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고 서점을 좋아하고 거기다 고양이까지 좋아한다면 반할 소설이 있다. ‘2024 일본 판타지 소설 대상 수상작’ 우츠키 겐타로의 『고양이서점 북두당』이다. 제목부터 흥미롭지 않은가. 고양이서점이라니? 고양이가 서점의 마스코트인가 싶을 것이다. 아니면 서점 주인이 애묘가이던가. 어쩌면 독립서점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어떤 면에서 모두 맞다. 이 소설은 매력적인 고양이와 어딘지 모르게 수상한 주인의 이야기니까. 판타지 소설이니 서점 주인이 사람이 아닌 고양이는 아닐까 그런 상상을 가능하다.


소설은 아홉 번째 환생한 검은 고양이 ‘쿠로’가 들려주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이번이 마지막 생인 것이다. 여덟 번이나 살았으니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알만큼 다 아는 쿠로는 사람을 믿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고양이와 친하게 지낼 생각도 없다. 생존을 위해서 따뜻하고 먹을거리도 있는 사람 근처를 돌아다니다 이상한 곳을 발견한다. 그곳이 바로 ‘북두당’이다. 그곳에서 한 여자가 고양이를 위해 물그릇을 채우고 “언제든지 와도 돼”라며 말을 건넨다. 마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인간에 대한 경계를 풀지 않았지만 여자의 친절과 다정한 말에 흔들린다.


쿠로가 살펴본 서점은 좀 이상하다. 손님이 많은 것도 아니고 열 살 소녀 마도카만 정기적으로 서점을 방문한다. 책을 입고하는 모습도 볼 수 없고 주인 여자는 네 마리의 고양이들과 책에 둘러싸여 지낸다. 그러다 마도카카 집에 돌아오지 않는 일이 생겼다. 신경 쓰지 않기로 했지만 마도카가 갈 만한 곳을 찾아 나선다. 비를 피해 미끄럼틀 아래서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읽느라 정신이 팔린 마도카는 쿠로의 울음소리에 집에 가야 한다는 걸 알았다. 쿠로가 마도카를 찾아준 걸 아는 서점의 고양이는 바로 친해지지 않아도 된다며 쿠로를 서점으로 이끈다. 그렇게 북두당에 들어간 쿠로는 다른 고양이들이 ‘마녀’라 부르는 ‘에리카’와 지내게 된다.


놀랍게도 에리카는 고양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 있었다. 어떻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쿠로는 궁금했지만 알려주지 않는다. 서점의 고양이들의 말에 따르면 고양이의 전생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면 들을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쿠로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기에 쉽게 여자에게 자신의 전생을 꺼낼 수 없다. 사실은 고양이에게 중요한 이름을 얻지 못했다는 것. 여덟 번의 생 가운데 가장 행복하고 평온했던 세 번째 생의 시절이 있었지만 끝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누군가는 이쯤이면 짐작할 것이다. 쿠로가 일본 근대 문학의 거장 나쓰메 소세키의 고양이로 살았다는 것을 말이다. 소세키 곁에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탄생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소설의 고양이가 바로 쿠로라는 걸 말이다. 쿠로는 자신의 진명을 나쓰메 소세키의 본명인 ‘긴노스케’로 짖는다.


나는 그 사람에게 진명을 받고 싶었다. 그러니까 적당히 지은 이름 따위는 싫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나에게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다. 그게 변덕이었는지, 고집이었는지, 아니면 자유방임주의적인 성격의 산물인지, 이유는 끝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이름을 짓기로 했다. (122쪽)





소설은 쿠로가 들려주는 지난 여덟 번의 생과 함께 일본 역사를 돌아본다. 에도 시대 대기근, 메이지와 다이쇼, 쇼와 시대를 거치며 쿠로가 만난 인간의 모습은 자신들의 욕망만 채울 줄 아는 존재였다. 그런데 마지막 아홉 번째 생에서 만난 에리카와 마도카는 달랐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마도카와 마도카의 글을 읽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 에리카. 이상한 건 마도카의 글을 읽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는 에리카다. 에리카에게는 무슨 사정이 있는 것일까. 서점 북두당도 이상한 공간이다. 손님이 책을 사면 저절로 책이 채워지고 심지어 재고 정리는 고양이가 한다.


