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관계로...

오전 내내 어무이와 아부지랑 셋이서 설 음식 장만을 했다.

동생 뺀쭉이는 안방에서 퍼질러 잤다. --^

솔직히 난 그저 간단한 보조 (심부름, 부침가루 묻히기 등...) 만 했다.

지독한 요리 치다 보니 어무이도 이젠 포기하셨다.

그러나 울 아부지 전 부치는 솜씨도 영 아닌 모양.

어무이...반년치 바가지는 다 긁으신 듯 하다.

아무리 이거 만들어서 우리 식구 먹을 거라지만...

설 음식 장만 하기는 귀찮고, 힘들다.

차례상 차리고 나면 그 산더미 같은 설거지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매년...명절 스트레스 어쩌구 하는 건 거짓 보도가 아님에 틀림없다.

한국의 어머님들! 진정 대단하십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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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6-01-28 15: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ㅠ.ㅠ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어릿광대 2006-01-28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만두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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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뱃돈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중국에서 시작돼 한국, 일본, 베트남 등으로 퍼져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만 돈을 많이 벌라는 뜻으로 붉은색 봉투에 돈을 넣어 주고 베트남도 역시 빨간 봉투에 소액의 새 돈을 넣어 주는 ‘리시’라는 관습이 행해진다.

일본도 예전에는 도시에서만 행해지다 1960년대 이후부터 전국적으로 치러졌는데, 그게 일제 강점기에 우리나라에 널리 유포된 것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현재에는 북한에서도 새뱃돈을 준다고 한다.

그럼 연령에 따른 세뱃돈 적정 금액이라도 있는 걸까? (본인의 능력껏이면 되지 않는가?!)

인터넷에 유포돼 있는 ‘세뱃돈’ 관련 사이트를 검색해 보면 90년대후반부터 경기가 나빠지면서 세뱃돈 액수도 점점 적어지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반응.

평균 금액?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무조건 많을수록 좋겠지만 대략 초등학생은 5,000~1만원, 중학생은 1만~2만원, 고등학생은 2만~3만원이 적정선으로 받아 들여진다.

그러나 본인의 능력 껏, 또는 성의 차원에서 소액을 주는 게 좋다. 많은 돈을 주어 나쁜 영향을 주기보다는 적은 돈으로 올바른 지출을 가르치는게 중요!

덧붙여 보자면 최근에는 새 5000원짜리 지폐가 설을 맞아 쟁탈전(예약까지 한다고 한다)을 방불할만큼 대단하다고 한다. 설마...내년에 새 1000원권, 10000원권 지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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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예상치 못한 수입이 생겼다...^^

그래서 곰곰히 고민해 보았다. 이 돈으로 무얼 할까.

결론은...통장 만들기!!

장장 두시간을 이자 비교부터 은행 비교하다보니 머리가 뱅뱅...

사실 통장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2개나 있는 통장이 입출금 자유라서 이자가 거의 전무.

뿐만 아니라 이미 액수가 어무이에게 들통난 상태.

그러니 나의 비자금 통장이 필요하다.

플러스로 이자도 짭짤하면 더 좋고.

펀드는 해볼려 했지만... 원래 그런데 머리 쓸만큼 좋지가 않다.

흑흑... 통장 만들기가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아무래도 설날 기간동안 고민 좀 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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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르부르(Cherbourg)





프랑스 바스노르망디주(州) 망슈현(縣)에 있는 도시.
인구는 2만 8773명(1990)이다. 파리 북서쪽 344km, 코탕탱 반도의 북단에 위치하며 영국해협에 면한다. 대안의 사우샘프턴까지의 거리는 약 145km이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는 대서양 항로의 중요한 기항지였으나, 지금은 주로 영국과의 무역을 위한 상항(商港)으로 이용되고 있으며, 조선․선구(船具)․보일러․볼트 등의 제조공업이 활발하다. 또 군항이기도 하며, 해군공창(工廠)과 원자력연구소가 있다. 1686년 S.보방이 축항을 시작했으며, 7년전쟁 때에는 영국군에게 유린당하였다. 1783년 루이 16세가 3,712m에 이르는 제방공사를 착수하게 했으며, 1858년 나폴레옹 3세 때 완성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독일군의 점령(1940~44)으로 폭격․파괴 등 많은 피해를 입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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