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의 넓이 창비시선 459
이문재 지음 / 창비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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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나는 이 시집을 함께 읽는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친구가 좋아하는 일은 참으로 반갑고 귀하다. 시를 읽는 봄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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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양장) 소설Y
이희영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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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와 영혼이 분리되는 설정은 익숙하다. 죽음과 동시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여기니까. 혼수상태의 경우 영혼은 기적처럼 육체로 돌아가거나 죽음을 맞이한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봐온 이야기다. 이희영의 장편소설 『나나』도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우리 죽은 거냐?”

“그럴지도.”

“그런데 멀쩡히 숨 쉬고 말하고, 저렇게 주스도 마시잖아.”

“그럼 안 죽었네.”

“하지만 아무도 우리를 볼 수 없는데? 우리가 하는 말도 못 듣잖아.”

“그럼 죽었나 보지.” (프롤로그, 7쪽)


프롤로그는 분명 영혼이 나누는 대화처럼 보인다. 버스 사고가 난 것뿐인데 열여덟 수리와 열일곱 류는 죽은 게 아닌데 육체에서 영혼이 분리되었다. 수리와 류 앞에는 영혼 사냥꾼 선령(獮靈)이라는 남자가 나타나 일주일 내로 육체를 되찾지 못하면 자신을 따라 저승으로 가야 한다고 말한다. 멀쩡하게 자고 일어나서 할 일을 다 하는 수리의 육체는 영혼이 사라진 줄도 모른다. 영혼이 육체에게 다가가면 벽 같은 게 생겨서 차단한다. 육체가 자신의 영혼을 거부하기 때문이란다.


로사여고 2학년 ‘한수리’는 모범생이며 친구와 관계도 좋고 누구에게나 인기 많은 완벽한 학생이다. 그런데 영혼을 거부한다. 영혼은 납득할 수 없다. 육체 가까이에서 어떻게든 돌아가려고 애쓴다. 류는 다르다. 고등학교 1학년인 ‘은류’는 육체로 돌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 부탁을 거절하는 법이 없고 모두에게 착하고 친절한 류는 영혼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소설은 수리와 류를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사고가 나기 전 어떻게 살았는지 수리와 류의 일상을 보여준다. 수리는 뭐든지 다 잘하고 싶은 아이다. 공부만 잘하는 아이가 아니라 놀기도 잘 놀고 SNS 활동까지. 계획한 대로 힘들어도 힘든 티를 내지 않아야 했다. 명상을 하고 자전거를 타면서 영어 단어를 외우는 자신의 모습을 보는 영혼은 마음이 복잡하다.


삶의 의미는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 가야 한다고 믿었다. 눈에 보이는 결과를 쌓아 올리고, 손에 잡히는 성취를 얻어 내는 것. 그 밖의 것들은 나중에 고민해도 늦지 않을 테니까. 생각하니 우스웠다. 나중은 정확히 언제일까? 쌓아 올릴 수도, 붙잡아 둘 수도 없는 시간을 참 가볍게 여겼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닐 텐데. (27쪽)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지금이 편하다는 류는 예스맨이었다. 두 살 아래의 동생 완이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아픈 완이를 돌보느라 엄마와 아빠는 류를 챙길 수 없었다. 일찍 철이 든 류는 말 잘 듣는 아들, 착한 형이어야 했다. 완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생활에 적응하고 만족했다. 완이가 죽고도 마찬가지였다. 부모님은 여전히 완이만 생각했고 류는 자신을 봐 달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수리의 영혼은 육체에 가까이 가지 못해 속상하고 류는 아예 육체에 관심도 없었다. 수리와 류에게는 객관적으로 자신을 보는 게 필요했다. 또래였기에 그랬을까. 수리와 류의 영혼은 서로의 마음을 보여주기 시작한다. 칭찬을 받을 때마다 불안하고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힘들었던 수리, 엄마가 혹시 자신을 버린 게 아닐까 두려웠던 어린 시절의 상처를 가슴에 품고 사는 류.


