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눈
장정옥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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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옥의 소설집 『숨은 눈』을 읽으면서 자꾸만 제목을 ‘숨은 눈’이 아니라 ‘숨은 눈물’이라고 여겼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을 수많은 여성들이 생각나서 그랬다. 내 어머니와 언니와 친구와, 기사의 실제 인물,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느 하나는 나와 닮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서 한동안 멍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숨은 눈」은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결혼생활 25년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라니. 상상할 수 있을까. 담석으로 입원한 전 남편. 사랑이라고 우겼던 여자와는 헤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이 병상을 못 지키면 딸애가 해야 할 일이었다. 딸을 위한 선택이다. 이상한 건 이혼을 한 후 어디선가 전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CCTV, 심지어 관리사무소의 수족관 속 물고기의 시선까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때로 이혼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을 참아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다.

이혼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달의 노래」에서 그런 감정을 만난다. 이혼 사유는 아빠의 외도였다.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빠는 오빠의 학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온다.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작 아들은 그런 아빠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다녀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몰래 아빠와 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훔쳐본다. “아빠는 숯불에 손을 쬐며 달을 보았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끼리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숯불을 피우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아챘다.”란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위기를 견디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속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았다. 도박에 빠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살던 집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지만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았다. 남편을 집을 떠났고, 이혼을 선택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은 간절했고 이혼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묻는 아들의 근황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엄마로 산다는 건 왜 이리 고달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내 마음의 파랑」과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섬」의 엄마의 마음도 애달프다.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혼 주의,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경험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섣불리 누군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숨은 눈』은 엄마, 아내,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다른 세대의 삶은 알고 싶지 않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면 그들이 자신과 연결된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 시대.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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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귀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 귀가 가렵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난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어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이번에는 내 귀를 보여주지는 않았고 염증이 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스트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무심히 지내는데 내 몸은 그게 아니었을까. 처방받은 약을 잘 먹으면 된다. 그러면 될 것이다.

그제는 생일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루 종일 미역국을 먹었다. 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은 먹을 때마다 더 진하고 좋은 맛이 났다. 사촌동생과 올케언니와 친구에게 용돈을 받았다. 어른이 된 이후로 용돈을 받는 일은 거의 없는데, 생일이라서 용돈을 받다니. 이상하면서도 신이 났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서 내 생일을 기억한다는 건 더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내 생일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이다. 친구도 음력 생일이라 우리는 서로 생일을 축하한다. 나는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다.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이는 좋다. 친구는 내가 고른 책을 기쁘게 받아주었고 받자마다 읽은 부분에 대해 신성하다고 전했다. 내 곁에도 있는 책, 우리는 같은 책의 같은 부분에 멈출 수도 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참 소중하다. 선배 언니는 꽃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작약이 보였다. 작약을 보는 시간, 언니를 생각할 것이다. 언니의 생일은 3월이고 양력이다. 언니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유독 봄에 생일이 많다고 했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특별한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내겐 좋아한다는 그 이상의 말로 남을 것이다.





나를 위한 선물로는 책을 택했다. 이주란, 이장욱의 산문을 읽고 싶어 고른 『술과 농담』, 조해진과 편혜영의 단편집. 앞의 책에서 두 작가의 산문이 있다. 김멜라를 더 읽고 싶다고 느낀 문지와 문학동네의 책. 젊은 작가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도 어렵다. 김멜라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이미 단편집을 출간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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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0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 합니다.
봄철 환절기에 몸 곳곳에 오는 이상 신호!
병원에서 별탈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지인분들의 축하와 사랑
특별한 것 없어도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소중한 분들이네요

저도 꽃중에 작약을 가장 사랑합니다.
항상 이시기에 상반기 회화전을 열였던 간송 미술관과 환기 미술관 정원에 활짝 핀 작약이 그립네요
[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
자목련님 생일 축 !!(🌼❛ ֊ ❛„)

자목련 2021-04-21 10:10   좋아요 3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사랑과 우정이 정말 귀하다는 걸 느껴요.
작약, 이름도 특별하고 저도 정말 좋아하는 꽃이에요.
이제 작약을 생각하면 스콧 님도 함께 떠오르겠네요!

mini74 2021-04-20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드려요 자목련님 꽃도 참 예쁩니다 ~ 책을 읽고 꽃을 보며 행복하고 안온한 4월 보내세요 *^^* 좋은 계절에 태어나셨네요 ~~

