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에 석양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보니 기분이 묘하다. 사진은 베란다 창문을 닫다가 마주한 풍경이다. 오랜만에 담은 해 질 무렵이다. 창틀에 기대어 한참을 바라보았다. 몇 시간 뒤면 다가올 순간인데도 멀고 먼 순간일 것 같은 착각을 불러온다. 아침에는 가는 빗줄기가 내려 서늘하더니 한낮인 지금은 덥다. 가을이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거냐고 따지고 싶을 정도다.

10월이 되었고 예상할 수 없었던 문제가 생겼다. 문제란,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 예상했던 범위를 벗어나 발생한다. 나쁜 일은 아니지만 좋은 일도 아니다. 어떤 과정을 지나야 하고 해결될 일이다. 그저께는 베란다에서 버려야 할 화분을 정리하고 오래된 기름때와 이별했다. 이별은 힘들었다. 팔 근육을 써야 했고 시원하지도 않았다. 미루지 말아야 할 일이 집안일인데.

알면서도 알고 있다는 이유로 미루는 일들이 많다. 모두가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이다. 그것들이 쌓이면 거대한 산을 이루고 많은 시간을 들여야 한다. 때로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한다. 삶이란 이런 조각들이 모이고 엮이는 것이라는 걸 새삼 확인한다.

10월에는 무언가에 집중하고 싶다. 집중하는 순간에 세상은 그것과 나​로 채워진다. 그것과 나를 제외한 세상을 향한 시선은 잠시 거두고 나를 더 오래 바라볼 수 있기를. 책과 마주하는 순간에도 그러하기를. 김혜진의 신간 『9번의 일』과 대상과 수상작 모두 여성작가라는 반갑고도 신기한 『2019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냥 독자의 마음이 그렇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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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같다면 2019-10-05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아름다운 순간이네요

자목련 2019-10-14 18:19   좋아요 1 | URL
네, 어쩌다 마주한 순간이라 더욱 오래 기억될 것 같아요. 지금 이 순간도 그러할까 싶기도 하고요.
 

 

윤이형의 소설집『작은마음동호회』속 단편은 이전에 만났던 수상작품이나 테마소설집에서 만난 윤이형의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다르다는 건 윤이형의 소설이 조금씩 변화하는 과정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나 혼자의 착각일 수도 있다. 『작은마음동호회』에는 모두 11편의 이야기가 있다. 제법 긴 중편부터 아주 짧은 단편도 있다. 소설집 전체의 분위기를 말한다면 ‘마음’과 ‘이해’라고 할까. 표제작 「작은마음동호회」가 그런 마음들을 보여주는 것 같다. 소심하고 움츠러들었던 마음이 천천히 펴지고 움직이는 과정을 읽노라면 언젠가 우리를 채웠던 그 마음을 발견하고 놀라게 된다. 「작은마음동호회」에서는 촛불집회 속 수많은 유모차와 엄마들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아이를 키우고 육아에 전념하느라 사회에 대해서는 무관심한 사람들처럼 보이는 결혼한 친구를 보면서 오해를 하는 친구. 기혼 여성과 비혼 여성의 겪는 저마다의 고충을 생각하고 사회에서 그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소설 속 ‘작은마음동호회’란 모임은 현실 속에서 수많은 다른 모임의 모습은 아닐까. 고민하고 애쓰는 마음들 말이다.

