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 한정원의 8월 시의적절 8
한정원 지음 / 난다 / 202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젯밤에 여름을 만났다. 겨울밤에 만나는 여름이다. 여름에 읽으려고 사두었던 책을 잠들기 전 침대에 앉아 펼쳤다. 그냥 훑어봐야지 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끝까지 다 읽었다. 이렇게 금방 읽을 책을 나는 미루고 미루었던 것일까. 이상한 건 여름에 만난 여름이 아니라 오히려 좋았다. 온몸에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았던 습한 느낌을 기억해내려 애쓰는 시간이 괜찮았다. 지나고 보면 다 그런 것이구나 싶었다. 한정원의 글로 만나는 8월은 여유롭기까지 했다. 왠지 그랬다. 시와 에세이와 사진으로 하루하루 기록한 8월은 나쁘지 않았다. 지나친 열기, 과도한 비, 알 수 없는 분노와 걱정이 스르르 녹아드는 것 같았다. 어느 해의 8월일까 짐작하다 말았다. 어느 해의 8월이 뭐가 중요한가. 8월이었고 8월이었겠지.


어젯밤에 술술 읽어 내려갈 때는 아무것도 쓸 게 없을 것 같았던 8월의 풍경은 지금 이 순간 달라졌다. 나를 수다쟁이로 만든다. 나는 뭔가 마구 쓰고 싶다. 책에 대해서가 아니라 나의 8월에 대해서다. 어쩌면 이 책이 바라는 건 이런 마음일지도 모르다고 착각하면서 말이다. 유독 어느 해의 8월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그 여름은 아팠고 두려웠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8월이나 건너뛸 수 없는 시간이다. 그래, 그런 8월이 있었지. 그리고 다른 해의 8월은 거대한 슬픔 덩어리다. 병원에서 가쁜 숨을 내쉬던 큰 언니를 만나고 큰 언니의 집에서 에어컨을 켜고 잠들었던 밤. 그게 마지막이라는 걸 몰랐던 날들. 선명하게 각인된 여름이다. 여름 위에 다음 여름이 더해지고 쌓이고 덧칠해지니 아프고 두렵고 슬픈 여름은 흐려지고 연해진다. 그래, 그런 여름이 있었지.


첫눈 같은 것은 여름에 없지

첫 땀 첫 수국 첫 매미 첫 소낙비

환호도 그리운 약속도 없고

오리나 하트나 사람으로 변신할 수 없지

적설 같은 것도 여름에 없지

흐르고 흐르고

아무것도 쌓이지 않지

모래도 옥상도 네 손도 따뜻하지

환해서 비밀도 슬픔도 잘 보이지

그림자가 쉬이 짓무르고

나무의 노래가 축축해지지

씨를 자주 뱉지

언젠가 목숨이 될 것을 겁내지 않고

휘파람을 불지 입술을 오므리지

사랑하기 좋은 모양이지 (「여름의 일」, 전문)


시를 따라 읽으며 나만의 여름의 일을 생각한다. 첫 수영복, 첫 휴가가 있던 여름, 시원한 생맥주를 마시던 여름, 우산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뛰던 여름. 그러자 우리의 여름이 따라붙는다. 더위 따위는 상관없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는 여름, 쏟아지는 별들을 머리 위에 두고 밤새 마주했던 여름, 오늘만 존재할 것 같았던 그런 여름. 지난여름이란 이름으로 묶음이 돼버린 여름.


겨울을 살면서 다가올 여름을 미리 걱정한다. 지난여름의 혹독한 더위를 기억하는 몸과 마음은 여름을 미워할 준비를 마쳤다.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 란 제목처럼 여름을 향한 애정이 식어간다. 하지만 여름을 조금 사랑하기란 어려운 일인지도 모른다. 한정원은 여름을 조금 사랑한다며 본심을 숨긴다. 뻔히 보이는 그 진심을 숨길 수 없다는 걸 잘 알면서. 그러니 여름은 절대 조금 사랑할 수 없는 계절이다. 맘껏 충분히 사랑한다는 귀여운 고백이다.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나는 여름의 밤을 조금 사랑한다. 흙과 풀과 낮이 끈기가 뒤섞인 냄새를, 짝을 찾는 맹꽁이의 전심전력의 소리를, 한바탕 꿈꾸기에 알맞은 짧음을.

