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수 작가를 좋아한다.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는 말이 정확하겠다. 그가 경북 김천 출신이라는 걸 알고는 대학 동기 하나가 그와 같은 출신이라는 게 떠올랐다. 그 동기의 이름은 유명 정치인과 같아서 기억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연락이 닿았다면 나는 김연수 작가에 대해 물어봤을 것이다. 김천이 뉴욕제과점에 대해서도. 어제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곳에서 보낸 책을 받았다. 김연수 작가의 소설집 『눈 내리는 삼일포』였다. 작가의 사인본, 그러니까 나만을 위한 사인본이다. 내가 김연수 작가를 좋아하는 걸 아는 다정한 동생이 보낸 선물이다.


<책빵 뉴욕제과점>이란 이름이 왠지 익숙해서 검색하니 독립서점이었다. 짐작하는 바로 그곳. 김연수 작가의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그 빵집이 독립서점이 된 것이다. 작가의 누나가 운영하신다고 한다. 아마 동생의 선물이 아니면 나는 몰랐을 곳이다. 내가 독립서점을 방문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가까운 곳에 독립서점도 없거니와 온라인 서점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작가 사인본의 경우 거의 같은 경로로 내게 도착했다. 기억을 더듬어 찾아보니 김연수의 『소설가의 일』과 『소설가의 산책』이란 비매품 도서에도 있었다. 날짜는 2014년 11월 15일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를 기억하고 기회가 닿을 때마다 나를 생각해 주는 마음이 있다는 게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만난 적이 없고 단 한 번의 통화가 전부였다. 우리는 이어준 건 책이었고 그 가운데 김연수 작가가 있었다.


한 번씩 소장하고 있는 책을 정리한다. 읽지 않을 책, 읽게 될까 생각하지만 그대로 미루는 책, 누렇게 바랜 책을 이제는 과감히 정리하는 편이다. 시집은 남겨야지 했던 마음도 차츰 시들어져서 시집도 정리를 한다. 정리하는 과정에 읽으면서 분류를 다시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이다. 아무튼 현재 나에게 책은 가까운 사이면서도 정리할 사이가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니 김연수 작가의 책도 모두 소장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애정은 줄어들지 않고 희미해지지도 않는다. 읽지 않은 책도 여전하다.





처음 김연수 작가의 소설을 읽었던 건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내가 쓴 글을 검색하니 나는 그의 소설에서 큰 위로를 받은 것 같다. 내가 기억하고 싶었던 문장을 다시 읽어보는데 최근에 그가 쓴 소설에서 받은 느낌과 이렇게 비슷할 수가 있다니. 놀라웠다. 누군가는 한 작가의 글이니 당연한 거 아니냐고 하겠지만 그건 쉽게 설명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다. 2007년의 글이었다. 다시 이 소설을 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문장은 오래 기억하려 할 것이다.


우리는 지나간 뒤에야 삶에서 일어난 일들이 무슨 의미인지 분명하게 알게 되며, 그 의미를 알게 된 뒤에는 돌이키는 게 이미 늦었다는 사실을.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드』 중에서)


삶이란 우리가 살았던 게 아니라 기억하는 것이며 그 기억이란 다시 잘 설명하기 위한 기억이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중에서)




이 가을, 김연수 작가의 신잡 소설집이 나와서 참 기쁘다. 내가 아는 책을 좋아하는 이들과 이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 주변에는 함께 할 수 있는 이가 아주 많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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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6-10-08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그 뉴욕제과점이 독립서점이 된 거군요. 친필 사인본이라니, 우와....자목련님과 함께 김연수를 좋아하는 감정을 공유할 수 있어 기뻐요. ^^;;

자목련 2026-10-08 11:58   좋아요 0 | URL
김연수의 소설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욱 반가울 독립서점이 아닐까 싶어요. 저도 블랑카 님과 김연수 작가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 좋아요. 많이 많이요!
 


