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립백 가을하다 - 12g, 7개입
알라딘 커피 팩토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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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처럼 예쁜 커피가 왔다. 작년에도 만난 커피, 올해도 반가운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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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들판을 걷다
클레어 키건 지음, 허진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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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궁금하다. 돌아가신 엄마는 아버지와 결혼해서 행복했을까. 행복이 뭔지도 몰랐을 엄마에게 기쁨은 무엇이었을지 말이다. 아이를 다섯이나 낳고 살았지만 기억 속 어디에도 엄마에게 다정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나의 아버지. 그러나 막내딸인 내게는 다정했던 아버지. 엄마가 돌아가시고 고모가 들려준 말은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들었다. 아이를 업고 집을 나갔지만 곧 돌아왔다는 엄마. 등에 업힌 아이는 누구였을까. 나는 아니었을 것이다.


가끔 궁금하다. 큰언니는 왜 결혼을 하지 않았을까. 대학을 졸업하고 몇 년 후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 때 엄마가 결혼은 천천히 해도 된다며 반대를 했다고 하는데 진짜일까. 나는 왜 한 번도 언니에게 남자친구에 대해 묻지 않았을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큰언니의 든든한 돌봄을 받았지만 큰언니의 외로움이나 상처는 알지 못했다. 오히려 내게 했던 아픈 말들을 곱씹기만 했다. 엄마와 큰언니에게 가족은 어떤 존재이며 의미였을까.


클레어 키건의 단편집 『푸른 들판을 걷다』를 읽으면서 아이를 업고 집 앞에서 서성였을 젊은 엄마의 슬픈 얼굴이 떠올랐다. 정작 나는 알지 못할 슬픔으로 가득 찼을 얼굴. 속상한 마음을 터놓을 이가 없었을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아리다. 엄마는 어디로 가고 싶었을까. 정해진 곳이 있었다면 엄마는 떠날 수 있었을까. 그곳이 어디든 그냥 떠나도 괜찮다고 나는 말해주고 싶다. 손을 내밀어 젊은 엄마를 데리고 나오고 싶다.


그러니 나는 아무렇지 않게 폭력과 학대를 지속하는 아버지를 방관하는 어머니를 떠나는 「작별 선물」 속 ‘당신’을 응원하다. 낯선 뉴욕의 삶이 어떨지 알 수 없지만 이곳을 떠나 그곳으로 향한다는 것만으로 당신은 괜찮아지고 있으니까. 혼자서 모든 농사를 감당할 오빠에게 고맙고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당신은 더 빨리 떠났어야 했다. 따뜻한 울타리가 아닌 족쇄였던 부모로부터 말이다.


클레어 키건은 구체적인 묘사로 불편함을 전하는 대신 작은 몸짓과 시선이 닿는 공간과 배경으로 마음의 상처를 섬세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더 상처는 더 크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처음엔 상황을 바꾸려 시도하고 노력했을 마음이 어떻게 무너져 무기력으로 변하는지 말이다. 젊은 엄마를 다시 생각한다. 엄마가 바랐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서른 살의 나이 때문에 결혼 이야기를 꺼낼 남자가 없을 것 같아 디건의 제안을 받아들인 「삼림 관리인의 딸」 속 마사에게 다시 젊은 엄마를 본다. 마사가 원하는 방식이 아닌 자신의 방식으로 마사를 사랑한 디건.


가끔 헛간에 서서 씨앗을 쪼는 닭들을 바라보며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이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곤 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7쪽」


무엇을 기대했을까? 그녀는 감정이 점점 크고 깊어져서 사랑이 될 줄 알았다. 지금 마사는 친밀함을, 오해를 뛰어넘는 대화를 간절히 원했다. 일을 찾아볼까도 생각했지만 이미 늦었다. 조금 있으면 아이가 태어날 참이었다. (「삼림 관리인의 딸」, 89~90쪽)


주변 시선이 중요하고 땅과 집을 지킨 후 찾아올 미래의 삶이 중요했던 디건, 지금의 행복이 중요했던 마사. 마사를 배려하지 않는 디건의 말과 행동은 폭력인 줄 몰랐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 역시 폭력이다. 화해의 타이밍은 지나갔다. 마사는 집을 떠날 계획을 세우고 디건은 그 계획을 모르지만 마사가 떠날까 두렵다. 문득 궁금하다. 젊은 아버지는 엄마의 마음을 알고 있었을까. 디건처럼 두렵기는커녕 관심조차 없었지 않을까.


