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픔은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러니 누군가의 슬픔에 관할 수 있는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설령 슬픔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해도 그건 그의 고유한 영역이다. 슬픔을 달래고 이겨내는 방식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슬픔을 달래고 이겨내는 방법이나 방식 같은 건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오수영의 에세이 『긴 작별 인사』 은 그런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상실과 애도에 대해 어떤 말이나 행동이 아닌 기록으로 말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지극히 사적인 기록이며 개인적인 고백이다. 그러나 상실과 애도는 누구나 경험하는 일이기에 누구도 피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모두의 기록이 될 수 있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다. 책에서 지칭하는 ‘그녀’는 저자의 어머니로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시간의 기록이다. 처음 ‘그녀’의 등장에 나는 연인이 아닐까 섣부른 짐작을 했다. 그러나 곧 글에서 등장하는 ‘그’가 저자의 아버지라는 걸 눈치챘고 어머니에 대한 기억이자 남겨진 아버지와 아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슬픈 세상의 풍경, 하루가 음소거 상태로 흘러간다. 소란스러웠던 세상이 고요하다. 차들이 빼곡한 도로와 사람들이 가득한 거리에서 나는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한다. 다채롭던 세상에 흑백만 남는다. (19쪽)


상실의 아픔과 슬픔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큰 울음으로 요란스럽게 공간을 메울 수도 작고 오랜 흐느낌으로 바닥에 내려앉을 수도 있다. 저자처럼 고요한 짧은 메모와 사유로 일상을 채울 수도 있다. 그 슬픔은 너무도 차분하고 내밀해서 읽는 내내 숨소리도 크게 내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예감하지 못한 이별, 부정하고 싶은 작별, 코로나로 인해 병원 면회를 할 수 없는 현실. 장례식장에서 집으로 돌아봐 그녀의 흔적이 가득한 공간을 마주하는 일은 이제껏 일어난 일들이 꿈이 아닌 실재라는 걸 알려준다. 곳곳에 남겨진 어머니의 메모, 쉽게 치워버릴 수 없는 것들. 경험한 이들은 경험한 대로 유품 정리에 대해 조언하고 남겨진 삶에 대한 당부를 건넨다. 그러나 안다는 것과 실감하는 건 다르기에 그것을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다. 정리할 거라며 자꾸 미루는 아버지를 탓할 수 없다.


사랑하는 이의 죽음을 먼저 겪어본 사람들. 세월이 흐르고 이제는 다 잊은 것처럼 웃고 있는 그들의 얼굴에서 언뜻 슬픔이 비치는 건 각자의 ‘그날들’이 남기 흉터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49쪽)


직장으로 돌아온 저자가 아무렇지 않게 일에 적응하고 춤을 배우고 취미 생활을 하는 아버지가 일상에 복귀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어머니와 아내를 그리워하고 있다는 걸 서로가 느낄 수 있다. 셋이 차지했던 공간에 둘이 앉아 밥을 먹고 셋이 함께했던 자리에 둘이 나타났을 때 상대는 그들을 기억하지만 한 사람의 안부는 묻지 않는다. 그 모든 것들이 한 사람의 부재를 인식시킨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를 먼저 떠나보내고 세상에 남겨진 사람들이다. 다만 가까운 이가 죽음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구태여 의식하지 않을 뿐. 슬픔은 늘 곁에 있었다. 우리가 외면한 슬픔의 세상을 배회한다.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봐 주기를 기다리면서. (103쪽)

결국엔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면서 그녀의 물건과 흔적들은 조금씩 정리가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부재를 인정하고 살아간다. 슬픔이 작아졌거나 사라진 건 아니다. 천천히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사랑하는 소중한 이의 자리는 우리의 곁에 있다.


죽음을 알리는 소식을 자주 접하는 날들이기에 저자의 글은 누군가의 시간이 된다. 지난 나의 시간과 겹쳐진다. 절대 회복될 것 같지 않았던 절망으로 채워진 시간들. 


한 사람의 개인적인 슬픔과 상실의 기록인 오수영의 『긴 작별 인사』를 읽노라면 델핀 오르빌뢰르의 『당신이 살았던 날들』이 자꾸 겹쳐진다. 슬픔이 남긴 상실과 애도의 시간은 어떻게 채워질까 생각한다. 죽음을 생각하는 일은 때로 두렵고 공포스럽지만 어느 죽음도 하찮게 여길 수 없음을 느낀다.