나는 여름의 물기 많은 과일을, 헐거운 옷 속으로 들어오는 낮은 바람을, 오수에 빠진 사람과 동물의 방심한 얼굴을 조금 사랑한다. (「조금 사랑하기」, 일부)


여름은 여름을 사랑한다는 말은 선뜻 꺼내놓을 수 없게 만들기도 한다. 무자비한 여름의 비는 누군가를 다치게 하고 누군가를 혼자 남게 만들고 누군가를 아프게 한다. 점점 계절의 이름을 잃어버리는 계절이 되었다. 가을을 품은 8월이건만 가을을 밀어내는 8월이다.


한정원의 아삭하고 풋풋한 문장으로 8월을 담았다. 선명한 오후에 따라다니는 그림자를 밀치고 그늘 속으로 미끄러지는 8월. 땀을 흘리며 뛰어놀던 여름의 자리에 빠짐없이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여름이 들어온다. 여름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계절이 아니다. 여름을 사랑하지 않는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름이 없는 건 싫다. 여름의 시작은 수국이며, 여름의 맛은 자두니까. 여름이라고 말하면 떠오르는 그 냄새가 잊히는 건 슬픈 일이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이가 들면서 어렸을 때 먹지 않았던 음식을 맛있게 먹는다. 국이나 찌개에 들어 간 작은 파도 골라내던 내가 파의 고유한 단맛을 알아버렸다. 요리를 만들 때 하나라도 빠지면 아쉬운 양념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다. 자극적인 맛이 아닌 재료 본연의 맛이 얼마나 맛있는지 말이다. 처음 만나는 세라 온 주잇의 소설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그런 소설이다. 그러나 고수가 아니면 소설 도입 부분에서 바로 그 맛을 발견할 수 없다. 고백하자면 얇은 소설을 단숨에 읽지 못했다.


부여된 이름이 없는 화자(글을 쓰는 직업을 가진 이로 짐작)는 바닷가 마을 ‘더닛 랜딩’에서 여름을 보낸 이야기라 할 수 있는 『뾰족한 전나무의 땅』은 특별한 사건이 없이 흘러간다. 어찌 보면 똑같은 하루의 반복이며 비슷한 일상의 연속이다. 비슷하다고 해서 어제만 살지 않는 것처럼 삶은 이어진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삶도 마찬가지다. 조용하고 고요하게 지내고 싶었던 화자는 하숙집 주인 ‘토드 부인’의 따뜻한 오지랖 때문에 그럴 수 없게 된다. 야생 약초 애호가인 토드 부인은 몸이 아파 찾아온 이웃에서 복용법을 알려준다. 토드 부인을 찾는 방문객은 끊이지 않고 화자는 어느 순간 부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동업자 노릇을 하게 된다. 토드 부인은 화자를 “우리 동생”이라 부르게 된다.


토드 부인과 친밀해진 화자는 이웃의 이야기를 듣고 더닛 랜딩을 알아간다. 더닛 랜딩 사람들은 서로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어떤 아픔을 지녔는지, 몇 년을 어부로 살았는지, 누구와 결혼하고 혼자 남았는지, 어떻게 긴 시간을 견뎠는지. 더닛 랜딩은 그런 마을이었다.


