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의 시절이다 -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정지우 지음 / 포르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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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비가 잦은 5월이다. 누군가의 눈물일까 싶은 생각을 하니 저 비를 다 받아두고 싶다. 비를 좋아하기에, 비가 내리면 아련한 기억이 떠오른다. 하나의 우산을 받쳐 들고 연인과 빠른 걸음으로 빗속을 걷던 풍경. 서로에게 집중하던 시절이었고 그 시절이야말로 온통 ‘너’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다음의 행보가 각자의 우산을 걷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사랑을 말할 때, 사랑의 기억을 더듬을 때, 그 장면은 다정하게 나를 안아준다. 어쩌면 나는 정지우 사랑 애愛세이 『너는 나의 시절이다』를 통해 사랑의 애틋함을 마주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제는 사랑이라는 감정에 무감한 나를 흔들어줄 그런 글들을 기대했다고 할까.


사랑에 대한 사유가 언제나 감미롭고 아름다운 건 아니다. 우리는 사랑을 원하지만 사랑에 대해 다 안다고 믿고 사랑에 대해 소홀하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은 정성을 다하는 일이고, 즐거운 일이고, 함께 시간을 보내는 일이고, 그것에 몰입하는 일인데. 익숙함에 길들여져 어느 순간 그 모든 것들의 소중함을 놓치고 만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이 결국엔 하루하루 사랑하는 일이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다. 순간의 감정을 놓치고, 대화를 미루고 만다.


대화에 대한 정지우의 글은 나를 멍하게 만들었다. 열심히 기억하고 열심히 알려고 했던 시절을 생각나게 한 것이다. 하나라도 놓칠까 두려워 뭐든 다 알아내려고 했던 날들. 우리는 모두 반성해야 한다. 대화의 기본, 대화의 목적은 결국 서로에 대해 스며드는 거라는걸.


각자 서로에게 무엇이 중요하고, 그것이 어떻게 다른지에 관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에서부터 일일이 확인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치 기계적으로 장부를 작성하듯이 서로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외우고, 주입식으로 암기해야 한다. 사실, 그것이 대화이고 이해인 것이다. (41쪽)


사랑에 대한 글은 결국 우리 삶에 대한 이야기다. 사랑의 대상은 무한하고 사랑에 대한 감정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정지우가 들려주는 사랑 역시 그러하다. 일상에서 마주하는 사랑, 우리를 구원한다고 믿는 그 사랑은 과연 무엇일까. 지금의 나를 만든 사람들, 지금까지 나를 견뎌준 사람들, 그리고 내일도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 그들에 대한 애정을 기억하고 끊임없이 서로를 생각하는 일, 그 모든 게 사랑일 것이다.


어제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었던 일을 기억하는 것, 오늘 당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내일도 사랑하리라 믿는 것. 결국은 그 무한한 순환고리, 논리가 파괴되는 동어반복과 자가당착의 세계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며 빠져나오지 않는 것, 그게 사랑의 전부일 것이다. (132쪽)


정지우의 담담한 사유를 읽으면서 사람을 향하는 선한 마음을 지키는 일에 생각한다. 이익에 따라서 사람을 대하는 관계로 상처받고 마음을 굳게 닫았던 날들, 모두와 잘 지내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피곤했던 시절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게 나를 향한 선의의 마음들 때문이었다는 사실에 감사하는 것이다.


한 사람을 만나고 그 사람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은 놀라운 기쁨을 안겨준다. 그것은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를 알아가는 일이라서 그렇다. 예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라고 할까. 타인이었던 당신과 내가 우리로 속하는 일이라는 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설령 다시 타인으로 돌아갔더라도 그 아름다운 관계의 첫 떨림을 생각하면 나쁨보다는 좋음으로 기억될 것이다. 뒤늦은 깨달음이라고 해도 괜찮다. 살아가는 일도 그런 것 같다. 아이가 주는 감동을 통해 부모가 주신 사랑을 비로소 알게 되는 것처럼. 우리가 모르는 세계는 여전히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 안에 숨겨진 사랑과 비밀을 발견하는 일이 우리에게 주어진 의무일지도 모른다.