클레어 키건이 소설을 통해 보여주는 아일랜드의 삶은 권위를 내세우는 남성 중심의 사회를 꿰뚫는 동시에 고요하고 정확하게 비판한다. 그 삶이 우리의 그것과 닮아서 아프고 쓰라리고 고통스럽다. 상처로 얼룩진 시간에서 벗어나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작별 선물」의 ‘당신’, 과거를 잊고 원하던 아이와 함께 떠나는 「퀴큰 나무 숲의 밤」의 ‘마거릿’의 선택은 멋지고 눈부시다.


그러나 나를 오래 붙잡는 건 「물가 가까이」였다. 소설 속 아들은 새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생일을 원하지 않는 리조트에서 보내야 한다. 새아버지의 비위를 맞추는 엄마가 싫지만 그곳을 떠나지 못한다. 아들은 바다를 보며 할머니를 생각한다. 할아버지와 결혼했을 때 바다가 보고 싶다고 말한 할머니는 정작 바다에 도착했을 때 자신을 기다려주지 않고 가 버린 할아버지를 떠나지 못했다. 나중에 왜 그랬냐고 물었을 때 할머니는 “바다가 얼마나 깊은지 몰라서” (160쪽) 그랬다고 대답한다.


엄마도 그랬을까.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등에 업은 아이 때문에 떠나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존재하지 않았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면 엄마가 가고 싶은 곳으로 원하는 대로 어디든 한 걸음 나가도 괜찮다고 말해주고 싶다. 나의 젊고 어린 엄마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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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4-09-24 1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단편집이군요~! 키건 첫번째 읽었던 책이 그냥 그랬어서 안읽고 있는데 이 단편집은 좋을거 같아요~!!

자목련 2024-09-25 11:53   좋아요 2 | URL
키건의 초기 단편이라고 해요. 새파랑 님도 좋아하실 것 같아요!

독서괭 2024-09-24 19: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휴 소설보다 자목련님 어머니 이야기에 마음이 저릿저릿하네요 ..

그레이스 2024-09-24 20:59   좋아요 1 | URL
저두요

자목련 2024-09-25 11:54   좋아요 2 | URL
엄마랑 많은 이야기를 했으면 어땠을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너무 일찍 하늘나라로 가셔서...

구단씨 2024-09-24 22: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왜 많은 엄마가, 자신의 바람을 버리고 자식 때문에 다시 돌아왔을까요...
저에게도 비슷한 기억이 있어요.
사는 게 힘들어서 엄마가 집을 나갔는데, 부모님 잘 아시는 분이 엄마를 설득해서 집으로 돌아오셨죠.
제가 많이 어릴 때라, 엄마가 아침에 나갔다가 저녁에 돌아오는 정도로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네요.
꼭 그 일 때문은 아니지만, 저는 지금 엄마에게 빚진 마음으로 사는 것 같기도 해요.
그때 엄마의 선택을 버릴 수밖에 없던 이유 중의 하나인 자식으로, 오랫동안 엄마에게 도움이 되지 못한 채로 살아온 가족으로.

이 책 속 단편 세 편 정도 읽었어요. 시간이 없어서 나머지 부분 미뤄두었는데,
작가의 전작을 떠올려 보면 이 작품도 완독해야만 할 듯하네요.

자목련 2024-09-25 11:55   좋아요 1 | URL
내가 모르는 엄마의 모습이 얼마나 많을까 싶어요. 내가 안다고 생각한 엄마는 아주 아주 적겠지요.