서로의 마음을 섣불리 안다고 말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이해받기를 원하고 알아주기를 바란다. 먼저 다가가는 일은 왜 이리 힘든 것일까. 「승혜와 미오」에 등장하는 레즈비언 커플 승혜와 미오의 마음도 그랬다. 함께 살면서 아이를 갖는 일에 대한 다른 입장, 자신의 입장을 강요할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서운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소설에서 미오는 고기를 먹지 않는다. 고기를 좋아하는 승혜도 점차 고기를 멀리한다. 연인의 취향을 존중하는 것과 그 취향에 따르는 건 같은 것일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자꾸 마음을 숨기는 일은 결국 둘 사이의 균열을 만들 것이다. 승혜와 미오의 마음은 어쩌다 이렇게 되었을까. 가족이나 친구라서 말하지 못하는 마음이 자꾸만 커진다. 아마도 그게 배려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 마음을 알 것도 같아 나는 자꾸만 속상해지고 승혜에게 미오에게 네 마음을 보여줘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다른 삶을 선택하는 이의 마음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니, 받아들인다는 건 오만일지도 모른다. 그저 인정하는 일. 도움을 원하면 도울 수 있다면 손을 잡아주는 일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마흔셋」에서 화자인 재경의 여동생 재윤은 어느 날 남동생이 되었다. 한순간에 바뀐 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순간 하나씩 앞으로 새롭게 살아야 할 인생을 계획했다. 가족이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왔던 세 모녀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거기다 엄마는 자신의 암 투병 사실을 죽음이 가까운 시기에 딸에게 알린다. 가장 가까운 형제나 가장 친한 친구가 이런 자신의 성체성을 고백한다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 똑같은 인생을 살아야 할 이유도 없고 그럴 수도 없지만 다르다는 걸 있는 그대로 수용하는 일은 여전히 어려울 것 같다. 그래서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를 통해 그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노력한다는 건 행동하는 것과는 다르다. 알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노력이 밑바탕이 되어야만 행동할 수 있는 힘이 자라는 게 아닐까. 하나의 문제에 대해 꾸준히 생각하는 일과 알기 위해 공부하고 정보를 수집하는 일도 노력이다. 성폭력 피해자와 그들과의 연대에 대한 이야기인「피클」은 결국엔 상처와 치유에 대한 이야기라 할 수 있다. 선우가 받은 퇴사한 후배로부터 온 메일의 내용은 성폭행 피해자인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후배는 화자가 행동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그러나 회사 내에서 소문의 내용은 달랐다. 피해자가 아닐 수도 있다는 말이다.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혼란스러운 건 소설이나 현실에서도 같을 것이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피클 단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속의 이것들이 우리죠. 혐오와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서, 나 혼자 아무리 올곧게 살겠다고 마음먹어도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피클」)

나와는 상관없는 삶이라고 외면할 수 있을까. 그건 어려울 것이다. 드러내지 못하고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이들 가운데 나와 가까운 이가 존재할 수도 있으니까. 윤이형의 이 소설집에는 소수자와 약자를 향한 사회의 차가운 시선이 있다. 그리고 묻는다. 그 차가움과 날카로움의 일부가 나의 시선은 아닌지 말이다.

윤이형의 변화는 이전의 소설에 만났단 환상과 상상, SF 적 소재에서도 느껴진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일 뿐이다. 「의심하는 용 - 하줄라프 1」와「용기사의 자격- 하줄라프1」에서는 용과 인간의 함께 살아가는 도시국가 하줄라프에서 이야기로 현실이 아닌 가자의 현실, 게임 속 세계를 보여주는 듯하다. 인간과 용이 어떻게 연대할 수 있는지, 그것에 대한 고민은 ‘수아’란 이름의 로봇이 인간의 차별에 대해 맞서는 「수아」를 통해서도 깊어진다.

그동안 읽었던 윤이형의 소설에 대해 가만히 생각해보니 그 변화의 중심에는 여전한 인간에 대한 관찰이 있었다. 고독하고 외로운 인간에 대한 연민과 그들과 연대하려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항상 미래에 대한 상상도 놓지 않았다. 중력을 지배하는 세상, 미래로의 시간 여행을 상상하게 만든『큰 늑대 파랑』이나 2058년을 배경으로 ‘과잉기억증후군’에 걸린 한 남자의 이야기 『개인적인 기억』, 그리고 개인적으로 정말 좋아하는 단편집 『러브 레플리카』에서도 로봇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고백하자면 사실 이 소설집에 대한 글이 아닌 『러브 레플리카』에 대한 글을 쓰고 싶었다. 뭐랄까, 좋아하는 소설을 좀 더 깊이 있게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러브 레플리카』는 다시 읽고 싶은 소설집의 목록 중 하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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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아 2019-10-03 09: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마워요

자목련 2019-10-04 12:15   좋아요 0 | URL
^^*
투명한 하루 보내기실 바라요.
 

