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가 경북 김천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대학 동기 하나가 그와 같은 출신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 동기의 이름은 유명 정치인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락이 닿았다면 나는 김연수 작가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김천이 뉴욕제과점에 대해서도. 어제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곳에서 보낸 책을 받았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작가의 사인본,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사인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걸 아는 다정한 동생이 보낸 선물이다.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이름이 왠지 익숙해서 검색하니 독립서점이었다. 짐작하는 바로 그곳. 김연수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그 빵집이 독립서점이 된 것이다. 작가의 누나가 운영하신다고 한다. 아마 동생의 선물이 아니면 나는 몰랐을 곳이다. 내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까운 곳에 독립서점도 없거니와 온라인 서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 사인본의 경우 거의 같은 경로로 내게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과 『소설가의 산책』이란 비매품 도서에도 있었다. 날짜는 2014년 11월 15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기억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통화가 전부였다. 우리는 이어준 건 책이었고 그 가운데 김연수 작가가 있었다.


한 번씩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정리한다. 읽지 않을 책, 읽게 될까 생각하지만 그대로 미루는 책, 누렇게 바랜 책을 이제는 과감히 정리하는 편이다. 시집은 남겨야지 했던 마음도 차츰 시들어져서 시집도 정리를 한다. 정리하는 과정에 읽으면서 분류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재 나에게 책은 가까운 사이면서도 정리할 사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김연수 작가의 책도 모두 소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읽지 않은 책도 여전하다.





처음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하니 나는 그의 소설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보는데 최근에 그가 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다니. 놀라웠다. 누군가는 한 작가의 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2007년의 글이었다. 다시 이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은 오래 기억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드』 중에서)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




이 가을, 김연수 작가의 신잡 소설집이 나와서 참 기쁘다. 내가 아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주변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아주 많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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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10-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 뉴욕제과점이 독립서점이 된 거군요. 친필 사인본이라니, 우와....자목련님과 함께 김연수를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기뻐요. ^^;;

자목련 2026-10-08 11:58   좋아요 0 | URL
김연수의 소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울 독립서점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블랑카 님과 김연수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많이 많이요!
 


연휴가 있어 기다렸던 책은 조금 늦게 도착했다. 책을 사는 일은 일상이 되었지만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일은 일상의 큰 즐거움이다. 사고 싶은 책을 바로 사는 게 무슨 대단한 즐거움이나 싶겠지만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고 나중에 사게 되면 당시의 기쁨이 조금 사그라든 기분이다. 사고 싶을 때 사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책이 도착했을 때 책을 바로 받아보지 못할 사정도 있고 예약판매일 때도 그렇다. 예약판매는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그러니 사고 싶을 때 바로 책을 받아볼 수 없다. 좀 엉뚱한 말인가. 아무튼 그렇다.


기다리던 책은 김연수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사고 싶을 때 바로 샀지만 바로 도착하지 않은 책이다. 그리고 이서수의 『우리 착한 나진』은 제목에서 뭔가 알 것 같은 내용이다. 아직 읽기 전이다. 윤단과 최미래의 단편이 더 읽고 싶어서 『소설보다 가을 2026』와 10월엔 시의적절 시리즈도 구매했다. 신용목 시인의 『포도』다. 책을 감싸는 보랏빛이 좋다.





포도를 생각하면 여름이 자동으로 따라오는데 10월의 포도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좋아서 더 좋을 것 같은 김연수의 소설집, 이번에 읽으면 더 좋아할 것 같은 이서수와 윤단, 최미래. 그리고 신용목 시인은 가지고 있는 시집이 있지만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다. 이번에 산문집을 읽으면 무언가 겹쳐지는 게 있을 것 같다.


책이 있지만 자꾸 책을 산다. 아침에 읽을 책, 점심에 읽을 책, 저녁에 읽을 책이라고 생각하면 마음이 넉넉해진다. 읽는 날보다 읽지 않는 날이 많지만 책을 생각한다. 쓰는 날보다 쓰지 않는 날이 많지만 쓰고 싶은 마음을 꽉 잡고 있다. 사실 그건 읽기에 대한 마음이 더 그렇다. 그렇게 읽지는 않지만. 꽉 잡은 손, 꽉 잡은 마음, 꽉 잡은 가을. 손이 아플 정도로 꽉 잡고 있어도 좋을 그런 것들. 꽉 잡은 마음을 생각하고 필요한 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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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10-07 1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혹시 김연수 작가 메이킹북 부록도 주문하셨나요? 인터뷰 내용이 참 좋더라고요. <포도> 책 너무 이뻐요. 저 시리즈 참 좋아하는데 저도 읽어보고 싶네요. 눈부신 가을날입니다.