글을 쓴다는 건 가만히 나를 관찰하는 일이다. 때로는 보이는 대로 외부를 기록하다 점점 그것은 내부로 파고든다. 결국 글쓰기는 말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이야기나 해야만 했던 말들에 대한 다른 방식의 대화다. 말로는 차마 하지 못했던 일들에 대한 용기거나 뒤늦은 후회, 다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처음부터 쉽지는 않다. 누구에게 보일 목적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다. 나만이 읽고 쓰는 글이라 해도 조금은 주저하거나 조금은 글 뒤로 숨고 만다. 그러나 결국엔 감정이 담긴 글을 쓰고야 만다. 그것이야말로 글을 쓰는 기쁨이고 글을 쓰는 위안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마주의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다. 특성상 말을 크게 해야 하고 큰 목소리로 정확하게 아이에게 말을 건네야 할 치료사(언어, 놀이, 상담 등)를 떠올리는 이미지와는 다른 글이었다. 어쩌면 외부인인 내가 알지 못하는 내부인의 진짜 이야기가 그러하다는 걸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특수한 상황에 놓인(보편적인 이용자) 이들과 반복적인 내용을 전달하거나 학습시키는 일, 그것을 나는 알지 못한다. 다만 외부로 드러나는 장면이나 드라마나 영화처럼 포장된 이미지가 실재는 아니라는 정도다.


그러니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치료사라는 직업과 일을 떠나 치료사란 개인에게 맡겨진 막중한 책임을 처음 느끼고 생각했다.복지관이나 사설 센터에서 선생님이란 호칭으로 불리지만 4대 보험이나 정직원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 작은 공간에 아이들 치료를 위한 놀잇감이나 도구를 사비로 구입하고 대소변 실수를 하는 아이를 감당하는 일까지 하루하루 나아지기를 바라는 부모(조력자, 모든 보호자)에게 상태를 전달하고 앞으로 방향까지 계획해야 한다. 감사를 위한 서류 업무는 물론이고 센터의 청소까지.


아이를 관찰하고 의연하게 바라봤던 그 수많은 의식과 기록들을 굽이굽이 기억에서 끌어올리는 것을 끊임없이 마주해야 하는 일은 그래서 가늘고 길다. (본문 중에서)


업무나 행정에서 한계를 느껴도 그것에 대한 개선이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전달할 창구가 없다는 걸 낄 때 그 마음은 어떨까. 동료이면서 각자의 치료실에서 벗어나지 못하니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서로의 시간에 들고나는 것 정도만 인식하는 일은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까. 누군가는 그저 직업이라고 직장일 뿐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이직을 할 때마다 치료사가 아닌 많은 아이를 받아 수입을 더 늘이는 게 목적인 원장 앞에서 수긍의 미소를 건네는 일은 아프고 힘겹다.


그러나 아이들을 만나고 개개인이 좋아하는 것들을 시작으로 발화하거나 의미를 알지 못하더라도 대화를 이어가는 일은 치료사에게 가장 소중하고 숭고하다. 때로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수업이 흐르고 반복적이 놀이에 지치더라도 아이가 놀이실에 왔다는 것 자체가 감사하다. 불편한 신체를 도와주기 위한 보장구에 대해 목발이나 휠체어 같은 게 전부인 줄 알았지만 더 세부적인 도움을 위한 것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이 책으로 알게 되었다.


치료사의 일상에 대해, 그 일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 이 책은 선배이자 동료가 건네는 손길이 될 것이다. 한눈에 바로 뛰어나게 발화하거나 움직임이 좋아지거나 놀이를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치료사와의 시간에 즐겁고 행복하다면 그로 인해 그들은 충만해질 것이다. 치료사도 아이도. 물론 이 모든 게 나의 착각일지도 모른다. 고단한 현실은 끝이 보이지 않고 어려움은 산적해 있는 게 삶이니까. 그래도 우리는 제목처럼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 반짝인다. 그것을 들어주고 공감해 줄 이가 있다는 사실에 더욱 그러하다. 이 책도 담긴 마음도 그렇다.