토드 부인이 우리 이웃의 역사를 전부 이야기해주었다. 같이 어린 시절을 보냈고, 부인의 말을 빌리자면 “저마다 고생을 잔뜩 하고 그 고생의 명암을 전부 깨우칠 때까지” 함께했다. (23쪽)


소설은 화자를 통해 만난 더닛 랜딩 사람들의 삶을 들려준다. 토드 부인의 엄마와 남동생이 사는 섬 ‘그린 아일랜드’ 방문한다. 직접 배를 몰고 도착한 그곳에서 토드 부인의 엄마 ‘블래킷 부인’과 ‘윌리엄’을 만난다. 건강하고 다정한 블래킷 부인과 함께 식사를 마치고 토드 부인에게 특별한 장소로 간다. 그곳은 토드 부인이 남편과 연애할 대 즐겨 찾던 곳이었다. 그리고 남편의 이야기를 듣는다. 언제나 유쾌한 토드 부인에게도 슬픔이 있었고 외로움이 있었다.


어느새 독자인 나는 화자와 함께 그의 여정에 동반하며 귀를 기울인다. 토드 부인의 오랜 친구인 포스딕 부인의 방문과 그를 통해 듣게 된 조애나의 안타까운 삶.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버림받고 혼자 ‘셀히프 아일랜드’에서 혼자 살아간다. 그녀를 걱정하며 찾아온 이들에게 아무도 찾아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단절된 생을 살다 죽었다. 포스딕 부인이 떠나고 화자는 이웃 선장에게 부탁해 배를 타고 그곳을 찾는다. 조애나의 무덤으로 길을 찾아가며 이제는 잊힌 조애나의 삶을 생각한다.


우리 모두의 생에는 외따로이 고립된 장소가 있다고, 끝없는 후회와 비밀스러운 행복에 바쳐진 장소가 있다고, 우리 모두가 한 시간이나 하루쯤은 동행 없는 은둔자이며 외톨이라고 나는 스스로에게 이야기했다. 그들이 역사의 어느 시대에 속했든 우리는 이 똑같은 감옥의 수감자들을 이해하고 만다고도. (126~127쪽)


현재를 사는 이들은 조애나의 선택을 이해하기 힘들다. 그깟 사랑이 뭐라고, 자신을 버린 남자 때문에 고립된 채 살아간 그녀를 비웃는 이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그녀를 비난할 자격은 없다. 그것이 그녀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뿐이다.


화자는 더 이상 방문자가 아닌 더닛 랜딩의 일원으로 바닷가 마을의 축제에도 참여한다. ‘보든가 모임’으로 오랫동안 만나지 못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음식을 먹고 즐긴다. 미리 도착한 ‘블래킷 부인’과 함께 토드 부인과 화자는 마차를 타고 모임 장소로 향한다. 흙먼지 날리며 달리는 마차의 행렬 그 안에는 그리운 이를 만난 기대로 부푼 사람들이 있다. 곳곳에서 마차를 타고 사람들이 모여 만찬을 즐기고 추억을 나눈다. 언제나 헤어짐은 아쉬운 법. 모임이 끝날 때면 다음을 기약한다.


“다음 여름에”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아직 여름이 우리 것이고 나뭇잎이 초록임에도. (167쪽)


화자도 더닛 랜딩을 떠날 시간이 왔다. 부두에 나가서 배웅하지 않더라고 이해해달라는 말을 남기고 토드 부인은 나간다. 작별 인사를 전하려는 화자에게 고개를 젓는 토드 부인의 마음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헤어짐의 서운함과 애석함이 가득할 것이다.


다시 들어가 아담한 집을 둘러보자 갑자기 집 안이 적적하게 느껴졌고, 내가 쓰던 방이 처음 도착했던 날처럼 텅 비어 보였다. 나와 내 소지품이 전부 죽어 없어진 듯했다. 나는 토드 부인이 귀가했을 때 손님이 사라진 집이 어떻게 보일지 깨달았다. 그래, 때때로 사람들은 눈앞에서 사라진다. 인생의 한 막이 결말에 다다르면 그저 멀거니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4~195쪽)


『뾰족한 전나무의 땅』는 글 쓰는 화자와 그녀가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눈부신 초록과 바닷가 풍경이 따라오는 소설이다. 화자가 보낸 여름의 시간은 잔잔하고 평온하다. 그 잔잔함과 평온함을 만든 건 마을 전체를 살피는 토드 부인과 든든한 어른으로 건재한 블래킷 부인과 각자의 자리에서 저마다 살아가는 이들 덕분이다. 뱃사람으로 살아온 이들, 뱃사람인 남편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사람들. 그들은 모두 청년이 아닌 노인이며 대부분 여성이다. 소박하고 다정한 이들이 살아가는 더닛 랜딩을 그려본다.


