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 -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
신경림.김명곤.장영희.최영미 외 지음 / 예담 / 2006년 6월
절판


"산에 숨지 않고 속세로 내려가 죄 짓고 살 수 있는 힘을 얻고자 함입니다. 죄를 짓는 것은 오히려 큰 일이 아닙니다. 죄 짓지 않고 어찌 살 수 있겠습니까? 모든 죄는 저마다 자기 속에서 사해질 것이니 타인의 죄는 타인에게 주고 자신의 죄는 마땅히 스스로 풀며 사십시오. 모든 고통은 한계가 있어 그 너머에 진실이 있으니 느낄 수 없을 때까지 느끼십시오. 그것이 고통과 진정으로 관계하는 법입니다."
어쩌면 인생은 고통을 풀어 둥지를 만드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 이주향-44쪽

사랑한다는 것은
허무의 바다 건너가기입니다
한쪽은 나룻배가 되고
다른 한쪽은 사공이 되어.

- 사랑한다는 것은 - 열애일기 27의 전문(한승원) 중-74쪽

들꽃 한 송이와
한밤에 들에 나와 쳐다보는 보석 같은 별들과
내 사랑하는 사람들의 눈은 똑같다. - 한승원-75쪽

사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을 때
구름은 내게 와서 나의 벗이 되어 주었다.
내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거기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를 떠나보낸 다음에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내가 보고 싶은 건 바로...너.
파란 하늘과 흰 구름. - 최영미-136쪽

행복은 선택이다. 행복은 가까운 곳에, 현재에 있다. 행복은 쟁취해서 얻는 먼 훗날의 결과물이 아니다. 더 자주 웃고 더 많이 사랑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는 것, 우리 존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다. - 조안리-19쪽

진정으로 살고자 하고, 자신의 꿈을 향해 달려가는 이들 모두가 연애와도 같은 이토록 뜨거운 희망과 열정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주위를 둘러보면 희망과 용기의 재료들은 곳곳에 산재해 있다. 그것들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꿈과 행복의 맛이 달라질 것이다. - 서진규-32쪽

나는 인류가 진화되어 가고 있는지 잘 모른다.
이라크에서의 미 제국의 살육과 같은 국가적 대형 범죄를 보거나, 로마 시대의 검투사를 방불케 하는 근육질의 남성들이 이종격투기의 이름으로 서로를 피멍투성이로 만드는 광경을 눈요깃감으로 삼아 즐기는 선남선녀의 경기 중의 눈빛을 보면 솔직히 진화론에 대해 의심이 든다. 지능이 아무리 진화했어도 심성은 토굴에서 살았던 시절보다 퇴보했으면 퇴보했지 선량해진 것 같지가 않다. - 박노자-53쪽

삶의 진실이야말로 가장 강조되어야 할 시적 진실이 아닐까. 아름다움이 균형 있는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긴 시간에 걸친 지적 훈련과 인간적인 각성이 따른다는 사실을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이다. 내 사진 역시 다른 사람들이 살아온 진실의 기록이다. - 최민식-61쪽

힘없이 안나푸르나를 등지고 내려오는 길에서 비로소 나는 깨달았다. 몇 번의 실패와 함께 내 가장 소중한 친구들의 목숨을 잃어야했던 까닭을. 그것은 안나푸르나의 책임도 그무엇도 아니었다. 그것은 바로 내 오만이었다. 내 헛된 욕망이었다. 정상을 보는 순간 이번에는 반드시 정복하고 말리라는 헛된 욕망. 그로 인해 무리를 하게 된 경거망동에 풍요의 여신이 벌을 내렸다는 것을.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는 인간의 어리석은 오만에 경종을 울렸다는 것을 - 엄홍길-95쪽

난 길을 걸으면서 배웠다. 내가 해결할 수 없고 바꿀 수 없는 일에 저항하는 건 어리석다는 것을. 운명도 그 중에 하나이다. 지금도 난 크고 작은 고민이 닥칠 때마다 해결할 수 없는 것은 그냥 내버려둔다. 고민은 애쓴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냥 지나가는 것이다. 길 위에서 그 사실을 깨달았다.
유재하의 길이 그랬듯, 나의 길은 아직도 멀고 아득하다. 하모니카를 벗 삼아 좀 더 천천히 걸어야겠다. - 전제덕-110쪽