아이들이 남기고 간 장난감은 언제나 내게 어떤 이야기였다. 단순히 질문을 하기 위한 핑계가 아닌, 상상하고 느끼는 그대로의 이야기 말이다. 아이들과 노는 동안, 나는 되도록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것대로 두고, 원래 그랬던 것처럼 바라보는 일을 오래오래 하고 싶다. 장난감이 가득한 곳에서 부끄럽거나, 슬프거나, 어딘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는 일 없이 놀 수 있다면 초대한 내가 더없이 기쁘겠다. (본문 중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말할 때』를 읽으면서 여러 저자가 자신의 계절에 대해 쓴 『계절 쓰기』와 백수린의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를 만났을 때처럼 좋았다. 담담하면서도 차분한 톤, 쓰고 읽는 일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쓰고 나를 읽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길고 길었던, 끝날까 싶었던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열린 지금, 가을에 대한 부분은 처음과 다르게 가을에만 존재할 것 같은 감각으로 읽힌다. 이 가을은 눈 깜짝할 것 없이 지나할 것이고 우리는 또 겨울에 취해 가을을 잊게 될지도 모른다.


여름이 끝나고 가을이 왔다는 걸 느끼는 순간은 아침에 집에서 나와 숨을 들이마셨을 때 찬 기운이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와 명치를 아리게 할 때다. 그럴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이 아팠고 어떤 감정이 나를 한바탕 뒤흔들고 지나가려는 조짐이라고 생각했다. (「홍한별의 가을 : 오래된 이야기」 중에서)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한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내 능력 밖의 일이겠지만 슬픔이 너무 커서 세상에 대해 원망만 가득했던 마음이 찬란한 가을 햇살 속에서 맞닥뜨리는 어떤 풍경들에 황홀함으로 물드는 걸 느낄 때마다 나는 아름다움은 어쩌면 삶을 닮은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아주 오랜만에 행복하다는 느낌』중에서)


순간을 채집하고 소중하게 간직하는 방법으로 기록은 훌륭하다. 정작 쓰고 있을 때는 모르지만 나중에 가만히 읽어 보면 그때와 얼마나 달라졌는지 느끼고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어떤 말들은 여전히 깊은 곳에서 쌓이고 어떤 말들은 목까지 달려 나오다 멈추고 만다. 그런 말들이 글이 되어 나왔을 때 우리는 가만히 그 말을 듣고 그 말에 위로받고 회복된다. 그래서 글을 쓰고 글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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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것과 첫 만남을 기억할 수 있을까?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첫 떨림 정도는 간직할 수 있다. 누군가는 사진을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누군가는 어렴풋이 기억할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확신할 수 있는 시기는 언제일까? 어린 시절 집에는 양장본의 세계문학이 있었다. 아마도 영업사원의 화술에 부모님 중 한 분이 구매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아버지였을 것이다. 내가 생각하기로 아버지는 상술에 약하고 거절을 하지 못하는 성격이셨다. 한 마디로 우유부단한 사람이었다. 세계 전집 가운데 <수레바퀴 아래서>, <유리알 유희>를 기억한다. 읽지는 않았다. 어린 나는 읽지 않았지만 두 명의 언니 중 한 명이 읽지 않았을까 싶다.


동화책에 대해 잊히지 않는 기억이 있다. 명절이었는데 고모가 책을 사 왔는데 내가 아닌 사촌에게만 주었다. 나는 그 책이 갖고 싶었는데 내가 울어서 울며 겨자 먹기로 책을 받았다. 나의 기억과 고모의 기억은 다를 수 있다. 아무튼 그런 내가 모여서 책을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그리고 국어 선생님. 중학교 3학년 때 만난 나의 선생님. 지금까지 인연을 이어오는 유일한 나의 은사님. 이제는 같이 늙어가는 사이라고 농담을 건네는 선생님.


올여름 카톡으로 메시지가 도착했다. 선생님께서 보내신 기프트 카드였다, 책과 함께 행복하라는 메모도 있었다. 잊고 있다가 책을 주문했다. 책을 고르는 고민은 즐겁다. 읽고 싶은 책이 많고 궁금한 소설도 많아서 어렵다. 스테판 츠바이크의 『어제의 세계』, 윤고은의 『테니스나무』를 골랐다. 『찌니주의보』는 다른 서점에서 주문했는데 어쩌다 장바구니에 담겼다가 결제를 했고 취소를 하려니 벌써 출고 작업 중이었다. 창비의 요즘 표지는 정말 별로인데, 출판사는 모르는 걸까. 여름 독서가 아닌 가을 독서, 어쩌다 보니 추석 선물이 되었다. 연휴에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다.





