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클래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딱히 좋아하는 음악가의 리스트가 있지도 않다. 그래도 누군가 정성을 다해 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다. 송은혜의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읽으면서 내게 음악을 선물하는 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언니가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음악’과 ‘언어’ 두 단어의 조합이 나를 이끌었다. 음악을 잘 몰라도 어린 시절 겨우 두 달 정도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여도 괜찮았다. 어른이 된 후에 여전히 피아노를 갈망하지만 실천은 못하고 있다.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오랜 세월을 보내고 조금씩 음악을 나의 삶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의미는 나 자신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음악, 우리의 아픔을 기록한 음악은 온실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한 진짜 음악이다. 서로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음악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12쪽)


음악을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며 삶을 위로하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나는 동네 음악선생이라 불리는 저자가 차근차근 다정하게 들려주는 음악의 언어, 음악의 기운, 음악의 숨결, 음악의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하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음악 안에서 거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음악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전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곡을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 작곡가가 원하는 연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국엔 찾아냈을 때 느꼈을 희열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온전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는 일의 외로움, 그 안에 쌓이는 고독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음악의 추상성. 말도 그림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소절의 선율로 우리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56쪽)


음악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삶이 음표에 스밀 것이다. (80쪽)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챕터마다, 하나의 꼭지마다 등장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그의 작품 목록을 소개하는 수고 덕분에 독자는 조금 더 음악에 빠져들 수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연주의 방법, 혹은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무언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조금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게 된다. 연주자와 작곡가가 원하는 건 완벽한 연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완벽하지 않은 연주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오랜 연습으로 굳어진 손마디, 목 디스크, 긴장한 모습이 연주자가 지나온 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예술의 삶이 아니라 음악이 전하는 이야기,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울과 절망에 빠진 마음을 달래주었던 연주를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악으로 연결된 하나의 웅장한 공연장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하는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삶은 나와는 다르게 흐를 것이다. 연습으로 채워진 시간, 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매달리는 그들의 일상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음악을 선택했을 뿐 삶의 흐름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그만큼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도 그러하니까. 실수하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변화하는 일이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실수하면 탐색해야 한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찢어질 듯한 큰 소리와 거친 소리를, 반대로 거의 들리지 않는 의미하게 스러지는 소리를 내보아야 한다. 음의 연결을 연습할 때도 소리가 완전히 겹치도록 연주하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스타카토로 끊어서 연주해보거나 공기의 울림을 이용해 두 음을 연결하는 등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혀봐야 한다. (101쪽)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알려주듯 독주가 아닌 합주, 앙상블에 대한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다른 연주자와 친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 박자를 맞추고 빠르기를 섬세하고 조절하고 선율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실어 전해야 하는 일, 몇 백 년 전의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닮으려고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연주를 듣는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고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곳을 연주할 때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설명해도 알 수 없고, 음악적 용어, 기호에 대해 알려줘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듣기만 했던 음악이 전하는 소리, 그 고유한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일상과 음악에 대한 담담한 사유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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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와 어떤 소설을 좋아하는 일을 잠깐 생각한다. 그러다 나는 ‘좋아서 좋아하는’ 말이 떠올랐고 이 포스팅의 제목으로 쓰고 싶었다. 좋아서 좋아하는 일, 좋아서 좋아하는 책, 좋아서 좋아하는 작가. 실은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장편소설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있는데 이 소설을 읽기 전 이 소설이 어떠냐고 물어온 이가 있었다. 읽기 전이니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했고 물어온 이는 자신은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이 어렵다고 말했다.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은 어려웠던가. 잘 모르겠다. 나는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을 얼마나 읽었던가. 손으로 헤아려 보니 두어 권 정도밖에 읽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현재 이 작가의 소설이 어떠냐고 하면 좋다고 말할 것이다. 무엇이 좋냐고 하면 좋아서 좋아한다고 답할 것이다.


2017년 노벨 문학상 발표가 나고 바로 그의 소설을 몇 권 구매했다. 읽었냐고 물으면 아니다. 쌓아두다가 정리했고 최근에는 정리한 책 가운데 한 권을 다시 샀다. 매번 이렇다. 아무튼 『클라라와 태양』은 좋고 그 좋음이 당분간 이어질 것 같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 후 작가는 다음 소설에 대해 부담감을 느꼈을까. 더 좋은 소설, 더 나은 소설을 써야 한다고 말이다. 하긴 수상 여부와 상관없이 작가의 고민은 항상 그렇겠지 싶다.




