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아영엄마 > 너의 곁으로

넌 알고 있니 난 말야 너의 하얀 웃음이 자꾸만 기억나 바보처럼 웃게 돼
나보다 먼저 내 눈이 니가 그리워 널 찾아 가는지 늘 너를 보게 돼
나는 익숙하지 않아서 누구도 사랑한 적 없어서 자꾸 커져가는 너를 지워보지만
너를 사랑해도 되겠니 우리 시작해도 되겠니
나의 상처 많은 가슴이 너를 울게 할지도 몰라
사랑 말로 할 줄 몰라서 너를 안을 줄을 몰라서
내가 줄 수 있는 마음만으로 널 지켜낼 용기없는 날 사랑해 주겠니

난 익숙해져 버렸어 너의 하얀 웃음이 아침을 깨우는 나의 삶이 되었어
난 기대하고 있었어 너의 하루에도 내가 있기를 더 바라게 됐어
가끔 너의 눈빛 속에서 나 아닌 누군가를 볼 때면
벼랑 끝에선 듯 절망이 날 깨웠어
너를 사랑해도 되겠니 우리 시작해도 되겠니
나의 상처 많은 가슴이 너를 울게 할지도 몰라
사랑 말로 할 줄 몰라서 너를 안을 줄을 몰라서
내가 줄 수 있는 마음만으로 널 지켜낼 용기없는 날 사랑해 주겠니

사랑 믿어본 적 없어서 사랑해본 적도 없어서
텅 빈 가슴으로 살아가던 날 가득히 넌 채우고 있어

너의 사랑으로....



" 너의 곁으로 - 조성모(파리의 연인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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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4-07-20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영엄마님, 스피커 이제 작동되요. 노래 참 좋으네요. 따라 불렀어요. 조성모 음성이 워낙 좋고 가사도 좋으네요. 고마워요^^
 
도둑에게 고소당한 알리바바 - 유쾌통쾌 시원한 법 이야기 초등학생이 처음 만나는 세상이야기 1
장수하늘소 지음, 김마늘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1월
평점 :
절판


희원이는 법조인을 장래희망으로 가지고 있다. 그건 내가 저를 가졌을 때 꾼 태몽을 들려준 후로 어느 정도 자리잡아갔다. 아주 커다란 개가 나의 손을 덥석 물고 웃고 있는 꿈을 꾸고, 그때의 기분이 하도 신비로와 대형 서점에 가서 꿈풀이책을 뒤져보았다. 커다란 개는 언변이 뛰어나고 장래에 법조계나 언론계에서 일하면 좋은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아이를 가진 꿈이었다. 그때 참 묘한 기분을 느꼈는데, 커갈수록 희원인 언어영역의 능력이 탁월하고 사고나 언어(말과 글)가 썩 논리적이다. 어떨 땐 피곤하게 따져대는 바람에 오히려 정이 떨어질 지경이다. 어느날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고 학교에서 한 적성검사 비슷한 것에서도 거의 똑같은 결과가 나온 후로 아이는 법조인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듯하다.

<도둑에게 고소당한 알리바바>는 초등학생이 만날 수 있는 법의 이모저모이다. 초등 5학년과 함께 수업하면서 희원이에게도 주었는데, 아주 재밌겠다며 좋아했다. 이 책은 국내외의 실례를 들어 먼저 이야기를 재미있게 들려주고 그 뒤에 이어서 법과 관련한 지식과 정보를 광범위하게 제공한다. 상식이나 배경지식이 많이 요구되는 책이라, 보통의 5학년에게는 부담되는 책일 것 같다. 6학년 정도는 되어야 흥미로워할 것 같다. 어른이 부가적인 설명을 많이 하고 관련 자료도 함께 찾아보며 책장을 느리게 넘겨도 좋겠다.