사랑하는 상대의 비밀스러움과 무한함은 곧 내가 속한 공간 전체로 확대되어 나간다. 내가 속해있는 이 공간이, 이 세계가 둘도 없는 어떤 느낌으로 다가온다. 이 세계가 무언가로 가득 차있다. 이전에 알던 그런 세계감이 아닌 다른 세계감, 세계의 낯선 이면, 그 세계성이 불러오는 감각이 우리를 휘감는다. 그렇게 우리는 사랑의 공간에, 사랑의 시간에 속하게 된다. (186쪽)


정지우의 글은 흐림의 기분을 맑음으로 이동시키는 힘이 있다. 혼탁한 마음이 정갈해진다고 할까. 복잡한 감정들이 차분하게 정화된다. 또한 따뜻한 차를 마시는 것 같다. 뜨거운 차가 아닌 알맞게 식혀 따뜻한 기운을 안겨주는 글이다. 아내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면서도 자신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길 줄 아는 사람의 글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 것 같다. 아내와 아이에게 종종 노래를 불러주는 사람, 수영을 할 때마다 아버지를 떠올리고, 운전을 할 때마다 어머니를 떠올리는 사람, 여동생과 한 방에서 잠들며 수다를 떠는 사람의 글에는 온기가 있다. ‘우리는 화목하니까’, ‘화해할 수 있으니까 괜찮다’는 말이 내게로 왔다. 그래, 조금 다투더라도 화해하면 된다. 조금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불화가 아닌 화목하니까 된다는 마음이 전염된다. 기분 좋은 전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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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5-24 1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뭔가 따뜻한 책일거 같네요. 표지부터 마음에 듭니다~!! 이런 내용의 책은 많은데 자목련님 리뷰 보니 읽어보고 싶네요 ^^

자목련 2021-05-25 09:45   좋아요 1 | URL
사랑에 대한 철학적 사유와 일상에서 느끼는 사랑에 대한 잔잔한 글이라고 할까요.
어떤 부분은 어렵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쁘지 않았어요. 새파랑 님, 활기찬 화요일 보내세요^^
 
너라는 생활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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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끝내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상대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혼자 남는다는 두려움, 이별 그 후에 대한 걱정일지도 모른다. 혈연으로 연결된 가족 사이도 얼굴을 보지 않고 그저 가끔씩 안부만 묻는 사이로 지내기도 하는데. 도대체 사랑이라는 건 뭘까. 어쩌면 그런 감정들은 사랑이라는 말로는 채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너’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으로 채워진 소설집. 너의 행동과 말투, 너의 일상이 나는 때로 안쓰럽고 때로 답답하고 때로 화가 난다. 그러나 정작 나를 너를 놓지 못한다. 나는 너를 끊어내지 못하고 네가 안타깝고 네가 아프다.


김혜진의 단편집 『너라는 생활』의 8개의 단편은 모두 ‘너’와 ‘나’의 이야기다. 8편의 단편에 각기 다른 인물,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지만 마치 하나로 연결되어 서로의 과거나 현재인 것처럼 여겨진다. 수많은 타인 속에서 특정한 한 사람, ‘너’를 향한 마음이라고 할까. ‘너’는 연인이 될 수도 있고,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 일 수도 있고, 친구 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특정한 한 사람이 아니라 이웃이나 주변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인의 경우는 모두 여성 커플이다. 여전히 누군가의 시선에선 이상한 사람들, 불편한 존재로 보인다.


표제작 「너라는 생활」에서 ‘너’는 취업을 위해 복지관에 면접을 보러 간다. 그 자리에 동행한 ‘나’는 네가 당하는 일, 그러니까 담당자가 너를 무시하고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는 모습을 본다. 나는 화가 나지만 너는 어떡해서든 그 자리에 일하고 싶고 끝까지 담당자에서 그동안의 경력을 말한다. 구차하게 매달리는 모습이 너무 싫어서 너를 끌고 나가고 싶다. 너는 언제나 너무 착하고, 사람에게 친절하고, 공과 사의 경계가 없다. 처음에는 그런 너를 돕고 너와 같이 행동하고 싶었지만 언제부턴가 나는 점점 화가 난다. 힘든 하루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너를 위로하지만 마음속은 언제나 복잡하다. 관계를 끝내야 할 때가 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끝내지 못하는 나에게 너는 전부가 된 것이다.


