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매뉴얼 - 유럽연합이란 무엇인가 한겨레지식문고 6
존 핀더.시몬 어셔우드 지음, 도종윤 옮김 / 한겨레출판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EU매뉴얼>의 뒷표지에는 이렇게 써있다.

 

우리는 유럽연합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이 책은 한-EU FTA가 체결될 때 쯤 유럽연합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어떻게 운영되었는지를 소개한 책의 번역본이다. 유럽연합에 대해 알려주는 책인데, 브렉시트가 발생한 2016년에 읽어도 손색이 없다.

 

영국이 유럽연합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가 발생했을 때 언론이나 SNS를 보면서 많이 놀랐다. 영국이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순간 의문이 들었다. 정말 그럴까? (<차브>라는 책이 영국의 상황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또 하나 브렉시트 뒤에 영국에서 구글검색어는 "유럽연합", "유럽연합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라는 것을 들어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바보같은 짓을 저질렀다는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런데 과연 유럽연합이 무엇인지 알면서 그런말을 하는 걸까? 유럽에는 문외한인 우리나라에 과연 유럽연합 전문가가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있을텐데 미국전문가들에 밀려 그동안 존재감이 미약했을 것이다.)

 

운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90년대 유럽연합에 잠깐 접할 기회가 있었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아마도 레포트), 그 때 알게 된 것이 유럽연합이라는 것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달라 굉장히 복잡하다는 것이다. 당시 읽은 내용 중에는 대륙(독일-프랑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는 유럽연합을 영국은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대륙 역시 영국을 미국의 첩자 정도로 불신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2016년 다시 EU를 다룬 책을 몇 권 들었다. <EU매뉴얼>은 그 중에서도 유럽연합을 이해하는 텍스트, 교과서에 가깝다. 비록 작은 판형에 두께는 얇지만 포스트잇으로 표시한 곳만 서른 곳이 넘을 정도로 공부할만한 책이다.

 

유럽연합은 왜 만들어졌을까? 유럽에서는 유럽 연방을 꿈꾸는 사람들이 계속 존재해왔다. 그렇지만 국가의 주권이라는 부분에서 협의점을 찾기 힘들었다. 유럽연합을 주도했던 프랑스도 드골대통령 체제에서는 연방주의에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초창기(1950년대)에는 경제협력을 중심으로 한 연합체의 성격을 가졌다. 일단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프랑스-독일 국경의 석탄을 개발하기 위한 유럽석탄공동체가 그 시초이다.

 

하지만 단순히 경제적인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1차대전후 프랑스는 독일 관리에 실패했고, 독일에 의해 2차 대전이 발생했다. 프랑스는 조금 더 효과적으로 독일을 관리하기 원했고, 2차 대전 후 경제 복구는 서유럽의 공동의 숙제였다. 독일 입장에서도 전범국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유럽과 손을 잡기는 힘들었다. 유럽공동체라는 우산아래 자연스럽게 유럽에 포함되고 싶어했다.

 

그런데 영국은 달랐다.

전쟁에서 패하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았던 영국은 다른 유럽인과 주권을 공유할 의사가 없었으며,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와의 신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5)

영국은 처음부터 유럽연합에 부정적이었고, 유럽연합에 일원이 되어서도 계속 유럽연합과 갈등을 일으킨다. 경제를 보는 관점자체가 영미식과 대륙식이 큰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차이는 결국 영국이 유럽연합에서 겉돌게 만들고, 궁극에는 브렉시트로까지 연결해서 봐야 한다.

 

(다시 유럽연합 이야기로 들어가면) 유럽공동체를 구속력이 있는 체제로 만드려는 노력은 수십년간 계속되었다. 로마조약이 체결되고,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이 체결되지만 각 조약들은 어떤 나라에서는 부결되기도 하는 등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극적인 사건이 발생한다. 소련의 해체다.

