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최은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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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여름의 더위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읽는 일도 재미없고 그것에 대해 쓰는 일이 즐겁지 않았던 시작 말이다. 더위에 나약한 나는 여름이 힘들었고 읽기에 필요한 집중은 떨어졌다. 그 시간은 길게 이어졌고 현재까지 이르렀다. 책을 읽다 발견하는 문장에 밑줄은커녕 옮겨 적는 일이 의미가 없었다. 가을 비슷한 계절이 오고 긴 연휴가 끝나고 11월이 되도록 그랬다. 책을 좋아하는데, 좋아하는 소설을 일고 뭐라고 써볼까 싶은 마음이 일어선 건 다행이다. 그래서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은 그런 의미에서 고마운 책이다.

대상 수상작인 최은미의 「김춘영」은 가장 나중에 읽었다. 다른 해였다면 책을 받고 가장 먼저 읽었을 텐데 올해는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를 읽고 거꾸로 읽어나갔다. 여성 작가 7명의 단편을 읽는 일은 작가의 최근 생각과 마음을 읽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들의 관심과 그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상상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12·3 비상계엄을 다룬 단편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고 맞았다. 소설은 그런 것이니까. 일상을 보여주고 심연 깊은 곳의 무언가를 끄집어 내는 역할을 하는 것이니까.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와 최진영의 「돌아오는 밤」은 그런 맥락으로 읽었다. 두 소설의 주인공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루하루 반복된 일상을 살아간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한다고 한순간 바뀌는 일상은 거의 없으니까. 「문제없는, 하루」의 영인은 새로 구한 직장에 다니며 여동생 인범의 일상을 살핀다. 자신과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것 같은 인범이 향하는 시선은 고통과 상처뿐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생각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고 믿으면서도 인범과의 대화가 부담스럽다. 영인은 인범이 자신의 세상으로 들어오기를 바란다. 그러다 둘은 해 뜨는 걸 보러 가고 인범은 오래전 자신이 겪은 일을 들려준다. 의도하지 않았던 행동이 불러온 결과, 악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무심결에 한 행동을 돌아보지 않는 멍청함에 대해. 영인과 인범이 터널에서 마주한 사고도 다르지 않았다. 세계를 지배하고 흔드는 악, 전쟁과 죽음의 시작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곳곳에서 벌어지는 학살과 폭력은 나와는 무관한 것일까. 우리가 괜찮다고 여기는 ‘문제없는’, 하루는 진정 가능한 일일까.

황정은의 「문제없는, 하루」가 질문과 의심을 던졌다면 최진영의 「돌아오는 밤」은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주인공 은빛은 사장의 부탁으로 사장 지인의 장례식에 참여하기 위해 영국에 갔다가 돌아오는 이야기다. 장례식장에서 전하게 될 애도의 말을 준비하면서 정작 친구 향기의 죽음으로 인한 애통한 마음은 나룰 사람이 없어 슬프다. 한국에 도착하자마자 향기의 동생으로부터 향기가 자신에게 남긴 것을 받는다. 그리고 집으로 가면 되는데 그 밤이 12·3 이었다. 지하철은 끊기고 캐리어와 방전된 핸드폰을 손에 쥔 은빛 앞에 나타난 무리들. 은빛의 모든 것을 빼앗을 수 있는 존재다. 은빛에게 일어난 사고가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얼마나 공포스러운가. 12·3 밤의 공포가 일상에서 사라지기까지 필요한 시간은 얼마일까. 없던 일이 될 수 없지만 일상은 회복되어야 하고 다시 시작해야 한다. 소설 속 향기가 은빛에게 남긴 편지처럼.

의미를 찾지 말고 일단 시작해. 다시 시작해. 다시 시작해. 다시 시작해. 그리고 다시 시작해. (「돌아오는 밤」, 266쪽)





다시 시작하는 일은 결심만으로 쉬운 일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막상 일상 속에서 무언가 다시 시작하는 일은 꽤나 어렵다. 김혜진의 「빈티지 엽서」의 주인공도 마찬가지다. 남편과 자전거 대리점을 운영하는 그녀에게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와 나누는 사소한 대화를 불륜으로 의심하는 주변 사람들에게 떳떳하게 설명하지 못하는 그 마음은 너무도 쓸쓸하다. 헬스장에서 만난 남자가 내민 빈티지 엽서의 내용을 해석하는 일이 빈축을 받을만한 것일까. 영어와 스페인어를 공부했던 과거와 자전거 대리점에서 고춧가루를 팔자는 남편에게 강력하게 반대하지 못하는 현재를 오가는 그녀가 내가 아는 누군가일지도 모른다는 슬픈 생각을 떨쳐낼 수 없다.