나머지도 즐겁게 읽으시길 바라요. 가을 건강하시고요!
 
해방자들
고은지 지음, 장한라 옮김 / 엘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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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안에 살고 있다면 그들은 밖에 살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안에서 밖으로 갔을 뿐 안을 잊지 않았으니 안과 밖에 살고 있다는 것일까. 밖에서 안으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밖에서 사는 게 아닐까. 한국계 미국인 작가 고은지의 장편소설 『해방자들』 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 속 주인공처럼 말 그대로 한국이 싫어서 떠난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쩔 수 없이 찾은 선택지가 그곳이었을지도 모른다.


소설은 1980년 대전의 요한으로 시작한다. 군계엄령과 시위의 시대 요한은 죽음을 당한다. 그가 공산주의자라고 했다. 요한의 딸 인숙은 성호와 결혼한다. 이제 인숙에게는 성호뿐이었다. 그러나 성호는 이민을 결심하고 인숙을 어머니 후란과 함께 남겨두고 혼자 떠난다. 성호가 떠나고 아이를 갖은 걸 알게 된 인숙은 시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인숙과 성호의 이민 정착기나 성공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민자의 고단한 삶을 이어주는 가족애나 동포애 같은 걸 말이다.


그러나 소설은 다른 방향으로 나를 이끌었다. 인숙의 아들 헨리가 태어나고 가족이 미국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면서 이야기는 분명해졌다. 미국 캘리포니아로 공간만 바꿔엇을 뿐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는 것. 성호를 향한 시어머니 후란의 애정,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성호, 그들을 피해 일터로 나간 인숙. 그리고 혼자 자라는 아이 헨리. 인숙은 일터에 헨리를 데리고 다녔다. 그런 헨리가 의지하는 건 인숙이 일터에서 만난 로버트, 그도 한국인이다.


인숙에게 이념의 희생자인 아버지가 있다면 로버트에겐 일제 식민지 시대와 제주 4·3을 겪을 어머니가 있다. 인숙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로버트인 건 당연한지도 모른다. 로버트는 사람들을 모으고 글을 쓰고 통일에 대해 이야기한다. 북에서 온 제니는 로버트를 돕는다. 성호는 그가 못마땅하다. 배경은 미국이지만 한국 현대사를 짚어가며 국가는 무엇인가 묻는 듯하다.


88올림픽과 삼풍 백화점의 붕괴, 북한을 지원하는 남한의 정책, 그리고 세월호 참사까지. 안이 아닌 밖에서 바라보는 시선은 객관적이고 명확하다. 제니와 헨리 사이에 태어난 아들 하루가 어째서 아무도 사람들을 구해주지 않느냐는 질문, 그것이 진실이다. 안에 있기에 날카롭게 파고들지 못하는 부분을 작가가 밖에서 분명하게 묻는다고 할까. 허국의 이야기라고 하지만 우리가 듣지 못한 답을 향한 질문이라는 걸 안다.


그래서 한국에 와서 강연을 하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로버트는 끝내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가 잊어버리고 싶었던, 아니 기억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

“잊어버리려고 애쓴다는 건 기억하기 위해 애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61쪽)


“우리의 이 작은 나라에서도, 또 넓은 세계 속 우리의 입지에도 진전은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한국을 떠났을 때야 비로소 자유롭게 한국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233쪽)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인 소설이지만 한 편으로는 역사 다큐멘터리의 내레이션 같았다.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았다. 가족소설의 형태를 지녔지만 공동체 의식이나 그들을 하나로 연결하고 단단하게 묶어줄 대상은 찾을 수 없었다. 다만 시간이 지나 인숙과 성호가 화해하고 제니와 헨리, 그리고 하루가 한 방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애틋하고 따뜻했다. 아픔과 상처, 뒤늦게 찾아온 작고 소소한 행복이 그들 가족을 떠나지 않기를 바랐다.


