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불감증 - 유동적 세계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너무나도 소중한 감수성에 관하여
지그문트 바우만.레오니다스 돈스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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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중 하나는 이거예요. 사람들은 평범한 것은 아주 흔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내가 생각한 것은......내가 말하려던 바는 그게 아니었어요. 나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고, 우리 각자는 아이히만과 같은 측면을 갖고 있다는 말을 하려던 게 절대 아니에요. 내가 하려던 말은 오히려 그 반대예요!


아이히만은 완벽하게 지적이었지만 이 측면에서는 멍청했어요. 너무도 터무니없이 멍청한 사람이었어요. 내가 평범성이라는 말로 뜻하려던 게 바로 그거예요. 그 사람들 행동에 심오한 의미는 하나도 없어요. 악마적인 것은 하나도 없다고요! 남들이 무슨 일을 겪는지 상상하길 꺼리는 단순한 심리만 있을 뿐이에요. 그렇지 않아요?

 

한나 아렌트, <한나 아렌트의 말>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을 말할 땐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다는 뜻은 아니었다

지그문트 바우만에 따르면 유동하는 근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아이히만이 있다.

 

오늘날 악은 누군가의 고통에 제대로 반응하지 못할 때, 타인에 대한 이해를 거부할 때, 말 없는 윤리적 시선을 외면하는 눈길과 무감각 속에서 더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탈도덕화의 구원으로 등장하는 것은 소비주의 문화다. 이제 인간은 타인을 상품처럼 대한다.

 

우리는 점차 둔감해져간다. 요제프 로트는 우리의 습관적인 둔감함의 메커니즘을 이렇게 설명했다.

 

큰 재해가 발생하면 근처에 있는 사람들은 충격 속에서도 발 벗고 나선다. 급성 재해들은 확실히 이런 효과를 낳는다. 사람들은 재해가 곧 지나갈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만성 재해들은 이웃들에게도 너무 께름칙한 나머지 그들은 재해나 재해의 피해자들에게 점차 무관심해지며 심지어 노골적으로 짜증을 내기까지 한다. ...위급 사태가 질질 끌게되면 도움의 손길은 다시 주머니 속으로 들어가고 동정의 불길은 차갑게 식는다.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도덕적 불감증> p.80

 

<세월호 학살>은 국가가 국민들의 습관적인 둔감함을 인식시키기 위해 기획된 것일까? 우리는 점점 더 시들해지고 무감각해진다. 이런 태도는 결국 또 다른 재난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 다음 재난의 피해자는 누가 될까? ‘는 아닐 거라고? 과연 그럴까? 혹은 만 아니면 재난은 일어나도 되는 건가?

 

재해가 오래 지속되면 초기의 충격과 격분이 망각 속에 빠지고 피해자들을 향한 인간적 연대가 메마르고 쇠약해짐에 따라 재해 자체가 지속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그리고 미래의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여러 힘이 결합할 가능성은 서서히 약화된다.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키스, <도덕적 불감증> p 81

 

 

바우만에 따르면 오늘날 99%프레카리아트’(신자유주의 시대 불안정한 무산계급, 좀비 용어가 된 프롤레타리아를 대체하는 용어). 프레카리아트는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 쥐꼬리만한 임금을 받더라도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 프레카리아트는 해고되었거나 앞으로 해고될 것이다.

 

오늘날 99%는 공포 속에 살아갈 뿐이다. 공포는 세 가지로 이루어져있다.

 

첫째 무지이다. 이것은 미래에 무슨 일이 닥칠지, 어떤 종류의 불행이 어디에서 닥칠지,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입힐지 등에 대한 무지이다.

 

둘째는 무기력이다. 이것은 불행이 닥쳤을 때 그것을 피하거나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없는 것과 다름없다는 의구심이다.

 

셋째는 앞의 두 이유에서 파생하는 굴욕감이다.

 

99%는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국가에 헌납한다. 공항에서 우리는 기꺼이 우리의 알몸을 국가에 바친다. 이제 국가는 국민을 길들이기 위해 더 나은 공포를 창조한다.

 

아동 강간범은 네 이웃이다.”,

 

외국인은 연쇄살인범이다.”

 

국가가 모든 걸 감시하지 않으면 테러가 일어날 것이다.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자.

