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호수 아르테 한국 소설선 작은책 시리즈
정용준 지음 / arte(아르테)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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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이 우연하게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반대로 작정하고 만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우선은 만나야 할 이유를 생각해야 한다. 무엇 때문에 굳이 헤어진 연인을 만나고 싶은지 말이다. 주고받아야 할 무언가가 있을 때 가능할까. 아니, 그것도 얼굴을 마주하는 일은 유쾌하지 않다. 산뜻하고 좋은 이별은 없다. 그러니 아름다운 이별은 더더욱 없다. 버리고 싶은 감정을 정리하기 위한 만남은 가능할까. 많은 시간이 흐른 뒤 말라비틀어진 감정의 실체를 마주할 수 있으지도 모른다. 정용준의 짧은 소설 『세계의 호수』속 무주와 윤기처럼 7년이란 시간이라면 가능할까.

 

소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헤어진 연인이 7년 만에 만나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는 이야기다. 아니다, 나의 마음도 모르는데 상대의 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다. 소설처럼 둘 사이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 아닌 먼 타국에서의 만남이라면 그런 감정에 연연하지 않을까.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만드는 윤기는 빈에 왔다. 빈의 대학 한국학과에서 자신의 시나리오를 번역해 연극을 하는 행사에 초정을 받은 것이다. 그곳은 7년 전 떠난 무주가 사는 스위스의 장크트갈렌과 가까운 곳이었다. 빈에 왔으니까 무주가 산다는 곳이 생각났고 그래서 메일을 보냈다. 연락하지 말라는 무주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윤기는 무주가 자신을 떠났다고 확신했다. 권태기 정도로 여겼던 연애 4년, 이별은 예정된 게 아니라고 믿었다. 그러니 무주에게 묻고 싶었다. 왜 나를 떠났냐고, 우리가 헤어진 이유가 무엇이냐고. 만날 사람이 있다며 떠난 스위스에서 그 사람과 결혼해 딸 하나를 낳고 살고 있는 무주는 7년 전의 그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았다. 어색하면서도 반가운 느낌, 그 묘한 감정이 어떤 형태의 것일지 설명할 수 없지만 조금 알 것 같다. 아직 삭제하지 못하고 휴대전화에 남겨진 전화번호의 주인공을 만나는 상상을 하니 그랬다.

 

무주는 장크트갈렌의 삶에 잘 적응하는 것처럼 보였다. 단조로우면서도 평온한 일상을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윤기가 뭔가 더 깊게 알려고 하면 틈을 주지 않았다. 단단한 알맹이는 보여주지 않으려 계속해서 껍질만 벗기고 있다고 할까. 그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무주와 윤기는 서로에서 속했던 시간에 대해 추억하는 동시에 그것이 과거일 뿐이라는 걸 인정했다. 과거를 살아가는 건 윤기뿐이었다. 무주는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남편을 선택한 결정을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무주는 헤아리기 어려운 마음을 갖고 있다. 끝이 보이지 않고 속이 비치지 않는 바다와 같다. 무주는 마음을 말하지 않고 묘사도 하지 않았다. 간혹 무슨 말을 하더라도 눈동자와 표정에서는 어차피 전해지지 않을 거라는 어두운 전망이 보였다. 말해보라고, 설명해보라고 채근하면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그저 나를 안아줬다. 걱정 마, 괜찮아, 이런 말만 했다. (101~102쪽)

 

한 사람의 마음을 안다는 건 과연 가능한 일일까. 그렇게 생각하니 이 소설은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온몸을 다해 마음을 전해도 상대에게 닿지 못한다면 얼마나 절망스러울까. 7년 전 무주가 윤기에게 받은 상처가 그러했지만 윤기는 정작 알지 못했다. 상대와 나 사이의 감정이 완벽하게 전달될 수 있는 건 얼마나 어려운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빈에서 번역을 도와주던 민영이 장크트갈렌의 ‘세 개의 호수’를 추천했을 때 윤기가 ‘세계의 호수’로 들은 것처럼 그 차이는 엄청나다.

