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걀의 온기
김혜진 지음 / 창비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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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마다 사정이 있다. 그 사정을 듣고 헤아려줄 여유가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에도 어렵다. 내 사정에 더 급하니까. 나 살기도 급급하니까. 그래서 사건이 일어나야 시선을 돌리게 된다. 그제야 안타깝고 속상하고 미안하다. 그리고 잊어버린다. 누군가 대책을 세우겠지 생각한다. 당사자가 아니면 그렇게 잊힌다. 어쩔 수 없다. 거들어봐야 좋은 소리도 못 듣고 오지랖이라는 책망만 돌아오니까. 관여하면 고소 고발로 이어지기도 한다. 쓰고 보니 정말 각박한 세상이다. 그러나 자신 있게 나는 예외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김혜진의 『달걀의 온기』 엔 있다.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갖고 말을 거는 사람들이 있다. 상대가 원하지 않지만 자꾸 말을 건다. 대단한 태도는 아니다. 그냥 사소하고 보잘것없는 거라 거절하거나 대놓고 무시하기도 어렵다.

「관종들」이란 제목에서 짐작하듯 소설 속 ‘정해’와 남편 ‘영기’는 주변 이웃에게 관심이 많다. 아파트 공용공간에 물건을 쌓아두는 이웃, 난간에 위험하게 놓인 화분이 불편하고 불안하다. 관리사무소에 민원을 제기하지만 달라지지 않는다. 그런 그들에게 아파트 정자에서 계절감 없는 옷을 입고 혼자 있는 아이를 지나칠 수 없다. 부모가 의심스럽다. 결국 경찰에 신고한다. 아동학대가 의심되지만 경찰은 별일 아니라고 답한다. 아이의 부모는 사정이 있었다고 말하는데 정말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건지 정해와 영기는 자꾸만 신경이 쓰인다. 그들이 원하는 건 사고가 발생하기 전 미리 예방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알리고 싶었을 뿐이다. 함께 사는 세상, 그들의 행동은 정말 최소한의 것이었다.

최소한의 일. 그들은 자신들이 신경 쓰는 다른 문제들도 똑같이 대했다. 그건 선을 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관종들」, 29쪽)

「관종들」은 많은 생각을 불러온다. 정해와 영기가 지나치다는 싶으면서도 공동주택인 아파트에서 아무렇지 않게 실내 흡연을 하고 복도나 계단을 개인 공간인 양 사용하는 이들로 인한 고통이 경험한 이라면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아동학대에 대한 신고를 직접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걱정과 염려가 되는 정도로 끝나지 않을까. 정해와 영기처럼 쪽지를 받고 현관문에 불편한 메모를 발견해도 멈추지 않고 계속할 수 있을까.

모임이나 공동체에 새로 들어온 누군가를 대하는 태도도 다르지 않다. 지금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과 잘 지내기도 버겁기에 적당한 거리를 둔다. 언제부턴가 타인은 불편한 존재가 되었다. 아내와 사별한 뒤 교회의 성경 모임에 나가게 된 「푸른색 루비콘」의 ‘나’도 그렇다. 아들의 걱정 때문에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여러 강좌를 수강하지만 길게 이어가지 못한다. 아내가 있을 때는 어렵지 않았던 일들을 혼자 마주하니 당혹스러웠다. 이 나이에 누군가를 알아가야 하나 싶고 뭔가 말할 준비가 돼 있어도 딱히 자신에게 관심을 갖는 이도 없다. 그런데 한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온다. 입성이 별로인 남자의 부탁으로 양봉장에 데려다준다. 만날 때마다 그를 데려다주게 되는데 그와 보낸 시간이 묘하게 편하다. 많은 대화를 나눈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의 공간에서 마주한 풍경이, 그가 내어준 꿀물이 오래 남는다. 모임의 마지막에 아무도 모르는 그의 이름을 자신이 기억하는 건 당연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타인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 타인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이처럼 별스럽지 않은 듯 보이지만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 아는 체하며 다가온 남자, 궁금하지 않았지만 실없이 건넨 말들, 그러니까 그는 곁을 내어준 것이다. 곁을 내어준다는 건 마음을 나눠준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하루치의 말」의 고향으로 내려와 어머니의 이불 가게를 물려받는 ‘애실’의 고충을 들어주고 일상을 나눈 ‘현서’는 돈을 빌리고 갚지 않은 사기꾼만은 아니다. 처음 운영하는 가게의 어려움을 살갑게 들어주고 퇴근 후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가 계신 집이 아닌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고마운 존재였다.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말들을 꺼낼 수 있는 유일한 타인.