테러방지법을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다.”

 

공포를 이겨내고 싶으면, 남들과 다르고 싶으면,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라!

소비하지 않는 자는 죄인이다. 소비하는 자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는 자는 빨갱이다. 규제 철폐, 구조 조정, 민영화만이 살 길이다.”

 

경쟁만이 살 길이다. 네 이웃이, 외국인이 네 일자리를 빼앗아 갈 것이다.”

 

언론, 신문, 방송, 지식인들은 서로가 앞 다투어 힘 있는 자들의 눈에 들기 위해 오늘도 매일 매일 구호를 떠들어 대고 있다. 양심을 팔아먹은 것들에 힘입어 오늘날 프레카리아트는 연대가 불가능할 뿐더러 오히려 서로에게 적대적이다.

 

기득권들은 이승만이 국부라고 떠들어댄다. 국부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전쟁이 터져서 우리의 국부께서 도망가실 수도 있다. 선조도 그러지 않았나? 그런데 우리의 국부는 가만히 있으라고 라디오 방송 틀어놓고 왜 한강 다리는 끊고 도망가서 국민들 피난도 못 가게 하셨을까? 한강 다리 아래로 얼마나 씨벌건 강물이 흘러야 우리 1%들은 만족하실려나. 1%눈에 들기 위해 지식인들께선 또 얼마나 많은 역사와 기억을 조작해야 만족하실려나. 언젠가는 이승만이 나뭇잎을 타고 한강을 건너셨다 주장하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악이 도처에 만연해 있는 오늘날 어떻게 하면 우리는 도덕적 감수성을 회복할 수 있을까?

체코 공화국 초대 대통령이었던 바츨라프 하벨에서 답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다른 진정한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하벨은 가시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어떤 장비도 갖추고 있지 않았다. 그의 뒤에는 잘 조직되고 견고한 정치 기구에 기초한 대규모 정치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에게는 풍성하게 쓸 수 있는 공금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의 말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군대도 미사일 발사기도 비밀경찰이나 정복경찰도 없었다. 그에게는 그를 유명 인사로 만들고 그의 메시지를 수백만에게 전달해 그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고 따르도록 만들어줄 대중매체도 없었다.

 

사실상 하벨에게는 역사를 바꾸려는 그의 노력에 사용할 수 있는 세 가지 무기만이 있었다. 그것은 희망과 용기와 불굴의 의지였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많은 적든 가지고 있는 무기이기도 하다.

 

- 지그문트 바우만, 레오니다스 돈스카스, <도덕적 불감증>

 

머릿속에 박힐 정도로 나는 반복하고 반복할 것이다.

 

숨 쉬는 한, 나는 희망한다. Dum spiro spero”

 

(전공자가 아닌 자가 번역하면 이꼴 난다. 불굴의 의지로 읽어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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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3 0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복잡했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 드네요

시이소오 2016-04-13 07:34   좋아요 1 | URL
`영혼을 위한 삼계탕`을 드신 느낌이시겠네요. ^^

영혼을위한삼계탕 2016-04-13 07:4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네 ^^

꼬마요정 2016-04-13 08: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사려다가 번역 때문에 망설이고 있는데요.. 읽을 수 있을까요? ㅠㅠ

시이소오 2016-04-13 08:11   좋아요 0 | URL
짜증스럽긴 합니다만 불굴의 의지를 불태우신다면 읽을 수 있습니다 ㅋ^^

초란공 2016-04-13 09: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좋은 내용의 책인데 읽기는 짜증이 나긴합니다. 하지만 전공의 여부와는 무관한것 같아요. 잘 읽었습니다~!^^

시이소오 2016-04-13 09:32   좋아요 0 | URL
그런가요? 오자, 탈자, 비문, 오문들도 많지만 용어번역도 의아스럽드라구요. 바우만의 다른책에서 사회학자 노명우 씨 번역은 자연스러웠거든요 ^^

samadhi(眞我) 2016-04-13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서를 읽을 능력도 없으면서 번역에 무지 민감한 더러운(?) 성격의 소유자인 것이 한탄스럽네요.

시이소오 2016-04-13 21:27   좋아요 0 | URL
ㅋㅋㅋ 저도 그런걸요. 이 기회에 저도 영어 공부나 할까봐요. 가끔 참 답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