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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박범준.장길연 지음, 서원 사진 / 정신세계원 / 2005년 7월
평점 :
절판
몇 해 전 늦은 가을, 속초로 가는 차 안에서 차창 밖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는
산등성이의 드문드문한 집들을 보며 남편이 내게 물었다.
“언젠가 깊은 산골에 오두막을 짓고 살아보고 싶은 생각 없어?”
“그런 생각 해본 적 없는데......그런데 괜찮을 것 같지 않아? 최소한의 일감만 확보되면
산골 오지에 사는 것도. 거기도 인터넷은 될 거 아냐!”
그러니까 나의 산골 생활 전제조건은 ‘최소한의 일감’과 ‘인터넷이 가능할 것
(컴맹이나 마찬가지인 주제에!)’, 심심하지 않도록 ‘많은 책과 영화 테이프를
미리 확보할 것’ 등이었다.
그때 남편은 왜 그런지 고개를 절레절레 옆으로 내저었다.
올해 초, ‘인간극장’이라는 한 텔레비전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자신들의 시골생활을
공개한 30대 초반의 젊은 부부가 있다.
박범준, 장길연 부부. 서울대와 카이스트를 나오고 너무나 도회적으로 생긴 이 부부는
얼마나 닮았는지 처음 봤을 때 오누이 같았다.
얼굴만 한 번 쳐다봐도 운명의 끈으로 묶여 있다는 느낌을 받는 커플이 더러 있는데
이들이 바로 그런 드문 경우였다.
이름만 그럴듯하지 벗겨놓고 보면 더욱 탐욕스럽고 사람들을 차별화시키는 웰빙,
상품화된 웰빙이 세상에는 지천인데 이들 부부가 사는 모습은 진정한 웰빙이 무엇인가를
깨닫게 했다.
방송으로 봤을 때 도시에 사는 시아버지의 생신선물을 준비하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직접 따서 꾸덕꾸덕하게 말린 곶감을, 버리지 않고 모아둔 튼실한 상자를 예쁘게 꾸며 담고,
자신이 바느질한 조각보 같은 것으로 예쁘게 싸는데, 세상에나! 버릴 것이 하나도 없는 솜씨요,
예쁜 마음씀씀이였다.
그 모습에서 나는 냉장고 속에 너무 오래 굴러다닌 재료를 버릴까 어쩔까 망설이다
솜씨를 부려 맛난 음식으로 완성했을 때, 그걸 너무 맛있게 아귀아귀 먹는 가족의 모습을
지켜볼 때나 느낄 법한 희열을 맛보았다.
그것은 어느 비싼 식당의 외식과도 비교할 수 없다.
직접 고안하여 만든 마당 귀퉁이의 재래식 화장실과, 목욕 한 번 하려면 불 때랴,
물 데우랴 난리도 아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그들이 시골 생활을 택한 이유는?
한마디로 행복해지기 위해서였다.
--과연 얼마나 많은 돈을 벌어두어야 그것이 건강에 대한 현실적인 대책이 될 수 있을까?
한 20억 정도 모아두면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려도 걱정 없는 훌륭한 대책을 세워둔 것일까?
건강이 인생의 목표는 아니겠지만 우리에게는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생계대책이었다.
“뭐 먹고 살려고 그래?”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글을 쓰고, 아내는 천연염색을
할 거라고 간단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건강을 잘 지키고 소비를 줄여 나갈 것이라는 말을 덧붙일 수 있을 것이다.(57쪽)
이렇게 담담한 술회처럼 그들의 결정은 뭔가 원대한 야망을 숨긴 수단으로서의 특별한
선택이 아니었다.
가끔 도시에 나가 밀린 볼일을 보고 무주 그 산골짝 임시 거처로 돌아가면 부부는
그렇게 기쁘고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고 한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 방그레 웃으며 눈감고 싶다'라는 길연 씨의 소망에 나의 고개도 끄덕여진다.
그뿐 아니다, 너무나 다른 성향의 두 사람이 만나서 결혼을 하고 서로 맞추어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꽤나 흥미로웠다.
'지금 살고 있는 오늘 하루하루가 행복해야 먼 훗날에도 행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미루지 않고,
과감하게 실천하여 땀을 뻘뻘 흘리며 밭일을 하고 자신들의 노동으로 한 끼의 양식을 버는
이 젊은 부부의 사는 모습을 담은 몇 장의 사진을 보고 있자니 그 깨끗하고 순명한 에너지가
내 속으로도 흘러들어 오는 듯했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면 그것도 하나의 도(道)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길연’(182쪽)
이처럼 꼭지 하나하나마다 제목 아래 부부가 교대로 가벼운 단상을 적어놓았는데
그걸 읽는 재미도 아주 쏠쏠했음을 밝혀둔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mypaper/pimg_740221103164232.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