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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의 책
폴 서루 지음, 이용현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0월
평점 :
최근 나의 일상은 ‘책과 산책’으로 요약될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근교의 산이나 길을 걷는다. 하루 종일 걷기도 하는데, 지하철에선 주로 폴 서루의 <여행자의 책>을 읽었다. 어딘가로 떠나고 싶다. 만일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이 책을 사서 가져가야지.
삼년 전에도 삶의 위기가 있었다. 동네 뒷산도 가 본적이 없었건만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겨울 지리산 종주를 감행했다. 겨울산은 위험하다고 주변에서 말렸지만, 산에 올라 죽을 운명이라면 일찌감치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이번에도 위기인걸까. 이 책엔 매장마다 필사하고 싶은 문장과 작가, 책들이 즐비하도록 소개되건만(필사 포기), 가장 눈에 들어온 문장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이었다.
“solvitur ambulando.”
솔비투르 암불란도.
‘걸으면 해결된다’는 뜻이다. 스티브 잡스의 말대로, 만일 우리가 무언가를 믿어야 한다면 나는 이 문장을 믿겠다. 솔비투르 암불란도. ‘걸으면 해결된다’를 읊조리며 삼악산을 올랐다. 고작 5km의 코스건만 4시간 30분이나 소요되었다. 너무 ‘소요’하며 걸어서일까? 다음날 임금 체불한 대표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번 내가 전화해서 재촉했었다. 전화 끊고 나서 1분 만에 체불된 임금이 입금되었다. 나처럼 지금 당장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갈 수 없는 형편이라면 동네뒷산이라도 오르자.
걸으면 해결된다.
폴 서루가 ‘이곳에 살고 싶다’가 아니라 ‘이곳에서 죽고 싶다’라는 생각이 든 아홉 군데의 장소.
발리
태국
코스타리카
오크니 군도
이집트 - 카이로가 아닌 다른 곳.
트로브리엔드 군도
말라위
메인 주
하와이
폴 서루가 뽑은 장소 중, 나는 고작 발리와 태국만을 가 봤을 뿐이다. 언젠가는 다른 곳도 갈 수 있겠지.
그러나, 지금 이곳도 나쁘지 않다. 여행은 마음의 상태니까.
여행은 마음의 상태이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얼마나 이국적인 곳에 있는지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
여행은 거의 전적으로 내적인 경험이다.
- 폴 서루, <신선한 공기의 마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