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페션 - 두 개의 고백 하나의 진실
제시 버튼 지음, 이나경 옮김 / 비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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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만나고 알아간다는 건 다른 세계로 진입하는 일이다. 거기에 사랑이 더해지면 그 세계는 더욱 단단해진다. 한 번 진입한 세계를 빠져나오는 일은 어렵다. 어떤 세계인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갇히거나 흠모한다. 이전의 세계는 단숨에 무너진다. 태어남과 동시에 발 들이는 세계는 가장 가까운 이들과 연결된다. 부모, 형제, 친구, 선생님을 통해 세상을 배우고 그게 전부라고 여긴다. 그랬던 전부가 사라지고 다른 전부가 생기는 계기는 저마다 다양하다.


제시 버튼의 장편소설 『컨페션』의 ‘엘리스’에게도 그런 한 사람과의 만남이 있었다. 스무 살 엘리스가 운명처럼 이끌린 ‘코니’와의 만남. 이성이 아닌 동성, 거기다 또래가 아닌 자신보다 열다섯 살이나 많은 유명 작가였다. 엘리스가 느끼는 감정이 무엇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어떤 확고함.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알아보고 같이 살기로 한다.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모든 걸 다 공유하고 사랑할 수 있다는 확신과 함께. 어쩌면 그건 스물의 엘리스에게만 해당되었는지도 모른다. 1980년 엘리스의 사랑은 뜨거웠다.


그런 엘리스를 찾는 한 여자가 있다. 2017년 9년을 사귄 남자친구 조와 동거를 하는 서른다섯 살의 로즈. 자신을 낳고 사라진 엄마를 찾기로 한 것이다. 어린 시절 항상 상상으로만 존재했던 엄마의 흔적을 더듬는다. 엄마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오직 한 권의 책 「초록 토끼」뿐이다. 엄마에 대해 함구했던 아빠는 이제야 책을 쓴 작가가 엄마와 긴밀한 사이였다고 알려준다. 그게 자신이 아는 전부라고. 딸이 엄마의 삶을 닮을까 걱정했던 아빠는 조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안정된 삶을 이어가길 원했을 것이다. 로즈를 낳은 엘리스에겐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로즈는 「초록 토끼」의 작가 ‘코니’에 대해 수소문한다. 그녀의 다른 책 「밀랍 심장」을 읽고 현재의 정보를 찾는다. 엄마 엘리스를 아는 유일한 여자, 코니. 로즈는 그녀를 반드시 만나야 했다.


소설은 1980년 엘리스와 2017년 로즈의 이야기를 교차로 들려준다. 과거와 현재, 그 둘을 이어주는 건 코니뿐이다. 엘리스는 코니의 모든 걸 공유하고 싶다. 하지만 코니가 글을 쓸 때는 혼자여야 한다는 걸 안다. 더 많을 시간을 보내고 싶기에, 뭐든 함께해야 하기에 코니의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미국행에 동행한다. 그곳에서 엘리스가 견뎌야 할 시간은 너무도 길고 힘들었다. 영화와 관련된 사람들과 코니의 친구들과의 모임에 항상 엘리스가 있었지만 코니는 그녀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서로를 사랑했지만 확인이 필요했던 엘리스에게 코니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었다. 일 때문이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스물셋의 엘리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다. 자신의 일에 당당하고 멋진 코니에 비해 엘리스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엘리스에게 전부였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그럼 2017년 현재의 로즈의 세계는 어떤가. 부모의 재정 지원으로 백수나 다름없는 삶을 사는 남자친구는 조는 엄마를 간절하게 찾아야 하는 로즈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엄마에 대해 단 한 가지라도 알고자 신분을 속여서라도 코니의 비서가 되겠다는 로즈를 이상하게 여긴다. 로즈에겐 그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로즈가 아닌 로라가 되어 관절염을 앓는 노 작가 코니에게 음식을 만들어주고 원고를 대신 타이핑하면서 엘리스에 대한 질문을 할 기회를 엿본다. 로즈가 아닌 로라는 자유로웠고 객관적으로 로즈의 삶을 볼 수 있었다. 조금씩 코니와 가까워질수록 로즈는 자신이 왜 이곳에 있는지 이유를 잊은 채 이대로 살아도 좋겠다고 생각한다. 코니가 삶을 마주하는 태도는 아름다웠고 어느덧 그녀에게 의지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자신이 지난 삶과는 다른 선택을 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소설은 끝내 엘리스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려주지 않는다. 코니가 로즈가 엘리스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로즈가 태어난 상황에 대해 알려주지만 엘리스의 행방은 끝내 밝혀지지 않았다. 로즈를 두고 떠난 엘리스의 마음을 짐작할 뿐이다. 로즈를 낳고 우울증에 힘들었던 엘리스는 코니가 그리웠고 화해하고 싶었다. 그건 코니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기분이 들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다 지나갈 것이라고 말해주는 대신 항상 엘리스에게 어딘가를 가 보라고 제안했다. (436쪽)


