게 점철된 책으로 읽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 프로그램의 주된 내용은

주로 실록에서 그 근거를 뽑아낸 정사에 가깝다.

물론 토크쇼인 만큼 이야기가 오가면서 의미를 되새기기도 하지만,

세종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은

글쎄다.

이전의 태조, 태종의 폭거에 비하자면

너무도 성군의 이미지를 여과없이 홍보하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모든 것을 왕에게 맡겨둘 수는 없다.

능력있고 깨끗한 사람이 권력을 장악해서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해야한다.(65)

 

이런 것이 정승 정치를 만든 정도전의 설계도였다.

그러나, 정도전마저도 내친 이후 조선은 왕권 강화라는 측면에서 그런 민본정치를 이루기는 쉽지 않았을 터이다.

정도전의 혁신적 사상은 왕도 정치를 넘어 입헌군주제를 추구하는 면에 가깝기도 하다.

 

당시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73)

 

이렇게 조선 초기를 표현할 정도로 위민 의식과 책임 의식이 가득한

제도적 장치를 만들려던 시대 의식을 강조하는 점도 이 책을 읽는 재미다.

조선 전체가 아니라, 그런 법 정신을 강조하던 시대에 대한 예찬.

 

적장자가 왕위를 이은 경우가 문단연인현숙순종... 7명 뿐이었단다.

27명의 임금 중 태조를 제외하면 7/26이었으니, 27%에 불과한 그것을 원칙이라고 하기도 쑥스럽다.

 

황희 정승은

태조때는 고려왕조 편에 서고

태종때는 이방석 편에 서고

세종때는 양녕 편에 섰는데...

뭐 이건 조선판 펠레의 저주예요.

이렇게 촉이 안 좋을 수가 없어요. 매번 다 틀립니다.(185)

 

세종은 INTJ, 태종은 ESTP 이렇게 MBTI 유형을 나누는 것도 재미있다.

 

세종이 과학자 형으로 분류됐는데요.

토론에 그리 적합하지 않았다는 게 의외의 결과였어요.

화법이 참 중요한 거네요.

화법만으로도 소통의 천재처럼 보일 수도 있다니 놀랍습니다.(195)

 

신선한 분석은 재미있지만,

지나친 예찬은 글쎄요다.

 

세종은 박이별이다. 박이별은 북극성입니다.

세종대왕은 햇귀다. 햇귀는 해돋이가 시작될 때 제일 처음 비치는 햇빛이래요.

세종대왕은 우리의 아토다. 아토는 선물의 순우리말입니다.

세종대왕은 깊은 샘물을 판 나라님이었다. (240)

 

예찬일색이다.

세종의 업적이야 숱하게 많아서 그럴 수 있다 볼 수도 있지만,

대한민국의 지폐에 왕조 국가의 수장의 실려있는 현실도 짚지 않고

예찬만 하는 프로그램이어서 별 하나는 뺐다.

 

암튼 역사를 지루하게 사건 중심으로 나열하는 여느 책과는 달리,

토크쇼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그것도 흥미로운 사건의 당일을 중심으로

핵심 인물들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새로운 형식이어서 신선한 프로그램인 점은 높이 사야 한다.

 

다만, 역사라는 것은 무조건 공부할 것이 아니라,

<사관>에 따라서 그 내용이 천차만별일 수 있음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프로그램이 되길 바란다.

 

 

 

 

48. 국새를 청사 위에 놓으니... 여기서 청사라 함은... 관청의 건물 정도이지 싶은데, 廳事보다는 廳舍가 아닐까 생각한다.

 

265. 전직석 작가... ㅋㅋ 자기네 식구를 틀렸으니 자책골인 셈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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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5-03-1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초기에는 열심히 시청했는데 언젠가부터 생각도 못하고 시간을 넘기기 일쑤네요. 책으로 만나면 토크의 재미는 덜하지 않을까 싶은데...

글샘 2015-03-20 21:57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네요~
맞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는 것과는 다른 독서가 되죠.
그래도 책은 다시 볼 수 있으니 좋더군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3 - 교토의 역사 “오늘의 교토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품절


2년 전에 고베-오사카-교토-나라 지방을 3박4일로 후다닥 다녀온 적이 있다.

