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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 : 운명을 읽다 - 기초편 ㅣ 명리 시리즈
강헌 지음 / 돌베개 / 2015년 12월
평점 :
군대 시절, 수통에 입원한 적이 있었다. ‘우리 과’엔 나와 똑같은 해, 똑같은 달, 똑같은 날에 태어난 군발이가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원했다. ‘허, 별일도 다 있다’ 싶었는데, 돌이켜보니 그와 나의 사주팔자가 비슷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내가 속한 ‘과’는 이비인후과, 피부과와는 달리 고작 스무 명 정도의 환자가 있었다. 그 중에 생년월일이 똑같은 사람을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은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명’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명’과 ‘운’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명리학은 흔히 사주팔자라고 말한다. 음양오행, 천간지지, 십이운성, 신살 등을 토대로 인간의 ‘명’을 알아내는 것이다. ‘운칠기삼’이라기보다는 ‘운칠명삼’이다. ‘주체의 몫’이 운이라면 타고난 소명이 ‘명’이다.
군대를 제대 후, 세일즈 아르바이트를 했다. 난 그 당시 정말 이 제품을 믿었다. 희한하게도 나는 칼을 팔았다. 지금은 주부들에게 꽤나 알려진 칼이다. CUTCO 칼이었다. 팀장까지 했었지만 당시 지점장이 내 실적을 가로채 그만두었다. 천간을 살펴보면 나는 신신(辛辛)병존이다. 신신병존은 오늘날 주로 외과 의사 같은 ‘칼잡이’들이 많다고 한다. 외과의사는 되지 못해 나는 칼을 팔았던 것일까.
사람의 명이 갈리는 부분은 결국 ‘십신’이 아닐까. 십신은 다섯가지로 구분된다. 비겁, 식상, 재성, 관성, 인성이 그것이다. 비겁은 비견과 겁재, 식상은 식신과 상관, 재성은 편재와 정재, 관성은 편관과 정관, 인성은 편인과 정인으로 나뉜다. 나는 상관1, 식신2, 편관 1, 정재 3이다. 정재는 선비이고 학자의 마음이라고 한다. 정재의 키워드는 “정도를 걷지만, 인간적으로 쪼잔하다”이다. 예전에 와이프의 부탁으로 개명을 하기 위해 철학관을 찾아갔더니, 그분은 너무나 답답하다는 듯, 내가 ‘고지식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아마도 정재가 셋이나 있었기에 그렇게 말씀하신 듯. 실제로 고지식한 편이다. 넉살이나 사기를 칠 수 있는 재능이 아예 없다. 속이 훤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나는 ‘정재’가 가진 단점을 개선해야 할 것이다.
십신 이외에 또 십이운성이 있다. 십이운성은 십신과 결합되어 다른 의미로 해석되어진다고 한다. 절, 태, 양, 장생, 목욕, 관대, 건록, 제왕, 쇠, 병, 사, 묘가 그것이다. 나는 제왕이 두 개다. 제왕은 십이운성 중 가장 센 힘이라고 한다. 나 같은 경우엔 정재와 제왕이 만나서 인지 가장 유순한 편이라고 한다. 또한 나는 상관과 사가 만난다. 이런 경우 글을 쓰는 작가나 뭔가를 세공하는 장인, 수술을 주로 하는 집도의 등과 같이 정밀한 분야의 직업을 갖는 것이 좋다고 한다. 명리학으로 보건대, 나는 외과의사가 되었어야만 했다. 그런데 왜 수학을 못했을까. 이런 된장.
여기에 또 신살과 귀인이 있다. 대표적인 신살엔 역마, 도화, 괴강, 양인, 백호, 화개, 귀문관, 공망, 삼재등이, 귀인 가운데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월덕귀인, 문창귀인, 월공, 암록, 천의성 등이 있다.
삼재만 살펴보면 나는 해년생으로 들삼재, 묵삼재, 날삼재의 3년이 모두 힘들다고 한다. 작년이 날삼재였다. 무지 힘들었다. 올 초까지 힘들었다. 삼재 끝이다. 음핫핫.
