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해한 날들을 바란다. 그러니까 장마에 대한 이야기다. 밤마다 무섭게 쏟아지는 장맛비. 아침에는 말 그대로 밤새 안녕했냐는 안부를 전한다. 내가 사는 지역에는 감사하게도 큰 피해가 없고 지인들도 안전하다. 내가 안도하는 날들, 누군가 어려움에 힘든 시간을 보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불편하다. 자연재해라 해도 피할 수 있는 영역도 있다는 걸 우리는 경험상 알고 있다. 그런데도 놓치는 부분이 있다는 게 안타깝다.


장마의 날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 지나가는 얕은 바람이 반갑고 잠깐의 햇볕이 고맙다. 어제오늘은 장마와 거리를 둔 날씨 덕에 젖은 마음을 말리는 중이다. 이런 책도 마음을 말리는 데 좋다. 7월의 책은 한국 단편소설.





작년 7월에 깜짝 출판으로 기쁨을 안겨준 김연수의 단편. 김연수의 단편집은 아니다. 음악소설집으로 김연수, 김애란, 윤성희, 은희경, 편혜영의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어떤 음악이 흐를지 궁금하고 기대가 크다. 프란츠 출판사의 책은 처음이다.


그리고 이런 소설도 있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떠올리는 제목의 김화진의 단편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이 책은 단편소설 시리즈로 로맨스 소설인 것 같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양장으로 단편을 출간한 위픽 시리즈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직 자두를 먹지 못했다. 올여름의 자두를 먹어야 하는데 구매를 못하고 있다. 온라인 주문을 하까 싶다가도 온라인에서 과일을 산 친구의 후기가 별로여서 주저한다. 쉽게 먹을 수 있었던 과일을 먹기 힘든 날들이 올지도 모른다. 금값인 사과를 떠올리니 그렇고 기후 변화에 따른 결과라는 걸 생각하면 서글프다.









올해의 자두는 먹지 못했지만 여름엔 수국이 있다. 올해도 나는 수국을 주문했다. 풍성한 수국이 예쁘다. 수국수국한 날들이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이 여름, 수국을 보는 걸로 만족해야 하나. 맛있는 자두를 찾아야 한다. 그리고 먹어야 한다. 여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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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감 2024-07-11 15: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핑크와 아이보리의 컬러 조합. 제가 코디에 자주 사용합니다요. 물론 상의가 핑크요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7-12 10:10   좋아요 1 | URL
잠깐 오늘 물감 님은 어떤 옷을 입으셨을까 상상해봅니다^^

망고 2024-07-11 15: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자두 비싸더라고요. 근데 저희집 자두나무에도 자두가 별로 안달렸어요ㅠㅠ
수국은 정말 너무 예쁜 꽃! 자목련님 수국에 저 잎줄기 꺾어다 화분에 심으면 뿌리가 나옵니다 수국 한번 길러 보셔요😁

자목련 2024-07-12 09:53   좋아요 0 | URL
마트에 자두가 없어서 구매를 못하고 온라인을 뒤적이고만 있어요.
자두 먹어야 하는데 ㅎㅎ
잎줄기에서 뿌리가 나오나요? 정말 신기하네요!

독서괭 2024-07-12 0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국이 아름답네요~ 아직 자두를 못 드셨다니! 전 자두 먹을 때마다 입덧할 때 생각이 납니다 ㅋ
장마 피해 더이상 없으면 좋겠어요 ㅜㅜ

자목련 2024-07-12 09:55   좋아요 0 | URL
수국은 정말 예쁩니다!
아가들도 자두를 좋아할 것 같은데 맞을까요?
다음 주에 또 비가 온다는데 걱정입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소재가 되는 마녀, 『마녀의 역사』 란 제목을 보고 마녀사냥, 마녀재판, 화형 같은 게 떠올랐다. 정확하게 마녀에 대한 개념도 모르면서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만들어진 이미지와 이야기를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다면 마녀는 누구일까? 그 시작은 언제였을까. 그리고 왜 우리는 지금까지 마녀사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을까. 『마녀의 역사』 란 책은 그런 궁금증을 불러온다.


