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 - 복잡한 도시를 떠나도 여전히 괜찮은 삶
조여름 지음 / 미디어창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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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물가 시대에 생활비 목록을 살핀다. 무엇을 줄여야 할까. 생활비에서 뺄 게 없다. 배달 앱과 쇼팽 앱을 지우기로 결심한다. 실행하지 못한다. 규모 있는 삶을 지향하지만 종종 타인의 삶에 오래 바라본다. 원하는 삶을 사는 일은 가장 쉬워 보이지만 궁극적으로 원하는 삶을 사는 이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말이 길어진다. 조여름의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 때문이다. 작은 도시에 방점을 찍는다. 작은 도시, 그러니까 서울이 아닌 그렇다고 광역시도 아닌 지역의 작은 도시에서 살아가는 솔직한 이야기다.


서울에서 직장을 다닌 저자가 고향으로 내려와 취업을 하고 그 경험을 통해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말한다. 복잡한 빌딩 숲, 쫓기듯 서울살이는 하는 이들에게는 매우 혹한 주제다. 서울에 지친 이라면 조금 벌어 조금 쓰며 살아도 충분하다는 이에게는 매력적인 책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아무 준비 없이 작은 도시로 향하는 일은 금물, 어떤 결심이 섰다면 저자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반갑고 유용할 것이다.


도시에 있을 때는 오직 ‘나’의 존재만을 느끼고 나머지는 모두 불필요한 배경이었는데, 시골에서는 나 또한 고즈넉하고 잔잔한 배경의 일부였다. (29쪽)


저자는 믿는 구석이 있었다. 그러니까 고향이다. 고정 지출을 줄일 수 있었고 가족의 든든한 지원이 있는 곳. 상주에로 내려온 저자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처럼 완벽한 자급자족은 아니지만 제철 재료를 맘껏 먹을 수 있고 남들과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무엇을 위해 사는지도 모르게 그저 하루하루 살기에 급급했던 서울과는 다른 풍경에 스며드는 일상이었다. 시골에서 나고 자라 도시에서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녔던 기억과 동시에 고향이 주는 평온과 포근함이 느껴졌다.그렇지만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니 일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곶감 농사는 실패였다. 성공하는 게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실패가 두려워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것보다 실패를 경험하는 일이 더 멋지다고 생각한다. 저자의 말처럼 실패의 경험은 실패가 아니니까.


정직한 경험이야말로 가장 오래가는 자산이다. 실패와 포기의 경험도 정직하게 부딪힌다면 그 자체로 실패가 아닐 것이다. (62쪽)


본격적인 취업을 위해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다가 저자는 ‘임기제 공무원’제도를 발견한다. 그리고 응시해 의성에 일하게 된다. 서울에서 상주를 거쳐 의성에서 제목 그대로 봉급생활자가 된 것이다. 소도시에는 일자리가 부족하고 창업에 대한 비전이 적다고 여기지만 실상은 달랐다. 의성에서 일하며 만난 창업자의 만족도는 높았다. 어디서 사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가 중요했다. 소도시는 개척하지 않은 가능성의 공간으로 충분하다. 그러니 이곳이 아닌 다른 도시의 삶도 궁금했고 저자는 도전한다.


바로 제주의 삶이다. 제주로 면접을 보면서도 합격을 기대하지 않았지만 저자는 제주에 거주하며 일한다. 육지에서 온 사람이기에 제주에 대해 몰랐던 부분도 새롭게 배우고 알아간다. 그 과정이야말로 진정한 삶의 정착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소도시에서 살기 위하 알아야 할 것들을 친절하게 알려준다. 이를테면 시골의 도로와 버스 상황, 월급, 월세 동향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사업 지원 같은 것.


