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대 감기
윤이형 지음 / 작가정신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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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만나도 아무런 불편함이 없이 서로의 일상을 꺼내 보여줄 수 있는 상대를 우리는 친구라고 한다. 그런 친구와 갑자기 서먹해진다면 상처를 받았다고 여긴다. 친구의 사정도 모르면서 친구라는 관계에 그 모든 걸 넣어두려고 하는 것이다. 그건 나만의 일방적인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친구니까 그래도 된다고 정당화한다. 나에게 좋은 친구는 어떤 친구일까. 무조건 지지를 건네는 그런 사람일까. 그럼 나는 어떤 친구일까. 상대에게 좋은 친구인 건 맞는 걸까. 윤이형의 『붕대 감기』는 내게 자꾸만 묻는다. 당신은 어떤 친구입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입니까,라고 말이다.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자신일 것 같지만 실상 나에 대해 아는 건 친구일 때가 있다. 내가 무얼 좋아했는지 어떤 삶을 꿈꾸는지 나의 말을 들어주고 지켜봐 줬으므로.

 

모든 관계에는 처음이 있다. 처음부터 서로에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경우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누군가 먼저 다가가고 누군가 먼저 기다리는 일이 필요하다. 관계의 깊이가 누적된 시간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걸 안다. 둘 사이를 오가는 시간과 말들, 어떤 사건들이 어떻게 견디고 받아들이냐에 따라 다르다. 소설에서 진경과 세연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고등학교 시절 친하게 지냈던 진경과 세연은 오랜만에 다시 연락이 닿았다. 다시 만난 설렘과 기대로 서로에 대해 더 많은 걸 알고 싶고 공유하고 의논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 하지만 둘의 표현 방식은 다르다. 7살 딸을 둔 워킹맘 진경과 프리랜서인 세연의 삶이 다르듯 말이다. 자주 만날 수 없었지만 온라인으로 이어져 있다고 믿었지만 자신의 글에 어떤 코멘트도 하지 않는 세연에게 진경은 서운함을 느낀다.

 

어쩌면 둘은 서로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진경의 하루는 정신없이 흘러갔고 그런 삶의 고단함을 세연과 나누면서 공감하고 싶었다. 여성의 우정에 대해 취재를 하고 글을 쓰는 세연에게 진경이 속한 결혼과 육아의 세상은 경험할 수 없기에 뭐라 말할 수 없는 곳은 아니었을까? 그러나 서로의 마음 깊은 곳에 존재하는 생각의 본질은 다르지 않았다. 서로에게 다가가고 싶고 응원하고 싶은 마음은 같았다.

 

모두가 애써서 살고 있잖아. 너와 똑같은 속도로, 같은 방향으로 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사람들의 삶이 전부다 잘못된 거야? 너는 그 사람들처럼, 나처럼 될까 봐 두려운 거지. 왜 걱정하는 거니, 너는 자유롭고, 우리처럼 되지 않을 텐데. 너는 너의 삶을 잘 살 거고 나는 나의 삶을 응원할 거고 우린 그저 다른 선택을 했을 뿐인데. (154쪽)

 

마음의 형태가 다르다고 해서 그 본질까지 다르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진경과 세연 둘 만을 놓고 보면 진경은 개인과 일상에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연은 그들이 속한 사회와 세상으로 나가려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인생에 있어 다른 선택을 했고 살아가는 방식도 다르니까. 그렇다고 둘 사이가 완전히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그들이 접하는 세상, 그들이 맺은 복잡하고 유기적인 관계에서 따로 떼어낼 수 있을까. 세연이 글을 쓰기 위해 만난 10대와 20대의 여성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정의하고 이해하는 방식은 같지 않다. 그러나 그들이 모두 같은 시대를 살고 세상에 속해 있다는 건 인정해야 할 사실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연령대의 여성의 삶의 방식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다. 당당하면서도 거침없는 10대, 20대가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을 조금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40대, 50대는 공감할 수 있고, 나와 다른 삶을 살아가는 이들과의 우정을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다. 소설 속 인물 모두가 저마다의 고민으로 힘들어가고 지향하는 삶의 가치가 다르다 할지라도 그들은 서로에게 긴밀하게 연결되기를 원한다.

 

고교시절 교련 시간에 붕대 감기를 잘 몰라서 진경의 머리에 한 번 더 감아버린 세연처럼 우리는 실수한다. 피부 문제로 인해 화장을 고집했던 세연을 문제아로 여기고 따돌린 무리 속에 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그런 실수를 번복하지 말아야 한다. 나와 똑같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으니 나와 다른 모두를 인정하고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 때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마음 때문에 아프고 다른 곳을 바라보는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 힘들다. 그래도 놓치고 싶지 않고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마음이기에 우리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건 아닐까.