자목련 2026-10-08 11:37   좋아요 0 | URL
이 소설집은 제가 주문한 것과 선물로 받기도 했어요. 선물로 받은 책에 부록이 있었어요. 말씀처럼 정말 좋더라고요. 다음에는 메이킹북이 있으면 잊지 말고 함께 주문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포도> 표지 정말 예쁘죠? 블랑카 님도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짧아서 더 특별하고 아름다운 가을이에요!

다락방 2026-10-07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자목련님 덕에 이서수 작가 책 어제 처음 잀었는데 좋더라고요. 더 읽어봐야지 싶은데 언급하신 책 제목 보니, 말씀하신 것처럼 어쩐지 짐작이 되면서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자목련 2026-10-08 11:40   좋아요 0 | URL
제 덕분이라니 기분이 매우 좋습니다 ㅎㅎ
이서수의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았는데 단편, 장편 다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요.『헬프 미 시스터』도 좋았고요!
 


글을 쓴다는 건 가만히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때로는 보이는 대로 외부를 기록하다 점점 그것은 내부로 파고든다. 결국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해야만 했던 말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화다. 말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용기거나 뒤늦은 후회, 다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누구에게 보일 목적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만이 읽고 쓰는 글이라 해도 조금은 주저하거나 조금은 글 뒤로 숨고 만다. 그러나 결국엔 감정이 담긴 글을 쓰고야 만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기쁨이고 글을 쓰는 위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주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성상 말을 크게 해야 하고 큰 목소리로 정확하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야 할 치료사(언어, 놀이, 상담 등)를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른 글이었다. 어쩌면 외부인인 내가 알지 못하는 내부인의 진짜 이야기가 그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보편적인 이용자) 이들과 반복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학습시키는 일, 그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외부로 드러나는 장면이나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된 이미지가 실재는 아니라는 정도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치료사라는 직업과 일을 떠나 치료사란 개인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처음 느끼고 생각했다.복지관이나 사설 센터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지만 4대 보험이나 정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 작은 공간에 아이들 치료를 위한 놀잇감이나 도구를 사비로 구입하고 대소변 실수를 하는 아이를 감당하는 일까지 하루하루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조력자, 모든 보호자)에게 상태를 전달하고 앞으로 방향까지 계획해야 한다. 감사를 위한 서류 업무는 물론이고 센터의 청소까지.


아이를 관찰하고 의연하게 바라봤던 그 수많은 의식과 기록들을 굽이굽이 기억에서 끌어올리는 것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일은 그래서 가늘고 길다. (본문 중에서)


업무나 행정에서 한계를 느껴도 그것에 대한 개선이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할 창구가 없다는 걸 낄 때 그 마음은 어떨까. 동료이면서 각자의 치료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시간에 들고나는 것 정도만 인식하는 일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누군가는 그저 직업이라고 직장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직을 할 때마다 치료사가 아닌 많은 아이를 받아 수입을 더 늘이는 게 목적인 원장 앞에서 수긍의 미소를 건네는 일은 아프고 힘겹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고 개개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발화하거나 의미를 알지 못하더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치료사에게 가장 소중하고 숭고하다. 때로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업이 흐르고 반복적이 놀이에 지치더라도 아이가 놀이실에 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불편한 신체를 도와주기 위한 보장구에 대해 목발이나 휠체어 같은 게 전부인 줄 알았지만 더 세부적인 도움을 위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치료사의 일상에 대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은 선배이자 동료가 건네는 손길이 될 것이다. 한눈에 바로 뛰어나게 발화하거나 움직임이 좋아지거나 놀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치료사와의 시간에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로 인해 그들은 충만해질 것이다. 치료사도 아이도. 물론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고단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어려움은 산적해 있는 게 삶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제목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반짝인다. 그것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그러하다. 이 책도 담긴 마음도 그렇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장난감은 언제나 내게 어떤 이야기였다. 단순히 질문을 하기 위한 핑계가 아닌, 상상하고 느끼는 그대로의 이야기 말이다. 아이들과 노는 동안, 나는 되도록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대로 두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바라보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장난감이 가득한 곳에서 부끄럽거나, 슬프거나,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 없이 놀 수 있다면 초대한 내가 더없이 기쁘겠다. (본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 여러 저자가 자신의 계절에 대해 쓴 『계절 쓰기』와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를 만났을 때처럼 좋았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톤, 쓰고 읽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쓰고 나를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길고 길었던, 끝날까 싶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열린 지금, 가을에 대한 부분은 처음과 다르게 가을에만 존재할 것 같은 감각으로 읽힌다. 이 가을은 눈 깜짝할 것 없이 지나할 것이고 우리는 또 겨울에 취해 가을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아침에 집에서 나와 숨을 들이마셨을 때 찬 기운이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와 명치를 아리게 할 때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어떤 감정이 나를 한바탕 뒤흔들고 지나가려는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홍한별의 가을 : 오래된 이야기」 중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중에서)