피해를 입은 이들의 성화에 못 이겨 고소를 했지만 현서를 면회한 애실은 돈을 받아내겠다는 마음이 아니었을 것이다. 어쩌면 애실은 자신의 모든 말을 들어 준 현서가 그리웠을지도 모른다. 현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접근했을지 모르지만 현서로 인해 애실은 자신의 상처나 실수를 말할 수 있었다.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해 방치된 청소년기를 보낸 건 애실의 잘못이 아니라고 7년 만에 연락해 돈을 빌려 간 아버지에게 사과를 요구할 수 있었다.




애실은 다 기억나지도 않는, 이제 주워담을 수도 없는 말들을 생각했다. 그러면서 다시금 말을 간직하는 법을 배워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중얼거렸다. 매일 밤, 차갑고 딱딱한 마음을 파서 하루치의 말을 묻는 일. 매일 조금씩 더 깊이 파고, 오래 파는 행위에 적응하는 일. 말들이 튀어나오거나 새어나오지 않도록 마음을 단단하게 다지는 일. 그러니까 안전하고 평화로운 하루를 영위한 현명한 사람들이 매일 반복하는 일. (「하루치의 말」, 134쪽)

말이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가. 그저 호감일 뿐인데 주변 사람들은 이상하게 주시한다. 그러니 어떤 말은 주저하고 어떤 말은 사라지고 상대의 말을 믿기도 어렵다. 남편과 자전거 가게를 운영하는 ‘나’가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의 부탁으로 그가 외국에서 사 온 빈티지 엽서를 읽어주는 「빈티지 엽서」, 아르바이트로 저명한 미술가의 전시실에서 관람객의 반응을 기록하며 표절 논란을 마주하는 「우연의 직조」, 치매를 앓는 아버지가 가까운 이가 자신의 땅을 빼앗아 갔다는 말을 전해 듣고 혼란스러운 아들의 이야기 「우리와 우리 아닌 것」의 말들은 그러하다. 진위를 구분할 수 없기에 힘들다. 섣불리 의견을 제시했다가 손해만 볼 수 있기에.

이처럼 김혜진은 관심이 병이 되고 선의의 마음조차 거부되어 돌아오는 시대에 최소한의 그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달걀의 온기」의 ‘선희’는 투자 사기를 당한 후 비어 있는 고향 집에 돌아온다. 요양원에 들어간 아버지가 돌아오실 것 같지 않아 그 집을 처분하기로 한다. 엿을 만들어 팔던 집안 내력 덕분에 ‘엿집’ 막내딸로 통했던 자신을 알아보는 어른들을 피해 다니지만 ‘민지’라는 어린아이와 자꾸 마주친다. 부모에게 버림받고 조모에게 맡겨진 아이였다. 당찬 아이는 스스로 닭을 키우고 달걀을 팔아가며 살아가고 있었다. 옆집 아주머니가 자신에게 건넨 청란, 달걀을 안 좋아한다는 아버지가 그 아이의 달걀을 사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선희는 지갑을 가지러 집 안으로 들어가며 청란을, 그 청란이 품고 있는 온기를 떠올렸다. 그러나 왜 그것이 돌연 마음을 뭉클하게 하는지, 왜 당혹스럽고 부끄러운 감정을 불러오는지에 대해선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다. 그것이 자기 삶에는 없다고 여겼던, 스스로 감쪽같이 지워버렸던 누군가의 보살핌과 애정 같은 것을 일깨웠다는 사실을 안 건 시간이 더 흐른 후였다. 그러니까 그녀가 이곳을 떠날 때 동력으로 삼았던 원망과 미움이 옅어지고, 그 아래 자리한 것들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거였다. (「달걀의 온기」, 233~234 쪽)

