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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낙원 ㅣ 홍신 세계문학 11
존 밀턴 지음, 안덕주 옮김 / 홍신문화사 / 2012년 10월
평점 :
다락방의 미친 여자, 6장 ‘밀턴의 악령’ 편에 나온 내용과 엮어서 보니 새롭다. 그 열매를 먹기 전부터 원래 영민하고 힘센 이브!
제9편에서 사탄이 구체적으로 간계를 실행에 옮긴다. 이브와 아담이 아침에 일을 나가는데 다른 장소로 헤어져 나가자고 이브가 제의하고 아담은 미리 주의받은 바가 있어 유혹의 위험성 때문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브는 “조심성이 없다든지 또는 믿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싫고 오히려 자기 힘을 시험하고 싶기도 해서, 따로 갈 것을 주장한다(385).”
실낙원,에서 악령이라고 규정된 뱀은 이브의 또다른 자아로, 숨어서 지혜의 과감한 목소리를 낸다. 신이 금지한 열매를 따먹은 이브는 언어도 갖는다. 여자는 뱀의 머리를 무서워하고 뱀은 여자의 발뒤꿈치를 노리게 되는 벌을 신은 내렸지만 요즘 여성들은 그 모양새를 다리에 타투로도 간직한다. 벌이라고? 그렇담 멋지게 받겠다!
나의 엄마는 첫생명을 잉태하고 꿈에서 예쁘고 작은 뱀 한 무리를 봤고 진통이 와서 병원으로 가는 도중엔 거의 정신을 잃을 뻔한 상황에서 한 무리의 잔별을 치마폭에 안았다고 말했다. 어느 해인가 꽤 오래전 시외 작은 숲으로 들어가는 오솔길 한가운데서 마주친, 잊을 수 없이 화려한 문양의 꽃뱀을 떠올리며…
영국 신흥 중산계급 부유한 공증인의 아들로 런던에서 태어난 존 밀턴(1608-1674)
실낙원,을 구상한 건 청년시절이었으나 실제로 쓰기 시작은 50세, 56세에 완성한다. 당시의 타락한 양심과 부패한 종교계에 경종을 울려 구원의 목소리로 작용했다는 평을 듣는다. 밀턴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계기로 최초의 이혼론 ‘이혼에 관한 교리와 규율’을, 윤리적 자유를 주장한 논문들을 집필했다. 1652년 과로와 지나친 독서로 완전히 실명하고 겸허하게 은퇴한 후 재혼한 아내가 병사한 무렵 ‘실낙원’ 집필에 전념했다. 남성적 권위를 상징하는 라틴어에도 능통해 크롬웰의 라틴어 비서로 채용되었다. 국왕 처형에 대한 유럽 각국의 비난에 대해 ‘영국 국민을 위한 변명서’ 등을 라틴어로 써서 국왕 처형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12편 중 9편은 사탄의 유혹이 적극적으로 펼쳐지고 이브가 이성을 잃지 않은 채 조금은 망설이는 듯하나 그 유혹에 적극적으로 따라가는 장면이다. 주체적으로 유혹을 선택하여 지적 열망을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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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안내자여, 널 따르지 않았으면
무지 속에 있었으리라 너는 지혜의 길을 열어
접근하게 한다 그것이 숨어 있을 지라도.
그리고 어쩌면 나도 숨은 것 하늘은 높다
아득하다 그리고 아마 다른 걱정 때문에
우리의 위대한 금제자는 부단한 감시를
있을지도 모른다 주위에 많은 척 후들 두고서
마음 편히 그러나 아담에게는 어떻게
해야 하나 그에게 지금까지의 나의 변화를
알려 주고 완전한 행복을 그와 함께
나눌 것인가? 아니, 그러지 말고
우월한 지식을 같이 나눌 자 없이 내 것으로만
해둘까? 그래서 여성에게 부족한 것을
보충하고 더욱 그의 사랑을 이끌고
나를 더 한층 동등한 것으로 만들어 -
바람직한 일이지만 - 언젠가는 그보다
우월하게 할까? 저열해서야 무슨 자유일까?
- 제9편 429p
이브가 먹은 후 아담도 금단의 열매를 먹고 같이 신의 심판을 받지만 아담은 이브를 사랑하여 그런 것이라며 그 허물을 이브에게 돌린다. 신은 천사장 미카엘을 시켜 아담에게 미래의 일과 ‘여인의 씨’가 누구인가 이야기한다. 아담만을 불러 심판과 예언의 언어집행을 했다. 돌아온 아담을 보고 이브는 잠자다 깨어 “어디서 돌아오셨고 어디 가셨었는지 알겠나이다”라며 예지력을 발휘한다. “나의 성약의 씨(그리스도)가 모든 것을 회복하리라는 그런 은총”을 어머니 이브는 스스로 믿고, 또 그렇게 말한다. 아담은 여전히 그런 어머니 이브도 자신의 옆구리에서 나왔다고 자만한다. 그리고 둘은 천사가 이끄는 대로 동쪽 문, 벼랑을 내려가 아래 들판에 이른다.