인생은 참 이상하지 않은가…… 전 남자친구가 코니를 데려오다니. 그리고 인생은 기적이 아닌가, 코니가 오고 싶어 하다니. 할 이야기가 너무 많고 서로 용서할 일도 너무 많았다. (455쪽)


그러나 둘의 만남은 영원한 이별로 이어졌다. 인생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 사랑했던 기억을 품고 엘리스는 떠났다. 그녀의 선택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녀의 삶이니까. 로즈의 선택도 마찬가지다. 조와의 이별과 그 이후 로즈가 결정한 모든 것들에 대해. 어떤 결정도 후회는 남는 것이다. 엘리스와 로즈는 코니를 만나면서 다른 세계로 진입했다. 이전과는 다른 삶,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기쁨을 느꼈다. 설령 그 세계가 춥고 쓸쓸하더라도 괜찮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으니까.


막연하게 로즈가 엘리스를 찾기를 바랐다. 엄마와 딸 사이에 흐르는 어떤 뜨거움을 기대했던 것 같다. 소설을 다 읽고 둘이 만나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느꼈다. 로즈는 엄마가 어떤 생을 살았는지 알았고 그걸로 충분했을 것이다. 엘리스의 인생에서 엄마는 일부일 뿐이고 전부가 아니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떤 생을 살든 누구를 사랑하든 그 안에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게 중요하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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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봄의 아쉬움을 붙잡아야 할 것 같은 연분홍의 표지, 벚꽃잎이 흩날린다. 말랑말랑한 연애, 사랑의 감정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벚꽃나무 아래』란 제목 옆 ‘시체가 묻혀 있다’는 문장은 섬뜩하다. 정말 벚꽃나무 아래에 우리는 알지 못하는 비밀이 있는 건 아닐까. 가지이 모토지로의 단편집 『벚꽃나무 아래』는 그런 호기심을 갖고 읽기 시작했다. 모두 12편으로 제법 긴 중편, 단편, 아주 짧은 일기 같은 소설을 만날 수 있다.


소설 속 화자는 대부분은 병약한 존재다. 깊은 병을 앓고 있거나 그로 인해 요양을 위해 홀로 지내는 경우도 많다. 몸이 아프다는 건 우울한 일이고 그 시간이 지속되면 우울도 깊어진다. 그럼에도 소설 속 화자는 전혀 그런 분위기를 보여주지 않는다. 일부러 아닌 척하는 것 같기도 하고 모든 걸 다 포기한 마음 같기도 하다. 제목부터 기꺼이 병을 맞아주겠다는 태도의 「태평스러운 환자」속 요시다는 폐가 나쁘다. 도쿄에서 대학에 다니다 병으로 인해 시골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낸다. 요시다는 밤마다 힘겨운 시간을 보내지만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 의사를 부르기도 그렇고 어머니가 걱정하실까 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의 병을 아는 어머니가 좀 더 정성껏 돌봐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다. 특별한 일 없는 일상, 그런 그에게 들려온 잡화점 딸의 죽음. 그녀 역시 폐병을 앓고 있었다. 그럼에도 죽음에 대해 태연함을 보이는 요시다의 태도는 가지이 모토지로의 그것일 것이다.