 

난 너와 다시 연락하고 싶어 친구처럼 지내고 싶고. 또 난 너와 다시는 연락하고 싶지 않아 친구처럼도 지내고 싶지 않고. 어떻게 하면 너와 연락하고 친구로 지내기 위해 연락하고 싶지 않은 이유와 친구로 지내고 싶지 않은 이유를 없앨 수 있을까? (135쪽)

 

우리의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 단단했다고 믿었던 사랑은 한순간 물컹해지고 괜찮다고 여겼던 마음은 괜찮지 않다. 소설 속 윤기가 하는 말놀이처럼 말이다. 어떤 이유로 헤어졌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이들이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내가 그러하듯 그들도 나를 잊었을 거라 생각하니 가슴 한 쪽이 아린다. 이별의 유효기간이라는 게 있을까. 나만의 유효기간을 정하는 게 좋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이어진다.

 

이별은 같은 세계의 양끝을 향해 걸어가는 거라면 작별은 각각 다른 세계로 걸어가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니까 헤어진 사람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 사람이 없는 세계에서 작은 책상에 앉아 혼자만 펼칠 수 있는 책 한 권을 갖는 일이다. (작가노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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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10-16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아니 방금 동시에 좋아요 누른 거 실화입니까...정용준 소설 괜찮던데 이거도 궁금해집다. 상세한 감상평 감사합니다.

수연 2019-10-16 1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용준 작가 소설 좋아하는데 읽다보면 좀 많이 평상시보다 가라앉게 되어서 기분 좋은 날에는 좀 피하게 되는 거 같아요. 새로운 신간이 나왔네요. 작가노트 문장들 좋아요. 그리고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마음에 대한 이야기_라고 말씀하신 문장도 좋구요. 종종 과거 연인들이 궁금해질 때도 있는데 다시 만날 기회로 만나게 된다면 정말 어색할 거 같아요. 이별이라는 게 온전하게 둘이 합의해서 된다고 해도 어느 한쪽이 상대방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게 되는 과정을 피할 수는 없으니까요.

다락방 2019-10-16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으니 이 책을 몹시 읽고 싶어지네요. 저도 장바구니에 담습니다.

책읽는나무 2019-10-16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어진 연인이 다시 만날 확률이라??
첫 문장에 흠칫!!...멈춰서 곰곰 생각해 보게 만들었어요.
그렇네요?확률은 얼마나 될까요?
드라마에선 정말 80%가까운 확률이지 싶던데...현실에선?^^
아..그러고보니 제 친구 하나가 자목련님이 말씀하신 작정하고 만난 경우에 속하긴 합니다.헤어진 둘은 각자 가정을 꾸렸고 그러다 내 친구가 이사를 했는데 헤어진 옛 남친이 같은 아파트 그것도 같은 동에 살고 있었더랍니다.아파트 입구에서 우연히 만나 어색하게 얘기를 나누다 알게 되었고...작정하고 만나 점심을 먹으면서 각자 살아온 얘기를 나누었고,서로 잘살자고 행복을 빌어줬노란 얘기를 들으면서 아~~저런 이야기를 서로 기분좋게 나눌 수 있는 상황이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좀처럼 상상되지 않더라구요.
그냥 영화나 소설 읽는 듯한 기분이랄까요??^^
느낌은 쉽게 상상되진 않지만,어떤 이미지 같은 풍경이 곧 떠올랐었는데 그것은 오랫동안 머릿속에 저장되어 있긴 합니다.
오랜만에 긴 댓글을 주절주절 달고 갑니다^^
 
날개의 발명
수 몽크 키드 지음, 송은주 옮김 / 아케이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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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좋은 날을 꿈꾼다. 좋은 날이란 어떤 날일까. 어떤 이에게는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날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병원에서 퇴원하는 순간이 될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아침을 맞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좋은 날은 오고 있는 것일까? 살기 좋은 시대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맞는 말이다. 과거에는 생각도 못 한 일상이 펼쳐지고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으니까. 누군가가 막연하게 바라고 바랐던 일상을 나는 아무런 대가 없이 살고 있다. 내가 누리는 사회의 제도가 처음부터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러다 부끄러움과 마주하는 순간 현재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수 몽크 키드의 『날개의 발명』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소설 속 ‘사라 그림케’란 이름을 모른 채 제목만 보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내용일까 생각했다. 어쩌면 그렇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을 위한 몸부림이며 발자취라 할 수 있으니까.