책은 중세에서 근대까지 유렵에서 벌어진 마녀사냥, 마녀재판에 대해 들려준다. 누가 누구를 주도적으로 마녀로 만들었고 재판에 이르렀는지 말이다. 풍부한 자료와 해설, 그리고 강렬한 일러스트로 마녀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그 시대에 빠져들게 만든다. 초기의 마녀는 병을 고치고 사회를 지키는 존재였다고 한다. 고대 중동에서는 여신을 숭배했다. 고대 마녀들은 사회에 꼭 필요했다. 그러다 전사, 싸움, 남성 중심으로 남성 우위 문화와 종교의 발전하면서 마법과 마법을 쓰는 여성들에 대한 시선이 변화하였다.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요술에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이다. 요술을 쓰고 마법을 쓰는 것은 기독교와 대립하며 악마와 결부된 것이라 여긴 것이다.





이처럼 종교든, 집단이든,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목적을 위해, 또는 정치적으로 상대를 무너뜨리고 악의적 소문을 내고 흠집 내는 일은 어느 시대나 똑같이 자행되어 왔다. 그 방식과 형태만 다를 뿐이다. 책에서 만난 마녀사냥을 통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내모는 잔혹함에 경악한다. 여기 공작부인의 경우를 보자. 공작부인이 마녀라고 누가 생각하겠는가. 잉글랜드 남동부 서리주의 하급 귀족 집안에서 태어나 왕족과 결혼한 ‘엘리노어 코브햄’은 왕위 계승자의 아내였다. 그러니 곧 잉글랜드의 왕비가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왕비 자리를 노리고 요술을 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재판의 목적은 그녀와 남편을 무너뜨리는 거이었다. 앨리노어가 신비 신앙(점성술)에 의존했다는 것, 그로 인해 왕비가 될 수 있을지 점쳤을 게 문제였다. 당시 강력한 권력을 지닌 교회는 신앙으로부터 일탈한 자를 벌한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요술로 고발당한 왕가의 여성은 헨리 4세의 과부 ‘잔’도 있었다. 의붓자식 헨리 5세르 저주한 혐의였다. 잉글랜드 왕 에드워드 4세와 결혼을 위해 요술을 벌였다고 규탄 받은 ‘엘리자베스 우드빌’도 있다. 이쯤에서 조선시대 궁궐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것이다. 단 한 명 왕의 사랑을 독차지하기 위해 여러 후궁들의 다툼, 때와 장소만 다를 뿐 욕망을 채우기 위한 모습은 다르지 않다.


교회에서 이단을 근절하고자 대부분 여성을 마녀로 표적 삼았다는 건 안타깝다. 종교개혁자들도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마르틴 루터는 여성은 허약하므로 요사스러운 약속에 끌린다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했다. 16세기부터 17세기 유럽의 마녀사냥으로 기록상 적어도 4만 명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기록이라는 점을 생각하며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어느 시대든 반사회적 선동가가 출현해 민중에게 불안과 편견을 심고, 사회에서 일어나는 재난의 원인으로 특정한 그룹이나 개인을 희생양으로 만든다. 희생자는 유대인, 이미, 정부, 유럽연합, ‘지옥에서 찾아온 이웃’ 등 다양하나, 그것이 누구든 이 사회적인 병의 증상은 거의 같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도 알아야 한다. (『마녀의 역사』, 89쪽)


마녀 사냥꾼이 등장은 당연했다. 책에서 소개하는 마녀 분간법을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몇 개를 언급하자면 과부이며, 고양이, 두꺼비 등을 기르고, 매주 교회에 가지 않고, 해가 진 뒤 밖을 나돈다, 혼잣말이 많다. 현대 사회에 적용하자면 내 이웃은 마녀가 분명하다. 그런가 하면 악의적인 마술로부터 몸을 지키는 방법도 흥미롭다. 고양이 시체를 벽에 묻는 관습, 마녀의 의자라 불리는 굴뚝의 튀어나온 돌, 밝은 색 유리로 만들어진 구체인 마녀의 공, 마녀에 대항하는 절대적인 효과를 발휘한다는 식물 마가목.


