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딸은 또래보다 덩치도 크고 의젓해서 유치원때도 한 살 높은 반부터 다녔다. 세 살 때 어린이집을 9개월 정도 다녔고, 네 살 때 유치원으로 옮겨 다섯살반(비둘기반^^)에 들어갔다. 그래도 그반에 큰 편이었고 마음 쓰이게 한 일 없이 씩씩했다. 여섯살 되던 여름에 이사를 왔는데 유치원문제를 고민하다가, 유치원 일곱 살 반을 한 해 더 하기는 마뜩치 않고 그렇다고 초등학교를 일 년 먼저 들어가게 하려니 주위에서 그럴 필요 없다고 다들 반대를 하여, 생각 끝에 영어유치원 6세반에 들어가 7세까지 일년육개월 정도를 다녔다. 모든 환경에서 적응을 잘 해 주었고 건강하게 생활했으며 모든 체험들이 아이한테는 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요즘도 가끔 어릴 때 이야기를 꺼내면 기뻐하고 어릴 적 행사 비디오 같은 걸 꺼내 혼자서도 자주 보는 편이다.

희령이는 어디를 가나 주도적으로 생활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매사에 긍정적인 편이다. 내가 본받고 싶은 성격이라서 이 아이에게 애정이 조금 더 가나보다. 올해 3학년이 되었다. 3학년이 된 첫날부터 1, 2학년에 이어 이번에도 선생님이 참 재미있으시고 좋으시다며 내게 자랑하고 짝지가 된 남학생도 점잖고 잘 배려해준다고 흡족해한다. 아이가 아침에 가방을 매고 나가는 걸음이 가볍고 흔쾌해 보이면 내 마음이 참 환해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루종일 마음이 편하지 않은 법이다.

어제는 학교에서 돌아와, 발표를 제일 잘 했다고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면서 A4 종이를 보여준다. 사진 한 장을 붙이고 꾸미고 아래에는 열 줄 정도 글을 써 놓았다. 자기 소개글이었다. 사진을 보니, 4살 때 언니랑 같이 찍은 모습이었다. 언니랑 좀 더 잘 지내고 싶은 아이의 마음이 담긴 것인줄 아니까 마음이 짠해졌다. 하지만 내색은 않고 볼에 뽀뽀만 해주었다. 언니가 제맘같이 살갑게 안 대해주니까 속상해 하는 아이다.

어제는 <나도 자존심 있어>라는 단편동화집을 읽고 나더니 언니가 요새 톡톡 쏘고 말도 잘 안 하는 이유를 알겠다며 내게 말을 걸어왔다. 모른척 하고 되묻는 내게, 언니는 지금 사춘기라서 그렇단다. 책에도 그런 사람이 나왔다며.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웃음이 났다. 그리곤 세번째 이야기가 자기이야기랑 비슷하단다. 그 이야기의 주인공은 통통한 여자아인데 건강한 생각으로 고민을 풀어나가는 이야기로 나도 참 마음에 들었던 이야기다. 아이는, 책을 읽으면 참 좋은 점이 있다고 덧붙이며 조잘거렸다. 뭘까? 라고 물으니까, 책을 읽으면 내가 앓고 있던 고민 같은 게 풀리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 같아, 라며 눈을 빛냈다. 밝게 잘 자라고 있는 것 같아 무심한 엄마로서 기뻤다.

자기소개글 중 장래희망의 이유에 대해 써놓은 걸 보고 놀랐다.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대견해서 옮겨놓고 싶다.

- 제 이름은 *희령입니다. 저희 아버지, 어머니는 (중략) ...... 제 언니는 (중략)......  저는 피겨스케이트를 잘 타고, 피아노를 잘 치고, 영어를 잘 합니다. 저는 가끔씩 부끄러움을 많이 탈 때도 있지만 항상 당당합니다. 그리고 별명은 희통이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은 희령이고 통통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피아노 치기와 책 읽는 것을 좋아합니다. 저는 외교관이 되고 싶습니다. 나중에 꼭 외교관이 되어서 우리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바르고 당당한 나라로 만들고, 우리 나라 국민들의 주장을 다른 나라에 정확하게 알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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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07-03-06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너무도 멋진 희망이예요. 희령이가 반드시 자신의 희망대로 아주 잘 자라주었어면 좋겠어요. 예쁘네요, 희령이가. 게다가 희령이는 저보다도 더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것 같아요. :)

뽀송이 2007-03-06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근데... 전 왜이리 소름이 쫙~ 끼칠까요?
희령이의 저 당당하고, 야무진 장래계획을 들으니...
정말 대견하고, 우리나라의 미래가 밝아지는 것 같습니다그려~~~^.~

반딧불,, 2007-03-06 13: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정말 이쁩니다^^

기인 2007-03-06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쁜 '희통이' ^^* 퍼가요. 애인한테 보여주려고요. 쫌 본 받으면 좋겠죠? ;)

프레이야 2007-03-06 16: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꿈을 이룰 수 있도록 길안내를 잘 하는 부모가 되어야할텐데요..
대개 엄마들은 아이가 지식중심의 책(과학,역사,인물 같은)을 많이 읽기를 바라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아이들에게 엄마의 욕심을 너무 표낼 때가 많지요^^

뽀송이님/ ㅎㅎ 사실 희령이 땜에 저도 한번씩 소름이 쫙~~그래요.
저만할 때 전 그렇지 못했거든요.