 

8월에는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날들이 많았다. 더위를 유독 심하게 타는 체질이기도 하거니와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기대했던 일에 대한 결과도 모두 좋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기대했던 만큼 그 과정에 있어 열심을 내지 않았던 것, 최선을 다했다고 자신할 수 없었던 게 맞다. 대충, 늘 하던 대로 하고 좋은 결과를 바라는 건 이기적이다. 아니, 늘 최선을 하고 열심을 다했다면 그 자체로 최선이었겠지만 말이다.

배롱나무를 보러 가자던 친구를 만난 하루만 유독 반짝였다. 사진은 친구가 오기를 기다리며 찍은 것이다. 놀이터를 보고 있노라면 기분이 맑아진다. 모든 놀이터가 간직하고 있는 선하고 신나는 기운이 전해진다고 할까. 여전히 태양이 뜨거워 아이들은 나오지 않았고 그래서 조용하던 놀이터였지만 그 안에 고인 생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여름의 끝자락이었던 8월의 말경부터는 바람의 온도가 달라졌고 소멸하는 여름을 지켜보았다. 완전히 소멸했다고 할 수 없지만 이젠 여름이라 부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없다. 이른 추석에 마음은 괜히 분주하고 네 장의 달력으로 남은 올해를 생각하면 조바심을 감출 수 없다. 마음이 그러거나 말거나 가을엔 소설을 읽어야지. 한국소설을 읽어야지. 그래야지. 읽고 있는 은희경의 장편과 김금희와 윤이형의 단편집 단편집, 최정화의 장편. 모두 궁금하다. 소설 읽기 좋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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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 자신에게 만족하며 산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사람은 얼마 없을 것이다. 부족한 자신 때문에 화가 나고 제대로 의견을 말하지 못한 시간을 되돌리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쌓여 자꾸만 작아지는 기분. 한 번쯤 느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잘 모른다면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잘 모르겠지만 그건 아닐 것 같다. 사실, 이건 요즘 내 마음이다. 일상에서 자신감이 떨어지고 존재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이다. 때아닌 사춘기도 아닌데 말이다. 제법 많은 일을 겪고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받아들이고 선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걸 알고 그렇게 대처하면서 살아왔는데 왜 자꾸 흔들리는 것일까. 친구가 속상한 이야기를 털어놓을 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다 괜찮다고 말했는데, 그 작고 소소한 상처가 결국엔 죽고 사는 것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걸 놓치고 있었다.

우리의 삶은 저마다의 상처투성이로 결집되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나도 그렇고 당신도 그렇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무조건 상처를 감추고 살아야 할까. 내 상처가 너무 커서 보여줄 수 없고 혹여 타인의 시선에 상처가 아닌 것처럼 보일까 조심스러웠을지도 모른다. 한 사람의 현재는 그가 살아온 과거에서 시작되고, 상처는 과거에서 현재로 이동하는 묘한 능력을 지녔다. 과거의 상처와 제대로 된 이별을 하지 못하면 그것은 내내 삶을 괴롭게 만든다. 김윤나의 『당신을 믿어요』는 그런 상처에 대한 이야기다. 상처를 인식하고 제대로 바라보고 그것을 안아줄 수 있는 힘에 대해 들려준다.

 

상처의 맨얼굴과 대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다. 내가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말이다. 외로움과 절박함의 끝에 섰을 때, 자기 믿음이 채워지지 않고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17쪽)

 

누군가에게 자신의 비밀을 말하는 순간, 나는 믿음이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혼자만 끙끙 앓다가 내게서 분리하고 싶다는 열망, 그리고 말하기로 다짐하는 순간, 나와 상대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설령 그 상대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더라도 속상해할 필요는 없다. 그건 그의 몫이고 나는 이전보다 조금은 가벼워질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내게 5년 동안 힘들었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그런 행동과 그런 마음을 가졌던 자신이 참 싫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런 모습을 내게 보여주는 것도 부끄럽다는 표현을 했다. 나는 자꾸 말해야 상처는 작아지고 소멸하는 게 아니겠냐며 괜찮다고 말했다.