북두당에 정착한 쿠로는 작가가 되려는 마도카의 성장과정을 지켜본다. 그런데 열심을 글을 쓰던 마도카가 서점에 발길을 끊는다. 외모도 변하고 불량 청소년과 어울린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집안 사정이 어려워져서 글쓰기를 그만둔 마도카는 엄마와 갈등도 심한 상태였다. 그러나 마도카의 진심은 그게 아니었다. 쿠로가 세 번째 생에서 만난 소세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마음이 병들고 몸마저 쇠약했던 소세키가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건 글쓰기 때문이었다.


어떤 이에게 글을 쓴다는 행위는 곧 치유다. 마음의 상처를 글이라는 형태로 바꾸어 바깥으로 끌어내고, 그것을 객관적으로 마주하며 천천히 받아들이는 과정. 그렇게 먼저 자신을 치유하고, 언젠가는 또 다른 누군가의 마음에도 가 닿게 된다. 그리하여 글쓰기는 마음의 안녕과 평온을 지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 된다. (279~280쪽)


17년 동안 쿠로가 북두당에 살면서 만난 인간의 이야기. 신비로운 공간 『고양이서점 북두당』 에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마도카를 응원하는 에리카와 고양이들의 모습은 따뜻한 울림으로 남는다. 어디 그뿐인가. 소설 곳곳에서 나쓰메 소세키, 이나가키 타루호, 이케나마 쇼타로, 무로오 사이세이 등 고양이를 사랑한 문호들이 등장하는 재미와 그들을 향한 문학적 오마주와 글쓰기와 창작의 고통을 섬세하게 담아낸다.


『고양이서점 북두당』은 환생한 고양이의 시선으로 생과 사, 인간의 다채로운 삶, 상처와 회복, 치유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이름을 불림으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쿠로의 모습을 통해 정체성과 우리에게 이야기가 건네는 위로와 힘을 생각하게 한다. 글을 쓰고 읽는다는 것, 문학의 소중함에 대해서.


책과 서점, 그리고 고양이란 조합을 생각하니 희귀본이 가득한 고서점을 배경으로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와 외톨이 소년의 기이한 모험을 담은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가 떠오른다. 고양이, 서점, 책이 주는 기쁨과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책이다.


고서점을 운영하는 할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린타로’는 때때로 학교에 가지 않고 서점에 틀어박혀 책을 읽기도 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린타로는 폐점을 앞둔 서점을 지킨다. 그런 린타로에게 말하는 고양이 ‘얼룩’이 나타나 책을 구하기 위해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책을 구하기 위한 린타로와 고양이 얼룩. 이 소설은 책의 힘을 믿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할아버지, 고서점에서 읽은 책들을 통해 린타로가 책을 사랑하는 게 무엇인지 알려준다.


“책에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이 그려져 있어요. 괴로워하는 사람, 슬퍼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웃음을 터드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말과 이야기를 만나고 그들과 하나가 됨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어요. 가까운 사람만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의 마음까지도요.” ( 『책을 지키려는 고양이』, 261쪽)


물론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다. 『고양이서점 북두당』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었다면 더욱 반갑게 읽을 수 있고 읽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재밌게 읽을 소설이다. 고양이, 서점, 책을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쿠로의 환생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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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16 18: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 책 표지 왜 이리 예쁘죠? 그래도 표지만 예쁘다하고 지나갔을 책인데 자목련님 글 읽고 읽어야ㅜ할 책으로 비뀌었어요.

자목련 2025-09-17 09:50   좋아요 1 | URL
재밌는 환상 판타지인가 싶었는데 글쓰기와 이야기가 갖는 힘과 의미에 대해 말하는 책이구나 싶었어요^^

레삭매냐 2025-09-30 11: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고냥이...

소세키 샘의 <고양이> 책은
정말 오래 전에 사서 읽다 말
았더라는. 다시 도전해 봐야
겠어요.
 