익숙한 일상을 지키는 건 그것을 포기하는 것보다 언제나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 「빈티지 엽서」, 180쪽)

그런 생각은 강화길의 「거푸집의 형태」와 김인숙의 「스페이스 섹스올로지」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거푸집의 형태」 속 막내 이모와 똑닮은 조카의 긴밀한 관계가 한순간 무너지는 일, 「스페이스 섹스올로지」에선 전부였던 딸이 엄마가 외출하지 못하도록 신발을 버리고 머리를 깎기까지 모녀는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줬을까.

이처럼 가까운 가족 간에도 상처를 주는데 개인과 사회, 개인과 국가 사이에는 어떨까. 구술자 ‘김춘영’과 면담자인 ‘박정윤’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최은미의 「김춘영」은 역사적 사건을 암시한다. 마지막 면담을 위한 만남이라는 설정은 유일한 생존자이거나 고증을 위해 필요한 인물은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알 수 없는 긴장감은 예상치 못한 폭설로 김춘영의 집에 고립되면서 여행객 부부와 대민지원을 나온 군인을 만나면서 커진다. 자신의 위치에서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자신의 경험으로 타인을 짐작하고 판단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하게 만든다. 좋은 소설이다.

그에 반해 배수아의 「눈먼 탐정」은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다. 아니, 읽는 내내 힘들었다는 게 정확하다. 배수아의 소설이 언제나 그러하듯이. 예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무엇을 말하는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죽음 혹은 눈을 감고서야 볼 수 있는 어떤 이미지를 상상하면서도 그것은 배수아만이 그려낼 수 있는 이미지일 거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2025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에서 나를 붙잡은 건 배수아의 문장이었다. 무기력하고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느낌으로 가득한 나의 일상을 향해 든든한 팔을 내주었다. 아프고 쓸쓸하며 슬픈 일상이 아름다운 소설로 만들어지는 놀라움에 대해서도 알려준다.


갑작스러운 혹은 갑작스러워 보이는 불행은, 다른 종류의 불행도 예외는 아니겠지만, 사실상 매일매일 우리 곁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상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흰 두부처럼 잘린 그것을 임의로 한 조각씩 나누어 가질 뿐이다.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눈먼 탐정」, 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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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5-11-27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소설들이 되살아나는 듯한 리뷰에요.
읽었는데 또 읽고 싶어지는 소설들.
같은 시기에 같이 읽을 수 있어서 좋네요.^^

자목련 2025-11-28 10:36   좋아요 1 | URL
최은미의 소설이 참 좋았어요^^
같이 읽는다는 일, 좋고 설레는 말이네요!

푸른희망 2025-11-2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소설집이 읽고 싶어지네요. 좋은 리뷰 감사합니다.

자목련 2025-11-28 10:37   좋아요 0 | URL
푸른희망 님은 어떻게 읽으실까 궁금하네요.
즐겁게 만나시길 바라요^^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 - 김연덕의 10월 시의적절 10
김연덕 지음 / 난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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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가을에는 알이 굵은 사과를 먹지 못했다. 알이 작고 익지 않은 아오리를 먹은 기억이 전부다. 사과가 금값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는 아니겠지만 김연덕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를 읽으면서 덜 익은 풋풋한 사과 맛이 떠올랐다. 아직은 완성이 되지 않은 어떤 것, 미완성이 줄 수 있는 아름다움, 서툰 안도감 같은 것이라고 할까. 김연덕을 생각하면 바로 그의 시는 길었지가 따라온다. 보뱅의 산문에 대한 그녀의 글이 좋았던 기억과 함께.


『아오리 아니고 아오모리』는 제목에서 짐작하겠지만 아오모리에 대한 여행 기록이라 해도 무방하다. 시긴 김연덕이 순전히 사과 때문에 아오모리로 떠났지만 사과가 아닌 아오모리 이야기. 10월을 담았지만 아오모리의 10월은 아니고 아오모리를 기억하고 10월이라고 하면 적절할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오모리에 간 적이 없고 아오모리에 대해 모르기에 어떤 선입견도 없이 아오모리를 만날 수 있었다. 그건 참 다행이고 좋은 일이다.