 

89년의 사건은 전대미문의 격변이었다. 소비에트블럭이 해체되어 공동체가 동유럽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고, 독일의 통일 또한 가능해졌다. 그러나 콜 총리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랑스가 점령국으로서 독일 통일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브란트 의해 시작되고 추구되던 정책, 즉 유럽공동체와 프랑스-독일의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동유럽 관계를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미테랑은 단일통화가 독일이 공동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므로, 따라서 독일 통일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마스트리트 조약이었다. 마스트리트 조약은 유로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뿐아니 라, 다른 권능과 제도 개혁도 규정했다. 공동체에는 교육, 청소년, 문화, 공공 보건 같은 분야와 관련해 일부 권한이 주어졌다. 각료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 투표의 범위를 더 넓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도가 강화됐다. 유럽의회의 기능은 여러 분야의 법률에서 각료이사회의 결정뿐 아니라, 유럽의회의 승인까지 요구하도록 하는 '공동 결정' 절차를 통해 향상됐다. 또한 유럽의회는 신임 집행위원 임명에 관한 승인, 불승인 권한도 확보했다.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두 개의 기둥(pillar)이 마련됐는데, 하나는 공동 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 , 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 및 내무 협력(Cooperation in Justice and Home Affairs, GJHA,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범죄 문제에 관한 경찰 및 사법 협력'으로 명칭이 바뀜)' 이라고 불리는 자유로운 이동, 역내 치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두 기지는 공동체 제도와 연관되긴 했지만, 정부간주의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 기둥, 공동체 등으로 불리는제1기둥과 다른 두 기둥 을 합쳐 거대한 전체 구조를 유럽연합이라고 이름 붙였다. (48-50)

 

물론 유럽연합이 한순간에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마스트리히 조약이 거부된 국가들이 있으며(수정후 통과), 많은 나라들이 간신이 통과되기도 했다. 유럽내에서도 유럽연합 반대가 심했다.

 

이렇게 유럽연합이 만들어졌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유럽연합은 조약이고, 그 조약에 합의한 나라의 연합체에 불과할 뿐이다. (?) 그런데 이 유럽연합의 힘이 커졌다. 마스트리히 조약은 기본적으로 유로 단일 통화 체제를 만들어냈는데, 이는 유로를 사용하는 나라가 자체적인 화폐권 그리고 통화 조절을 통한 경제정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로단일통화에는 독일의 영향력이 많이 반영되었는데, 안정적인 통화관리가 최우선이었다. 그래서 유럽연합의 국가들은 국가 재무건전성에 대한 기준이 많다. 이 점이 지속적으로 유럽연합을 불안정하게 만들고 있다. 단일 통화 자체가 심각한 구조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단일 통화로 인한 남유럽의 경쟁력 상실이 그대로 독일의 경쟁력이 된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는 재무건전성에 대한 협약이 유럽내 힘의 권력과도 관계가 있다. 실제 독일-프랑스가 재무건전성 기준을 충족시키지 못했을때 두 나라는 리스본 조약을 통해 조약을 개정해 버렸지만, 남유럽 국가들에게는 그런 자비는 전혀 없었다. 유럽연합이 제도 보다는 힘의 균형에 의해 운영된다. 

(관련해서는 <유럽연합의 종말>이라는 책이 잘 지적한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24206 )

 

이외에도 <EU매뉴얼>은 유럽연합이 돌아가는 원리를 자세히 설명한다.

 

그리고 중요한 지적 중에 하나는 바로 터키의 유럽연합 가입이다. 터키는 1990년대 부터 유럽연합 가입 협상중이지만, 쉽지 않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는 터키의 정치, 민주 문제이지만, 터키가 유럽연합 가입이 지지부진한 것은 다른 이유이다. 유럽연합은 기본적으로 각 나라의 인구수에 비례해 의석수를 갖는다. 인구가 가장 많은 독일이 가장 많은 의석수를 가지고 있고, 그 다음으로 프랑스, 이탈리아 등이 독일에 육박하는 의석수를 가진다. 그런데 터키가 들어오게 되면 의석수 배분에 문제가 생긴다. 독일보다 더 많은 의석수를 가지게 되는데 거기에 무슬림 성향이 강한 동유럽 국가들과 연합하게 되면 기존 독일-프랑스의 장악력에 문제가 생긴다.