 

‘마음을 끝까지 열어 보이는 일은 사실 그다지 아름답지도 않고 무참하고 누추한 결과를 가져올 때가 더 많지만, 실망 뒤에 더 단단해지는 신뢰를 지켜본 일도, 끝까지 헤아리려 애쓰는 마음을 받아 본 일도 있는 나는 다름을 알면서도 이어지는 관계의 꿈을 버릴 수는 없는 것 같다.’는 작가의 말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된다. 더 알고 싶은 마음, 더 닿고 싶은 마음의 주인들과 오래오래 사랑하며 관계를 이어가고 싶은 바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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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 -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브룩 노엘.패멀라 D. 블레어 지음, 배승민.이지현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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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도를 겪는 당신만의 길을 스스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01쪽)

 

‘우리는 저마다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한다’란 제목 하나만으로 충분했다. 내가 이 책을 기대했던 이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 말이다. 저마다의 속도가 필요하다는 걸 인식하고 경험했기 때문이다. 소중한 이가 슬픔에 빠졌을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말을 걸기도 하고, 음식을 챙겨주기도 하고, 가만히 곁을 지키기도 한다. 연인과 헤어졌을 때,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몸이 아파 병원에 있을 때, 분명 그들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랑하는 이와 영원한 작별을 한 상태에서는 다르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기에 말이다. 애도의 시간은 정해져 있는 게 아니고, 애도의 상태는 같을 수 없다. 우리는 그것에 대해 한 번도 학습한 적이 없다. 우리에게 죽음은 아주 멀리 있는 막연한 것이었고 노년 후에나 찾아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죽음은 어디서든 마주할 수 있는 삶의 일부였고 어떤 이에게만 닥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언제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은 아주 친절하고 아주 상세하다. 여러 형태의 죽음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한다. 저자가 애도의 시간을 경험했고 모임을 갖고 상담을 하는 이들이기에 가능하다. 친구처럼 지냈던 전 남편의 죽음을 경험한 패멀라 D. 블레어와 사고로 오빠를 잃은 브룩 노엘은 현실적이며 실천 가능한 조언을 한다. 가장 가까운 이(배우자, 부모, 형제, 자식)을 떠나보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애도의 삶이 어떤 것인지 알려준다. 사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삶을 살아가는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직장으로의 복귀도 힘들고 소소한 일상도 유지할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우리는 ‘저마다의 삶의 속도’를 기억해야만 한다. 그러니 이런 문장을 반복해서 읽는 건 좋은 방법이다.

누군가 “이제 네 삶을 살아야 할 시간이야”라는 말을 한다면 당신은 “내 시간과 신의 시간이지 당신의 시간이 아니야”라고 답할 권한이 있습니다.

 

두려움이 언제나 나쁜 것은 아닙니다. 두려움을 거부하지 않고 완전히 받아들여 겪으면, 변혁을 시작하는 내부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86쪽)

애도의 방법은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도 중요하다. 아주 오랜 시간 고인을 추억하는 일, 때때로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일, 고인의 물건을 주변 이들에게 나눠주는 일, 대상을 알 수 없는 분노를 표출하는 일도 모두 애도라는 걸 우리는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의 훌륭한 점은 우리가 놓치는 것들을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어떻게 애도를 표할지, 어떻게 애도에 접근할지 세세하게 알려준다. 특히, 가족을 잃고 기념일이나 명절을 보내야 할 때 느끼는 감정이나 대처법, 아이들의 애도 돕기가 그러하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슬픔에 빠져 주변 가족의 상태를 진단하지 못한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수 없는 아기, 유아기, 성장기에 따라 그 방법이 다르다는 걸 알지 못한다. 무조건 하늘나라에 갔다거나, 잠자는 거라고 죽음에 설명하는 게 아니라 아이의 연령에 따라 이해할 수 있도록 예를 들어 알려준다. 이 책이 진심을 다해 애도를 돕고 위로한다고 확신할 수 있었던 건 다양한 죽음의 형태와 고인과의 관계에 따른 슬픔에 대해서도 언급했기 때문이다. 대형 참사, 자살, 전쟁에 참여했던 이들의 죽음 등 낯설면서도 가까운 죽음을 애도하는 과정에 대해서.