우리나라 곳곳의 소도시에는 흙 속에 알 굵은 감자처럼 숨어 있는 알짜배기 기회가 많다. 나는 여러 도시를 거치면서 발견한 세계를, 잘 몰라서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았던 도시들의 크고 작은 가능성을 알려주고 싶었다. (205쪽)


『작은 도시 봉급 생활자』를 꿈꾼다면 이 책이 친절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그러나 타인의 경험은 내 것이 아니니 소도시의 삶을 원하다면 직접 지자체의 창구를 두드려야 한다. 우선은 서울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믿음과 자신감이 있어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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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매일매일 - 빵과 책을 굽는 마음
백수린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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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으로 다시 만난 백수린의 『다정한 매일매일』에서 나는 다른 문장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같은 부분에서, 같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을 거라 여겼는데 놀랍게도 아니었다. 읽으면서 그래, 이런 이야기가 있었지 더듬더듬 기억이 나긴 했다. 4년이라는 시간 탓일까. 빵과 소설 쓰기로 둘러싸인 백수린의 일상에서 빵이 아닌 소설, 그러니까 소설과 삶에 대한 부분에 글이 좋았다.


나의 한계를 알지 못한 채 하고 싶은 마음이 흘러넘쳐 시작했으나 남들이 능숙해지도록 혼자 여전히 서툴고 쩔쩔매는 일. 남들 앞에 선보여야 할 때면 늘 자신감이 없지만 결과물이 어떻든 그만둘 생각이 좀처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내게 소설 쓰기와 베이킹은 어쩌면 아주 닮은 작업. (24쪽)


백수린에게 빵을 굽는 일, 소설을 쓰는 일은 사랑하는 일이다. 사랑하는 일이라고 해서 언제나 즐겁고 기쁘고 만족스러운 일은 아닐 것이다.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속상하고 의도한 것과 다른 완성도에 절망한다.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고 놓을 수 없는 일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 마음을 읽었다. 그런 마음이 곳곳에서 내게 말을 걸었다. 다양한 빵과 에피소드와 곁들인 책 소개를 읽으면서 낯선 빵을 검색하며 맛을 상상하기도 했다.


초판으로 읽었을 때 느끼지 못한 어떤 감동을 뒤늦게 발견했다. 그건 레이먼드 카버의 『대성당』을 이제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단편을 알고 좋아한다는 말이다. 깊은 절망과 고통의 연속이 삶이라는 걸 안다. 이런 문장에 고개를 끄떡일 수 있다. 어둡고 힘든 시절의 내게 건넨 소중한 이의 마음을 떠올릴 수 있다.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어떤 힘일까? 나는 삶이 고통스럽거나 누군가의 불행 앞에서 무기력한 마음이 들 때 이 소설 속 빵집 주인이 건넨 한 덩이의 빵을 떠올리곤 한다. 어떤 의미에서 내게 소설 쓰는 일은 누군가에게 건넬 투박하지만 향기로운 빵의 반죽을 빚은 후 그것이 부풀어 오르기를 기다리는 일과 닮은 것도 같다. (28쪽)





다시 읽었을 때 처음 읽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부분도 있었다. 세상에나 정말 그랬다. 장마철에 읽어서 그랬을까. 윌리엄 트레버의 『비 온 뒤』가 읽고 싶어졌다. 백수린의 말대로 트레버는 사건의 구체적인 설명을 하는 대신 흐르는 대로 일상을 묘사하는데 그게 정말 우리의 삶이 아닌가 싶은 거다. 어떤 일들은 애를 써도 설명할 길이 없으니까. 폭우의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려야 하는 것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할 때를 마주하는 게 삶이니까.


그런 마음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로 연결된다. 교수로 성공했다고 할 수 없고 아내와 불화한 삶. 그러나 그가 원하는 문학의 삶은 놓지 않았다. 무언가 포기하지 않는 단 하나의 존재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게 우리네 삶일지도 모른다.


세상은 불확실한 일들로 가득하지만 단 하나 분명한 것은, 당신과 나는 반드시 실패와 실수를 거듭하고 고독과 외로움 앞에 수없이 굴복하는 삶을 살 것이라는 사실이다. (252쪽)


나만의 빵과 어울리는 나만의 책을 골라보고 싶다. 빵의 자리엔 다양한 것들이 대신할 수 있다. 좋아하는 과일, 좋아하는 음식, 나처럼 좋아하는 잔을 골라도 좋겠다. 아마도 이 책을 읽은 이라면 같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읽고 다른 무언가로 확장하는 책 읽기는 얼마나 뿌듯한가. 그냥 제목처럼 다정한 글이며 매일매일 한 꼭지씩 읽어도 충분한 책이다. 읽을 때마다 좋아하는 빵, 처음 만나는 빵을 먹어도 좋겠다. 빵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빵과 함께 선물해도 멋지겠다.


