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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도약, 공간이동
데이비드 달링 지음, 박병철 옮김 / 한승 / 2007년 4월
평점 :
품절
박영숙의 <유엔 미래 보고서>의 미래 달력을 보면 공간이동(teleportation)이 2038년에 이루어진다고 나와 있는데, 이 책을 읽어보니 그렇게 빠른 시간 안에 이루어질 것 같지는 않다.
공간이동의 기원
<자, 보라(Lo!)>
20세기 초, 전 세계의 신기한 이야기를 수집하는 찰스 호이 포트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자신이 모은 자료를 여러 권의 시리즈로 출판했다고 하는데, 세 번째로 출판된 책인 <자, 보라>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적혀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는 사물이 순간적으로 이동하는 신기한 현상이 소개 될 것이다. 앞으로 이 현상을 공간이동(teleportation)’이라 부르기로 한다.”
<육체 없는 인간 The man without a body>
처음으로 물질전송장치를 도입한 소설은 1877년 에드워드 페이지 미첼의 <육체 없는 인간>이라고 한다. 이 책엔 물질을 원자 단위로 분해하는 장치를 개발한 어떤 과학자가 등장해, 고양이를 전송하는데 성공한 이후 자기 자신을 실험 대상으로 삼았다. 결과는?
머리만 전송됐다.
<분해장치 The Disintegration Machine>- 아서 코난 도일
“당신의 몸을 산산이 분해하여 우주 공간에 뿌린 후, 그 역과정을 거쳐 다시 원래의 형태로 되살리는 장치가 가능할 것 같지 않소?”
<특별한 배달 Special Delivery> - 조지 스미스, 1945
물체를 원자 단위로 스캔한 후 낱낱이 분해하여 소립자의 형태로 보관하는 ‘물질은행’을 도입하였다고 한다.
<혼합된 인간 The Mixed Man> 밴 보그트, 1952
두 가지 형태의 공간 이동이 등장한다. 사람의 몸을 전기적 영상의 형태로 전송한 후 수신지에서 생체 조직을 이용하여 원형을 복구하거나, 전자의 흐름으로 변환시켜서 전송한 후 원래의 원자 구조를 복구하는 방법
<나의 목적지 별들 The Stars My Destination> 앨프레드 베스터, 1956
공간이동이 지배하는 문화를 전팅(jaunting)이라 불렀다.
<변종 달 Rogue Moon> 앨지스 버드리, 1960
지구에서 달로 여행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몸을 데이터화하여 전송한 후, 달에 있는 신선한 재료를 이용하며 몸을 재조립한다.
<엑스 맨> 마블 코믹스
나이트크라울러의 ‘뱀프bamf’ 기술.
<파리 The Fly > 조지 란젤란 1957년
과학자가 공간이동 중 파리 한 마리 때문에 괴물이 된다.
<스타 트렉>
“Beam me up, Scotty”
공간이동이 가능하기 위해선 양자 컴퓨터가 있어야 한다. 양자론과 정보 이론을 모르고선 공간이동은 그저 상상에 불과할 것이다. 결국 또 양자론이다. 양자론에 관련된 서적을 몇 십권 읽었던 건 같은데 매번 볼 때마다 신기하고 여전히 내 머리론 이해가 안 간다. 전공을 할 수도 없고.
빛의 역사
1997년 인스부르크 대학교의 한 실험실, 과학자들은 소량의 빛을 조작하여 1미터 떨어진 곳으로 ‘복제 빛’을 만들어 냈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공간이동이 실현된 것이다. 저자는 공간이동을 이해하기 위해선 빛의 성질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17세기 아이작 뉴턴은 빛의 근원을 입자설로 설명했던 반면 동시대 네덜란드의 물리학자 크리스티안 호이겐스는 빛이 파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주장했다.
토마스 영
영은 우리가 흔히 접하는 이중슬릿 실험을 통해 빛이 파동임을 최초로 증명했다. 그러나, 그당시 뉴턴이 장악한 과학계에서 ‘과학의 이단아’로 취급받았다.
맥스웰
전기와 자기가 도일한 현상의 다른 측면임을 간파하고 이와 관련된 모든 현상들을 네 개의 간단한 방정식으로 요약했는데, 바로 그 유명한 맥스웰 방정식이다. 맥스웰 방정식에 의하면 전자기판의 진행 속도는 초당 약 300,000km였다. 이 수치는 그 당시 알려진 빛의 속도였다. 그래서 맥스웰은 1867년 “ 빛은 전자기파다”라고 선언했지만, 영과 마찬가지로 맥스웰 역시 살아있는 동안 과학계에서 거의 인정을 받지 못했다.
막스 플랑크
1860년대에 독일의 물리학자 루돌프 클라우지우스와 영국의 켈빈 경이 열역학 제 2법칙을 발견할 때엔 ‘엔트로피 법칙’으로 불렀다.
“이 세계는 위치 에너지(potential energy)가 최소화되거나 엔트로피가 최대화되는 쪽을 향해 자발적으로 움직인다.”
아이들 방이 어지럽혀지는 것과 시간이 미래로 흐르는 것 등을 우리는 엔트로피 법칙으로 설명할 수 있다. 플랑크는 열역학 제 2법칙 혹은 엔트로피의 개념에 완전히 매료되었다다. 이것만이 궁극적 진리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 시기에 오스트리아의 루트비히 볼츠만이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그는 기체 이론에 확률을 도입한다. 엔트로피는 시간을 따라 증가할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을 뿐 ‘절대적으로’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열역학 제 2법칙은 궁극적 진리가 아니라 단지 확률적으로 옳은 법칙인 것이다.