중세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충분히 만족할 것이다. 마녀에 대한 다양한 시선과 고찰로 마녀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놀랍고 흥미로운 역사 속 마녀의 이야기는 현재를 돌아보게 만든다. 지금 우리는 어떤 시대를 사는지 말이다. SNS, 인공지능, 딥페이크를 통해 또 다른 마녀사냥을 하는 건 아닐까. 소문의 진위, 확인되지 않은 사실로 누군가를 죽음으로 몰고 가고 있는 건 아닌지 살펴야 할 것이다.


『마녀의 역사』를 읽으며 떠오른 책이 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다. 마녀와 악녀, 둘 중 누가 더 사회에 해를 입혔을까. 아니, 마녀와 마찬가지로 누가 그녀를 악녀로 만들었는지가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역사에 남은 여성의 위대한 업적은 많지 않다. 대신 미모를 내세운 계략을 위해 이용되거나 부와 사치를 일삼에 민중의 적이 된 이야기를 떠올리기 쉽다. 어린 왕이 즉위했을 때 일정 기간 국정을 어머니나 할머니가 대리로 처리하던 수렴청정과 권력을 유지하려고 반대 세력을 몰살하는 드라마가 생각날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은 모두 악녀일까. 어쩌면 그들은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최선을 다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드라마 <선덕여왕> 속 미실을 연기한 고현정의 잔인하고 표독스러운 포정이 자꾸만 악녀와 겹쳐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자 시부사와 다쓰히코가 선택한 12명의 악녀는 악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이 1964년에 나왔고 문고판 후기가 1982년에 쓰인 것으로 보아 적어도 60년 전에 나온 책으로 책에 등장하는 12명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고백하자면 나는 악녀로 선택된 12명 가운데 엘리자베스 여왕, 마리 앙투아네트, 클레오파트라, 측천무후, 마그다 괴벨스의 이름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알지 못했다. 그들을 기억하는 이유도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만났기 때문이다.


저자가 소개하는 악녀들은 대체로 명문가에 태어났지만 근친상간이나 정략결혼으로 행복하다고 할 수 없는 결혼 생활을 유지했다. 때문에 외도 상대 때문에 남편을 독살하거나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았다. 저자가 소개한 악녀는 어린 나이에 결혼한 것도 모자라 남편은 전쟁터에 나가고 시어머니의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우울한 삶에서 쾌락을 선택하거나 뛰어난 미모나 결혼으로 얻는 지위와 권력을 휘두르는 음란한 여성이다. 물론 하나같이 참혹한 결말을 맺는다.


책에 의하면 평생 처녀로 살다 간 엘리자베스 여왕은 수많은 남성과 관계를 맺었다. 여왕은 그들이 자신만을 사랑하길 원했지만 상대로 인해 마음고생도 심한 것으로 보인다. 쉰 세 살의 여왕이 사랑한 스무 살의 에식스. 점점 여왕을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는 그를 어떻게 봐줄 수 있겠는가. 야심이 강하고 폭력적이었던 네로 황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의 욕망은 실로 대단한다. 아들 네로에 의해 암살을 당해 생을 마감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측천무후도 다르지 않다. 황제의 여인이 되었지만 질투가 심해 황제가 조금이라도 마음을 둔 여인은 독살을 하거니 알 수 없는 죽음에 이르렀는데 그 대상은 자식과 며느리까지 다양했다.