패키지 여행을 따라 가는 거라서 전혀 공부를 하지 않고 다녀와서

지리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전혀 사전준비없이 다녀왔던 기억이 아쉽다.

 

올해 아이들과 수학여행으로 다시 이 일대를 돌아볼 일이 있는데,

3월이 되면 또 바빠질 거라 미리 책을 찾아 본다.

 

교토는 한국의 경주, 중국의 시안과 같은 고도이다.

그렇지만, 교토를 다녀와서도 기억에 남는 것이 없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일본의 역사에 무지하기 때문인데,

서울대학교에 '일어일문학과'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이라는 나라는 우리 뇌리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역사를 가졌지,

새겨 지닐만한 가치로 남아이씨 않았던 모양이다.

 

가카께서 '한국근,현대사'라는 교과목을 폐지시키고 새로 '동아시아사'를 편찬하신 바,

중국과 일본의 역사에 관심을 가질 노릇이긴 한데,

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무지가 사무치게 느껴진다.

 

속지에 '역사는 유물을 낳고, 유물은 역사를 증언한다'는 저자의 육필이 남아있으나,

마치 박정희 시대의 삐뚜른 현판처럼 글씨가 좀 안쓰러울 뿐이고.. ㅋ

 

책의 서두에 시대별 유적지를 명기한 것은 참 잘 한 일이다.

아스카, 나라(6-8세기), 헤이안(8-12세기), 가마쿠라(12-14세기), 무로마치(14-16세기), 에도(17-19세기) 시대

그 시대 구분은 마치 한국사의 신라시대, 고려시대, 고려말, 조선초기, 조선후기와도 대충 드러맞는데,

그 당시 건너지 못한 현해탄이 두 나라의 역사를 이만큼 갈라 놓았다.

한반도가 대륙의 열풍에 열병을 앓을 때, 그들의 문화는 차곡차곡 쌓여 남을 수 있었던 점은 부럽기도 하다.

 

독일의 실존주의 철학자 칼 야스퍼스가 극찬했다는 목조미륵반가상.

 

이 불상만큼 인간실존의 진실로 평화로운 모습을 구현한 예술품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 불상은 우리들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영원한 평화의 이상을 실로 남김없이 최고도로 표현하고 있습니다.(28)

 

 

 

 

백제의 금동미륵반가사유상과 '발가락까지 꼬았다~'면서 비교하는 작가는 귀엽다.

조선이 그 멋진 '훈민정음'을 만들어 놓고도 한자를 고수했듯이,

일본에 건너간 백제 문화를 굳이 국적을 따지거나 우열을 따지려 드는 일은 참 '의미없다'.

 

 

 

 

후시미 이나리 대사에서 센본토리이(千本鳥居)를 보면서 일본의 상징색, 금적색을 설명한 부분은 멋지다.

 

 

긴아카라 불리는 금적색.

 

일장기의 히노마루의 빛깔이기도 한 금적색은 일본에서 기본적으로 신성함의 빛이다.

빨간 아카몬(赤門)에는 권위 또는 존귀함이 서려있다.

이 금적색 속에는 밝고 화사한 화려함도 있다.

그러나 내가 여기서 느끼는 화려함이란 왠지 축제 분위기의 감성적 희열이나 해방 같은 것이 아니라 비장감 같은 것이다.

왜 그런 느낌이 다가왔을까.

핏빛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선혈이 낭자한 핏빛.

근세 후시미성 전투에서 장수이하 2천명이 할복했고 그때 복도는 핏빛으로 물들었다.

그 나무판은 33간당 옆의 절을 지으면서 천장 목재로 사용했고, 이는 치텐조(피의 천장)이란 명물이 되었다.

우리같으면 당연히 불태워 없애버렸을 핏빛을 비장미로 간직하고 있다는 얘기.

 

그런 것을 지워버리지 않고 안고 살아가는 이들의 정서를 생각하지 않고서는 금적색이 상징하는 바를 도저히 읽어낼 수 없다.(144)

 

 

 

 

 

기요미즈데라(청수사)는 워낙 유명한 명승지여서 설명이 충분히 잘 붙었다.