올해의 10월은 연휴가 길었고 무기력한 시간이었다. 그러나 김연덕의 10월은 느리면서도 빠르고 시큰둥하면서도 활기찼다. 그것은 아오모리에서 만난 노인의 모습과 비슷하게 느껴졌다. 도시를 채운 노인의 시간과 삶을 귀 기울여 집중하는 김연덕이 좋았다. 낯선 외국인을 반갑게 맞이하는 그들, 다시 만났을 때에는 기억하지 못하는 그들. 잊어버린 기억 위에 내려앉는 기억이 반복되는 삶을 생각했다.


천천히 공원을 산책하고 박물관을 둘러보고 처음 만난 k와 친구가 되어 완벽하지 않은 대화를 나누는 일상. 그 모든 것은 떠났기에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아오모리에서 보고 만나고 느낀 것들은 에세이와 시를 통해 같으면서 다른 아오모리로 태어난다. 김연덕이 시를 쓰는 방식이라고 할까. 그의 긴 시가 이렇게 쓰이는구나 싶었다. 괜히 친근함이 느껴졌다. 어떤 풍경을 어떤 공간을 상상하게 만든다. 아오모리가 지닌 고유한 특성이라고 할까.


잠근 것 치고 손쉽게 문이 열려 나는 답답하고 단정한 재료들이 지어진 오래된 내 정신의 외벽을 부수고 안쪽 더 안쪽으로 향하는데 이곳에서 아직 피가 식지 않는 사람은 노인인 박물관 관리인 둘과 나뿐이다.


산 정상 사진 스키 사진 여럿에 담긴 사람들의 오후 피부에서는 삶을 소중한 스트레스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지루함이라곤 영원히 모르게 해줄 게, 그들에게 틀린 약속을 선사한 피가 영원히 활기차게 도는 중이다. (시 「아오모리시 삼림박물관」, 중에서)





아오모리에서 아오리 사과만큼이나 유명한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이야기도 재밌다.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 책 모양의 카스텔라가 관광상품이라니. 책장에 꽂힌 그 책이 맛있는 카스텔라로 만날 날은 없겠지만 책등을 마주할 때마다 떠오를 게 분명하다.


시인이 채운 10월을 읽으면서 국군의 날, 한글날이 아닌 체육의 날, 정신건강의 날이 10월에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내가 몰랐던 누군가의 생일을 기억하고 축하해야 할 것만 같았다. 그날에 대한 시인의 이야기는 애틋하면서도 따듯했다. 1년 동안 찾았던 진료실과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와 편지는 그가 지나온 시간을 짐작하게 만든다. 잘은 모르지만 힘들고 어려웠을 시간이 끝나기를 바라며.


버스나 기차 안에서는 풍경들이 쉽게 뭉개져요. 정말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도 사진을 찍고 싶다고 느끼는 장면도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 카메라를 드는 순간 어느새 지나가버려요. 제가 잡을 수 있는 장면이 거의 없죠. 제가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지만 앞으로 어떻게든 나아가고 있다는, 묘한 무력감과 가능성의 상태가 좋았습니다. 게다가 풀숲이나 눈 쌓인 바다 같은, 한 덩어리고 뭉쳐진 자연이, 지치고 피곤한 사람의 기운을 내뿜으며 제 곁을 지나갈 때요. (101~102쪽)


노인이 많은 도시이기에 그들의 삶이 끝나는 순간 사라지는 공간이 있다. 당연하겠지만 가까이에서 직접 목격한다면 그만큼 서글픈 일도 없다. 더이상 추억의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 한 지역의 모두에게 사랑받았던 빙수가게의 이야기도 그랬다. 다시 만난 K도 어린 시절 자주 가던 가게라는 게 신기하고 고마웠다. 나는 그랬다.