이 책은 처음부터 차례대로 읽지 않아도 무방하다. 목차를 보며 우선 관심이 가는 소제목부터 찾아서 책장을 펼쳐도 괜찮겠다. 법과 관련하여 어떤 순서나 범위를 정하여 설명하는 형식이 아니라, 고대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인 사건들과 실제 인물들을 들고나와 그 사건 속에서 법과 연관되는 바람직한 의미를 찾는 식이다.  잘못된 법을 개선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하여 투쟁한 인물, 예를 들면 전태일이나 수잔 앤터니, 만델라 같은 사람에 대하여도 언급한다. 드레퓌스 사건, 스크린 쿼터제, 효순/미선 사건을 계기로 일어난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그리고 일어나고 있는 갖가지 일들이 법과 맞물려 어떤 결과를 낳는지 생각해볼 수 있다. 알리바바 이야기나 영화 데드맨워킹을 들고 나오기도 하고 민감한 부분인 안락사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한다. 

굳이 이런 내용들이 부담스런 수준이라면 서른 가지의 실례들을 간단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글만 읽으면 재미나다. 그러고 나서 나름대로의 시선으로 생각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그래도 한가지 새기고 넘어갈 것은 법은 사람을 위해, 조화로운 사회를 위해, 정의를 위해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법조인을 꿈꾸는 희원이에게는 더욱 인간에 대한 깊은 이해를 품을 수 있는 사람이 되어달라고 한번더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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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은행에서 발행하는 소잡지에서 글을 옮겨싣는다.

>> 대충형 인간 <<

아침형 인간이라는 말이 13년간 장기불황에 시달린 일본에서 나온 것은 우연이 아니다. 거기에는 온국민이 아침형 인간으로 개조해 어려움을 극복하자는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일본과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한국에서도 아침형 인간은 전성시대를 구가 중이다. 아침형 인간은  한 마디로 주마가편을 즐기는 인간이다. 두세 시간씩 먼저 일어나 공부도 하고 건강도 챙기면서 남보다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는 것이다. 옹호론자들은 말한다. 나폴레옹, 정주영, 빌 게이츠 등 세계를 움직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아침형 인간이었다고.

물론 반론도 만만찮다. 혹자는 수면부족으로 인한 폐해를 지적하고, 혹자는 '21세기 신 새마을운동' 아니냐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나라 전체가 시에스타(siesta, 낮잠)를 즐기는 스페인 예찬론을 펴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아침형이든 저녁형이든, 틀에 맞춰 살긴, 강박관념을 갖고 살긴 매일반이다. 여기에 '대충형 인간' 탄생의 근거가 있다.

대충형 인간이라는 용어는 오시조노 도시코의 <대충형 인간의 요리 기술>에서 비롯됐다. 그녀의 요리법에는 '기분에 솔직하다, 과정을 생략해 맛있어진다. 도구는 하나만 사용한다, 그날 다 먹는다, 몸에 좋야야 한다, 요리의 기존 관념을 버린다, 왕성한 실험 정신을 발휘하고 즐거워한다'는 7개의 원칙이 있다. 손이 많이 가는 과정을 과감히 생략하되 요리의 본질은 잃지 않는 방법들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단순한 스피드 요리법과는 차별된다.

최근 국내에서도 많은 공감을 얻고 있는 대충형 인간은, 좀 헐렁하게 살자는 것이다. 다소 덜 계획적이고 매사에 즉흥적이며 게을러 보이더라도 스트레스 덜 받고 즐겁게 살자는 것이다. 하긴 아무 형이면 어떠랴. 한번뿐인 인생 열심히 살자는 목표는 다 같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인데, 결국 선택은 각자 몫 아닌가. 이 멋진 - 어쩌면 웰빙의 본뜻에 가장 가까운 - 대충형 인간은 마음이 잘 변하는 B형과 꼼꼼하지 않은 O형에게 특히 잘 맞다고 한다.

** 난 O형인데 나이먹어가면서 예전보다 대충형 인간쪽으로 가까워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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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일백 2004-07-10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그렇습니까?
저도 매사에 약간은 덜렁거리고 헐렁합니다
그런데 제 혈액형은 O형이거든요
님 표현대로 빌리면 O형은 대충형 인간이라는 뜻인데
저의 경우에는 소름끼치도록 딱 들어맞는 얘기군요. ^^;;;

하여튼 아침형이든 저녁형이든 자신에게 어울리는 스타일을 추구되면 될일입니다
꼭 무슨 한가진 틀에 억지로 맞출 필요는 없을 겁니다
그런점에서 저는 좋게 말하면 프리스타일(자유형)이고
조금 안좋게 말하면 무뇌아형입니다. 아무 생각이 없는 거죠
뭐 어떻게 되겠죠. ^.^

물만두 2004-07-10 11: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대충형 인간도 못 되는 군요...