 

사람들이 유럽연합에 긍정적인 것은(브렉시트를 비난하는 것은) 국제 헤게모니의 균형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미-중 패권 사이에 유럽이 기능을 해주는 것이고 경제적으로도 그 기능을 분담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유럽연합은 생각보다 약한 공동체 연합이다. 내부적인 문제는 심각하다. 독일의 안정적인 경제와 복지는 남유럽 국가들의 고난과 노동착취 위에 서 있다. 특히 그리스 위기 이후 유럽연합의 힘이 독일로 쏠리는 느낌이다. 실제 유럽집행위원회 요직 중에 하나가 미르켈 총리의 아바타 같은 사람이 선정되었다.

사실 나는 유럽연합을 우려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독일 제국주의적 성격을 갖는 것 같다. 물론 아직까지는 전범국이라는 딱지 때문에 군사력은 절대 갖고 있지 않지만... 어쨌거나 유럽연합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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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의 유럽연합 EU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렸다. 1950년대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 지속되었지만 정작 연합체의 모습을 갖춘 것은 1990년대에 들어서의 일이다. 연방주의자들과 국가주의자들의 대립도 강했지만, 무엇보다 유럽연합을 만들기 위한 공동통화의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았다. 유럽연합을 구성하는데 앞장 선 프랑스와 달리 서독은 마르크화를 포기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소련의 해체와 더불어 갑작스럽게 상황이 반전된다. 통일을 할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된 서독은 프랑스의 협조가 필요했고, 프랑스는 단일통화 사용으로 궁극적으로 독일을 유럽국가내에 묶어 둘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두번의 전쟁을 일으킨 독일을 감안하면)

 

기존 유럽공동체 EC에 공동 외교,안보와 사법협력이 이루어지면서 유럽연합의 기틀을 갖게 된다. 물론 이 조약이 유렵연합의 전부를 설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 이후에도 조약들이 개정되었으니까...

 

1989년의 사건은 전대미문의 격변이었다. 소비에트블럭이 해체되어 공동체가 동유럽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열렸고, 독일의 통일 또한 가능해졌다. 그러나 콜 총리는 미테랑 대통령의 지원이 필요했다. 공식적으로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프랑스가 점령국으로서 독일 통일을 거부할 권리를 갖고 있었다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브란트 의해 시작되고 추구되던 정책, 즉 유럽공동체와 프랑스-독일의 동반자 관계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동유럽 관계를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었다. 미테랑은 단일통화가 독일이 공동체 체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족쇄가 될 것이므로, 따라서 독일 통일의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마스트리트 조약이었다. 마스트리트 조약은 유로화, 유럽중앙은행(European Central Bank, ECB)뿐아니 라, 다른 권능과 제도 개혁도 규정했다. 공동체에는 교육, 청소년, 문화, 공공 보건 같은 분야와 관련해 일부 권한이 주어졌다. 각료이사회에서 가중다수결 투표의 범위를 더 넓히는 등 다양한 방법으로 제도가 강화됐다. 유럽의회의 기능은 여러 분야의 법률에서 각료이사회의 결정뿐 아니라, 유럽의회의 승인까지 요구하도록 하는 '공동 결정' 절차를 통해 향상됐다. 또한 유럽의회는 신임 집행위원 임명에 관한 승인, 불승인 권한도 확보했다. 공동체와 더불어 새롭게 두 개의 기둥(pillar)이 마련됐는데, 하나는 공동 외교안보정책(Common Foreign and Security Policy, CFSP) , 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 및 내무 협력(Cooperation in Justice and Home Affairs, GJHA, 암스테르담 조약에서 범죄 문제에 관한 경찰 및 사법 협력'으로 명칭이 바뀜)' 이라고 불리는 자유로운 이동, 역내 치안과 관련된 것이었다. 이 두 기지는 공동체 제도와 연관되긴 했지만, 정부간주의가 그 기초를 이루고 있었다. 

중앙 기둥, 공동체 등으로 불리는제1기둥과 다른 두 기둥 을 합쳐 거대한 전체 구조를 유럽연합이라고 이름 붙였다. (48-50)

 

유럽연합으로 가는 길 역시 만만하지는 않았다. 유럽연합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상당히 많았다. 어찌보면 지금의 브렉시트가 갑자기 터져 나온 것이 아니라 처음 시작부터 절반의 찬성과 절반의 반대로 이루어져 EU 존재 이유에 대한 의문부호가 지속적으로 따라왔다.  