 

소설은 19세기 초 미국의 남부를 배경으로 성장하는 두 소녀의 이야기라 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라와 핸드풀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얼핏 당신이 떠올리는 그것이 ‘노예제도’라면 맞다. 바로 그 이야기다. 판사인 아버지와 거대한 저택에 많은 노예를 거느리는 그림케 집안의 딸 사라는 열한 번째 생일을 맞았다. 놀랍게도 생일 선물은 열 살의 흑인 소녀 핸드풀이다. 사라가 그 시절의 보통의 주인 아가씨처럼 핸드폴을 대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집 안의 우아한 꽃처럼 자라 결혼을 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생을 설계하지 않았던 사라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으로 떠날 거라는 희망을 품었던 핸드폴은 서로를 의지하며 친구가 되었다. 사라는 핸드풀에게 글을 가르쳤고 오빠처럼 자신도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들려준다. 둘 사이의 우정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사라의 사고와 행동은 여자라는 이유로 차단되었다. 핸드풀에게 자유를 주겠다는 약속은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사라는 자신의 의지와 신념을 저지 당했다. 핸드풀 역시 사라와 친구처럼 지낼 수 없음을 확인한다.

그녀는 바늘과 실을 들고 다시 입을 닫았다. 이번에는 더 무거운 침묵이 깔렸다. 그녀의 손이 오르내리며 봉우리와 골짜기를 만들고, 골무가 반짝이는 것을 지켜보았다. 지붕 위에서 어릴 때 그녀가 해준 진짜 놋쇠 골무 이야기를 떠올렸다. 아마 저게 그 골무일 것이다. 그녀가 지붕 타일 위에 누워서 파란 하늘과 구름을 쳐다보던 모습, 배 위에 올려놓은 찻잔, 깃털을 가득 채운 그녀의 드레스 호주머니, 빠져나온 깃털 끄트머리가 눈앞에 선했다. 거기에서 우리는 모든 비밀을 서로에게 털어놓았다. 우리 둘이 찾아냈던, 동등한 관계에 가장 가까운 것이었다. 그 모습을 마음속에 그려보려고, 숨을 불어넣어 되살려보려고 했지만 사라져버렸다. (377쪽)

어린 소녀였던 두 사람이 점점 자라면서 경험하는 삶은 점차 둘 사이를 멀어지게 만든다. 그러나 둘 사이는 묘한 끈으로 이어졌다. 그 끈은 시간이 흐르면서 때로 약해졌다가 단단해지기를 반복한다. 노예제도라는 역사적 소재를 생각하면 사라와 핸드풀의 삶은 뭔가 뻔한 여정을 예상할 수 있다. 노예의 신분이지만 언제나 당당하게 살아가는 핸드풀의 행동을 통해 독자는 통쾌한 기분을 느낀다. 반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을 것처럼 보이는 사라가 부모의 결정에 따라 이리저리 사교장으로 끌려다니는 모습은 때때로 답답하게 여겨진다. 하지만 사라의 내면은 언제나 많은 것들로 요동치고 있었다. 여자라는 이유로 할 수 없는 것들, 이해할 수 없는 노예제도, 종교에 대한 다른 생각.