그만하자, 헤어지자, 내내 벼르듯 쥐고 있었던 그런 말은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리고, 내일은, 모래는, 더 좋아질 거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렇게 오 년이 지났구나, 이대로 십 년이 가고 또 십 년이 갈 수 있겠구나, 그런 생각에 오싹해지면서도 네가 없는 생활은 상상할 수 없고, 감당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너라는 생활」, 86쪽)


혼자서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자정 무렵」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를 배려하지 않고 너의 생각, 너의 모임, 너의 관계망 속에 아무렇지 않게 나를 흡수시키려는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나에게는 오직 너와의 시간이 중요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은데 그걸 몰라주는 너를 이해해야만 할까. 너는 왜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의 일이 더 중요한 것일까.


나를 이곳까지 끌고 온 게 너라는 확신을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면 내가 벗어나고자 하는 건 이 낯선 동네가 아니고 바로 너라는 사람이라는 사실도. 실은 그것이 오래전부터 내가 바라온 일이라는 것도 분명하게 깨달을 수 있다. (「자정 무렵」, 115쪽)


김혜진은 소설 속 너와 나의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들려주지 않는다. 나에 대한 것도 그러하다. 너와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것 정도. 그러니까 어떻게 만남이 시작되고 어떻게 현재까지 이어졌는지 구체적인 에피소드는 등장하지 않는다. 처음의 호의, 처음의 설렘, 처음의 기대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말이다. 네가 만나는 이들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이 많고, 비주류의 삶은 산다. 공감과 연대로 시작됐을지도 모른다. 그 연대를 지지하고 오래 이끌 수 있는데 필요한 건 무엇일까. 사회적 지지도 그중 하나일 것이다. 여자 두 명이 함께 한 집에서 살아가는 이상한 일은 아닌데 사람들은 보통이 아닌 특별한 삶이라 여긴다. 김혜진의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에서는 가장 가까운 엄마조차 그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전반의 시선은 얼마나 따가운지 짐작할 수 있다.


이상한 사람들.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 직장이 없는 사람들. 가족이 아닌 사람들. 밤에도 낮에도 할 일 없이 동네를 어슬렁거리는 사람들. 서로의 신분을 보장해 줄 수 있는 것이 너와 나뿐인 사람들. (「동네 사람」, 128쪽)


사소한 말투에 감정이 상하고 누군가 관계를 맺고 살아간다는 건 그 삶의 일부가 되거나 그 삶에 깊숙이 파고드는 일이다. 자신의 모든 일에 끊임없이 지지할 거라 믿는 순간이 어느새 사소한 말투에 감정이 상하고 만다.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다른 관계를 생각하게 된다. 너와 나는 영원한 우리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너와의 관계는 왜 이렇게 계속 이어져온 것일까. 완전히 연락이 끊어지고 그래서 처음부터 모르는 사람처럼 서로의 삶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릴 몇 번의 기회가 있었는데. 서로에 대해 편안한 기억만 나눠 가질 수 있었는데. 나는 왜 겁도 없이 네 연락을 받고, 안부를 듣고, 네 삶에 조금씩 더 가까이 다가서는 걸 포기하지 못한 것일까. (「우리는」, 172쪽)


함께 한 시간이 너무 많이 쌓여서 분리될 수 없는 우리가 된다는 건 그 모든 걸 감당할 준비가 되었다는 말이다. 결국 너와 나는 처음부터 달랐다는 걸 인정하는 일이다. 그 처음이 서로를 향한 강한 끌림이었을지라도. 소설 속 ‘너’와 ‘나’는 현실 속 ‘너’와 ‘나’의 이야기가 될 수 있는 이유다. 우리로 살아간다는 건 간단하지 않고 여전히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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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1-06-05 17: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혈연은 모르겠지만, 타인이나 물건에 대해 소중함을 느끼는 것은 그 들인 시간이라고 어린왕자에선가 본 것 같아요 ^^
그리고 이달의 당선작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6-07 08:40   좋아요 0 | URL
^^*
 

5월의 비는 무슨 빛일까. 초록빛일까. 그건 봄의 색일까, 여름의 색일까. 봄이어도 좋고 여름이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5월의 첫날부터 비가 내리더니 비를 만나는 날이 많아졌다. 비는 고요함을 요구한다. 빗소리를 들고자 한다면 더욱 그렇다. 창에 닿은 비의 흔적은 창을 열고 보면 찾을 수 없다. 비가 오고 있는 순간이어도 비는 없는 듯 보인다.