길고 느린 과정이에요. 때때로 두 걸음 앞으로 나가갈 때마다 세 걸음 뒤로 물러나요. 하지만 다른 때에는 후퇴 없이 앞으로 두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어요. 당신은 그저 계속해서 한 발을 다른 발 앞에 두고 나아가야 해요. 그리고 이것이 정확히 제가 하고 있는 것이에요. 한 걸음씩 그리고 하루에 한 번씩. (303쪽)

 

우리는 저마다 고통과 상실의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생은 없다. 애도는 삶의 일부가 되며 그것의 끝은 없다. 아니, 어떤 이에게는 그 끝이 존재할 수도 있다. 저마다 다르니까. 우리는 그저 애도하며 살아갈 뿐이다. 어떤 날은 어제와 같은 모습으로 어떤 날은 다른 모습으로 말이다. 이 책을 만났다고 해서 애도를 쉽게 통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그저 조금 더 이해하고 다가갈 수 있으며 어떻게 애도할 수 있는지 배웠을 뿐이다. 분명 아주 큰 도움이 된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하고 상상할 수 없는 이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북받쳐오는 감정 때문에 조금 울컥했다. 내 가족 구성원의 죽음이 생각났고 그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얼굴을 떠올렸다. 가장 그리운 엄마의 얼굴은 잘 생각나지 않았다. 우리는 이렇게 살아간다. 나만의 속도로 슬픔을 통과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바로 이것이다. 삶을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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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의 온도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70
이상권 외 지음 / 자음과모음 / 201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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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것들은 당장 하는 게 가장 좋다. 나중으로 미루면 결국 후회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할 수 있음에도 나중으로 미루며 그때 해도 괜찮다고 말한다. 어쩌면 그렇게 미루는 것들 중에는 진짜 하고 싶은 일들이 아닐 것들이 있을 수도 있다. 현재의 수험생들이 나중의 리스트를 가장 많이 만들지 않을까 싶다. 자음과모음 청소년문학 시리즈 70권 기념소설집 『십대의 온도』를 읽으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해보았다. 아니, 놓쳤던 것들을 떠올렸다. 도전하지 않았던 일들, 하지 못한 고백, 최선을 다하지 못했던 일들이 스쳐 지나간다.

 

가장 좋은 날, 가장 좋은 때는 언제일까. 청소년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대학 입학이나 취업 후가 될 것이다. 마치 그때가 되면 모든 게 다 완벽한 것처럼 말이다. 『십대의 온도』속 아이들에게도 다르지 않았다. 아무도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고 말하지 않았다. 이상권의 「어느 날 갑자기」에서 은진은 갑자기 지방에 있는 지수를 만나러 간다. 나중으로 미루지 않고 보고 싶은 지금 달려간 것이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꺼내 놓고 마음을 나눈다. 자율적인 학교로 알려졌지만 틀에 짜인 대안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지수와 지나친 엄마의 통제로 힘든 은진에게 그 하루는 일탈이 아닌 충전이었다. 아주 잠깐의 시간, 지금 쉼을 쉬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삼수생으로 입시학원에 다니는 공지희의 「영화처럼 세이셀」속 주인공에게 필요한 것 역시 쉼이었다. 영화를 좋아하던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보내 즐거워하던 때를 그리워하며 영화 속 주인공처럼 세계지도를 펼쳐 낙점된 작은 섬 ‘세이셀’로 떠난다. 아름다운 바다와 바람에 취하기도 전에 가방을 잃어버렸지만 한국인 청년을 만나 도움을 받는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지만 불안보다는 알 수 없는 설렘과 기대를 갖는 건 주인공 혼자만이 아니라 독자인 나도 마찬가지다.

“일단 한 번 무너져 보는 게 중요해. 그래야 그다음 무너지는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알지. 일어나는 법도 배우게 되고.” (171쪽,「영화처럼 세이셀」)

우리는 십대란 시간이 인생에서 아주 짧은 시기이라는 걸 쉽게 잊는다. 그만큼 그 시기가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시기가 인생의 모든 걸 결정짓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라 착각한다. 학교라는 공간이 성적, 입시, 대학이 전부가 아닌 인생의 소중한 다른 것들(배려와 존중, 다양한 경험, 친구와의 우정, 자유롭게 놀기)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라는 것도 함께 말이다. 그런 면에서 해고당한 회사에 복직하기만을 기다리는 아빠, 집을 나간 엄마와 울지 않겠다고 약속하며 엄마를 기다리는 열한 살 수연의 하루하루를 담은 유영민의 「약속」과 술에 취해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와 까만 피부색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지안과 백색 소년 호수의 풋풋한 감정을 그린 진저의 「소녀 블랙(Black Girl)」은 신선하면서도 의미가 남다른 소설이라 할 수 있다. 돌봄을 받지 못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수연은 왕따를 당하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는 선생님. 다르다는 이유 때문에 폭언과 폭력의 대상이 되는 학교의 현실.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닌 현실에서 충분히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 가슴이 아팠다.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았지만 나는 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딜 줄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런 점에서 본다면 나는 이미 어른이지 않을까? (88쪽, 「약속」)