12명의 악녀는 만족할 줄 몰랐다. 아마도 자신이 잡은 권력이 영원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자신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여기면 모두 제거하려 했다. 자식이든 연정을 품은 상대도 가차없었다. 중세 유럽의 여성들과 괴벨스의 아내 마그다 괴벨스는 성격이 다르긴 한다. 필요 없는 가정이지만 베를린 체육관에서 열린 나치당 집회에 가지 않았더라면 마그다의 인생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여왕, 왕비로 사느라 성이나 궁정에 갇혀 밖을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삶이 조금은 안타깝기도 하다. 우리 역사를 봐도 그렇지 않은가. 궁궐 안에서 살아내느라 자신만의 탈출구가 필요했던 이들의 이해할 수 없는 모습들. 주술에 빠지고 약과 독에 취할 수밖에 없는 그들은 정신적으로 불안했을 것이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대한 저자의 설명처럼 말이다.


끊임없이 무언가에 쫓기듯 이것저것 놀이를 바꾸어가며 새로운 유행을 좇던 그녀의 광적인 향락 습성은 도대체 어떤 성격에 기인할까. 신앙심 깊은 엄격한 어머니로부터 경고를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다음과 같이 솔직하게 대답했다. “어머니는 대체 저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신지요? 저는 따분해질까 봐 두렵습니다.” 왕비의 이런 표현은 18세기 말의 정신 상태를 여실히 보여준다. 붕괴 직전의 고요함일지도 모른다. 혁명이 발발하기 전, 모든 것이 충족되어 있던 귀족 사회에서는 따분한 이외의 그 어떤 정신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면적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람들은 결코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춤을 계속 춰야 했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 117쪽)


12명의 여성은 악녀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먼 훗날 그들은 재조명될 것이다. 역사는 돌고 악녀의 계보는 추가되고 이어질 것이다.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책으로 만나는 <신비한 TV 서프라이즈> 같았다. 『마녀의 역사』와 『세계의 악녀 이야기』는 제대로 역사를 읽고 기록해야 한다는 걸 알려주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기록은 중요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도 마찬가지라는걸. 마녀와 악녀란 프레임을 만드는 게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닌지 반성해야 한다고.


세계에는 아직 요술의 혐의로 목숨을 잃는 지역이 있다. 이성이 시대라 불리는 현대를 사는 우리도 이러한 상황을 성찰해야 하며,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러한 사상에는 밝은 면이 있다. 오랫동안 추하고 고독한 외지인이라고 비웃음을 사고 두려움을 받아온 마녀들은 우리들에게로 돌아왔다. 긍정적인 존재로 다시 태어난 현대의 마녀 위키와 그들의 마법은 20세기에 착실히 인기를 모아, 긍정적이고 힘차게, 드높은 의지를 품은 커뮤니티를 형성했다. 암흑의 시대를 잊어서는 안 되지만 21세기의 마녀는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려 하고 있다. (『마녀의 역사』,1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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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작약의 시간은 끝났지만 시로 작약을 만난다.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작약의 계절에 만났으면 더 좋았겠지만 아쉬움은커녕 반갑다. 이렇게 또 작약에 빠져든다. 조용미 시집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서 발견한 시다. 이 시집을 구매하려고 했던 건 아니다. 안희연의 신간을 살펴보다가 문학동네 말고 창비나 문지에서는 어떤 시집이 나왔나 찾다가 조용미의 신간을 보았다. 목차를 보다가 작약을 보았다. 아니, 작약이라니 그럼 이 시집을 사야지.






저 작약의 본을 짐작해 볼까


내 이파의 작약은 한때 귀신이었다가 한때 기린이었다가

한때 흰뺨검둥오리였다가 한때 벚나무모시나방이었다가

한때 거미게였다가


어쩌면 나였던 누구였다가, 단공도 부단공도 모르는 크게

깨우진 자였다가 공재고택의 향나무였다가


이번 생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 이 고리를 끊으려 했던

그저 사람이라는 이름을 얻은 고독한 자였다가


마침내 확연히 명백한 작약이 되었다 내 앞의 작약이 되었다 (「작약의 본생담」 , 전문)



