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만큼 기록은 힘이 든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잘 말하고 싶은 마음과 좋아하는 것을 다른 이들도 좋아해 주기를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좋음은 그거 취향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2023년에도 책을 읽었고 기록했다. 몇 권을 읽었는지 그런 건 세어보지 않는다. 읽은 책을 다 기록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책은 의무감에 어떤 책은 잊어버리지 않기 위해, 어떤 책은 진짜 진짜 좋아서, 그런 이유로 기록하지 못하는 책도 있다. 아니, 많다.


2023년 내 맘대로 좋은 책들을 생각하니 가장 좋은 책들로 떠오른 책은 딱 5 권이다. 2023년에 읽고 리뷰를 기록한 책에서 고른 것이다. 그렇다. 나의 기억력은 이렇게 낮은 수준이다. 그 다섯 권이라도 있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클레어 키건의 『맡겨진 소녀』에 대해서는 그냥 좋다는 말로 충분하다. 올해의 기쁨이라고 하면 클레어 키건이라는 작가를 만나게 된 것이다. 담담하면서도 함축된 문장에 내포된 갖가지 감정을 한 마디로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부모와 아이의 관계, 잘 몰라서, 서툴다는 이유로 애정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가장 큰 죄일지도 모른다. 소설 속 소녀의 얼굴 표정을 상상하는 일은 너무 가슴 아프다. 하지만 그 소녀가 자신만의 환한 표정을 짓게 될 순간을 기대는 포기할 수 없다.







백수린의 산문집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은 제목 그대로 행복한 느낌을 안겨주었다. 그저 보통의 일상을 담은 산문집인데, 이상하게 마음이 아리고 벅차올랐다. 이미 작가의 산문을 읽은 기억이 있지만 이 산문집은 이전의 글, 앞으로의 글에서도 가장 좋은 산문집이 될 것이다. 하루를 살고 기록하는 기쁨과 소중함을 알려주는 책이라고 할까. 내가 좋아하는 단어, 순환을 더욱 좋아하게 만든 이런 구절은 여전히 좋다. 그러고 나면 다시 봄이 왔고, 자연의 이치대로 모든 순환이 다시 시작됐다. (44쪽)




지극히 개인적인 좋음으로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빼놓을 수 없다. 여름의 크리스마스처럼 깜짝 등장한 단편집. 쓰고 나니 민망하다. 아주 짧은 단편으로 구성된 이 단편집은 김연수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 같았다. 조금 더 다정해진, 조금 더 친근해진, 무람없는 친구를 만난 기분, 커피를 마시며 소소한 일상에 대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그래서 다음 김연수의 소설을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니 여름마다 이 소설집이 떠오를 것 같다.




2023년에 한 읽기 중 나쓰메 소세키 읽기도 있다. 한 달에 한 권 읽기를 했는데, 책장에서 한 권씩 꺼내 읽은 재미가 있었다. 나름 뿌듯한 기분이 좋았다. 나쓰메 소세키를 조금 더 알게 되고 다가섰다고 느꼈다. 어쩌면 가장 심심하고 담백한 맛, 조미료는 없는 본연의 글이라고 할까. 특히 나쓰메 소세키의 『마음』, 『행인』은 어려웠지만 깊은 여운을 남겼다.





내가 나를 안다는 것, 타인을 안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 확인하면서 동시에 그것에 대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생각도 했다. 올해도 한 달에 한 권 읽기(문학동네, 민음사 세계문학 )를 하기를 바란다.







기록을 살펴보면서 아, 이 책도 읽었구나 떠올리며 좋았던 책은 또 있다. 작가들이 외로움을 주제로 쓴 산문집 『 ALONE 』, 현대인의 고독과 내재된 어떤 슬픔을 만나면서 우리가 얼마나 외로운 존재인가 생각했다. 내가 알지 못했던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던 외로움에 대해서도 말이다. 문학으로의 의미가 아닌 저마다 살아오면서 만났을 외로운 순간의 기억이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그런 느낌은 윌리엄 트레버의 단편집 『마지막 이야기들』에서도 어이진다. 다양한 삶에 대해, 누군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감정을 섬세하게 다룬 윌리엄 트레버. 10편의 짧은 소설에 담긴 매혹적인 삶은 먼 훗날 우리의 삶도 누군가의 기억하는 비밀을 간직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설명할 기회를 놓치고 용서할 기회를 놓쳐버린 삶에 대한 안타까움.





여성 작가가 들려주는 글쓰기에 대한 어려움, 혹은 간절함에 대한 책도 좋았다. 『쓰지 못한 몸으로 잠이 들었다』란 제목만 읽어도 목이 미어진다. 읽지 않아도 그들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무엇이 힘든지 알 것 같아서다. 읽기는 어떤 상황에서는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을 정리하거나 새롭게 쓰는 일은 어떤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로가 하나가 되어 새로운 무언가로 태어날 수 있는 시간.