김선영의「바람의 독서법」과 신설의 「마더 파괴 사건」은 기발하면서도 엉뚱한 상상력을 선물하는 동시에 우리 현실을 꼬집는다. 영재였던 형에게 올인하는 엄마 덕분에 공부가 아닌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가장 좋은 강우(「바람의 독서법」)는 어느 날 이상한 경험을 한다. 바람이 불 때 중요 문구가 도드라져 보여 시험 성적이 오른다. 그러자 강우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달라진다. 학교에서조차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존중하는 게 아니라니. 씁쓸하고 안타깝다. 가까운 미래의 학교를 배경으로 ‘세상 알기 연구회’를 통해 ‘마더’라 불리는 거대 컴퓨터를 파괴하는 에피소드를 다룬 「마더 파괴 사건」에서 ‘마더’라는 말 대신 채울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잘 알려지지 않는 실체, 언론을 움직이는 권력. 섬뜩하면서도 흥미로운 소설이었다.

6편의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모두 불안의 날들을 살고 있다. 저마다 다른 색깔과 크기의 불안과 함께 살아간다. 그 시기를 통과하면 불안이 사라질까. 아니다. 어른들에게는 어른의 불안이 존재한다. 다만 그것과 어떻게 지내야 하는지 조금 알뿐이다.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면 잘못되는 게 아닐까 하는 마음은 조금 거두라고 말하고 싶다. 잠시, 화끈거리는 열감에 얼음을 올려도 괜찮다고. 가장 좋은 날, 가장 반짝이는 때가 지금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리하여 점점 더 빛을 발할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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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산책 - 이탈리아 문학가와 함께 걷는 이와나미 시리즈(이와나미문고)
가와시마 히데아키 지음, 김효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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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는 경이와 매혹이 가득한 도시이다. 세부적인 아름다움에 이끌리기 전에 켜켜이 쌓인 시대 전체를 바라보자. 붐비는 거리를 뒤로하고 오르막길을 오른다. 이윽고 태고에는 신역(神域)이었던 캄피돌리오 언덕에 서면 소용돌이치며 지나가는 고대와 근대의 바람이 뼛속 깊이 느껴질 것이다. (10쪽)

 

로마는 많은 이들이 여행지로 손꼽는 도시다. 그만큼 로마를 다룬 책도 많다. 단순 여행서를 시작으로 로마의 역사와 신들의 이야기까지 다양하다. 나는 로마를 여행한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이렇게 한 권의 책을 다라 로마를 거닐어 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이 책은 평생을 이탈리아 문학 연구를 한 가와시마 히데아키가 말 그대로 로마를 산책하며 그곳에 대해 소개하는 안내서라 할 수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무려 20년 전에 나온 책이라서 그 시간에 달라진 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큰 변하 없이 작은 변화만 있거나 그대로 유지가 되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걷는 일을 즐거운 일이다. 천천히 걸으면서 로마의 유명 장소를 둘러보고 그곳이 간직한 이야기를 듣는다면 더욱 그렇다. 독자는 저자가 이끄는 대로 로마를 걷는다. 책 속 지도를 보면서 저자가 걸었을 방향과 경로를 상상한다. 도시의 설계도라고 할까, 책 속 지도를 보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절로 떠오른다. 누군가는 이 책의 지도를 따라 로마를 산책할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고대 로마가 탄생한 일곱 언덕을 중심으로 성당, 다리, 건축물에 대해 알려준다.

 

로마의 원점이라 할 수 있는 캄피돌리오 언덕을 오르는 것을 시작으로 스페인 계단을 내려다본다. 영화나 방송을 통해 볼 수 있었던 스페인 과장의 계단에 대해 저자는 스페인 계단의 설계안에 대해 설명한다. 미적 감각뿐만 아니라 보행자의 편의까지 고려한 설계라니. 그 시대 하나의 건축물을 완성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역시 로마는 달랐다고 할까.