뜻대로 되지 않는 삶, 이제껏 자신의 불행을 아버지와 두 오빠 탓으로 돌리며 살아온 선희는 민지를 통해 자신의 과거를 돌아본다. 여전하게 자신을 기억하고 보살펴준 손길을 생각한다. 한 알에 천 원인 청란이 하나도 비싸지 않다는걸. 표제작 「달걀의 온기」를 통해 우리는 실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과 행동이 무엇인지. 온기와 다정함을 품은 말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는다. 최소한의 그것이 상처받은 우리를 어루만지고 살게 한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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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새벽 - 나는 누구도 가질 수 없는 새벽을 이야기해보기로 했다 아무튼 시리즈 82
박수영 지음 / 제철소 / 202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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끌리는 단어가 있다. 좋아하는 단어가 있다. 마음을 품었던 기억과 여전히 버리지 못하는 물건을 떠올리는 말들. 누구나 그럴 것이다. 아끼거나 증오하거나 사랑하거나 분노하거나. 그 모든 건 글이 될 수 있고 네 출판사가 함께 펴내는 ‘아무튼 시리즈’가 그렇다고 생각한다. 글감이 다채로우니 저자도 다양하다. 수집광이거나 에세이 리스트거나 작가거나 나만 모르는 세계의 유명인이거나.

아무튼 나는 새벽에 끌려다는 말이다. 뿌연한 안개를 곁에 두고 달리던 새벽, 소중한 이와 보내는 시간이 아까워 뜬 눈으로 밤을 새우고 맞이한 새벽이 스쳐 지나간다. 홀로 새벽에 쏟아낸 수많은 말들과 술병. 새벽이라는 푸르스름한 빛, 불투명한 이미지, 고독과 사색의 시간. 아무도 모르는 일들이 벌어질 것만 같은 시간.

잠들려고 애쓰지만 잠들지 못하고 서성이는 새벽의 시간의 날들이 있었기에 그 새벽을 생각한다. 비공개 카테고리로 이동한 그날들의 기록을 보면 그 새벽에 나는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외로웠다고 말하는 게 맞겠다. 혼자여도 괜찮다고 여겼지만 괜찮지가 않아서 잠들지 못하고 자판에 손을 올리고 뭔가를 써 내려갔다. 돌이켜보면 부질없고 아까운 시간이다. 하지만 당시의 나에게 그 새벽은 소중했고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위로하던 시간이었다.

어쩌면 나는 『아무튼, 새벽』에서 그런 비슷한 것들을 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혼자여서 싫기도 하고 혼자여서 충만하기도 했던 감각들. 새벽에만 느낄 수 있는 공기, 그것을 아는 사람이 들려주는 이야기라고 할까. 단편적인 새벽, 새벽의 조각만 떠올렸다. 새벽을 물려받았다고 말하는 저자에게 지각은 당연했다. 새벽만 되면 잠이 달아나고 그 밤에는 영화가 보고 싶고, 영화배우가 꿈이 되었다. 책을 읽으며 새벽마다 본 영화에 대한 글을 쓰고 영화에 출연하고 단편 영화를 만드는 그가 배우로 성공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저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기에 그를 검색했으니까. 그런 날들을 견딜 수 있었던 건 새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새벽의 도움을 받아 새벽을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있었던 것처럼.





한데 나는 오롯이 새벽에만 끌렸기에 저자의 새벽이 특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새벽 기도를 다니며 마주했던 조용하고 적막한 시골 읍내의 풍경이나 새벽이라는 한정된 시간의 생동감이나 활기 같은 걸 찾고 싶었던 것 같다. 저자가 고양이와 인연을 맺으며 새벽을 그들을 돌보며 마주한 일상은 새벽의 다른 이면이었다. 사람들이 쉽게 발견하지 못하는 길고양이 급식소, 아픈 고양이를 돌보며 불편하고 불쾌한 시선을 견뎌야 했던 새벽. 여성에게 더 많은 위험과 공포가 도사리는 새벽. 이제야 표지에 왜 고양이가 등장했는지 알 것 같다. 사실, 고양이도 책을 선택한 이유 중 하나였는데 새벽과 고양이의 접점을 나는 알지 못했다.