푸른 숲과 푸른 낙원을 만드는 것은 오로지 나의 몫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마음 안에서만 발아하고, 마음 안에서만 꽃을 피우는 사랑처럼 나의 음악도 많은 이들의 마음 안에서 발아하여 꽃을 피우는 감동으로 다가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부끄럽지만 음악이 나의 사랑, 음악이 나의 휴식이었노라고 고백한다. 내가 걷는 이 길, 결코 끝나지 않을 이 길의 종착지 역시 음악이리라고 나는 확신하다.
- 윤도현-120쪽

동심이 로맨틱을 내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타는 많은 이들을 그러한 로맨틱의 세계로 데려다 준다. 그러하기에 기타를 치는 건 내게 그저 즐거움이고 행복이었다.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타를 치며 살아가는 내게 행복 그 이상이 온 건 행운이었다. - 이병우-17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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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21:2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06-12-14 2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늘은 시련을 견뎌낼만한 사람에게 준다는 말이 생각납니다.
110쪽을 읽으며 포기할것과 인정할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겨울 2006-12-14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노자의 글에 공감해요. 특히 이종격투기를 보며 즐기라는 의도의 잔인성에 신물이 올라오곤 합니다. 하긴 요즘의 스포츠에서 스포츠 정신을 찾는 건 어리석지요.

프레이야 2006-12-14 2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몽님/ 저도 박노자의 글에 깊이 공감했어요. 인터넷의 폐해 중 하나이기도 해요. 우리 정서, 우리 심성의 퇴보가 의미하는 것이란...

승연님/ 따뜻하고 빛나는 구절들, 어쩌면 평범해서 잊고 사는 생각들이 많았어요.

하늘바람 2006-12-15 00: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윤도현의 글이 와닿네요

2006-12-15 00:2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치유 2006-12-15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은 말들이네요..전제덕님의 글도 좋구요..
시간이 너무 빠르게 흐르네요..이번주특히요.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 -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
신경림.김명곤.장영희.최영미 외 지음 / 예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낭독의 발견>을 보았던 적이 있다. 단 한 번이었다. 가수 SG 워너비의 멤버 세 명이 나와 무언가의 글귀를 낭독하고 있었다. 그때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중 가창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젊음' 한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눈이 젖어드는 걸 보았다. 이 책은 그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구절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다. 현재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이 부제로 적혀있다. 그 중 제주도를 사랑한 김영갑님은 저세상에 산다.

 

누구나 삶의 길은 탄탄대로이거나 산새 지저귀는 한적한 오솔길만은 아닐 테다. 역경과 꿈, 절망과 희망의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그 길을 말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오르한 파묵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서전을 내지 않았던가. 세월의 길이가 아니라 그것의 색깔과 질량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만이 사람의 길 위에서 주울 수 있는 보석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이라고 들고 나온 글귀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인생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힘을 준 것들이었다.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도 빨려들어가서 마음속에 이는 공명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 이 책의 미덕은 삶의 아름다운 방식을 은유한 여러 가지 시와 산문들을 28가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대중으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사람들, 그들 삶의 길에서 그 글귀들이 어떻게 힘이 되었고 빛을 발했는지,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변화를 주는 건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구절의 글귀’이기도 하다는 증거가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쓰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장영희님의 글을 서두로 하여 가장 마지막에는 코미디언 이홍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모두 감동적이었지만 이홍렬이 소개한 어머니의 자필 편지는 코끝을 찡하게 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인데 철자법이 엉망이어서 남들이 제대로 해독하려면 한 시간도 넘어걸릴 글이지만 자신은 단숨에 읽었다는 대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삶의 진실된 교훈을 아들에게 늘 일러주셨던 그 어머니는 아들이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영면하셨다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편지에 그는 지금에와 늦게 어머니께 답장을 썼다.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하는 편지글이다. 그저 멋 부려 썼거나 어려운 문자를 쓴 편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쉽게 읽고 해독할 만한 글로, 정말 소박하고 진실해 뵈는 문장이었다. 웃음을 주는 사람답게 그토록 눈물겨운 편지글 중에 우스갯소리가 들어있어 눈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아름다운 시와 문장 그리고 사람들의 향기 나는 이야기 못지않게, 책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싶다. 표지에서부터 안에 여럿 들어가 있는 꽃사진들이 책의 멋을 더해준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진인데 론 반 돈겐이라는 미국의 사진작가가 찍었다. 라벤더 색상의 간지와 함께 눈부시게 고운 색감의 종이 위에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의 한 구절’이라고 적힌 부록을 뒷장에 두어 환상적인 꽃사진과 함께 독자도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을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게 해 두었다. 하루하루 적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면 오래 간직될 귀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역시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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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18:5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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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2-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빨리 갔네요. 뭘요.. 받아주셔서 고맙지요^^

2006-12-15 04: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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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집 2006-12-1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네요.