제니가 처음 찾아왔을 떄처럼 편안하게 머물렀다. 아이들이 도착하고 얼마 안 되어 나는 성호더러 새 엔진을 단 제니의 승합자를 차고에다 세워두라고 했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처음 10년 동안, 매일 아침 나는 하루를 바닷가로 데리고 가서 제니가 쉴 수 있게 해주었다. 제니가 아래층으로 내려올 때면 부엌 조리대에서 커피를 타주었다. (26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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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 하나는 거짓말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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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렇지 않은 척 거짓말을 한다.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괜찮지 않다고 말하고 싶다. 한 번 더 물어봐 주기를, 정말 괜찮으냐고. 어느 날은 비밀을 말하고 싶다. 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을 쏟아내고 싶다. 어떤 마음은 거짓말이 되고 어떤 말은 침묵이 된다. 김애란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 속 고등학교 2학년인 소리, 지우, 채운의 마음은 어떨까 생각한다. 진실을 털어놓고 싶은 채운,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진 소리, 죽은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는 지우.


세 아이의 곁에는 엄마가 없다. 소리와 지우의 엄마는 돌아가셨고 채운의 엄마는 아빠를 찌르고 감옥에 있다. 채운의 아빠는 죽지 않았고 채운은 전학을 오고 이모집에서 지낸다. 전학을 온 학교에서 채운은 자기소개를 하면서 한 아이를 보고 놀란다. 사고가 있던 그 밤, 그곳에 있던 아이였다. 지우였다. 지우도 채운을 알아봤다. 엄마가 일하던 갈빗집에 부모님과 함께 온 행복해 보였던 아이. 채운의 가정은 지우가 꿈꾸던 모습이었다. 아빠와 이혼한 엄마는 지우를 키우며 힘들게 살았다. 그리고 사고로 죽었다. 하지만 지우는 의심이 된다. 엄마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을까 봐. 지우는 엄마의 애인 선호 아저씨와 살지만 떠날 계획을 세운다. 반려 도마뱀 용식이와 살 공간을 마련하면 떠날 것이다.


채운의 집은 지운이 바라던 모습이 아니었다. 아빠는 자신밖에 모르는 사람이었고 폭군이었다. 사고가 나던 날도 그랬다. 그 사고로 아빠기 죽기를 바랐다. 아빠가 살아나서 진실을 말할까 두려웠다. 채운을 위로하는 건 반려견 뭉치였다. 덩치가 큰 뭉치만이 채운의 가족이었다. 그런데 우연히 뭉치의 발을 잡은 소리가 뭉치와 많이 놀아주라고 말한다. 소리의 말을 들은 얼마 후 뭉치는 죽었고 채운은 소리에게 아빠를 한 번 만나달라고 부탁을 한다. 요양원에 있는 아빠가 정말 좋아지고 있는지 채운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리는 친구들에게 이상한 애란 말을 듣는다. 그림을 그리는 소리는 기이한 경험을 한 후 타인과 손을 잡기를 피한다. 자연히 친구들과 멀어진다. 그러니 지우가 연락을 해서 놀랐다. 당분간 용식이를 맡아달라는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다. 소리가 말하고 싶은 비밀은 손을 잡으면 죽음이 보인다는 것이다. 죽음을 볼 수 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아픈 엄마의 손을 잡고 바라기도 했던 마음이라고 소리는 말하고 싶다.


소설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담임 선생님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이다. 5가지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하는 일, 그중 하나는 반드시 거짓말이어야 한다. 채운, 지우, 소리가 하고 싶었던 진짜 거짓말은 무엇일까. 아니 진짜로 하고 싶었던 말을 무엇일까. 아직 돌봄이 필요하다고, 엄마의 부재를 견딜 수 없다고 말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잘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이를 원했던 건 아닐까. 만화 카페에 자신의 이야기를 단편 만화로 그리는 지우처럼. 공교롭게 채운과 소리는 그 카페에서 만화를 보고 지우라는 걸 알게 된다.