 

 

 

 

근대국가의 형성과 함께 급증한 수도 로마의 인구와 테베레강 오른쪽 기슭에 펼쳐진 황야의 개발, 그에 따라 급격히 늘어난 다리의 수, 그리고 도시계획을 표방한 파괴와 일찍이 테베레 강의 홍수로 겪게 된 재해가 ‘영원의 도시’의 과거와 미래를 검토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85쪽) ​

 

지금도 로마는 고대의 아우렐리아누스 황제가 건설한 성벽에 의해 도시로 규정되고 있다. 황제와 교황들이 두려워한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성벽의 전력상의 역할은 끝났다. 이제 성벽은 무용지물일까.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실제 북이탈리아의 도시 밀라노처럼 성벽 대부분을 허물어버린 곳도 있는가 하면 페라라처럼 성벽의 구실을 하던 수로 대부분을 메워버린 도시도 있다. (104~105쪽)

 

성벽에 대한 부분을 읽노라니 우리나라의 성벽이 생각난다. 침입과 침략, 그리고 전쟁을 견뎌내고 삶을 지속한 인류의 역사는 그곳이 어디든 이렇게 닮아있다. 후손인 우리에게는 그저 유적지로 남았지만 그 시대에는 얼마나 치열한 생존의 현장이었을까. 로마의 성벽이야말로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증명하는 유산이 아닐까 싶다. 고대 이집트에서 태양 숭배의 상징으로 세웠던 오벨리스크를 따라가는 여정으로 로마에 있는 14개의 위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부분과 안데르센과 즉흥시인 벨리가 노래한 로마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지평선 끝에 걸린 산과 ‘영원의 도시’의 전경뿐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길을 내려다본다면 발아래 펼쳐진 장원형 회랑을 설계한 베르니니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와 장신들이 힘을 합쳐 완성한 이 대성당의 구조가 천국으로 가는 거대한 ‘열쇠’모양이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거대한 돔 위의, 천국의 입구에 선 행복과 기쁨이 절절히 느껴질 것이다. (295쪽)

 

한 권의 책을 따라 산책하기에 로마는 너무도 화려하고 웅장한 도시다. 아마도 실제로 로마를 산책한다면 아름다운 건축물을 바라보느라 속도를 내는 일은 어려울 것이다. 저자의 말대로 책엔 3000년 가까운 로마의 역사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책 속 사진이 흑백이 아니었다면, 좀 더 크고 선명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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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0-01-08 0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마에는 아주 오래된 것도 아직 남아 있겠지요 옛날 모습 그대로는 아니라 해도... 책에 3000년의 역사가 흐른다니, 엄청나게 긴 시간이네요 이탈리아는 건물 마음대로 짓지 못한다니 이 책이 스무해 전에 나왔다 해도 그때랑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조금은 바뀌었을까요

새해가 오고 여드레째네요 자목련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하고 싶은 거 만나고 싶은 책 자주 만나시기 바랍니다 웃을 일도 많이 생겼으면 좋겠네요


희선

자목련 2020-01-08 14:15   좋아요 1 | URL
희선 님의 말씀처럼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들도 많이 있겠지 싶어요.
보내주신 마음을 항상 받기만 하네요.
희선 님도 2020년 건강하시고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기를 바라요.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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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혼자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의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25쪽)

 

누군가를 돕는 일에는 특별한 사명감이 필요하다고 여긴다. 대단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재해나 사고가 났을 때 ​ARS 자동 전화를 통한 기부와 정기적으로 소액을 송금하는 정도만 익숙하다. 부끄러운 일이지만 그 작은 행위를 뭐라도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는 것이다.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의 고통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에 대해 적극적으로 다가가지 않았다. 마실 물이 없어서 아이들이 병에 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어린아이가 가장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를 도네이션 프로를 통해 접하면서도 행동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나는 침묵하는 사람들 속에 있었다. 법학박사이자 인권 운동가인 매슈 대니얼스의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나에게 침묵하지 않은 사람들 속으로 움직이게 하는 책이다. 우리가 그동안 무엇을 침묵하고 살았는지 생각하고 반성하게 만든다. 침묵을 깨고 목소리를 내는 일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지 자세하게 알려준다.