부재로 인해 존재를 증명하는 이들이 있다. 우리 역시 언젠가 부재로 존재할 것이다. 자연스러운 부재가 되기를 바라면서 살아간다. 어디에도 당연한 죽음은 없고 모든 죽음은 사고라고 했던가. 절망과 고통에 익숙해져 살아간다는 건 슬픔이다.


아무도 죽음에 대해 말할 줄 모른다. 아마도 그것이 죽음에 대해서 내릴 수 있는 가장 정확한 정의일 것이다. 죽음은 말을 벗어나는데, 죽음이 정확히 발화의 끝에 도장을 찍기 때문이다. 그것은 떠난 자의 발화의 끝일 뿐 아니라, 그의 뒤에 살아남아 충격 속에서 늘 언어를 오용할 수밖에 없는 자들의 발화의 끝이기도 하다. 애도 속에서 말은 의미작용을 멈추기 때문이다. 의미 있는 것이 더 이상 없음을 전하는 데에만 종종 쓰일 뿐이다. (『당신이 살았던 날들』, 139쪽)


시간이 지나 우리는 조금씩 잊는다. 마치 그게 당연한 삶의 진리인 것처럼. 어쩌면 그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와 바람은 끊어지지 않는다. 제대로 인사를 나누지 못한 작별을 생각한다. 나의 부모, 나의 형제와 나눈 작별. 쓸쓸하고도 외로운 작별을 생각한다.


의도하거나 그렇지 않은 이별이 아닌 어쩔 수 없는 작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헤어짐이다. 죽음을 피할 수 없기에 죽음을 연기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러나 단호한 죽음 앞에 모든 건 부질없다. 다만, 우리는 끝나지 않을 애도로 이어지는 삶을 살아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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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8 1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4-20 09: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새파랑 2022-05-07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두번의 당선 축하드립니다. 리뷰는 슬프지만 오늘은 즐거우시길 바라겠습니다~!!

자목련 2022-05-09 09:11   좋아요 1 | URL
새파랑 님처럼 파랗고 맑은 하루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2-05-07 17: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자목련 2022-05-09 09:1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산다는 게 허무하게 느껴질 때 무엇을 해야 좋을까. 주변을 둘러보면 모두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제자리인 것 같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무기력이 몰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럴 때 극단적이지만 삶의 마지막을 생각한다. 존재와 부재를 생각하면 모든 게 확실해진다. 존재의 이유 따위는 없다는 것. 나를 스스로 증명할 이유를 찾지 말고 그저 살아가는 일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소설에서 죽음과 직면한 이들을 만나는 동안에도 그랬다. 때로 어처구니없는 경로로 찾아오는 죽음, 그것을 피할 수 있는 생은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과 함께.


『디 에센셜: 헤밍웨이』는 한 권으로 헤밍웨이의 단편과 장편에 이어 에세이까지 만날 수 있는 장점을 지녔다. 그러니 누군가는 가장 익숙한 「노인과 바다」를 읽을 것이고 누군가는 끌리는 제목의 단편을 먼저 선택할지도 모른다. 나는 에세이 「F. 스콧 피츠제럴드와 함께 떠난 리옹 여행」 을 읽었다.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스콧과 헤밍웨이가 친구였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더욱 궁금했다. 가장 위대한 작가로 남은 두 작가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 스콧과 헤밍웨이가 전혀 다른 성향의 사람이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는 스콧은 충동적이고 헤밍웨이는 계획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에서 감기에 걸린 스콧과 엄살이 심한 그를 돌보는 헤밍웨이. 두 사람이 리옹의 호텔에서 대립 비슷하게 의견을 조율하는 장면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안겨준다. 헤밍웨이가 스콧의 소설을 읽고 그를 더 이해하게 되었다는 걸 말하는 부분은 무척 인상적이다. 작가와 글은 따로 분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걸 생각한다.


