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爾)
조선조때 왕이 신하를 높여 부르는 호칭으로 극중에서 연산군이 자신이 아끼는 궁중광대 공길을 부르는 호칭.
공길
천민 광대의 신분으로 역사적 실존 인물로서, 연산군일기 60권 22장 <배우 공길이 논어를 외워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다워야 하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 임금이 임금답지 않고 신하가 신하답지 않으니 비록 곡식이 있은들 먹을 수가 있으랴"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경중우인(京中優人)
서울에 거주하며 왕이나 종실의 사람들을 위한 잔치에 불려다녔던 예인, 또는 광대로 오늘날의 개그맨과 같다고 보면 된다. 주로 왕실이나 양반집에서 숙소를 제공하며 놀이를 즐겼을 것인데 보통 천민들로 구성되어 수도인 장안에 거주할 수 없는 신분이었는데 이와 같은 경우는 예외라고 할 수 있다.
소학지희(笑謔之戱)
몸과 기예가 필요한 규식지희(칼 삼키기, 줄타기 등)과 달리 주로 말장난, 성대모사, 흉내내기, 재담, 음담패설 등 언어유희를 이용해 시정을 풍자하고 정치적 비리를 고발했던 조선시대의 언어유희로서 웃음을 유발시키는데 소품이나 연극적 장치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고도 한다. 우희(優戱), 골계희(滑稽戱), 배우희(俳優戱) 라고도 불린 소학지희는 소규모로 이우어졌을 가능성이 크며, 놀이는 우인(배우)의 기량에 많이 좌우되는 놀이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놀이는 왕이나, 혹은 양반들이 여흥을 위해 우인들을 불러 내전이나 뜨락에서 부대설비 없이 손쉽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