좋아서 좋아하는 두 번째 책은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마쓰이에 마시시와의 첫 만남이 좋았기에 더욱더 좋아하는 작가가 되었다. 이 작가의 소설은 제목이 모두 참 좋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우아한지 어떤지 모르는』에 이어 차례로 읽게 되는데 살짝 고백하면 처음 소설이 제일 좋았고, 두 번째 소설은 그보다 못했다. 그래서 이 번에 소설이 더 좋을 것 같다. 좋고, 덜 좋고, 그다음은 좋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냥 내 짐작이다. 좋은 소설이면 좋겠다. 좋은 소설은 무엇일까. 읽고 나서 긴 여운을 남기는 소설이다. 읽고 나서 가까운 이에게 말하고 싶은 소설이다. 읽고 나서 책장에 집을 마련해두는 소설이다. 그리고 소설을 좋아하는 이에게 권해줄 수 있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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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4-06 17:56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는 제발트의 <아우스터리츠>를 세 권
이나 샀더라구요 세상에나.

좋아서 좋아합니다. 당연합니다. 좋아하
는데 딱히 이유가... 그냥 좋아합니다.

이시구로 샘의 책들은 모두 읽을 겁니다.

자목련 2021-04-07 10:19   좋아요 0 | URL
이시구로 작가의 소설들이 더 좋아질 것 같아요. 저는 아직 읽지 못한 책들이 많아요.
좋아서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1-04-06 17:5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아서 좋아하는‘ 멋진 말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건 이유를 설명할 필요가 없다는 ㅎㅎ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는 장바구니로^^

자목련 2021-04-07 10:19   좋아요 1 | URL
마쓰이에 마사시의 소설,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어요. 새파랑 님께도 좋은 소설이면 좋겠어요.
파랗고 선명한 봄날 이어가세요!!

coolcat329 2021-04-06 19:5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좋아서 좋다...아~~정답이네요~~

자목련 2021-04-07 10:20   좋아요 1 | URL
쿨캣 님의 좋아서 좋다란 댓글, 좋아서 좋아요^^
꽃처럼 환한 봄날 보내세요~

scott 2021-04-06 20:5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말씀에 동감!
좋아서 좋아 하는
이렇게 따끈 따끈한 신간들
쓰담 ,쓰담 하는 시간들
전부 소즁함 ^.^

자목련 2021-04-07 10:21   좋아요 1 | URL
전부 소중해요, 소중해서 미루고 있어요. ㅎ
우선은 이시구로 소설부터 읽는데 마쓰이에 마사시가 자꾸 궁금해요.

blanca 2021-04-07 09:1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마쓰이에 마사시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 저도 아껴서 아직 시작 안 했어요. 좋을지 안 좋을지...<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정말 좋았는데 두번째 책은 다들 반응이 전작보다 못하다고 하더라고요. 자목력님은 벌써 시작하셨을지 궁금합니다.

자목련 2021-04-07 10:22   좋아요 1 | URL
마쓰이에 마사시의 신작은 읽기도 전에 좋을지로 기울고 있어요.
지금은 클라라와 태양을 읽고 있어요. 어떤 책은 그냥 봐도 좋은데, 마쓰이에 마사시의 책도 그런 것 같아요. ㅎ
 


책을 샀다. 읽고 싶었던 책이다. 장바구니에서 계속 나를 기다리던 책이다. 구매하고 나니 또 다른 책이 보였다. 그 책은 비워진 장바구니로 향했다. 한국 소설과 에세이다. 모두 여성작가의 글이다. 어쩌다 보니 그렇다. 최근 문학계를 보면 여성작가의 활약이 많다. 내가 그들의 글을 좋아하기에 그리 느끼는지도 모른다. 이미 많은 이들이 읽은 책, 나는 뒤늦게 읽고 읽게 될 책이다. 그래도 괜찮다. 책은 언제나 나에게 기쁨을 준다. 정세랑의 『시선으로부터, 』, 박솔뫼의 소설집 『우리의 사람들』, 김소영의 『어린이라는 세계』, 강화길의 『화이트 호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뿌듯하다.

정세랑의 소설을 가장 먼저 읽었다. 잘 읽히는 소설이다. 잘 읽히는 건 좋다. 군더더기 없이 내용을 소화할 수 있다. 등장인물이 많아서, 가계도를 잘 기억해야 했지만 말이다. 가장 궁금했던 소설집은 박솔뫼의 단편들. 박솔뫼의 소설을 읽은 게 언제였더라. 나무와 의자가 있는 표지라서 구매했다고 할 수 있다. 출판사의 소개들은 읽지 않았다. 오랜만에 만나는 박솔뫼의 시간을 기대한다. 강화길의 단편집에 수록된 몇 편은 읽었으니 나머지 몇 편만 읽으면 될 것이다. 김소영의 에세이는 아껴두고 읽어도 좋을 듯하다.