『자두』로 만난 이주혜의 산문집 『눈물을 심어본 적 있는 당신에게』는 이주혜가 쓰고자 하는 방향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같은 여성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세대의 여성의 이야기였다. 상처와 기억, 그리고 위로를 전하는 마음이 느껴졌다. 내 어머니의 서사, 그들을 향한 이해와 공감이 늦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2023년에 읽었지만 2024년의 좋은 책이 될 소설은 이렇다. 그러니까 읽었지만 좋음을 아직 쓰지 못해 목록에 오르지 못한 책들이다. 권여선과 최은영의 단편집, 클레어 키건의 소설.























올해에는 한 달에 한 권 책장 속 세계문학 읽기와 시집 읽기를 하고 싶다.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쓰고 본다. 쓰면 생각할 것이고 할 수 있게 될지도 모르니까. 혼자의 생각이라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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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1-02 11: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와.... 자목련 님 최고의 책은 키건이군요! 저는 키건 두 번째도 좋았어요. 조만간 읽고 또 리뷰 써주세요.
나쓰메 소세키 책이 두 권이나 있어서 뿌듯합니다....(왜 내가?ㅋㅋㅋ)

자목련 2024-01-02 11:56   좋아요 2 | URL
잠자냥 님의 말씀처럼 키건의 이번 소설이 더 좋았어요. 독자에게 생각할 거리를 건네주고 상상하게 만드는 아름다운 힘이라고 할까요. 두 번 읽었는데 리뷰는 아직...

페넬로페 2024-01-02 12: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글에는 언제나 좋은 향기와 맛이 배여 있어요.
자목련이 자목련하다~~
매번 그것에 취하는 페넬로페입니다.
올려주신 책들 중 거의 대분분 제가 좋아하는 것과 겹쳐 너무 기분 좋은데요.
나머지 책들도 잘 담아 두겠습니다.
저도 올해 책장 속 책을 읽을 예정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은오 2024-01-02 21:03   좋아요 2 | URL
저도 지금 자목련님 페이퍼 읽고 실시간으로 꽃향기를 맡고 있습니다. 취하는중....😳

얄라알라 2024-01-02 21:10   좋아요 2 | URL
오!

자목련이 자목련!

프사 사진도 한결같으신 자목련님의 향기^^

페넬로페님께서 멋진 말로 정리해주셨네요 ^^

자목련 2024-01-03 16:07   좋아요 1 | URL
책장 속 책을 즐겁게 읽어보아요!
좋아하는 소설과 겹치다니 페넬로페 님과 가까워진 느낌입니다.

자목련 2024-01-03 16:09   좋아요 2 | URL
은바오는 향기를 어떻게 맡나요? 진심 궁금,코를 바짝 대고 있을까요? ㅎㅎ

자목련 2024-01-03 16:10   좋아요 2 | URL
얄라 님 말씀으로 프사는 쭉~~

은오 2024-01-04 13:26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 진심 궁금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바짝 안 대도 자목련님 페이퍼만 누르면 그냥 맡아지더라고요?! 😍

망고 2024-01-02 12:2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맡겨진소녀 이북으로 사서 잠재우고 있는데 서재분들 다 좋다고 하시니 얼른 깨워서 읽어야할거 같아요ㅋㅋㅋ잠자냥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잠자냥 2024-01-02 12:30   좋아요 3 | URL
엥 잠자냥님? ㅋㅋㅋㅋㅋㅋ 망고 님 저 사랑하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네 여기서도 새해 복 많이 받을게요! ㅋㅋㅋㅋㅋㅋ

망고 2024-01-02 12:32   좋아요 3 | URL
어머나ㅋㅋㅋㅋ첫댓글 읽고 쓰느라ㅋㅋㅋㅋㅋ아니아니 제 속마음 들켰나요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1-02 12:33   좋아요 4 | URL
망고님을 차기 잠사모 회장 후보로 낙점..

망고 2024-01-02 12:33   좋아요 2 | URL
자목련님 잠자냥님 자씨가족 다 사랑합니당❤

망고 2024-01-02 12:37   좋아요 2 | URL
저 은오님이랑 경쟁할 자신이 없어요ㅠㅠ 너무 무서움

독서괭 2024-01-02 13:31   좋아요 4 | URL
은오님은 회장직에 관심이 없으십니다. 가족이 될 거라서…

은오 2024-01-02 21:04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개웃겨요ㅠ

잠자냥 2024-01-02 21:04   좋아요 1 | URL
은오가 무섭긴요. 귀엽죠. …. 술 취한 거 아님 ㅋㅋㅋㅋㅋㅋㅋㅋ

은오 2024-01-02 21:13   좋아요 1 | URL
😳
제가 잠뽕 맞고 취하는데요....

자목련 2024-01-03 16:08   좋아요 1 | URL
망고 님도 반할 거라 생각합니다!