먼 산 작약

산작약


옆 작약

백작약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 간다


당신 없이,


백자인을 먹으면 흰머리가

다시 검어진다


잠을 잘 수 있다


백자인을 먹으면 다시 나의 자리로

돌아간다


측백나무의 씨

온석 같은 열매 속에는


백자인 여섯 알이

가만히

들어 있다


저수령 넘어 은풍골로 작약을 보러 간다 (「작약을 보러 간다」, 전문)







사진첩에서 작약을 찾았다. 백작약, 사라 작약, 레드 참 작약. 작약이 피고 지던 순간을 떠올린다. 올해의 작약이 준 행복들. 그리고 곧 수국이 가져다줄 기쁨도 생각한다. 물론 『초록의 어두운 부분』에 수국에 관한 시도 있다. 그 시는 수국을 마주할 때 읽어야지.


시가 있어 좋다. 시로 작약을 만나서 좋다. 이런 시를 써 준 시인이 고맙다. 유희경의 「심었다던 작약」에 이어 이제 조용미의 작약도 기억할 것이다. 책장에 조용미의 다른 시집이 있다. 모아두기만 한 시집을 펼치는 여름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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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소설은 읽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고 어떤 소설은 읽었다고 착각한다. 박완서 작가의 『나목』도 그런 소설이었다. 읽은 건 같은데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박수근 화가, 한국전쟁, 그 정도만 생각났다. 읽었다고 하면 제대로 읽지 않은 것이고 읽지 않았다고 하면 방송이나 지인이 언급한 내용에 읽었다고 여긴 것이다. 읽고 있는데 읽은 것 같다. 그러니까 제대로가 아닌 대충인 것이다.


대학 때 교양 국어 수업을 들었다. 강사가 박완서 작가를 닮은 분이셨다. 그 수업이 좋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학점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친구는 아이가 어렸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많이 빌렸다. 종종 통화를 할 때면 책 목록에 대해 말하곤 했는데 당시 친구가 빌린 목록 가운데 박완서 소설이 있었다. 초등학생용 도서였다. 나중에 통화할 때 『나목』에 대해 물어봐야겠다. 친구는 제대로 읽었을 것 같다. 대신 내게는 『나목에 핀 꽃』이 있다. 좋아하는 동생이 선물한 책인데 시간의 두께가 가득하다. 이 기회에 다시 읽어봐야겠다.







매년 의식처럼 구매했던 젊은작가상을 올해부터는 수상작품 가운데 읽은 소설도 있어서 사지 않기로 했는데 읽고 싶은 작가의 단편이 있어 구매했다. 김멜라와 김남숙 소설만 읽을 것 같다. 다른 소설은 작가노트만 읽을지도 모른다.


카뮈의 에세이를 읽은 기억이 없다. 카뮈의 에세이 『결혼·여름』도 이번 여름에 읽으면 좋을 것 같다. 실은 녹색광선에서 나온 『결혼·여름』를 구매하고 싶었는데 가격을 생각하며 미뤘는데 이번에 책세상에서 나온 걸 보고 구매했다. 예쁜 건 녹생광선의 책이 진짜 예쁘다. 덥다. 조금이 아니라 제법 많이 덥다. 읽는 즐거움이 더위를 잊을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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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7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나목 갖고 싶게 만들었네요.
요즘 드라마 ‘졸업‘ 보고 있는데 고등학교 국어에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가르치더군요.
가끔 국어 교과서도 좀 훑어봐야겠구나 싶더군요.
나목은 저도 읽었는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요.ㅠ

자목련 2024-06-19 10:2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예쁩니다. 읽는 맛이 좋다고 할까요.
국어 교과서 본 기억이 없는데 궁금해지네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 슬프다, 아프다, 그립다, 이런 말로 정리하기 어려운 감정 말이다. 저마다 고유한 감정은 결과 폭이 다르다. 같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이름으로 부른다. 같은 질량으로 판단하다. 그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딱히 고민하지 않았다. 사느라 바빠서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서,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생각나지 않아서, 이유는 많다. 그런 복잡하고 엉킨 감정을 하나씩 풀어 이름을 붙인 이가 있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 존 케닉이다. 감정이라는 거대한 가지에 붙은 잔 줄기에 이름을 붙이기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그것을 정리한 내용이 바로 이 책이다. 쉽고 단순하게 말하자면 신조어 사전이다.