자목련 2021-04-21 10:08   좋아요 4 | URL
미니 님, 감사합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4월이 참 좋은 날들이구나 싶어요.
건강하고 향기로운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4-20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립니다~! 생일선물로 책받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술과 농담‘ 저 시리즈 다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최근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다 좋은 것 같아요.
화창한 하루 보내세요^^

coolcat329 2021-04-20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이셨군요. 주변 지인분들과의 관계가 좋으신거같아 보기 좋네요. 책과 꽃선물 참 부럽습니다~~♡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4 | URL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이 공간에서도 그렇고요. 쿨캣 님을 비롯한 다정한 분들^^
책과 꽃은 언제나 반가보 기쁜 선물 같아요. ㅎㅎ

붕붕툐툐 2021-04-20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꽃사진 참 예쁘네요!
‘가까이 지내는‘ 이 말 참 좋네요. 저희 가족, 친척에도 4월 생이 참 많거든요~ 왠지 자목련님과 더 친밀한 느낌이 듭니다~ 행복하세요~♡♡(아, 제가 젤 좋아하는 꽃이 목련입니다.ㅎㅎ)

자목련 2021-04-21 10:05   좋아요 3 | URL
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저도 참 좋아요. 붕붕툐툐 님의 가까운 분들도 4월생이 많군요. 말씀처럼 저도 친해진 기분입니다. 어떤 빛의 목련이든 목련은 매력적인 꽃입니다. ㅎ 목련 같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1-04-21 0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났지만 자목련 님 태어난 날 축하합니다 친구분하고는 하루 차이라니 그것도 좋을 듯합니다 용돈을 받기도 하다니 좋았을 것 같네요 자목련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4-21 10:03   좋아요 3 | URL
희선 님, 감사합니다. 생일이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는 게 좋습니다. 희선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클래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딱히 좋아하는 음악가의 리스트가 있지도 않다. 그래도 누군가 정성을 다해 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다. 송은혜의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읽으면서 내게 음악을 선물하는 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언니가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음악’과 ‘언어’ 두 단어의 조합이 나를 이끌었다. 음악을 잘 몰라도 어린 시절 겨우 두 달 정도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여도 괜찮았다. 어른이 된 후에 여전히 피아노를 갈망하지만 실천은 못하고 있다.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오랜 세월을 보내고 조금씩 음악을 나의 삶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의미는 나 자신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음악, 우리의 아픔을 기록한 음악은 온실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한 진짜 음악이다. 서로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음악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12쪽)


음악을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며 삶을 위로하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나는 동네 음악선생이라 불리는 저자가 차근차근 다정하게 들려주는 음악의 언어, 음악의 기운, 음악의 숨결, 음악의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하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음악 안에서 거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음악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전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곡을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 작곡가가 원하는 연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국엔 찾아냈을 때 느꼈을 희열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온전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는 일의 외로움, 그 안에 쌓이는 고독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음악의 추상성. 말도 그림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소절의 선율로 우리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56쪽)


음악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삶이 음표에 스밀 것이다. (80쪽)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챕터마다, 하나의 꼭지마다 등장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그의 작품 목록을 소개하는 수고 덕분에 독자는 조금 더 음악에 빠져들 수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연주의 방법, 혹은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무언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조금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게 된다. 연주자와 작곡가가 원하는 건 완벽한 연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완벽하지 않은 연주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오랜 연습으로 굳어진 손마디, 목 디스크, 긴장한 모습이 연주자가 지나온 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예술의 삶이 아니라 음악이 전하는 이야기,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울과 절망에 빠진 마음을 달래주었던 연주를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악으로 연결된 하나의 웅장한 공연장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하는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삶은 나와는 다르게 흐를 것이다. 연습으로 채워진 시간, 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매달리는 그들의 일상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음악을 선택했을 뿐 삶의 흐름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그만큼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도 그러하니까. 실수하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변화하는 일이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실수하면 탐색해야 한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찢어질 듯한 큰 소리와 거친 소리를, 반대로 거의 들리지 않는 의미하게 스러지는 소리를 내보아야 한다. 음의 연결을 연습할 때도 소리가 완전히 겹치도록 연주하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스타카토로 끊어서 연주해보거나 공기의 울림을 이용해 두 음을 연결하는 등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혀봐야 한다. (101쪽)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알려주듯 독주가 아닌 합주, 앙상블에 대한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다른 연주자와 친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 박자를 맞추고 빠르기를 섬세하고 조절하고 선율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실어 전해야 하는 일, 몇 백 년 전의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닮으려고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연주를 듣는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고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곳을 연주할 때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설명해도 알 수 없고, 음악적 용어, 기호에 대해 알려줘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듣기만 했던 음악이 전하는 소리, 그 고유한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일상과 음악에 대한 담담한 사유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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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되는 꿈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3
최진영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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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가 만나는 드라마를 시청했다.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설정이겠지만 드라마를 보면서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드라마처럼 미래의 나를 보면 과거의 나는 무슨 생각을 할까. 실망하고 속상해할 것이다. 막연하게 꿈꾸던 미래의 삶, 어른의 삶은 현재 내가 살아가는 삶이 아니니까. 드라마에서는 과거의 나가 현재의 나에게 많은 위로를 전한다. 어렸을 때처럼 단순하게 간단하게 생각하고 행동하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실수는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과할 일이 생기면 사과하라고.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에도 두 명의 태희가 등장한다. 십대의 태희와 삼십대의 태희. 삼십대의 태희에게 현실은 고달프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는 삶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십대의 태희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십대의 태희도 현재의 태희에게도 고단하고 지치는 삶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자신을 외할머니 집으로 보낸 부모님. 십 대 태희는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모와 한 방을 쓰면서 보낸 그 시간은 외롭고도 쓸쓸했다.