독서괭 2024-01-02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이 꼽아주신 책들 다 좋아 보여요. 저는 읽은 책은 하나도 없고^^; 가지고 있는 책만 한 권 보이는군요. <ALONE> 올해는 읽어야겠습니다.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4-01-03 16:11   좋아요 1 | URL
다 좋아 보인다니 더 좋습니다. <ALONE> 즐겁게 읽으시면 좋겠어요. 독서괭 님,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세요^^

레삭매냐 2024-01-02 1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서가에서 잠자고 있는 소세키
작가의 책들을 읽어야지 했었는데...
많이는 못 읽었네요.

<고양이>부터 마저 읽어야 하는데-

자목련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새해에도 좋은 책들과 함께 하시길.

자목련 2024-01-03 16:13   좋아요 1 | URL
레삭매냐 님의 소세키 읽기 기대하겠습니다^^
저도 올해에 나머지 책을 읽고 싶습니다.

거리의화가 2024-01-02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저는 김연수 작가님의 책이 눈에 들어와요. 작년에 못 읽었는데 올해 여름에 읽어보는 것도 새로울 것 같네요. 자목련님 덕분에 한국 소설에 더 관심을 가지는 기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올해는 또 어떤 책들을 읽어서 전해주실까 궁금하네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4-01-03 16:15   좋아요 0 | URL
싱그러운 여름에 화가 님이 읽은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기대하겠습니다.
올해도 역사 관련 즐거운 독서 이어가시고요!

yamoo 2024-01-02 13: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좋았던 책 짧은 감상만 봐도 자목련 님 감상이 어땠는지 알거 같아요. 좋은 독서 하셨네요! 너무 잘 봤습니다.
저는 이거 다음 주에나 쓸 듯합니다. 내가 좋았던 책 짧은 기록...이걸 남겨놓지 않으면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아 저도 숙제처럼 해야합니다..ㅎㅎ 올해도 즐독하시기 바랍니다!^^

자목련 2024-01-03 16:16   좋아요 0 | URL
분명 읽었는데 생각이 나지 않으니... 기록은 그래서 필요한 것 같습니다.
즐거운 숙제, 꼭 하시길~~

단발머리 2024-01-02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레어 키건 읽어야겠습니다 ㅎㅎㅎ 나의 꿈, 나의 결심.
자목련님 꾸준한 독서 항상 부럽습니다. 저도 내년, 아니 올해에는 더 열심히 읽으려고요. 나의 꿈, 나의 결심입니다 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1-03 16:17   좋아요 1 | URL
클레어 키건을 꼭 읽으시길!
단발머리 님의 멋진 리뷰가 기다릴게요. 우리의 꿈, 우리의 결심~~

다락방 2024-01-02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역시 연말에 여러분들이 책 리스트 올려주시는 거 읽는 재미가 정말 큽니다. 그렇다고 매일 연말이길 바랄 순 없지만요. 후훗.
올해도 열심히 읽고 연말에 근사한 리스트 작성해주세요, 자목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자목련 2024-01-03 16:18   좋아요 1 | URL
책 리스트의 재미는 당연, 다락방 님의 책탑입니다!
올해도 다락방 님의 서재에서 다양한 책들을 만나겠지 싶어요. 좋은 오후 보내세요^^

건수하 2024-01-02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 자목련님 리스트에 읽은 책이 단 한 권도 없습니다.. 왠지 부끄럽네요.
그래도 사둔 책이 하나 (이주혜님 산문집) 있어서 쪼금 위안이 되고요. 잊고있었는데 저 책도 저의 잠재적 독서 계획에 넣어야겠습니다.

자목련님 좋은 일 가득한 한 해 되셔요 ^^

자목련 2024-01-03 16:21   좋아요 1 | URL
부끄럽다는 댓글은 넣어두세요. 이주혜 산문은 최근 읽은 장편보다 더 좋았습니다.
건수하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기쁨이 넘치는 한 해 이어가시길 바라요!

은오 2024-01-02 23: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역시 자목련님 연말 페이퍼 너무 좋으네요...ㅠㅠ <마음>은 저도 올해 읽었고, 좋았습니다!
그리고 읽어야지 하는건 <맡겨진 소녀>랑 윌리엄 트레버구요 >.< ㅎㅎㅎ
저.....2023년 자목련님 만나서 너무 좋았어요!!!!!!ㅠㅠ 알고 계시나요?! 올해도 잘부탁드려요 자목련님 💕 새해 복 마구마구 받으시고요!!!!!

자목련 2024-01-03 16:22   좋아요 1 | URL
은오 님이 만날 클레어 키건와 윌리엄 트레버 궁금합니다.
저야말로 은오 님을 만나 기쁨이 가득했던 해였습니다.
올해도 건강하고 즐거운 날들로 채우시길 바라요. 학교 생활도 즐겁게 하시고요!

새파랑 2024-01-03 08: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소세키랑 트레버~!! 저의 최애 작가입니다~!! 김연수 작가님 책 읽어봐야 겠습니다~!!

자목련 2024-01-03 16:23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의 보뱅 리뷰를 읽고 반성합니다. 읽은 즉시 리뷰를 쓰는 일, 대단해요!
김연수 작가의 책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