혹여 완이는 알고 있었을까. 허물어진 것들은 다시 쌓으면 된다는 사실을. 삶은 콘크리트 건물처럼 견고하지 못하다. 쉽게 흔들리고 작은 충격에도 휘청거리는 상자 탑과 같다. 그렇기에 또다시 쌓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오래전 완이가 그랬듯이 말이다. ‘형아, 상자. 상자 줘’.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질 때 오히려 박수를 치던 녀석이었다. 완이는 알고 있었다. 우리가 한 번쯤은 힘없이 무너져 내리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도 괜찮다고, 다시 쌓으면 된다고 속삭이는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귓가에 머물렀다. (202쪽)


기발하고 신선한 설정에 재미와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이다. 십 대와 선령이 나누는 재치 넘치는 대화에 함께 웃다가도 영혼 없는 삶을 사는 게 어디 수리와 류뿐일까 싶은 생각에 마음에 무언가 쿵 하고 내려앉는 걸 느낀다. 어디선가 나의 영혼이 나를 따라다니는 건 아닐까 두리번거린다. 초조하고 불안해서 스스로에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수리처럼, 이미 체념하고 마음의 문을 닫은 류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고 있는 건 아닐까.


나의 영혼을 마주하고 돌볼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면 이 소설을 만나보면 좋겠다. 내가 나를 사랑하는 일, 내가 나를 안아주고 보듬어 주는 일, 그것이야말로 영혼이 바라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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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 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관점
짐 알칼릴리 지음, 김성훈 옮김 / 윌북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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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들은 누군가의 부단한 노력의 결과다. 학창 시절 원리도 모른 채 무조건 외우기만 했던 수학공식이나 원자번호와 유명한 과학자의 이름을 딴 법칙도 그러하다. 이해보다는 숙지가 먼저였다. 어떤 자연현상에 대해서도 ‘왜’라는 생각과 질문은 하지 않았다.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것, 우리가 보고 있는 밤하늘의 별빛이 헤아릴 수 없는 수 없을 정도로 머나먼 과거의 빛이라는 걸 익히는 데 급급했다. 그 하나하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이라는 건 알지 못했다. 그런 이유로 ‘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관점’이란 부제의 물리학자이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짐 알칼릴리의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무척 남다르게 다가온다.


하나의 과학 이론이 등장할 때 무수한 가설이 등장한다. 하나의 가설은 증명되기까지 실험적 관찰과 검증을 거친다. 이제껏 등장하지 않았던 가설이 여러 사람의 찬반과 연구를 거쳐 실제로 증명되었을 때 세상은 환호한다. 그러나 일반인에게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놀랍고 대단한 일이지만 그저 과학자의 일로 치부할 수 있다. 하지만 조심스럽게 말해보자면 짐 알칼릴리의 이 책을 읽고 물리학으로 통해 이 세상이 조금 더 신비롭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다. 과학이라는 게 특히 물리학이라는 건 나와는 전혀 상관없다고 여기는 이들에게도 그러할 것이다.


책은 10장으로 나누어 물리학에 대해 설명한다. 물리학을 대하는 태도로 시작하여 물리학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과 공간의 구분과 정의,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 우리가 암기한 에너지 법칙, 양자역학과 열역학, 암흑에너지, 급팽창과 다중우주, 양자컴퓨터와 물리학자로 잊지 말아야 할 본분까지 십 대부터 시작된 물리학의 열정을 온전히 다 소모하려는 듯 열심히 설명한다. 얼핏 봐도 머리가 아프거나 어려울 것 같은 물리학의 세계, 그러나 사실 그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다. 깊이 있게 심층적으로 다루는 건 아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건 ‘이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정확한 관점’이니까. 현재 물리학이 이렇게 성장하고 발전하고 있다는 게 중요하며 완벽하게 이해하는 게 최선이기 때문이다.


물리학의 본연의 임무는 우리 눈에 보이는 자연현상을 올바르게 설명하고, 그 설명을 뒷받침할 근거와 메커니즘을 찾아내는 것이죠. (36쪽)


물리학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실재를 가장 심오하고 완벽하게 이해하는 것이죠. (192쪽)





세상을 이루는 물질의 가장 기본단위가 원자로 원자핵, 중성자, 양성자까지 알고 있던 나의 지식은 ‘쿼크’로 확대되었고 우주에 대해서도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힉스장’과 ‘우주 배경복사’를 통해 우주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것을 알아내고 접근하였으며 ‘블랙홀’의 촬영도 가능하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되었다. 현재 우주론에서 유행하는 ‘영원한 급팽창’이라는 흥미로운 개념도 알게 되었다. 우리 우주가 다중우주라는 무한한 고차원 공간 속에 있는 작은 거품에 불과하는 것, 우주 어딘가에 외계인이 존재할 거라는 기대도 비슷한 생각에서 시작된 게 아닐까 싶다. 가까운 미래에 등장할 ‘양자 컴퓨터’는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수학, 화학, 의학, 인공지능 다양한 분야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삶을 얼마나 달라지게 만들까.