책은 언제나 좋고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가까운 이가 있는 건 더 좋다. 친구들 가운데 책을 좋아하지 않아도 내가 책을 좋아하는 걸 알고 기억하는 이가 있는 것도 좋다. 책을 좋아하는 친구나 지인에게는 책을 선물하는 일은 즐겁다. 내가 고른 책, 내가 읽고 좋았던 책을 함께 읽고 그것에 대한 짧은 감상을 나누는 것도. 가끔은 내가 좋아는 걸 무작정 내 맘대로 선물하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책, 꽃, 티. 요즘엔 티가 많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좋아한다고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일은 즐겁다. 좋아하는 것을 기억하는 일, 좋아하는 것을 존중해 주는 일, 좋아하는 것을 응원하는 마음이 곁에 있다는 건 꽤나 행복하다. 좋아하는 책에 대해 맘껏 이야기할 수 있는 여기 알라딘은 친근하고 좋은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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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amoo 2026-09-22 1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은 어렸을때부터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으셨나봅니다. 전 어렸을 때 밖에서 논 기억밖에 없어요..ㅎㅎ

자목련 2026-09-23 12:38   좋아요 0 | URL
어려서부터 책을 아주 많이 읽지는 않았고요. 바깥보다는 집안에서 지내는 걸 더 좋아한 것 같기는 해요.
야무 님 평온하고 건강한 명절 보내세요!

바람돌이 2026-09-23 12: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아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표현할 수 있는 즐거움, 너무 공감이 갑니다. 딴데서는 눈치보고 잘 말하지 못하는 책을 읽는 즐거움을 이곳에서는 맘껏 표현할 수 있어서 이곳이 너무 좋아요.
알라딘 서재를 항상 풍성하게 만들어주시는 자목련님 편안하고 즐거운 명절 보내세요.

자목련 2026-09-27 11:03   좋아요 1 | URL
즐겁고 평온한 추석 보내셨나요?
책이 좋아서(읽는 것과는 별개로 ㅋㅋ), 이렇게 바람돌이 님의 댓글은 더욱 좋습니다!
알라딘에서 제가 모르는 책과 작가를 많이 알게 되고 놀라고 감탄합니다. 커피도 맛나는 알라딘, 정말 좋습니다 ㅎㅎ
 


여름이 시작될 무렵부터 여름에 대한 걱정이 자란다. 여름을 채울 폭염과 높은 습도를 체감하기도 전에 이미 여름의 한복판에 도착한 듯 겁을 낸다. 언제부터 여름은 이런 계절이 되었을까. 그래서 여름이 되면 여름의 즐거움, 여름의 맛을 생각한다. 더위를 많이 타기에 여름보다는 겨울을 더 선호하지만 여름의 매력에 끌리기도 한다. 빠져드는 여름의 저녁, 뒤척이는 여름밤, 쏟아지는 불평과 불만, 그것은 여름을 살아내는 증거이자 견디는 힘이기 떄문이다. 그러니 김연수의 여름에 반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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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김연수의 글을 읽기 전 제주의 여름을 모르고, 제주의 세화를 모른다. (세화, 여름의 이름)을 읽고 그 바다를 상상한다. 언젠가 그 바다에 닿을 거란 기약은 할 수 없지만 그 바다 ‘세화’를 품을 수 있다. 『계절 쓰기』는 제목 그대로 여덟 명의 저자가 한 계절을 맡아 쓴 이야기다. 두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만날 수 있다. 같은 계절이지만 그 느낌은 다르다. 당연하겠지만 말이다. 나는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지 못하는데 이상하게 매번 여름을 쓴 글을 지나치지 못한다. 아니, 정확하게 김연수의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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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연수가 들려주는 세화의 여름, 제주의 바다. 현무암, 김영갑, 오일장, 제철 한치의 맛을 읽는 일은 여름의 풍경이자 제주 세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여름이다. ‘세화’란 가는 꽃이 아니라 다랑쉬오름에서 바닷가까지 이어지는 가늘고 긴 수림지대를 뜻하는 이름이라는 것까지. 김연수가 기억하는 세화에서 보낸 그 여름밤은 다음에 찾은 그것과 결코 같을 수 없다. 매년 변화하는 여름, 살아있는 생물처럼 요동치는 여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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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여름은 지나가고 있습니다. 바람과 구름이 지나가듯이. 매일의 날씨가 달라지듯이.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고, 낮과 밤이 번갈아 찾아옵니다. 낮은 밤을 모르고 밤은 아침을 알지 못하지만, 여름은 그렇게 지나가고 또 돌아옵니다. (세화, 여름의 이름), 2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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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이 시작되면 시인으로서 휴가 신청을 한다는 김소연에게 겨울은 (미현실의 방)이다. 사람을 거의 만나지 않고, 시적 언어 따위를 밖으로 꺼내지 않아 서서히 지워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좋아진다는 시인. 시인이 아닌 오롯이 김소연으로 지내는 계절. 그것은 어쩌면 시인으로 표현할 수 있는 언어의 모든 것을 키워내는 단단한 동면의 시간이 아닐까 싶다. 시인의 어린 시절 추억이 가득한 경주를 만나는 일도 즐겁다.