열 살 소녀가 35년 동안 노예로 살면서 당하는 수모와 고통은 차마 읽어나갈 수가 없을 정도다. 그 삶을 견디면서 핸드풀이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어린 시절 엄마가 들려둔 영혼 나무와 엄마와 함께 만든 누빔 이불이다. 사라에게 은 단추가 그러했다. 시대가 그랬으니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사라는 그럴 수 없었다. 그림케 집안과 남부를 떠나 결혼, 사랑, 그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로 한다. 내면의 소리를 세상에 쏟아내기 시작한다. 여성 목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행동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되고 사람이 사람을 사고파는 노예제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글을 쓰고 발표하고 강연을 다닌다. 그러면서도 항상 핸드풀을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이 어린 시절 그녀를 자유롭게 해주겠다는 약속에서 시작되었을지도 모르니까.

내가 던져버렸다가 네가 되찾아준 은 단추를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 지금 너에게 편지를 쓰면서도 잉크병 옆에 놓아두고 있단다. 이 단추는 항상 내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믿었던 운명을 떠올리게 해줘. 이런 것들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냥 도토리 안에 떡갈나무가 있다는 것을 알듯이, 그렇게 아는 거야. 평생 동안 이 씨앗을 자라게 하고 싶다는 허기를 느끼며 살았어. (417쪽)

소설은 35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소녀였던 사라와 핸드풀을 중심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자유를 향한 갈망을 실현하기 위해 모임을 갖는 노예와 조금씩 생각을 바꾸는 사람들.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웠다. 이런 소설을 읽고 안도하는 부끄러운 나를 발견한다. 그 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그 시대에 살고 있지 않아 다행이라는 생각. 현재가 아니라 과거라서, 역사 속 일부라고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불평등과 차별이 사라진 세상이라 말하지도 못하면서 말이다. 내가 속한 사회가 과연 모두에게 좋은 세상이라고 자신할 수 없으면서도.

잔혹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여성의 이야기는 허구가 아니라서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정을 넘어선 끈끈한 연대, 그것은 세대 간 갈등이 커지고 극심한 혐오가 가득한 현재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모두가 좋은 날을 바라는 마음, 함께 잘 살기를 꿈꾸는 희망이라는 날개의 발명은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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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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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여러 개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누구에게나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보여줄 수 있지만 나눌 수는 없는 마음,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마음, 오직 한 사람에게만 보여주고 나눌 수 있는 마음. 적절한 때에 맞춰 마음을 꺼내 사용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다른 누군가도 그럴 것이다. 그래서 기댈 수 있는 마음을 발견하면 전부를 보여주고 싶은 욕구에 흔들린다. 그러면서 궁금하다. 진짜 마음이란 무엇일까? 김금희의 장편소설『경애의 마음』을 읽으면서도 내가 안다고 믿었던 마음이 정말 맞는 것일까 혼란스러웠다. 이제 안다고 알 수 없는 나의 마음들.

 

우리는 쉽게 “네 마음을 안다.”라고 말하기도 하고 “내 마음을 몰라준다.”라고 속상해한다. 마음을 쉽게 다룰 수 있다고도 자신한다. 마치 마음이 보이는 투명한 유리나 거울인 것처럼 말이다. ‘반도미싱’ 영업부에서 팀장과 팀원으로 일하는 상수와 경애는 그렇지 않았다. 낙하산으로 회사에 들어온 팀장 상수에게 사내 파업에 참여하고 부당한 대우를 견디고 버티면서 현재까지 남은 문제 사원 경애는 반갑지 않은 사원이었다. 거기다 쉽사리 마음을 보여주지 않았다. 말투나 행동, 먹는 음식까지 상수와는 달랐다.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는 마음까지 감추고 있었다. 출근부터 퇴근까지 한 공간에서 미싱을 팔아야 한다는 목표 아래 시간을 보내지만 서로에게 내어줄 마음이 없었던 것이다. 마음은 그런 것이었다. 쉽게 꺼낼 수 없고 꺼내도 접혀진 부분의 주름을 하나하나 펴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사실 두 사람의 접점은 독자에게는 한눈에 보인다. 그들이 단단히 싸매고 있는 마음의 한가운데 친구 ‘은총’이 있다는 걸 말이다. 자연스럽게 과거의 상처에 대한 마음이 아직 아물지 않았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아물지 않고 상처로 남는 상처도 있으니까. 그 마음의 결에 대해서는 상수와 경애가 똑같았다. 그렇다면 어떤 마음은 저절로 보이는 것일까? 아닐 것이다. 실제 일어난 1999년 10월 동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에 대해 우리가 아는 건 뉴스에 보도가 된 게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이 왜 죽어야 했는지 사건의 원인보다는 그곳에서 고등학생이 술을 마셨다는 일에 관심을 보였으니까. 소설 속 그 현장에서 경애가 친구 은총을 잃고 품었던 마음을 우리는 평생 짐작할 수 없다. 사건을 증언하고 증인이 되어 따가운 시선을 받아야 하는 순간을 우리는 모른다. 누군가를 잃고 남겨진 채로 살아야 하는 마음이 어떨지 같은 일을 겪었다 해도 같을 수 없고 알 수 없다. 경애에게는 어떤 마음이 필요했을까? 소설의 제목인 사랑하고 공경하는 경애(敬愛)였을지도 모른다. 가장 단순하고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지만 우리 사회에서 외면해버린 마음이다.

