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여름에 대한 걱정이 자란다. 여름을 채울 폭염과 높은 습도를 체감하기도 전에 이미 여름의 한복판에 도착한 듯 겁을 낸다. 언제부터 여름은 이런 계절이 되었을까. 그래서 여름이 되면 여름의 즐거움, 여름의 맛을 생각한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선호하지만 여름의 매력에 끌리기도 한다. 빠져드는 여름의 저녁, 뒤척이는 여름밤, 쏟아지는 불평과 불만, 그것은 여름을 살아내는 증거이자 견디는 힘이기 떄문이다. 그러니 김연수의 여름에 반할 수밖에 없다.

나는 김연수의 글을 읽기 전 제주의 여름을 모르고, 제주의 세화를 모른다. (세화, 여름의 이름)을 읽고 그 바다를 상상한다. 언젠가 그 바다에 닿을 거란 기약은 할 수 없지만 그 바다 ‘세화’를 품을 수 있다. 『계절 쓰기』는 제목 그대로 여덟 명의 저자가 한 계절을 맡아 쓴 이야기다. 두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날 수 있다. 같은 계절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매번 여름을 쓴 글을 지나치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김연수의 여름이다.

소설가 김연수가 들려주는 세화의 여름, 제주의 바다. 현무암, 김영갑, 오일장, 제철 한치의 맛을 읽는 일은 여름의 풍경이자 제주 세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름이다. ‘세화’란 가는 꽃이 아니라 다랑쉬오름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가늘고 긴 수림지대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것까지. 김연수가 기억하는 세화에서 보낸 그 여름밤은 다음에 찾은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다. 매년 변화하는 여름, 살아있는 생물처럼 요동치는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 (세화, 여름의 이름), 24쪽

겨울이 시작되면 시인으로서 휴가 신청을 한다는 김소연에게 겨울은 (미현실의 방)이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시적 언어 따위를 밖으로 꺼내지 않아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좋아진다는 시인. 시인이 아닌 오롯이 김소연으로 지내는 계절. 그것은 어쩌면 시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모든 것을 키워내는 단단한 동면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경주를 만나는 일도 즐겁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봄 이야기 (봄의 눈)은 팽나무처럼 자신을 지탱해 준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할머니를 통해 식물의 이름을 알고 순과 나물을 어떻게 먹는지 배운다. 고사리 새순으로 봄이 등장하고 자신의 엄마로부터 그것을 꺾는 걸 배운 할머니. 허태임의 봄은 자신을 돌보고 보살핀 할머니라는 겨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나무는 겨울눈을 안전하게 만들고 나서야 낙엽을 떨어뜨린다. 이파리가 연둣빛을 상실한 채 말라간다고 해서 나무가 발달을 멈추는 건 아니다. 더 치밀하게 세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대비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겠지. 그건 생존 전략인 동시에 일종의 신성한 의식일 수도 있다. 겨울을 무사히 건너기를 빌고 봄의 새순을 희망하는, 나무 세계의 동제 같은 것. (봄의 눈), 73~74쪽

문학평론가 윤경희의 가을 쓰기 (장미철)에서 만난 장미 기록과 직겁 찍은 사진은 신기하면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장미에 대해서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 내게 5월의 장미로 각인된 장미가 한 해 여러 차례 개화하는 ‘개화 반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느 계절에 장미를 만나고 놀라지 말기를. 장미에 사로잡혀 장미 시력이 생겼다는 저자의 말이 재밌다. 장미를 보면 저자가 자동으로 떠오를 것 같다.

번역가 홍한별의 가을, 인류학자 전의령 여름, 작가 김지승의 겨울과 은유의 봄도 각별하다. 저마다의 기억과 선명함으로 남은 계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만의 방에 저장된 계절의 특별한 장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름은 아픈 계절인데 그래서 애틋한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시작엔 엄마의 죽음이 있었고 어느 여름에 나는 두 번이나 병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커다란 여름의 기억은 큰언니와의 작별이다. 봄, 가을처럼 짧아서 아쉽고 붙잡고 싶은 계절이 아니라 여름은 어떻게도 건너뛸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아니라 그 안의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좋아하고 좋하며 한정원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맣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 「너무나 많은 여름이」, 281쪽)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조금 사랑하기」, 일부)


조만간 여름은 끝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가을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돌고도는 계절, 다음 계절이 있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은 기록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을 읽는 일, 계절을 사는 일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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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퓨터가 아프다. 심각하게 아프다. 오래 사용했으니 그럴만하다. 바꿔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알면서도 결정은 쉽지 않다. 지금 이렇게 잘 쓰고 있지 않은가. 내가 필요한 것들은 불편 없이 사용할 수 있으니. 고민을 더 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정작 써야 할 때 켜지지 않으면 곤란할 텐데, 알면서도 조금 미루기로 한다. 새로운 컴퓨터와의 만남을 미룬다.