쓸쓸한 것 같지만 전혀 쓸쓸하지 않은 바닷가 마을. 화자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 가운데 유독 선명한 건 “우리 동생”이라는 토드 부인의 목소리라는 건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잔잔한 그리움이 쌓인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3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25-01-23 15: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니 참 좋은 책이죠. 윌라 캐더도 생각나고 저도 비슷한 감상 느꼈어요.

자목련 2025-01-24 11:47   좋아요 0 | URL
이미 만나셨군요. 읽을수록 좋아지는 그런 책이었어요.
블랑카 님, 즐거운 설 명절 보내세요^^

전야제 2025-01-23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잔잔하면서도 묵직한 그리움 때문에 어쩐지 가슴 한 켠이 저려옵니다.
아름다운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이 책도 리스트에 추가합니다^^

자목련 2025-01-24 11:50   좋아요 1 | URL
마음 한 구석에 그리움을 간직한 채 살아가는 게 생인가 싶기도 해요.
시대와 장소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하고요.
전야제 님도 기쁘게 읽으시면 좋겠습니다.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미로 속 아이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 여자가 요트에서 습격당한 채 발견된다. 숨을 거둔 상태는 아니지만 희망도 없다. 범인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사건 현장에서 지문이 발견되었지만 해결 실마리는 아니다. 원한에 의한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도대체 누가 이렇게 잔혹한 짓을 벌인 것일까? 언론은 모두 이 사건에 주목하고 연일 기사를 쏟아낸다. 사건의 피해자는 이탈리아의 유명 기업가인 아버지의 엄청난 유산을 상속받은 상속녀다. 종군기자로 활동했고 출판사를 설립했다. 그뿐인가.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 남편과 두 아이의 엄마로 행복한 가정생활을 이어가던 중이다.


상속녀는 병원으로 옮겼으나 끝내 사망한다. 맨 처음 용의자로 의심받을 이는 누구인가? 맞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사람. 바로 남편이다. 하지만 알리바이가 명확하니 제외된다. 경찰청 강력반은 범인을 잡기 위해 다각도로 애를 쓰지만 1년이 지나도록 제자리다. 놀랍게도 1년이 지난 후 익명의 제보자로부터 살해도구가 있는 장소를 안다는 제보를 받는다. 그곳은 피해자의 저택에 딸린 지하 보트 창고였다. 지문을 감식한 결과 남편이 범인으로 지목된다. 사건 당시 없었던 지문이 왜 이제야? 소설을 읽을 때는 들지 않았던 의문이 이제야 생긴다. 누군가 남편에게 누명을 씌우는 게 아닐까. 아니면 이 모든 게 남편의 치밀한 계획일까. 아내가 죽으면 그 많은 유산이 모두 자신의 몫이니까.


이제 사건을 지휘하고 풀어갈 경찰이 등장할 타이밍이다. 용의자 남편을 상대할 경찰 팀장은 중년의 여성이다. 남편의 외도로 이혼한 상태지만 전 남편의 SNS를 훔쳐본다. 아이는 필요 없다던 남편이 원 아이를 낳고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그를 죽이고 싶을 정도다. 마음을 다잡고 남편을 취조한다. 팀장은 자신의 일과 가정에 충실한 남편의 진술이 거짓이 없음을 알고 당황한다. 하지만 증거를 보면 범인은 남편이어야 한다. 거기다 남편에게 피해자 말고 연인이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남편은 모른다는 주장으로 일관한다. 남편의 연인이란 여자를 찾았지만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여자는 누구일까?