그 책을 읽고 난 나는 스콧이 무슨 짓을 하든, 그가 어떻게 처신하든 그것은 일종의 질병과 같은 것이니 할 수 있는 것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그를 도와주고 그의 좋은 친구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그에게는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될지 안 될지는 알 수 없지만 나 역시 그의 좋은 친구 중 하나가 되기로 했다. 그가 『위대한 개츠비』처럼 훌륭한 소설을 쓸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좋은 작품도 얼마든지 쓸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383쪽)


그건 헤밍웨이 역시 다르지 않았다. 죽음의 고비에서 살아온 그의 삶과 마찬가지로 소설에서 다양한 형태의 죽음이 등장하지만 희망을 놓지 않는 삶을 마주하게 된다. 「노인과 바다」만 바도 그렇지 않은가. 망망대해에서 느끼는 고독감, 거대한 고기와의 사투, 예상할 수 없는 삶과 죽음의 공포. 그 모든 게 담겨 있다. 김욱동 교수의 번역은 무척 섬세하다고 할까. 노인가 고기가 대치하는 장면이 하나의 생생한 수채화로 다가온다.






고기는 큼직한 꼬리만을 움직이며 무척 조용하고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둥글게 맴돌면서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노인은 고기를 가까이 끌어들이기 위해 있는 힘을 다해 줄을 잡아당기려고 애썼다. 한순간 고기는 약간 옆쪽으로 기우뚱했다. 그러더니 금방 다시 몸을 똑바로 하고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290쪽)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노인과 바다」에서는 희망에 대한 이런 문장이 가장 좋았다. 미풍이 다시 불어오기 시작했고, 배는 미끄러지듯 달렸다. 고기의 앞쪽 부분만 보고 있으려니 희망이 조금 되살아났다. 희망을 버린다는 건 어리석은 일이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305쪽) 


어디서 어떻게 찾아올지 모르는 바람처럼 희망도 그러하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아서. 지금의 시대에 필요한 소설이라는 엉뚱한 생각을 더한다. 그러니까 헤밍웨이는 소설에서 죽음에 가까이 다가가고 죽음을 말하는 듯하지만 삶을 보여주고 있었다.


예측 불가능한 삶을 사는 우리에게 헤밍웨이의 소설은 삶과 죽음의 균형 잡힌 사유를 던진다고 할까. 그의 소설이 많은 시간 사랑받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난산인 인디언 여자의 출산을 돕는 아주 짧은 단편 「인디언 부락」에서는 신비로운 탄생과 함께 고통을 견디지 못한 죽음을 대비시킨다.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본 아이에게 삶은 어떻게 다가올까. 아이가 알지 못하는 삶의 비밀은 무엇일까. 삶에 대해 알아갈수록 고통과 허무를 마주할게 될지도 모른다.


죽음을 곁에 둔, 아닌 죽음을 경험하는 소설 「킬리만자로의 눈」에서도 죽음 앞에서 아무런 존재도 아닌 인간을 만난다. 극심한 고통을 이겨낼 수 없어 부재를 선택하는 남자. 헤밍웨이는 이 소설에서 죽음을 경험하며 죽음과 하나가 되는 과정,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죽음을 실감 나게 묘사한다. 마치 그 모든 걸 경험한 사람처럼.


그것은 여전히 그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왔고, 이제는 그것에게 말을 걸 수도 없었다. 말을 못 하는 것을 알자 죽음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는 이제 말도 하지 않고 그것을 물리치려고 했지만, 그것은 그에게로 바짝 조이며 다가와 몸무게로 그 가슴을 짓눌렀다. (182쪽)


어둡고 무거운 소설에서 벗어나는 일은 생각처럼 쉬지 않다. 현실이 소설처럼 무겁다면 더욱. 어쩌면 소설을 읽는 일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현실에 익숙해지려는 연습인지도 모른다. 소설 밖으로 나올 때 현실도 다르지 않다는 게 위안이 될 수 없겠지만 미약한 희망의 바람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버릴 수는 없다. 그 바람이 언제 어디서 시작될지 도무지 알 수 없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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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22-03-16 14:51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는 스콧 피츠제럴드를 지지했고 그의 작품도 좋아했어요. 그러다보니 사생활적인 면에서 젤다 피츠제럴드에겐 가혹한 평가를 했지요. 이런 책, 종합선물세트처럼 ㅎㅎ 관심갑니다. 자목련 님 오늘 유난히 봄햇살이 따숩네요. 누리시길요.