식물분류학자 허태임의 봄 이야기 (봄의 눈)은 팽나무처럼 자신을 지탱해 준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으로 가득하다. 할머니를 통해 식물의 이름을 알고 순과 나물을 어떻게 먹는지 배운다. 고사리 새순으로 봄이 등장하고 자신의 엄마로부터 그것을 꺾는 걸 배운 할머니. 허태임의 봄은 자신을 돌보고 보살핀 할머니라는 겨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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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겨울눈을 안전하게 만들고 나서야 낙엽을 떨어뜨린다. 이파리가 연둣빛을 상실한 채 말라간다고 해서 나무가 발달을 멈추는 건 아니다. 더 치밀하게 세포를 만드는 방식으로 겨울을 대비한다. 깊이 생각하거나 몰입하듯이 자신의 내면을 돌보는 일이겠지. 그건 생존 전략인 동시에 일종의 신성한 의식일 수도 있다. 겨울을 무사히 건너기를 빌고 봄의 새순을 희망하는, 나무 세계의 동제 같은 것. (봄의 눈), 73~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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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평론가 윤경희의 가을 쓰기 (장미철)에서 만난 장미 기록과 직겁 찍은 사진은 신기하면서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장미에 대해서 새로운 걸 알게 되었다. 내게 5월의 장미로 각인된 장미가 한 해 여러 차례 개화하는 ‘개화 반복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 어느 계절에 장미를 만나고 놀라지 말기를. 장미에 사로잡혀 장미 시력이 생겼다는 저자의 말이 재밌다. 장미를 보면 저자가 자동으로 떠오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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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 홍한별의 가을, 인류학자 전의령 여름, 작가 김지승의 겨울과 은유의 봄도 각별하다. 저마다의 기억과 선명함으로 남은 계절, 어찌 그렇지 않겠는가. 나만의 방에 저장된 계절의 특별한 장면이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서일까. 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 여름은 아픈 계절인데 그래서 애틋한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여름의 시작엔 엄마의 죽음이 있었고 어느 여름에 나는 두 번이나 병실에서 긴 시간을 보냈고 커다란 여름의 기억은 큰언니와의 작별이다. 봄, 가을처럼 짧아서 아쉽고 붙잡고 싶은 계절이 아니라 여름은 어떻게도 건너뛸 수 없는 계절이 되었다. 아마도 나는 여름이라는 계절이 아니라 그 안의 나를 안쓰럽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의 『너무나 많은 여름이』를 좋아하고 좋하며 한정원의 『내가 네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을 좋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너무나 많은 여름이, 너무나 많은 골목길과 너무나 맣은 산책과 너무나 많은 저녁이 우리를 찾아오리다. 우리는 사랑할 수 있으리라. 우리는 좋아하는 것을 더 좋아할 수 있으리라. ( 「너무나 많은 여름이」, 281쪽)


나는 여름의 하늘을 조금 사랑한다. 당당하고 등등한 푸름을, 푸름을 가벼이 저버리고 소나기를 내리는 패기를, 패기를 무효하는 천진한 무지개를. 「조금 사랑하기」, 일부)