순간을 채집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방법으로 기록은 훌륭하다. 정작 쓰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가만히 읽어 보면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말들은 여전히 깊은 곳에서 쌓이고 어떤 말들은 목까지 달려 나오다 멈추고 만다. 그런 말들이 글이 되어 나왔을 때 우리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그 말에 위로받고 회복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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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을 제외하면 이번 추선 연휴는 이틀이라 할 수 있다. 추석 당일에는 날씨도 별로였다. 은근히 덥고 오후에는 비가 내렸다. 어린 시절처럼 송편을 빚지도 않고 전을 부치지도 않는다. 차례 대신 간단한 예배를 드리고 많이 않은 식구가 모여 식사를 하는 게 전부다. 설에는 농사일이 없어서 다 같이 거실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는 게 일인데 가을 추석에는 일이 한창 바쁜 농사철이다. 식사를 마치자마자 커피나 과일을 먹는 대신 오빠는 약을 치러 나가셨다. 올케언니도 결혼한 조카에게 과일을 깎아 먹으라는 말을 건네고 서둘러 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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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조카는 이번 명절에 다른 때와 다르게 시댁이 아닌 친정에 먼저 왔다. 순서가 바뀐 것이다. 우리 집에서 아침을 먹고 시댁으로 가는 일정이다. 조카 부부와 큼지막한 배를 깎아 먹었다. 배를 좋아하는 편이 아닌 데 올가을 배는 달고 맛이 좋았다. 조카사위의 취향대로 물이 많았던 믹스 커피의 맛은 생략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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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게임이 한창이었지만 TV를 켜지 않았다. 내가 켜지 않으니 아무도 켜지 않았고 나중에는 다른 조카가 TV를 왜 안 보냐고 묻기까지 했다. 나는 그냥 안 보려고라고 말했지만 TV에 시선을 모으지 않으니 오히려 좋았다. 결혼한 조카는 최근에 직업을 바꿨다. 조카의 결단력에 조금 놀랐다. 자영업자가 되는 조카를 마음으로 응원했다. 시댁으로 출발해야 하는 조카 부부는 먼저 떠났고 남동생도 피곤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올케언니는 기다렸다. 올케언니의 말대로 시간은 길지 않았고 1시간 30여 분이 지나니 오빠와 올케언니가 돌아왔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

나는 마스크를 꼭 써야 한다고 괜한 잔소리를 했다. 오빠의 오른쪽 다리에는 큰 상처가 있었다. 다 나았다고 했지만 아직 시간이 필요했다.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거들었다. 우리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다 알고 있지만 잔소리를 하는 사이. 도착한 청첩장의 디자인을 보며 잠깐 이야기를 했고 갑자기 이웃집 아주머니의 이름이 궁금해서 올케언니에게 물었더니 알려주셨다. 그분은 교회에 다니지 않아서 이름을 모른다. 누구 엄마로만 알기에. 그분의 이름을 처음 알게 되었다. 흔한 이름인데 무척 특별하게 다가왔다.





명절에는 시간을 쓴다. 평소에는 내어주지 않았던 시간, 바빠서 미루고 미뤘던 시간, 그러나 힘들어도 힘들지 않은 시간이다. 명절에는 몸을 쓴다. 안 하던 일과 정리로 몸을 써서 명절 후엔 이곳저곳이 아프다. 명절에는 돈을 쓴다. 선물을 준비하고 봉투에 용돈을 넣는다. 선물의 크기와 종류에 상관없이 선물을 고르는 일은 어렵고 용돈도 금액과 상관없이 부족한 마음이다. 명절에는 마음을 쓴다. 연로하신 부모님을(나에게는 이제 오빠 내외) 뵈면 속상하고 나의 조카들에게는 고모로써 도움을 주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미안해서 마음이 쓰인다.