가지이 모토지로는 담담하면서도 섬세하게 인간의 내면을 묘사한다. 소설 곳곳에서 병으로 인해 어쩔 수 없는 생활, 그 안에서 느끼는 고독과 외로움을 만나는데 어둡거나 무거운 신산함이 아니라 아름답고 신비롭다. 바다에 대한 이미지, 바다를 보고 느끼는 감정을 들려주는「바다」나 아픈 몸을 이끌고 산책을 하다 발견한 과일 가게 앞 레몬을 구매하는 이야기 「레몬」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한 편의 긴 편지를 읽는 기분이 드는 「바다」의 이런 부분은 내가 아는 바다가 아닌 처음 접하는 바다를 상상하게 만든다.


그것은 실로 밝고 쾌활하고 생기가 넘치는 바다다. 아직 피로나 근심과 걱정에 더럽혀진 적 없는 순수하게 밝은 바다다. 유람객이나 병자의 눈에 닳고 닳아 너무 달아져 버린 포트와인 같은 바다가 아니다. 시큼하고 떫고 거품이 생긴 와인같이 아주 깊고 야만적이 바다다. (「바다」, 77쪽)

어디 그뿐인가. 자신을 지배하는 모든 감정이 레몬 한 알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레몬」의 문장들. 폐결핵으로 신경쇠약까지 걸렸지만 전혀 곤란하지 않다는 화자는 하루 종일 우울해 거리를 떠돌아다닌다. 마음을 달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리고 그가 발견한 레몬. 자유자재로 감정을 지배하는 가지이 모토지로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을 이끄는 병에 저항하고 대항한다고 느꼈다.

계속해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불길한 덩어리가 레몬을 손에 쥔 순간부터 어느 정도 누그러진 것 같아서 나는 거리 위에서 굉장히 행복했다. 그렇게도 집요했던 우울함이 이런 과일 하나로 풀리다니. (「레몬」, 147쪽)

그러나 병세로 인해 세상과 단절하듯 지내는 화자의 쓸쓸함이 묻어나는 소설도 있다. 요양지였던 N 해안에서 우연히 만난 K에 대한 이야기「K의 죽음」가 그렇다. 화자는 바닷가에서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쫓는 K와 이야기를 나눈다. 한 달 가까이 지냈지만 K의 죽음을 짐작할 수 없었다. 건강이 좋아져 그곳을 떠난 화자에게 들려온 K의 죽음. 밤을 가득 채우는 달, 그리고 바다.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떠올리기에 충분하지만 K는 그때 자신의 죽음을 직감했을까. 홀로 적막했을 K가 달로 갔을 거라는 화자의 바람이 맞았으면 싶은 마음이 든다.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는 이들은 스스로를 견디고 위로할 방법을 갖기 마련이다. 말도 안 되는 상상 혼잣말의 시간, 그 모든 것들이 표제작 「벚꽃나무 아래」에서 느낄 수 있다. 독백처럼, 편지처럼 시작하는 이 단편에서 화자는 자신과는 다르게 생생한 아름다움이 불안할 뿐이다. 그러니 스스로를 달랠 공상이 필요했던 아닐까.