그럼에도 여전히 어려운 건 사실이다. 과학 서적의 아쉬운 점은 바로 이런 점이다. 내가 읽고 느낀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는 것, 한계에 부딪히는 일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공식과 법칙이 어떻게 발견되고 시작되었는지 누가 그것을 끊임없이 연구하고 우리의 삶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그 설명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그 부분에 대해서 이 책은 기존의 도서보다 친절하고 쉽지만 말이다. 일상에서 다뤄지는 일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하는 저자의 노력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저자가 영국 BBC TV와 라디오에서 다수의 과학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이유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학의 진정한 가치는 확실성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불확실성에 대한 개방성으로부터 나옵니다. 과학은 현재의 지식에 의문을 품고, 더 나은 것이 등장하면 언제든 더 깊은 지식으로 대체할 준비가 되어 있죠. (273~274쪽)


우리가 사는 이 세상과 우주에 대한 모든 ‘왜’와 ‘어떻게’를 알고자 한다면, 물리학이야말로 실재의 진정한 이해로 가는 길입니다. (287쪽)


짐 알칼릴리의 『어떻게 물리학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는 물리학에 대한 경계를 무너뜨리는 책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전에 물리학에 대해 무관심이었던 이들에게 물리학이 무엇인가, 우리의 물리학은 어디쯤 와 있을까 한 번쯤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를 구성하는 물질에 대해서도 궁금증을 불러온다. 나가아 누군가에게는 물리학과 친해질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줄 것이다. 물리학이라는 아름다운 세계를 보여준 좋은 책이라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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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11: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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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3 09: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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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2 23:0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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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5-13 09: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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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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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우리가 예상한 대로 절대 흘러가지 않는다. 현재의 나를 만든 모든 과정이 그러하다. 한 사람으로 살아가는 일, 컨페션이 말하는 건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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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의 오렌지
후지오카 요코 지음, 박우주 옮김 / 달로와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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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평범한 삶을 원한다. 평범에 감춰진 비범을 알지 못하면서 평범하게 산다고 생각한다. 남들처럼 사는 일, 보통의 일상을 말한다. 평범을 유지하는 일이 얼마나 대단한지, 얼마나 힘든지 생각하지 않고 말한다. 하루하루 출근을 하는 일, 하루하루 나와 상대를 견디고 살아가는 일, 작고 소소한 것들에 기쁨을 누리고 함께 축하하고 웃을 일을 만들어 나가는 일은 얼마나 위대한가. 후지오카 요코의 소설 『어제의 오렌지』 속 료가도 그랬을 것이다. 도쿄의 한 레스토랑에서 점장으로 성실하게 일하고 명절에 엄마가 계신 고향에 내려가고 교사인 동생 교헤이처럼 결혼을 하고 아이도 낳는 삶을 말이다.


속이 아픈 일도 그냥 위경련이나 소화가 안 되는 정도로 여겼을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것처럼. 서른셋의 나이에 위암이라는 진단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왜 나냐고 따지는 게 당연하다.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고 입원과 수술과 치료를 시작한다. 하나하나 준비하는 과정에서 료가는 동생 교헤이가 보낸 택배를 받는다. 열다섯 살 무렵에 동생과 설산에서 조난을 당했을 당시 신었던 오렌지색 운동화였다. 죽을지도 모를 상황에서 어린 료가는 눈보라를 헤지며 길을 찾았고 구조되었다. 료가는 그때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의 삶에 최선을 다하기로 한다.


위암에 걸린 료가의 일상은 차분하고 담담하게 이어진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하는 고등학교 동창 야다를 만나 도움을 받는다. 서로를 기억하는 그때의 모습을 떠올리며 료가와 쌍둥이 교헤이에 대해 안부를 묻는다. 료가와 동생 교헤이는 진짜 쌍둥이는 아니지만 모두 그렇게 알고 있다. 료가와 교헤이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부모님에게 묻지 않았다. 료가의 수술과 간호를 위해 도쿄로 온 엄마는 그런 두 아들이 안쓰럽다.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 낳은 아들 교헤이보다 료가를 신경 쓰지 못한 게 아닐까 자책감이 든다. 교헤이가 시작한 야구를 함께 하라고 한 일부터 형이라는 책임을 안겨준 일, 모든 게 마음이 아프다.


