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ott님이 추천하신 영화 <더 킹: 헨리 5세>를 보고 예전에 읽었던 이 책이 생각났다. 술술 읽히는 흥미로운 역사 이야기다. 셰익스피어가 1500년대 말에 <헨리 5세>를 써서 영국민의 사기를 진작했다면 찰스 디킨스는 1800년대에 어린이를 위한 영국사(A Child's History of England)를 자신의 관점으로 쓴 이 책에서 헨리 5세를 긴 영국사의 한 장으로 다루었다. 이 책은 20세기 말까지 영국 초등 교과에 실려 있었다고 한다. 디킨스는 이 책에서 알프레드왕을 최고 성군으로 쓰고, 존 왕을 비열하고 짐승같은 인물이라고 쓴다. 존 왕은 1214년 6월 15일 귀족들 앞에서 대헌장에 서명하고 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다. 그 외에도 셰익스피어와 어깨를 나란히한 대문호다운 올바른 사심을 곳곳에서 드러낸다. 권력자들의 추악한 뒷마당과 살육을 일삼은 왕들의 이야기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상상을 부추기는 생동감 나는 장면들, 헐벗은 백성들 편에서 바라보는 시선을 견지하는 편이다.
1412년 재위해 10년간 통치하다 36세의 나이로 죽은 실제 인물과 각기 다른 시대를 산 문호의 글로 드러나는 인물, 2019년 영화로 재창조된 인물이 나란히 겹쳐왔다. 어느 인물에 대한 시선에 오해는 필수 과정인 것 같다. 그런 것들이 모여서 그걸 넘어서는 어떤 지점이 드러나겠거니. 평가는 후세의 몫이라지만 그 또한 각기 다른 프리즘을 통과하는 일이니 감안해야 할 듯.
이 책 20장에서 랭커스터가 최초의 왕, 헨리 4세, 영화 속에서 장남인 할과 반목하는 아버지 왕에 대해 쓴다. 적을 화형에 처하는 방법을 도입한 왕이었고 백성의 신뢰를 잃어가는 왕이었다. 스코틀랜드 공격과 퇴각 시 부대가 마을을 태우거나 사람을 죽이는 일이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이는 헨리 4세가 병사들에게 그렇게 지시했기 때문이라고. 전쟁 중에도 평범한 백성의 안위와 목숨을 등한시하지 않은 점은 부자가 비슷한 것 같다. 치세 동안 잉글랜드는 평온한 편이었지만 헨리 4세는 왕위 찬탈에 대한 자괴감과 망나니 아들 때문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쓴다. 재위 14년, 46세로 기도 중 사망한다.
역사적 사실로 알려진 할은 망나니라기보다 13세때부터 아버지를 따라다니며 전장터의 경험을 쌓았고 용감하고 지혜롭고 영특했다. 그래서 아버지로부터 다소 경계의 대상이었다고. 영화 <더 킹:헨리 5세>의 할이 주색잡기에 빠져 있다가 갑자기 왕의 면모로 돌변한 것처럼 보이는 건 실제 헨리 5세의 드러내지 않은 내면을 이해하지 않으면 설득력이 없을 것 같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저리 변하나 싶은. 원래 있던 성정이 기회와 맞아떨어질 때 드러나는 것이다. 용감하다는 건 나중에 권력을 굳건히 하기 위해 과감히 사람을 쳐내는 과정에서 잔인함으로 평가받지만 찰스 디킨스는 그를 인자하고 공정한 통치를 한 왕으로 쓴다. 왕세자 시절 방탕한 시절을 함께한 친구들은 변함없이 신의와 충직함을 지키겠노라 했지만 헨리 5세는 그들을 멀리했다. 예를 들어 존 폴스타프는 이 영화에서 충성심과 혜안을 발휘하고 아쟁쿠르에서 장렬히 죽음을 맞이하지만 실제로 셰익스피어의 <헨리 5세>는 왕 위에 오르자 그를 제거하는 것으로 쓴다.
찰스 디킨스는 이 책의 21장에서 권력의 정점에서 죽은 헨리 5세를 다루는데, 프랑스와의 전쟁 중에 병사들이 식량부족에 시달리면서도 양순한 백성들의 생명과 재산을 존중하지 않는 병사는 죽음을 각오하라는 왕의 엄명을 따라야했다고 쓴다. 그리고 누구의 승리가 됐든 전쟁은 참혹한 것이다. 끔찍하지 않은 전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개탄한다.
레놀드 엘스트렉이 1618년 그린 헨리 5세 삽화. 연대 미상. 인상이 좀 다르다.
190cm 장신에 얼굴 왼쪽에 큰 상처가 있다는 헨리 5세는 26세에 즉위하여 10년 후 세상을 떴다. 영화는 한 사람의 성장을 담지만 실제로 36세 이후의 삶이 없으니 온전한 성장 이전 활짝 핀 청년의 삶만 살아남았다.