 

1992년 2월 마스트리트 조약이 서명됐고, 많은 우여곡절 끝에 1993년 11월 발효됐다. 덴마크에서는 두 번의 국민투표가 실시돼 첫 번째 국민투표에서는 부결됐으며, 약간의 손질을 거친 후에야 두 번째 국민투표에서 통과했다. 프랑스는 유권자들이 근소한 차이로 국민투표를 거쳐 받아들였으며, 런던에서는 하원에서 비준 과정이 위태로웠고, 독일에서는 헌법재판소에서 기나긴 심리를 거친 후에야 이 조약이 헌법에 위배된다는 주장이 기각됐다. 이런 소동은 유럽연합에 대한 시민의 호응이 회원국 대부분에서 줄어들고 있다는 증거였으며, 특히 연방주의를 지향하던 사람들에게 는 경고로 보였다.(51쪽)

 

마스트리히 조약에 대한 설명 블로그 : 마스트리히 조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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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이란 유럽 연합(European Union) 회원국 간 국경 시스템을 최소화하는 국경 개방 조약이다. 유럽 각국의 자유로운 인적 교류를 목적으로 가입국 간 국경을 철폐하고 정보를 교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솅겐조약에 가입된 솅겐국가(Schengenland) 범위 안에서는 한 국가를 여행하는 것처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솅겐조약 가입국 사이에는 별도의 출입국심사가 없으며, 이동 시 여권이나 비자 등이 필요하지 않다.

http://100.daum.net/encyclopedia/view/47XXXXXXd672

 

유럽연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여러 조약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래서 유럽연합을 제대로 알기 힘들다. 그중에 자유로운 통행과 관련된 조약이 솅겐조약이다. 셍겐은 독일, 프랑스와 국경을 맞댄 룩셈부르크 지역이다. 이곳에서 자유로운 통행에 대한 조약을 맺는다. 유럽여행을 가서 별도의 비자없이, 검문없이 이동할 수 있는 것은 이 조약 때문이다.

 

기사 : <브렉시트> 반난민·이민 정서 표출에 '이동자유' 솅겐조약 위기

 

1958년 이미 로마 조약은 회원국 간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있는 네 가지 자유에 상품, 서비스, 자본과 함께 사람을 포함하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은 노동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권리에 한정된다. (152)

그러나 연방주의적 색채가 강했던 회원국은 이 말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려고 했다. 즉, 회원국 간 상호 국경 통제를 폐지하고, 모두가 자유롭게 국경을 넘어 이동할 수 있게 한다는 뜻으로 이해한 것이다. 이런 생각은 1985년과 1990년 룩셈부르크의 작은 마을 솅겐에서 체결된 솅겐 협정에 법적인 표현으로 등장했다. 솅겐은 프랑스와 독일 국경을 나란히 접하는 상징적인 마을인데, 이들 세 나라에 벨기에와 네덜란드가 합류해 협정에 서명했다. 이 협정에 영국과 아일랜드를 제외한 모든 유럽연합 회원국과 유럽자유무역연합(European Free Trade Association, EFTA) 회원국이 참여해 가맹국 수는 종종 솅겐 지대(Schengenland)라고 불릴 만큼 많아졌다. 

 

솅겐 협정은 두 가지 목적을 갖는다. 첫째는 국경 검문에 관한 것이다. 즉 , 솅겐 지대에서는 역내 국경 검문을 철폐하고, 역외와 통하는 국경에 순회검문소를 설치하며 난민·이민·타국인이 이 지역 안에서 거주 및 이동할 때 적용할 규정을 만든다는 것이다. 둘째는 범죄와의 전쟁에서 서로 협력하는 것이다. (153쪽)

 

셍곈조약 등에 설명된 블로그 : 솅겐조약은 무엇인가?

