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 - 작가 위화가 보고 겪은 격변의 중국
위화 지음, 이욱연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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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은 실로 짜증스럽다. 나한테 도대체 왜 이러는거냐? 이걸 어떻게 리뷰로 쓰라고? 책을 샀어야 했다. 모든 페이지에 줄을 긋고 싶은 책은 아직도 어떻게 리뷰를 써야 할지 모르겠다. 리뷰를 100페이지 넘게 쓸 수 없지 않은가. 위화는 어떻게 A4지 반 페이지도 안 되는 분량의 일기를 써도 촌철살인의 문장 한 두 개를 박아 넣을 수 있는 걸까.

 

중국과 위화

 

오늘 우리의 최고의 현실은 바로 초현실이다.”

 

위화는 옌펑의 말에 동의한다.

 

위화는 왜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 앞에서 늘 창백하고 무력한가. 우리 모든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은 우리 역사와 현실만큼 풍부하지가 않다.”고 말했다. 위화가 겪은 중국 현실의 경험담은 현실이 아니라 초현실처럼 다가온다. 마르케스의 소설 속 한 장면같다. <자무엘 피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의 낚시 이야기는 분명 경험담이겠지. 위화의 유년 시절, 저수지 물이 배수관을 따라 인근 논으로 흘러가, 점점 저수지 바닥의 개펄이 드러나면, 물고기들이 펄떡 거렸다고. 위화는 고기를 잡는 게 아니라 주웠단다. 이 주운 물고기들로 위화는 물고기 입을 뚫고 끈을 꿰어 아가미 밖으로 나오게 했다. 위화는 마치 탄띠를 차듯 물고기들을 러닝셔츠에 찼다.

 

<농구장에서 축구를 하다>의 이야기도 재밌다. 위화는 루쉰문학원에서 공부했다. 땅덩어리도 넓은 중국에서 왜 그런지 모르지만 운동장은 농구장 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학생들은 농구장에서 축구팀과 농구팀이 동시에 운동을 했다고. 농구 골대 밑이 바로 축구 골대였다. 골대가 너무 작아 대개 공을 맞아야 했으므로 아무도 골기퍼를 하려 하지 않았는데, <개구리>, <붉은 수수밭>으로 유명한 모옌이 골기퍼를 했다지. 위화가 슛을 때리려는 찰나, 모옌은 다른 학생들처럼 도망치지 않았다. 위화는 슛을 때렸고 모옌은 배로 막았다. 중국 현대 작가의 피할 수 없는 외나무 다리에서의 한 장면. 웬만한 월드컵 축구 경기보다 흥미진진하다.

 

문학과 위화

 

최근에 소설가가 쓴 산문을 많이 접했다.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 김영하의 <말하다>, <읽다>, <쓰다>, 오에 겐자부로의 <읽는 인간>, 무라카미 하루키의 <직업으로서의 소설가> 등등. 소설가가 자신이 영향 받은 책에 대해 말할 때, 소설 창작의 비기를 털어놓는 책들은 왜 그런지 전혀 질리지가 않는다. 위화의 <우리는 거대한 차이 속에 살고 있다>도 그러하다.

 

무력감이 든다. 읽어도 읽어도 도무지 나의 무지는 몸 구석구석 달라붙어 있는 나잇살마냥 떨어지려 하지 않는다. 중국이나 중국문학에 대해 이렇게 무지할 수가. 바진? 70년대 말, 중국에선 서점에서 책 쿠폰을 받아야 책을 살 수 있었다고 한다. 책 쿠폰으로 두 권밖에 살 수 없었는데, 위화가 산 책이 바진의 <>. 위화가 시대와 작품의 관계에 관심을 갖게 된 첫 작품이라고.

 

모든 사람은 그가 속한 사회에 책임이 있다. 그 사회의 병폐에 대해서도 역시 그러하다.”


- 헨리크 입센

 

소설가이기 전, 치과의사였던 위화는 시대와 사회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위화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작가의 책에 관해 들려준다. 포크너, 하진, 렌츠, 이언 매큐언, 스트린드 베리 기타등등. 이언 매큐언은 <속죄>로 유명하긴 하지만 대표작은 역시나 <첫사랑, 마지막 의식>이 아닐까. 재독해야겠다. 아직까지 하진의 책을 읽지 못했다니, 스트린드베리도. 아으.

 

소설가의 두 가지 유형

 

내 생각에 작가는 서사 차원에서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첫째 유형의 작가는 여러 해 동안의 창작을 통해 자신의 성숙한 서사 체계를 세우고, 이후의 창작에서는 그 스타일의 서사를 계속 끌고 가면서 다른 제재라도 그 체계 속에 수용하는 작가다.

 

둘째 유형의 작가는 성숙한 서사 체계를 세우자마자 자기의 가장 자신 있는 서사 방식이 새로운 제재를 처리하는 데 적절치 않다는 것을 발견하는 경우다. 그렇게되면 그는 새로운 제재를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아야 하고, 그러한 작가의 서사 스타일은 늘 변하기 마련이다. 나는 두 번째 유형의 작가다.