새벽엔 풀 냄새, 바람 냄새, 너구리 무리가 머물렀던 자리의 냄새가 너무 짙어서 눈에 보일 것만 같다. 서리 때문은 아니다. 보슬비 내리는 낮에는 없는 냄새가 새벽에만 있으니까. 고요가 허락하는 냄새를 만끽하려면 보폭을 줄여야 한다. (100쪽)

내가 사는 시골의 새벽은 냄새보다 소리가 먼저다. 새소리로 시작하는 여름의 새벽은 더욱 그러하다. 그 소리는 상쾌하고 청량하지만 이불 속 나에게는 볼륨을 줄여줬으면 싶을 때가 많다. 나의 새벽은 그들처럼 날갯짓을 하고 움직이는 새벽이 아니기에. 나만의 새벽은 사라졌다. 아니, 나만의 새벽이 잠들기를 원한다. 잠들지 못하는 새벽이 힘들다. 새벽이 주는 이미지를 좋아하지만 현재 나의 새벽은 깊고 깊은 잠이길 바란다. 그러니 『아무튼, 새벽』에서 나만의 새벽과 교집합을 찾기란 불가능하다. 저마다의 새벽이 있다는 걸 수긍할 뿐이다.

새벽이면 이 사회의 약자가 누구인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덥고 습한 새벽, 꽁꽁 얼어붙은 새벽, 눈과 비가 쏟아져 내리는 새벽이면 이 시간의 주인을 자처하던 이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런 날에도 길 위에 남아 있는 사람은 환경공무관과 새벽 배송 기사 그리고 길고양이 돌보미인 나였다. 하루만큼 버려진 쓰레기와 하루만큼 쌓인 택배 상자, 그리고 하루만큼 비워진 고양이들의 밥그릇 때문에 우리는 매일 만났다. (124쪽)

내가 깊게 잠들기를 소망하는 새벽에 누군가는 바쁘고 빠르게 움직인다. 나의 아침을 위해 누군가의 새벽은 노동으로 채워진다. 수고와 고마움으로 새벽은 이어진다. 도시의 새벽은 더욱 요란하고도 고요할 것이다. 새벽마다 깨어 시간을 확인하고 눈을 감는 나는 한 번쯤 『아무튼, 새벽』이 생각날지도 모른다. 그게 전부가 될 것 같다. 내가 기대했던 새벽, 내가 궁금했던 새벽이라고 할 수 없기에.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특별한 새벽은 없었다. 당연하게도 누군가의 새벽이 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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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약과 공터 문학과지성 시인선 624
허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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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불안한 시간으로 채워졌다. 원인을 알 수 없었던 불안이 아니었다. 하지만 원인을 안다고 해서 불안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로 더욱 불안은 깊어졌고 잠잠하지 않고 요동쳤다. 5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에 이르려야 조금 괜찮아졌다고 여긴다. 정말로 괜찮아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스스로 그런 의식이 필요하고 다짐이 필요하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할까. 그리고 겨우 시집을 읽는다. 실은 작약의 계절에 이 시집을 읽고 싶었고 생생했던 작약의 꽃잎이 시들고 떨어지는 날들에 이 시집이 그리웠다.


빗나가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에 대해 노래하고 싶었고, 빗나간 것들을 증언하고 싶었다. 시는 그랬다. 모든 시는 불온해야 하고 모든 시는 자유로워야 한다. 불온한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다. 내 모든 시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에 바친다. (시인의 말)


그래서 얼마나 불온한 시냐고? 그건 모르겠다. 다만 시를 만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과 친해지는 일이라는 말이 가슴에 콕 박혔다. 허연의 시는 뭐랄까, 외롭고 쓸쓸한 한 인간의 이미지를 떠올린다. 그러니까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고독한 남자가 맞을지도 모른다. 홀로 있는 그가 건넨 시가 가만히 내게로 건너와 내 곁을 지킨다. 다시 시집을 펼치면서 여전히 같은 시에 시선이 길게 머문다. 그건 좋은 일일까, 나쁜 일일까. 그리고 내심 모른척했던 이런 시를 처음 만난 것처럼 읽는다.


