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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과 발견 - 사랑을 떠나보내고 다시 사랑하는 법
캐스린 슐츠 지음, 한유주 옮김 / 반비 / 2024년 6월
평점 :
가장 가까운 이의 죽음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나에겐 엄마의 죽음이 그러했다. 처음 맞이하는 사랑하는 죽음이라 그랬다. 엄마가 이 세상에 없다는 걸 생각할 수 없었다. 더 이상 엄마를 볼 수 없고 엄마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게 충격이었다. 가장 절망적이었던 건 엄마에 대해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러나 시간은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엄마의 부재를 아무렇지 않은 일로 만들었다. 오히려 나의 힘듦을 엄마가 모르기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족음은 그렇게 자연스럽게 상실을 삶으로 데려왔다. 죽음으로 인한 이별을 준비할 수 있다는 감사를 불러왔다. 며칠이었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준비하고 암 투병을 하는 큰언니를 보며 죽음을 예감했다. 그러나 그들의 부재가 얼마나 큰 힘을 지녔을지 준비할 수 없었다. 친밀한 사이가 아니었던 아버지의 죽음이 만든 부재는 큰 구멍이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버지의 자리를 볼 때마다 아버지가 거기 없다는 게 고통스러웠다.
캐스린 슐츠의 『상실과 발견』은 아버지의 죽음을 시작으로 상실에 대해 말한다. 상실의 의미를 보여준다. 상실의 모든 것을 말한다고 할까. 가족의 죽음으로 비롯된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에 대한 감정이 아닌 상실 그 자체에 대한 은유와 통찰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 한 사람이 사라지는 과정, 한 사람의 생이 부재한 자리에 채워지는 상실.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이자 애도의 글은 모두를 상실의 구덩이로 빠지게 만든다. 아니, 상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내가 아버지에 대해 그리워한 것은 아버지를 통해서 여과된 삶. 아버지의 내면의 빛에 비추어 바라본 삶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사라져버린 가장 중요한 걸 다시는 손에 넣을 수 없음을 나는 즉시 깨달았다. 아버지의 방식대로 바라봤던 삶. 철저하게 우리 모두가 살아가는 대로의 삶. 내 모든 기억들을 다 모아도 아버지처럼 존재하는 단 하나의 순간도 만들어낼 수 없고, 내가 겪은 상실 전체는 아버지가 경험한 상실 앞에서 창백해진다.(99쪽)
한 사람의 존재, 역할, 사소한 집착, 취미, 습관, 이 모든 게 한순간 부재하며 느끼는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의 시간은 측량할 수 없고 측량될 수 없다. 상실이란 그런 것이니까. 가족의 죽음과 사랑하는 이를 잃은 일은 최대한 미루고 싶은 것이다. 하지만 마침내 그것은 우리 앞에 도달하고 상실의 시간은 이어진다. 상실을 경험하는 동안 우리는 상실이 삶을 지배하고 전부라 여긴다. 상실을 이길 다른 감정이 스며드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그러나 캐스린 슐츠가 ‘발견’에 대해 사유하고 내려간 사랑은 우리 삶에 상실과 대등한 위치에 놓인다.

그녀와 C의 만남, 그녀가 발견한 사랑, 그녀의 삶을 풍부하게 만드는 그 모든 것을 발견하는 과정은 아름답고 경이롭다. 이 역시 상실과 마찬가지로 개인적인 경험이며 감정이지만 발견이라는 게 얼마나 대단하고 위대한 일인이 우리는 알게 된다. 발견이 지닌 놀랍고도 신비한 힘, 그 가능성에 대해서 말이다. 배우고 깨우친다. 그러니까 이 책을 통해 발견을 발견했다고 할까. 아무튼 굉장하다. 그녀의 사유에 감탄한다.
애도와 마찬가지로 사랑 역시 유동적인 속성을 지닌다. 사랑은 어디로든 흐르며, 어떤 형태의 용기도 채울 수 있고, 흠뻑 스며들지 않는 것이 없다. (166쪽)
상실은 세계를 축소하지만, 발견은 풍성하게, 풍부하게, 재미있게 한다. (228쪽)
상실이 삶을 지속적으로 우울하게 만들었다면 발견은 삶을 기쁘고 황홀하게 만든다. 그리하여 우리는 상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상실에 대한 부분을 힘들게 읽었기에 발견의 주제로 넘어오면서 나는 이 책에 더 좋아졌다. 고백하자면 좋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그런 책이다. 엄청난 책인데 그것에 대해 잘 소개하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이다. 너무 좋은 책은 너무 좋은 마음이 급해서 서툴기 마련이라고 포장한다.
누군가를 발견한다는 건 한없이 경이롭다. 우리 감각의 척도는 상실로 인해 우리가 엄청나게 작은 데 비해 이 세상이 압도적으로 크다는 걸 깨달으며 바뀔지도 모른다. 발견 역시 같은 역할을 한다. 유일한 차이는 우리가 발견에서 절망이 아닌 경이로움을 느낀다는 점이다. 끝없이 드넓은 이 우주에서, 삶이 무한히 변이하는 가운데, 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과 경로들, 그리고 가능성들 가운데, 나는 여기 이 집, C의 곁에 있다. (233쪽)
우리 삶에 발견이 없다면 어쩔 뻔했는가. 상실을 대신할 발견은 아니지만 상실은 상실대로 발견은 발견대로 우리를 충만하게 만든다. 그리고, 우리를 살아가게 만든다. 캐스린 슐츠는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했고 자신의 경험에 비춰 눈부시게 담아냈다. 한없이 작은 우리가 서로를 발견하고 발견됨으로 성장하는 존재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상실은 일종의 외부적 의식으로, 우리에게 유한한 날들을 잘 사용하라고 한다. 우리의 삶은 찰나에 불과하고, 인생을 잘 산다는 건 보이는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는 것이다. 고귀하다고 생각되는 것에 경의를 표하고, 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을 돌보고,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는 것과 이미 사라진 것을 포함한 이 모든 것에 우리가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 우리는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켜보기 위해 여기 있다. (300~301쪽)
상실의 시간을 살아가는 이에게 가만한 위로를 전하며 다가올 상실에 미리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상실은 피할 수 없는 삶의 일부이니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살아가면서 발견하는 존재가 전하는 벅찬 감동이라고. 상실과 발견이 반복되는 그것이 삶이라는 걸 깨닫게 한다. 그 모든 걸 받아들이고 사랑해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의무라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