이 골짜기에서 나를 즐겁게 하는 건 아무것도 없어. 휘파람새와 박새도 하얀 햇빛을 새파랗게 물들이는 나무의 새싹도 단지 그것만으로는 몽롱한 이미지에 불과하지. 나에게는 슬프고도 잔인한 사건이 필요해. 그런 균형이 있어야 비로소 내 이미지가 명확해지거든. 내 마음은 악귀처럼 우울하게 메말라 있어. 내 마음속 우울함이 완성될 때만 내 마음은 온화해지지. (「벚꽃나무 아래」, 200쪽)


온통 우울하지만 우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단편집이다. 권태로운 아름다움, 쓸쓸한 위태로움이라고 할까. 아무렇지 않게 수북하게 쌓인 꽃잎을 밟고 지나가는 삶이라고 할까. 생의 절망 앞에서 한없이 간절한 기도가 들리는 듯하다. 31세의 나이로 영면한 작가의 작품집이라는 게 아쉽고도 아쉬울 뿐이다. 일본 작가들의 산문집 『슬픈 인간』 과 함께 읽으면 좋을 단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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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파랑 2021-04-22 10:35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리뷰 읽어보니 아름답고 우아한 우울이라는게 뭔지 느낌이 오네요. 정확하지는 않지만~ 재능있는 사람들이 요절하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안타까운 ~

자목련 2021-04-23 10:42   좋아요 3 | URL
슬프고 절망하는 상황인데 그렇지 않고, 화자가 그러했어요. 말씀처럼 일찍 세상을 뜨지 않았더라면 더 많은 소설을 만날 수 있었겠죠.

scott 2021-05-07 15: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 축하 ~축하~
저도 이책 읽고 감동!!(온통 우울한 분위기였지만 ㅎㅎ)

오월에 건강하게~
오늘 황사 조심 하귀 ^ㅅ^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스콧 님, 감사해요. 그리고 저도 축하드려요.
5월인데 마냥 날씨가 좋지는 않네요. 춥기도 하고, 바람도 많이 불고요.
남은 오후 즐겁고 평온하게 보내세요^^

서니데이 2021-05-07 17:3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자목련 2021-05-09 16:20   좋아요 2 | URL
서니데이 님, 감사합니다.
건강하고 행복한 5월 이어가세요^^

초딩 2021-05-08 18:4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이달의 당선작 페이퍼 축하드려요~~~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2 | URL
초딩 님, 축하해주셔서 감사드리며 저야말로 멋진 데미안의 글 축하드려요^^
편안한 오이 이어가세요!

그레이스 2021-05-08 19:2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축하합니다

자목련 2021-05-09 16:23   좋아요 1 | URL
그레이스 님, 감사합니다. 저도 한아름의 축하를 보네요^^
향기로운 5월 이어가세요^^*
 
숨은 눈
장정옥 지음 / 학이사(이상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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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정옥의 소설집 『숨은 눈』을 읽으면서 자꾸만 제목을 ‘숨은 눈’이 아니라 ‘숨은 눈물’이라고 여겼다. 눈물을 삼키며 살아왔을 수많은 여성들이 생각나서 그랬다. 내 어머니와 언니와 친구와, 기사의 실제 인물, 소설의 주인공들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들 중 어느 하나는 나와 닮았다는 걸 부정할 수 없었다. 그저 소설의 이야기라고 단정 지을 수 없어서 한동안 멍했다. 어떻게 이렇게 섬세하게 여자의 마음을 묘사할 수 있는지, 여성작가라서 가능했던 것일까. 6편의 단편엔 저마다 여자의 이야기, 엄마의 이야기가 있다. 이성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삶이 있다. 왜 저렇게 살아갈까, 단호하게 끊어버릴 수 없단 말인가. 한숨이 나오기도 했고,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표제작 「숨은 눈」은 이혼한 여자의 심경을 다룬다. 결혼생활 25년의 마무리는 이혼이었다. 다른 여자를 사랑하는 남편. 진부하고 뻔한 내용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말하기엔 너무도 복잡했다. 이혼을 했지만 딸과의 관계는 단칼에 끊어지지 않는다. 이혼한 전 남편의 간병인이 되는 상황이라니. 상상할 수 있을까. 담석으로 입원한 전 남편. 사랑이라고 우겼던 여자와는 헤어졌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자신이 병상을 못 지키면 딸애가 해야 할 일이었다. 딸을 위한 선택이다. 이상한 건 이혼을 한 후 어디선가 전 남편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착각이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든 것일까. 새로 이사 온 아파트에서도 그런 생각에 시달렸다. 엘리베이터의 거울, CCTV, 심지어 관리사무소의 수족관 속 물고기의 시선까지 자신을 몰래 훔쳐보는 것만 같았다.