 

당신과 상처의 관계는 분명히 ‘사이’가 존재하기 때문에, 마침표 대신 물음표를 찾다 보면 완전히 다른 옵션도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전처럼 강한 척하지 않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하 수 있고, 모두 너 때문이라고 비난하는 대신 ‘서운했다’고 고백할 수 있게 된다. 멈추어 질문해야 당신이 정말 원하는 것과 가까워진다. (36쪽)

 

이 책에서 저자는 자신의 상처를 온전히 보여준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떠난 엄마, 그런 엄마를 미워하며 살아온 시간과 알코올중독에 빠진 아버지의 폭력과 새엄마와 힘들었던 날들에 대해 담담하게 들려준다. 처음부터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말처럼 그녀의 잘못이 아니고 그녀의 몫도 아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다친 마음을 돌볼 이는 자신뿐 이었으니 혼자 벽을 쌓고 경계하고 생존을 위해 애쓴 그녀가 상담을 공부하고 누군가의 상처를 들어준다. 상처를 알기에 더욱 상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보듬을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면으로 보면 이 책은 김윤나 자신의 이야기이면서도 누군가의 이야기인 것이다. 쉽게 용서하라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의 상태를 확인하는 일, 들어주는 일, 궁금한 것에 대해 짐작하지 말고 물어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부모와의 관계, 독한 말로 상처를 주는 가족, 아픈 형제 때문에 희생하거나 잘난 형제 때문에 비교당하며 쌓인 상처가 얼마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지 생생하게 만날 수 있다. 그녀가 상담한 다양한 사례를 읽다가 어느 순간 화가 나거나 어느 순간 눈물이 난다면 그건 책을 읽는 독자의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내면에 가득한 상처와 슬픔을 무시하면서 살아왔을 누군가, 자신의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른다면 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상처와 함께 자라다 보면 알게 됩니다. 내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던 일들을 이미 해내고 있다는 것을요. 살아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193쪽)

 

상처와 함께 자라는 것, 나는 그 말에 동의한다. 성장한다는 건 상처를 직시하는 일이고 그것을 때로는 안아주고 보듬어 줄 주는 순간 어느새 상처는 새 살이 나고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니까. 내 존재를 스스로 부정할 때마다 나는 책을 찾는다. 최근 몇 달 동안 알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래서 김혜남, 박종석의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를 읽었다. 기존의 심리 서적에서 다루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문장에 얼었던 마음이 녹는 느낌을 받았다. 어른이라고 해서 모든 게 괜찮은 게 아니고 실수와 자책을 할 수 있으며 울고 싶을 때 울고 나를 부정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을 고쳤다. 이 부분은 앞서 김윤나의 책에서 마주한 부분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행복은 우리의 권리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72쪽)

상처 입고 두려움에 떠는 연약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은 매우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눈물 가득한 연민을 느끼며 자신을 바라본 후에야 우리는 그러한 자신을 따뜻하게 보듬어 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더 이상 도망가지도 숨지도 않고 행복을 찾아갈 수 있는 건강한 힘을 얻게 된다. (『어른이 되면 괜찮을 줄 알았다』, 258쪽)

우리에겐 상처와 하나가 되는 순간이 필요하고 상처를 통해서 나와 같은 상처를 지닌 누군가를 이해하고 걱정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아무리 아프다고 소리쳐도 그 아픔을 알아주는 이가 없다면 나는 내 안의 동굴로 들어가 묻을 닫아버릴 테니까. 혼자가 아닌 함께 살아가는 존재 이기에 우리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가장 가까운 누군가, 혹은 낯선 존재, 때로는 이런 책들의 도움을 받는다. 감사하게도 내게는 내 목소리와 말투만으로 나를 알아차리는 친구가 있고 이런 책도 있다. 연달아 읽은 정혜신의 『당신이 옳다』를 통해서도 많은 힘을 얻는다. 세 권의 책에서 주목하는 건 상처에 대한 인식과 그것을 알아봐 주고 들어주는 존재와 그로 인해 나 자신에 대한 사랑에 대한 확신을 키울 수 있다는 믿음의 중요성이다.