 

매슈 대니얼스는 불안과 공포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안전이 보장되지 않은 뉴욕의 할렘에서 그의 어머니는 퇴근길에 괴한에게 폭행을 당했고 고통 끝에 세상을 떠났다. 그 지역은 모두에게 위험한 공간이었다. 언제 어디서나 누군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자신이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다는 악몽에 시달렸다. 삶 그 자체가 죽음과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도 악몽은 그를 괴롭혔다. 반복된 악몽, 그는 그것을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살피라는 소명으로 받아들였다. 과연 그것은 가능할까. 불가능하다고 믿는 나에게 이 책은 그 가능의 증거였다. 책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지 여러 사례를 통해 알려준다. 지금 접속하고 있는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통해 보편적인 기술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가 전해주는 이야기는 먹먹한 감동을 안겨준다. 우리 일상에서 만날 수 있는 사소한 행동이 불러온 나비효과는 위대하고 놀라웠다. 교회에서 목사님의 설교를 통해 아프리카 어린이들이 마음껏 물을 마실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자신의 생일 선물로 기부금을 부탁한다. 부모님의 SNS를 통해 홍보하고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레이철 가족은 사고를 당하고 아홉 살 소녀 레이철은 하늘로 떠났다. 하지만 레이철이 시작한 모금은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143개 마을에 우물을 선물했다.

 

우리에게는 당연하고 보편적이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범죄로 이어진다면 어떨까?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여성이 자동차를 운전하는 일이 그러했다. 불법이 아닌데 운전을 못하는가. 도대체 왜? 이런 의구심을 적극적으로 해결하려 했던 여성이 있다. 알 샤리프는 20011년 5월 급하게 볼 일이 있어 운전을 했야 했고 그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놀랍게도 그녀는 9일 동안 구금당했다. 그리고 결국은 고국에서 추방당했다. 그러나 차별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움직임은 더욱 활발해졌다. ‘우먼 투 드라이브(#Women2Drive)’란 캠페인에 수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운전 영상을 올린 것이다. 7년간의 해시태그(#)는 결국 2018년 6월 24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여성 운전 금지 정책을 폐지한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차별과 감시를 당했던 일은 또 있다. 바로 히잡이 그것이다. 이란의 열여덟 살 소녀 호자브리라는 체조선수는 히잡을 쓰지 않고 춤을 추는 영상을 올렸다는 이유로 체포되었다. TV에 출연해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며 눈물을 흘렸다. 또래 소녀를 생각하면 정말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호자브리의 모습을 본 사람들은 소녀를 지지하는 ‘댄싱 이즈 낫어 크라잉#DancingIsNotaCrime’ 로 지지한다. 호자브리의 사연을 읽으면서 축구장이 입장하려다 체포된 여성이 떠올랐다. 이란에서 여성들은 공공장소에서 노래를 부를 수도 없고 스포츠 행사에도 참가할 수 없다고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니. 이란 여성들은 스스로 조금씩 세상을 바꾸기 시작한다. 히잡 착용 반대 시위로 모바헤드란 여성이 테헤란 도심의 전기 설비 박스에 올라가 자신의 히잡을 막대기에 걸고 흔들었다. 예상대로 그녀는 체포되었고 영상은 확대되었다 이란에서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소셜미디어가 전부다. 그러나 우리는 그 소셜미디어를 통해 그들을 응원하고 지지할 수 있다. 해시태그(#동참합니다)로 충분하다. 세계 곳곳의 굶주린 아이들을 살리고 모기장이 없어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일도 디지털 미디어로 가능하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에서 만난 이들은 자신의 선한 영향력이 선순환 되는 기적을 예상하지 못했다. 그저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표현하고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음을 주고자 하는 작은 마음을 전했을 뿐이다. 아마도 그 마음은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란 저자의 말과 같을 것이다. 인터넷의 보급이 활발하지 않았던 시대에게는 상상할 수 없는 기적이다. 인터넷으로 사람들은 연대하고 공감하고 모두가 좋은 환경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협력한다. 반대로 인터넷은 누군가를 감시하고 사생활을 침범하고 권력을 위해 악용된다. 테러집단, 사이버범죄의 온상이 되기도 쉽다.

 

인터넷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인터넷에 접속할 때마다 우리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걸 기억해야 한다. 더 나쁜 쪽이 아닌 더 나은 쪽으로의 변화 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어렵지 않다. 책 표지가 알려주듯 지금 당신이 있는 그곳에서 클릭하고, 복사하고, 알리고, 좋아요를 누르면서도 가능하다. 당신이 하던 대로 #withyou, #동참합니다, #침묵하지않겠습니다, 하면 된다. 그것이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속으로 이동해 살아가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그 아름다운 변화를『침묵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한다면 더욱 근사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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