여자에게 결혼은 무슨 의미일까. 사랑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살아가는 삶. 평범하고 평탄한 일상을 꿈꾸지만 사랑은 영원하지 않고 때로 이혼으로 이어진다. 남편의 외도로 인한 배신감을 참아내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건 현명하지 않다. 그러나 함께 살아온 시간에 대한 복잡한 감정은 간단하게 설명할 수도 정리할 수도 없다.

이혼을 한 엄마를 바라보는 딸의 시선으로 들려주는 「달의 노래」에서 그런 감정을 만난다. 이혼 사유는 아빠의 외도였다. 엄마는 미용실을 운영한다. 아빠는 오빠의 학비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집에 온다. 아빠가 올 때마다 엄마는 맛있는 음식을 준비한다. 그러니까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다. 정작 아들은 그런 아빠를 보려 하지 않는다. 아빠가 다녀갈 때마다 술에 취하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이해할 수 없다. 화자인 ‘나’는 몰래 아빠와 여자가 운영하는 식당을 훔쳐본다. “아빠는 숯불에 손을 쬐며 달을 보았다. 나는 같은 피를 나눈 사람끼리 느낄 수 있는 육감으로 숯불을 피우는 아빠의 외로움을 알아챘다.”란 문장이 모든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들이 위기를 견디고 이혼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산다는 건 알 수 없는 일의 연속이다. 무조건 참는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에 뜬 그림자를 보다』속 화자는 많은 시간을 참았다. 도박에 빠진 남편이 정신을 차리고 돌아오기를 바랐다. 살던 집을 날리고 경제적으로 무너졌지만 아이에게 아빠를 빼앗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다. 남편은 아빠이기를 포기한 사람 같았다. 남편을 집을 떠났고, 이혼을 선택했다. 시어머니에게 아이를 맡기고 간병인을 시작했다. 경력이 단절된 여자에게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돈을 벌어야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주말마다 만나는 아이와의 시간은 간절했고 이혼 사실을 모르는 어머니가 묻는 아들의 근황에 대해 답하기는 어려웠다. 엄마로 산다는 건 왜 이리 고달픈가.

딸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으로 딸이 낳은 아이를 입양 보낸 「내 마음의 파랑」과 어린 딸을 두고 떠날 수 없는 심경을 고스란히 전하는 「섬」의 엄마의 마음도 애달프다. 자식을 향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나’로 살아가는 이들이 아닌 ‘엄마’로 살아가는 사람들. 자식을 지키기 위해, 잃어버린 자신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살아간다.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에게 그들의 이야기는 다른 세계의 삶으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비혼 주의, 다양한 구성원의 가족, 이성이 아닌 동성을 사랑하는 이들. 경험하지 않는 세계에 대해 섣불리 말해서는 안 된다. 섣불리 누군가의 결혼과 이혼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숨은 눈』은 엄마, 아내, 여자로 살아가는 이들의 자화상이다. 다른 세대의 삶은 알고 싶지 않다는 이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들처럼 살라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어떠했을지 생각한다면 그들이 자신과 연결된 이들이라는 걸 알게 될 것이다. 현실도피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아이를 선택하지 않는 시대. 사랑, 결혼, 가족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의미를 돌아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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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에는 병원에 다녀왔다. 이제 귀는 약한 존재가 되었다. 귀가 가렵기만 해도 덜컥 겁이 난다. 평소와 다른 느낌이 들어 진료를 받았다. 의사가 이번에는 내 귀를 보여주지는 않았고 염증이 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무것도 하지 말고 푹 쉬라고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을까, 피식 웃음이 났다. 스트레스까지는 아니어도 신경이 쓰이는 일이 있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기에 무심히 지내는데 내 몸은 그게 아니었을까. 처방받은 약을 잘 먹으면 된다. 그러면 될 것이다.