사람의 감정은 항상 옳다. 사람을 죽이거나 부수고 싶어도 그 마음은 옳다. 그 마음이 옳다는 것을 누군가 알아주기만 하면 부술 마음도, 죽이고 싶은 마음도 없어진다. 비로소 분노의 지옥에서 빠져나온다. (『당신이 옳다』, 167쪽)

살아가는 동안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모르기에 불안하고 이미 지난 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과거에 붙잡혀 살기도 한다. 그 과정에 나를 옴짝달싹 못하게 만드는 상처와 상실이 있다. 책을 읽고 이렇게 쓰는 동안 조금 차분해진다. 시들해졌던 내게 책은 생기를 주고 나는 조금 괜찮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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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새벽부터 폭우가 내렸다. 빗소리에 잠에서 깨어 창문을 닫았다가 열기를 반복했다. 제대로 잠을 잤다고 할 수 없으니 하루가 몽롱하고 기운이 없다. 예상했던 장맛비는 예상대로 흠뻑 내렸다. 아니, 흠뻑이 아니라 쏟아부었다. 입맛도 살짝 사라졌는지 도통 떠오르는 음식이 없다. 식은 카레의 노란색은 더 이상 빛나지 않고 냉커피만 연식 마신다. 일기예보가 맞는다면 내일이나 모레까지 비는 계속 내릴 것이다. 나의 몽롱함도 그때까지 지속될지도 모른다.

배롱나무의 꽃이 피기 시작했다. 언제 어느 가지에서 먼저 꽃이 시작되었는지 몰랐는데 사진으로 보니 오른쪽부터 피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기억은 아니지만 올해는 작년보다 빨리 꽃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긴 자귀나무의 화려한 꽃은 한참 전에 사라졌으니 배롱나무의 꽃이 눈에 들어오는 게 당연한 걸까. 봄에 만난 친구는 배롱나무꽃이 필 때 다시 만나자 했는데 우리의 만남은 아직 미정이다. 하나의 계절이 꽃으로 연결되고 누군가와의 만남이 꽃 필 무렵으로 이어지는 건 참 낭만적이다. 우리의 현실이 낭만적이지 않기에 그럴지도 모르고.

 

 

경비실의 지붕이라고 해야 맞을까. 지붕 위에 농구공은 언제 주인과 이별한 걸까. 바람이 빠져서 홀로 외롭게 있는 걸까.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걸까. ​문득 외롭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의지로 구르지 못하는 공이라니. 그러다 화분을 집으로 알고 온전히 그 안에서 성장하고 살아가는 나무를 생각한다. 내가 한 번씩 안녕이라는 말을 건넬 뿐 다정한 말은 들려주지 않고 비정기적으로 물을 주는데도 해마다 꽃을 피우고 잎을 키우고 자란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 그러다 한계를 느끼고 성장을 멈추고 소멸하는 나무도 있다. 자신의 의지로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을 일 사이에서 고민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는 나무.

7월에는 읽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않고 있다. 어디 읽는 일뿐이랴. 날씨와 저질 체력을 핑계로 삼다가 지금 읽어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나중에 읽으면 왜 안 되는가, 묻기까지 한다. 나의 물음을 들은 책이 나를 가소롭게 여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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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6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7월에는 역시 배롱나무죠.

자목련 2019-08-02 15:53   좋아요 0 | URL
레삭매냐 님의 이런 댓글 좋아요!!
연분홍과 연보라 꽃을 피운 배롱나무를 보는 8월, 건강하게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