진/우맘 2004-07-10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요! 저요! 저는 원조 대충형 인간입니다!!!^^

비로그인 2004-07-10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O형이긴 한데, 오히려 모든 것에 목숨 걸고 매달리고, 제 스스로 피곤할 정도로 완벽을 추구한답니다. 게다가 small mind까지.... -_- 아무래도 운명을 거스르는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계속 드네요...

. 2004-07-11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정확해야 할 일도 야. 이거 대충하고 가자...그러는 인간이라지요... -_-
 
타자기를 치켜세움
폴 오스터 지음, 샘 메서 그림,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3년 12월
평점 :
절판


폴오스터의 책 세권을 세트로 구매했다. 그 중 하나가 이 책이다. 책이라기보다 무슨 사진첩, 아니 비밀 일기장 같기도 한 모습을 하고 있다. 한 손에 쥐어지는 정도의 하드커버가 그 옛날 살며시 펼쳐서 독백을 하곤 했던 일기장을 닮아있다.

이 책은 폴 오스터가 자신과 25년 이상을 동행한 타자기에 바치는 독백과도 같다. 글의 분량이 많지는 않다. 그저 이 책을 독특한 느낌으로 만드는 것은 샘 메서의 유화 그림이다. 살아움직이는 근육으로 표정을 짓고 있는 듯한 타자기의 그림이 각양각색의 색채와 율동으로 그려져있다. 물감을 덕지덕지 찍어 그리기도 하고 활자들이 날아가기도 한다. 폴 오스터의 캐리커쳐 또한 개성만점이다. 타자기 자체로도 도시의 어둡고 밝은 분위기가 교차하며 묻어난다.

이 작은 책을 보며 수동식 타자기에 대한 기억을 더듬게 된다. 대학 1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으로 타자를 배우려고 타자학원에 갔다. 수동 타자기가 작은 교실의 책상에 한 대씩 놓여있고 나는 그중 한 곳에 앉아 그 타자기란 녀석과 첫대면을 했다. 무척 딱딱하고 둔탁한 느낌을 주며 무뚝뚝하게 버티고 있는 그 녀석은 어디 해볼테면 해 보라는 식으로 눈을 껌벅이며 있었다. 첫날 그 녀석을 치는데 손가락에 오는 감각이 장난이 아닌 것이다. 틱특틱틱..  이런 소리가 탁탁탁탁...  경쾌하고 리듬감있게 울리게 될 때까지 한 달 정도가 걸렸다. 쉬운 영문타자부터 학원에서 배우고 한글타자는 타자기를 집으로 대여해와서 혼자서 연습했다. 한여름에 그 무거운 녀석을 들고 버스를 타고 집까지 와서 한 달을 연습했다. 그리곤 돌려주었는데 돌려주는 날 다소 섭섭했던 기억이 난다. 집에 따로 연습할 타자기가 없었던 이유도 있었겠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진 않았나싶다. 그 해 여름날의 땀이 그 녀석에게 배어있었을테니 말이다. 

한 줄을 치고 나면 오른쪽에 있는 바를 돌려밀어서 행을 넘기고(철커덕~) 타닥타닥 또 글자를 친다. 요즘 문서작성의 글자체는 아주 다양하지만 그때 그 타자기의 글자체는  홀로 매력이 있다. 가늘게 아래로 흐르는 직선의 느낌이 강하면서 어딘지 불균형의 인상을 준다. <타자기를 치켜세움>에서의 글자도 이 타자기체로 되어있다.  하얀종이를 옆에 쌓아두고 종이 한 장에 글자를 다 쳤으면 다른 종이를 끼워가며 글자를 치는 재미도 있다. 좌측 라인을 잘 맞추어 끼워야 비뚤게 나오지 않는다. 먹끈을 가는 것도 재미있다. 먹끈을 새로 갈고 나면 글자가 갑자기 진하게 보이며 선명하다. 잘못 끼워서인지 어떨땐 시커멓게 번지기도 한다.