볼츠만의 이론을 반박하기 위해 플랑크는 흑체 복사와 진동자의 상관관계를 연구하던 중 흑체의 에너지가 조그만 조각으로 나누어져 있다고 가정하게 된다. 이 가정에 따르면 에너지는 ‘유한한 개수의 작은 알갱이’로 이루어져 있다.
E = hv (h= 플랑크 상수, v = 진동자의 진동수)
플랑크는 에너지가 무한히 작은 부분으로 분할 될 수 없음을 천명하고 에너지의 최소 단위에 양자(quantum)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러나, 플랑크는 자신의 이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파악하지 못했다.
아인슈타인
사실 아인슈타인이 노벨상을 받은 건 상대성이론 보다는 광전효과 때문이다. 광전 효과를 설명하면서 아인슈타인은 ‘빛이 양자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간파한다. 그러나 아인슈타인 역시 빛의 입자설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당시의 물리학으론 빛은 입자면 입자고 파동이면 파동이었지 입자면서 동시에 파동일 수는 없었다. (21세기인 지금도 난 이해할 수가 없다.)
양자역학을 내가 이해한 바대로 간단히 말하자면 이렇다.
“광자는 파동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관찰자’가 있을 경우엔 입자처럼 행동한다.”
맥
양자역학을 거시 세계로 옮겨 놓으면 곧장 ‘신’을 연상할 수밖에 없을 지도 모르겠다. 인간의 영혼 역시 일종의 광자는 아닐까? 인간이 육체를 입어, 입자가 되었다는 건 무한한 공간 어딘가에 ‘관찰자’가 있기 때문은 아닐까?
이러한 수수께끼 때문에 숱한 영성 단체에선 양자 역학을 열심히 공부한다. (그러나, 거시 세계와 미시 세계는 엄연히 다르다.)
하이젠베르크
러더퍼드가 원자의 내부 구조를 태양계의 축소형이라 생각했다면 보어에 따르면 전자는 임의의 궤도를 도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개수의 안정된 궤도를 돌고 있으며 각 궤도에는 기본양자와 관련된 정수가 할당되어 있다고 생각했다.
반면 하이젠베르크는 원자 내부에 있는 전자들이 궤도를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는 원자의 특성과 에너지 전이를 간단한 숫자배열로, 이 모든 현상을 지배하는 법칙도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자신의 계산 결과를 막스 보른에게 보냈다. 보른은 하이젠베르크의 식이 수학자들이 개발해 놓은 행렬 계산과 유사함을 간파한다. 대개 운동량(p)과 위치(q)의 곱은 순서를 바꿔도 결과는 똑같다. 8곱하기 5나 5곱하기 8은 둘 다 40이지만 행렬계산에서는 pq와 qp의 값은 결과가 다르다.
보른과 요르단이 그 차이를 계산해 봤더니, 플랑크 상수가 포함된 어떤 특정한 값이 얻어졌다.
pq – qp = ih/2π (i = -1의 제곱근)
슈뢰딩거
슈뢰딩거의 주장은 “파동이 입자처럼 행동한다면, 입자도 파동처럼 행동할 수 있다”라는 것이다. 아, 예전의 양자 역학 책에도 이 내용이 실렸던가?? 나 역시 위의 문장과 똑같이 생각했었다. 위의 내용을 만일 거시 세계에 대입해 본다면 어떻게 될까?(물론 양자역학이 미시 세계에서만 통용된다는 건 나도 안다. 그렇다고 상상하지 말란 법은 없잖은가?)
입자인 인간이 진동수가 엄청나게 빨라진다면 파동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붓다는 인도에서 사라졌다가 잠시 후 스리랑카에서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혹은 파도바의 성 안토니우스,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와 같은 성자들과 수도승들은 동시양처(bilocation ; 하나의 존재가 두 장소에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의 기술을 습득했다고도 전해지고 있다. 단서는 성자들이 우리에 비해 뇌의 파동이 현격히 다르다는 것이다. 즉, 비브라씨옹이 다르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온갖 신비적인 현상들, 예를 들어 텔레파시, 채널링, 축지법도 오랜 시간의 훈련을 통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옛날의 선인들은 하루에 반은 책을 읽고, 하루에 반은 명상을 했다. 만일 이십년, 혹은 삼십 년 동안 매일 매일 명상만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인간의 진동수를 높이는 유일한 방법은 명상이 아닐까?
언젠가는 파동철학(vibration philosophy)를 집대성할 수 있다면 재밌을텐데.....
막스 보른
슈뢰딩거가 ψ(파동함수)가 ‘실재하는 파동’으로 믿은 반면 보른은 파동함수를 실재하는 물리량이 아니라 주어진 계의 양자 상태를 서술하는 함수로 해석하였다. 즉 보른은 자연의 법칙에 무작위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지적한 물리학자였다. 이에 대해 아인슈타인은 자연의 궁극적 진리가 우연과 확률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만은 결코 수용할 수가 없었다. 여기서 그 유명한 구절이 튀어 나온다.
“신은 주사위 노름을 하지 않는다 (God does not play dice) ”
닐스 보어
보른은 “전자는 우리가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입자로 존재한다. ψ로 표현되는 확률 파동의 저변에는 분명한 물리적 실체가 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보어는 우리가 관측을 시도하지 않는 한, 전자와 같은 물리적 객체는 어떤 실체를 가진 채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다. 단지 파동함수의 형태로만 존재한다. 우리가 관측을 행하지 않는 한, 전자나 광자 등과 같은 양자적 객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이 무엇이건 간에 ‘가능성’이 ‘현실’로 나타나려면 관측행위가 이루어져야만 한다.
‘관측이 없으면 실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보어의 주장을 이후 ‘코펜하겐 해석’으로 부른다.
코펜하겐 해석을 가장 잘 표현한 시는 김춘수 시인의 ‘꽃’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