 

대학 선배 산주와의 사랑 그러했고 반도미싱에서 파업을 하면서 머리를 삭발하고 시위를 할 때에도 그러했다. 그 마음은 경애 한 사람에게만 필요한 게 아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결핍된 마음이 바로 그것이다. 함께 파업을 하고 회사를 떠나는 조 선생이 경애에게 전하는 말은, 그런 마음의 한 갈래는 아닐까. 어른으로서의 마음, 누군가를 돌볼 수 있는 마음이 우리를 살게 한다는 걸 느낀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에게 그런 마음을 보여주고 내어준 적이 있었는지 생각한다. 내가 그동안 무수하게 받은 마음은 순환되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런 돌봄의 마음이 순환되었더라면 우리는 조금 더 안온한 세상을 만들었을 텐데.

​“일은요, 일자리는 참 중요합니다. 박경애 씨, 일본에서는 서툰 어부는 폭풍우를 두려워하지만 능숙한 어부는 안개를 두려워한다고 말합니다. 앞으로 안개가 안 끼도록 잘 살면 됩니다. 지금 당장 이렇게 나쁜 일이 생기는 거 안 무서워하고 삽시다. 나도 그럴 거요.” (30쪽)

 

더 나은 세상이 아니기에 우리는 소설을 통해 그 마음을 붙잡는 건 아닐까. 소설에 등장하는 화재사건과 직장 내 파업은 사회적 이슈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차마 말할 수 없는 그날의 뉴스가 생생하게 그려진다. 누군가는 무거운 주제라며 말을 삼가고 나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며 불편해할지도 모른다. 그 누군가가 내가 될 수 있고 나의 가족이나 친구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피하고 싶은 거다. 그러나 똑바로 봐야 한다. 반복적으로 경험한 것처럼 불가항력의 일들이 일어나는 게 우리 생이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안아주면서 살아가야 한다. 어떤 대책조차 대책을 황당하고 갑작스러운 죽음, 혹은 소설에서 가장 일상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사랑의 실연이나 베트남으로의 발령 같은 것. 보통의 상처처럼 보이지만 사소하지 않고 깊게 베인 상처들. 그래서 경애처럼 어딘가 내 마음을 들어줄 곳을 찾는 것이다. 경애에게 연애상담 페이지 ‘언니는 죄가 없다’는 유일하게 마음을 전부 보일 수 있는 곳이었다. 경애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이 있는 그대로 마음의 상태만 보고 보듬어 준다. 진짜 경애하는 것이다. 포장된 마음이 아니라 순수하게 어루만지는 마음. 그것은 우리가 잃어버린 마음이 아닐는지. 화난 마음이든, 울고 싶은 마음이든, 짜증 나는 마음이든, 어떤 마음이든 모조리 쏟아부을 수 있는 곳에 쌓인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형체를 알 수 없겠지만 상수의 말처럼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니, 사라져서는 안 되는 마음이다.

