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는 장맛비처럼 강한 바람과 함께 비가 내렸다. 창문을 두드리는 바람의 손길이 너무 커서 조금 무섭기까지 했다. 따뜻한 겨울은 차가운 겨울을 준비하고 기다려온 이들에게 걱정을 안겨준다. 뉴스를 통해 마주한 겨울철 축제의 현장은 속상함 그 자체였다. 얼마나 많은 시간 계획하고 공을 들였을까 싶은 마음에 괜히 나도 속이 상했다. 지역마다 계절에 따라 축제를 연다. 그 축제를 위해 떠난 기억과 현재의 간극은 크기를 잴 수 없을 만큼 크다. 먼 기억 속에는 행사의 첫 회를 즐겼던 순간이 아련하게 남았다.

그제부터 어제까지 내렸던 겨울비는 그쳤고 하늘은 여전히 뿌옇다. 미세먼지 때문일까 생각하다 겨울이니 그런가 하고 여긴다. 새해의 인사를 나누면서 건강에 대한 안부를 묻는 일이 많아졌다. 즐겁고 복된 새해라는 것보다는 무탈한 새해를 맞으라는 바람을 전한다.

새로운 세계로의 진입을 앞둔 이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일은 뿌듯하면서도 불안한 것 같다. 부모라는 이유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뭔가 도움이 되고자 하면서도 그 도움을 전할 방법을 찾기 못해서 그저 안타까운 마음을 붙잡고 있다. 구체적으로 도움을 청하지 않을 때는 그저 곁에 가만히 머무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인지도 모른다.

지난 연말에는 친구를 만났다. 크리스마스에 만난 친구는 친구의 남편도 함께였다. 부모님의 건강으로 인해 분주한 마음을 잠시 내려놓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고 빵을 먹었지만 그들의 마음이 마냥 무겁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이별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 우리는 그 이별 앞에서 어찌할 바를 모른다. 모든 것은 후회로 남는다. 크리스마스 다음 날에 바쁜 시간을 쪼개 길을 달려온 친구를 통해 듣은 이야기도 마찬가지로 이별에 관한 것이었다. 가족의 죽음을 감당하는 일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충분하다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 상실과 애도 사이에서 무너지지 않고 일상을 지키는 일은 위대한 일이다. 우리의 삶은 그런 위대함의 조각들이 모여 완성된다. 담담하게 죽음을 말하는 친구 앞에서 울고 있는 건 나였다. 몇 년 전 우리의 위치는 반대였다. 같은 자리에서 죽음을 말하는 일이 삶이었다.

 

 

 

 

2020년에도 보통의 날이 이어지고 몇 권의 책을 검색한다. 시인으로 등단한 장혜령의 자전적 소설과 윤이형의 소설, 제목이 주는 울림 때문인지 그 고독에 닿고 싶은 소설이 눈에 들어온다. 흐린 날에는 햇빛이 더욱 간절하다. 길게 늘어나는 그림자가 보고 싶다. 하늘의 해를 향해 고개를 들고 눈이 시리도록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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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고장 난 시계를 집에 두는 게 아니라고 말했다. 고장이 났다는 건 건전지를 제때 끼워도 시계가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계가 많다는 건 그만큼 시간에 대한 강박이 강한 건 아닐까. 손목에 시계를 찼던 게 언제였던가. 휴대폰이 나오면서 시계는 멀어졌다. 직업적 특성 때문에 유독 시간에 민감했던 큰언니는 시계가 많았다. 어쩌면 시계를 좋아했는지도 모르겠다. 집안에 둔 시계의 시각도 제각각이었다. 5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10분이 빠르게 가는 시계. 모두 정시보다는 조금씩 빨랐다. 이사를 하면서 장식용으로 내가 권했던 건 양면 시계였다. 마음에 드는 시계를 찾지 못했던 탓일까. 양면 시계는 두 개가 있다. 그러니까 벽에 걸려있는 시계는 모두 네 개였다. 그중 하나를 버렸다. 고장의 여부는 상관없이 버렸다. 동생의 말 때문도 아니었다. 멈춰 있는 시간을 소유한다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할까. 탁상용 시계의 건전지는 모두 뺐다. 시계는 오직 양면 시계, 두 개만 작동한다. 두 개의 시간이 흐른다고 해야 할까. 나 역시 시간을 조금 빠르게 설정했다. 휴대폰 알람의 경우도 기상이나 약속 시간보다 일찍 설정해 울린다. 시간을 붙잡고 싶었던 걸까. 글쎄 모르겠다.