자목련 2022-03-18 14:5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진짜 문학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근사한 선물이에요.
오늘은 무척 춥습니다. 따뜻한 시간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2-03-16 18:2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는 읽을때마다 좋더라구요 ㅋ 이 책도 사보고 싶은데 중복되는거 같아 망설여지네요~! 전 헤밍웨이 작품중에 <무기여 잘있거라>가 가장 좋더라구요 ^^

자목련 2022-03-18 14:47   좋아요 1 | URL
이런 책은 헤밍웨이의 작품을 많이 읽은 분보다는 처음 만나는 이들에게 더 좋을 것 같기도 해요.
새파랑 님, 좋은 시간 보내세요^^

캐모마일 2022-03-16 19:5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노인과 바다를 소장하고 있어서 고민했는데, 다른 작품들도 읽을 만하네요. 스콧 피츠제럴드와의 기행문이나 다른 단편들도 흥미롭습니다.

자목련 2022-03-18 14:39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다른 단편과 에세이가 있어 좋았어요.
케모마일 님, 포근한 오후 보내세요^^

그레이스 2022-03-16 22:24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늘색이 좋아서 구입한 책! ㅎㅎ

자목련 2022-03-18 14:38   좋아요 0 | URL
맞아요, 반할 수 밖에 없는 민트!!

희선 2022-03-16 23:2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소설은 예전에 《노인과 바다》밖에 못 봤군요 다른 소설도 많은데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네요 소설을 만나는 게 괴로운 현실에 익숙해지려는 걸지도 모른다니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밝은 이야기도 있지만 어두운 이야기도 많죠


희선

자목련 2022-03-18 14:38   좋아요 2 | URL
저도 대표작을 시작으로 단편을 조금 더 읽었는데 이 책으로 에세이도 만나서 좋았습니다. 요즘은 현실과 소설이 크게 차이가 없는 듯해요. 다시 추워지고 있어요. 희선 님 건강하고 따뜻한 오후 이어가세요^^

서니데이 2022-04-09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2-04-12 08:55   좋아요 1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2-04-09 09: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헤밍웨이 너무 좋죠 ^^ 좋은 작품으로 당선되신거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2-04-12 08:56   좋아요 1 | URL
제가 알지 못했던 헤밍웨이를 만날 수 있었어요.
감사드리며, 새파랑 님의 당선 축하드려요.
맑은 하루 보내세요^^
 

몸과 마음이 봄을 향하는 걸 느낍니다. 자꾸만 화사한 옷들을 검색합니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말 거라는 걸 알면서도 검색을 멈추지 않습니다. 제법 자란 머리카락을 묶을 머리끈을 한 번씩 찾아봅니다. 저 멀리 초미세먼지가 달려오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활짝 창을 열어 바람을 맞고 싶은 날들입니다. 아직 겨울은 우리 곁에 머물지만 다가서는 봄의 기운을 느낍니다. 아마 당신도 마찬가지겠지요? 그래서 이런 문장을 함께 읽고 싶어졌습니다. 당신과 나누고 싶은 문장이라도 해둘까요. 박준의 『계절 산문』에는 그런 문장이 참 많습니다. 편안하게 안부를 건네는 문장들입니다. 추위가 달아나지 않은 이 계절에 여름의 서늘한 온기를 느낍니다.


낮이 분명하게 길어졌습니다. 저는 하루종일 저의 하루를 살아가느라 이렇게 지쳐있는데 어둠은 조금 전에야 막 드리워지기 시작했습니다. 허정허정 집으로 돌아오는 길의 초입에는 어느 집 담장 너머 만발한 능소화들이 이정표처럼 서 있습니다. 이 길이 제 집으로 가는 길이 맞는다는 듯이, 혹은 지금부터가 여름이라는 듯이.


능소화는 바람에 흔들리고 덩달아 능소화가 만들어낸 그림자도 흔들립니다. 발끝으로 그림자를 따라 몇 번 따라 짚어보다가 그만둡니다. 온통 흐르는 것들을 지나 드디어 제 방으로 돌아옵니다. 제가 누우면 하루와 어둠과 가난도 따라 눕습니다. 함께 잠이 듭니다. 벌써부터 방은 덮고 새벽쯤 땀을 흘리며 잠이 깬 저는 일어나 물을 마십니다. 물을 마시고 살금살금 자리로 돌아와 조용히 다시 눕습니다. ( 「여름 자리」, 전문 84~85쪽)