다시 비가 온다. 폭염은 사라지지 않았고 습한 날들이 힘들다. 제법 선선해졌다고 생각한 것 오산이었다. 구름을 담았던 곳에서 비를 담았다. 비는 드러나지 않았고 나만이 비라는 걸 알 수 있다. 거기 비가 있다는 것, 그건 나만 아는 비밀처럼.






능숙한 여름은 없다. 어제 지난달 관리비 고지서를 확인하면서 전기 요금을 보고 놀랐다. 최고였다. 그만큼 이 여름이 더웠고, 그만큼 나는 더위를 피할 수 있었다는 증거였다. 그러니 불평하지 말라고.

친구와 통화를 하면서 추석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꿈에는 다른 친구가 나왔다. 모임을 하는 친구들과 다 같이 캠핑을 가자고 제안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친구가 나오기도 했는데, 아마도 나는 그들이 보고 싶은 모양이다.

그래서 이런 시가 눈에 밟힌다. 보름이 되면 나도 친구에게 달을 보라고 말해야지.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말이다.


보름달 떴다고

나가서 보름달 보라고

남쪽 친구가 전화를 했다

전화기 들고 밖으로 나갔더니

신도시 아파트 단지 사이 밤하늘

샛노란 밤의 눈동자

보름달 보이지?

그래, 보여!

그렇구나, 우리 눈빛이

지금 저 달에서 만나는 거로구나

폭풍 찌는 열대야 삼아

밤이 켜졌다, 밤이 커졌다

(「밤이 켜졌다」, 전문)


밤이 부족하다

우리에게는

이 도시에서는

밤이 부족하다

마음에게도 턱없이

저 키 큰 나무들

작은 모래알 한 알

새들 물고기에게도

밤하늘 저 높은 별들에게도

크고 많아아 할 것이 많지 않다

작고 적어야 할 것이 많지 않다

(「밤이 부족하다」, 전문)


너무 열심히 사느라 밤이 부족한 친구에게, 너무 바쁘게 사느라 밤인 줄도 모르고 지내는 친구에게. 새벽까지 잠들지 못하는 이들에게 충분한 밤이 내렸으면 한다. 밤이 내려와 밤을 느끼고 밤과 지내며 밤을 껴안고 고운 잠이 들기를. 수고한 이들에게 편안한 밤이 가득했으면 한다. 그 밤을 토닥여 줄 책을 고른다. 아, 읽고 싶은 책은 왜 이리 많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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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6-08-2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충분한 밤이라는 말 좋아요. 모두에게 충분하고 편안한 밤을 저도 자목련님께 보냅니다. 받아주세요. ^^

자목련 2026-08-23 10:06   좋아요 1 | URL
덥석 받아서, 지난밤 평온했어요!

구단씨 2026-08-26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요... ㅠㅠ
저도 며칠 전에 관리비 고지서 보고 엄청 놀랐어요. 울고 싶었어요.
6월부터 미친 더위에 적응하느라 에어컨 끼고 살아왔으니 뭐... 에휴.
정희진 신간 궁금하네요.

아직 더운 날이 계속되네요. 열대야도 사라지지 않고.
남은 여름 건강하게 지내세요.

자목련 2026-09-01 12:48   좋아요 0 | URL
아직 고지가 되지 않은 7월과 8월의 전기요금을 생각하면 두려워요 ㅠ.ㅠ
그런데 이렇게 또 비가 많이 오니 걱정입니다.
구단씨 님 계신 곳은 평안하기를 바라요.
 