사람들이 땅을 발견함으로써

자두나무를 발견하고

모든 결과는 자두가 되었다

염탐된 사상들이 담긴

서책에 대해서 생각한다

장서관 맨 위 칸 귀퉁이가 찢어진

그 서책은 놀라운 것이었다

엄마에 반발한 아이들이

줄지어

죽어갔던 날들의 기록이었다

익숙한 햇살이 땅을 비출 때마다

그림자는 이름을 가졌다

결국, 세상은 그림자였음을 안다

바라보면 눈멀게 되는 것들이 있다

성당 한쪽 담벼락에

섬망이 지나갔다

죽어갔지만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어떤 것들은 이름을 가졌다』 - 전문)




사라진 기억, 사라졌다고 믿었던 날들, 이제는 부재한 누군가를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안에 나의 이름을 덧붙인다. 나의 생도 언젠가 사라질 것이다. 어느 날에는 소멸을 꿈꾸었지만 정작 그런 순간이 온다면 나는 멀리 달아나고 싶을지도 모른다. 알고 있지만 죽음에 대한 공포는 가장 큰 불안이기도 하니까. 나는 나를 모르고 내가 안다고 믿어도 그건 아는 게 아닐 터.

그러나 유한한 생은 오늘을 데려왔고 오늘을 살게 한다. 어떤 이는 치열하게 어떤 이는 무기력하게 어떤 이는 제법 아름답고 균형 있게 살아갈 것이다. 내게 주어진 5월의 하루하루는 우울감으로 가득했고 무기력으로 짓눌렸다. 심하게 구져졌고 위축했던 나의 마음이 도무지 펴질 것 같지 않았다. 나에게만 매몰되었기 때문이다. 아직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고 아직 마침표를 찍은 게 아닌데 말이다. 그저 오늘이 전부라는 걸 잊었다. 오늘이 인생이라는 걸 말이다. 그러니 이런 시는 완벽하다.

단명할 것이 분명한 화분에

여전히 물을 준다

마무리 짓지 못하는 일들

그런 게 뭐라고

속이 탄다

화분의 죽음은

화분의 시간은

직관만으로는 말할 수 없다

시소에 앉아

인조 잔디와 하늘을 번갈아 보면서

어떤 게 쓸 만한 선택인지 생각한다

시소에 앉아 느끼는

생의 무질서도(度)는 그나마 견딜 만한다

주기니까

딱 거기까지니까

노인에서 소년으로

시소는 움직인다

양쪽에서 하는 일과 양은 같은데

한쪽은 등신이고

한쪽은 전사다

딱 거기까지가 생이다

화분에 물을 준다

(「슬픈 주기 1』 - 전문)

나의 5월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내일은 6월이다. 5월이 될 수 없다. 나의 오월은 지나갈 것이다. 나의 5월은 기억이 될 것이다. 하루가 지나면 6월이 되지만 나의 6월은 알 수 없다. 어쩌면 나는 6월에도 5월을 살지도 모른다. 6월에도 5월의 감정에 허덕이며 허우적댈지도 모른다. 그래도 5월을 살아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이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의 작약이 그러했듯이. 『작약과 공터』가 그러하듯이.




작약은

울먹거림

알아듣기 힘들지만 정확한 말

살아서 작약을 보고 있다

작약에는 잔인 속의 고요가 있고

고요를 알아채는 게 나의 재능이라서 (「작약과 공터』, 일부)



공터에선

당신의 아름다운 나라와

내 끔찍한 나라가

불온하게 빛나고 있었다

세상에는 이상한 공터가 있어서

마음을 멍하게 하는 공터가 있어서

작약이 있어서 (「작약과 공터 2』,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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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05-31 19: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하루하루가 갈수록 생의 유한함, 이런 저런 상황들이 맞물려 불안이 증폭될 때가 있는 것 같아요. 이유 없이 갑자기 막 심장이 두근대기도 하고요. 아무쪼록 우리 모두의 마음에 평화와 평온이 깃들기를 바랍니다.

자목련 2026-06-09 15:58   좋아요 0 | URL
블랑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덕분에 불안의 강도가 약해지고 쪼그라든 마음이 조금 더 펴지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서, 늙고 있어서 그렇다고 여기며 살려고 하는데 어려워요. 요즘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는 태도를 생각해요.
 
케냐 니에리 피베리 - 200g, 핸드드립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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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주문한 커피, 정확한 맛을 모르겠다. 왜냐하면 이곳이 아닌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곳에서 급하게 돌아오느라 책과 커피를 챙기지는 못했다. 노동절 아침에 마시니까 더 좋다는 그 맛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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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6-05-15 10:3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 5월 1일까지 기더리시면 안 됩니다! 🤣

자목련 2026-05-24 09:51   좋아요 0 | URL
곧 개봉합니다!!
 