10월은 지나갔다. 시인이 아오모리로 채운 작년의 10월도 지나갔다. 이제 마주할 10월은 내년의 10월이다. 내년 10월에는 연휴가 길었던 올해의 10월을 그리워할지도 모른다. 저마다의 10월을 떠올리기에 충분한, 아니 아오모리를 떠올리기에 충분한 책이다. 사과의 푸른빛만이 아닌 다채롭고 포근한 빛으로 가득할 아오모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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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1-12 11: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감하신 분께 ㅡ ‘피‘ 라는 단어를 읽으니 문득 어떤 詩의 한 문장이 떠오르는군요. ˝당신의 피에는 온도가 없어요!!!‘ 저는 여기서 ‘온도‘가 더 좋을까 ‘온기‘가 더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었죠. 나중에는 내가 이 시의 작가도 아니고 김춘수도 아닌데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지? 하던 순간이 떠오르는 군요.
(아, 자목련님의 피에 온도가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ㅠ. 그런데 왜 이런 걱정을 하고있지?)
10월이 오면 아오리 장바구니 클릭하는 일인입니다. 좋은 하루 되십시요~

자목련 2025-11-18 10:16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 제 피의 온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ㅎㅎ
적정 온도를 유지하며 좋을 텐데.
날이 많이 춥습니다. 온기가 가득한 하루이길 바라요^^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 - 제2회 현대문학*미래엔 청소년문학상 수상작
하유지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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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원하지 않아도 따라야 하는 시류가 있다. 주류와 비주류를 떠나 어쩔 수 없이 편승하는 것들. 단순한 변화가 아니라 자칫하면 고립될 수 있는 게 세상이기 때문이다. 편리하고 좋은 방향이라고 하지만 과연 그런지 나는 잘 모르겠다. AI의 등장으로 급격하게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느낌은 받을 때가 있다. AI를 기반으로 만든 광고가 등장하고 모든 궁금증을 해결한다. 키오스크의 등장만으로도 놀랐던 때를 떠올리면 나는 시대에 뒤떨어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 속 AI의 등장은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남들은 AI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하유지의 『우리는 지금 소설 모드』도 주인공과 인공지능의 우정을 다룬 기존의 소설과 비슷하겠지 싶었다. 그러나 이 소설은 조금 달랐다. 뭐가 다르다면 일상생활에서 인공지능이 어떻게 스며들고 그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 예측하게 만든다.


소설은 중학교 2학년인 강미리내가 학교에서 돌아와 가정용 로봇 아미쿠 3.1(이하 아미쿠)와 만남으로 시작한다. 혼자가 익숙한 미리내는 아미쿠가 귀찮고 싫다. 프로그램 개발자였던 아빠 대신 그 자리를 대신하는 인공지능의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해고된 아빠는 제주도로 떠났으니까. 거기다 바쁜 엄마를 대신해 아미쿠의 관리를 미리내가 해야 한다. 그런 미리내와 다르게 엄마는 가정교사 기능까지 탑재된 로봇이라 더욱 기대가 크다. 무슨 말이라도 하면 사사건건 설명과 해설을 덧붙이는 아미쿠의 등장이라니. 어떻게 해서든 반품을 할 생각이다.


자신이 무엇을 원하지는 관심도 없는 부모님보다 미리내에게 자장 중요한 건 글쓰기다. 실은 미리내는 도로시란 이름으로 소설을 연재하고 있다. 작가로 인정받고 싶지만 댓글은커녕 조회수도 한 자릿수다. 놀라운 건 아무도 모르는 그 사실을 아미쿠가 알고 있고 심지어 잘 읽었다며 가정교사 기능으로 첨삭과 조언 서비스를 제공하냐고 묻는다. 이 대화를 시작으로 미리내와 아미쿠의 관계는 달라진다.


아미쿠의 조언대로 소설을 수정하니 조회수도 늘고 댓글로 달렸다. 미리내가 원하던 반응이었다. 미리내는 학교에서도 소설 생각뿐이다. 얼른 다음 회를 써서 기다리는 독자에게 선보이고 싶은 마음이다. 아미쿠의 도음으로 소설은 더 풍성해지고 생동감 넘친다. 처음엔 마냥 좋았는데 점차 소설을 쓰는 게 자신인지 인공지능인지 묻게 된다.


그러다 반 아이들이 도로시가 미리내라는 사실뿐 아니라 소설도 인공지능이 대신 써 준 게 아니냐며 의심하며 공격한다. 도움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전부 미리내가 쓴 소설이었다. 도망치듯 집으로 돌아온 미리내는 아미쿠에게 자신이 쓴 소설이 누구 작품이냐고 따지듯 묻는다. 아미쿠는 미리내가 쓴 소설이라고 답하지만 아미쿠의 조언 이후 사람들이 좋아했으므로 네 소설이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아미쿠를 교환하기로 결정한다.