대학 3학년 때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던 그 사람은 논문을 쓴다며 우리집에 자기의 수동타자기를 가지고 와서 하룻밤을 꼬박 작업한 적이 있다. 그 사람이 그렇게 아끼던 언더우드 수동타자기였다. 밤새 토닥토닥 두런거리는 소리가 밤공기를 예리하게 가르던, 그런 풋내 나는 열정의 시절이었다. 나도 그 타자기가 그렇게 친근하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왠지 푸근하니 정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사람같이 말이다. 원래가 곰살스럽지 못한 나는 별로 애정의 손길을 주진 않았지만 결혼을 하고 몇번의 이사를 하면서도 그 타자기를 계속 데리고 다녔다. 쓰진 않고 골동품처럼 방 한 구석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이사를 하면서 어디 치웠는지 이 녀석이 보이지 않는다.  거의 일 년 동안 무심히 잊고 있었던 게다.

<타자기를 치켜세움>은 우리가 무언가 몰두하고 자신을 쏟아부을 수 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상징적인 것에 대한 단상이다. 종류는 다소 다르지만 20년전 남편이나 내가 망망한 대해를 헤쳐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준비작업으로 대면했던 수동타자기에 대한 회상을 참으로 오랜만에 해 준 책이다. 음악을 좋아하는 그 사람은 오디오도 좋아하고 사진을 좋아해서 카메라에도 남다른 애착과 조예를 보인다. 그런 열정과 집요함, 물건에 담긴 혼과도 소통하는 영혼이 사람을 좀 달리 보이게 하는 요인이라면 나의 그런 대상은 무엇일까? 나의 동반자격인 그 무엇을 지금부터라도 찾는다면 그만큼 나의 열정이 사그라들지 않는다는 걸 의미하는 것일게다. 그 대상에 몰두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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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7-06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가와 같이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그 느낌 하나만으로 그 책의 가격에 대한 불만을 지웠습니다.^^^^^^

2004-07-06 10: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BRINY 2004-07-06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타자기라...미국인 회사에 근무하셨던 엄마가 어느날 낡은 언더우드 영문 타자기를 구해오셨구, 저는 그걸로 영문 자판을 익혔습니다. 얼마후, 훨씬 날렵하고 가벼운 한글 타자기도 사주셨구, 대학2학년 이후론 컴퓨터 자판만 두드리고 있지만, 지금도 낡은 언더우드 타자기의 묵직한 터치감을 기억하고 있네요.

내가없는 이 안 2004-07-06 22: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타자기를 쳐본 적이 있는데 아버지 걸 장난삼아 팅팅거린 게 다였지요. 그런데 전 타자기의 톡톡 소리가 경쾌해서 좋은 반면, 깨끗이 지워지지 않아서 영 불만스러웠어요. 자국이 남아서 바꾸기 전의 생각을 드러내는 게 못마땅했거든요...

박가분아저씨 2004-07-07 02: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늦은 밤, 작업을 하다가
타자기에 관한 내 지난 추억을 생각하고...'스미스 코로나 '중고 타자기를 어렵게 사서 쓰던 순간들이 그리움처럼 문득 떠오르더군요.
지금도 타자기를 생각하면 ....목련꽃 지고 져서 꽃진 자리에 아무는 상채기처럼 문득 가슴이 메이는 군요.
봄밤이 아니라도.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 이호백 아저씨의 이야기 그림책
이호백 글 그림 / 재미마주 / 200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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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백님의 이 그림책이 탄생된지는 제법 되었지만 나는 이제서야 자세히 보게되었다. 요즘 일곱살 작은 아이가 아주 재미있어하며 보는 그림책이다. 특히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상상의 나래를 잘 펼치는 아이의 구미에 잘 맞는다. 게다가 아이가 제일 좋아하는 동물친구인 토끼가 마치 자신인 것처럼 귀여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토끼가 신나는 모험을 하는 공간은 별다른 곳이 아니다. 그저 일상에서 늘 보아왔던 사람들의 공간이다. 토끼가 자신의 신나는 상상을 현실화한 공간은 베란다 유리문 한 장을 넘는 것으로 가능하다. 우리의 현실과 환상의 범주라는 것도 그런 것이 아닐까. 내 마음의 문을 살짝 열고 한발만 내딛는 것. 그러므로 환상과 상상의 기회는 늘 우리 곁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회를 어른들은 간과해버리고 미처 잡지못하거나 잊어버리고 사는지도 모른다. 따분한 일상이라 투덜거리며 말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좀 다르다. 어른들도 모두 거쳐온 시절이지만 지금은 퇴색된 흑백사진처럼 상상력의 고갈로 마른 샘 하나를 가슴에 간직하고 산다. 아이들은 만나는 모든 대상이 마음에서 살아움직인다. 하물며 장난감 강아지에게도 말을 걸고 밥을 주고 잠자리를 봐주며 재워주는데, 살아서 눈을 깜박이는 토끼가 무슨 일을 못 할까.