소설 보다 : 가을 2025 소설 보다
서장원.이유리.정기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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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2025’ 시리즈 표지에 반해서 구매했다. 봄의 딸기, 여름의 포도, 가을의 무화과까지. 셋 가운데 무화과가 가장 탁월했다. 아무튼 그렇다는 말이다. 이유리의 「두정랜드」는 환상이나 상상을 찾을 수 없는 점이 나는 반가웠다. 이유리의 다른 이야기도 궁금했기 때문이다. 최근에 『구름 사람들』에서 다루었던 이야기와 비슷한 결이었다. 「두정랜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나’는 『구름 사람들』 속 주인공과 겹쳐 보였다. 「두정랜드」 속 ‘나’가 조금 더 활달하다고 해야 할까. 그건 공간과 배경이 가상이 아닌 구체적인 현재에서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것처럼. 그러나 웬만한 독자라면 이미 알 것이다. ‘나'는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휴학을 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러 온 게 아니라는걸. ‘나'는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는 연두와 놀이 기구를 타러 두정랜드에 온 이들이 서울 사람인지 아닌지를 맞추는 게임을 한다. 매번 실패하는 연두에 비해 나는 항상 정답을 맞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두정이 싫고 서울을 갈망하기 때문이다. 두정에서 대학을 다니고 선배 남자친구를 둔 연두와는 다르다고 자부한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학 입학, 휴학, 친구, 모두 거짓이다. 쉬는 날 홍대 주변을 둘러보는 게 전부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나에게 서울은 홍대이니까.

나에게 ‘두정’은 정착할 곳이 아니고 떠나야 할 곳, 버려야 할 곳이다. 그에 반해 연두는 결혼할 남자친구가 서울에 집을 가지고 있어 진짜 서울에서 살 것이다. 나가 꿈꾸는 미래를 손에 쥐었음에도 연두는 감흥이 없다. 나의 입장에서 연두는 현실에 순응하는 수동적 인물로 보인다. 가짜를 쫓으며 살아가는 나와 나만의 기준으로 살아가는 연두로 이십 대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은 극단적이지만 요즘 시대를 보면 양극 현상은 당연한 것인지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는 경험한 사람만이 알 수 있다. 그런 이유로 서울을 꿈꾸는지도 모른다. 모든 삶의 표준이 되는 서울, 자연스레 따라오는 차별, 고향을 버리고 새로운 출신지를 꿈꾸는 청춘. 「두정랜드」 속 연두와 화자의 모습을 통해 현재 이십 대의 마음을 본다. 세 번 오르면 소원을 이뤄준다는 관악산 정상으로 모여드는 청춘의 모습까지.

「두정랜드」가 이십 대의 이야기라면 정기현의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의 주인공은 십 대다. 주인공 ‘승주’는 전교 1등으로 반 회장 장범규와 사귀는 사이지만 학교에서는 아는 척하지 않는 영악함을 보인다. 승주의 일상은 정확한 계획으로 이뤄진다. 완벽한 계획, 모든 것이 자신이 의도한 대로 진행되어야 한다. 장범규와의 데이트도 그랬다. 똑같은 행위, 똑같은 배달 음식, 그러다 남은 음식을 창문 밖으로 투하하는 장난. 쓰레기를 던지고 몸을 숨기면 완벽했다. 불량 청소년 ‘버들치’ 무리가 승주를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건 계획에 없던 일이었고 예측을 벗어났으니 대책이 없다. 그러나 쓰레기가 날아온 장소가 장범규의 집이었다는 사실로 승주는 위기에서 벗어났다. 장범규와 결별하고 ‘버들치’ 무리와 어울린다. 승주는 전교 1등 모범생과 일탈, 그 사이를 오가며 자신을 의심하지 않았다. 원하는 대로 계획한 대로 이뤄질 거라 확신했다.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승주는 늘 결백했다. 무엇에서든 오래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나를 속이지 않는 것,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또 있을까? 요행은 금물. 바라지도 않는 편이 좋다. 오직 최선을 다한다. 그것이 승부가 생각하는 진실이었다. 승주는 나를 속이는 길과 속이지 않는 길, 그 갈림길 앞에 설 때마다 이 명제를 되새겼다. ( 「공부를 하자 그리고 시험을 보자」, 122~123쪽)