『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뭔가 비밀스럽지만 평범하고 모두에게 다 열린 단어였다. 작가, 시인, 번역가 10명이 각가 자신만의 다섯 단어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미 만난 단어, 독자라면 그 작가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법도 하기에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김화진의 주머니라든가, 정용준의 산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작가, 시인, 번역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의미를 지니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걸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모든 단어는 그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 와 나만의 것이 될 수도 있다.

모두에게 알려진 물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어떤 소중한 기억이나 위로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아니면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해 특별하게 관리하게 위해 남들과 다른 이름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 내가 이름 붙이기 나름인, 내가 사용하게 편리한 그런 단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목록을 보면서 끌리는 단어, 좋아하는 단어를 살펴보며 그것을 먼저 만나면 재밌는 읽기가 될 것이다.

내 경우 정용준의 소설 『유령』이나 「선릉 산책」이 떠올라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 「사랑의 신」에서 만난 ‘주머니’란 단어가 기억나서 김화진의 단어부터 찾았다. 소설에서 사람은 주머니 같다는 김화진의 말은 뭔가 호기심을 불러오니까. 익숙한 느낌이면서 내가 모르는 의미를 만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붙잡은 건 시인이나 번역가의 단어였다. 시와 시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망 같은 게 작용한 것이다.

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시 쓰기도 실은 고원을 산책하는 일 같다. 시를 쓰는 동안 어느새 도달한 고원은 시가 끝나는 동시에 서서히 흐려지다가 곧 그 고도와 넓이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늘 불만족 상태에 머무르며 다음 고원을 기다린다.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고원의 상태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황유원 「고원」 중에서, 38쪽)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는 시인의 시간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할까.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황유원의 작품은 정확하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선형의 번역가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어 왠지 안도한다. 번역가의 단어를 읽으면서 원서를 읽으면 나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어쩐지 pang은 내 안 어딘가에서, 가슴에서, 혹은 뱃속에서, 불시에 팡, 터지는 얼음 폭탄 같다. 움찔 소스라쳐 아연하는 사이, 수백만 조각으로 비산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혈류에 침투해 온몸으로 퍼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미소한 얼음 조각들이 흐느끼며 녹아내린다. (김선형 「Pang (n.)」 중에서, 130쪽)

『나만 아는 단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번역가 정수윤의 글이다. 일본어 루리에 대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수윤이란 이름에 담긴 애정에 대해서. 애틋하고 애틋한 그 애정을 응원하고 응원받는다.





이름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존재가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서 모두와 함께 약속되는 순간이다. 그 모두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나에게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그 무한한 사람들로부터 내가 특정되는 일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이 내 이름의 뜻을 알든 모르든 나는 내 이름이 품고 있는 힘의 파장을 받게 된다. 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그 이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말하고, 쓰고, 부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갈고닦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더 해진다고 믿는다. (정수윤 「루리」 중에서, 208~209쪽)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이나, 내가 아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이 이어진다. 내가 시집을 고를 때, 몇몇 시어에 끌린다는 것.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산, 의자, 풍경이 그러하다. 종종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우산에 대한 이런 글이 좋다.

우산을 열다, 우산을 펴다, 우산을 접다, 우산을 개다. 말장난 같은 말들이 주르륵 따라왔다. 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건 간편하고 편리하구나 생각했다.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는 우산, 마음에는 그런 버튼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음을 여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한다. 연다는 건 문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문의 위치와 입구를 찾는 게 먼저다. 그렇게 찾아 연 문이 닫힌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물론 마음의 문을 닫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활짝 열린 마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으니까. 어렵게 열린 마음이니 그 마음을 닫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마음에는 길도 없고 마음에는 이정표도 없고.

우산 안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우산의 내부, 일정하게 자리한 우산 댓살처럼 안으로 들어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함부로 예측하고 예단하면 안 된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게 마음이다.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마음 안에서 마음을 보는 일. (우산을 정리하다 쓴 글)

다시 좋았던 소설가의 소설을 펼치고 시인의 시를 찾는 일로 확장된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기분 좋은 읽기.


어쩌면 그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솜씨 좋은 작가처럼 거짓을 진짜처럼 혹은 진실을 가짜처럼. 영혼은 편하게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종일 내 손을 잡고 유령처럼 산책하다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일이니까.「선릉 산책」 중에서


사람을 상상하는 일.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전부라고 애써 믿으면서도 그 안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일. 나는 그런 걸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아.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사랑의 신」 중에서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고 공통적이면서도 공통적이지 않은 단어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가 소중하게 다루는 단어를 함께 기억한다는 건 작가와 알게 모르게 연결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지나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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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예쁜 찻잔과 책이 함께 놓여있는 자목련 님 페이퍼의 사진은 언제나 좋습니다!