작가는 네 명의 등장인물을 화자로 내세워 하나의 사건을 다양하게 풀어낸다. 네 명의 화자 중 하나인 상속녀가 요트에서 피습을 당하기 전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 이야기가 소설의 핵심이다. 그녀는 어린 시절 자동차 사고로 엄마를 잃고 오랜 시간 병원에서 재활 치료를 받았고 그 이후에도 꾸준히 진료를 받았다. 사고가 남긴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갑자기 뇌종양 4기 판정을 받는다. 어떤 치료도 불가한 상태로 남은 시간은 겨우 2달 정도다. 그녀는 이 사실을 가족에게 비밀로 하고 남은 시간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보내기로 결심한다.


사실 이 소설은 무척 재미있다. 사건의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물론이고 상속녀를 중심으로 등장인물 각각의 거침없는 욕망을 흥미롭게 펼쳐진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이나 짜임새 있는 구성은 나쁘지 않다. 끝까지 다 읽어야만 제목인 『미로 속 아이』 가 의미하는 바를 알아차리게 되니까. 나 같은 독자는 그렇다. 그런 이유로 기욤 뮈소의 데뷔 20주년 기념작으로 대대적인 홍보에 비하면 아쉽다. 기욤 뮈소의 열열한 팬이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소설을 다 읽고 나면 인생은 뭘까 생각하게 된다. 영원을 약속했지만 배신과 증오만 남는 사랑. 무엇 때문에 살고 무엇 때문에 괴로운가. 인생은 알 수 없다는 허탈감에 사로잡힌다. 그러니 과거에 미련을 두지 말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의 불안을 생각하는 지금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에 다짐을 더한다.


비극적인 사건들은 지하나 바닷물 속을 흐르는 자연 발생 전류처럼 우리의 실존에 끊임없이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사는 곳에는 항상 위험한 일들이 도사리고 있어 아무리 조심해도 모든 사고를 예방할 수는 없다. 그저 최악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기만을 기도하고 바라는 수밖에 없다. 물 위에 떠다니는 한 줌의 지푸라기처럼. (351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01-22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람은 지나간 시간을 아쉬워하고 다가올 날을 걱정할 때가 많겠습니다 그런 것보다 지금을 잘 살면 좋을 텐데... 지금도 바로 지나가고 지난 시간이 되겠습니다 배신 당하지 않으면 좋을 텐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사는 게 뭔가 할 듯하네요


희선

자목련 2025-01-22 11:11   좋아요 0 | URL
지금을 잘 살아야지 싶은데, 어느 날은 과거에 매달려 속상하고 그런 것 같아요.
미세먼지 가득한 날들, 건강하게 지내세요^^

새파랑 2025-01-22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욤 뮈소 신작이군요~!! 요새 기욤 뮈소의 작품을 안읽었는데 이 책은 재미있을거 같습니다~!!!

자목련 2025-01-23 11:02   좋아요 1 | URL
기욤 뮈소의 신작을 기다리셨다면 흡족할 소설이 아닐까 싶어요^^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53
안보윤 지음 / 현대문학 / 2024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악(惡)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버티고 있어서 피할 수 없다. 선의로 위장해 바로 알아차리지 못할 뿐이다. 악으로부터 도망쳐 멀리 달아났다고 안도하면 그곳엔 새로운 악이 고개를 쳐든다. 그래서 선의의 싹은 고개조차 들지 못한다. 안보윤의 소설 『세상 모든 곳의 전수미』 속 전수미는 악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화자는 그런 악으로 인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고 억눌린 채 살아가는 동생 수영이다. 유난스럽거나 까칠한 정도의 행동으로 부모의 관심을 받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사건사고의 중심이자 문제아 그 자체다. 전수미가 등장하는 곳에는 항상 사건이 발생한다. 때문에 부모는 수영을 살필 여력이 없다. 수영은 모든 걸 견디고 참을 수밖에 없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단발머리에 교복을 입은 비슷한 생김새로 수영을 수미로 착각해 난데없이 머리통을 때리는 이가 늘었고 수미의 난폭함과 기괴함은 폭발한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부모는 사과를 합의를 하고 상담을 받는다. 자연과의 교감이 중요하다는 조언을 받아 부모는 캠핑을 떠난다. 캠핑장에서 보내는 시간은 수영에게 좋았다. 숲길을 따라 걸으며 나무를 관찰하는 일이 수영에겐 행복했다. 수미가 텐트에 불을 지르면서 모든 게 사라졌지만 말이다.