슬픔에 이름 붙이기란 제목처럼 슬픔에 국한된 내용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숱한 감정들, 고독한 순간들, 내밀한 심연과 마주하는 순간을 새로운 단어로 설명한다고 할까. 여섯 장에 걸려 외부 세계, 내적 자아, 당신이 아는 사람, 당신이 모르는 사람, 시가의 흐름, 의미의 추구까지 주제별로 모은 300여 개의 단어를 만날 수 있다. 신조어 사전답게 그가 만든 단어는 어원에 대한 설명이 더해진다. 가령 이런 것이다. 슬립 패스트(slipfast)는 형용사로 어원은 slip + fast다. 뜻은 세상에 참여하지 않고도 세상을 바라볼 수 있게, 전혀 발자국을 남지 않고도 사람들의 대화 속을 자유로이 헤맬 수 있게.


존 케닉의 설명을 읽고 나면 아마도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어떤 일에 개입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게 되는 그런 순간을 떠올릴지도 모른다. 물론 이건 나의 생각일 뿐이다. 생각해 보면 이처럼 어떤 단어는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만 똑같지 않을 수 있다. 어느 연인은 “사랑해”란 말 대신 둘만의 신호로 특정 숫자를 언급하기도 하고 “고요해”란 말로 대신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니 이 책은 자유로이 해석될 수 있다.







영어로 만든 단어, 같은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없다고 여길지도 모르다. 맞다. 그러나 가만히 이 책의 신조어를 하나하나 읽다 보면 깊은 밤 누구에게 들킬까 혼자만 돌아보았던 순간의 감정이나 막연하게 이해받고 싶었던 감정이 스쳐지나는 걸 느낄 것이다. 그것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낄 법한 감정의 순간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여러 해 동안 알아온 누군가에게도 개인적이고 신비한 내적 삶이 존재한다는 깨달음이란 그노시엔느(Gnossienne)라는 단어를 만났을 때 그랬다. 짐작했듯이 에릭 사티의 피아노곡 제목에서 차용한 단어다.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해서 다 알 수 없다. 전부를 알고 싶지만 전부를 아는 일은 불가능하다.


우리 사이에는 늘 어떤 거리감이 존재할 것이다. 어쩌면 견유학파의 말이 맞는지도, 사랑은 그저 환상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성스러운 종류의 환상일지도, 아이들을 인도하기 위해 나타나는 파랗게 빛나는 신들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그렇다고 믿기만 한다면, 그것은 힘을 지닌다. 그리고 그거면 충분하다. (137쪽)


그럼에도 더 알고 싶은 마음이 이런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게 아닐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싶고 조금 더 상대의 슬픔이나 아픔을 이해하고 싶은 간절함에 말이다. 그런 마음 조각들이 프로젝트란 이름으로 모여 이런 사전이 되었다. 사실 이 책에 대해 말하는 건 어렵다. 한국어가 아닌 외국어라는 점에도 그렇지만 직접 읽었을 때 와닿는 기분이나 분위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없기에. 문득 떠오른 건 전시 같은 형태로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책엔 단어를 표현한 콜라주 작품이 있기 때문이다. 앞서 끌렸던 단어 Gnossienne엔 이런 작품으로 만날 수 있다.






날씨 따라 마구 달라지는 감정, 계절마다 뒤바뀌는 감정, 그때의 감정을 획일적인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건 삭막한 일이다. 시대에 따라 유행하는 말이 다르고 같은 말인데 세대에 따라 다르게 사용된다. 그뿐인가, 어떤 말은 사멸한다. 그런 점에서 존 케닉의 이런 프로젝트는 의미 있다.