바람의 길을 따라 걷고 싶은 마음입니다. 바람이 지나는 길목에서 차분하게 이런 글을 마주해도 좋겠지요. 다정한 그리움, 송곳처럼 솟아난 날카로운 미움과 분노를 가만히 안아주는 커다란 손길을 느낍니다. 뽀족한 송곳의 마음을 다 뭉그러뜨리지는 못할지라도 한두 개쯤은 사라질 것 같습니다.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갓 지은 밥을 공기에 퍼두었는데 반찬도 따로 담아 상 위에 올렸는데 아직 그 사람이 도착하지 않았을 때, 그래도 언제라도 저 문을 열고 웃으며 들어설 것 같을 때, 그릇 뚜껑이나 보자기를 올리듯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내가 무슨 말을 어떻게 했고 네가 다시 그 말을 어떤 식으로 받아쳤으며 그사이 숨어 있는 잘못의 세목들, 이런 것들은 들추어 밝히는 대신 그냥 덮어두는 편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또 덮어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나의 마지막과 그 사람의 마지막을 같이 두는 것이 아니라 나의 중간에서 그 사람의 마지막을 보거나 아니면 그가 중간쯤 왔을 때 나의 마지막을 보여주는 것이 더 나을 때가 있습니다. 덮어둔다는 것은 어느 낮은 시간을 그냥 흐르게 하는 것이고, 그곳으로 흘러오는 것들을 마다하지 않고 반긴다는 뜻이며 한참 세상이 지나 그 위에 무언가 쌓였다 해도 변함없는 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일입니다. (156~157쪽, 「크게 들이쉬었다가는 이내 기침이 터져나오는 겨울밤의 찬 공기처럼」, 전문)


서로 다른 계절이 만나고 헤어지는 날들, 어떤 이는 환절기를 앓기도 하지요. 그래서 짧은 몸살이나 감기로 며칠을 고생하기도 하고요. 헤어질 계절과 온전히 이별하지 못해서 생기는 통증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나의 계절과 헤어지듯 그 안에 담긴 나의 시간과도 헤어지는 일. 반성의 시간이 아니더라도 후회의 순간과 마주하니 안에서 탈이 난 밖으로 나타나는 건 아닐까요. 그러니 마음이 쉬어야 몸이 편안해지겠지요.


‘쉬다’라는 낱말은 여러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몸을 편안히 두다. 일이나 활동을 잠시 그치다’라는 의미가 그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의미의 ‘쉬다’가 우리에게 없다면 문제가 생깁니다. 조금 부정적인 의미의 ‘쉬다’로 변하는 것이지요. ‘탈이 나서 목소리가 거칠고 맑지 않게 되다’의 ‘쉬다’ 혹은 ‘음식 따위가 맛이 시큼하게 변하다’ 할 때의 ‘쉬다’. 더불어 ‘쉬다’라는 말에는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하는 뜻도 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반쯤 담그고 천천히 숨을 쉬어보았던 시간 같은 것으로 긴 겨울날이 기억되기를 희망합니다. (「쉼 쉼 쉼」, 전문 170~171쪽)


‘빛깔을 곱게 하려 뜨물에 담가두다’ 란 뜻이 참 예쁩니다. 더 곱고 빛나기 위해 쉼이 필요하고 나는 그것을 당신에게 알려주고 싶습니다. 박준이 제게 알려준 것처럼 말이에요. 박준의 유려한 문장은 읽을 때마다 어떤 맑고 고운 힘을 불러옵니다. 두 권의 산문집과 두 권의 시집이 그러합니다. 그래도 처음 만났을 때 느꼈던 이런 먹먹함 때문인지 저는 여전히 그의 첫 시집의 이런 시가 제일 좋습니다. 봄이 오고 있어서, 자꾸만 마음이 들썩입니다. 정작 봄이 와도 달라지지 않을 일상이 이어진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습니다. 



철봉에 오래 매달리는 일은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폐가 아픈 일도

이제 자랑이 되지 않는다


눈이 작은 일도

눈물이 많은 일도

자랑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작은 눈에서

그 많은 눈물을 흘렸던

당신의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나는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한다


좋지 않은 세상에서

당신의 슬픔을 생각하는 것은


땅이 집을 잃어가고

집이 사람을 잃어가는 일처럼

아득하다


나는 이제

철봉에 매달리지 않아도

이를 악물어야 한다


이를 악물고

당신을 오래 생각하면


비 마중 나오듯

서리서리 모여드는


당신의 눈동자의 맺음새가

좋기도 하였다 (「슬픔은 자랑이 될 수 있다」,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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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2-16 16:2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2-02-17 09: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잉크냄새 2022-02-16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이네요. 한번 읽어봐야겠네요.