초판을 읽고 나는 부드러운 식빵 같은 책이라고 했는데 개정판을 읽으면서는 어렸을 적 엄마가 만들어준 술빵이 생각난다.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엄마가 최선을 다해 만든 빵이다. 그때 엄마의 삶을 닮은 빵 같다. 어떤 삶을 살든 최선을 다하는 일, 그 안에서 기쁨의 맛을 만들어내는 일. 백수린 작가가 전하고 싶은 것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소설이 삶을 닮은 것이라면, 한길로 꼿꼿이 가지 못하고 휘청휘청 비틀댄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걷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엔 소설 쓰기의 일부가 될 텐데. 길 잃고 접어든 더러운 골목에서 맞닥뜨리는, 누군가 허물처럼 벗어놓고 간 쓰레기들과 죽은 쥐마저도 내 빵이 필요한 이스트나 밀가루가 될 텐데. (7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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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사마란 지음 / 고블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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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정 사진 속 엄마의 얼굴은 흐릿했다. 겨우 찾아낸 사진이 그랬다. 갑작스러운 죽음이었고 사진을 많이 찍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큰언니의 영정사진은 멋지고 환했다. 큰언니의 취미 가운데 하나가 사진이었는데 출사를 다니며 찍은 사진이 많았다. 만약 엄마가 챠밍 미용실에 갈 수 있다면 엄마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옷과 헤어를 해드리고 싶다. 이런 생각은 사마란의 소설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를 읽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눈엔 내가 그냥 동네 미용실 아줌마로 보이지?”

그녀가 빙긋이 웃으며 할머니를 마주보았다. 할머니의 얼굴은 고단했던 일생이 그대로 담긴 듯 깊은 주름살이 패어있었다.

“할머니는 지금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존재랑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라고. 여긴 낮엔 산 사람들 머리를 해주지만 밤이 되면 죽은 사람들이 단장을 하러 오는 곳이거든. 산 사람 꿈에 들어가기 전이나 죽어서 저승에 가기 전에 들러 예쁘게 단장을 해. 할머니도 저승 가기 전에 예쁘게 하고 가.” (112쪽)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 ‘챠밍 미용실’은 죽은 사람을 단장해 주는 미용실이다. 낮에는 산 사람을 상대하고 밤에는 죽은 자를 만난다. 그게 가능하다고? 원장 챠밍이라서 가능하다. 챠밍은 이런 일을 500년 동안 해왔다. 죽은 사람을 보는 건 물론이고 고양이와도 말을 나룰 수 있다. 챠밍에게 무슨 일이 있었길래 그런 걸까. 그녀는 혹 귀신이나 구미호가 아닐까. 그러나 작가는 챠밍에 대해 함구한다. 그냥 그런 존재라고 나중으로 미룬다. ‘도깨비 복덕방’의 사장도 챠밍과 비슷한 사람이라는 것만 슬쩍 흘린다. 소설은 챠밍 미용실에 방문하는 죽은 자의 사연이나 원한 같은 단순한 에피소드의 나열이 아닌 호러이면서 판타지인 세계로 안내한다.


챠밍은 죽은 자를 단장해주고 그들에게 구슬을 받는다. 구슬은 챠밍에게 깊은 잠을 안겨준다. 죽은 자와 챠밍은 서로가 서로를 돕는 존재인 것이다. 도깨비로 통하는 복덕방 사장은 챠밍과 판(신) 연결하는 존재다. 챠밍이 요즘 꾸는 이상한 꿈 때문에 도깨비에게 신과 만나기를 요청한다. 판은 쉽게 챠밍을 만나 주지 않는다.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웹툰을 그리는 의명이 현월동으로 이사 오면서 소설은 한층 더 재미를 더한다. 도깨비 복덕방의 소개로 이사 온 빌라에서 집밥을 먹고 작업을 할 수 있을 거란 계획은 한순간 무너졌다. 고물과 쓰레기로 가득 찬 1층 할아버지와 그 집 손자의 울음소리 때문에 잠을 못 자서 신경은 예민해졌고 기이한 꿈까지 꾼다. 거기다 편집장은 그림이 이상해졌다고 말한다. 참다못한 의명은 이 모든 게 1층 때문이라고 여기고 망치를 들고 1층을 찾는다. 그런데 그곳엔 할아버지와 손자는커녕 할머니의 시체만 있었다. 의명이 보고 들은 건 무엇일까? 당신이 생각하는 게 맞다. 의명은 죽은 자를 보는 사람이었다.