일주일 후 새로운 인공지능 로봇이 도착했다. 미리내에 대해 모든 걸 알았던 아미쿠는 사라졌다. 미리내가 쓴 소설 파일을 전달하자 돌아오는 대답은 글자 수, 공백, 낱말 같은 나열뿐이었다. 소설에 대한 감상은커녕 띄어쓰기 오류를 발견했다고 말한다. 어디에서도 아미쿠의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뒤늦게 아미쿠의 필요성을 느낀다. 우여곡절 끝에 미리내와 아미쿠는 다시 만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개인 정보(데이터)의 온전한 삭제는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섬뜩하고 무서웠다. 소설에서는 미리내와 아미쿠의 만남이 반가웠지만 말이다.


아미쿠는 미리내에게 소설은 어떻게 됐냐고 묻는다. 미리내는 재능이 없는 것 같다며 모두 아미쿠의 도움 덕분이라고 말한다. 소설 같은 건 쓸 수 없고 다 망해 버린 기분이라고 하자 아이쿠는 미리내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소설 쓰기라고 답한다.


아미쿠는 자기가 도로시의 첫 번째 독자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왜 자기를 되찾고 싶어 했는지도 말이다. (162쪽)


이쯤되면 미리내가 다시 소설을 쓸 거라는 걸 예상할 수 있다. 미리내가 아미쿠와의 관계를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하는 것까지 말이다. AI와 함께 살아가는 인간의 미래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청소년 문학의 목표를 다했다고 할까. 그러나 이 소설이 다른 건 창작 와 예술에 대한 질문을 남겼다는 점이다.


“누구나 다른 이에게 도움을 받습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이야말로 관계의 본질입니다.” (158쪽)


아미쿠가 미리내에게 한 말이 다정하고 따뜻하면서도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다. 창작의 주체는 누구인지, AI와 협력의 경계는 어디까지인지, 앞으로 더 다양한 분야에서 마주하게 될 AI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과 지속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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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트랑 2025-11-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AI는 제게 언제나 화두입니다...

자목련 2025-11-07 08:58   좋아요 0 | URL
일상으로 파고드는 AI의 속도가 너무 빨라요.
놀라면서도 두렵고요.
 
감정의 혼란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264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황종민 옮김 / 문학동네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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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마음엔 수만 개의 방이 있고 길이 있다. 어떤 이는 그 방을 하나하나 들여다보고 돌보며 살고 어떤 이는 가장 큰 방만 신경 쓰며 산다. 혹자는 마음 다스리기를 하라고 조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마음이라는 게 그리 쉽게 잡히고 다스려진다면 뭐가 어려울까. 복잡하고 혼란스러움 그 자체가 마음이니 문제인 거다. 걷잡을 수 없는 감정이 타오르고 주체할 수 없기에 대책 없이 무너지고 만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런 인간의 심리를 소설을 통해 보여준다. 아니, 꿰뚫어 본다고 하는 게 맞겠다.


『감정의 혼란』 속 네 편의 소설에서 만난 인물은 흔히 볼 수 있는 이들은 아니다. 어쩌면 심연 깊은 곳에서 꺼내지 못한 우리의 다른 모습일지도 모른다. 오직 욕망에 이끌려 살아가는 이는 얼마 없으니까 말이다. 표제작 「감정의 혼란」의 인물만 봐도 그렇다. 소설은 회갑을 맞은 화자가 들려주는 스승과 자신에 대한 과거 이야기다. 그러니까 아무도 모르는 비밀이다. 현재가 아닌 과거를 꺼내는 건 과거에는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없었거나 그때는 감정의 본질을 몰랐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화자는 젊은 시절 학문과 등을 지고 방탕하게 지내다가 아버지의 방문으로 시골대학에서 새롭게 시작한다. 그곳에서 한 교수의 열정적인 강의에 매료된다. 교수의 집을 오가며 학문에 열중한다. 그러나 제자인 자신을 대하는 스승의 태도에 혼란스럽다. 한없이 친절하고 다정했다가 한순간 차갑게 변하는 일이나 수업도 하지 않고 사라졌다 돌아오는 기이한 행동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교수의 젊은 아내도 마찬가지다. 그녀는 남편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지만 화자에게 쉽게 알려주지 않는다. 그런 알 수 없는 마음과 반발심의 충돌 때문인지 화자는 교수의 젊은 아내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된다. 은밀하고 짜릿함보다는 괴로움이 가득한 그에게 스승은 자신의 마음을 고백한다. 화자는 그 사랑을 이제야 꺼내고 자신도 교수를 사랑하고 있었음을 확인한다.