 

12월 24일에 붙잡고 싶은 건 무엇일까. 딱히 그런 건 없다. 이제 일주일 후면 새로운 시간과 마주한다. 그것은 새로운 시간일까. 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고, 미세먼지처럼 불투명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누군가와 함께 보낸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는 순간의 시간은 투명한 것일까. 자신의 전부를 드러내는 이런 잎맥처럼 환한 시간을 쌓고 싶다. 천천히 읽고 있는 서보 머그더의 소설 『도어』속 에메렌츠의 시간이 그러한 듯하다. 올해의 끝에는 그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갈 것이다. 좋은 소설과 보내는 시간은 빠르게 채워진다. 메리 올리버의 산문 『긴 호흡』도 좋을 것 같다. 외국 작가의 소설과 산문에 이어 한국작가의 소설과 시인의 에세이도 있다.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와 박연준의 산문집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사람들은 마음이 아플 때 건강하고 강하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으로 슬픔이 자신을 비껴가도록 내버려 둬야 한다고 착각하곤 하는데, 이는 건강한 방법이 아니다. 멍울진 감정이나 체한 슬픔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슬픔에게도 기회를 주어야 한다. 슬플 기회를! 무언가 때문에 상심해 있다면 자신에게 자연스럽게 다가오는 슬픔을 피하지 말고, 같이 여행을 가자. 상처가 나를 데리고 떠나는 여행이 끝날 무렵, 딱지 앉은 상처를 이제 내가, 데리고, 돌아오면 된다. 그렇다. 다시 관성의 법칙이다. 떠났으니 돌아오는 것, 피 흘렸으니 아물기를 기다리는 것. (​『인생은 이상하게 흐른다』, 중에서)

 

스스로에게 충분하게 슬플 기회를 주는 일, 충분하게 웃는 기회를 주는 일. 맘껏 웃고, 맘껏 울어도 좋겠다. 후련한 마음으로 새로운 시간 속으로 걸어간다면 그 발걸음은 얼마나 경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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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2-24 1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12-27 11: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9-12-24 1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2019년 서재의 달인 북플마니아 축하드립니다.
올해도 좋은 이웃이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즐거운 크리스마스 되세요.^^

자목련 2019-12-27 11:07   좋아요 1 | URL
언제나 축하 인사를 건네주시는 서니데이 님, 감사해요.
저야말로 서니데이 님의 이웃이라 행복했습니다.
내년에도 잘 부탁드립니다^^

서니데이 2019-12-31 2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새해인사 드리러 왔습니다.
조금 있으면 2020년 경자년이 됩니다.
새해에도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평안 있으시기를 기원합니다.
행복과 행운 가득하시면 좋겠습니다.
새해복많이 받으세요.^^

자목련 2020-01-03 11:10   좋아요 1 | URL
2020년, 건강하고 즐거운 일들이 가득하기를 바라요.
서니데이 님,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H와 연락이 끊긴 지 3년째다. 2017년 초, 1년을 목표로 봉사와 공부를 하려고 해외로 떠난 그녀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휴대전화 번호를 누르면 “고객의 요청에 의해 당분간 착신이 금지되었다"라는 친절한 안내 멘트가 나온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일에, 명절에 문자를 보낸다. 문자가 도착했을지, 그녀가 확인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그냥 그렇게 안부를 전한다. 떠나기 전 우리는 만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과 녹차를 마셨다. 그저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기를 바란다며, 이곳은 춥거나 덥다고 나는 잘 지낸다고, 보고 싶다고 그런 말들을 쓰면서 어쩌면 그녀가 돌아온 건 아닐까 생각한다. 어떤 사정이 있어서 나에게 연락을 하지 못하는, 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그럴 때면 나는 우울해진다. 우리가 함께 보낸 순간, 시간들이 떠올라서, 내가 뭔가 잘못한 게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그러다 내가 진짜 H를 잘 알고 있는 건가 의문이 든다. 누군가를 아는 게 진정 가능한가 싶은 거다. 그러면서 그녀에게 나를 전부 보여준 게 맞나 싶다. 숨김없이 그녀와 소통하고 있었던가. 그녀와 내가 보낸 문자의 내용을 읽으면서도 그랬다.