겪어왔던 바와는 영 딴판인 세계가 자신을 덮쳐 올 때, 또 다른 무기를 갖추지 못했거나 무기를 제때 뽑아 들지 못한 사람은 원래 머물던 세계의 기반마저 한 순간에 위태로워지지 마련이었지만 승주는 달랐다. (136쪽)


맹랑하고 자신만만하며 잔망스러운 승주의 태도는 창의력 수학 시험 문제지 앞에서 정점에 이른다. 문제에 나온 유원지를 버들치 무리와의 거닐었던 공간을 대입하며 자신만만하게 풀어낸다. 요구했던 답은 최소였지만 승주는 최대를 구했다. 버들치 무리와 보내는 시간은 길면 길수록 좋은 것이니까. 그러니 시험을 풀며 승주는 내내 행복했을 것이다. 외고 입시의 결과는 상관없이 말이다. 단 한 명의 어른 목소리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한 일이 어떤 결과로 승주 앞에 나타날지, 완벽하다고 여긴 계획의 실수와 오차를 승주는 어떻게 받아들일지, 승주가 어떻게 성장할지 궁금하다. 정기현 작가가 어른이 된 승주 이야기를 들려주면 좋겠다.


이유리, 정기현의 소설이 경험, 욕망, 방황으로 읽을 수 있었다면 서장원의 「히데오」는 관계에 대한 이야기로 볼 수 있다. 화자인 ‘수진’과 ‘히데오’는 대학교 연극원 강의실에서 처음 만난 선후배 사이다. 극작을 전공하며 학보사 기사인 수진은 히데오를 인터뷰한다. 조금씩 친해지자 히데오는 수진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본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가 이혼하고 한국에 온 사실. 자신의 첫 번째 이름이 히데오라는 것. 수진은 그것이 히데오의 비밀이라 여겼고 둘 사이가 특별한 관계라고 생각했다. 자주 만난 산책을 하고 시간을 보냈기도 했으니까. 그 뒤로 수진이 쓴 연극 「따위 게임」에 히데오가 발탁된다. 그 연극을 계기로 히데오는 자신의 출신, 성장과정, 정체성에서 자유로워지며 졸업 후 배우로 성공하고 수진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모두가 알게 된다. 시간이 흐른 뒤 둘은 재회하지만 수진이 만난 히데오는 과거의 히데오가 아니었다. 그들이 나눴던 비밀은 사라졌다. 어쩌면 수진만 비밀이라 여겼을지도 모를 비밀. 때문에 수진은 그런 히데오에게 남다른 감정이 생겼고 그도 자신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었던 것이다. 이처럼 비밀은 시간이 지나면 비밀이 아니다.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 소설은 다양한 시선으로 읽을 수 있다. 연애 소설로도 읽을 수 있고 나처럼 관계에 주목할 수도 있고 히데오의 성장소설로도 가능하다.


『소설 보다 : 가을 2025』에서 만난 서장원, 이유리, 정기현의 소설은 나름 재밌었고 신선했다. 각자가 무엇을 지향하는지 뚜렷하게 보여준다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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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6-04-29 12: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히데오>란 제목이 눈에 익어 읽은 단편인가? 싶기도 한데 자목련 님 리뷰를 읽으니 영 낯설어 안 읽은 것도 같구요.^^
서장원 작가가 그동안 이름만 듣고 남성작가인 줄 알았었는데 어떤 인터뷰에서 여성작가여서 좀 놀랐던 게 기억나네요.
이유리 작가는 <브로콜리 펀치> 소설 넘 재밌어서 다른 책도 읽어봐야지 싶은데 기회가 잘 안 닿네요. 근데 얼마 전에 알았는데 김홍 작가와 부부래서 또 놀람.
정기현 작가는 은근 웃기고 재미나던데 아직 소설은 읽어보질 못한 듯 합니다.
그러고보니 이 책도 사다놓기만 했는데 이 책을 읽는다면 다소나마 세 작가들에게 한 걸음 다가가는 지름길이 되겠군요.^^

자목련 2026-05-04 10:48   좋아요 2 | URL
나무 님, 답글이 늦었습니다. 말씀하신 <히데오>는 아마 <겨울 정원>에서 만나시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유리 작가와 김홍 작가가 부부군요. 소설가 부부도 많고 시인, 소설가 부부도많은 것 같아요.
초록의 계절, 즐겁게 보내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