 

The Schengen Area
  Schengen Area
  Countries with open borders
  Legally obliged to jo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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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매뉴얼>은 유럽연합에 역사와 배경 그리고 운영원리 및 현재의 문제를 잘 짚어주는 책이다. 물론 몇년 전에 출간된 책이라 지금의 브렉시트를 이야기하지 않고 있지만, 책을 읽다보면 영국이 EU와는 겉돌았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물론 유럽연합내 모든 나라가 유럽연합의 가치를 공유하는 것은 아니다. 각 국가의 정부의 성격에 따라 유럽연합과 대치되는 결정들을 내리곤 했다. 예를 들어 유럽연합은 조약이라는 형태로 만들어지는데 그 때마다 그 조약에 반대하는 국가들이 있었다.

 

 유럽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알고 있겠지만, 유럽연합의 모태는 유럽석탄공동체이다. 프랑스와 독일 국경지대, 여기에 몇 나라가 같이 엮여 있다. 석탄을 공동으로 개발하기 위해 연합체를 만든다. 거기에다 2차대전 후 서유럽이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도 크게 있었다.  특히 2차대전 후 유럽의 안정을 위해 프랑스는 독일을 묶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전범국이었던 독일 입장에서도 다른 유럽나라들과의 관계개선이 필요했다. 그렇게 유럽연합에 대한 기본적인 생각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영국은 달랐다.

 

전쟁에서 패하지도, 점령당하지도 않았던 영국은 다른 유럽인과 주권을 공유할 의사가 없었으며, 미국이나 북대서양조약기구(North Atlantic Treaty Organization, NATO)와의 신뢰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15)

 

그럼에도 영국은 1975년에서야 유럽연합에 가입하는데 경제적 이유가 컸다.

모네의 전통을 따르는 연방주의자 답게 그의 최종 목록에는 단일시장, 단일통화, 공동방위정책 제도 개혁 등이 포함됐다. 이것은 연방주의 방향으로 가는 하나의 단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처 총리는 연방주의에 대해 드골과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에 통화, 방위, 제도 관련 프로젝트에 반감을 표시했다.동시에 급진적인 경제자유주의자였던 그녀는 단일시장을 무역 자유화 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겼다.(42)

 

 하지만 기존 유럽과 영국의 생각은 달랐다. 특히 노동계층과 노조를 무력화시키고 금융업 및 자유경제를 추진하던 영국의 경제관은 유럽연합과 확연히 달랐다.

영국은 유럽연합에 접근해가는 과정에서 규제철폐(Deregulation)와 유연성을 강조했는데, 그 이면에는 이것들이 유럽 경제를 좀 더 경쟁력 있게 만들고 고용을 증가시키리라는 기대가 있었다.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시장은 경제의 단순한 한 부분이 아니라, 다른 모든 것들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이해된다. 이런 영국의 접근 방식은 미국 경제 철학과 유사했기 때문에 앵글로-색슨 방식이라고도 불린다. 반면, 독일의 주요 모델이었던 라인란트(Rhineland), 접근법이라고 알려진 또 다른 접근 방식도 있다. 노동시장에서 강조되는 것은 유연성 보다 연대감과 사회적 보호이다.(144)

 

이런 다른 경제관으로 영국은 유럽연합과 마찰을 일으킨다. 완전자유경쟁시장을 원했던 영국이 유럽과 대립했던 부분은 농업이다.

농민의 소득은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싼 가격과 그 가격으로 생긴 잉여생산물에 자금 지원을 해주는 보조금으로 유지됐는데, 이 보조금은 공동체 납세자들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이런 정책은 공동체 초기에는 그럭 저럭 유지됐지만, 영국의 공동체 회원국이 된 이후부터는 새로운 긴장감을 불러일으켰다. 영국식 자유무역 모델은 가격이 대폭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따라서 영국이 공동농업정책의 회원이 된다는 것은 곧 수입 식품에 수입세가 붙어 식량 가격이 높아지는 것, 공동체 예산에 영국이 수준 높은 기여를 한다는 것, 그리고 농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았기 때문에 공동체 예산에서 받는 수령액이 적다는 것 등 삼중의 타격을 의미했다. 

이런 상황은 대처가 1979년 영국 총리가 된 이후 5년간 다른 많은 공동체의 사업을 볼모로 우리 돈을 돌려줘"라 고 주장하던 전투의 출발점이었다. (120)

 

영국은 유럽연합이라는 공동체에 관심이 없었고, 특히나 정치, 국방 등에 있어서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순전히 경제적인 이유에서만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고자 했다. 경제적 주권에서도 분명히 독자권을 갖고자 했는데, 그래서 파운드를 계속 사용하게 된 것이다.