소설은 이처럼 료가와 연견될 주변 인물의 이야기를 차례로 들려준다. 재혼한 엄마와 소원한 관계를 상처를 웃는 얼굴과 긍정적인 모습으로 감추는 야다, 자신이 부모님의 친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교헤이, 그들은 료가의 투병생활을 지켜보며 격려한다. 이상하게 료가와 대화를 하면서 비밀 아닌 비밀을 공유하게 된다. 료가의 항암 치료는 받으면서 고향에서 치료받기로 결정한다. 교헤이는 퇴근 후 료가를 자주 찾아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전하고 항상 바쁘게 일하던 엄마를 떠올린다. 자신을 친 아들로 여기도 키워준 엄마. 가족이라는 든든한 울타리를 생각한다. 열다섯 살 설산에서 조난을 겪은 후 그 마음은 더욱 굳건해졌다.


“하루하루를 정성껏 살아간다는 건, 잡초를 뽑는 일하고 똑같아. 잡초가 모든 정원庭에 자라나는 것처럼 가정家庭이라는 정원에도 자라나거든. 그래서 엄마는 매일 이렇게 잡초를 뽑는 거야. 가족 모두의 마음에 언제나 깨끗한 정원이 있게끔.” (234쪽)


야다가 료가의 방문 간호사로 나타나면서 둘은 가까워진다. 료가는 야다에게 교헤이와의 관계를 털어놓고 야다도 고교 시절 료가를 좋아했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료가는 조금씩 다가오는 죽음을 준비하고 열다섯 살의 교헤이와 등반을 했던 산에 오른다. 열다섯의 교헤이와 료가는 산에서 내려와 부모님에게 쌍둥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다고 말하기로 했다. 하지만 죽음에서 살아온 후 그건 중요하지 않다는 걸 알았다. 지금 이대로의 가족으로 충분하다는 걸 느꼈다. 현재의 료가도 마찬가지다. 힘겨운 등반길에서 료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는 알 수 없는 편안함을 느낀다. 가족들의 사랑을 생각하고 지난 시간을 돌아본다.


사람은 계속해서 삶을 걷다가 이윽고 어딘가에서 그 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조금도 대수로울 것 없다. 두려워할 일이 아니다. (346쪽)


등산로와 산을 뒤덮은 나무들과 하늘이, 오렌지색으로 불그스름히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현실 세계라고는 생각되지 않았다. 이미 오랜 시간 이어져 온 아픔과 권태감마저도 희미해져 가는 듯했다. 슬픔과 공허함조차 멀어져 가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서 있는 시간. 조약돌이 바다에 가라앉듯 의식이 서서히 흐려져갔다. (363쪽)


후지오카 요코의 소설 『어제의 오렌지』는 모두가 주인공인 가족소설이자 성장소설이다. 초반에는 암 투병을 하는 료가가 완치를 받지 않을까 기대했다. 료가가 치료를 받는 과정은 고통과 절망보다는 어떤 희망과 긍정이 있다. 그의 곁에는 든든한 친구와 동료 가족이 있다. 있는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해 준 이들이 있었기에 료가는 행복했고 삶에 감사했다.


나는, 나답게 살아온 것이다. 아등바등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을 하며, 주위 사람들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왔다. (336쪽)


어쩌다 보니 ‘가정의 달’이라는 5월에 읽게 되었다. 가족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만든 가족, 내가 만든 가족. 가족의 의미가 점점 퇴색해지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따뜻한 울림을 전하는 소설이다. 저마다의 평범한 삶을 응원하며 가족과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이라는 진부한 말을 꺼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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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화가 2022-05-09 09: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가족의 달에 걸맞는 소설이네요~! 지금으로도 충분하다는 문장이 떠올라요.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는다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가진 것들을 충분히 행복함으로 받아들인다면 그게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자목련 2022-05-10 11:47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지금으로도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삶이면 좋겠습니다.
기억의화가 님도 그런 행복이 가득한 날들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