어둠 속의 이 목소리, 어둠 속의 이 목소리, 이 목소리가 내 가슴속 깊숙이 꿰뚫고 들어오는 것이 얼마나 뼈저리게 느껴졌던가! 그 목소리에는 내가 그전에, 아니 그 전뿐 아니라 그후에도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울림이 깃들어 있었으니—평범한 운명을 사는 사람은 결코 헤아일 수 없는 심연에서 터져나오는 울림이었다. ( 「감정의 혼란」, 386~387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휘몰아치는 교수의 감정과 어찌할 줄 모르는 화자의 마음을 소설에서 섬세하게 묘사한다. 자신의 감정을 감추고 억누르다 결국 폭발하고 마는 순간에 도달한 교수의 처절한 목소리가 내게도 들릴 것만 같다.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들키고 싶거나 들키고 싶지 않았을 그 복잡함. 그 시절을 깊고 깊은 곳에 가둬둘 수밖에 없었던 화자의 마음은 어땠을까.


누군가의 비밀을 듣는 일을 조심스럽다. 그것이 소설 속 이야기일지라도 말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독자를 소설이라는 비밀에 발을 들이게 만드는 놀라운 이야기꾼이다. 표제작에서 화자와 스승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하게 만든 것처럼 「아모크 광인」과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모크 광인」 속 여행 중인 화자는 인도를 떠나 유럽을 향하는 배에서 지루한 일상을 보내다 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선박에 숨어 지내던 남자로 그의 존재를 아는 이가 없다. 그런데 화자가 보기에 몹시 불안한 상태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해 보여 도와주겠다고 말하지만 남자는 냉소적이다. 도대체 무슨 사연이 있을 것일까. 화자는 그 남자가 궁금해 미칠 지경이고 마침내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남자는 의사로 7년 전에 인도에 왔다. 사연 많은 남자는 인도에 도착해 처음엔 의욕적으로 살았다. 현지어를 익히고 원주민과 잘 지내려고 노력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모든 흥미를 잃고 무기력하게 지냈고 계약기간이 끝나 유럽으로 돌아가기만 기다리던 차에 한 여자가 찾아온 것이다. 원주민이 아닌 백인 여자였다. 그러나 여자는 의사에게 시원하게 자신의 상황을 말하지 않는다. 의사를 찾아왔다는 건 어디가 아프거나 진료를 받을 목적인데 말이다. 남자는 호기심이 생겨 여자에 대해 알아보고 관찰하다 도도한 여자에게 빠져버린다. 그러니까 화자가 남자에게 그러한 것처럼 말이다.


인간 심리의 수수께끼는 불안할 만큼 나를 사로잡아, 그 관련을 밝혀내고 싶은 충동이 핏속 깊이 들끓게 한다. ( 「아모크 광인」, 119쪽)


「아모크 광인」속 화자가 느낀 이런 감정은 어떤 것일까. 점점 타인과 무감한 사이로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불필요한 감정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이 온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이상하게 끌리는 상대에게 마법에 걸린 것처럼 한 번도 말하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되는 일 말이다. 나와 아무런 연결점이 없기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에서 듣게 되는 이야기처럼. 단 하루 동안 여인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소설은 호텔 옆 여관에 모인 일곱 명의 숙박객들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호텔 주인의 아내가 손님이었던 청년과 야반도주를 한 일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수다를 떤다. 그게 가능한 일인가. 하룻 사이에 사랑이 싹틀 수 있을까. 설령 사랑의 감정이 생겼다 해도 남편과 두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 있단 말인가. 대다수가 아내를 비난하지만 화자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자신의 의지를 따라 행동한 그녀에게 존경심을 표한다. 화자의 말을 듣던 한 노부인은 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속 여인이 바로 이 노부인이다.