오토와 폭포의 세 가지 기원 중 두 가지만 선택하라는 교훈도 재미있다.

인생에서 가장 희망 사항인 지혜, 연애, 장수 중 둘만 택하라는 것은

하나만 택하라는 잔인함과, 모두 준다는 두루뭉술함을 넘어서

인생은 모든 것을 누릴 수없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어서 그러하다.

 

뵤도인(평등원)은 가장 가보고 싶은 곳이 되어버렸는데,

그 경치 또한 아름답지만, 운중공양보살상이라든지,

후지와라(藤原) 가문의 상징이라는 등꽃 피는 전경 등이 인상적이다.

일본의 10엔 동전의 문양이 된 평등원...

 

그 옆의 우토로마을까지 설명하는 깊이, 이런 것이 유홍준의 장점이다.

 

결국 평등이란 개념이 없던 시절엔 평등원이라는 건축이 생겼고,

평등을 이상으로 생각하는 현대사회엔 오히려 우토로 마을의 불평등이 생겼던 것.

나는 민주나 평등의 개념이 없었던 천년 전에 어떻게 그 이름을 지었을까 신기했는데,

그의미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평등이란 서로 개성이 다른 개성이 함께 있음을 말하는 것이죠. 그것이 평등입니다."(296)

 

서양에서 수입한 것이 아니라,

깊은 고찰에서도 이런 것이 나왔다는 것이 문화의 힘이다.

 

육바라밀사의 초상조각 중 압권은 역시 '공야 상인 입상'이다.

깡마른 체구에 남루한 옷을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한 손엔 사슴뿔 지팡이

다른 한 손엔 몸에 달아맨 바라를 치는 나무채를 쥐고 있다.

반쯤 뜬 눈은 무심한 표정인데 나무아미타불을 반복적으로 염불하는 그의 입에선

작은 화불이 줄지어 나오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거룩한 모습의 초상조각이 아니라 유행승으로 거리에 나선 스님의 도덕과 실천을 감동적으로 보여준다.(309)

 

 

 

언어에서 부처의 모습이 살아 움직이는 승려상이라니.... 굉장한 상상력이다.

 

이 책을 보면서 신라나 고려 불교 미술에 대하여는 감탄하면서,

알지도 못하는 일본의 문화가 마치 없는 것으로 여겼던 스스로를 반성하였다.

오히려 신라나 조선의 불상이 개성 없이 밋밋한 반면,

일본의 조각상들은 어찌 그리도 박진감 넘치는 핍진함을 잘 살려냈던지 새삼 감탄하게 된다.

 

 

이 책의 표지가 된 평등원(뵤도인)이나 운중공양보살상 등을 보면,

어느 나라의 예술이든 상황이 다를 뿐, 그 미적 가치를 훼손할 수는 없음을 느끼게 된다.

물론 중국의 예술적 가치를 한반도에서 잘 살려 재창조 하였고,

그 조각이나 도예를 본받으려 애썼던 것이 일본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근대를 거치면서 일신의 영달을 위하여 문화재를 팔아치운 불쌍한 민족의 역사도 하나의 역사이고,

일본의 문화 유산 역시 소중한 역사의 하나임을 새삼 배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유명한 말이 등장하지만,

유홍준의 가치는 디테일에 있다.

그만이 보여줄 수 있는 디테일이 그의 힘이다.

 

 

 

몇 가지 오타가 보여... 적어 둔다.

 

75. 봄철이면 은목서향기가 아주 향기롭겠지... 은목서는 가을에 짙은 향을 풍기는 나무로 향기가 천리를 간다 하여 '천리향'이라 부른다.

 

138. 후시미 이나리 신사(大社)... 굉장한 규모로 정식 명칭도 대사라고 하는데... 굳이 한자 대사 앞에 '신사'라고 적은 것은 수정했으면 한다.

 

150-151. 의상대사의 법성계... '법성게'가 맞을 것이다. 한자도 (戒 경계할 계)가 아니라 '(偈 쉴 게)'로 적는 것이 옳다.

 

293. 긴바야시... 간바야시를 그림에서 '긴바야시'라고 오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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