의명은 도저히 그런 빌라에서 살 수 없었다. 자신이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모른 채 부랴부랴 집을 나와 본가로 향한다. 그림 그리는 걸 못마땅해하는 아버지가 있는 집으로 갈 수밖에 없다. 트렁크를 끌고 가는 도중에 한 남자와 부딪혔지만 신경 쓸 여유가 없다. 그가 판이라는 걸 의명은 알 리가 없다.


소설은 챠밍과 도깨비에 이어 의명이 합류하여 죽은 자를 안전하게 저승으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죽은 자만이 아니라 현월동 사람들의 고민과 걱정을 함께 풀어간다. 학폭에 시달리지만 아빠에게 말할 수 없는 만규, 그런 만규를 괴롭히는 석훈의 사정, 어린 나이에 결혼해 평생을 자식 뒷바라지만 해온 슈퍼 할머니를 도와주고 위로한다. 그리고 궁금했던 챠밍과 도깨비의 사연도 공개된다.


소설 속 현월동의 모습은 우리가 마주할 수 있는 동네다. 낡은 빌라, 편의점이 아닌 동네 슈퍼, 부동산이 아닌 복덕방이 있는 곳이다. 친근하다 못해 개발이 필요한 곳, 뭔가 더 많은 이야기가 있을 것 같지만 벗어나고 싶은 동네.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고단한 삶과 외로운 죽음을 조명한다.


저승으로 가기 전 단장한다는 설정과 죽은 자를 보는 능력은 드라마 〈야한(夜限) 사진관〉를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이 소설도 드라마화되면 좋을 것 같다. 오싹한 공포와 오컬트를 좋아하는 이라면 만족도가 높을 소설이다. 더위를 날려 줄 재밌는 이야기가 필요하다면 『영혼을 단장해드립니다, 챠밍 미용실』 을 읽어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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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넬로페 2024-07-10 17:0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희 엄마는 독실한 불교 신자라 회색 법복을 입은 자신의 사진을 영정 사진으로 써 달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저는 그 사진이 너무 칙칙해 싫더라고요. 근데 당신이 원하시니 그때 사용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죽으면 뭔가 다 끝난다고 생각하지만
영정 사진만큼은 늙은 모습이 아닌걸로 사용하고 싶어요^^

자목련 2024-07-11 16:12   좋아요 1 | URL
문득, 신자들이 입는 법복은 색상이랑 디자인이 다양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정 사진이란 말만 들어도 먹먹해집니다.
말씀처럼 죽으면 그만이니 남겨진 이들이 어떤 걸로 결정할지 알 수 없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 죽음이란....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
하나 베르부츠 지음, 유수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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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댓글 가운데 광고는 삭제한다. 스팸 차단 키워드를 이용해 관리한다. 불특정 다수가 읽지 않기를 바라는 글은 이웃 공개나 비공개로 올린다. 운영자니까 내 블로그라서 가능하다. 내가 정한 기준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의 게시물의 유해성 판단은 누가 하는 것일까. 어떤 기준으로 영상이나 이미지를 삭제하는 것일까. 하나 베르부츠의 소설 『우리가 본 것 : 나는 유해 게시물 삭제자입니다』를 읽기 전까지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간인 만큼 다양한 게시물이 올라올 것이고 나쁜 의도를 가진 이도 있을 터. 누구나 볼 수 있으니 혐오나 공포를 조장하는 것들은 제재를 가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주어진 가이드라인에 따라서 이미지나 게시물을 삭제하는 일의 어려움이나 트라우마는 생각한 적이 없다.


AI의 기술로 유해 이미지를 자동 삭제한다는 글을 읽은 적은 있다. 그러나 삭제할 대상이나 이미지를 일일이 입력하는 건 사람이 해야 한다고 기억하는데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의 일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싶다. 좋은 것도 반복해서 보면 질리고 감흥이 없는데 매일같이 유해한 것들을 보고 삭제 여부를 검토하는 일은 얼마나 힘들까. 누군가 보수가 높으니 그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직접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해 함부로 판단할 수 없다.