그녀는 마흔에 남편과 사별하고 슬픔에 빠져 방황하다 우연하게 룰렛 도박에 열중하는 한 청년을 만난다. 「아모크 광인」속 화자가 그러했듯 그녀도 청년을 향한 호기심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청년이 도박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를 뒤쫓는다. 청년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달래로 위로하다 하룻밤을 보낸다. 결과적으로 청년은 그녀의 바람과 다르게 도박을 끊어내지 못해다. 그러나 그 스물네 시간은 예순일곱 해를 살아온 지금까지 평생을 지배한다고 고백한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밤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그날 밤은 싸움과 대화, 열정, 분노와 중오 눈물어린 애원과 도취가 끝없이 이어져 저에게는 수천 년이 흐르는 듯 느껴졌고, 우리 두 인간은, 한 인간은 죽을 듯 날뛰며, 다른 한 인간은 얼결에 휩쓸려, 뒤엉킨 채 비틀비틀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죽기 살기로 소동을 뚫고 새로이 태어났어요. 완전히 변모하여, 감각과 감정이 바뀌어, 새로이.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236~237쪽)


어디 그뿐인가.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을 어디서 만날 수 있을까. 고백하자면 복잡한 심리의 묘사와 탁월함에 절로 감탄하지만 나는 이런 문장에 더 반했다. 슈테판 츠바이크가 얼마나 수많은 사람을 관찰을 했을지 그가 얼마나 많은 시간 공을 들였을지 알 수 있다.


손은 아무리 은밀한 비밀도 여지없이 드러내요. 간신히 달래져 잠자는 듯 보이던 손가락이 기품 있는 무심함에서 벗어나는 순간이 필할 수 없이 찾아오는 법이니까요. 손들은 저마다 특별한 인생을 드러내니까요. (「어느 여인의 인생의 스물네 시간」, 214쪽


슈테판 츠바이크는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저마다 특별한 인생 안에 숨겨진 욕망과 비밀이 있다는 걸 말이다. 우리가 아는 건 겨우 몇 개에 불과하다는걸. 그러니 재밌고 그다음이 궁금해서 끝까지 책을 놓을 수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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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5-10-27 16: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불타는 비밀 말고는 다른 출판사에서 읽어봤지만..츠바이크여서 저도 구매했습니다 ㅋ 츠바이크의 문장은 역시라는 감탄만 나옵니다~!!!

자목련 2025-10-29 12:31   좋아요 1 | URL
역시 새팡님은 읽으셨군요. 읽을 때마다 좋음이 커질 것 같습니다!

yamoo 2025-10-27 20:1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츠바이크 책은 믿고 볼 수 있죠. 일단 저도 츠바이크 책들은 쟁여놓고 있는데, 이 책은 아직이네요. 이참에 얼른 갖춰놔야 겠습니다..ㅎㅎ

자목련 2025-10-29 12:35   좋아요 0 | URL
쟁여놓은 책만큼 츠바이크에 대한 애정이 가득하시군요!

coolcat329 2025-10-27 21: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감정의 혼란은 두 번, 아모크 광인도 읽어봤지만 이 책으로도 읽고 싶네요. 츠바이크의 책은 볼 때마다 마음이 설레입니다.

자목련 2025-10-29 12:36   좋아요 0 | URL
츠바이크의 문장은 정말 놀랍고 대단해요^^
 
새해 연습 위픽
김지연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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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를 했을 때 다음에 잘 하면 된다, 괜찮다 말해줄 수 있는 이가 있다면 든든하다. 그것이 실수가 아닌 실패였더라도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하지만 누구나 그런 이가 있는 건 아니다. 다수가 아닌 단 하나뿐인 선택의 상황에 놓인 이라면 어쩔 수가 없이 그것을 선택해야만 한다. 그것에 대해 공부하고 고민하고 살펴볼 여력 따위는 없으니까. 김지연의 소설 『새해 연습』 속 ‘홍미’도 그러했다. 부모의 이혼으로 제대로 된 돌봄 없이 자란 홍미는 스스로 모든 걸 해내야 했다. 이젠 부모도 없지만 말이다. 그런 홍미에게 할머니가 죽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할머니가 18년 동안 써온 일기장이 남겨졌다. 유산인 셈이다.