두 편의 <헨리 5세>가 이전에 나와 있었지만 보지는 못했고 포스트만 본 적이 있다. 1944년 로렌스 올리베에의 헨리 5세, 1989년 나온 1960년생 케네스 브래너의 헨리 5세보다 1995년생 티모시가 그런 면에서는 더 헨리 5세에 가닿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인물에 생명감을 불어넣고 후대 사람의 바람을 담아 새로이 조명한 이 영화에서 헨리 5세가 병사들 앞에서 웅변하는 장면에 대사가 살짝 황당하게 시적이다. 울분에 차 울 듯 말 듯한 얼굴로 "Make it England!"라고 소리지르는 너무 어른스럽지는 않은 청년을 보는 것 같아 오히려 그럼직했다. 셰익스피어가 명연설로 기록한 이 대목은 영화에서는 조금 다른 어조로 변형되어 감수성을 자극한다. 수적으로 열세였으나 프랑스군인의 답답한 갑옷과 비온 후 진흙탕이 된 들판이 도움이 되었던 아쟁쿠르 전투(1415)에서 승리 후 헨리 5세가 샤를 6세를 독대하는 장면에서 깊이 공감되는 대사가 시적으로 또 흘러나왔다. 샤를 6세는 왕위계승권을 헨리 5세에게 내어주며 한 가지 조건을 건다. 공주 까뜨린느를 거두어 줄 것, 결혼할 것. 역사를 움직이는 건 가족일 수 있다는 내용의 말을 덧붙인다. 나는 후반부 이 짧은 대화 장면이 마음에 또 남는다. 화려한 궁정이 아닌 소박한 공간, 샤를 6세 뒤로 햇살 비치는 창문인가가 있고 카메라는 샤를 6세를 정면으로 비춘다. 반면 헨리 5세는 그 앞에 조금 낮게 앉은 구도를 취한다. 전투에는 이겼으나 헨리 5세의 현명하고 인간적인 면모가 드러나는 자세였다. 감독의 섬세한 면모가 드러나는 장면들 중 하나이기도 하고.
"Family moves us. Family consumes us."였던가. 이 말은 1392년부터 정신병을 앓았던 가엾은 샤를 6세의 입에서 나온 진실한 말이었다. 미친 사람이기에 자주 진실을 말할 수 있다고 헨리 5세에게 던지는 딸 까뜨린느의 말에는 참하고 영민한 마음의 눈이 비치었다. 거대한 역사의 줄기 속에서 우리를 움직이고 우리를 소모하는 존재는 가족이라는, 한 사람의 군주이자 아버지의 말에서 백성의 아버지로서의 군주와 우리네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는 영화의 진심이 좋았다. 자신의 안위와 이익을 위해 거짓을 말했던, 충신인 줄 알았던 윌리엄을 단칼에 처단하고 헨리 5세는 까뜨린느의 양손을 맞잡는다. 앞으로도 진실만을 말해달라고 하는 장면으로 영화는 끝난다.
실제로 샤를 6세와 헨리 5세가 죽은 연도는 모두 1422년이지만 프랑스 원정 중이었던 헨리 5세가 갑작스런 병으로 두 달 먼저 뜬다. 프랑스 왕위 계승권에 관한 트루아조약(1420)은 무효화하고 역사는 또 다른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나아갔다. 누구든 언젠가는 죽는다는 사실 외엔 아무것도 예상할 수 없는 것!
똑똑한 까뜨린느 역의 배우가 조니 뎁의 딸이다. 티모시 살라메는 '작은 아씨들'에서는 그다지 발하지 못한 호감도가 이 영화에서 훨씬 살아난다. 키도 작아 보였는데 실제로는 크네. 비교적 야위어서 그렇게 보이나 보다. 연기천재 학생을 연기한 <미스 스티븐스>도 같은 해 나온 영화다. 여리여리한 이미지 밖으로 나와 고뇌하며 성장하는 군주의 역할을 잘 해낸 것 같다. 재창조한 인물로 감독이 잘 캐스팅된 듯. 시종 끊이지 않고 계속 깔리는 음악은 좀 거슬렸다.
그런데 티모시 살라메, 2019년 부산국제영화제에 감독 데이비드 미쇼와 각본에도 참여하고 존 팔스타프 역을 한 배우 조엘 에저튼과 왔었구나. GV도 했네. 이쁨! 그해 시월 책 준비하느라 바빠 BIFF에 가보지 못하고 보냈는데 아까워라. 올해도 마무리 임박한 임무에 26회 BIFF 지금 개최 중인데 뉴스만 보고 있다. 에너지가 달리지만 내일쯤엔 영화의 전당 부근에 분위기나 보러 한번 나가보려고 한다. ^^ 스캇님, 영화 소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