소설은 대기업 하청업체 ‘헥사’에서 콘텐츠 감수사였던 케일리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들려주는 이야기다. 인터뷰 형식이라 다큐멘터리를 시청하는 기분이다. 그녀는 누구의 질문에 답하는 것일까. 얼핏 사회고발 프로그램의 PD가 아닐까 싶지만 변호사다. 헥사에서 일한 동료들이 기업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진행하고 케일리도 동참하기를 바란다. 케일리는 동참할 생각이 없다. 그녀에겐 그저 직장일 뿐이니까. 집단소송이 이슈화되면서 사람들은 케일리에게 그곳에서 무엇을 봤냐고 묻는다. 가장 최악이 무엇이냐고 답을 기다린다. 호기심과 관음증을 바탕으로 한 무례한 질문이다. 그러나 만약 나라면 그 궁금증을 피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다.


케일리는 업무가 끝나면 그것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랬다고 여겼던 건 아닐까. 케일리에겐 동료가 있었고 헥사에서 새로운 연인도 만났다. 아름다운 ‘시흐리트’를 만난 이 직장이 유해할리 없다. 그러나 업무 환경은 시흐리트에겐 트라우마가 되었다. 시흐리트는 자신의 정신건강을 위한 먹거리를 주문하고 보호하려 애쓴다. 휴가를 내기도 한다. 케일리가 특별한 사람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영리한 작가는 케일리를 통해 독자가 판단하기를 원할 뿐이다.


무엇보다도 이 새로운 동료들은 내가 낮 동안 무얼 봤는지 아는 유일한 사람들이었죠. 우리는 많은 얘기를 나누지 않아도 그런 게시물이 어떤 느낌이고 의미인지 알 수 있었어요. 근무 시간에는 주로 무엇을 내리고 올릴 건지 얘기를 나눴어요. 이따금 누군가 “야, 지금 진짜 지랄 같은 걸 봤어”라고 말하면 나머지 우리는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죠. 잠시나마 홀로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요. (52쪽)


소설을 읽으면서 혼란스러웠다. 왜냐하면 나는 구독하는 유튜브가 없고 숏폼이나 릴스 같은 영상을 찾아보지 않지만 잔인하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잔인하고 혐오스러운 영상을 볼 때가 더 많다. OTT에서 보는 드라마나 영화는 갈수록 폭력성은 강하고 노출은 심하고 과도하다. 그곳의 심의는 누가 하는 것일까. 결제를 했으니 그곳에서 유해한 게시물은 없는 것일까. 오직 나의 판단과 기준만 남은 것인가.


내가 헥사에서 일하는 노동자라면 케일리처럼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일하는 동안 휴대폰을 지참할 수 없고 유선전화조차 없는 환경에서 정해진 클립을 다 확인해야 하는 업무. 실시간으로 올라오는 영상을 보면서도 영상에서 누군가 죽음의 위기에 놓여있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현실. 퇴사를 결정한 동료의 말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그냥 더 이상 인간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뿐이야.” (127쪽)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문제라는 걸 인식하지만 소설 속 헥사처럼 음지의 영역에서 또 다른 피해자를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많은 이들이 이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다. 짧은 분량으로 많은 질문을 던지는 소설이다. 지금도 끊임없이 게시물과 동영상이 업로드된다. 누군가 유해하다고 여긴 게시물은 누군가 무해하다고 판단하여 삭제 대상이 아닐 수 있다. 나는 그런 게시물 게시자가 아닌가, 유포자는 아닐까. 지금 내가 클릭한 이 게시물은 유해한가, 아니면 무해한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콘텐츠가 공포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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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4-07-04 11: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이거 다락방 님이 궁금해했던 그 책이네요?! 역시 리뷰는 자목련 님이 먼저 ㅋㅋㅋㅋㅋㅋ

자목련 2024-07-04 11:56   좋아요 1 | URL
부장 님은 너무 바쁘시니 ㅋㅋㅋㅋ

다락방 2024-07-05 17:18   좋아요 1 | URL
저도 사두긴 했는데 말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4-07-04 12: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으 정말 힘든 직업인 것 같아요... ㅠㅠ 유포된 성착취물 찾아서 삭제하는 일을 하는 분들도 다른 데서 봤었는데 에휴... 올리는 것들 지옥에나 가라~~!!
자목련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자목련 2024-07-05 17:14   좋아요 1 | URL
그러니까요. 퇴근 후에도 영상이 따라올 것 같아요. 우리나라에도 분명 이런 직업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요.
말씀처럼 N번방 같은 놈들 다 지옥에 가야~~
독서괭 님, 주말 신나고 즐겁게 보내세요^^

blanca 2024-07-04 15: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장바구니에 담아 놓았는데 자목련님의 리뷰는 믿고 구입하렵니다.