 

서로의 가족사를 털어놓고 속상했던 일상을 말하고 어떻게 살고 싶다는 바람을 알고 있지만 정작 그 마음의 한구석에 자리한 감정의 공간을 나는 모르고 있었던 건 아닐까 생각한다. 그녀가 했던 말들을 나는 귀 기울여 듣지 않았던 건 아닐까 하는 그런 마음. 손보미의 『디어 랄프 로렌』속 종수가 수영이의 마음을 읽지 못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어떤 마음. 나도 H에게 그랬던 건 아닐까. 책장을 정리하다 병원에 입원했을 때 H가 병문안을 다녀가면서 전한 메모를 발견했다. “언니”로 시작하는 고운 손글씨로 나를 걱정하던 편지에 그녀의 말간 눈동자가 담겨 있었다. 소설은 종수가 랄프 로렌의 생애를 추적하는 내용이지만 결국엔 종수와 그를 둘러싼 이들에 대한 이야기였다고 생각한다. 소중한 사람을 지켜보고 그를 인정하는 태도에 관한 소설. 한국의 학창시절에 랄프 로렌에게 보낼 편지를 쓰던 수영이 종수를 향했던 마음, 미국 대학원에서 지도교수가 전한 조언, 기숙사 친구의 위로와 진심, 랄프 로렌에 생에 대해 알아가는 과정에서 만나 데이트를 했던 섀년과 대화를 나누면서 조금 더 알아가는 이야기. 어쩌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고 느낀다. 그들과 나눈 녹취록을 들으면서 자신이 뒤늦게 발견한 마음들은 누구에게나 속한 그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그 친구는 내가 학교에 안 나간 후부터 내 집 문을 두드렸어요. 노크 말이에요. 누군가 내 집 문을 노크해줬죠. 섀넌, 나는 그걸 계속 비웃었지만. 이제는 비웃는 걸 그만해야 할까 봐요. 섀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냥 잘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돼요. 그냥 당신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본문 중에서)

한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존재하기나 할까, 순간 두려워진다. 돌이켰을 때 후회가 남지 않으려면 순간순간 나를 향한 노크를 놓치지 말고 곁에서 듣고 있다는 신호를 보낼 수 있어야 하는데. 문을 활짝 열어 반기지는 못하더라도. 종수가 섀년에게 건네는 문장을 읽으면서 내가 H의 문을 노트하는 거라 여겼는데 아니었다. 나는 H가 나를 노크해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보내는 문자는 그녀가 제발 내게 답을 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었고 안내 멘트가 아닌 목소리로 나의 전화를 받아주기를 바라고 바랐다. 나를 언니라 불러주는 소중한 사람, 나는 그녀의 마음 가까운 곳에 닿고 싶었지만 그런 노력을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뿐이다. 아마도 나는 더 기다려야 할 것이다. 그녀에게 다가가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걸. 우리 사이의 거리가 좀 더 멀어질 수도 있고 가까워질 수도 있다는 걸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러면서 그녀와 내가 나눈 이야기를 되짚어본다. 그녀는 상담을 공부했고 그에 관련된 일을 했다. 그녀가 만나는 이들은 평범한 삶의 범주보다는 다른 삶을 사는 이들이 많았다. 타인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가장 기본인 일이었다. 우리는 종종 정치나 사회의 이슈에 대해서도 말을 나눴는데 적극적인 그녀의 말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했던 것 같다. 나의 환경을 핑계 삼았다고 할까. 아니 관심이 적었다고 하는 게 정확한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세상이라고 여겼던 것 같기도 하다. 선거, 투표, 촛불 집회에 대해서도 나의 마음은 그녀에 그것에 비해 무척 작고 얕았다. 

그녀가 자신의 영역에서 행동하는 사람이라면 나는 가만히 그 행동을 지켜보고 지지하는 것으로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 그런 그녀가 자랑스러웠고 내가 한없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걸 느꼈다. 그런 마음을 윤이형의 『작은마음동호회』를 통해서 더 많이 만났다. H랑 이 소설집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을 하면서 지방으로 내려간 H는 육아를 하면서도 공부를 놓지 않았다. 대학원에 다니고 논문을 준비하고 일을 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에는 언제나 달려가기 위해 운전을 시작했다. 출장을 다니는 그 길이 작은 여유라고 말했다. 그 자동차 덕분에 4시간 동안 운전을 해 내가 있는 소읍에 도착해 만나기도 했다. 윤이형의 단편 속 인물 면면이 그녀와 닮아 있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거대한 피클 단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이 속의 이것들이 우리죠. 혐오와 차별은 어디에나 있어서, 나 혼자 아무리 올곧게 살겠다고 마음먹어도 물들지 않기가 쉽지 않아요. 그걸 잊지 않는 게 중요하죠.” (단편, 「피클」중에서)

​“계속 살아가기로 했으니까요. 세상에 사랑이 부족하다고 살기를 그만둘 수는 없잖아요. 저는 다른 사랑을 발명했어요. 사랑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만, 사람이 적어요. 우리가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너무 적어요. 혐오를 사랑할 수는 없어요. 혐오하는 사람들한테 우린, 소음이나 먼지나 비닐 같은 것밖에 안 되겠죠.” (단편, 「님프들」중에서)