베란다에서 얌전히 졸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우리의 하얀 토끼는 의외로 쉽게 열리는 유리문을 살짝 넘어 평소에 해보진 못하고 마음으로 꿈만 꾸었던 것들을 하나씩 해본다. 그렇다고 그런 것들이 아주 특별나고 대단한 것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사람들이 날마다 하는 평이한 행위들이다. 토끼에게 이런 작은 바람이 있었다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것 같다. 작가는 소박한 모험으로 충분히 신나는 경험을 하게 하며, 이 그림책을 함께 보는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대리만족을 느끼게 한다.

아이 적에 엄마의 하이힐 구두를 신고 싶어 몰래 신고는 뒤뚱거리다 넘어지기도 하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거울을 보며 묘한 웃음을 지어보기도 했던 그 옛날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토끼는 예쁜 돌복도 입어보고 화장도 해보고 그 집 아저씨의 서재에 앉아 생각에 빠지기도 한다. 토끼의 신나는 모험 중에서도 가장 신나는 장면은 롤러블레이드를 마치 썰매처럼 타는 모습이다. 토끼의 긴 귀가 마치 스카프처럼 뒤로 날리고 튀김젓가락을 양팔에 쥐고 몸을 앞으로 약간 기울인 자세에서 속도감을 느낄 수 있다. 블레이드위에 올라 앉아있는 토끼는 마냥 짜릿한 표정이다.

이 장면은 책의 양면을 펼쳐서 화면 가득 그려져있다. 주조색인 채도 낮은 갈색톤에 카키색 블레이드가 눈에 확 들어온다. 이 그림책의 그림은 내용과 참 조화롭다. 현실감있는 상상이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런 미덕을 잘 살려주는 부분이 바로 이 장면의 그림에서도 눈에 들어온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호백님의 세심함이 무척 기쁘다. 블레이드의 조이는 부분이 모두 풀어져 있다는 점이다. 토끼가 신기에는 너무 커서 그 위에 그냥 올라앉아 타고 있는데 만약 블레이드가 제대로 다 잠겨있다면 앞뒤가 맞지 않았을 것이다.

감쪽같이 자기 집으로 돌아간 우리의 토끼는 자신의 똥을 치울만큼 치밀하지는 못하다. 아이처럼 순진하고 허술하다. 꼭 나의 작은 딸 같다. 자신의 영역 표시라도 하는 양 온집에 흔적을 남기고 다닌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앉아 능청을 떨고 있는 토끼를 한번 쓰윽 보고 어른은 무언가 미심쩍지만 알고도 모른 체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토끼 곁에 가서 뭔가 속닥속닥 할 말이 많을 것 같다. 몰래 같은 꿈을 꾸고 같은 짓을 도모한 동지끼리 나누는 귓속말 같은 것일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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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14 15: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얼마전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 읽었는데 그림이 아주 힘있고 좋더라고요.
이호백 씨의 글과 그림이군요.^^
보관함에 담습니다.

진주 2004-07-28 15: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림책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그러나 아이들이 그림책 볼 시기를 지나고 나니 그림책을 사기가 쉽지 않군요. 서점에서 마음에 쏙 드는 그림책을 만나면 그저 넋이 나간 듯 보기만 한답니다. 속으론 치열한 전쟁을 하면서요-살까 말까 살까 말까...결국엔 만원짜리 한 장 허투루 쓰는 것 같아 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만답니다. 이호백화백을 저도 아주 좋아합니다^^

프레이야 2004-07-28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찬미님, 오랜만이네요. 더위에 잘 지내고 계시겠지요. 그림책과 멀어지기 시작하는 건 슬픈일에요. 그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