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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 중독 - 공부만이 답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엄기호.하지현 지음 / 위고 / 2015년 12월
평점 :
정아은의 <잠실동 사람들>을 읽기 전까진 중산층 교육열이 그 정도일 거라곤 상상도 못했다. 초등학교 2학년이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하다니! 잠실이 이정도면 대치동은 어느 정도란 말인가.
우리 세대야 베이비 붐 세대여서 초등학교 때도 한 반 70명에 오전, 오후반이 있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대학가기도 그만큼 어려웠을 것이라 막연히 생각했는데 소설을 보니 그때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은 듯 했다.
한국의 사려 깊은 사회학자 엄기호와 신뢰할만한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이 대한민국 ‘공부 중독’현상에 대해 논한다.
엄기호는 학생들이 아프다고 말한다. 학생들은 ‘공부 중’이다. 학생들은 ‘공부 중’이면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절대로 타석에 직접 서려 하지 않는다. 타석에 서지 않아야,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는 만능감을 해치지 않을 수 있다.
20대 아이들은 기본적인 대인관계에서도 서툴고 오로지 자기만을 생각할 줄 밖에 모른다. 그들은 현실을 게임처럼 받아들인다. 자신이 열심히 했다면 아이템이 주어지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현실이 그렇지 않을 경우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폭력적이 되기까지 한다. 데이트 폭력이 그러한 예이다.
이들은 자기중심성은 강하지만 자기 의견이 없으므로 어떤 결정을 할 때에는 다른 사람 얘기에 쉽게 넘어가기도 한다. “정답이 뭐냐?”라는 질문만 받아온 아이들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인다.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구경’한다. 교재마저 형광펜이 칠해져 나오는 형국이다.
누가 아이들을 공부로 모는가? 물론 부모다. 특히나 486세대들. 이들은 실제로 공부를 통해 성공한 세대기도 하다. 하지현은 486세대가 굉장히 운이 좋은 ‘프리 라이딩’시대였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공부를 통한 계급 상승이 가능하던 세대였다. 그러나, 그런 모델은 이제 끝났다. 신광영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오늘날 열에 아홉은 계급 유지에 실패했다.
특히나 하지현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평균을 너무 높게 잡는다고 지적한다. 흔히 말하는 ‘서연고서성한중경외시’의 대학 정원은 3만 명, 수험생들은 65만 명이다. 4.5퍼센트다.
가장 교육에 목을 메고 있는 계층은 중산층이다. 그렇지만 판돈은 점점 더 커지고 아웃풋의 효과는 미비해지고 있다. 더 나아가 중산층 아이들이 대학에 가면서 신 빈곤층으로 추락하는 경우도 있다.
엄기호, 하지현은 과도한 사교육이 이제 ‘투자’가 아니라 ‘투기’라고 말한다. 하루빨리 이 미친 짓을 그만두어야 한다. 부모들은 사회구조가 바뀌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다고 반박한다. 하지현은 생각의 전환과 용기를 가지고 한 사람이라도 먼저 이 트랙을 빠져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여 임계점을 넘으면 보다 건강한 교육 시스템이 작동할 수 있을 것이라고.
얼마 전, 아이들 놀이 책을 써서 제법 유명해진 친구와 카톡을 했다. 그 당시 친구는 아이들 교육 때문에 외국에 있었다. “놀이 책 썼으면서 아이들 유학 보내는 거 좀 그렇지 않냐?”고 물었다. 친구는 톡했다.
“그건 노는 거고 이건 공부지.”
‘아, 그렇구나.’ 작금의 교육 문제. 트랙에서 벗어나는 게 쉬운 일은 아닌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타석에 들어서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고 핑계를 대곤했었다. ‘내공을 쌓는다’라는 표현대신 헨리 밀러의 말을 빌려 ‘렌즈를 닦는다’라고 말했다. 지금은 충분하지 않다고. 만일 렌즈가 완벽해지는 날이 온다면 그때엔 모두가 어리둥절할 정도로 놀라운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선명하게 보여주겠다고.
실제로 부족하다 느껴서 였겠지만 한편으론 ‘만능감’을 유지하고 싶어서였다.
‘지금은 하지 않아. 하지만 내가 준비가 되면 나는 최고로 잘 할 수 있어.’
렌즈처럼 완전해지는 순간이란 없다. 저질러야 한다.
그래야 자신의 수준을 가늠할 수 있다.
읽으면서 꽤나 뜨끔 거렸다. 혹시 나도 ‘공부중독’이 아닐까.
나 역시 여전히 삶을 회피하고 식민화하는 공부를 하는 중일까.
삶의 무게를 지고 싶지 않아서 책 속으로 도망치고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