이처럼 교묘하고 악랄한 수미와 가족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독립뿐이다. 수영은 가장 힘들다는 물류센터에서 일하며 버텼다. 전수미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아가는 일, 그게 전부였다. 주변에 혐오시설이 들어오든 상관없었다. 혼자만의 공간이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이제 수영에게 악은 사라진 것일까. 처음 소설을 읽으면서 기대하고 바랐던 건 수영이 수미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것이었다. 수미가 수영에서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하는 일 말이다. 그러나 절대적인 악이 그럴 리 없다.


수영의 주변에는 언제나 악이 있었다. 그러니까 새로운 전수미의 등장이라고 할까. 수영은 집 앞에 들어선 동물병원을 겸한 노견돌봄센터에 취직한다. 아프고 병든 노견들을 돌보는 일을 한다. 가장 사랑하는 존재지만 바빠서 곁에서 돌보지 못하는 보호자를 대신해 돌본다. 침을 닦고 사료를 먹이고 기저귀를 채우고 산책을 시키고 사진을 찍어 보호자에게 전송한다. 금요일마다 개가 죽는다는 걸 알게 된다. 자연적인 죽음이 아니라 인위적인 죽음, 구 원장의 선택에 달렸다는 걸 말이다. 편안하고 간단한 죽음, 죄의식은 사라진 죽음이었다. 보호자가 더 이상 찾지 않고 비용을 지불하지 않는 개들이 죽은 자리에게는 새로운 개가 입소한다. 언제 죽어도 아무렇지 않은 병든 노견이니 그래도 괜찮은가.


수영은 이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고 싶다. 금요일에 센터에서 보내는 문자나 연락은 받지 말라고. 하지만 CCTV의 감시 아래 불가능하다. 그러다 수영은 노견 하나의 배에서 멍울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 사실을 구원장에게 알리지 않는다. 치료 시기를 놓쳐 노견은 죽고 CCTV로 모든 걸 지켜본 구 원장은 센터의 운영방식을 함구하게 만든다. 구 원장은 전수미와는 다른 악이었다. 그가 직원을 채용하며 친절하게 말했던 절박함은 잘 짜인 악의 시작이었다. 동물을 사랑하는 호인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함께하는 이미지 뒤로 차곡차곡 부를 쌓는다. 설령 신고가 들어와도 폐업을 하고 다른 곳에서 다시 병원을 열고 센터를 개소하면 그뿐이다.


나는 전수미에게서만 벗어나면 모든 게 괜찮아질 줄 알았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전수미가 있었다. 나는 세상 모든 것의 뒷면이었다. 온 세상이 전수미였다. (117쪽)


이제 소설은 점점 복잡해진다. 요양병원에서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는 전수미는 노인의 죽음을 방치했다. 구 원장이 그랬던 것처럼 이 역시 ‘편안한고 안전한 죽음’으로 주장할 수 있다. 어쩌면 영악한 전수미답게 치밀하게 계획했을지도 모른다. 수영과의 통화 내용을 알리바이로 주장한다. 전수미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과거 캠핑장에서 수미는 자신이 텐트에 불을 질렀던 일의 이면에 숨겨진 비밀을 언급한다. 자작나무 숲에서 벌어졌던 일을. 그 대가로 수영이 자신의 편을 들어줘야 한다고 압박한다.