아담과 이브는 신의 계율을 처음으로 어긴 사탄의 자식, 즉 죄와 죽음을 공유한 공동운명체다. 쾌락의 미각을 경험하고 심판받은 후엔 서로 헐뜯었으나 둘은 사랑을 본다. 둘이 에덴을 통과해 “쓸쓸이” 손잡고 가는 그 길이 어떤 길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아래 발췌문은 결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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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고개를 돌리고 낙원에 동쪽을
바라본다. 지금까지 저희 행복의 자리,
그 위엔 화염의 칼 휘둘리고, 문에는
무서운 얼굴과 불붙는 무기 가득하다
그들은 눈물이 저절로 흘렀으나 즉시 씻는다.
그들에게 안식의 땅을 택하도록 세계는 온통
그들 앞에 있다. 섭리는 그들의 안내자.
두 사람은 손에 손잡고 방랑의 발 무겁게
에덴을 통과해 쓸쓸이 길을 간다.
- 제12편 마지막, 589p
그때까지 그러한 쾌락을 풀밭이나 샘가에서 맛보지 못했으니. 드디어 포만해지자, 오래지 않아서 내 속에 이상한 변화를 지각할 수 있었고, 정신력에 이성이 생길 정도에 이르렀나이다. 언어도 곧 갖게 됐습니다. 비록 그 형체 그대로였지만, 그때 이래 높고 깊은 사색에 생각을 돌리고, 넓은 마음으로 하늘과 땅과 중천에 보이는 것 일체, 아름답고 좋은 것을 고찰했나이다. 그러나 아름답고 좋은 일체의 것이 그대의 거룩한 모습에, 미의 거룩한 광채 속에 결합되었음을 보았습니다. 어떤 고운 것도 그대와 동등하거나 버금가는 것 없나이다. 그래서 어쩌면 무례일 것이나, 부득이 이렇게 와서 만물의 군주, 우주의 여왕이라고 마땅히 선언된 그대를 보고 찬미하는 바이옵니다!" 악령의 교활한 뱀이 이렇게 말하니, 이브는 더욱 놀라, 별 생각하지 않고이렇게 대답한다. - P417
"뱀이여, 그대의 과찬들으니, 처음에 그대가 입증한 그 과실의 힘이 의심스럽도다. 그러나 말해라, 나무는 어디 있으며, 얼마나 멀리 있는지? 낙원 안에 자라는 하느님의 나무들 많아서 아직 우리가 모르는 것이 있도다. 우리가 선택할 것이 이렇게 풍부하기 때문에 과실의 태반은 손도 못댄 채, 썩지 않고 항상 매달려 있다. 후에 인간이 불어나서 그 공급을 즐기고, 많은 손의 도움으로 이 자연의 소산을 따 내릴 때까지." 그녀의 말에 간사한 뱀은 즐겁고 기뻐서 말한다. "여왕이여, 쉽게 갈 수 있는 길, 멀지 않습니다. 줄지어 있는 도금양나무 저쪽, 샘 바로 옆의평지, 꽃피는 몰약과 유향을 지나 한 작은 덤불이 있는 곳. 만일 저의 인도를 수락하신다면, 곧 거기로 모시오리다." 이브가 "자, 인도하라" 한다. 뱀이 인도하면서 재빨리 굽이치며 뒹굴며 굽은 것도 곧게 보이니, 재빠르게 재난으로 향해 간다. 희망에 볏이 서고 - P418
기쁨에 빛난다. 마치 도깨비불- 밤기운에 응결하고 한기에 둘러싸인 기름기 낀 수증기로 이루어진 그 불이 흔들리는 데에 따라 불붙어 화염을 일으키고 (왕왕 악령이 여기에 따른다고 한다) 사람 속이는 빛으로 떠돌며, 불타서 당황한 밤손님을 길 잘못 들게 해 웅덩이와 늪, 또는 가끔 못이나 연못으로 이끌어 거기에 휩쓸려 들어, 구원도 없이 사라지게 하는 것같이. 그렇게 무서운 뱀은 번쩍이며, 우리의 속기 쉬운 어머니, 이브를 기만해 모든 인간의 고난의 근원인 금단의 나무로 이끈다. 그걸 보고 그녀는 안내자에게 이렇게 말한다. "뱀이여, 우리가 여기에 오지 않았어야 할 것을. 여기에 열매 넘칠 정도이지만, 나에게는 열매 없는 곳. 열매의 효능 증명이 네 생각에 달린 것이지, 그런 결과의 원인이라니 참으로 기이하도다! 그러나 이 나무는 맛 보거나 손대선 안 되더라. 하나님은 그렇게 명령하시고, - P419
그 명령을 거룩한 목소리의 외딸로 하셨도다. 그 외엔 우리는 자신을 법률로 삼고, 이성이 우리의 율법이다." - P420
유혹자는 정열에 넘쳐 이렇게 시작한다. "아, 거룩하고, 슬기롭고, 지혜 주는 나무여, 지식의 어머니여! 이제 내 내부에 그대의 힘을 분명히 느낀다. 사물의 원인을 분별할 뿐만 아니라, 아무리 현명하게 보일지라도 지고한 작용의 자취를 더듬을 수 있는 힘을. 이 우주의 여왕이여! 그 엄한 죽음의 위협을 믿지 마십시오, 그대들 죽지 않으리니. 어찌 그러리오? 열매로? 저것은 지식에다 생명까지 주나이다. - P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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