예전에는 매월 1일에 책을 사는 버릇이 있었다. 그러면 뭔가 알차게 한 달을 시작하는 기분이라고 할까. 지금은 충동적으로 책을 사기도 하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책을 사면 바로 읽어야 하고 읽은 후 기록을 남겨야 한다. 그래야 좋다. 적어도 내 기준에는 그렇다. 그런데 어떤 책들은 자꾸만 미루게 된다. 읽는 게 아니라 쓰는 일을 미루는 것이다. 어떤 책은 너무 좋아서 그 좋음을 최대한 잘 말하고 싶은 욕심에 미룬다. 살짝 공개하자면 황정은의 『연년세세』, 이주혜의『자두』, 조해진의『단순한 진심』, 백온유의 『유원』같은 소설들. 저마다 다른 이유로 좋고 다른 이유로 미룬다. 이러다 아무 기록도 남기지 못하는 건 아닐까. 그래도 할 수 없고.


책을 샀으니 신나고 책을 읽으니 좋고 책을 소개하니 기쁘다. 단순한 기쁨을 누린다. 단순한 일상, 나쁘지 않은 일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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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17 13: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의 소개글을 읽는 사람도 기쁘고, 또 저 책들도 읽어볼까 두근거리는 저도 기쁘고..... ^^

자목련 2021-03-18 09:29   좋아요 0 | URL
바람돌이 님, 두근두근 기쁨과 즐거움을 전해주셔서 감사해요.
미세먼지의 날들이 이어지지만 맑은 하루 보내시길 바라요^^
 


예술을 흠모한다. 예술의 세계가 궁금하다. 그러니까 예술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마음에 『책장을 번지다, 예술을 읽다』란 제목만으로도 이 책을 읽고 싶었다. 고백하자면 필자의 이름에 시인 심보선이 없었더라면 그냥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이자 사회학자가 읽은 예술서는 어떤 것일까. 그가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은 무엇일까. 순수한 호기심과 이 책을 통해 예술이 우리 사회에 스며드는 과정을 알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다. 진정 예술이란 무엇일까.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우리가 예술을 통해 얻는 위로는 어떤 것일까. 심보선과 이상길 두 명의 저자가 소개한 책은 23권으로 예술, 대화, 천재, 애호, 교육, 이미지, 사라짐, 정치, 등 키워드 별로 필자가 다르다. 사회학자가 예술을 주제로 한 책을 한 권에서 다양하게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서평집이 아닐까 싶다. 서평만으로도 어렵고 난해한 책이 많았지만 알고 싶은 책, 읽고 싶은 책이 생긴 건 좋은 일이다. 


우리가 다룬 책들은 예술에 대한 이런저런 질문들을 던진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예술의 쓸모는 무엇인가? 예술은 왜 그리도 특별한가? 누가 예술을 소유하고 향유하는가? 예술은 사람살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7쪽)


우선 목록을 살펴보니 내가 아는 책은 거의 없었다. 제목만 알고 있는 책은 보였지만 정작 깊게 읽은 책은 없었다. 그만큼 내가 예술서와 거리를 두고 있다는 증거였다. 예술을 키워드로 한 챕터에서 그레이슨 페리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란 책에 대한 글은 무척 흥미로웠다. 미술에 대한 관심은 높지만 정작 미술관 관람에 대한 소박한 지식도 없는 게 일반적이다. 우리가 예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었다. 하나의 전시회가 있다고 하자, 그때 그 소식을 어떤 경로로 접하는지에 따라 대중이 받아들이는 게 다르다는 것이다. 유명 큐레이터, 동료 예술가가 극찬을 한다면 나 역시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예술가를 작품을 평가하는 건 같은 동료나 예술가가 아닐까. 당연한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예술의 세계가 한정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한다. 서평집의 단점이자 장점은 새로운 책을 알게 되고 그 책이 궁금해지는 일이다. 나는 그레이슨 페리란 이름을 몰랐는데 이제는 긴 제목의 『미술관에 가면 머리가 하얘지는 사람들을 위한 동시대 미술 안내서』책까지 기억하게 되었다.


에드워드 사이드과 다니엘 바렌보임의 대담으로 이뤄진 『평행과 역설』에서 인상적인 건 바그너에 대한 부분이었다. 한 명의 음악가를 향한 서로 다른 의견을 거침없이 말할 수 일. 그 역시 예술의 자유가 아닐까. 바렌보임은 바그너를 자신만의 음악적 사상을 추구함에 있어 자신의 편협한 인종주의를 도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다. 반면 사이드는 바그너가 추구한 집단의식이 독일 민주주의를 구현했다고 말한다. 이런 글을 읽으면서 바그너에 대해 전혀 관심이 생기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현대 음악과 연주자, 예술에 대한 심보선의 사유와 문장에 반할 수밖에.