전수미가 노인의 죽음을 방치한 것, 수영이 돌봄센터에서 아픈 개를 죽게 만든 것. 그것은 같은 행위가 아닌가. 그렇다면 수영도 수미와 다르지 않다는 게 아닐까. 아니 그렇지 않다. 수영은 결코 수미처럼 살지 않을 것이며 과거 수미의 그늘에서 달력의 뒷면에 인쇄된 그림자처럼 살았던 시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수영은 보았다. 아픈 노견을 사랑하는 견주를, 구 원장의 의도대로 죽은 개를 애도하는 동료 소란의 진심을 말이다. 그래서 수영은 결심하고 행동한다.


비밀을 삼킨 채로는 자작나무처럼 위로 뻗어 나갈 수 없다. 비밀은 너무 크고 무거워 나를 땅속으로 가라앉힌 뒤 도무지 도망칠 수 없게 뿌리로 옭아맬 테니까. 그러니 나는 모든 비밀을 토해낼 것이다. 더는 세계의 뒷면에 나를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나는 전수미가 아니니까. (168쪽)


소란이 구 원장과 자신이 다르다는 걸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던 것처럼 수영도 수미와 다른 인간이라는 걸 자신에게 알려주고 싶었고 그렇게 했다. 이 부분에서 소설은 내부고발자에 대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것은 과연 쉬운 일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절대 그렇지 않다는걸. 자신의 내면에 존재하는 악의 기운을 외면하고 물리칠 수 있는 용기는 내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말이다. 그리하여 작가는 돌아보게 만든다. 잠깐만 방심해도 누구나 ‘세계 모든 곳의 전수미’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전수미가 아닌 전수영으로 살아가려 애쓰고 노력하는 이들을 기억하고 응원해야 한다고. ‘세계 모든 곳의 전수영’을 말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희선 2025-01-21 0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구나 전수미가 될 수 있겠습니다 조금만 마음을 다르게 먹으면... 하지만 그런 사람보다 전수영 같은 사람이 더 많겠지요 그러기를 바랍니다 전수미는 왜 그렇게 된 걸지 하는 의문이 남기도 합니다 본래 그렇게 태어나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없겠습니다


희선

2025-01-21 09: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생활체육과 시 일상시화 5
김소연 지음 / 아침달 / 202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좋은 책엔 좋은 글로 보답하고 싶다. 불가능하겠지만. 그러니까 이 말은 김소연 시인의 『생활체육과 시』가 좋은 책이라는 말이다. 얇고 한 손에 쏙 들어오는 책. 그 안에서 펼쳐지는 글은 쉽고 정겹다. 그러나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지 않으며 간결하고 힘 있다. 모두가 바랐을(어쩌면 일부는 바라지 않았을) 어제의 일과 앞으로 기대하는 일들을 생각하며 이런 글을 다시 읽는다. 우리가 배우고 공부했던 것들, 그것을 말하고 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혐오의 말들에 대하여 글로 써보기로 했지만,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이런 주제로 집필된 책들이 어느덧 내 방 책꽂이에 빽빽하다. 읽고, 밑줄을 긋고, 이해하고, 공부해온 문장들. 그러나 실재하는 사건들, 참사들, 재난들 앞에서 나는 자주 재확인한다. 공부가 다 무슨 소용이람. 피부에 새겨진 것들이 이토록 없을 수 있다니. 앎은 간단히 휘발되고, 무지했던 신체로 무력하게 리셋된다. (32쪽)


연합은 힘을 키운다. 그 힘을 어떤 연합은 권력을 얻는 데에 쓴다. 패권이 목표다. 폭력의 말은 그에 대한 기표이다. (48쪽)


곳곳에서 연합하는 이들, 유튜브를 즐기지 않기에 어제 뉴스에 나온 유튜버의 말에 나는 심히 놀랐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이들이 많다는 걸 몰랐다. 더 알아야 할까 하다 검색하는 일은 그만두었다. 정치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그래서 더 정치적인 사람이 되고 있다고 느끼는 날들이다. 『생활체육과 시』이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기 해야 하는데 정치라니. 그러다 문득 우리에겐 생활정치가 필요한 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무튼 이 책은 좋다. 시도 좋고 김소연의 산문도 좋다. 작가는 이런 유행의 글(시인의 글에 의하면 시 청탁에, 산물을 사은품처럼)에서 산문을 군만두로 표현했는데 덕분에 나의 책 읽기는 풍요롭고 만족스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를 읽는 독자가 많이 없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다. 나부터도 그런가 싶은 마음이 들기도. 그래서 이런 유행이 끝나기를 바라는 시인의 바람에 한편으로는 동의한다.