 

지금의 내 창작 원칙은 이렇다. 어떤 제재가 나를 충분히 흥분시키고 오랫동안 창작해나갈 욕망을 불러일으킬 때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그 제재에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는 것이고 동시에 스스로 과거의 창작에서 익숙해진 서사 방식을 잊으려고 노력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이 가장 적합한 서사 방식을 찾는 것을 방해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나는 제재가 다르면 표현 방식도 달라야 한다고 굳게 믿는 까닭에 내 서사 스타일은 늘 변화할 수밖에 없다.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를 조심하세요>를 읽고 있다. 우치다 타츠루의 하루키 논을 받아들인다면 하루키는 위화와 달리 첫 번째 유형의 소설가다.

 

상상력과 통찰력

 

위화에 따르자면, 상상력만으로 소설이 되지 않는다. 상상력은 통찰력과 결합할 때라야 문학으로서 가치를 지닌다. 상상력이 서사의 차이를 만든다. 통찰력은 상상력이 만든 서사의 차이에 활기를 불어 넣는 것이다. 위화는 상상력과 통찰력을 설명하기 위해 여러 예를 든다. 이오의 그리스 신화, 비가 올 때 나타나고 바람이 불 때 사라지는 간보의 <수신기>의 신선 등. 그러나, 가장 인상 깊은 대목은 유르스나르의 소설을 예로 들 때다.

 

유르스나르는 이 부분에서 감탄이 나오는 묘사를 한다. 링의 머리가 잘리고 나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갈 때의 묘사인데, 그녀는 이렇게 썼다. “그런데 그의 목은 기이한 붉은 스카프를 둘렀다.이는 원래의 링과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링 사이에 생긴 차이를 드러낸 것이자, 비례를 드러낸 것이다. 서사를 합리적으로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훨씬 힘 있게 한 것이다. 내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이 붉은 스카프가 서사에서 대단한 이유는 삶의 죽음의 비례 관계를 드러냈기 때문이고, 이처럼 완벽한 비례의 출현으로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것이 이처럼 뛰어나게 묘사됐다는 것이다.

 

위화의 말대로 감탄스러운 묘사다. 유르스나르는 링이라는 인물의 죽기 전과 부활 후의 차이를 단 한 문장의 묘사로 압축했다.

 

삶과 죽음 사이

 

위화에 따르면 삶과 죽음 사이에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영혼이다.

 

삶과 죽음 사이에는 비밀 통로가 있는데, 바로 영혼이다. .....사람과 영혼의 관계란 어떤 경우 삶과 죽음의 관계다. 이것은 거의 모든 문학의 공통된 인식이다. 다른 점은 표현이 다를 뿐이다. 더구나 모든 일과 모든 사물에는 다 영혼이 있다. 예술은 더욱 그러하다.

 

전설에 따르면 백조가 죽음을 맞이하며 부르는 노랫소리가 가장 아름답고 감동적이라 한다. 그래서 서구 미학 전통에서는 최후의 작품이라고 하고, 중국에서는 절창이라 한다.

 

와이프가 TV를 샀다. 와이프 따라 최근에 SBS <신의 목소리>를 봤다. (한 때 나도 한 노래 했었는데) 참 노래 잘하는 사람들 많구나. 아무리 일반인이 노래를 잘 하더라도 프로 가수의 노래에 비하면 무언가 부족해 보인다. 위화의 관점을 따르자면 내가 보기엔 아마추어의 노래에 경우, 대개 영혼이 없다. 아무리 기교가 뛰어나고 고음 처리가 완벽하다 하더라도 한마디로 감동이 없다. ‘절창이 아닌 것이다. 반면 박정현의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는 감동적이다. 박정현의 노래는 사람들이 나이를 먹고 변할 수밖에 없는 현실, 가사의 의미를 청취자에게 돌려준다. 음악에 젖어 있다 보면 저절로 눈물이 찔끔거린다. 박정현의 노래는 절창이다.


문학에 진정으로 어떤 신비한 힘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다른 시대, 다른 민족, 다른 문화, 다른 환경에 속한 작품에서 우리 자신에게 내재된 감성을 읽도록 하는 것이라고. 문학은 그처럼 미묘하다.

 

음악이든 문학이든 예술이란 결국 내 안에 내재된 감성을 일깨우는 게 아닐까. 이제 예쁜 여인을 꽃이라 부르는 건 영혼이 없는 묘사다. 말라르메는 자신이 사랑하는 귀부인을 끌어들여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꽃은 리지 부인을 꿈꾼다.”

 

문학에서의 언어.

 

여러 작가들이 문학에서의 언어의 아름다움 보다는 서술의 정확성을 중시했다. 그 중에 위화가 예로 든 구름과 달의 비유는 가히 압권이다.