자꾸 산다. 생필품을 사고 먹거리를 산다. 그리고 이런 것도 샀다. 귀여워서, 자꾸 눈에 밟혀서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삭제하기를 반복하다 마음에 들였으니 곁에 두기로 한다. 북엔드를 좋아하는데 스누피 북엔드를 어떻게 거부할 수 있을까. 예쁘고 귀여운 걸 보면 기분도 좋아진다. 북엔드란 기능도 있으니 예쁜 소품 이상이지 않은가.


책을 정리할 때 스누피를 보면 정리도 잘 되고 책도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예쁜 건 한 번 더 스누피 정말 예쁘다. 스누피 정말 귀엽다. 스누피 시리즈를 다 사고 싶은 마음은 참아야지. 저기 멀리 넣어둬야지.





봉투도 샀다. 지난번 구매했던 빨강 머리 앤을 한 번 더 구매할까 하다 다른 건 뭐가 있나 살펴보다 발견했다.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예쁜 꽃사과 봉투였다. 알라딘에서 문방구 용품 할인 행사를 했으니 알뜰 구매라 스스로 칭찬하면서. 시의적절 9월 유계영의 『무궁무궁』은 다음에 사야지. 그때 잠자냥 님이 추천한 커피도 함께 사야지. 사야할 것들을 생각해도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주부터는 잠들기 전 창문을 닫는다. 열기를 품은 밤은 줄어든다. 감기 걸리기 좋은 날, 남아 있는 여름이 온전히 떠나가는 걸 목도할지도 모른다. 금세 강렬한 여름은 잊고 가을을 살아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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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고 2025-09-11 15: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누피 저도 있어요ㅋㅋㅋㅋㅋ책상에 올려놓았는데 볼때마다 넘 귀여워서 기분이 좋아져요

자목련 2025-09-12 10:04   좋아요 1 | URL
그쵸? 스누피는 사랑입니다!

거리의화가 2025-09-11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누피도 귀엽지만 저는 찰리 브라운도 좋아해요!ㅎㅎ 알라딘 봉투 예쁜 게 참 많아서 볼 때마다 유혹합니다!^^ 요즘은 축의금도 카톡으로 보내다보니 쓸 일이 없는 것 같다가도 간혹 편지나 간단한 메시지를 적어서 줄 일이 있을 때 필요하더라구요ㅋㅋ
일교차가 정말 커졌어요. 요즘은 긴팔 셔츠나 가디건 필수로 챙겨다닙니다. 감기 유의하세요^^

자목련 2025-09-12 10:08   좋아요 0 | URL
찰리 브라운도 좋아요! 매력적인 표정. 다음엔 찰리 브라운을 구매할지도 몰라요 ㅎㅎ
알라딘 봉투를 그냥 소장하고 싶은 것도 많아서 걱정입니다.
화가 님의 가을 산책 풍경, 나중에 들려주세요^^

바람돌이 2025-09-1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샐리컵이랑 우드스톡 컵 있어요. 커피 마실 때마다 아 얘들 너무 이뻐한다죠. 그러고 보니 스누피 메모장도 있네요. 전시 같은거 갈 때마다 하나씩 사고, 알라딘에서도 사고.... ㅎㅎ
알라딘의 봉투들은 진짜 예쁜데 저는 정말 글씨를 못써서 예쁜 종이류나 노트류는 못사요. 부끄러워서요. ㅎㅎ

자목련 2025-09-12 10:13   좋아요 1 | URL
스누피 머그도 예쁘죠. 지금은 구매할 수 없으니 더 갖고 싶네요. 스누피 스프볼도 사고 싶고요.
봉투는 상품권이나 용돈 봉투로 정말 좋아요^^
손글씨는 저도 엉망이라 노트와 필기구는 잘 안사요 ㅎㅎ

꼬마요정 2025-09-1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즈와 커피는 사랑입니다^^ 저도 너무 많이 사서 큰일이에요. 봉투가 너무 예쁜 게 많아서 사다보니 봉투만 잔뜩입니다. 거기다 엽서도 한 때 너무 예뻐서 샀더니 잔뜩 쌓여 있습니다. 예쁜 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에요ㅠㅠ

자목련 2025-09-15 17:15   좋아요 1 | URL
사랑이 가득한 알라딘이네요~
너무 예쁜 봉투와 엽서. 종종 선심을 쓰며 나눔을 해야 합니다 ㅎㅎ
 


책을 조금 더 성실하게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다. 책을 샀으면 읽어야 한다는 다짐으로 쓴다. 뭐, 그렇다는 말이다. 책을 샀고 커피도 샀다.