그녀가 바라는 든든한 연대와 공감을 보았다는 게 맞겠다.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고 더 섬세하게 이해하기 위해 더 많은 공부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던 그녀. 소설 속 동성애에 대한 사회적 시선, 성을 바꿔서라도 원하는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마음, 작은 움직임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 모든 게 그녀의 모습처럼 보였다. 소설 속 상황은 우리의 현실이었고 그 안에 나와 H도 살고 있음을 확인한다고 할까. 모두에게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그래서 더 많이 공부하고 싶어 했고 한국이 아닌 다른 곳에서의 삶을 선택할 수도 있다고 종종 말했던 H. 그녀를 응원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떠나지 않기를,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다.

 

나는 지금 H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 그곳을 떠나 다른 곳에서 지낼 수도 있다. 이런 상상은 하고 싶지 않지만, 한국에 돌아와 어딘가에서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삶을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가 떠난 낯선 타국의 지명을 검색하는 일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어디에 있든 그녀 스스로 잘 살아내고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나의 H만이 아니라 수많은 그녀들이 이곳이 아닌 그곳에서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을 거라고. 어떤 형태로든 서로가 연대하고 환대하며 살아가고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여형의 감상이라 여겼던 김영하의『여행의 이유』를 읽으면서 H가 참 반가워할 책이 아닐까 싶었다. 가장 근원적인 삶의 움직임을 인문학적으로 풀어낸 책이었기에. 생의 터닝 포인트를 위해 떠나야 했던, 떠날 수밖에 없었던 H를 이해하는 글 같아서다. 해내야 할 것들이 많은 현실에서 벗어나 조금은 단조로운 일상을 원했던 건 아닐까, 이제야 생각한다. H는 일과 업무로 맺었던 복잡한 관계에서 잠시 내려와 쉬고 싶었던 건 아닐까 하는. 내가 안다고 믿었던 무게보다 훨씬 감당해야 할 것들이 많았던 그녀의 삶의 무게. 떠나는 것은 진정 옳았다. 돌아오기를 위한 떠남이 아닐지라도. 김영하의 말처럼 그녀도 나도 여행자일 것이다. 다만 여행하는 곳의 방향이 다르고 여행의 이유가 다를 뿐이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이며, 타인의 신뢰와 환대를 절실히 필요로 한다. 여행에서뿐 아니라 지금, 여기의 삶도 많은 이들의 도움 덕분에 굴러간다. 낯선 곳에 도착한 이들을 반기고, 그들이 와 있는 동안 편안하고 즐겁게 지내다 가도록 안내하는 것, 그것이 이 지구에 잠깐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들이 서로에게 해왔으며 앞으로도 계속될 일이다.” (본문 중에서)

정확한 뜻도 모르면서 ‘시절인연’이라는 말을 떠올린다. 모든 인연에는 오고 가는 시절이 있다는 말. H와 나 사이의 인연은 어디에 있을까. 내가 읽은 이 책들을 함께 읽고 말하고 싶다. 어쩌면 이미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H를 그리워하는 걸 그녀는 온전히 느끼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도 우리가 서로를 마주하는 순간을 꿈꾼다. 그녀가 돌아오면 그녀를 예전보다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멀어졌던 시간만큼 더 가까워졌을 것 같은 유쾌한 착각. 연말을 잘 보내라고, 새해에도 많이 웃고 건강하라고 나는 H에게 문자를 전송한다. 열 개의 번호를 꾹꾹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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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저녁에는 돼지고기를 삶았다. 내가 수육을 위해 준비한 게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우리 집 냉장실로 옮겨 온 것이다. 작은 덩어리의 돼지고기가 품은 냄새 제거를 위한 재료는 없었다. 그 흔한 파, 양파, 깐 마늘도 찾을 수 없었다. 대신 냉동실에 빻아얼린 마늘이 전부였다. 그래도 삶아야 했다. 냉동실의 마늘을 국물을 내는 멸치 망에 넣고 잠갔다. 강황가루가 있었고 된장이 있었다. 커피는 언제나 준비된 상태. 냉장실에 소주도 있었다. 그래서 노란 옷을 입은 돼지고기 수육이 완성되었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았다. 고백하자면 살짝 냄새가 나긴 했다. 그러나 냄새를 감쌀 맛있는 갓김치가 있었다. 이 역시 누군가의 수고로 우리 집에 왔다. 먹을 때마다 그분을 생각한다. 다음에도 맛있는 김치를 먹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예전의 나라면 이런 요리 아닌 요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식재료는 여전히 부담스럽지만 그래도 조금씩 뭔가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시도한다. 얼마 전에는 냉동실의 오징어를 잘 분해(?) 해서 오징어볶음도 하고 김칫국을 끓이기도 했다. 해 본다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양념장을 만드는 일, 비율이나 비법은 없다. 그냥 내 멋대로 한다. 그러니 실패했을 때 가족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정말 크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시도하는 건 나가는 일이다. 성공이나 실패를 걱정하지 않고 그냥 하는 시작하는 일. 읽는 일, 무언가는 쓰를 일도 그러하다. 나에겐 그게 필요하다. 시도하다 실패하면 속상하다. 당연하다. 나는 커다란 마음을 지닌 사람이 아니니까. 작은 점에서 시작해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고 나면 용기가 생긴다. 욕심내서 아주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찌그러지고 잘 그려지지 않아 화가 나기도 한다. 작은 동그라미에서 조금 더 큰 동그라미로 가야 한다.