책에 대해 많이 말해야 할 것 같은 책이 있고 일부러 책에 대해 말을 아껴야 할 것 같은 책이 있는데 이 책은 후자의 속한다. 내 기준으로는 그렇다. 말을 아낀다는 건 그만큼 비밀스럽거나 나만 알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이기도 한데 좋은 책일수록 그렇다. 탁구 경기를 하고 테니스를 치는 김소연 시인을 상상한다. 시인들이 모여 응원하는 모습도 함께. 건전한 생활체육은 얼마나 좋은가. 이 책의 시작인 시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공을 주고받는 사람, 소통하는 사람, 더 잘 해보자고 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공간을 가득 채운 생기 넘치는 공기.


캐치볼을 하러 가자

글러브를 하나씩 끼고 마주 보며 멀리 서 있자

공을 던지자

공을 받자

또 공을 던지고 또 공을 받자

잘 던지고 잘 받고 조금 더 잘 던지고

조금 더 잘 받자

그만하고 싶어도 조금 더 해보자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일부)


그러면서 무언가를 견디고 아직 말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쏟아낼 수 있는 용기를 보여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다. 그래서 시를 몰라도 반복해서 읽는다. 이런 부분을 말이다.


말해줄래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줄넘기를 이렇게 잘하게 된 이유를

신발장에서 줄넘기를 꺼내어 손에 들고 매일매일 옥상으로 올라간 이유를

팔자더블스윙을 연마한 지난주와

옆 떨쳐 모아 뛰기를 연마한 어제에

우리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줄래

(중략)

우는 입을 비로소 보이고

낯선 사람들과 마주 앉았다

안녕하세요 잘 주무셨어요

인사를 건네고 오늘의 할 일을 의논하는

한가로운 여행지의 조식 시간처럼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이야기」, 일부)

시은 홀연한 것이라고 말하는 시인에게 던져진 질문이 무엇일지 알지 못해도 나는 끝내 만질 수 없는 시인의 감각과 시선을 흠모한다. 1991년에 초판이 발행되고 지금은 구하지 싶지 않은 김소연 시인 말하는 ‘나만의 시집’ 이 궁금하다. 그리하여 나는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가까운 이에게 선물할 목록에 포함시킨다.

책을 읽는 일도 여느 경험과 마찬가지로 실패의 연속 경험을 통과하게 된다. 그래야 안목이 생긴다. 어떤 허위를 알아보는 눈이 뜨인다. “남들이 다 좋다고 하는데 나는 어째서 이것이 별로인가?”라는 질문이 그 시절의 나에게는 나의 정체성을 파악하기에 유용했다. ‘별로’라는 부정적 반응을 보이는 내 자신을 향하여 세부적인 질문들이 생겨났다. 싫어할 수밖에 없는 가치 기준이 필요했다.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채는 기준들이 태어났다. (103쪽)


이렇게 좋은 책을 만나 기쁘다. 더 많이 읽어서 나만의 안목을 키우고 싶은 소망을 품는다. 좋은 글은 좋을 글을 쓰고 싶게 만든다. 설령 좋은 글이 아니더라도 뭔가 더 쓰고 싶은 동기가 된다. 『마음사전』을 만났을 때의 마음이 떠오른다. 그 책과 더불어 곁에 두고 자주 열어보게 될 책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레삭매냐 2025-01-21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을 만나, 안목을 키우는 것
이야말로 우리 독서인들이 책을
읽는 이유가 아닐런지요. 건승.

자목련 2025-01-21 09:48   좋아요 1 | URL
네, 더 많은 책을, 더 다양한 책을 읽어야 하는데 그건 또 쉽지 않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