자목련 2022-02-17 09:34   좋아요 0 | URL
잉크냄새 님, 즐겁게 만나시면 좋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미야모토 테루는 내게 『환상의 빛』으로 각인되었다. 작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사실 작가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소설로만 만나도 충분하다고 여겼다. 국내 작가가 아니라서 그렇기도 하고 나의 성향 때문일 수도 있다. 겨우 몇 권이 소설만 읽었을 뿐이지만 문학에 담긴 분위기, 쓸쓸한 고즈넉함이 좋았다. 그러나 소설과 다르게 산문을 읽고 나면 더욱 그 작가에 대해 끌리는 경우가 있는데 미야모토 테루도 그런 쪽에 속한다.


보통의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가 전부인 이야기. 에세이는 그런 것이지만 『생의 실루엣』이란 제목 때문인지 지나온 삶의 중요한 순간을 마침표를 찍듯 정리하는 고해성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작가의 의도와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지난 시절을 돌아보며 정리하고 소중했던 이들의 이름을 불러보고 그리운 이의 흔적을 찾는 일을 생각하면 왠지 숙연해진다. 그래서 생의 마지막을 앞둔 시점이 아니더라도 간간이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생의 그림자를 따라 걷는 일이라고 할까. 


뭐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온통 슬픔이거나 우울의 분위기에 갇혀 있는 건 아니다. 물론 기쁨과 웃음으로 채워진 것도 아니지만. 미야모토 테루가 들려주는 가족, 소설, 질병, 여행에서의 사유가 담담하게 이어진다. 어머니의 첫 번째 결혼과 이혼, 아버지가 다른 형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힘들었던 시절, 그 세대만이 경험할 수 있는 시대적 고통과 아픔은 내 아버지와 그의 형제들의 고단한 시절을 떠올리게 했다. 어쩌면 모두 힘들었을 시대, 그때 자녀를 돌보는 일은 생계를 유지하는 일보다 우선이 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정을 헤아린다고 할까.


어떤 일들은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그것에 대해 제대로 볼 수 있고 알 수 있으니까. 미야모토 테루가 겪은 공황장애의 증상처럼 말이다. 당시에는 공황장애에 대한 개념도 없었으니 치료는커녕 이해받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지하철로 이동하는 과정에 나타난 발작으로 지하철을 탈 수 없어 직장을 그만둔 일(전업작가로 위해서라지만)도 그런 경우였다. 하지만 미야모토 테루가 쓴 것처럼 지우고 싶은 경험도 언젠가는 큰 깨달음을 안겨주니 그게 인생이 아닐까 싶다.


내가 공황장애라는 병으로 얻은 수많은 보물에 대해 말하자면, 이제는 그것을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늘어놓을 필요가 없을 듯하다. 타인의 아픔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하나 더, 마음의 힘이라는 것의 대단함을 몸소 깨달았다는 점도 덧붙여둔다.(87쪽)


때로 우리를 살게 하는 건 불확실한 기억과 그것을 향한 궁금증과 그리움일지도 모른다. 어린 미야모토 테루가 무허가 터널 연립주택에서 보았던 어처구니없는 죽음과 불화하는 타인들의 모습은 삶의 모순 투성이지만 그 안에서 웃고 울었던 순간이 있었던 것처럼.


어떤 만남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만 오랜 여운을 남기고 어떤 만남은 다음을 기약하면서도 먼 훗날 바람이 전해준 죽음의 소식으로 만난다. 생은 우리가 주관할 수 없는 그런 영역인데, 그것을 거부한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12월이라서 그런 걸까. 괜히 마음이 분주하고 복잡해진다. 뭔가 더 채워야 할 것 같은데 나의 삶은 텅 빈 바구니처럼 썰렁하다. 1947년 생 노 작가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산다는 게 별게 아니라는 확신은 언제쯤 올까 궁금해진다. 오긴 올까. 말로는 쉽게 내뱉지만 사는 일은 언제나 난해한 문제를 받아는 것 같으니 생이 다할 때까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다가도 이런 문장을 읽으면서는 그래 사는 건 그냥 그런 거지 하면서 저자의 아버지의 말을 따라 중얼거린다.