자목련 2026-08-18 10:49   좋아요 0 | URL
더 열심히 찍어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6-08-1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찻잔, 맛있는 커피, 그리고 책.... 이건 완벽입니다!!!

자목련 2026-08-21 09:12   좋아요 1 | URL
요정 님의 댓글이야말로 행복을 전하는 완벽입니다!!
 


지난 주말이 세계 고양이의 날이라고 해서 고양이 컵이 생각났다. 꺼내놓고 보니 흡족할 정도로 반가웠다. 집사는 아니지만 나는 고양이가 좋다. 아무튼 세계 모든 고양이가 행복하면 좋겠다고 잠깐 생각했다. 주말까지 무지 덥더니 어제부터는 뭔가 기운이 달리진 것 같다. 급기야 어젯밤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고 잠을 잤다. 물론 긴 잠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8월에도 책을 샀다. 사는 건 즐거우니까. 그게 책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고르고 골라 주문한 두 권의 책은 소설과 에세이다. 김화진의 소설집『텅 빈 마음 가진 채로 』과 김연수의 에세이가 있는 『계절 쓰기』다. 김화진의 소설을 생각하면 많이 읽지 않았지만 마음을 다루고 있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관심을 갖게 된다.


사실, 내가 큰 목소리고 이야기하고 싶은 건 김연수의 글이다. 『계절 쓰기』에서도 김연수는 여름에 대해 썼다. 어느 여름일까, 어떤 여름일까.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 그러면서, 이제 김연수의 에세이나 소설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올 것 같은데 아직인가 싶은 생각을 해본다.





김연수는 계속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다. 계속 좋아하는 마음에 흠집이 나지 않아 다행이다. 괜히 그런다. 계속 좋아하다, 계속 읽다가 이제는 읽지도 않고 신간이 나와도 지나치는 작가가 많아졌으니까. 계속 좋아하기로 마음을 먹지 않아서 그렇게 된 걸까. 계속 좋아하고 싶은데 그게 잘 안되는 건 글 때문일까, 아니면 나의 변심 때문일까. 그러니까 계속 좋아하는 건 무척 쉬운 일 같으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고양이를 계속 좋아하고 싶다. 어쩌면 그냥 바라볼 수 있어서 그럴 것이다. 내 책임 안에 두지 않아서 그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여겨서. 책임이 부여된다면 더 크게 사랑하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계속 좋아하는 일은 혼자만의 사랑이라 가능하면서도 그와 같은 이유로 계속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


계속 좋아하기를 계속 생각한다. 계속 좋아하기, 계속 좋아해서 끝까지 좋아하기. 계속 좋아하고 좋아해서 계속이라는 말이 필요 없어지면 굳이 좋아한다는 말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아직은 계속 좋아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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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8-11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고양이를 키우고 있진 않지만 고양이가 좋아요. 강아지는 좀 무서운데 고양인 귀여워요. 강아지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고(지인집 두 집도 더 있겠군요.) 고양이를 키우는 친구집이 있거든요. 확실히 고양이가 더 이쁘더군요.^^
자목련 님도 집사가 아님에도 고양이를 좋아하신다니 괜히 반갑네요.
그리고 김연수 작가님에 대한 애정도 보기 흐뭇합니다. 저는 아직 김연수 작가님 소설들을 많이 못 읽어서 감히 좋아한다고 말 꺼내기가 좀…ㅋㅋㅋ 그래도 신간 소식은 늘 반가워요. 책 좀 자주 내주시면 좋겠어요.^^

자목련 2026-08-13 11:08   좋아요 1 | URL
고양이를 좋아하는 시작은 오빠네 고양이 때문이에요. 조카가 집사라 할 수 있는데 시골이라 매번 냥이들이 바뀝니다. 올케언니의 말에 따르면 새끼를 낳고 달아나기도 하고 처음 보는 고양이가와서 밥을 먹고 가기도 하고 그렇다고 해요.