그제는 생일이었다. 가족들과 함께 하루 종일 미역국을 먹었다. 고기를 넣고 끓인 미역국은 먹을 때마다 더 진하고 좋은 맛이 났다. 사촌동생과 올케언니와 친구에게 용돈을 받았다. 어른이 된 이후로 용돈을 받는 일은 거의 없는데, 생일이라서 용돈을 받다니. 이상하면서도 신이 났다. 내가 태어난 날을 기억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나는 음력으로 생일을 챙겨서 내 생일을 기억한다는 건 더 관심을 기울여야 가능한 일이다.

내 생일 다음 날은 친구의 생일이다. 친구도 음력 생일이라 우리는 서로 생일을 축하한다. 나는 친구에게 책을 선물했다. 책을 선물할 수 있는 사이는 좋다. 친구는 내가 고른 책을 기쁘게 받아주었고 받자마다 읽은 부분에 대해 신성하다고 전했다. 내 곁에도 있는 책, 우리는 같은 책의 같은 부분에 멈출 수도 있다.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과 일상을 나눌 수 있는 시간, 참 소중하다. 선배 언니는 꽃을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작약이 보였다. 작약을 보는 시간, 언니를 생각할 것이다. 언니의 생일은 3월이고 양력이다. 언니와 가까이 지내는 이들이 유독 봄에 생일이 많다고 했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특별한 다정함으로 다가온다. 앞으로 내겐 좋아한다는 그 이상의 말로 남을 것이다.





나를 위한 선물로는 책을 택했다. 이주란, 이장욱의 산문을 읽고 싶어 고른 『술과 농담』, 조해진과 편혜영의 단편집. 앞의 책에서 두 작가의 산문이 있다. 김멜라를 더 읽고 싶다고 느낀 문지와 문학동네의 책. 젊은 작가를 만나는 일은 즐겁고도 어렵다. 김멜라를 발견할 수 있어 좋았다. 이미 단편집을 출간했지만 나는 알지 못했다.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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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04-20 16:49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늦었지만 생일 축하 합니다.
봄철 환절기에 몸 곳곳에 오는 이상 신호!
병원에서 별탈 없다고 하니 다행입니다.
지인분들의 축하와 사랑
특별한 것 없어도 사랑과 우정이 가득한 소중한 분들이네요

저도 꽃중에 작약을 가장 사랑합니다.
항상 이시기에 상반기 회화전을 열였던 간송 미술관과 환기 미술관 정원에 활짝 핀 작약이 그립네요
[책을 읽고 꽃을 보며 가까이 지내는 이들을 생각하는 4월]
자목련님 생일 축 !!(🌼❛ ֊ ❛„)

자목련 2021-04-21 10:10   좋아요 3 | URL
축하해주셔서 감사해요.
특별할 것도 없는 보통의 사랑과 우정이 정말 귀하다는 걸 느껴요.
작약, 이름도 특별하고 저도 정말 좋아하는 꽃이에요.
이제 작약을 생각하면 스콧 님도 함께 떠오르겠네요!

mini74 2021-04-20 16:4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축하드려요 자목련님 꽃도 참 예쁩니다 ~ 책을 읽고 꽃을 보며 행복하고 안온한 4월 보내세요 *^^* 좋은 계절에 태어나셨네요 ~~

자목련 2021-04-21 10:08   좋아요 4 | URL
미니 님, 감사합니다. 전에는 몰랐는데 4월이 참 좋은 날들이구나 싶어요.
건강하고 향기로운 하루 이어가세요^^