네 살부터 서른다섯 살 사이, 싫은 일도 괴로운 일도 슬픈 일도 기쁜 일고 잔뜩 있었고 나를 둘러싼 것도 크게 바뀌었지만 나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중략) 나는 그때만큼 안녕한 마음으로 아버지의 말을 음미한 적이 없다. ㅡ 뭐가 어찌 되건 간에, 대단한 일은 없어.(139~140쪽)


2021년을 맞으며 품었던 기대가 물거품처럼 사진 것도 아닌데 2022년에 대한 어떤 기대도 생각나지 않는다. 내가 그릴 수 있는 생의 실루엣은 어떤 모양일까. 지금의 나는 얼마큼의 실루엣을 완성했을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일은 크게 다르지 않는데 12월은 유독 쓸쓸하다. 마치 한 해의 뒷모습을 붙잡고 있는 것처럼. 뒷모습은 사람에게만 국한된 게 아닐 테니. 2021년을 떠나보내며 우리가 마주하는 뒷모습이 따뜻하면 좋겠다. 


뒷모습에는 아무래도 ‘떠나간다’는 인상이 늘 따라붙겠지 하고 납득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끌리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반드시 그 사람의 뒷모습을 마음속에 되살리는 것부터 시작한다.(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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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1-12-07 21:1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쓸쓸˝이라는 발음이 쓰게 입에 걸리면서도, 또 찾고 싶어지는 맛일 듯 합니다. 쓸쓸을 통해 같이 살고, 살아 있음을 더 강하게 느낄지 모르겠구나...하는 혼자 생각도 하면서요.

˝쓸쓸˝이라는 말씀 때문에 그런지, 나란히 놓인 네 권 책 표지도 한결같이 가라앉아 차분해 보입니다. [생의 실루엣] 표지 정말 아름답네요

자목련 2021-12-08 15:13   좋아요 1 | URL
저도 ‘쓸쓸‘을 입에 달아봅니다.
제가 만난 저자의 책들인데 정말 표지가 하나로 통하는 듯해요.
표지도 책의 일부라는 말이 맞는 것 같아요.
 

이른 아침 병원에 다녀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피부 발진 때문이다. 항생제 주사를 맞고 약을 처방받고 돌아오겠지 싶었다. 그 과정은 틀리지 않았다. 언제나 그렇듯 친절하다고는 할 수 없는 의사는 간단명료하게 진료를 마쳤다. 약을 먹지 않고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동안의 불안을 견딜 수 없었다. 병원엔 가기 싫지만 병원에 다녀오면 이상하리만치 편안한 마음. 여전히 몸에는 발진이 많고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지만 좋아질 거라는 희망을 갖는다. 어쩌면 병원의 존재 이유 중 하나가 그런 희망 부여가 아닐까.


약을 먹어야 하니 잘 먹어야 하고 이렇게 찐빵을 먹는다. 유명한 그 지역의 찐빵이다. 알록달록 고운 색깔이다. 친구가 보낸 마음까지 더하니 더욱 곱다. 친구가 보낸 찐빵을 먹으면서 몸을 생각한다. 옷 속에 숨겨진 나의 발진들, 갈피르 잡지 못하고 흘러간다. 가려움에 대응을 하는 나의 손톱은 짧게 잘랐고 처방받는 연고도 발랐다. 하지만 바로 좋아질 리는 없다. 발진이 나에게 오기까지의 시간이 있었듯 사라질 때까지도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갈피는 못 잡는 건 내 마음도 그러하다. 옷을 들추고 확인해야 볼 수 있는 발진의 형태와 크기처럼. 마음의 옷은 너무도 두껍고 단단하여 쉬이 들춰보기도 어렵다. 어떤 날은 들춰보려다 포기하고 어떤 날은 마음과 대면하기가 두려워 포기한다. 한 겹, 한 과정만 더 나아가면 마음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갈피를 못 잡는 일은 책 읽기도 마찬가지다. 읽으려는 마음은 어디로 사라졌단 말인가. 봄에 온 책을 이제야 꺼낸다. 겨울과 잘 어울린다고 여기면서 책장을 넘기는 미야모토 테루의 『생의 실루엣』이 그렇다. 막상 주문하고 보니 읽었던 단편이 보이는 김초엽의 단편집 『방금 떠나온 세계』, 뒤늦게 발견한 시집으로 무척 기대가 되는 박은지의 첫 시집 『여름 상설 공연』, 아직 읽지 못한 이유리의 단편집 『브로콜리 펀치』, 제목만으로도 이상하게 위로가 되는 두 권의 책들로 김혜남의 『보이지 않는 것에 의미가 있다』, 프레이야 님의 『내가 당신을 볼 때 당신은 누굴 보나요』까지.