프레이야 2006-12-1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네 감동적인 부분들이 많았어요. 산악인 엄홍길님이 죽은 대원에게 보낸 편지도 울컥했습니다.

글샘 2006-12-25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을 서가에서 몇 번 만났는데, 담에 담에...하고 미뤘더랬는데요.
배혜경님 글 읽고, 담에는 찾아 봐야겠습니다. 근데 꼭 그러고 가면 없더라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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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05: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행복희망꿈 2006-12-14 09: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치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같네요.

2006-12-14 11: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6-12-14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올해 자전거를 배웠답니다. 딸아이가 자전거를 잘 타는데 같이 타고 싶더라고요. 아이와 함께 양재천을 달리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요즘 추워서 자전거를 탈 수 없어 아쉬워요.

sandcat 2006-12-14 13: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 월급 타면 꼭 사고야 말겠다는 것이 제겐 자전거였어요. 자전거란 이미지는 역시 희망과 어울리는군요.

프레이야 2006-12-14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행복희망꿈님/ 정말 우리의 삶이 그러한 것 같아요. 그래야 되구요^^
속삭이신 11:00 님/ 님의 기도로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랄게요. 힘 주셔서 고마워요.
소나무집님/ 전 자전거 타는 거 무지 좋아해요. 6학년 때 첨 배웠죠. 한번 배우면 안 잊히니까 지금도 가끔 타곤 하죠. 달릴 때의 느낌, 너무나 좋아요. 아이랑 함께 달리는 님, 보기 좋아요.

섬사이님/ 그래요 내 발로 밟고 저어나아간다는 게 그 힘인 것 같아요. 바람이 나를 밀어주기도 하고 땅이 나를 받혀주기도 하구요. 무엇보다 전 자건거를 타고 가면서 내가 끌고 나아가는 풍경들을 좋아합니다.

샌드캣님/ 희망의 은유로서의 자전거,, 잘 어울려요. 지금으 자전거 사셨나요?^^
저희는 식구수대로 자전거가 있는데 자주 안 타고 현관에 두자니 자전거가 갑갑해보이네요. 자주 굴려주어야하는데 말이에요^^

짱꿀라 2006-12-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건거는 생각하면 지금도 고등학교 다닐 적에 타고 다니던 기억이 나네요. 정말 재미있게 친구들과 이야기하면서 천천히 가던 그때의 기억들이 어렴풋이 기억이 나네요. 잘 읽고 갑니다. 행복하세요.
 
 전출처 : 알라딘도서팀 > <까칠한 가족> 서평단 발표!

안녕하세요, 알라딘 편집팀 박하영입니다.
<까칠한 가족> 서평단 모집에 많은 관심 보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뽑히신 분들은 '서재주인에게만 보이기' 기능을 이용하셔서
댓글에 1. 이름 2. 주소 (우편번호 반드시 포함) 3. 연락처를 남겨주세요.
12월 13일 오후 4시 이전까지 부탁드립니다.

그 시간까지 댓글을 남기지 않으시면, 가장 최근에 알라딘에서 주문하셨을 때의 주소로 책을 보내드리겠습니다.(선물 주문 제외) 주문 기록이 없거나 편의점 배송을 선택하신 경우, 최근 주문 이후 주소가 변경된 경우엔 댓글을 남기지 않으시면 책을 보내드릴 수 없으니 이 점 꼭 유의 부탁드립니다.

책은 다음 주 중에 받으실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책이 도착하지 않으면 댓글로 알려주십시오.
서평은 1월 3일까지 꼭 올려주세요!

오후5시반 님
상복의 랑데뷰 님
구슬이 님
배혜경 님
예삐 님
아주아주모테치카 님
보르헤스 님
세실 님
보레아스 님
해리포터7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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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임이네 2006-12-12 14: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주말 잘보내셨나요 .
축하드려요님 .
행복한 오후되시구요 .