귀인으로 나는 천을귀인, 천덕귀인, 문창귀인이 있다. 문창귀인은 인문학적인 귀인으로 종이를 가지고 하는 모든 행위에 재능이 있다고 한다. 지식욕이 있긴 하지만 재능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이외에 건강용신, 행운용신, 대운에 대한 설명은 한 두 번 본다고 이해하기엔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어떤 점쟁이는 나보고 ‘한국 영화에 획을 그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아직까지 나는 한국영화에 점 하나 찍지 못했다. 대운은 이미 들어와 있고 삼재가 끝났다. ‘명’대로라면 올해부터 나는 바닥을 찍고 올라설 것이다. ‘운’ 역시 그러해야하지 않을까.
‘명’을 안다는 것은 명대로 살기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명’을 거슬러 삶을 운용하기 위해서이다. 누구에게나 부족한 요소들이 있을 것이다. 각자에게 부족한 점을 어떻게 채울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이 불충분하다는 게 이 책의 아쉬운 점이다. 이 책과 더불어 ‘좌파 명리학’ 프로그램을 다운 받아 각자가 셀프로 자신의 ‘명’을 확인해 보는 건 어떨지. ‘명’을 안다면 ‘운’을 개척할 수 있으므로.
밑줄 친 문장
명리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의 운명이 고정되거나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리고 “천변만화하는 우주적 속성의 한 부분으로, 인간의 근원을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을 변치 않고 말해주는 학문이다.
20세기 한국 명리학의 태두 중 한 사람인 도계 박재완은 인간의 길흉화복은 환혼동각에 의해 결정된다고 말했다. 환은 사람으로 태어났는가의 여부를 말하고, 혼은 조상의 환경이며, 동은 태어난 나라와 시대이고, 각은 바로 그 사람의 자유의지의 깨달음이다.
명리학은 무엇인가? ‘운명(運命)’이라는 말에 이미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이 말 자체가 이미 운명은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운’은 ‘운용한다, 운전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명’은 주어진 요소들을 가리킨다. ‘명’과 ‘운’을 합친 말이 바로 ‘운명’이고, 이것에 대한 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 바로 ‘명리학’이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각자 자기만의 소명을 갖고 태어난다. 이것이 명이다. 그 명을 키우고 발현시켜 자신의 삶 속에서 실현하는 것은 오로지 그 주체의 몫이다. 같은 시간에, 같은 공간에서, 같은 운명을 타고났다고 해서 그 두 사람의 삶이 같은 것은 아니다.
이렇게 <연해자평>을 거쳐 청나라 시대를 지나며 <적천수>와 <궁통보감>의 두 개의 틀을 바탕으로 명리학은 다양한 이론의 확산과 발전을 거듭하면서 19세기와 20세기 그리고 지금의 모습으로 이어져 왔다.
19세기와 20세기를 지나며, 일본과 중국에서는 아베 다이장과 웨이첸리라는 명리학계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한국에도 20세기 들어 세 명의 위대한 명리학자가 존재했다.....첫 번째 분은 명리학의 자존심 자강 이석영 선생이고, 두 번째는 도계 박재완 선생, 마지막은 가장 영민하고 천재적 재능을 지닌 사람이라 불리는 제산 박재현 선생이다.
판에는 이판과 사판이 있다. 이판은 눈에 보이지 않는, 형이상학적인, 어떤 현상을 인간적인 직관에 의해 판단하는 것이다. 사판은 현실적인, 눈에 보이는 것들을 다 고려해서, 형이하학적인 경험론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적천수>에는 다음과 같은 음미할 만한 구절이 있다.
“오양종기불종세 오음종세무정의”
“다섯 개의 양은 기를 따르되 세력을 쫓지 않고, 다섯 개의 음은 정과 의리 없이 세력을 쫓는다. ”
한마디로 양은 ‘명분’이고 음은 ‘실리’라는 이야기이며, 부드러움은 능히 굳셈을 제어할 수 있지만 굳셈은 부드러움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