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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브 - 영국식 잉여 유발사건
오언 존스 지음, 이세영 외 옮김 / 북인더갭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 '킹스맨'의 주인공 에그시는 차브다. 특별한 일자리 없는 젊은이. 한편에서는 차브가 하나의 트렌드라고 하지만 실제 차브의 모습을 보여주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영화 '트랜스포팅'이 차브를 제대로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싶다.
<차브>는 처음에는 젊은 노동계급이라는 뜻이었지만 어느 샌가 '공영주택에 거주하는 폭력적인 사람들 (Council Housed And Violent,
CHAV)'을 뜻하는 말이 되었다.
기사의 내용은 깊이가 부족하지만, 차브에 대한 정의는 제대로 잡은 기사가 있다.
차브의 등장 계기는 1979년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의 집권이다. 대처의 민영화 정책으로 광산업 등 제조업 노동자들이 실직하면서 이들이 주로 거주하던 도시 외곽의 임대주택 밀집지역이 빈민촌으로 전락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채 폭력과 마약에 노출된 실직자의 자녀가 바로 차브의 모태. http://news.donga.com/3/all/20150316/70139293/1
차브는 1970-80년대 대처 정부에서 그 기원이 있다. 대처는 중간계급의 확장을 위해 노동계층을 아예 없애는 전략을 썼다. 또한 대처는 금융, 서비스업을 영국의 먹거리 산업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노동계층과의 전쟁을 치뤘고, 산업혁명의 전통을 가진 영국의 노조는 망가져 버렸다. 망가진 것은 노조만이 아니다. 광산업 뿐만 아니라 제조업 모두 그 근본을 잃어버렸다.
노조와 산업을 무너뜨리고, 바로 대처의 유명한 세제개편이 일어난다. 모두에게 공평한 세금. 기존에 있었던 부자에 대한 세금은 대폭 낮추고, 부가세 등 간접세 비중을 높여 부자들의 세금을 모든 사람에게 전가한다. 물론 그들의 논리는 낙수효과이다.
(관련된 내용 발췌는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2330 )
이후로 노동계층은 고숙련 고임금에서 일자리가 없고, 그 마저도 저임금체계에 빠진다. 자식들에게 제대로 된 교육을 시킬 수도 없고, 교육을 시킨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는 빈곤계층으로 떨어지게 된다. 복지수당에 기대어 생존하는 이들이 늘어난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을 비난하고 희화화 한다. 차브.
언론과 미디어는 부당하게 복지수당을 챙기는 이들을 비난한다. 차브계층에서 범죄가 일어나면 이를 차브계층과 엮어서 방송하기에 바쁘다. 중간계층, 고소득계층의 범죄행위는 단순히 개인의 잘못일 뿐이지만, 빈곤층에서의 범죄는 계층 전체가 엮여서 비난받는다. 게다가 그들은 의욕도 없고, 노력도 안하는 집단이라고 매도당한다.
노동계급을 악마화하는 것은 비합리적인 시스템을 정당화하는
잔인하도록 합리적인 방법이다. 그들을 악마화하고, 그들의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그리고 극도로 불평등하게 이뤄지는 부와 권력의 분배를 사람들이
지닌 가치와 능력을 공정하게 반영한 결과라고 합리화하는 것. 그러나 이런 악마화는 훨씬 더 치명적인 의제를 갖는다. 오직 개인에게 책임이 있다는
교의는 특정한 노동계급 공동체들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 문제 전반에 적용된다. 그것이 빈곤이든 실업이든, 혹은 범죄이든 관계없이 그것은 개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부서진 영국(Broken Britain)에서 희생자들은 자기 자신들 말고는 탓할 사람이 없다. (270쪽)
(관련된 내용은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37445,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29077 )
노동계층의 기반을 둔 노동당도 차브를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노동당 역시 차브에게 빈곤의 책임을 그들에게 묻는다. 진보집단 역시 차브를 비난한다. 그들을 산업에 밀려난 노동계층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백인우월주의에 빠진 이들로 폄하해 버린다. 노동당/진보에게마저 버림받은 차브계층에 손을 내민 것은 바로 극우정당이다. 예전에 노동당을 지지하던 이들이 정반대에 있는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그들만의 잘못은 아니다. (http://blog.aladin.co.kr/rainaroma/8741692 )
다수의 노동계급 구성원들이 노동당으로부터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노동당이 더 이상 자기들 편에서 싸우지 않는다고
느낀다. 일부는 무관심에 굴복했지만 전부가 그런 것은 아니다. 자신의 삶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설명할 서사를 빼앗긴 사람들은 다른
논리를 찾고 있다. 무거운 책임을 추궁받는 것은, 대처가 벌인 계급전쟁에서 승리한 부유층들이 아니다. 수백만 노동계급의 좌절과 분노는 그 반격의
칼끝을 이민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325쪽)
영국이 브렉시트를 결정하자, 많은 이들이 영국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고 비난했다. 그런데 영국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생각보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을 잃은 영국의 입장에서 EU는 고소득층만 자유로운 이동으로 혜택을 입을 뿐이다. 노동계층은 저임금 일자리를 가지고 다른 유럽인 혹은 이민인들과 경쟁을 해야 하는 처지인 것이다. 그런데도 영국이 잘못된 선택을 했을까.
* 차브 는 KBS TV책을 보다에서도 다뤄졌던 책이다.
http://www.kbs.co.kr/1tv/sisa/tvbook/view/vod/2404883_92096.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