낡고 오래된 책을 정리했다. 읽지 않았으나 읽을 것 같지 않은 책들이다. 정리하면 공간이 생긴다. 공간이 생기면 채우고 싶다. 때마침 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를 먼저 읽은 잠자냥 님의 리뷰에 반했고 김초엽의 신간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나왔다. 알라딘은 다양한 커피를 출시하지만 모험심이 적은 나는 새로운 커피보다 가장 좋아하는 커피를 선택했다.




9월이 되면서 가을 냄새를 기대하는데 아직 맡지 못했다. 가을 냄새의 양이 아주 미세해서 예민한 이들만 알아차리는 것일까. 나는 아직 가을 냄새를 발견하지 못했다. 그래도 9월이니 가을이라 생각한다. 실내 온도도 2~3도가량 낮아졌고 얼음을 찾는 횟수도 줄었으니까.

어, 하는 순간에 단풍이 찾아올 것이다. 가로수의 나뭇잎에서 연두와 초록은 사라질 것이다. 노란 은행잎에 반하는 날이 올 것이다. 가을과 반갑게 악수하고 여름을 배웅하는 9월. 옷장도 정리하고 침구도 바꾸고, 계절이 바뀌면서 삶의 분위기도 달라진다. 어떤 이에게는 천천히, 어떤 이에게는 급격하게 다가올 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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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9-04 2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은 덥지만 바람이 달라졌어요. 가을 냄새를 품고 오는거겠죠. 김초엽작가 신작 저는 이제 읽기 시작했습니다. 너무 기대돼서 아껴 읽고싶은 기분이에요

자목련 2025-09-06 11:39   좋아요 0 | URL
아껴 읽고 싶은 마음, 알 것 같아요!
오랜만에 만나는 단편집이라 저도 기대가 커요^^

책읽는나무 2025-09-04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두 권을 선택하실 수 있다니?!
저는 매번 놀라곤 한답니다.
자목련 님의 무심한 듯 신중한 결정을 말입니다. 그래서 저 두 권 선택의 안목.
그래서 귀하게 바라봐지네요.
김초엽 작가의 소설 기대됩니다.^^

자목련 2025-09-06 11:40   좋아요 0 | URL
읽지 못해서 책 구매를 자제하려고 하는데 그게 어렵습니다 ㅎㅎ
좋은 리뷰도 많고 신간이 나오면 사고 싶고 ㅠ.ㅠ.
 

늦여름이라고 쓰다가 검색을 해보니 늦여름은 주로 음력 6월을 이른다고 한다. 올해는 윤달이 6월이니 음력을 두 번이다. 그럼 늦여름의 늦여름일까. 다시 사는 즐거움에 빠졌다. 책을 샀다. 책을 사는 일은 왜 이리 즐거운가. 이번 구매는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이라고 하겠다.


시의적절 시리즈와 위픽 시리즈는 복불복 게임 같다. 시리즈의 모든 책을 다 구매하는 건 아니지만 좋을 것 같아서 산 책은 별로일 때가 있고 그냥 읽어볼까 한 책에서 기쁨을 발견하기도 한다. 이번 백은선의 『뾰』는 어떨까. 아직 모른다. 표지에 자두가 없었다면 나는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아, 나 같은 독자를 작가는 어떻게 생각할까.





위픽 시리즈도 마찬가지인데 이번에 예소연의 『소란한 속사임』은 기대가 크다. 예소연의 다른 소설이 좋았기에 확신에 가깝다. 수전 손택의 에세이 『여자에 관하여』는 잘 모르겠다. 수전의 다른 책을 읽다가 완독하지 못한 기억이 있어서다. 먼저 읽은 리뷰가 하나같이 좋아서 구매했다. 시집도 한 권. 정다연의 『여름 대삼각형』이다. 여름이니까 이런 시집은 읽어봐야지!