행복희망꿈 2006-12-12 15: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전호인 2006-12-12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빡씨게!

2006-12-12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짱꿀라 2006-12-13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인사꾸벅^^

비로그인 2006-12-13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축하드려요. 전 집에서 책좀 그만 읽으라고 성화가 장난이 아닌지라.. 제 돈 내고 사는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택배 올 때마다 눈치보이고;;; 응모 못 했답니다. ㅠ.ㅜ

프레이야 2006-12-29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괄츠님/ 정말 책을 많이 보시고 생각도 많이 정리하시죠..^^ 부모님께선 따님 건강 생각해서 그러시는가 봐요. 행복한 고민, 즐거운 고민이시네요^^

2006-12-14 0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2-1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2월 16일 받았어요. 도서출판 부키, 정성들여 쓴 연하장까지요.. 감사합니다.
 
공차는 아이들
김훈 글, 안웅철 사진 / 생각의나무 / 2006년 8월
절판


인간의 도덕과 의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은 축구에서 배웠다.
- 알베르 카뮈
-13쪽

허공 속에서 공은 많은 천체들과 함께 운행하는 인간의 별처럼 보인다. 높이 뜬 공이 풍경 전체를 사람의 것으로 바꾸어놓는다. 공을 향해 벌린 인간의 두 팔은 비바람 속에서 자족한 나무의 모습이다.-20쪽

발바닥의 굳은살이나 닳아진 구두의 뒤축에는 체중이 시간을 통과해나간 무늬가 찍혀 있다. 맨발로 땅을 달릴 때 나는 진화의 이름을 퇴화해버린 내 발바닥이 가엾다. 가엾기는 하지만, 맨발로 달릴 때 발바닥과 세상과의 직접성은 반갑다. 그 반가움과 함께 나는 조심조심 달린다.-38쪽

팔은 다리의 움직임과 연결되어서 흔들린다. 팔이 다리에 맞추어 흔들릴 때, 이 흔들림에는 직립보행 이전의, 네 발로 땅을 기던 시절의 추억이 살아있다. 인간의 육체 속에서 이 추억은 멀고도 희미한 등불로 깜박인다.-43쪽

공 차는 인간의 육신에는 산하의 모습이 숨어 있다. 공을 찰 때 산하는 인간의 육신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사진 속의 공 차는 사람이, 다음 순간 땅 위에 쓰러질지 계속해서 달릴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위태로운 순간에도 그의 팔다리는 산하의 흔적을 드러내 보인다.-45쪽

장년의 사내들에게서는 오래 산 사람들의 누린내가 풍긴다. 그 누린내는 피로감일 수도 있고 건강함일 수도 있다. 또는 완강함일지도 모르겠다. 피로와 건강은 다른 것이 아니다. 건강한 자들만이 피로의 감미로움을 안다. 그들의 공 차는 모습이나, 등물하는 모습에서도 생활의 냄새는 배어나온다. -57쪽

공차기는 속박과 비상 사이의 떨림이다. 그래서 공을 차는 인간은 때때로 하늘을 날아가는 새의 모습을 보여준다.-61쪽

공이 둥글지 않으면 놀이는 성립되지 않는다. 공은 입체의 중심에서 표면에 이르는 모든 거리가 같다. 이 공간기하학적 사태는 경이롭다. 공은 이 절대적인 등거리성으로 모든 충격을 순수하게 수용하고 반응한다. 공은 거기에 와 닿는 발길에 따라 무수한 질감과 방향성으로 새로 태어난다. 공은 인간의 몸이 아니면서도 몸의 일부이고 몸과 몸 사이의 또 다른 몸이고, 그 연결자이다. 그래서 공을 찬다는 행위는 생명을 밖으로 내질러 낯선 공간 속으로 연장시키는 일이다. 공은 살아 있는 짐승과 같다.-64쪽

닳아진 공을 보니까 공에도 생애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다. 공이 발길에 채여서 튕겨져나갈 때 공은 발길의 힘을 정직하게 반영하는 순결한 매개물일 터인데, 닳아진 공의 표정에도 그 순결의 자취들이 남아 있다. 닳아진 공의 생애는 그 어느 구구의 편도 아닐 채 스스로의 늙음을 완성하면서 남루하지 않고 초라하지 않다. 그 공을 꿰매는 인간의 손과 인간의 작업도구 또한 그러하다.-6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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