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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 ㅣ 마음산책 짧은 소설
이기호 지음, 박선경 그림 / 마음산책 / 2016년 2월
평점 :
나만의 2014년 최고의 한국 장편 소설 3편을 뽑자면 한강의 <소년이 온다>, 성석제의 <투명인간> 그리고 이기호의 <차남들의 세계사>다. (그러고보면 2015년 최고의 한국 소설은 뭘까? 언뜻 떠오르지가 않는다.뭐가 있는지요? )
한국 소설가 중 웃길 줄 아는 소설가는 성석제, 이기호, 천명관, 윤성희 정도가 아닐까. 그 중에서도 성석제와 이기호는 우열을 가르기 힘들만큼 웃긴 소설가다. 웃기다기 보다는 ‘웃픈’소설가라고 해야 할까. 성석제나 이기호의 소설을 읽다 낄낄거리고 웃다보면 어느새 울고 싶어진다. <웬만해선 아무렇지 않다>는 단편집이라기 보단 콩트집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짧은 글이지만 ‘웃픈’ 세상사는 짧지 않았다.
검도 도장 관장인 승혁 씨는 중학생 아이를 폭행했다는 이유로 고소당한다. 중학생 아이가 소녀 시대 태연 양을 험담했기에 때렸다나. 형사가 합의를 종용하자 “사랑이 어디 합의할 수 있는 거던가요?”라며 합의를 거부하는 승혁씨. <벚꽃 흩날리는 이유>
‘그’는 중동에서 삼십 년 살았다는 할머니 옆 좌석에 앉아 있다, 메르스가 걱정되어 스튜어디스에게 자리를 바꿔달라고 요청한다. 할머니는 부천시 중동에 사신다고. <타인 바이러스>
편도 차비만 손에 들고 강원도 해수욕장을 찾은 세 젊은이들은 유흥비를 벌기 위해 주차장 알바를 시작한다. 사흘 만에 더위 먹고, 화상입어 지쳐버린 친구들은 알바를 그만두고 사장에게 돈을 달라고 하는데 숙박비, 식비 빼고 받은 돈은 세 사람 분 고작 팔 만원. 해변엔 사람들이 웃고 뛰어다니는데. <그녀와 마주친 어느 오후>
나는 자살을 하기 위해 고속도로 쉼터에서 번개탄을 피우려는데 주변에 정차한 트럭 기사가 ‘라이터 불’을 달라고 계속 귀찮게 한다. 자꾸만 귀찮게 하는 트럭 기사에게 나는 벌컥 화를 낸다.
“저기 그러지 마시고요, 선생님. 여기 벤치에 앉아서 저하고 같이 고등어나 한 마리 구워 드시죠. 어차피 라이터도 저 주셔서 번개탄 붙이기도 어려울 텐데.....뭐,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
그의 말에 ‘나’는 자신도 모르게 뚝뚝 눈물을 흘린다. <미드나잇 하이웨이>
(나도 모르게 나도 운다.)
‘나’는 아버지 산소 옆으로 어머니가 키우던 봉순이를 매장하기 위해 땅을 판다. 어머니 말로는 봉순이가 잠든 어머니를 보고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고. 봉순이가 엎드려 있던 곳엔 어머니의 양말 두 짝이 얌전히 놓여 있었다.
“사람한테 일 년이 강아지한텐 칠 년이라고 하더라. 봉순이는 칠 년도 넘게 아픈 몸으로 내 옆을 지켜준거야. 내 양말을 제 몸으로 데워주면서.” <우리에겐 일년, 누군가에게 칠년>
사업을 말아먹은 기준씨는 아들의 축구 실력에 희망을 걸고 아들을 유소년 축구단에 가입시킨다. 아들은 긴장해서인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것 같다. 아들은 공 한번 제대로 차지 못했다. 아들 말로는 자기 학교에서 축구할 땐 다섯 명 씩 하는데 -아들 학교는 전교생이 30명 이다. - 여긴 열한 명씩 한다고...애들이 너무 많단다. 그 말을 들은 기준 씨는 곧 울 것만 같은 심정이 된다. < 달려라 아들 >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1년 만에 해고당한 그는 어느날 tv를 보다가 또띠아 토스트를 해먹기로 하고 부엌에서 조리를 한다. 밀가루 반죽을 하다 소주병이 깨져버리고 새벽 네 시에 놀라서 깬 부모님이 거실로 뛰쳐나온다. 어머니가 만두를 해먹으려고 했던 거냐고 묻자 그는 “또띠아를 해보려고....”했다고 말한다. 아버지는 어머니에게 묻는다.
“뽀삐를 왜 해먹어? 이 새벽에?”
하고 싶은 말은 많았으나, 그저 모든 것이 부끄러워졌을 뿐이었다. 나는 그저 무언가를 다시 해보려고 했을 뿐인데......그는 괜스레 케이블 tv 속 셰프가 원망스러웠다. 누구에겐 초간단 요리가 또 누군가에겐 그렇지 않음을.....아무도 그것을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초간단 또띠아 토스트 레시피>
시골의 아버지는 ‘노을 다방’ 미스 심을 태우고 가다 오토바이 사고를 일으킨다. ‘그’는 아버지를 서울 병원으로 모신다. 그와 함께 병원 로비 프랜차이츠 커피 전문점으로 간 아버지는 다방 문화에 익숙해서인지 카운터 여자 아르바이트 생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가씨도 한 잔 마셔.”
그가 전화를 받기 위해 커피숍 바깥으로 나간 사이, 아버지는 테이블 앞에서 부르르 떠는 진동벨을 놓고 안절부절 어쩔 바 몰라한다. 그러다, 결국 아버지는 진동 벨을 귓가에 갖다 댄다.
“여보세요?” <입동전후>
가진 자 들의 자유를 부르짖는 신자유주의, ‘돼지 같은 자본주의’ 세상은 철창이 무너진 동물원과 같다. 너나 나나 모두 다 ‘가려워 보인다’. 가려운 데 긁을 수 없으면 어떡할까?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면 된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손을 내밀어 볼까.
“그냥 허기나 채우자고요. 별도 좋은데.”
(우왕, 한강님의 맨부커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