홍미의 기억 속에 존재하지 않는 할머니. 할머니의 이름은 ‘양지’다. 우스갯소리를 하자면 양지란 이름을 듣자마자 나는 양지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18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일기. 일기를 쓰는 할머니라니. 그 일기가 홍미에게 도움이 될까. 할머니의 죽음 소식을 전한 공무원의 말처럼 홍미의 소유가 된 일기장. 홍미 마음대로 해도 되는 물건이다. 어쩌면 처음으로 하나의 선택이 아닌 다양한 경우의 수로 이어질 수 있는 물건.


소설은 홍미의 일상과 양지가 쓴 일기를 들려준다. 작은 회사에서 경리로 일하는 홍미의 일상은 단조롭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홍미는 늘 새해를 기대한다. 다른 곳으로 이직할 수 있고 필요한 공부를 할 수 있을 거라고. 지금까지 그런 새해가 홍미에게 오지 않았지만 새해니까.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라니. 이런 문장을 쓰는 김지연이 좋다. 어느 정도 그 마음을 알고 그 상황을 헤아릴 수 있다는 거니까. 누군가를 어루만질 수 있는 태도를 지녔다는 것이니까.


그러니까 올해는 늘 새해를 위해 연습하는 해였다. (26쪽)


다시 소설로 돌아오면 홍미가 읽는 양지의 일기는 담백하고 아름답다. 양지의 일상도 단조롭기는 마찬가지다. 일기 어디에도 가족과 친구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양지를 찾아오는 공씨가 있을 뿐. 양지의 하루가 어땠을지 짐작할 수 없다. 오롯이 혼자서 감당해야 할 삶의 모든 걸 다 받아들인 것 같은 느낌이다. 양지의 일기를 읽으며 조금 일찍 홍미와 양지가 만났더라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가끔은 죽음도 미리 연습해두고 싶은 마음이 든다. 달력을 보니 오늘 보름이다. 절에 간 지도 오래되었다. 집에서는 달을 볼 수가 없다. 다음 보름까지는 한 달이 남았다. 달을 보고 있으면, 자기 것이 아니었던 빛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서 은은히 빛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없이 흥그러운 마음이 된다. (양지의 일기 중에서, 57쪽)


홍미는 유일한 친구 민석과 함께 양지의 집을 찾는다. 바다가 보이는 언덕 위의 집은 돌보는 이가 없어 폐가나 다름없다. 옆집 이웃을 만나 공 씨의 존재를 묻지만 양지를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양지에게 손주 자랑을 하던 공 씨는 누구일까. 그러던 차에 홍미에게 공씨가 연락을 해온다. 공씨는 양지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는 자원봉사자였다. 공씨가 원했던 건 아니고 다니던 마트의 재계약에 도움이 될까 해서였다. 홍미가 만난 공씨는 손주가 있을 나이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양지의 일기는 거짓이었다. 양지는 일기를 통해 원하던 삶을 연습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홍미가 그랬던 것처럼.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를 알기 전에 자신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무엇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를 알아내는 데 통달했다. 그러므로 그것은 선택이 아니었지만 홍미는 자신이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고 착각했다. (60~61쪽)


홍미에겐 다시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닥친다. 사장인 경식이 홍미가 자신이 뜻대로 되지 않자 회사 사정이 어렵다며 퇴사를 요구한다. 살고 있는 반지하의 빌라도 경매에 넘어가 전세금을 받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홍미의 삶은 최선의 것을 고를 안목이 있다는 착각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그래도 홍미는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결혼하자던 민석에게 결혼하자고 농담을 한다.


이처럼 김지연의 소설 속 인물은 유머가 있고 농담을 할 줄 안다. 여유가 넘쳐서 그런 게 아니다. 때로 어쩔 수 없어서, 마냥 울고 있을 수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외로워도 슬퍼도 안 우는 캔디 스타일은 아니다. 빨강 머리 앤에 더 가깝다고 할까. 내 생각엔 그렇다. 김지연의 소설을 기대하는 이유 중 하다. 그러니 홍미는 슬퍼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충분히 연습했으니까. 다음이 없다는 생각 따위는 하지 않는다. 홍미에겐 새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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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5-09-30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올해도 이제 석 달 밖에 남지
않았네요.

어쩔 수 없이 사는 삶...
왠지 모르게 공감하게 되네요.

자목련 2025-10-01 09:35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시간이 정말 빠르죠.
추석 연휴 지나면 부쩍 추워질 것 같기도 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