김연수 작가의 소설은 읽지 못했지만 우선은 사두고 ㅎㅎ
이제 신간이 나올 떄가 된 것 같은데 짠 하고 나오면 좋겠어요!

blanca 2026-08-11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김연수 작가에 대해 가지는 마음과 자목련님 마음이 너무 같아 깜짝 놀랐어요. 제가 계속 좋아하는 거의 유일한 작가거든요. 신간이 나오면 무조건 사게 되는 작가로 삼십대 초반부터 여전히 질리지 않는 작가로 남아 있는 작가예요. 이제 단행본 나올 때 됐는데, 해서 신간 알림 오면 깜짝깜짝 놀라다 앤솔로지라 조금 실망하고 그러는 중입니다. 저도 좋아하다 이제 신간을 사지 않는 작가가 늘어갈 때마다 뭔가 마음이 좀 그래와요. 계속 좋아하기,는 참 어렵고 소중한 일인 것 같아요. ˝읽기도 전에 흥분된 상태˝라는 자목련님 문구가 참 귀여워요. :)

자목련 2026-08-13 11:12   좋아요 0 | URL
맞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김연수 작가의 글로 채워진 책을 원하는데, 조만간 나오겠지요.
계속 좋아하고 계속 읽고 blanca 님과 계속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는 건 특히 더 좋습니다!
 


글을 쓴다. 잊히지 않는 일들을 쓴다. 기억을 더듬는다. 어떤 기억은 바로 몇 분 전의 일처럼 선명하다. 상처로 남았을 때 그렇다. 시간이 흘러도 도무지 회복이 되지 않는 순간, 그런 기억은 여러 차례 글감이 된다. 세세한 기록으로 은유와 상징으로 재탄생된다. 시의적절 시리즈로 만난 박상수의 『생활력』에서 내가 발견한 건 그런 것이다. 상처, 기억, 회복, 위로 같은 것들.

여타의 시의적절 시리즈와 다르게 이번 박상수의 『생활력』은 시와 산문이 교차로 수록된 게 아닌 전체가 다 산문이다. 들어가는 시, 나가는 시를 제외하고 7월 1일부터 7월 31일까지 31편의 산문으로 이어진다. 선명하지 않은 조각의 꿈같은 기억으로 남은 들어가는 시는 작가의 유년 시절이고 대문이 열리고 들어오는 아이를 맞는 풍경의 나오는 시는 작가의 아이의 모습이다. 두 편의 시 사이에 작가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더 반갑고 어떤 이는 많이 아쉬울 수도 있다.

휴가, 바다, 장마, 뜨겁고 청량한 7월를 찾는다면 이 책엔 없다. 책의 처음에 등장하는 작가의 말이 있듯이. 그럼 무엇이 있는가. 시인 박상수가 있다. 그의 생활력이 있다. 그가 품어온 이야기가 있다. 어쩌면 이 기회가 아니면 들려주지 않았을 이야기, 물론 시를 향한 마음은 가득하다.

부모님의 맞벌이로 돌봄이 필요한 아이는 시골 할머니 댁으로 보내진다. 아이에게 충분한 설명은 없었을 것이다. 아무리 설명한 듯 이해할 수 있었을까. 산골에서 신나게 뛰어놀았지만 밤에는 달랐다. 칡 흙 같은 어두운 밤, 잠들기 위해 눈을 감은 게 아니라 무서움에 눈을 뜰 수 없었다. 마을 초입의 당산나무에 올라가 부모님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은 얼마나 아팠을까. 그렇게 싹을 튼 불안은 명절에 큰집에 갔을 때에도 이어진다. 혹시라도 부모가 자신을 놓고 갈까 잠들지 않으려 애썼지만 결국 잠들었고 잠에서 깨었을 때 부모가 없다는 사실은 충격이다. 아무리 달래도 울음을 그치지 않는 아이, 큰아버지의 등에 업혀 집으로 가는 그 길은 지울 수 없는 기억으로 남는다. 그것은 불안과 불행으로 단단해졌을 게 분명하다.