아마도 특정 단어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그 단어에 반하게 되거나 반가움을 표할지도 모른다. 한국어로 번역해 사용하고 싶을지도 모른다. 내 안의 감정을 정리하여 이름을 붙이고 싶은 욕구를 느낄지도 모른다. 하나의 감정에 대해 고유하고도 차별적으로 펼쳐놓는다고 할까. 결코 같을 수 없는 무게의 슬픔 혹은 감정에 이름을 붙인다면 어떨까. 존 케닉의 이 책처럼 나만의 시를 쓰고 사전을 만들어봐도 좋을 것이다. 남다르고 각별하게 기억될 책이다.


단어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왜곡되고 변화하면서 시대에 뒤처지거나 새로운 의미를 띠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단어는 겉으로는 제자리에 고정된 듯한 모습을 보이며 우리의 삶에서 우리를 달래주는 존재로, 우리가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마다 의지할 수 있는 무언가로 남는다. (292~293쪽)


독특하고 특별한 『슬픔에 이름 붙이기』을 읽다 보면 자동적으로 떠오르는 책이 있다. 바로 이 책을 추천한 김소연의 『마음사전』이다. 김소연의 『마음사전』은 제목 그대로 마음사전이다. 나도 모르는 나의 마음, 알고 싶지만 단단한 문으로 가로막힌 당신의 마음을 향한 두드림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바람결에 달라지기도 하는 감정의 상태, 숨어버린 마음, 속이 상해 울컥한 기분을 달래주는 글의 집합체! 전부를 다 소개하고 설명하지 않아도 이런 단어로 충분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람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아름답게 맺는다. (「은은하다: 은근하다」, 전문)


「은은하다: 은근하다」를 읽는다. 마음과 감정의 이름을 불러주면 그것들은 진정 선명한 형태를 지닌다. 명확하게 내게로 온다고 할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을 생각한다. 그는 향기를 지닌 사람, 무언가를 열심히 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서는 빛이 난다. 그 빛은 멀리서 알아볼 수 있도록 환하고 아름답다. 어렵겠지만 은은하고 은근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성찰하는 고독의 시간을 통해 단련하는 사람.


다른 책으로 김신식의 『다소 곤란한 감정』이다. 모두에게 같은 감정을 강요할 수 없고 타인의 감정을 섣불리 예단해서도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정 비평이라고 말하고 싶다.


타인의 감정 상태에 이름 붙이기가 심해지면 어찌 될까. 당신의 하루. 본인의 감정을 굳이 해석하고 싶지 않은 상태로 자신을 자신을 잠시 내버려두고 싶은 날. 그러나 누군가는 당신의 심적 상태마저도 어떤 감정이라며 이름 붙이려 한다. 감정에 관해 스스로 무無의 상황에 놓이고 싶은 싶은 시공간을 확보하기란 점점 어렵다. 감정에 관한 무의 상황도 특정한 감정임을 확인하려 드는 시도 때문에. (『다소 곤란한 감정』, 212쪽)


하나의 현상에 대해서 모두가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사회적 이슈에 대해 언론이나 전문가의 말을 들으며 그들의 감정에 휩쓸리곤 한다. 그들과 다른 감정을 표출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라고 할까. 다른 감정을 소유할 수 있고 다른 의견을 낼 수 있어야 한다. 개개인이 모여 사회를 이루고 그 안에서 다양한 감정을 읽어내는 일은 중요하고 필요하다.


나의 슬픔에 이름을 붙이는 것처럼 타인의 슬픔과 감정에도 내가 모르는 이름이 있을 수 있다. 서로의 이름을 알려주고 불러주는 일, 위로와 회복의 시작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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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6-16 1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건 딴 얘긴데 마음사전을 쓴 김소연 작가가 시인겸 건축가인 함성호 씨와
부부지간이더군요. ㅎ

자목련 2024-06-16 17:11   좋아요 1 | URL
네, 함성호 씨의 산문을 통해 알게 되었어요. 시인과 소설가 부부, 소설가 부부도 많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