조만간 여름은 끝날 것이다. 누군가의 마음에 이미 가을이 도착했을지도 모른다. 돌고도는 계절, 다음 계절이 있다는 게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은 기록 속에만 존재하게 될지도 모른다. 계절을 읽는 일, 계절을 사는 일을 좀 더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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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단어』란 제목에 끌렸다. 그러니까 나만 아는, 나만 알고 싶은, 특별한 단어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그것은 뭔가 비밀스럽지만 평범하고 모두에게 다 열린 단어였다. 작가, 시인, 번역가 10명이 각가 자신만의 다섯 단어를 소개한다. 좋아하는 작가의 글에서 이미 만난 단어, 독자라면 그 작가가 어떤 단어를 즐겨 사용하는지 알 법도 하기에 그걸 발견하는 기쁨도 누릴 수 있다. 일례로, 김화진의 주머니라든가, 정용준의 산책 같은 것이다. 그러니 작가, 시인, 번역가의 개인적인 생각을 들려주는 책이다. 그게 무엇이든 나만의 의미를 지니면 특별하게 다가온다는 걸 알기에 이 책에서 만나는 모든 단어는 그들로부터 나에게로 건너 와 나만의 것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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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알려진 물건, 특별할 것 없는 것들이 의미를 갖는다는 건 어떤 소중한 기억이나 위로가 있을 때 가능할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렇다. 아니면 나만의 언어를 갖기 위해 특별하게 관리하게 위해 남들과 다른 이름을 붙이거나 의미를 부여한다. 사전적 의미를 떠나서 내가 이름 붙이기 나름인, 내가 사용하게 편리한 그런 단어들도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목록을 보면서 끌리는 단어, 좋아하는 단어를 살펴보며 그것을 먼저 만나면 재밌는 읽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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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경우 정용준의 소설 『유령』이나 「선릉 산책」이 떠올라서 정용준, 김화진의 소설 「사랑의 신」에서 만난 ‘주머니’란 단어가 기억나서 김화진의 단어부터 찾았다. 소설에서 사람은 주머니 같다는 김화진의 말은 뭔가 호기심을 불러오니까. 익숙한 느낌이면서 내가 모르는 의미를 만나 새로운 단어를 추가된 것만 같았다. 그러나 정작 마음을 붙잡은 건 시인이나 번역가의 단어였다. 시와 시인에 대한 알 수 없는 열망 같은 게 작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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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쓸 때마다 느끼는 사실이지만, 시 쓰기도 실은 고원을 산책하는 일 같다. 시를 쓰는 동안 어느새 도달한 고원은 시가 끝나는 동시에 서서히 흐려지다가 곧 그 고도와 넓이를 상실하고 만다. 그래서 시인은 늘 불만족 상태에 머무르며 다음 고원을 기다린다. 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 어떻게 하면 고원의 상태에서 좀 더 오래 머무를 수 있을까? 그것이 요즘 나의 화두다. (황유원 「고원」 중에서, 3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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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이 사라진 곳에서 다음 고원을 기다리는 동안 삶은 부질없이 흘러간다는 시인의 시간을 대변하는 것 같다고 할까. 잘 알지도 못하지만 그렇게 느껴진다. 황유원의 작품은 정확하게 읽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김선형의 번역가의 책은 읽은 기억이 있어 왠지 안도한다. 번역가의 단어를 읽으면서 원서를 읽으면 나도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을까 상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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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pang은 내 안 어딘가에서, 가슴에서, 혹은 뱃속에서, 불시에 팡, 터지는 얼음 폭탄 같다. 움찔 소스라쳐 아연하는 사이, 수백만 조각으로 비산한 날카로운 얼음 파편이 혈류에 침투해 온몸으로 퍼진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미소한 얼음 조각들이 흐느끼며 녹아내린다. (김선형 「Pang (n.)」 중에서, 13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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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아는 단어』에서 가장 좋았던 건 번역가 정수윤의 글이다. 일본어 루리에 대한 글에서 그는 자신의 이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릴 적 돌아가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수윤이란 이름에 담긴 애정에 대해서. 애틋하고 애틋한 그 애정을 응원하고 응원받는다.





