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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그날의 기록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지음 / 진실의힘 / 201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돌아가신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2년동안 지옥 같은 삶을 견뎌내야 했을 유가족분들에게도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거꾸로 물어보자. 세월호 승객들을 죽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거의 수십 가지 정도의 조건들이 들어맞아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관련된 공무원 누구 한 사람이라도 “배 밖으로 나와서, 바다로 뛰어 내리세요”라는 한 마디 말을 했다면 전원 구조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약속이라도 한 듯 모든 공무원들은 ‘바다로 뛰어내리게’ 조치하지 않았다. 대통령비서실, 국가안보실, 안전행정부, 해양수산부, 해경본청, 서해해경청, 목포해경, 헬기 511호, 헬기 512호, 헬기 513호, 해경 123정, 항공기 703호, 청해진 해운, 인천항만청, 인천해경 등등.
세월호 선장과 직원들, 제일 먼저 출동한 해경 123정의 직원들. 그래 좋다. 자신들의 목숨이 아까워서 구조하지 않았다고 하자. 그런데 헬기에 타고 있던 항공구조사들은 경력25년 차의 베테랑들이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몰랐던 사실이다.)
즉 이들은 몸에 밧줄만 감으면 어디로든지 갈 수 있는 특공대원 들이다. 또한 이들은 선박이 침수 상황시 승객들을 바다로 뛰어내리게 하는 게 가장 급선무의 행동이라는 걸 충분히 숙지하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그저 헬기 바스켓에 몇몇의 사람들만 올려 보냈다. 시간이 부족해서? 서해해경청 소속 헬기511호가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 25분이었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배가 가라앉은 10시 17분까지의 가해자 측, 즉 국가가 내민 기록들에만 집중한다. 책의 내용만 봐서는 왜 국가가 세월호 승객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밝히기엔 무리가 있다. 이 책의 한계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진실을 파헤치는 책은 아니다.
다만 질문을 던진다. 국민 모두에게.
‘왜 국가가 구조하지 않았을까?’,
‘왜 아이들을 죽여야만 했을까?’
‘도대체 왜 죽인 걸까?’
세월호는 국정원이 관리한 배다. 세월호와 똑같은 항로를 운항하는 <오하나마호>의 해난보고 계통도에는 국정원이 없지만 세월호의 ‘해난보고 계통도’에는 국정원 제주지부와 인천지부가 가장 먼저 등장한다.
세월호 보안측정이 끝난 이후에 가진 국정원과 청해진 선사대표의 미팅 직후, 제주지역 본부장 이성희는 3월 22일 메모에 이렇게 적었다.
“소름끼치도록 황당한”
도대체 국정원이 지시한 어떤 내용이 “소름끼치도록 황당”했을까? 국정원은 세월호의 면허를 내주지 않았다. 1개월간 점검을 때렸다. ‘면허’를 미끼로 국정원은 청해진 해운과 어떤 딜은 한 것은 아닐까? 아마도 청해진 해운 측은 초기에 국정원의 제안을 거절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국정원은 ‘국민이 알아서는 안 될 어떤 것’을 세월호에 실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게 뭘까? 이상호 기자는 세월호에 폭발물이 실렸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렇다고 해서 세월호 승객들을 죽여야 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아이들의 문자 내용 중 ‘가스, 혹은 삶은 달걀 냄새’에 주목한다. 만일 세월호에 실린 ‘어떤 것’이 방사능 물질이라면? 혹은 바이러스 같은 거라면? 그래서 그것이 생존자들 몸에 흔적을 남기는 거라면? 혹은 그것이 전염을 유발할 위험성이 있는 거라면? 혹은.........
도대체 수백 명의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숨겨야 할 ‘어떤 것’의 정체는 뭘까.
청와대는 애초부터 구조에 전혀 관심이 없었다. 청와대가 제일 먼저 출동한 123정에 요구한 건 오로지 ‘영상’이었다. 그것도 수십 번이나. 왜 청와대에선 영상이 필요했을까?
청해진을 파고들면 국정원이 나온다. 이 책에서 언급하지 않은 언딘을 파고들면 뭐가 나올까. 언딘은 구조업체가 아니라 인양업체다. 언딘를 파고들면 일단은 새누리당이 나온다. 또한, 폴리텍 대학, 정수 장학회, 그리고 박근혜가 굴비 한 두름 마냥 줄줄이 엮여 나온다. 결국 세월호의 어디를 파건 청와대의 박근혜로 수렴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건 사법부의 태도다. 1심 재판부는 세월호 가해자 측에 비교적 엄한 처벌을 내렸다, 그러나, 2심, 대법원에선 1심 판결을 전부 뒤엎었다. (몰랐다.) 마치 사법부는 인자한 어머니마냥 ‘보호자’를 자처한다.
왜 그럴까? 국민정서를 외면하면서까지 왜 사법부는 이들을 보호하려고 하는 걸까? 어떤 외압이 작용한 것일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가설을 말하지 않겠다. 위에 언급한 의문들은 이 책과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언급한 내용들이다. 다만 말할 수 있는 것은 세월호 진실이 밝혀진다면 새누리당은 두 번 다시 이 땅에서 집권할 수 없을 것이다. 더민주, 국민의당, 정의당 등은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학살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청문회 증언대에 세워야한다. 그러라고 뽑아준 거다.
9.11 이후, <9.11 조사위>는 1년 8개월 동안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1,200명의 사람을 만났고, 총 12차례의 청문회를 열었다. 부시 대통령, 딕 체니 부통령, 국방장관, 국무장관, 등등 전, 현직 고위 정부 인사가 모두 증언대 앞에 섰다.
반면 한국의 세월호는? <세월호 특조위>는 정부와 새누리당 방해로 아무것도 한 게 없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자는 것은 각자의 정치적 신념, 선호와는 전혀 무관한 일이다.
한 어린 아이가 물속에 빠지면 어느 정당을 좋아하는지 물어보고, 자신이 좋아하는 정당을 좋아해야만 구해줄 건가?
만약 지금 어떤 사람이 문득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렇게 되는 것은 어린 아이의 부모와 교분을 맺기 위해서가 아니고, 마을 사람들과 친구들로부터 어린 아이를 구했다는 칭찬을 듣기 위해서도 아니며, 어린 아이의 울부짖는 소리가 싫어서 그렇게 한 것도 아니다.
이것을 통해서 볼 때
측은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고,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다면 사람이 아니다.
- <맹자, 공손추 상>
이 책을 읽는 게 힘들 수도 있다. 나 역시 힘들었다.
눈물 없이, 분노 없이 읽기 힘들 것이다.
그래도 읽어야 한다. 우리가 사람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