최진영의 『내가 되는 꿈』에도 두 명의 태희가 등장한다. 십대의 태희와 삼십대의 태희. 삼십대의 태희에게 현실은 고달프다. 하루하루 견디고 버티는 삶의 연속이다. 그렇다고 십대의 태희는 마냥 신나고 즐거운 건 아니다. 십대의 태희도 현재의 태희에게도 고단하고 지치는 삶이다. 부모님을 비롯해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명확한 이유를 설명하지도 않고 자신을 외할머니 집으로 보낸 부모님. 십 대 태희는 부모님이 이혼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모와 한 방을 쓰면서 보낸 그 시간은 외롭고도 쓸쓸했다.


소설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태희의 시간을 들려주는데 십대의 태희가 바라본 어른의 모습을 통해 지금의 나는 어떤 어른인가 가만히 생각하게 된다. 과거의 나도 소설 속 태희처럼 어른들의 태도가 싫었고 화가 났다.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온전히 이해받는다고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삼십대의 태희와 마찬가지로 내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지도 못하며 견디는 삶을 살아간다. 어떤 나이를 살든 그때의 고민은 인생 전부의 그것이다. 십대의 태희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아빠, 뭔가 감추는 것만 같은 엄마. 그깟 연애에 목숨을 거는 이모.

이상하게도 삼십대의 태희에게 더 이입되는 게 아니라 십대의 태희에게 더 끌린다. 아마도 과거에 대한 미련, 현재의 나를 만든 과거에 대한 아쉬움 같은 게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언가 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 하지만 그 무언가가 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이제는 알기에 그 시절의 나에게 너무 애쓰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은 건 아닐까. 그건 지리멸렬한 연애와 이별하지도 못하고 직장을 그만두지도 못하는 삼십대의 태희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다. 그런 남자와 헤어진 건 잘했다고 과감하게 사직서를 낸 일을 응원한다고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어쩌면 소설 밖 나와 다른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인지도 모른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기에 스스로 자책하는 일은 그만두어도 좋다고 말이다.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한 적도 없지만 지금과 같은 나를 상상한 적도 없다. 과거가 아깝다. 살아갈 날보다 내가 분명히 살아온 지난날이 너무 아까워. 겨우 이렇게 되려고 그렇게. 아무도 내가 될 수 없고 나도 남이 될 수 없다. 내가 될 수 있는 건 나뿐이다. 자칫하면 나조차 될 수 없다. (98~99쪽)

그런 의미에서 ‘내가 되는 꿈’이란 제목이 참 좋았다. 우리는 수많은 내가 되는 꿈을 꾸며 살아가니까. 다른 사람이 아닌 온전한 나로 살아가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그래서 소설 속 할머니가 말하는 시간에 대한 부분을 계속 읽고 있다. 내 시간에 거하는 나, 나만이 내 시간의 주인이 될 수 있다는 걸 확인하고 다짐한다.