느닷없이 더위가 몰려오는 것 같더니 서늘해졌다가 다시 이 비가 그치면 봄날이 올 거란다. 봄날이 온다는 건 활동하기 좋은 날이 온다는 말인지도 모른다. 코로나와 함께 살아가는 일상에 활동하기 좋다는 게 딱히 즐거움으로 다가오지는 않지만.


그래도 봄날은 봄날이어야 하고 감자꽃은 피어야 하고 장미도 피어야 한다. 꽃들은 피어나고 모를 심을 준비를 하는 논에는 충분할 정도로 비가 왔으니 5월의 비는 좀 쉬어도 좋겠다. 어쩌면 작년처럼 비가 많은 날들이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예측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게 좀 슬프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이 다 지났다. 특정한 누군가의 날이 있다는 건 그만큼 그들에 대한 보편적인 사랑이 부족하다는 증거인 지도 모른다. 주변에 가까이 지내는 어린이가 없다. 어린이는 귀엽고 사랑스럽다. 소중하고 귀한 존재다. 그런 어린이가 자라서 성년이 되고 누군가는 어버이가 될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군가의 스승이 될 수도 있겠다.


주말 스승의 날에는 나의 유일한 스승님께 꽃을 선물로 보내드렸다. 카네이션을 고를까 하다가 수국을 골랐다. 내가 좋아하는 수국을 선물하는 이기적인 제자다. 수국이 선생님께 도착하는 시간까지 걱정이 많았다. 수국의 상태를 알 수 없어서다. 그건 판매자에 대한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꽃을 주문할 때마다 그런 것 같다.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에 대한 불안함.





5월의 비는 계속 이어질까. 5월의 비와 함께 읽고 싶은 책은 나희덕의 『예술의 주름들』, 구병모의 『바늘과 가죽의 시』,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다. 시인이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 신비로운 동화를 연상시키는 소설, 그리고 소설에서 죽음을 그렸던 소설가의 에세이.


5월의 절반이 훌쩍 지나고 2021년의 절반을 향하고 있다. 시간은 왜 이리 빨리 가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수요일의 쉼표를 생각하면 빨리 가는게 좋은 걸까.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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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1-05-17 11:0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수국수국 복스럽네요. 색도 어쩜 저리 이쁠까요.
꽃을 받고 싶을 때가 있죠. 어떤 꽃이든 좋구요. 주는 사람의 마음이 담긴 것이니.
살아 있는 식물의 이동, 걱정되는 맘 공감해요. 저도 그런 마음 든 적이 있거든요.
이번 어버이날에 작은아이가 멀리서 이곳 꽃집을 통해 꽃바구니를 보냈는데 넘 안타까운게
그날 주문량이 많아서였는지 몰라도 바구니가 넘 엉성하고 꽃 몇 개는 거의 시들하고 ㅠㅠ
아이가 보낸 마음을 아니 더 안타까워서 씁쓸했어요. 그래도 아직 몇 송이는 따로 작은 화병에
꽂아 살렸네요.^^ 자목련 님 건안하시길요. 어느새 오월도 중반을 지나다니요^^

자목련 2021-05-19 15:01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 님, 안부 너무 반갑고 감사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국수국의 날들인 것 같아요. 꽃은 언제나 좋아요.!
따님이 보낸 꽃바구니 그 마음을 생각하면 저도 속상하네요.

프레이야 님, 향기롭고 맑은 5월 이어가세요~
 
술과 농담 말들의 흐름 7
편혜영 외 지음 / 시간의흐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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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혜영의 산문을 읽은 기억이 없다. 어디선가 읽었을지도 모르는데. 술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마구 취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많았다. 그렇지만 술을 마시고 읽었다면 아무런 감흥을 느끼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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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최석규 지음 / 좋은땅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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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같은 오늘에 만족하면서 다른 오늘을 살기를 바란다. 뭔가 대단한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건 아니다. 그저 조금은 다른 삶, 조금은 의미 있는 삶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 저마다 추구하는 게 다르겠지만 중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최규석의 단편집 『소설이 곰치에서 줄 수 있는 것』를 읽으면서 소설 속 인물이 원하는 삶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싶었다.