 

“살면서 조금씩 안 부서지는 사람이 어딨어요? 아무 사건 없이 산뜻하게 쿨하게 살자 싶지만 안되잖아요. 망하는 줄 알면서도 선택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라도 기꺼이 부서지고.” (155쪽)

 

마음을 폐기하지 마세요. 마음은 그렇게 어느 부분을 버릴 수 있는 게 아니더라고요. 우리는 조금 부스러지기는 했지만 파괴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언제든 강변북로를 혼자 달려 돌아올 수 있잖습니까? 건강하세요, 잘 먹고요, 고기도 좋지만 가끔은 채소를, 아니 그냥 잘 지내요. 그것이 우리의 최종 매뉴얼이에요. (176쪽) ​

 

소설에선 경애의 상처가 깊고 커 보여서 상수의 마음은 조금 나중에 보인다. 상수에게 어머니의 죽음과 단 한 명의 친구였던 은총의 죽음이 그를 지배하는 강도가 얼마나 센지. 지극히 개인적인 상실과 슬픔이라고 말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다. 겹쳐진 상수의 마음이 있기에 경애는 울 수 있고 은총을 함께 그리워할 수도 있다. 나와 겹쳐진 마음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자신의 마음만 챙기는 이기적인 마음만 있다면 이 세상은 적막감으로 가득할 것이다. 사랑하는 마음을 꺼낼 수 있다면 우리는 조금 더 나은 삶을 살아갈 텐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힘겹고 고단하다. 어떻게 하루를 버티나 하는 생각도 든다. 일과 사람에 치이고 사회의 제도와 정치적 시선에 치이며 오늘을 살아간다. 나와 닮은 마음을 발견하고 기뻐하면 괜찮아진 걸 느낀다. 마음의 힘을 믿는 일의 숭고함을 말이다. 켜켜이 쌓인 마음을 돌본다. 우리는 넉넉해진다. 그리하여 마음은 서로에게 그늘이 된다. 더위로 지친 삶을 그늘에서 식히는 것, 그것이 우리가 찾는 삶의 궁극적인 모습은 아닐까. 내가 가진 여러 개의 마음이 펼쳐지는 상상을 한다. 펼쳐진 마음이 누군가의 마음과 맞닿아 사랑하며 살아가는 일상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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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19-10-04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태풍이 지나가고 공휴일도 지나니 금요일 저녁이네요.
기온이 조금씩 내려간다고 해요. 감기 조심하시고,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19-10-05 15:31   좋아요 1 | URL
제법 더운 낮도 이제 곧 사라지겠지 싶어요. 서니데이 님도 건강하고 평온한 주말 보내세요^^*
 
29초
T. M. 로건 지음, 천화영 옮김 / arte(아르테)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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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라는 맞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설령 그것이 상대와 밑바닥까지 내려가서 비열하게 싸우는 것을 의미할지라도. 러브록은 그 정도 수준이었으니까. 그리고 때로는, 아주 가끔은,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해결책이 필요하다는 것도 사실일지 모른다. (477쪽)

제목은 책의 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단편집의 경우 전체를 아우르는 문장을 제목으로 택하기도 하고 책에 대한 호감을 불러올 만한 문구를 사용하기도 한다. T.M 로건의 소설 『29초』는 그런 점에서 호기심을 불러온다. 과연 29초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29초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어떤 것이 있을까? 눈 깜빡할 정도로 금방 지나갈 시간이라 생각하면서도 뭔가 대단한 일을 실행에 옮기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혼자 짐작했다.