나는 내 시간을 사는데 거기 누가 들어오는 거야. 그런다고 내 시간이 사리지는 것도 아니고 해가 뜨고 간다고 시간이 가는 거겠나. 내가 알고 살아야 그게 시간이지. (22쪽)

현재의 나의 삶에 만족하는 이는 얼마나 될까. 후회하고 고민하고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십대의 나를 돌아본 적이 있던가. 아니 1년 전, 한 달 전의 나를 돌아본 적도 없는 듯하다. 하루하루 치열하게 살아가느라 나에 대해 생각은커녕 잠시 나를 다독일 시간도 없었을 것이다. 최진영의 소설은 그런 이들에게 잠시 나를 들여다보라고, 나는 괜찮은가, 나는 진정한 나로 살고 있는가 살피라고 말한다. 여전히 성장 중인 어른들을 위한 소설이다.


같은 다짐을 계속하며 우리는 어른이 되겠지. 남들은 절대 알지 못할 하루와 마음을 끌어안으며. 중요한 말일수록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하겠다는 생각보다는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 많이 하면서. (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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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3 17: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책 서점에 많이 보이던데 제목이 그런 의미였군요~ 리뷰보니 좋은 책일거 같네요^^

자목련 2021-04-14 10:33   좋아요 1 | URL
잊고 있던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지금 나의 삶을 생각하게도 하는 소설이었어요. 소설을 잘 표현한 제목이었어요. 새파랑 님, 경쾌한 하루 보내세요^^

2021-04-19 17: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04-20 15: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클라라와 태양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홍한별 옮김 / 민음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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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야기는 자세한 설명 없이도 그 전체를 짐작하거나 이해할 수 있다. 안타깝게도 그건 대부분 슬픔이나 고통에 관한 것이다. 설령 그것이 아름다운 슬픔, 충만한 평온으로 마무리가 되더라도 가슴속 가득한 먹먹함으로 남는다. 가시오 이시구로의 『클라라와 태양』 은 그런 소설이다. 아름답고도 슬프고 슬프면서도 환한 감동을 안겨준다.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다룬 이야기. 뻔하지만 결코 뻔할 수 없는 이야기. 인간과 로봇의 우정이라도 단순하게 설명할 수 없는 부드럽고 단단한 마음을 보여준다.


소설은 가상의 친구로 만들어진 인공지능 로봇 에이에프(Artificial Friend) 클라라와 인간 조시가 함께 보낸 시간에 대한 이야기다. 에이에프 클라라는 인간의 선택을 받는 존재로 햇빛이 그녀의 자양분이다. 클라라는 해의 움직임을 살피며 해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관찰한다. 에이에프는 흔하게 지식만 가득한 인공지능 로봇이 아니라 인간의 감성, 마음을 감지하는 섬세함을 지녔다. 클라라의 능력은 특히 뛰어나다. 그런 클라라를 한눈에 알아본 14살의 소녀 조시는 클라라를 선택한다. 아픈 딸을 위해 어머니는 최신 에이에프를 권하지만 조시의 뜻을 따른다. 이제 클라라는 조시의 집에서 함께 생활한다. 클라라는 모든 걸 조시에게 맞추며 살아가는 어머니, 그리고 조시의 유일한 친구로 등장하는 릭을 관찰하고 살핀다. 클라라에게 가장 중요한 건 조시다. 조시의 일상 전부를 공유하고 조시의 마음을 읽는다. 클라라는 자신이 조시를 위한 존재라는 걸 잘 안다. 가족이면서도 온전한 가족은 될 수 없다는 걸. 조시의 건강 상태와 감정의 흐름에 따라 그에 맞게 조시가 원하는 방법을 찾으려 노력한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오롯이 클라라의 시선으로 미래의 삶을 보여준다. 클라라를 비롯한 에이에프가 어떤 기능을 가졌으면 어떻게 발전했는지, 조시의 집에서 모임을 갖는 아이들과 릭의 차이가 무엇인지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는 클라라를 통해서 말이다. 그들을 구분하는 어떤 경계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서로의 에이에프를 평가하며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는 모습이나 그들과 교류하지 못하는 릭을 통해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생활을 가늠할 수 있다.


