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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밤의 꿈 이야기
안주영 지음 / 기린과숲 / 2023년 10월
평점 :
꿈은 의식의 연장이라고 했던가. 걱정과 고민이 가득한 날, 어찌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 꾸는 꿈에는 그 일의 당사자가 나온다. 아니, 그런 일이 있을 때에만 꿈을 꾸는 편이다. 그래서 나는 꿈 없을 잠을 원한다. 새벽녘 깨어 잠들지 못했거나 일어나야지 하다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종종 꿈을 꾼다. 어김없이 내 마음의 불안과 걱정이 꿈에서 표출된다. 이를테면 특정 인물이 등장하거나 특정 장소가 나오는 것이다. 꿈에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그런 꿈은 꾸고 싶지 않다. 도대체 꿈이란 무엇일까. 여기 매일 밤 꿈을 꾸고 기록하는 이가 있다. 잠에서 깨고 나면 사라진 꿈을 어떻게 기록할까. 그만큼 그에게 꿈은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안주영의 『간밤의 꿈 이야기』에서 만난 그의 꿈은 이상하고 신비롭다. 흔히 말하는 복권을 사야 할 꿈, 키가 크느라 꾸는 꿈, 말 그대로 개꿈인 그런 꿈이 아니라 짧은 소설이나 영화 같고 거대한 시 같다. 읽으면서 정녕 이게 꿈일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어떤 꿈은 끝나는 게 아쉬워서 끝이 아니라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마음까지 든다. 그가 들려주는 간밤의 꿈 이야기를 통해 독자는 그의 불안과 두려움을 엿본다. 꿈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의 관계를 추측한다. 꿈을 읽으면서 나는 그가 되어 소중한 이의 죽음을 느끼고 애도하며 아파한다. 저자의 상황을 모르고 현실이 아닌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
나와 동생은 아직 키가 작고 어린데, 아빠는 어느새 머리가 세서 계속 누워만 있다. 우리 가족과 친척, 그리고 아빠의 지인들은 모두 아빠를 내려다본다. 아빠가 눈을 뜨지 않자 엄마가 아빠를 흔든다. 엄마, 아빠가 함께 찍었던 사진 여러 장이 떨어진다. 고모가 아빠를 흔든다. 아빠의 한쪽 귀가 떨어진다. 먼저 세상을 떠난 아빠의 친구가 아빠를 흔든다. (「아빠의 선물」 중에서)
가족이 등장하는 꿈을 읽으며 내 꿈에도 엄마와 아빠가 나오면 좋겠다는 바람을 엄마와 아빠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든다. 동시에 그토록 바라는 게 아니었나 싶은 마음이 들면서 꿈이라는 게 참 묘하구나 싶다. 어쩌면 내가 원하는 꿈이 아닌 꿈이 나를 알고 찾아오는 건 아닐까. 그렇다고 저자의 꿈이 마냥 몽환적 이미지라는 건 아니다. 절규, 공포, 혼란, 혼돈으로 이끄는 꿈도 많다.
지독한 두통을 뽑아내어 버렸더니 다른 이들이 두통이 달라붙어 괴롭히는 「두통」, 첫 수업에 늦었는데 바로 수업을 하는 게 아니라 자기자랑만 늘어놓고 정신을 차리니 강의실은 텅 비어있는 「첫 수업」, 어린 시절 먹지 않고 버린 약들을 어른이 되어 다 먹어야 한다는 「약국」, 1가정 1반려동물이라는 정책으로 집으로 커다란 상자가 배달되지만 누구도 열어볼 용기를 내지 못하는 「반려동물」, 기묘하지 않은가. 일상의 고통과 걱정이 고스란히 꿈으로 이어진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세세하게 담아내는 작가의 능력에 감탄할밖에.
검은 파도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우리가 탄 배는 크게 흔들렸다. 나는 배의 나무 기둥을 꼭 붙잡았다. 우지끈. 반대편 나무 기둥이 부러졌다. 이미 축축해져 버린 나무 기둥들은 점점 검게 물들었다. 그렇게 나무들은 썩어갔다. (「검은 파도 속에서」 중에서)
꿈이 이끄는 세계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게 만든다. 만질 수 있다면 꿈을 만지고 싶게 한다. 허상과도 같은 꿈을 지척에서 바라보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저자의 꿈 이야기를 읽으며 그의 꿈이 검고 어두운 빛이 아닌 환한 빛으로 물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 내면의 심리 상태를 고스란히 묘사한 문장이 조금 유연하고 안온하기를. 나의 꿈을 향한 바람이기도 하다. 내용은 기억나지 않아도 산뜻하고 맑은 기운은 안겨주는 그런 꿈을 꾸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