그 시절 많은 아버지가 그랬듯 돈을 벌기 위해 시인의 아버지도 리비아로 떠나기로 돼 있었지만 출국 전 날 발작이 시작된다. 초등학교 6학년 아이는 그 밤의 기억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지만 끝내 불가능하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걸 아는 때가 온다고 해도 자신의 일부가 된 기억을 분리할 수 없는 것. 어쩌면 그런 기억과 상처가 사랑에 대한 집착으로 혹은 사랑에 대한 불신으로 문학도 고통과 상처가 전부라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명랑하고 유쾌한 애인을 만나 마음껏 웃어도 되고 행복해도 된다는 걸 알게 된다.





내가 원하는 것은 언제나 단 한 사람의 지극한 사랑이었다. 그런데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다시 시도해 볼 마음도 없었다. 실패는 이미 너무 많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단 한 사람에게만 가야 할 사랑을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면서, 그렇게도 원하는 사랑을 피했던 것이다. (101~102쪽)

등단을 하고 첫 시집을 냈지만 시만 쓰는 삶은 가능하지 않았고 생활을 위해 시간 강사, 대필, 사교육 알바를 해야 했다. 그런 시절에는 시를 쓰고 싶은 마음이 달아날까 두려웠을 것 같다. 그러니 처음 시를 배우던 시절, 시가 좋아서 시를 잘 쓰고 싶지만 생각처럼 안 돼서 힘들었던 시간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됐을지도.

잘 쓰고 싶은 마음이 아직 거기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언제든 다시 시작할 수 있다. (148쪽)

책을 읽으면서 나는 이 문장이 좋아서 소리 내어 읽기를 반복했다. 그게 무슨 마음이든 아직 거기 있다는 걸 잊지 않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거기 있다는 걸 아는 건 참으로 중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종종 놓친다. 늘 거기 있어 그것의 소중함을 말이다. 생활을 위해 일하느라 크리스마스이브인 것도 모르던 작가처럼.


다만 여기, 우리가 밤과 낮을 같이 살며,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도 생활을 잃지 않고, 생활을 속이지 않고, 생활을 나누며 살아나갈 수 있다면, 그렇게 우리의 이야기가 계속될 수 있다면. (「나가는 시」, 260쪽)


어떤 기억은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는다. 기억을 안을 새로운 풍경이 필요하다. 혼자만의 조각이 아닌 우리의 그것으로 만든 풍경들. 그리하여 먼 훗날 꺼내어 볼 때 괜찮은 슬픔이 되고 다행인 기억이 된다. 결국 시인이 쓰고 싶은 시는 그런 생활이다. 그의 시집 『메신저 백』의 이런 시처럼.


흘린 듯 귀기울이다보면 우린 한데 묶여 있다는 걸 알게되죠 오래전부터 우린 고통의 목격자, 서로가 겪었던 바닥을 알고 있어요 햇빛에 반짝이는 강이 끝없이 펼쳐진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걸어갔던 우리, 제발 뒤를 돌아보라고, 더이상 가지 말라고 외쳐도 구부정하게 가버리던 작은 등을 가진 우리, 무너지는 얼굴을 본 적이 있어서 우리가 지금까지 함께해온 것일까요 우린 이 행성의 소박한 여행자이지만 이렇게 묶인 서로가 있어서 다시 집밖으로 걸어나갈 수도 있는 거겠죠, 보세요, 작은 보라색 단화의 주인공이 나타났어요 담요를 두르고 은박지에 싼 고구마를 들고 아궁이로 다가가네요 토치에 불을 붙여 장작불을 만들고, 작은 불이 너울로 번져가는 동안 발그레해지는 얼굴, 어느덧 한 사람 두사람 신발의 주인공들이 모여들고 있네요 바람을 막아주고 싶어도 제 몸을 통과할 뿐이라서 저는 그저 이야기를 듣고만 있어요 장작불을 쬐는 내내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구나, 누가 한숨처럼 내뱉어도 우리가 여기 모인 게 기적이야! 그런 말로 되받을 줄 아는


이런저런 말도 없이 제가 조금 늦었어요, 스르륵 같이하고 싶지만 그럼 너무 놀라서 사람들은 이 집을 뛰쳐나갈지도 모르죠 그러니까 저는 밤새 세 사람의 신발을 지키고, 끝없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바람소리를 먼바다의 파도 소리로 잠재워 세 사람의 잠을 지킬 거예요 이 집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고작 그것뿐이지만. (「오래된 집의 영혼으로부터」,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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