 

문학 작품의 언어는 자신의 존재를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서술의 힘과 정확성을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문학의 서사 언어는 눈길이어야 한다. 눈길은 무엇을 보았는지를 위한 것이지, 자신을 전시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눈길의 존재 가치는 보았다는 것이다. 서사 언어는 눈길처럼 생활에서 무언가를 찾고, 독서를 이야기 속 인물과 사상, 감정 속으로 인도한다.

 

중국 전통 미학에 구름을 물들여 달을 표현하는 방법이 있는데, 이를 가지고 서사 언어의 역할을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달을 그릴 때는 구름만을 채색하고 달은 그리지 않지만, 사람들이 보는 것은 달뿐이고 구름은 없다. 내 생각에 소설의 서사, 특히 장편소설의 서사에서 언어는 공을 세운 뒤 물러나야 한다.

 

스포츠와 위화

 

위화가 이토록 스포츠 광 일 줄은 몰랐다. 남아공에 가서 월드컵을 직접 관람하고, 미국에서는 오로지 NBA 농구를 보기위해 미국의 전 도시를 여행할 정도라니. 촌철살인의 문장들이 대개 농구 여행에 관한 일기에 몰려 있다. 왜 일까. 한 가지 예만 들어볼까.

 

뜨거운 댈러스와 습한 마이애미를 거쳐 상쾌한 시카고에 왔다. 기온과 마음이 서로 딱 맞다. 파이널 결승의 폭발적인 열정을 경험한 뒤 이제 안정을 찾았다. 생의 한 단락이 이제 끝났다. 완전히 다른 단락의 생이 이제 시작될 것이다. 기나긴 인생을 사람들은 왜 짧다고 느끼는 것일까? 아름다운 생은 하나하나 작은 단락일 뿐이기 때문이리라. 처음 마이애미 아메리칸 항공 센터에 들어서던 때가 기억난다. 우리 가운데 누가 말했다. “나는 내가 부러워.”

 

 

문학 천재란 무엇인가? 위화에 따르면, 그것은 바로 독자들이 자기 작품을 읽을 때 독특함에서 출발해 보편에 도달하도록 하는 자. 그 예로 이언 매큐언을 들었다. 그러나, 위화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위화의 글은 언어의 온도가 높다. 따라서 독자인 우리도 약간이나마 따듯함을 느낄 수 있다

나는 위화가 부럽다

 

이 세 부분은 간결한 언어를 쓸 방법이 없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죽은 사람의 관점에서 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절제되고 차가워야 했고, 살아 있는 사람의 생기발랄한 말투를 쓸 수 없었다. 현실을 이야기하는 부분은 살아있는 세계의 지난 일을 쓸 때라야 언어의 온도를 조금 높일 수 있었다. 나는 쓰면서 현실 세계의 냉혹함을 느꼈고, 사납게 썼다. 그래서 따뜻한 부분이 필요했고, 지극힌 선한 부분이 필요했으며, 이는 내게 희망을 주고, 독자에게 희망을 주었다. 현실 세계가 사람들을 실망시킨 뒤 나는 아름다운 죽은 자들의 세계를 쓴 것이다. 이 세계는 유토피아도 아니고, 도화원도 아니다. 하지만 무척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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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6-21 20: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1 2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6-06-22 0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이 이렇게까지 격찬하시는 모습은 오랜만이네요.
어떤 책인지 엄청 궁금해집니다.

시이소오 2016-06-22 02:16   좋아요 0 | URL
저는 항상 격찬을 하지 않나요? ㅎㅎ

syo 2016-06-22 02:39   좋아요 0 | URL
격하게 까시는 건 왕왕 본 기억이 납니다! ㅎㅎㅎ
제 기억이 너무 임의적인가봐요 ㅠ

시이소오 2016-06-22 04:16   좋아요 0 | URL
ㅋㅋ 다들 그렇게만 기억하시더라구요.


제 별점 통계를 보면 별이 네 개 넘는데요. ㅎㅎ

희망찬샘 2016-06-22 07: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이소오님 글 읽다보면 덩달아 조금 알게 되어 좋아요. ^^ 도대체 언제 읽고 언제 생각하시고 언제 쓰실까요?! 감탄!

시이소오 2016-06-22 08:23   좋아요 0 | URL
희망찬샘님, 좋으시다니 저도 좋네요 ㅎㅎ

2016-06-22 10: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4: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16: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2 2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깊이에의강요 2016-06-22 21: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짜증날 정도로 좋은 책이라니ㅇㅇ

시이소오 2016-06-22 21:42   좋아요 0 | URL
위화 왕짜증이요
ㅎ ㅎ

2016-06-27 18: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7 18: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이소오 2016-06-27 19:22   좋아요 0 | URL
확인했습니다. 감사합니다. ^^

2016-06-28 11: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6-28 15:0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