명절 일상을 기록하려고 했는데 쓰다에 많은 것들이 따라왔다. 명절이 지나고 명절을 쓰니 생각이 많아진다. 어느 해부터 추석에 송편을 먹지 않는다. 아무 때나 먹고 싶으면 사 먹을 수 있기에. 하지만 막상 송편도 없는 추석을 보냈다는 생각을 하니 서운하다.

​

꽉 찼던 보름달은 조금씩 살이 빠지고 다음 보름을 위해 준비한다. 단맛이 빠진 청귤 차에 물을 붓는 주말 저녁으로 우리의 명절은 끝났다. 이상하게 제목에 끌려 주문한 이서수의 소설, 윤단과 최미래의 단편을 기다리고 커피와 주문할 책을 둘러보는 아침, 진짜 연휴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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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6-09-27 1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안 게임 안 보셨어요? 저는 오전과 저녁 수영경기를 계속 봐서 가족들이 지겹다며 불평을 쏟아냈습니다ㅋㅋㅋㅋㅋㅋ
자목련님 가족들과 함께한 추석 이야기 평온해보여서 참 좋아요

자목련 2026-09-29 11:26   좋아요 0 | URL
ㅎㅎ 수영에 집중하신 망고 님!!!
챙겨서 볼 정도는 아니었고요.어쩌다 보니 일본과 결승을 많이 본 것 같아요^^

bogjory2002 2026-09-27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젠 송편도 전도 나물도 먹기 싫어진..
너무 나도 바뀐 요즘입맛.. 예전 추석때나 맛보던
어머니의 손맛
아련한 추억이 되엇다
그래도. 나는 아직도 열심히 만들고 맛잇게 먹는다.


자목련 2026-09-29 11:27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그리운 맛이 되었어요^^

2026-09-27 22: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6-09-29 11: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잠자냥 2026-09-28 13: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연휴가 너무 짧아서 슬펐지만...
10월 연휴가 또 오므로 참았습니다. ㅋㅋㅋㅋ

자목련 2026-09-29 11:28   좋아요 0 | URL
그쵸, 10월에도 연휴가 있으니~~
 


좋아하는 것과 첫 만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첫 떨림 정도는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누군가는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어린 시절 집에는 양장본의 세계문학이 있었다. 아마도 영업사원의 화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구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는 상술에 약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한 마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세계 전집 가운데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를 기억한다. 읽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읽지 않았지만 두 명의 언니 중 한 명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동화책에 대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명절이었는데 고모가 책을 사 왔는데 내가 아닌 사촌에게만 주었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내가 울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받았다. 나의 기억과 고모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모여서 책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선생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나의 은사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


올여름 카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기프트 카드였다, 책과 함께 행복하라는 메모도 있었다. 잊고 있다가 책을 주문했다. 책을 고르는 고민은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궁금한 소설도 많아서 어렵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윤고은의 『테니스나무』를 골랐다. 『찌니주의보』는 다른 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결제를 했고 취소를 하려니 벌써 출고 작업 중이었다. 창비의 요즘 표지는 정말 별로인데, 출판사는 모르는 걸까. 여름 독서가 아닌 가을 독서, 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이 되었다. 연휴에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책은 언제나 좋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있는 건 더 좋다. 친구들 가운데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기억하는 이가 있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나누는 것도. 가끔은 내가 좋아는 걸 무작정 내 맘대로 선물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 꽃, 티. 요즘엔 티가 많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여기 알라딘은 친근하고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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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어렸을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셨나봅니다. 전 어렸을 때 밖에서 논 기억밖에 없어요..ㅎㅎ

자목련 2026-09-23 12:38   좋아요 0 | URL
어려서부터 책을 아주 많이 읽지는 않았고요. 바깥보다는 집안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한 것 같기는 해요.
야무 님 평온하고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6-09-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 너무 공감이 갑니다. 딴데서는 눈치보고 잘 말하지 못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이곳에서는 맘껏 표현할 수 있어서 이곳이 너무 좋아요.
알라딘 서재를 항상 풍성하게 만들어주시는 자목련님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자목련 2026-09-27 11:03   좋아요 1 | URL
즐겁고 평온한 추석 보내셨나요?
책이 좋아서(읽는 것과는 별개로 ㅋㅋ), 이렇게 바람돌이 님의 댓글은 더욱 좋습니다!
알라딘에서 제가 모르는 책과 작가를 많이 알게 되고 놀라고 감탄합니다. 커피도 맛나는 알라딘, 정말 좋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