막바지 더위라고 생각하면 더위를 대하는 게 조금 쉬지 않을까 했던 나의 마음은 어리석었다. 더운 것도 힘들지만 습한 게 너무 힘들다. 잠시 휴식을 취했던 에어컨은 열일 중이다. 그래도 곧 9월이다. 9월은 여름보다는 가을에 가까우니 가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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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9 1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전 손택의 여자에 관하여는 좀 잘 읽혔어요. 마지만 인터뷰는 좀 끼다롭긴 했지만요. 북엔드와 책들이 너무 잘 어울립니다.

자목련 2025-08-21 09:42   좋아요 1 | URL
잘 읽힌다고 하시니 얼른 읽어봐야겠습니다!
 


어린 시절의 일기는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밀린 일기를 쓰는 일은 고역이었다. 지금처럼 과거의 날씨도 쉽게 알 수 있던 때가 아니라 날씨를 떠올리는 게 제일 힘들었다. 선생님께 칭찬을 받고 싶은 일기, 착한 일을 하지도 않고 부모님을 도와드리지도 않았는데 착한 아이인 것처럼 거짓을 쓰기도 했다. 하루를 반성하고 가장 인상적인 일을 기록하는 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청소년기의 일기는 누군가를 향한 고백이자 고민의 기록장이었다. 친구와의 갈등, 좋아하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유치하고 화려하게 썼다. 나만 읽어야 했다. 아무도 봐서는 안 되는 비밀이었다. 나만의 일기장은 그런 것이었다. 어른이 된 후에는 일기장을 구매한 기억이 없다. 그 후로 나에게 일기(日記)는 책을 읽은 기록,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감정의 토로, 누구나 볼 수 있는 글이 되었다. 제목부터 금기된 무언가를 만날 것 같은 알바 데 세스페데스의 『금지된 일기장』을 읽으면서 몇 년 전 붙박이장을 정리하며 발견한 노트 한 권이 떠올랐다. 나는 안도했다. 가족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찾았기에. 모든 페이지의 글은 조각났고 폐기되었다.


소설 속 발레리아는 남편을 위한 담배를 사러 갔다가 담배 가게에서 공책을 충동적으로 구매한다. 금지된 일이라며 가게 주인은 거부했지만 발레리아의 간곡함에 판매한다. 금지된 일이라고? 남편을 위한 담배를 산다고? 놀랄 수 있다. 1950년대 이탈리아에서는 일요일에 담배만 파는 법이 있었다고 하니 『금지된 일기장』이란 제목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일기는 필자와 독자가 같아야 한다. 그래서 소설 속 ‘발레리아’는 자신의 일기장을 숨겨야만 했다. 변호사 남편 미켈레,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 리카르도, 대학에 들어가는 딸 미렐라가 알아서는 안 되는 생애 가장 큰 비밀이었다.


일기장을 어디에 숨길까 고민하는 발레리라의 모습은 안타깝다 못해 짠하다. 그렇다. 어디에도 발레리아의 공간은 없다. 8년 전부터 직장에 다니는 워킹맘인 그녀에게 그녀를 위한 시간도 없었다. 사소한 것부터 모두 그녀의 손길이 필요했다. 그러니 일기를 쓸 수 있는 시간은 가족 모두가 잠든 후였다. 매번 일기를 쓰고 일기장을 숨길 때마다 전전긍긍하면서 일기를 써야 할까. 왜 일기를 써야 할까. 그것이 이 소설의 가장 핵심이다. 발레리아에게 일기를 쓰는 시간은 자신을 발견하고 욕망과 마주하는 순간이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솔직한 마음을 일기를 쓰면서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가족과의 관계를 생각할 수 있었다. 성인이 되면서 갈등이 생긴 딸 미렐라, 우유부단하고 미숙한 아들 리카르도, 자신을 ‘엄마’라 부르는 남편. 이제껏 아무렇지 않았던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항상 나의 삶을 하찮게 생각했다. 결혼과 출산 빼고는 특별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우연히 일기를 쓰기 시작한 후로, 사소한 말투나 단어 선택이 지금까지 중요하게 여겼던 일들만큼, 아니 때때로 그보다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매일같이 일어나는 소소한 일들을 이해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야말로 가장 은밀한 삶의 의미를 이해하는 길일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왠지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두렵다. (51~52쪽)