채운, 소리, 지우는 처음에는 모르는 사이였지만 채운과 소리, 소리와 지우, 지우와 채운이 서로를 의식하고 연결된다. 세 아이는 서로에게 거짓을 말하는 동시에 진실을 말한다. 용식이를 맡기고 공사현장에서 일을 하는 지우는 소리에게 그 사실을 말하지 않고 소리는 채운의 아버지의 손을 잡았지만 건강해질 거라고 말한다. 채운은 그날 밤 지우가 목격한 게 무엇인지 묻지 못한다.


때로는 가벼운 농담이나 거짓말을 건네는 사이도 필요하다. 지우는 선호 아저씨가 그랬으면 싶다. 그러면 아저씨에게 거짓말에 담긴 진심을 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세 아이 모두 감당하기 힘든 삶을 살아간다. 채운, 지우, 소리도 어찌할 수 없는 삶이라는 걸 안다. 세 아이는 너무 빨리 삶의 거짓과 진실을 알아버렸다.


그래서 더 안쓰럽고 아프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진다고, 어른이 되면 다른 삶이 펼쳐진다고 거짓말을 할 수 없어서. 저마다 다른 상처를 만나고 오랜 시간 통증에 시달려야 할지도 모른다는 진실을 말해줄 수도 없다. 자기소개처럼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며 삶에 대해 단언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삶이라는 변수투성이를, 멋진 이야기를 쓸 수 있다고 무조건 희망을 건넬 수는 없다. 어쩌면 소설 속 세 아이는 나보다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삶은 이야기와 다를 테지. 언제고 성큼 다가와 우리의 빰을 때릴 준비가 돼 있을 테지. 종이는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기는 일도 허다하겠지. 누군가 집을 떠나 변해서 돌아오는 이야기. 지우는 그런 이야기를 많이 알았다. 하지만 그 결말을 잘 믿지는 않았다. 누군가 빛나는 재능으로 고향을 떠나는 이야기, 재능이 구원이 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에 몰입되고 주인공을 응원하면서도 그게 자신의 이야기로 여기지는 않았다. 지우는 그보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 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232쪽)


그럼에도 김애란은 소설을 통해 삶이라는 거짓투성이 속에도 진실이 반짝이고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건 아닐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라는 게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고 질문을 던질 이가 있다는 걸 말이다. 유연하고 명랑한 그런 게임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될 수 있다고. 그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며 성장하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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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24-09-13 1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애란 좋아하는 사람 많던데 자목련님 이책 그저 그런가 봅니다. 저도 오래 전 한 작품 읽고 별로여서 관심없었는데 이 책은 표지가 끌리더군요. ㅎ

자목련 2024-09-16 11:27   좋아요 2 | URL
이번 소설은 뭔가 부족하고 아쉬운 느낌이 많았어요. 표지 좋아요!
즐거운 추석 보내세요^^

독서괭 2024-09-13 19: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역시 자목련님~ 제가 이런 리뷰를 쓰고 싶었다고요 ㅜㅜ

자목련 2024-09-16 11:29   좋아요 1 | URL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뭐가 빠진 것 같은 소설이라고 할까요.
아무튼 그랬어요.
독서괭 님, 평온한 명절 보내세요^^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
야기사와 사토시 지음, 서혜영 옮김 / 다산책방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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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온다.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이 비 끝에 이별이 닿을까. 그러니까 온전한 여름과의 이별 말이다. 『비 그친 오후의 헌책방』를 읽은 후라 그런지 비가 그치면 개운한 일상이 시작될 것 같다. 제목 때문에 궁금해서 읽은 소설이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은 소설인 줄 몰랐다. 헌책방에서 발견하는 낯선 이의 흔적에 감탄하거나 찾아 헤매던 책을 찾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짐작했다. 일정 부분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소설은 주인공 다카코가 1년 동안 사귄 직장 선배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별이야 할 수 있지. 화가 나는 건 상대가 직장 동료와 내년에 결혼한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나 이게 무슨 말인가. 다카코만 선배를 사랑한 것이고 상대는 아니라는 확인 사살. 결혼을 상대가 있으면 진즉 헤어졌어야지. 화가 난다. 화가 나. 스물다섯의 다카코는 그 일로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만의 세상으로 파고든다. 무엇에서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다카코는 외삼촌의 전화를 받고 외삼촌이 운영하는 진보초 거리의 헌책방에서 지내게 된다. 다카코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결정이었다. 엄마가 있는 본가로 갈 수는 없으니까.