반딧불님/ 이쁘게 봐주셔서 고마워용^^

기인님/ 희통이^^ 앤님이 웃으시겠어요.^^

마노아 2007-03-06 19: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멋진 글에 저는 왜 코끝이 찡할까요. 희통이 최고예요. 당당한 대한민국, 멀지 않은 듯합니다^^

국경을넘어 2007-03-06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훌륭한 어린이입니다. 짝짝짝 ^^*

프레이야 2007-03-06 2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 희통이가 반장선거에 나가고 싶다는데 제가 반장엄마노릇 할 자신이 없어 안 나가면 안 될까, 꼬시는 중입니다. 무척 아쉬워하며 갈등하고 있네요. 에고 저 때문에 작은 꿈을 못 펼치다니요 ㅎㅎ

폐인촌님/ 어떨 땐 제가 깜짝 놀래요. ^^

춤추는인생. 2007-03-07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경님 희령이를 직접 보지 못했지만 `야무진 꼬마아가씨`일것 같다는 제예감이
소개서를 보니 정확히 적중하네요. 사춘기라는 말도 벌써 쓸줄 알구요.. 어쩜...
정말로 사랑스러워요 님^^
그리고 님~ 희령이 편에서 저도 부탁드릴께요.
작은꿈 이룰수 있도록 엄마 혜경님이 수고좀 해주세요 네?^^

프레이야 2007-03-07 09: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춤추는인생님/ 오늘아침 희령이가 하는 말, 엄마가 지금도 바쁜데 학교일로 더 바빠서 피곤해지면 안 되니까 그냥 자기가 안 나가겠다네요. 처음엔 부반장이라도 나갈까, 그러더니 그런건 아무래도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된다네요. 학교일로 나서는 거 별로 안 좋아하는 엄마를 위한 배려인데 속으로론 많이 찔렸어요. 그래도 희령인 변덕이 심하니까 내일 선거날 아침이면 또 다른 말 할지도 몰라요. 엄청 갈등하고 있을 거에요, 지금도. ㅎㅎ

프레이야 2007-03-07 21: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섬사이님, VANK 알아봐야겠어요. 전 첨 듣는지라.. ^^
아이들 대하면 어떨 땐 참 기특한 생각을 갖고 있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게 되더군요. 변덕이 심해 꿈도 많지만 뭐든 자기가 좋아서 신명나게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더없이 좋겠어요.^^

치유 2007-03-08 0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대견스러운 희령인에요..^^&
어쩌면 이렇게 당당하고 야무진지..
엄마를 정말 애틋하게 생각하는군요..그 배려에 또 뭉클하셨겠군요..ㅋㅋ아침이면 변덕을 부려서 반장하겠다고 할찌라도 이쁘기만 합니다..

프레이야 2007-03-08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 좋은아침이에요*^^*
희령인 어제는 그래도 나가는 보고싶다고 하더니 오늘아침 최종적으로, 반장은 6학년때쯤 되어서 엄마보다 자기가 반을 위해 할 일이 많을 학년이 되면 하겠다네요. 어젯밤 쫌 꼬셨거든요. 제가 지금은 학교 들락거리며 일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요. 사실은 귀찮고 게을러서이지만요.ㅎㅎ
그러고 보내고 나니까 그래도 마음이 영 안 됐네요. 나가서 연설해 보는 것도 경험인데 말이에요. 그래도 그러다 덜컥 뽑혀버리면 어떡해요. 흑흑... 하는 수 없이..

세실 2007-03-08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우리나라의 앞날이 참으로 밝습니다. 희령이 멋지네요. 어쩜 이리도 야무지고 당당하게 잘 컸는지...흐뭇하시겠습니다.

프레이야 2007-03-0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에고 결국 부반장 되어왔네요. 난 몰라~ 학교가기 싫은데요..
아침에 나갈땐 아무것도 안 나갈거라더니 고새 맴이 바뀌었어요.

세실 2007-03-08 16: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호호 축하드리옵니다. 엄마의 설득만 아니었다면 반장도 했을터인데....안타까워요. 저는 님보다 더 일 못하옵니다. 다른 엄마들이 싫어할까요?

프레이야 2007-03-08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반장보다 마음의 부담은 적지만 일은 같이 하는건데, 에고고 아이 따라갈 길이 걱정입니다. 제가 그런 면에서 영 부실하고 재미없어하는데 말이에요. 그래도 나름 신난다 생각하고 도와줘야겠죠. ㅎㅎ

혜덕화 2007-03-11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희령이란 이름도 예쁘지만 희통이가 더 예뻐요. 우리 아이들이 절 닮아 살이 찌지 않아서 통통한 아이들 보면 너무 예쁘게 보이거든요. 부반장이든 반장이든 제 하고 싶다면 하게 두세요. 아이는 아이 나름대로의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니까요.*^^*

프레이야 2007-03-11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혜덕화님, 주말 잘 보내셨어요. 시간이 참 이렇게 또 가버리네요.
희통이 ㅎㅎ 워낙 먹성이 좋고 건강해요. 감사한 일이에요^^
부반장 되어 기분이 좋은가봐요. 어떡하겠어요. 제가 숨차도 따라가줘야겠지요.^^
여자담임선생님인데 님처럼 좋으신 분 같아요. 아직 못 뵈었지만
아이가 참 좋아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