이들에게 음악은 소리였다. 침묵 속에서 태어나 침묵 속으로 사라지는 삶이자 죽음이었다. 이제 우리는 소리가 점차 희미해지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듣는 대부분의 소리는 소음이거나 복제되고 재생되는 인공음이다. 결국 소리가 사라지면 침묵도 사라질 것이다. (55쪽)


‘‘그놈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란 문장으로 시작하는 나탈리 에니크 『반 고흐 효과』에 대한 글도 흥미로웠다. 나 역시 반 고흐의 작품과 그에 대한 책을 읽었고 좋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 고흐의 작품에 대해 열광하는 이유는 뛰어난 화가의 자질과 더불어 그의 생애와 결부시켰기에 그렇다고 설명한다. 불운한 고희의 생 말이다. 대중은 생전의 그의 작품에 대한 몰이해가 빚으로 남아 후세에 고흐 숭배 현상으로 이어진다고.


애드 디 앤절로의 『공공도서관 문 앞의 야만인들』를 다루며 심보선은 공공 문화기관에서 담당했던 시민교육과 공공 도서관이라는 기관 자체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알려주는 점이 흥미롭다고 전한다.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 공공 도서관은 닫힌 세상이었다. 단순히 책을 빌리고 그 안에서 운영해는 문화 강의만 떠올랐으니까. 우리 주변의 공공 도서관은 일반 시민에게 어떤 위치와 의미인가 생각하게 만든다.


제목만으로도 반가운 피에르 바야르의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다. 보편적으로 읽지 않은 책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은 얼마나 될까. 작가에 대한 이력, 목차 정도가 아닐까. 사실 읽은 책의 제목, 작가, 내용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읽지 않은 책에 대 무얼 말할 수 있겠는가.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우리가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따로 있다는 것이다. 이상길이 정리한 것처럼 나의 책 읽기에 적용해도 좋을 듯하다.


책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책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읽었는가 여부보다는, 관련된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책 속에 파묻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잊는 것, 또 잃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책이라는 대상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164쪽)


예술에 대한 갈증이 더욱 커지는 날들이다. 코로나로 인해 연주자는 연주를 하지 못하고, 연극 무대는 폐업 상태와 다름없고 전시회를 찾는 이들도 많지 않다. 책으로 만나는 예술은 여전히 높은 벽의 실체를 보여준다. 하지만 내가 몰랐던 다양한 예술에 대해 조금은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예술을 읽는다는 건 어렵고도 즐거운 일이다. 이젠보다 좀 더 가까이 예술에 다가선 것 같은 기분, 예술과 친해진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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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3-11 00: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마지막 인용구 정말 좋아요!!! 세상에 책은 왜이리 많은가요.^^;;;;;

자목련 2021-03-11 14:44   좋아요 1 | URL
그러게요, 읽고 싶은 책이 점점 늘어납니다.
읽은 만큼 성장할 수 있기를 바라는데 그건 또 어렵고요. ㅎ

scott 2021-03-29 17: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어떤 책을 완벽하고 정확하게 읽었는가 여부보다는, 관련된 책들 전체에 대한 총체적 시각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 또한 다른 사람의 책 속에 파묻히거나 그 안에서 길을 잃을 위험에서 벗어나는 것이 중요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나 우리 자신과 나누는 담론이 매우 중요하다. 나아가 책을 읽는다는 것이 단지 지식을 얻는 것뿐만이 아니라 잊는 것, 또 잃는 것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책이라는 대상에 과도하게 매달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글쓰기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우와 자목련님 이문구 말에 동감 1000퍼센트!!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에드워드 사이드 평전(이번에 새로 출간된)에 사이드가 아침에 눈뜨자 마자 바그너 음악을 들으며 식사 하는 모습이 나와요. 흥미로운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폭격했다는 신문 기사 읽을때도 바그너 음악을 들었다고,,,

자목련님 말씀에 동감합니다 코로나로 예술의 보고 듣고 즐기는 기쁨이 사라져 버렸어요
어제 유툽 실황 피아노데이 연주 2시간동안 들으면서 음악이 인간에게 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새삼 깨닫게 되었답니다. ^.^


초딩 2021-03-29 18:23   좋아요 2 | URL
1500퍼센트!!! ㅎㅎㅎ

자목련 2021-04-01 16:05   좋아요 2 | URL
저는 스콧 님이 올려주신 음악으로 충전해요. 오늘도 그렇고요.
피아주 연주를 더 좋아하는데, 그래서 더 감사해요. 4월, 환하게 이어가세요^^

scott 2021-04-09 15:4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예술을 더욱 사랑하라고
이달의 당선작으로!!
축하합니다. ^ㅎ^

자목련 2021-04-12 11:27   좋아요 1 | URL
스콧 님의 포스팅으로 예술을 더욱 사랑해요!!
 