외할아버지가 운영하던 헌책방을 외삼촌이 물려받았다. 다카코가 지낼 서점 2층은 쾨쾨한 책 냄새가 가득한 곳이었다. 헌책방에서의 일상이 처음부터 유쾌했던 건 아니다. 다카코를 바라보는 외삼촌과 단골손님의 관심이 부담스러웠다. 그러다 재밌는 책이 없을까 찾다가 헌책방 서가에서 한 권의 책을 발견하다. 작가의 이름은 익숙하지만 내용은 모르는 책이었는데 한순간 빠져들고 말았다.


책을 통해 이런 멋진 체험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다. 왠지 지금까지 인생을 손해 보며 산 것 같은 기분조차 들었다. 더 이상 게으르게 자고 또 자는 짓은 하지 않았다. 더 이상 그러고 싶지 않았다. 잠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대신 외삼촌과 번갈아 가며 가게를 보면서 내 방에서든 카페에서든 책을 읽었다.


헌책 속에는 내가 생각지도 못한 많은 역사가 쌓여 있었다. 이건 결코 책의 내용에 관해서만 하는 얘기가 아니다. 한 권 한 권마다 오랜 세월을 거쳐 온 그 흔적들을 나는 여럿 발견했다. (64쪽)


다카노의 경험은 내가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 마음과 무척 비슷해 반가웠다. 침잠하던 시절 나를 꺼내준 건 가운데 하나가 책이었으니까. 다카노는 헌책방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진보초 거리를 살펴본다. 카페에 가서 커피도 마시고 그곳 직원과도 친하게 지내며 진보초 거리 헌책방에 조금씩 스며든다. 저마다 특색을 지닌 헌책방의 거리를 상상한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코를 찌르는 낡은 책 냄새와 말을 거는 책을 찾아 이리저리 서가를 맴도는 모습. 책을 좋아하는 이라면 반할 책이다.


그렇다고 헌책방에서 낭만적인 로맨스나 특별한 에피소드가 등장하는 건 아니다. 어쩌면 그런 점이 이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인지도 모른다. 수많은 책에 둘러싸여 그 책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의 상처와 고민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과 마주한다. 외삼촌과 다카코가 나누는 소소한 대화도 좋다. 실연을 당한 조카와 함께 선배에게 찾아가 사과하라고 말하는 당당한 모습은 통쾌하고 후련하다. 상대의 진정한 사과를 받았다 할 수 없지만 자신의 감정을 후련하게 말한 다카코는 그것으로 충분하다. 젊은 시절 여행을 통해 자신을 찾고자 했던 삼촌의 마음, 그 마음이 지금 헌책방에 있다는 것. 그리고 집을 나간 외숙모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그래, 그건 마음의 문제야. 어디에 있든 누구와 있든, 자신의 마음에 진솔할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내가 있을 장소야. (88쪽)


다카코가 헌책방을 떠나 자신의 자리로 찾아가고 새로운 관계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않게 되는 일. 뻔하지만 뻔해서 나쁘지 않다. 나를 위로하는 나만의 공간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다카코에게 진보초 거리 헌책방이 그렇듯 저마다 그런 공간이 하나씩 있었으면 한다. 괴로움과 스트레스를 날려버릴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좋은 이와 함께 한다는 상상만으로 즐겁다.


서정적인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이다. 어쩌면 이 책을 읽는 일이 휴식이며 나만의 공간으로 초대하는 일은 아닐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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