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불을 가진 아이 ㅣ 사계절 중학년문고 9
김옥 지음, 김윤주 그림 / 사계절 / 2008년 1월
평점 :
이 책을 읽으면서 왜 이리 속이 상한지... 감정이입이 정말이지 제대로다.
주인공 최동배는 정말이지 억울한 아이다. 집이 가난해서 억울하고, 구구단을 잘 못 외워서 억울하고, 참 좋은 아버지를 가지지 못 해서 억울하다.
마을의 돌산에서 돌을 쪼다 돌 조각이 눈에 박혀 한쪽 눈을 잃어 의안을 한 아버지는 열심히 일하시지만 다친 눈 때문에 섬세한 일을 하지 못해 벌이도 시원찮다. 며칠 만에 집에 내려 오실 때는 술을 드시고 오시고, 그리고 그 술주정은 동배와 엄마가 감당하기에는 힘이 든다.
차를 몰고 가서 시장에서 화장품을 펼쳐 두고 파시는 엄마는, 동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사랑하는 엄마를 동배는 항상 맘 아프게 한다. 친구의 돈을 훔쳐서 맛있는 거 사 먹고(그리곤 그걸 잡시 빌려 쓸 뿐이라 합리화하고), pc방에 가고... 여러 번 그 일을 되풀이하여 이제는 공부도 못 하고 남의 물건 훔치고, 싸움박질하는 나쁜 아이가 되어 모두의 눈총을 받기 때문이다.
친구의 돈을 훔쳐 pc방에 가서 그 돈을 다 써 보지도 못 하고 중학생 형아들에게 삥을 뜯기고 마는 동배는 그것 또한 억울하다. 항상 야단 맞고,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고, 어머니를 울게 만드는 자신이 처한 현실은 하느님을 애타게 불러 봐도 해결되지 않는다. 친구들에게는 그런 나쁜 아이로 낙인이 찍혔으나 그래도 지훈이가 친구가 되어 주어 참 다행이고 그나마 부자집 공주님 세령이가 동배의 시린 발을 걱정 해 주어 참 다행이다. 아버지에게 두드려 맞은 돈 5,000원(미안해서 아버지가 주신 돈)으로, 진짜 자기 돈으로 세령이가 예쁘다고 하던 장갑을 사서 주었을 때 훔친 돈 취급을 받은 것이 억울해도 그 동안 저지른 잘못이 있기에 어쩔 수 없다.
'불'
불은 이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구심점이다. 선생님 책상에서 라이터를 슬쩍 해서 불장난을 하다 지나가던 경찰아저씨에게 들켜 파출소까지 행차하시고, 소지품 검사에서 선생님에게 걸려 혼나고...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선생님 책상 서랍에 있던 성냥을 슬쩍하는 동배. 성냥 10알을 귀하게 귀하게 여기며 성냥 팔이 소녀가 성냥 켜듯이 그렇게 하나씩 하나씩 켜 나간다. 그 사그러지는 성냥불과 함께 동배의 가슴 아픈 마음이 날아가기를.
사실, 동배 같은 아이를 만났다면 난 온전히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 전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 가정 사정을 다 들여다 보지 못해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설령 들여다 본다고 해도 가슴 아프다고 생각만 하지 해 줄 수 있는 것은 전혀 없을 것이다. 그래서 그 사실이 어쩜 더 속상할지도 모르겠다. 그건 어쩜 다른 이의 몫이 아니라 동배가 해결해야 할 몫이리라.
불을 가진 아이, 동배는 엄마가 집을 나가지 않기를, 사랑하는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도망가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다가 엄마 오는 소리를 듣고 도리어 자기가 집을 나간다. 엄마가 집 나갈까봐 맘 졸였던 것이 억울해서 엄마도 자기 때문에 그렇게 맘 졸여 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빈집(자기 집 말고...)에서 혼자 마지막 성냥불을 켜다가 집 하나를 홀라당 다 태워 버리고 만다. 잠이 들었다 깨어 깜짝 놀란 동배는 언제나 그런 것처럼 잘 외워지지 않는 구구단을 외운다. 항상 어렵고 무섭고 곤란한 일을 만나면 외우던 그 구구단. 반쪽이 산에는 오늘도 술을 마시고 쓰러져 자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빠가 있는데, 아빠는 이제 좋은 아빠가 될지도 모르는데, 불이 그 산으로 번지면 어쩌나, 자신이 불 냈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게 되면 어쩌나, 엄마에게 가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그 복잡한 마음은 구구단을 외우면서 "이제는 구구단을 다 외울 수 있다고!"라고 악을 쓰는 동배를 더욱 슬프게 만들어 버린다.
군더더기 없이 잘 쓰여진 글, 인물의 심리 묘사가 너무 완벽해서 완전히 책 속에 빠져 들게 하는 글, 그리고 동배(같은 아이들)에게 해 줄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나를 속상하게 만드는 글. 아니, 정말이지 사실을 말하자면 동배의 얼굴에서 나의 그맘때의 모습이 자꾸 겹쳐져서 더욱 속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쁘셨던 엄마, 가정적이지 못한 아빠, 남들처럼 살지 못하는 우리가 속상해서 내가 이 다음에 선택한 삶은 정말 억울하지 않도록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딱 그맘때의 모습이 자꾸 떠올라서 그래서 더욱 이 책을 읽으면서 속이 많이 상했는지도 모르겠다.
참 글 잘 쓰시는 김옥 선생님 덕에 좋은 책을 하나 만났다. 불을 가진 아이들의 마음의 불을 하나하나 꺼 줄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과연 무엇이 해야 하나를 계속 생각 해 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