조시의 건강 상태에 따라 어머니와의 불화는 깊어진다. 그런 조시를 보면서 조시의 언니를 잃을 슬픔을 반복할까 봐 두렵다. 어머니는 클라라가 조시를 복제할 정도로 완벽해지기를 원한다. 조시가 떠난 후 클라라를 통해 조시를 보려는 어머니의 간절한 마음을 아는 클라라는 자신의 자양분인 해에게 기대기로 한다. 클라라에게 태양은 신과 같은존재, 해가 지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해가 쉬는 곳이라 여긴 헛간에서 해와 마주한다. 릭의 옆집에 있는 헛간까지 가는 가는 과정은 험난하다. 오직 조시를 위한 일이라는 말에 릭은 선뜻 클라라를 도와준다. SF 소설에서 해를 믿는 인공지능 로봇이라니. 하지만 조시를 향한 클라라의 순수한 마음은 분명히 해도 도와줄 것 같았다. 클라라에게는 해의 기적을 목격한 경험이 있었고, 조시를 위해서 해가 원하는 걸 줄 수 있었다. 그게 자신의 전부라도 말이다. 


사실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충분히 예측할 수 있다. 클라라가 원하는 대로 조시가 낫게 될 거라는 걸 말이다. 언젠가 클라라와 조시의 이별할 거라는 사실도. 뜨거운 슬픔을 느낄 수 있다. 로봇인 클라라가 인간의 마음을 아는 건 가능할까. 누군가를 영원히 사랑하고 온전하게 이해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걸 알면서도 클라라는 가능할 것만 같다. 소설에서 클라라가 마음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말해주듯. 인간인 우리가 노력하지 않는 것들에 대해 반성하게 만든다고 할까. 


“말씀하신 마음이요.” “그게 가장 배우기 어려운 부분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방이 아주 많은 집하고 비슷할 것 같아요. 그렇긴 하지만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고 에이에프가 열심히 노력한다면 이 방들을 전부 돌아다니면서 차례로 신중하게 연구해서 자시 집처럼 익숙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겁니다.” (321쪽)


인간과 로봇의 우정을 다룬 것처럼 보이지만 이 소설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우리의 마음을 성장시키는 성숙된 선한 마음에 대한 이야기.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누군가가 있다는 것, 항상 상대의 마음을 지켜보고 관찰하는 애정이 있다면 그 어떤 험난한 미래가 와도 걱정 없을 것 같다. 인간과 유사한 로봇과 함께 살아가는 미래에 우리가 지켜할 마음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건 클라라가 조시에게 보여준 마음일지도 모른다. 태양의 마음까지 움직일 수 있는 그런 마음. 그래서 나는 클라라의 기쁨을 가장 보여준 이 부분이 참 좋았다.


해의 무늬가 벽, 바닥, 천장 여기저기에 평소와 달리 강렬하게 나타났다. 서랍장 위에는 진한 주황색 삼각형이, 단추 소파에는 눈부신 곡선이, 카펫 위에는 빛나는 막대들이 길게 그어졌다. (409쪽)


소설 속 미래를 통해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을 돌아보게 만든다. 불안한 미래, 인간의 모든 걸 대신할 수 있는 로봇과 살아갈 수밖에 없다면 모두 행복한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고 클라라를 통해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미래를 꿈꾸는 희망을 키우게 만든다. 해의 무늬가 소설 밖 내게로까지 전해져 주변이 온통 따뜻하고 환해진 기분이었다. 이 선명한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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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12 11: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서점 가니까 이 책이 그렇게 많이 안펼쳐져 있어서 아쉽더라는.. 따뜻함을 전하고 싶은 책이 맞는거 같아요. 주변에 선물하고 싶은 책입니다^^

자목련 2021-04-12 11:25   좋아요 2 | URL
독자들의 사랑을 많이 받아서 안 펼쳐져 있는 걸까요.
네, 참 좋았어요. 새파랑 님, 활기찬 한 주 보내세요^^

coolcat329 2021-04-12 11:27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선물했어요. 근데 막상 저는 아직 읽지도 않았네요.

coolcat329 2021-04-12 11:2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직 읽기 전이라 한 단락만 읽었는데 ‘환한 감동‘을 준다니 기대가 더 큽니다.

자목련 2021-04-12 11:29   좋아요 3 | URL
쿨캣 님, 천천히 읽어도 좋아요. 좋은 책은 언제 읽어도 좋으니까요!

레삭매냐 2021-04-12 11:4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이시구로 선생이나 이창래 선생 같은
분들이 계속해서 디스토피아 미래에 대한
소설들을 쓰는 걸 보면, 그 미래가 정말
가까이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책은 가을 쯤 다시 한 번 읽어 볼까 싶습니다.

자목련 2021-04-13 15:33   좋아요 0 | URL
언제부턴가 소설이 현실보다 더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는 걸 느껴요.
그래서 때로 소설 읽기가 두렵기도 하고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