자목련 2024-07-05 17:16   좋아요 0 | URL
제 리뷰는... 이 소설 괜찮았어요. 소설을 읽으며 생각도 많이 했고 이제 영상을 접할 때 쉽게 클릭하지 못할 것 같아요. 블랑카 님의 리뷰, 기다릴게요^^
 
천사가 날 대신해 소설, 잇다 5
김명순.박민정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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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손주가 아닌 손녀는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인문계가 아닌 상고를 가야 한다고 주장하셨다. 물론 나는 그 주장에 반하여 인문계와 대학을 졸업했다. 자식의 편에 섰던 엄마 덕분에 가능했다. 엄마는 딸들이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했고 결혼도 늦게 천천히 해도 좋다고 여겼다. 엄마가 돌아가실 즈음 오빠만 결혼을 한 상태였다. 이른 나의 결혼을 결정한 오빠도 마음에 들지는 않으셨을 것 같다. 김명순의 소설을 읽으면서 이상하게 엄마와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딸이라는 이유로,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제대로 표출하지 못하고 그늘에 갇혀 살아온 삶.


『천사가 날 대신해』에는 김명순의 소설이 세 편 수록되었다. 데뷔작인 「의심의 소녀」 와 「돌아다볼 때」, 「외로운 사람들」이다. 「의심의 소녀」 (1917년)엔 제목이 암시하듯 소녀가 등장한다. 평양 대동강 근처의 마을에 ‘범네’라는 이름의 소녀와 할아버지가 이사를 온다. 그러나 둘만 소통할 뿐 동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소문만 무성할 뿐이다. 그러다 동네에 한 신사가 나타났다는 소식에 할아버지와 범네는 급히 동네를 떠났다. 놀랍게도 그 신사는 범네의 아버지였다. 불행한 결혼 생활로 범네의 엄마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할아버지는 손녀의 이름도 바꾸고 손녀를 살리려 숨어사는 것이다.


「돌아다볼 때」(1924년)의 주인공 ‘소령’도 평탄한 삶이 아니다. 소령은 신여성이지만 첩의 자식으로 태어나 어머니와 같은 운명일까 주변의 걱정을 산다. 공교롭게 소령은 평양에 강연을 하러 온 이학자 ‘효순’이란 남자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효순은 유부남이었고 이를 안 소령의 고모는 소령의 혼처를 찾아 결혼시킨다. 그러나 소령의 남편은 난봉꾼이었고 시어머니는 모든 걸 소령의 탓으로 돌렸다.


공부를 열심히 한 신여성이지만 자유연애에 대한 확신과 사회 구조는 바꿀 힘은 없었다. 100여 전에 발표한 소설인데 어떤 면에서는 현재의 삶에 대입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여성 혐오와 차별을 고스란히 전해진다. 여성을 대하는 남성의 태도도 다르지 않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소유물로 착각하고 구속할 수 있다는 생각은 왜 변하지 않는가. 「의심의 소녀」의 범네의 아버지는 헤어지자는 말에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이혼한 전처를 죽이는 현재의 남성과 다르지 않다.


장편소설 「외로운 사람들」 (1924년)에서는 시대적 상황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신념과 사랑으로 인해 갈등하는 네 남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 시대엔 부모가 정해준 사람과 혼인을 맺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순희’와 ‘순철’ 남매는 달랐다. 신연성 순희와 사회학자 정택은 사랑을 위해 도피했다. 각자 정혼자가 있었다. 그들의 사랑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그곳에서 순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고 둘은 같이 떠난 것과 다르게 따로 돌아왔다. 순희의 동생 순철은 어린 나이에 두 살 많은 복순과 혼인했다. 어린 시절부터 봐왔던 사이라 어른의 뜻에 따라 혼인하는 게 당연하다 여겼다. 그런데 유학에서 청국 왕녀 순영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순영에게 결혼한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양다리를 걸치게 된다. 순영이 조선에서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순철의 순영과 복순 사이에서 갈등한다.