새파랑 2021-04-20 17: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늦었지만 생일축하드립니다~! 생일선물로 책받으면 정말 좋을거 같아요. ‘술과 농담‘ 저 시리즈 다 읽어보고 싶네요^^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3 | URL
새파랑 님, 감사해요. 최근 시간의 흐름 출판사에서 나온 책들은 다 좋은 것 같아요.
화창한 하루 보내세요^^

coolcat329 2021-04-20 17:3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생일이셨군요. 주변 지인분들과의 관계가 좋으신거같아 보기 좋네요. 책과 꽃선물 참 부럽습니다~~♡

자목련 2021-04-21 10:07   좋아요 4 | URL
고마운 분들이 많습니다. 이 공간에서도 그렇고요. 쿨캣 님을 비롯한 다정한 분들^^
책과 꽃은 언제나 반가보 기쁜 선물 같아요. ㅎㅎ

붕붕툐툐 2021-04-20 23:5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자목련님, 지났지만 생일 축하드려요! 꽃사진 참 예쁘네요!
‘가까이 지내는‘ 이 말 참 좋네요. 저희 가족, 친척에도 4월 생이 참 많거든요~ 왠지 자목련님과 더 친밀한 느낌이 듭니다~ 행복하세요~♡♡(아, 제가 젤 좋아하는 꽃이 목련입니다.ㅎㅎ)

자목련 2021-04-21 10:05   좋아요 3 | URL
네, 가까이 지내는 이 말이 저도 참 좋아요. 붕붕툐툐 님의 가까운 분들도 4월생이 많군요. 말씀처럼 저도 친해진 기분입니다. 어떤 빛의 목련이든 목련은 매력적인 꽃입니다. ㅎ 목련 같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2021-04-21 02:2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지났지만 자목련 님 태어난 날 축하합니다 친구분하고는 하루 차이라니 그것도 좋을 듯합니다 용돈을 받기도 하다니 좋았을 것 같네요 자목련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희선

자목련 2021-04-21 10:03   좋아요 3 | URL
희선 님, 감사합니다. 생일이면 항상 떠오르는 친구가 있다는 게 좋습니다. 희선 님,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조성진의 피아노 연주를 듣는다. 좋아하는 선배 언니에게 선물 받은 것이다. 나는 음악에 대해 잘 모른다. 클래식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모르고 딱히 좋아하는 음악가의 리스트가 있지도 않다. 그래도 누군가 정성을 다해 곡을 연주하는 소리를 듣는 게 얼마나 행복한지 알고 있다. 송은혜의 에세이 『음악의 언어』를 읽으면서 내게 음악을 선물하는 언니가 더욱 고맙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언니가 읽으면 참 좋겠다고 생각했다. 저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 ‘음악’과 ‘언어’ 두 단어의 조합이 나를 이끌었다. 음악을 잘 몰라도 어린 시절 겨우 두 달 정도 피아노를 배운 게 전부여도 괜찮았다. 어른이 된 후에 여전히 피아노를 갈망하지만 실천은 못하고 있다.


음악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묻고 또 물으며 오랜 세월을 보내고 조금씩 음악을 나의 삶으로 품을 수 있게 되었을 때, 그 의미는 나 자신이 주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나의 좌절과 슬픔이 배어 있는 음악, 우리의 아픔을 기록한 음악은 온실에서 나와 현실을 마주한 진짜 음악이다. 서로를 음악으로 위로하고 품어줄 때 비로소 음악은 우리 안에서 살아 움직인다. (12쪽)


