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 -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
신경림.김명곤.장영희.최영미 외 지음 / 예담 / 2006년 6월
평점 :
절판


 

텔레비전에서 우연히 <낭독의 발견>을 보았던 적이 있다. 단 한 번이었다. 가수 SG 워너비의 멤버 세 명이 나와 무언가의 글귀를 낭독하고 있었다. 그때 그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중 가창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평소에 생각했던 '젊음' 한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자신을 믿어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다. 그 눈이 젖어드는 걸 보았다. 이 책은 그 프로그램에서 방영되었던 구절과 진솔한 이야기들을 엮은 것이다. 현재 각계각층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 사회 명사 28명이 소개하는 ‘내 인생의 시와 문장들’이 부제로 적혀있다. 그 중 제주도를 사랑한 김영갑님은 저세상에 산다.

 

누구나 삶의 길은 탄탄대로이거나 산새 지저귀는 한적한 오솔길만은 아닐 테다. 역경과 꿈, 절망과 희망의 길을 굽이굽이 돌아서 자신만의 길을 만들어 가는 게 인생이다. 오랜 세월을 살아온 사람만이 그 길을 말할 수 있다고 할 수도 없다. 오르한 파묵도 스물일곱이라는 젊은 나이에 자서전을 내지 않았던가. 세월의 길이가 아니라 그것의 색깔과 질량이 가져다주는 삶의 의미만이 사람의 길 위에서 주울 수 있는 보석이 아닐까.

 

이 책에 실린 사람들이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이라고 들고 나온 글귀들은 하나같이 그들의 인생길에 말로 다 할 수 없는 힘을 준 것들이었다. 그것을 읽고 있는 독자도 빨려들어가서 마음속에 이는 공명이 생각보다 크고 깊다. 이 책의 미덕은 삶의 아름다운 방식을 은유한 여러 가지 시와 산문들을 28가지 만나볼 수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자신의 분야에서 열정을 아끼지 않으며 대중으로부터 흠모를 받고 있는 사람들, 그들 삶의 길에서 그 글귀들이 어떻게 힘이 되었고 빛을 발했는지, 감동적으로 소개된다. 한 사람의 인생에 결정적 변화를 주는 건 뜻하지 않게 만나게 되는 ‘한 사람’이기도 하지만 우연히 만나게 되는 ‘한 구절의 글귀’이기도 하다는 증거가 된다.

 

가장 아름다운 산문을 쓰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꼽히는 장영희님의 글을 서두로 하여 가장 마지막에는 코미디언 이홍렬의 이야기가 나온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들이 모두 감동적이었지만 이홍렬이 소개한 어머니의 자필 편지는 코끝을 찡하게 했다. 한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군대에 가 있는 아들에게 쓴 편지인데 철자법이 엉망이어서 남들이 제대로 해독하려면 한 시간도 넘어걸릴 글이지만 자신은 단숨에 읽었다는 대목이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삶의 진실된 교훈을 아들에게 늘 일러주셨던 그 어머니는 아들이 제대하고 얼마 되지 않아 영면하셨다 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이 편지에 그는 지금에와 늦게 어머니께 답장을 썼다. '그리운 어머니께'로 시작하는 편지글이다. 그저 멋 부려 썼거나 어려운 문자를 쓴 편지가 아니라 어머니가 살아있다면 쉽게 읽고 해독할 만한 글로, 정말 소박하고 진실해 뵈는 문장이었다. 웃음을 주는 사람답게 그토록 눈물겨운 편지글 중에 우스갯소리가 들어있어 눈웃음을 자아낸다.

 

이 책의 아름다운 시와 문장 그리고 사람들의 향기 나는 이야기 못지않게, 책 자체가 갖는 아름다움을 예찬하고 싶다. 표지에서부터 안에 여럿 들어가 있는 꽃사진들이 책의 멋을 더해준다.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사진인데 론 반 돈겐이라는 미국의 사진작가가 찍었다. 라벤더 색상의 간지와 함께 눈부시게 고운 색감의 종이 위에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 마음의 한 구절’이라고 적힌 부록을 뒷장에 두어 환상적인 꽃사진과 함께 독자도 평생 잊지 못할 한 구절을 글로 옮겨 적을 수 있게 해 두었다. 하루하루 적어두었다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전하면 오래 간직될 귀한 선물이 될 것 같다. 역시 사람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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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2-14 18: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프레이야 2006-12-14 1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님/ 빨리 갔네요. 뭘요.. 받아주셔서 고맙지요^^

2006-12-15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소나무집 2006-12-15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제가 좋아하는 분들의 이야기네요.

프레이야 2006-12-17 09: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나무집님/ 네 감동적인 부분들이 많았어요. 산악인 엄홍길님이 죽은 대원에게 보낸 편지도 울컥했습니다.

글샘 2006-12-25 0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 책을 서가에서 몇 번 만났는데, 담에 담에...하고 미뤘더랬는데요.
배혜경님 글 읽고, 담에는 찾아 봐야겠습니다. 근데 꼭 그러고 가면 없더라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