서로 잘 이해하는 두 연인이 모-든 관계를 끊고, 모-든 소식까지 서로 알리지 않으면서, 오히려 다른 곳에 사랑을 옮기지도 아니하였다면 세상은 그 연고도 모르고 웃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이 믿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운명의 위협을 받아가면서,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발자국마다 그들의 피를 흘리면서 그들의 꿈꾸는, 어떤 목표를 향하여 걸어나간다. 이런 일이 세상에는 흔히 없는 일이요, 사람들은 다- 모르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외로운 사람이 되었다. ( 「외로운 사람들」, 117~118쪽)


「외로운 사람들」에서 정택과 순철은 자신의 사랑의 정당성을 찾기 위해 고뇌한다. 말이 고뇌이지 뻔뻔하다. 정택은 조선에서 다른 여성을 만나는데 그녀를 보호할 이가 자신뿐이라는 괴상한 논리를 펼친다. 그나마 순철은 양심적이다. 순철밖에 의지할 곳이 없는 복순과 이국 땅에서 순철의 사랑만이 전부인 순영을 외면할 용기가 없다. 그래도 조강지처를 버리지 않기로 결심한다. 순철을 기다리던 순영은 병에 걸려 생을 마감하고 정택의 혼인 소식에 순희도 죽음을 택한다. 순희와 순영의 마지막은 죽음이어야 했을까. 시대를 탓해야 할까. 가정 폭력과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인 여성이 가해자를 처벌하기 위해 2차 피해를 감당해야 하는 100년 후의 지금을 생각하면 모르겠다.


박민정의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도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친구 ‘세윤’의 실종과 죽음에 대해 들려준다. 세윤은 불행한 결혼 생활을 끝내고 직장 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미래를 꿈꾼다. 화자와 함께 ‘JLPT’시험 준비를 한다. 그런 세윤이 실종 후 자살한다. 세윤이 남긴 건 일상을 담은 브이로그가 전부다. 나는 그 브이로그를 통해 세윤의 고통을 짐작하고 가늠할 뿐이다. 놀라운 건 브이로그에 등장하는 ‘로사’였다. 나의 학교 후배였던 로사가 세윤의 직장 동료였다. 세윤에게 로사의 이름을 들었을 때 그녀가 얼마나 위험한 인물인지 말해줬지만 세윤은 듣지 않았다. 세윤의 죽음이 직접적으로 로사에게 있다고 주장할 수 없지만 나는 더 강하게 로사를 멀리하라고 말하지 못한 게 후회스럽다.


어떤 억측이나 소문은 얼마나 무서운가. 우리는 그것을 알면서도 슬그머니 가담한다. 김명순의 「의심의 소녀」에서 정확한 사실을 모르면서 소문에 가담하는 동네 사람들, 「돌아다볼 때」의 고모처럼 지레 짐작한다. 뉴스나 언론을 통한 보도에 상상하는 더한다. 박민정의 「천사가 날 대신해」에서 세윤이 감당해야 할 시선은 어땠을까. 이혼녀, 전 남편과 연락을 하는 일을 바람을 피우는 거라 수군거리는 동료들. 그런 문제에 대한 고민은 박민정의 에세이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로 이어진다.


작가는 누구보다 ‘나’를 많이 말하지만, 가장 ‘나’로부터 멀어지고 싶은 사람이라는 생각을 한다. 내가 단 한 명의 작가이지만 또한 오롯이 작가일 수 있으려면 끝없이 나르시시즘을 경계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쓰는 사람이 자기 생애까지 대생화해서 이루려는 문학 행위가 그저 소문으로만 그치지 않기를 바란다. (「때가 이르면 굳은 바위도 가슴을 열어」, 306쪽)


어렵고 쉽게 읽었다 말할 수 없지만 좋은 소설이었다. 이런 기획이 아니었다면 나는 김명순의 이름도 모르고 그의 소설을 찾아 읽을 일도 없었다. 페미니즘이나 여성학을 공부하는 이들에게도 좋은 교재가 될 것 같다. 소설적 재미도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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