음악을 거창하고 대단한 게 아니라 우리 삶의 일부이며 삶을 위로하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는 게 좋았다. 그러니까 이 책은 그런 책이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이들에게는 다른 의미로 접근할 수 있겠지만 나는 동네 음악선생이라 불리는 저자가 차근차근 다정하게 들려주는 음악의 언어, 음악의 기운, 음악의 숨결, 음악의 소리가 좋았다. 음악을 선택하고 그것을 향해 나가는 삶이 얼마나 처절하고 고단하지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음악 안에서 거하며 음악과 하나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음악이 주는 기쁨과 감동을 전하는 일의 즐거움에 대해서는 알 것도 같다. 피아노를 배우고 곡을 해석하고 그것을 표현하는 일, 작곡가가 원하는 연주가 무엇인지 생각하고 고민하고 결국엔 찾아냈을 때 느꼈을 희열을 조금은 상상할 수 있었다. 무대 위에서 온전히 음악과 하나가 되어 연주를 하는 일의 외로움, 그 안에 쌓이는 고독을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감정을 끌어안는 음악의 추상성. 말도 그림도 우리의 마음을 담아낼 수 없다고 느낄 때, 한 소절의 선율로 우리를 위로하는 음악의 힘. (56쪽)


음악이 머리에서 몸으로 내려오는 동안 우리의 삶이 음표에 스밀 것이다. (80쪽)


책에서 등장하는 수많은 작곡가와 연주가에 대해 나는 잘 모른다. 챕터마다, 하나의 꼭지마다 등장하는 음악가들, 그리고 그의 작품 목록을 소개하는 수고 덕분에 독자는 조금 더 음악에 빠져들 수 있다. 저자가 알려주는 연주의 방법, 혹은 작곡가의 의도를 생각하며 듣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령 그것이 무언인지 그 의도를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없더라도 조금 다른 느낌의 연주를 듣게 된다. 연주자와 작곡가가 원하는 건 완벽한 연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때로 완벽하지 않은 연주가 더 큰 감동을 준다. 오랜 연습으로 굳어진 손마디, 목 디스크, 긴장한 모습이 연주자가 지나온 순간을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음악은 어떤 의미인가 생각하게 된다. 예술의 삶이 아니라 음악이 전하는 이야기, 음악을 통해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세상을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우울과 절망에 빠진 마음을 달래주었던 연주를 떠올린다. 어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음악으로 연결된 하나의 웅장한 공연장인지도 모른다. 음악을 하는 이들, 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의 삶은 나와는 다르게 흐를 것이다. 연습으로 채워진 시간, 좀 더 완벽한 연주를 위해 매달리는 그들의 일상은 뭔가 특별할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이 음악을 선택했을 뿐 삶의 흐름은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은 그만큼 어렵고 험난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삶 자체도 그러하니까. 실수하고 탐색하고 발견하고 변화하는 일이 음악에만 국한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음악, 나의 이야기가 담긴 음악을 연주하고 싶다면 계속해서 실수하면 탐색해야 한다. 전에는 경험해보지 못한 찢어질 듯한 큰 소리와 거친 소리를, 반대로 거의 들리지 않는 의미하게 스러지는 소리를 내보아야 한다. 음의 연결을 연습할 때도 소리가 완전히 겹치도록 연주하거나 극단적으로 짧은 스타카토로 끊어서 연주해보거나 공기의 울림을 이용해 두 음을 연결하는 등 표현의 스펙트럼을 넓혀봐야 한다. (101쪽)


혼자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을 알려주듯 독주가 아닌 합주, 앙상블에 대한 부분에서 적당한 거리가 필요하다는 말에 적극 공감한다. 다른 연주자와 친하면 좋은 연주가 나올 수 없다는 사실. 박자를 맞추고 빠르기를 섬세하고 조절하고 선율에 자신의 고유한 언어를 실어 전해야 하는 일, 몇 백 년 전의 예술가가 살아온 시간을 기억하고 닮으려고 애쓰는 마음. 그 마음을 내가 듣고 있다고 생각하니 연주를 듣는 자세와 태도를 바르게 고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곳을 연주할 때 어떻게 연주해야 하는지 설명해도 알 수 없고, 음악적 용어, 기호에 대해 알려줘도 잘 모르지만 이 책을 통해 단순하게 듣기만 했던 음악이 전하는 소리, 그 고유한 언어를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의 일상과 음악에 대한 담담한 사유가 아름다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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