하늘이 잔뜩 흐렸다. 뿌옇다. 세상도 흐렸다. 흐림 뒤에 비로 이어질 것이다. 흐림을 깨고 나타난 비는 흐림의 일부라고 해야 할까. 그렇게 말하면 비는 싫어할 것 같다. 비는 독립적인 비로 존재할 거라고 외칠 것 같다. 아주 멀리서 비의 외침이 들려오는 것 같은 순간이다.


이런 날에는 조금 밝은 기운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이런 햇빛 스며든 사진 같은 것들 말이다. 2월 22일에 찍은 사진이다. 이 사진을 찍을 때 2월 22일이라서, 2가 셋이나 있다는 사실에 괜히 신이 났다. 혼자가 아닌 둘이 그것도 셋이나 있었다. 2월에만 누릴 수 있는 발견이고 즐거움이니까. 우리는 이토록 사소한 것들로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하튼 그 햇빛의 줄기는 잔뜩 흐린 이런 하루를 더욱 환하게 만든다.



2월의 끝에는 무슨 일이 생길까, 잠깐 생각했다. 좋은 일이 일어나면 좋겠지만 글쎄, 나쁜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게 좋은 일이라는 걸 안다. 그냥 어제와 같은 하루에서 아주 조금 다른 일상 같은 것. 속상한 일도 금방 잊어버릴 수 있는 그런 일상, 걱정을 쌓기보다는 즐거움은 쌓을 수 있는 일상. 짧은 2월, 여느 달보다 하루 이틀, 덜 일하고 월급을 받는 즐거움이나 산뜻하고 화사한 봄옷을 구매하고 결제한 후 택배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마음들 말이다.


환하고 부드러운 햇빛을 품은 책들을 읽은 일은 사소하면서도 기쁜 일이다. 기대한 만큼 만족도 큰 소설을 만나면 더욱 그렇다. 나를 환하게 만드는 책은 『소설 보다 겨울2020』, 원도의 『아무튼, 언니』, 핍 윌리엄스의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그 중 핍 윌리엄스의 첫 장편소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은 발견의 기쁨을 안겨준다. 정말 좋은 소설이다. 기억하고 싶은 구절이 많았지만 우선은 이런 문장을 나누고 싶다. 소설의 주인공이 구한 단어들이 무엇일까, 궁금하다면 이 소설을 좋아할 것이다.


나는 그 단어들 모두를 구했다. 단어들을 사전에 넣어 그것들을 구하는 거라고 아빠가 생각하는 것과 똑같았다. 내 단어들은 외진 곳에서, 구석에서 왔다. 분류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필요 없는 단어를 버리는 바구니에서 왔다. 내 트렁크는 사전 같구나, 나는 생각했다. 단지 잃어버리거나 무시당한 단어들로 채워져 있다는 점만 달랐다. (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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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02-25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잘 지내셨나요.
여기도 오늘 하루종일 구름 많고 흐린 날이었어요.
많이 춥지는 않지만, 흐린 하루를 보내고 있어요.
2월도 많이 지나고 다음주엔 3월이 됩니다.
조금 남은 2월에 좋은 일들 가득하시면 좋겠어요.
기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자목련 2021-02-26 15:00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오늘은 어제와 다르게 맑음에 가까워요.
오늘이 보름이라고 하네요. 달을 보고 소원을 비는 그런 여유가 있는 시간 보내시길 바라요.
주말 즐겁게 보내시고요^^

희선 2021-02-25 23: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첫번째 책 소설이었군요 저 제목 봤을 때 인문에 사전 이야긴가 했어요 소설로 본다면 더 재미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엔가 비가 와야 할 텐데, 하는 생각을 했더니 정말 비가 오는군요 그럴 때 자주 있어요 비가 가끔 와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겠지요 이번주도 거의 끝나가는군요 짧은 이월이 갑니다

자목련 님 남은 이월 즐겁게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2-26 15:01   좋아요 1 | URL
네, 소설이에요. 무척 좋았어요. 비가 올 것 같았는데 이곳은 비가 오지 않았어요.
희선 님도 항상 건강하고 좋은 시간 이어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