소설 속 발레리아의 나이는 마흔셋이다. 젊고 아름다운 나이다. 그러나 1950년대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그녀는 끼인 세대다. 여전히 꼿꼿하고 우아한 자세로 살아가며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말하며 대립하는 딸 미렐라. 자신과는 다른 신념을 지녔고 그것을 행동으로 실행하는 딸을 대하는 발레리아의 모습은 그 시대를 살아온 어머니를 닮았고 나아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딸과 엄마의 관계를 관통한다. 미렐라와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원수가 되어간다고 느끼는 감정. 미렐라를 지지하고 응원하라고 말하고 싶지만 만약 나였다면 그게 가능할까. 선뜻 답을 할 수 없다.


그날 저녁 일기장을 평소보다 더 신중하게 숨긴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의자 위로 올라가 일기장을 침대 시트와 수건을 보관하는 수납장 위에 올려놓았다. 일기장을 숨기면 20년 동안이나 내 딸에게 밥을 해먹이고, 가르치고, 애정 어린 마음으로 그 아이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신중히 살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애를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의구심을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71쪽)


발레리아는 직장에서 돌아와 살림을 도맡아 해야 하는 게 버겁지만 그것이 자신의 역할이자 의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건 진심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일탈이 필요했고 자유를 원했다. 책을 읽으면서 그녀를 짓누르는 무거운 책임에서 그녀가 가벼워지기를 나는 간절하게 바랐다. 소설이라는 걸 알면서도 소설이 아닌 일기가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발 후련해지기를 바랐다.


나 자신을 파괴하고 싶었다. 무거운 변장을 하고 다니다 지쳐버린 듯 나라는 껍질을 벗어던지고 분노가 뒤섞인 후련함을 느끼고 싶었다. (199쪽)


이런 글을 쓰는 발레리아의 마음을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아프다. 발레리아의 손길로 채워지고 만들어진 집이 분명한데 그녀의 것이라고 여길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니. 그 공허함을 알 것 같아서. 나만의 공간을 바라지도 않고 다만 작은 책상을 갖고자 하는 누군가가 떠올라서.


참 이상한 일이다.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면인데도, 우리는 마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비인간적인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척 행동해야만 한다 게다가 일기장을 사무실에 가져다 놓으면, 집에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어질 것이다. (331쪽)


아무도 모르는 SNS 비밀 계정, 비상금 계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아지트, 깊은 곳에 간직한 마음, 도저히 꺼낼 수 없는 그 무언가, 그 모든 것이 금지된 일기장은 아닐까. 『금지된 일기장』에서 발레리아는 나를 발견하고 알아가는 순간을 꿈꾼다. 그것은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과 연결된다.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500파운드’, 나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돈과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의 책은 남성의 책보다 더욱 짧고 더욱 응집되어야 하며, 지속적이고 방해받지 않는 장시간의 독서가 필요하지 않게끔 꾸며져야 한다고 나는 과감하게 말할 것입니다. 여성은 언제나 방해를 받을 테니까요. (『디 에센셜: 버지니아 울프』)


『금지된 일기장』, 『자기만의 방』과 함께 도리스 레싱의 단편 「19호실로 가다」가 생각나는 건 나뿐이 아닐 것이다. 「19호실로 가다」의 수전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 세상에서 철저히 혼자였으면 좋겠어요. (「19호실로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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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5-08-18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잊고 있었어요. 이 책 읽고싶은거... 자목련님의 멋진 리뷰 덕분에 다음 읽을 책에 바로 놓습니다. ^^

자목련 2025-08-19 09:36   좋아요 1 | URL
이 소설, 좋았어요!
바람돌이 님의 리뷰는 항상 좋은데 이 책의 리뷰는 얼마나 좋을까, 벌써부터 기대가 큽니다^^

바람돌이 2025-08-19 12:01   좋아요 0 | URL
방금 알았어요. 자목련님 왜 북플에 친구 신청이 안되어 있었을까요? ㅠㅠ 부디 친구 신청 받아주시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