표제작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의 주인공 곰치는 떼인 돈을 받아주거나 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수집하는 일을 한다. 상대에게 욕을 하거나 위압하는 게 일상이다. 그런 그가 우연하게 소설 합평에 참여한다. 소설을 쓰는 이들의 모임에서 그는 학상시절을 회상한다. 심부름센터의 곰치가 아닌 문예반에서 자신의 글이 일등이었던 때가 있었다. 곰치는 그때의 스승을 찾으면 다시 책을 읽는다. 곰치가 아닌 ‘차석주’로 살았던 시절에 대한 그리움일까. 아니, 이제라도 ‘차석주’로 살고 싶은 간절함인지도 모른다.


곰치가 살아온 세상은 늘 이랬다. 아픔의 이유를 생각하는 것도 부질없었다. 그러는 동안 심장은 밤 껍질처럼 단단해졌다. 발목에 숨겨 놓은 잭나이프로도 그것은 베어지지 않았다. (「소설이 곰치에게 줄 수 있는 것」, 20쪽)


지금의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 그건 과거로 돌아가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 무언가 놓치고 잃어버렸다는 걸 인식했을 때에는 이미 늦었다. 돌이킬 수 없는 삶에 대한 후회가 밀려올 뿐이다. 사라진 아내를 찾는 과정을 담은 「회전초」 속 남편과 아내가 그러하다. 앞만 보고 열심히 일했을 뿐인데 삶을 행복하지 않았다. 아내와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었다. 사람을 찾아주는 사설업체에 의뢰를 하고 아내에 대해 알아가는 동안 남편은 그제야 느낀다. 아이를 잃은 상처를 위로하기는커녕 서로를 힐난하고 회피했던 지난 시간을. 처음 아내를 만났던 순간, 함께 그림을 보고 아내의 글을 읽고 감상을 말해주던 순간의 감정들. 어쩌면 우리도 소설 속 아내와 남편처럼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괜찮지 않으면서도 괜찮은 척, 나아지는 게 뭔지도 모르면서 언젠가 지금보다 나아지면 다 잘 될 거라고 미루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생각하게 만든다.


그럼, 어제만큼만 살아도 충분하다고 말해도 괜찮은 걸까. 하긴 어제만큼 살기도 힘든 세상이다. 코로나19의 시대에서는 특히 그렇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 모든 걸 통달한 이들을 찾는다. 그들에게 뭔가 특별한 가르침이 있을 것 같으니까.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속 ‘나’가 스스로를 고수라 말하는 노인에게 반하는 것처럼. 틱장애가 있는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지낸다. 어릴 적부터 잘 알던 형의 운영하는 태권도 도장에서 절대 고수를 만난다. 노인은 형에게 대결을 청한다. 노인의 사상에 빠진 나는 그 대결을 성사시킨다. 고수는 진정한 고수였을까. 자신을 믿었던 노인에게는 그럴지도.


고수는 절대 튀지 않는다. 진짜 절대 무공은 아주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 숨어산다. (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 40쪽)


이 단편은 노인과 형의 대결의 결과에 대한 궁금증이 가장 큰 이야기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가 우연하게 만난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챙기는 혜영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혜영 역시 다양한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면서도 길고양이를 돌보는 일을 한다. 동네 사람들은 길고양이의 중성화 수술에 대해 관심이 없고 그저 고양이들이 사라지기만을 바란다.


난 진실을 말하는데 사람들은 관심조차 없어요. 하지만 이해는 해요. 진실이란, 사실이 아니잖아요. 각자 믿고 싶은 것을 말하는 거지. ( 「할슈타트에서 온 절대 무공」, 58쪽)


각자 믿고 싶은 것들을 말할 수 있다면 그건 좀 나은 삶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다가 우리는 믿고 싶은 것들을 감추거나 말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일까. 제목의 ‘곰치’ 대신 나의 이름을 넣어 보았다. 소설이 나에게 주는 건 무엇일까. 더 많은 삶, 더 많은 이야기, 그것들을 통해 때때로 안도하며 숨겨두었던 감정들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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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선 2021-05-12 01: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수, 절대 무공은 평범한 모습으로 우리 사이에 숨어 산다는 말 맞는 것 같기도 하네요 소설이 여러 사람한테 도움이 되고 잠시라도 위안이 되면 좋을 듯합니다 그런 게 없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건 그것대로 받아들여야겠지요


희선

자목련 2021-05-12 08:56   좋아요 1 | URL
맞아요, 특별한 재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꾸준하게 하는 사람들이 고수 같아요
희선 님,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