 

작가에 대해서도 소설의 내용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른 책 읽기 시작했다. ‘규칙은 간단했다. 가능하면 그와 단둘이 있지 말 것. 그를 부추길 수 있는 어떤 말도 행동도 하지 말 것.’ 소설의 첫 문장을 읽기 시작하면서 어떤 감이 왔다. 누군가를 조심할 것, 그 누군가에게 걸려들지 말 것. 그는 아마도 권력을 지녔을 것이고, 소설의 화자는 여성이 분명했다. 그랬다. 이 소설은 그런 내용이었다. 주인공 세라는 30대로 똑똑하고 멋진 여성으로 딸 그레이스와 아들 해리를 둔 엄마이자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시간 강사였다. 그러나 남편 닉과의 관계는 좋지 않았다. 닉은 집을 나갔고 다른 연인이 있었다. 세라가 가장 경계하는 인물은 같은 대학 상사이자 교수인 러브 록으로 세라와 같은 시간 강사의 인사권을 갖고 있었다.

러브록의 평판은 좋지 않았다. 세라와 같은 위치의 여성 강사를 희롱하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협박을 강요하는 상사였다. 전형적인 나쁜 상사, 정말 상대하고 싶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그러나 세상에 알려진 건 TV에 출연하는 유명한 스타였고 대학에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라에게도 노골적으로 접근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 전임강사를 주겠다고 말이다. 하지만 세라는 그럴 수 없었다. 러브록의 실체를 세상에 폭로하고 싶었다. 그와의 대화를 녹취하고 대학 인사과에 제출하고 공론화시키면 가능할 거라 믿었다. 그러나 러브록은 대학에서 막강한 권력을 지녔고 그를 상대하려면 학교를 떠날 각오를 해야만 했다.

소설을 읽는 동안 나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이런 제기랄, 욕이 절로 나왔다. 러브록이란 인물이 소설 속에서만 존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장 내 괴롭힘, 왕따, 성희롱과 폭력에 대한 문제는 우리 주변에도 만연하다. 미투 운동이 확산되고 조금씩 변화의 움직임이 보이는 것 같지만 현장에서는 어떻게 적용되는지 알 수 없기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서지현 검사가 방송에서 미투 이후의 삶에 대해 들려주었을 때 정말 놀랐다. 소설의 배경도 대학이 아니던가.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분노한다. 인격, 인성은 다 어디다 팔아먹었나.

그런 러브록을 상대로 세라에게 어떤 기회가 찾아온다. 우연한 계기로 여자아이를 구하고 아이의 아버지에게 황당한 제안을 받는다. 누구든 원하는 사람 한 명을 없애준다는 것이다. 정말 놀랍지 않은가. 마치 세라의 지금 상황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고민하고 주저하던 세라는 러브록의 이름을 택한다. 그의 말대로 러브록은 사라진 것일까. 어느 날 러브록은 실종되었다. 완벽하게 처리된 것일까. 나는 그러기를 바랐다. 범죄에 가담한 것이지만 그냥 그랬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소설이니까, 그래도 괜찮지 않을까.

그러나 작가는 러브록을 돌아오게 만들었다. 거기다 세라가 자신의 납치 과정에 관여했다는 사실까지 알게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었다. 러브록의 악랄함은 더해지고 세라는 어쩔 줄 모르는 불안과 공포로 고통스럽다. 이렇게 끝내는 것일까. 러브록의 뜻대로 그에게 종속되어 살아야 하는 걸 아닐까. 끝을 향한 이야기에 조바심이 나는 건 나였다. 물론 소설의 결말은 그렇지 않다는 정도라는 것만 말하겠다.

 

통쾌한 결말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이 너무 힘들다. 소설에서는 시원한 한 방을 날렸지만 현실에서는 제대로 된 제도와 철저한 대책이 필요하다. 소설을 소설로만 읽을 수 없다는 게 화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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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19-09-27 01: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도 여성보다 남성이 더 힘을 가지고 그걸 쓰죠 러브록이 아주 나쁘게 나오는가 봅니다 그런 사람 말을 한번 들으면 끝이 없을 것 같아요 힘들더라도 그러지 않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바깥에서 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해도 아이를 기르고 살아야 하는 세라는 그렇게 하기 쉽지 않겠습니다 러브록 한사람만 사라진다고 세상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도 자신을 가장 괴롭히는 사람만 없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을지도... 힘들다 해도 끝이 나쁘지 않다니 다행이네요