이름은,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어떤 존재가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서 모두와 함께 약속되는 순간이다. 그 모두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존재하는 사람들이고, 나에게 이름이 붙는다는 것은 그 무한한 사람들로부터 내가 특정되는 일이다. 그들이 나의 이름을 부를 때, 그들이 내 이름의 뜻을 알든 모르든 나는 내 이름이 품고 있는 힘의 파장을 받게 된다. 나의 이름이 불릴 때마다 나는 그 이름으로부터 힘을 얻는다.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기억하고, 떠올리고, 말하고, 쓰고, 부를 때마다 나는 스스로 갈고닦고자 하는 열망이 조금씩 더 해진다고 믿는다. (정수윤 「루리」 중에서, 208~20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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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주변의 사물이나, 내가 아끼는 단어에 대한 생각이나 기억이 이어진다. 내가 시집을 고를 때, 몇몇 시어에 끌린다는 것. 그건 단순히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나에게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우산, 의자, 풍경이 그러하다. 종종 그것들에 대해 생각하고 글을 쓰기도 하는데 부끄럽지만 나는 우산에 대한 이런 글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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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을 열다, 우산을 펴다, 우산을 접다, 우산을 개다. 말장난 같은 말들이 주르륵 따라왔다. 이처럼 열고 닫을 수 있다는 건 간편하고 편리하구나 생각했다. 그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자동으로 열리는 우산, 마음에는 그런 버튼이 없다는 게 다행인지 불행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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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여는 건 정말 어렵다고 한다. 연다는 건 문이 있다는 말인데, 그럼 문의 위치와 입구를 찾는 게 먼저다. 그렇게 찾아 연 문이 닫힌다면 얼마나 무섭고 두려울까. 물론 마음의 문을 닫는 것도 그렇다. 처음부터 활짝 열린 마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마음도 있으니까. 어렵게 열린 마음이니 그 마음을 닫는 일은 얼마나 더 어려울까. 마음에는 길도 없고 마음에는 이정표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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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 안으로 들어와야 볼 수 있는 우산의 내부, 일정하게 자리한 우산 댓살처럼 안으로 들어와야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밖에서 짐작하는 것과는 다른 것들이 많다. 그러나 함부로 예측하고 예단하면 안 된다. 그중 가장 어려운 게 마음이다. 마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 마음 안에서 마음을 보는 일. (우산을 정리하다 쓴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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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좋았던 소설가의 소설을 펼치고 시인의 시를 찾는 일로 확장된다. 하나의 책이 다른 책으로 이어지는 기분 좋은 읽기.


어쩌면 그의 삶은 오해되고 왜곡되었는지 모른다. 아니, 우리를 속이고 있는지도 모르지. 솜씨 좋은 작가처럼 거짓을 진짜처럼 혹은 진실을 가짜처럼. 영혼은 편하게 침대에 눕혀놓고 하루종일 내 손을 잡고 유령처럼 산책하다 집에 돌아간 것일지도 모른다. 아닌가. 하지만 그럴 수도 있지. 모르는 일이니까.「선릉 산책」 중에서


사람을 상상하는 일. 겉으로 보이는 행동이 전부라고 애써 믿으면서도 그 안을 조금이나마 헤아려보는 일. 나는 그런 걸 그만둘 수 없는 것 같아. 사람은 주머니 같다. 나는 그 안이 궁금해. 「사랑의 신」 중에서


특별하면서도 특별하지 않고 공통적이면서도 공통적이지 않은 단어의 이야기. 좋아하는 작가가 소중하게 다루는 단어를 함께 기억한다는 건 작가와 알게 모르게 연결된 기분이다. 그래서 이런 책은 지나치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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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6-08-18 1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이지 예쁜 찻잔과 책이 함께 놓여있는 자목련 님 페이퍼의 사진은 언제나 좋습니다!

자목련 2026-08-18 10:49   좋아요 0 | URL
더 열심히 찍어보겠습니다!

꼬마요정 2026-08-1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쁜 찻잔, 맛있는 커피, 그리고 책.... 이건 완벽입니다!!!

자목련 2026-08-21 09:12   좋아요 1 | URL
요정 님의 댓글이야말로 행복을 전하는 완벽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