12월의 책들이다. 혼자만의 13월을 만들어 몇 권을 추가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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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ni74 2021-12-02 17:4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친구가 보내준 찐빵이 참 고와요. 자목련님 다 괜찮아지시길 *^^* 브로콜리 펀치 제목 넘 재미있네요. 아떤 내용일지 궁금해집니다 ~ 곧 있음 저녁이네요 ~맛나게 드세요 ~

자목련 2021-12-03 10:55   좋아요 1 | URL
네 색깔이 참 예뻐요.
병원에 다니고 약을 먹으니 괜찮아지겠지요.
감사해요.
이유리의 소설집은 평도 나쁘지 않아서 기대하고 있어요.
구매하고 바로 읽겠거니 했는데 여전히 미룸입니다. ㅎㅎ
미니 님, 좋은 하루 보내세요^^

새파랑 2021-12-02 17:46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병원갔다 오셔서 그래도 마음의 안정을 가지셔서 다행이네요~!! 그것때문이라도 병원에 가는가봐요~건강 잘 챙기세요

자목련 2021-12-03 10:56   좋아요 3 | URL
맞아요, 병원에 도착하면 마음이 편해지지요. ㅎㅎ
새파랑 님도 감기 조심하시고 따뜻한 하루 이어가세요^^

coolcat329 2021-12-02 20:0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찐빵 표면처럼 피부도 매끈해지시길요~~피부과 약 독하니 잘 드시고 잘 쉬셔요~

자목련 2021-12-03 10:57   좋아요 2 | URL
피부는, 당분간은 울긋불긋입니다. ㅠ.ㅠ
약 핑계로 마구 먹고 있어요
쿨캣 님도 건강하고 포근한 하루 보내세요^^

scott 2021-12-02 21:24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환자에게 불친절한 의사라니!
자목련님 잘 챙겨 드셔서 몸안에 면역력 키우셔야 합니다
쿨켓님 말씀처럼 피부과 약은 내성이 강해서 치료 잘 받으셔야 합니다!


자목련 2021-12-03 10:57   좋아요 2 | URL
저만 불친절하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ㅎㅎ
몸안에 면역력 키우기 기억할게요^^
감사드리며 스콧 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

책읽는나무 2021-12-02 21:3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피부 발진도 이렇게 덤덤한 듯 그러나 좀 골똘히 생각에 잠겨 발진을 바라보았을 자목련님의 모습이 떠오르네요?
찐빵!!!! 안흥 찐빵인가요??유명한 곳이라고 하시니 한 번 찍어 봤어요^^ 찐빵 색깔이 이뻐 한 번 먹어볼까?생각 했는데 자목련님은 친구가 찐빵을 보내주셨다니...아 나도 친구랑 나눠 먹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드네요?
자목련님의 친구분들도 다정하십니다.늘 곁에 있는 것처럼 먹을 것을 챙겨 주시는군요..찐빵이라 더욱 따뜻하고 달달해 보이네요~^^

자목련 2021-12-03 11:00   좋아요 2 | URL
넵, 진빵은 안흥 쌀 찐빵입니다!
화면보다 실제로 더 예쁩니다. 맛도 나쁘지 않고 크기도 적당하고요. 안흥 찐빵 전도사 된 기분입니다. ㅎㅎ
곁에 살뜰하게 저를 살피는 친구가 있어 감사하지요. 알라딘 서재의 이웃 님들, 나무 님도 그렇고요.
나무 님, 따뜻하고 환한 하루 이어가세요^^

2021-12-02 23: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21-12-03 11:0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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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 23: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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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11:0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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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11:3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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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3 17: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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