희선

자목련 2019-10-04 12:16   좋아요 1 | URL
아직도 우리 사회 많은 곳에서는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겠지 생각하니 답답했어요. 현실에서도 소설처럼 통쾌한 결말이길 바라는데, 과연 그럴까 싶어요. ㅠ.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김숨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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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개를 길렀다. 강아지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개였다. 친구처럼 지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개는 마당에서 달려와 내에 안겼다. 몸집이 작았던 나는 그런 개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뿌리치지 않았다. 그만큼 개를 좋아했다. 그러다 보신탕을 알게 되었다. 물론 나는 먹지 않았다. 내가 분명히 아는 고깃국(당시 닭고기, 돼지고기,소고기)이 아닌 국이 올라오면 쳐다보지도 않았다. 개를 먹는다는 일은 있을 수 없었으니까. 그 개의 이름은 ‘존’이었고 당시 시골에서 쥐를 잡기 위해 놓은 약을 먹고 죽었다. 그 뒤로 개를 향한 애정은 멈췄다. 반려견으로 키우던 개가 죽고 다른 개를 입양하지 않는 사촌동생의 마음도 비슷한 건 아닐까.

 

김숨의 소설집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를 읽으면서 ‘존’이 자꾸 생각났다. 이 소설집은 전체적으로 그로테스크한 기운이 가득하다. 잔혹한 사건이나 동물 학대에 대한 구체적인 묘사가 등장하는 건 아니지만 평이하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은 아니다. 쥐, 염소, 자라, 벌, 노루, 곤충(나비)를 소재로 쓴 소설은 마치 꿈을 꾸는 듯하다. 아름다운 꿈이 아니라 악몽과 흉몽의 중간쯤이라고 해야 할까. 소설 속 인물들은 현실 속에서 쥐를 잡으려고 애쓰고(「쥐의 발견」), 염소를 해부하려고 염소가 오기를 기다리며 감정을 억누르고 (「나는 염소가 처음이야」), 만병통치약인 양 노루의 피를 먹기 위해 노루 사냥을 위해 (「피의 부름」) 떠난다. 그러나 고층 아파트에서 남편이 본 쥐를 찾을 수 없고 오고 있다는 염소는 오지 않고 노루 사냥의 길은 멀고 지루하기만 하다. 쥐 한 마리에 10만 원을 달라며 쥐를 잡겠다고 온 이들은 집안을 온통 쑥대밭으로 만들고 그것을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 ‘나’는 이제는 제발 쥐를 발견했으면 좋을 지경이다.

한때 저수지에 가득했던 자라로 자라 요리 식당을 했던 여자의 아들이 빠져 죽은 저수지에서 시신을 찾아 헤매는 「자라」, 벌들과 함께 생활하며 꿀을 얻는 아들과 어머니의 이야기 「벌」, 옆 동네 아파트 주차장에서 자동차를 흠집 낸 열두 살 아들이 보았다는 나비를 찾아 함께 곤충채집에 나선 「곤충채집 체험학습」도 마찬가지다. 아들이 분명 저수지에 빠져 죽었다는 여자가 늘어놓는 다양한 자라 요리에 대한 설명은 보통의 그것인데 너무도 잔인하게 다가오고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먹는 사람들이 혐오스럽게 여겨진다. 아들이 운전하던 자동차 사고로 벌들이 사방으로 흩어지고 척추를 다쳐 앉아 지내면서 벌통을 지켜보기만 하는 「벌」은 종종 방송에서 꽃을 따라 이동하는 양봉업자들의 일상과 비슷하면서도 혈육이 아닌 모자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 평범하지 않는 아들에게서 진실을 듣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그린 것 같으면서도 어린 시절 방학숙제로 잡았던 수많은 곤충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어쩌면 이 소설집은 인간을 위해 실험용으로 해부대에 오르고 건강을 위해 사육당한 동물들을 위한 애도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도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거북한 거리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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