 

누구는 어렵지 않게 돼지고기 수육을 만들지만 내게는 어려웠다. 파, 양파와 깐 마늘이 충분하게 있었다면 잘 해냈을 거라 위안을 삼는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여러 번 반복하고 만들어봐야 잘 만들 수 있을 거다. 12월은 잘 만들지 못했던 일들이 하나씩 떠오르는 달이다. 너무도 좋은 기억력 덕분에 12월은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어제 수능 성적이 발표되고 당사자가에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만족스럽지 못해 속상한 마음도 많겠다. 그건 시작에 불과하다고 말해주고 싶다. 시작은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것이고, 모두의 시작이 같을 수도 없다고. 아이들도 알고 있겠지만 말이다.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있는데 후보작 이주란의 단편을 먼저 읽었다. 『모두 다른 아버지』에서 만났던 이주란이 아니었다. 등단 이력을 살펴보니 2012년이었다. 다른 후보작인 김혜진의 등단 연도와 같았다. 같은 시작이었지만 그들은 저마다의 속도로 나가고 있었다. 시작점이 같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출발은 아니다. 무엇을 시작하든, 나를 기준으로 해야 한다. 나만의 기준을 세우는 일, 어렵지만 그래도 계속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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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했다

의자에 앉으면 밀려오는 졸음에 대해

반대편에서 이어지는 평화에 대해

 

주택가를 무심히 지나는 고양이의 눈빛처럼

의심을 둔 채 확실해지는 것들을 믿지 않았다

 

문 앞에서는 매일 가능성과 마주쳤다

걱정을 알면서 우연을 내밀고

우산을 준비하면서 모자를 준비하고

 

무언가 일어날 거라는 생각으로 안도했지만

바람의 끝을 구름이라 부르거나

모래에서 기록을 찾는 식으로

비슷하게 시작해 조금 다른 이유로 끝나는 건

단지 비슷한 일로 남겨두었다

거짓말을 구해 아무데에나 숨길 수 있었고

고개 숙이는 혹은 고개 돌리는 내게

짐작하는 동안 내게 말했다

 

나에 대한 확신은 반복되는가 경험적인가

그리고 무력해지는 잠으로 돌아와 차츰 잊어버렸다

조금씩 다른 생각들이 쌓인 곳에서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할 뿐이었다 (「짐작하는 날들」, 전문)

 

 

겨울에 관한 시를 읽고 싶어 시집을 둘러보다 결국엔 이런 시를 읽는다. 뭔가 주저하는 날들, 뭔가 마음에만 키우는 나의 말들이 짐작하는 말들이었구나 싶다. 짐작하는 건 헤아리는 게 아닌데 짐작하는 건 혼자 단정하는 일인데, 그런 생각이 든다. 지난주에 서울 병원에 다녀오면서 다가오지 않은 날들을 짐작했다. 그 짐작이 맞을지 틀릴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나는 그렇게 짐작하고 있었다. 시의 말미에 등장하는 문장처럼 다시 물어보기 위해 계속 짐작하는 건 생각에 생각을 더하는 일이다. 하지만 다시 물어보지 않고 확인하지 않고 혼자서 짐작하는 건 나쁜 마음을 키울 수 있다. 그게 무엇이든 선명하고 정확한 게 좋다. 짐작하는 마음에 부정이 아닌 긍정의 힘을 실어주는 시라 생각한다. 짐작하는 건 준비하고 연습하는 일이고 짐작하는 건 기대를 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짐작하는 날들의 끝에는 어떤 날들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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