 

<차브>라는 책을 보면 브렉시트에 앞장섰던 백인노동차계층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EU매뉴얼>은 유럽연합에 대해서 설명하는데 그 중에 영국과 유럽연합에 대한 부분을 읽어볼 수 있다. 영국 내부적으로도 유럽연합과 함께 하기 힘들었지만, 외부적으로도 영국은 유럽연합의 일원이 되지 못하게 계속 외부인으로 남아있었다. 브렉시트를 단순히 결정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실 1980년대 선거에서도 쟁점이 브렉시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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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는 차브다. 특별한 일자리 없는 젊은이. 한편에서는 차브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실제 차브의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화 '트랜스포팅'이 차브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차브>는 처음에는 젊은 노동계급이라는 뜻이었지만 어느 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 (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깊이가 부족하지만, 차브에 대한 정의는 제대로 잡은 기사가 있다.

차브의 등장 계기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집권이다. 대처의 민영화 정책으로 광산업 등 제조업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이들이 주로 거주하던 도시 외곽의 임대주택 밀집지역이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폭력과 마약에 노출된 실직자의 자녀가 바로 차브의 모태. http://news.donga.com/3/all/20150316/70139293/1

 

차브는 1970-80년대 대처 정부에서 그 기원이 있다. 대처는 중간계급의 확장을 위해 노동계층을 아예 없애는 전략을 썼다. 또한 대처는 금융, 서비스업을 영국의 먹거리 산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계층과의 전쟁을 치뤘고, 산업혁명의 전통을 가진 영국의 노조는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광산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 모두 그 근본을 잃어버렸다.

 

노조와 산업을 무너뜨리고, 바로 대처의 유명한 세제개편이 일어난다. 모두에게 공평한 세금. 기존에 있었던 부자에 대한 세금은 대폭 낮추고, 부가세 등 간접세 비중을 높여 부자들의 세금을 모든 사람에게 전가한다. 물론 그들의 논리는 낙수효과이다.

(관련된 내용 발췌는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2330 )

 

이후로 노동계층은 고숙련 고임금에서 일자리가 없고, 그 마저도 저임금체계에 빠진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교육을 시킨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는 빈곤계층으로 떨어지게 된다. 복지수당에 기대어 생존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비난하고 희화화 한다. 차브.

언론과 미디어는 부당하게 복지수당을 챙기는 이들을 비난한다. 차브계층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이를 차브계층과 엮어서 방송하기에 바쁘다. 중간계층, 고소득계층의 범죄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일 뿐이지만, 빈곤층에서의 범죄는 계층 전체가 엮여서 비난받는다. 게다가 그들은 의욕도 없고, 노력도 안하는 집단이라고 매도당한다.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270쪽)

(관련된 내용은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7445,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29077  )

 

노동계층의 기반을 둔 노동당도 차브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당 역시 차브에게 빈곤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다. 진보집단 역시 차브를 비난한다. 그들을 산업에 밀려난 노동계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이들로 폄하해 버린다. 노동당/진보에게마저 버림받은 차브계층에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극우정당이다. 예전에 노동당을 지지하던 이들이 정반대에 있는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41692 )

다수의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당이 더 이상 자기들 편에서 싸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일부는 무관심에 굴복했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할 서사를 빼앗긴 사람들은 다른 논리를 찾고 있다. 무거운 책임을 추궁받는 것은, 대처가 벌인 계급전쟁에서 승리한 부유층들이 아니다. 수백만 노동계급의 좌절과 분노는 그 반격의 칼끝을 이민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325쪽)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자, 많은 이들이 영국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영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을 잃은 영국의 입장에서 EU는 고소득층만 자유로운 이동으로 혜택을 입을 뿐이다. 노동계층은 저임금 일자리를 가지고 다른 유럽인 혹은 이민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 차브 는 KBS TV책을 보다에서도 다뤄졌던 책이다.

http://www.kbs.co.kr/1tv/sisa/tvbook/view/vod/2404883_9209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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