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조직 - 조직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병들게 하는가?
앤 윌슨 섀프 & 다이앤 패설 지음, 강수돌 옮김 / 이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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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동안 비전기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과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 모두가 비전을 공유하고 그 비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조직원이 조직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초일류 기업은 일에 대한 집착을 바람직한 것으로 촉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터스와 오스틴*은 기업에 대한 헌신이 사람들의 삶에 목적을 부여하며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게 해 준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에 의문을 품는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가 깨닫게 된 것은, 여태껏 기업들에서 수용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져 온 것들이 사실은 개인과 조직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 그것도 빠르게 진행되는 질병이란 점이다. (40쪽)

(* 우리가 혁신의 문제를 좀 더 완전하게 숙고하려면 피터스와 워터스만이 쓴 "초우량기업의 조건"이나 피터스와 오스틴이 쓴 "탁월성을 향한 열정"같은 책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조직이 돌아가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비전기업이 대두되면서 조직은 점점 더 실제와 거리가 먼 비전을 강조한다. 실제와 동 떨어진. 

흥미롭게도 우리는 조직이 내세우는 사명이 고상할수록 실제 행동은 표리부동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여기서 표리부동은 명시적 목표와 비명시적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할 때 두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때, 조직은 경직된 부인의 시스템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행동에는 꼭 과장된 허장성세가 뒤따른다.

...

사명이라는 이름의 허장성세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사명감은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이러한 착각이 조직이 내세우는 사명이나 목표의 본질적 목적이다.(184쪽)

 

조직자체가 사람들에게 일종의 중독물로 기능하는 경우, 조직의 사명이나 비전을 계속 강조하는 일은 그 조직의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직원들이 조직의 전망에 눈이 멀어 있는 한, 현실에 존재하는 괴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구성원이 눈치를 챈다 할지라도 조직 내에 별 탈 없이 머물기 위해 아마도 침묵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조직의 사명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하는 강력한 원천이다. (186쪽)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미쳐야 한다. 아니 사실 중년들에게도 미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에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알콜중독자가 알콜 하나에만 관심을 갖듯이 그렇게 사회에 중독을 강요한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중독을 조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면밀히 살펴보면 사회는 분명 중독을 촉진한다. 사회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이란 따지고 보면 죽은 것도 아니요. 산 것도 아닌 존재, 그저 무감각한 좀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이 죽은 존재라면 당신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약 당신이 완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당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숱한 일들이나 돌아가는 과정(일례로 인종차별, 환경오염, 핵 위협, 군비경쟁, 식수 오염, 발암 음식 섭취 등)에 대해 계속해서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모난 돌을 정으로 쳐 내고','중독물fixes'에 휩쓸리게 하고, 우리를 '넋이 나간' 좀비처럼 만드는 것은 이 사회의 이익과도 일치한다. 결국 사회 자체가 중독을 적극 부채질할 뿐 아니라 중독자로도 기능하는 것이다. (92쪽)

 

그리고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에 미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중독을 강요하고, 조직의 문제를 발견하기 보다는 조직의 지속을 위해 일에만 집중하기를 강요한다.

일중독이란 다루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중독이다. 일중독자들은 설사 그 질병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할지라도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194쪽)

 

중독 시스템 안에서는 어떤 개이이나 아이디어에서 무언가 잘못된 점을 발견할 경우, 그 사람이나 아이디어가 완전히 폐기 처분되기도 한다. 그 역도 성립하는데, 한 가지만 좋으면 모두 좋은 것처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일중독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좋은 게 발견되면, 그 전체 과정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일중독의 밑바탕에는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애착이 자리하고 있기에 일중독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 그 애착이란 다름아닌 경제에 기반한 시스템, 즉 자본주의이며 그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이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와 기독교가 이 둘을 모두 지탱한다.(201쪽)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런 중독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사회가, 특히 조직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결국은 중독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의 첫번째 진단은 중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독 조직이 아픈 조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273쪽)

 

이 책은 1988년에 나왔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굉장히 뛰어난 지적으로 느껴진다. 아니,우 오히려 사회는 점점 더 중독되기를 강조한다. 점점 더 세상을 가혹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은 강수돌 교수께서 했다.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속에서 주체적 개인에 고민을 하셨던, 그의 이야기가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중독 시스템 처럼 보인다. 기업은 이윤과 경쟁에 중독되어 전 구성원을 일중독이나 돈 중독으로 몰아간다.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 자체에 중독되기도 한다. ...

그리하여 온 사회가 중독 분위기에 물든다. ..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광고들은 우리에게 소비를 통해 누추하고 비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광고는 소비 중독뿐 아니라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권력 중독까지 정당화한다.(338쪽)

 

내가 이 책을 본격적으로 번역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이다. 세월호 사건의 발생 원인과 그 이후의 대응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총체적으로 병들어 있는지 절감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성장과 부에 중독되어 침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끔찍한 신호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일종의 중독 조직이요. 중독 사회였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시기라는 생각이 절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보았다.

물론, 이 책 하나가 중독조직과 중독가 개인, 나아가 중독 사회를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이 책은 다만 입문서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개념과 통찰을 가지고 우리 자신과 조직의 현실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우리 삶의 사각지대, 조식 생활의 사각지대를 구석구석 비춰주는 손전등이 될 것이다. (340~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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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7 잠의 종말
조너선 크레리 지음, 김성호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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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이후 잠은 해결해야 할 골칫거리 중에 하나였다. 어둠이 오랫동안 깔리는 시베리아 지역의 개발을 위해 소련은 백야를 연구하기도 했고, 미국은 잠을 안자고 비행하는 철새의 비밀을 연구하기도 했다.

목적은 사람들이 잠을 안 자고 지내는 동시에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기능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발견하는 것이다.(14쪽)

 

잠은 근대의 적이었다. 17세기 중엽이후 철학자들은 잠이 정신적인 활동이 아니라는 이유로 폄하 했다. 잠으로 인생의 1/3을 허비한다는 생각은 여전히 사회에 전반적인 생각이다.

 

잠이 항상 적으로 취급된 것은 아니다. 산업화의 속도와 더불어 자본주의는 휴식이 생산성 향상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휴식시간을 보장하는 정책들을 펼쳐나갔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위기 이후 그리고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산업은 잠과 상관없이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24시간 근무체제를 향해 나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왜 이토록 잠을 못살게 구는 것일까? 잠의 기본적인 속성은 아무것도 안함이다. 사실은 그 동안에 뇌와 몸의 각 기관들은 쉬임없이 역할을 수행하지만 자본주의 입장에서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 게다가 자본주의 큰 장애물이다.

 

잠은 심오하게 무용하고 본래 수동적이며 생산시간, 유통, 소비에 막대한 손실을 초래하기 때문에 24/7 세계의 요구와 언제나 충돌하게 마련이다. 우리 삶의 크나큰 일부분으로서 우리가 가짜 필요의 늪에서 해방되어 잠을 자면서 보내는 시간은 현시대 자본주의의 게걸스러움에 인간이 가하는 심대한 모욕들 가운데 하나로서 존속한다. 잠은 자본주의가 우리의 시간을 도둑질해가는 것을 비타협적으로 방해한다. 인간의 삶에 필연적인 불변의 요소로 보이는 것의 대부분은 상품화되거나 금융화된 형태로 개조되어왔다. 잠은 식민화하여 수익성의 거대한 엔진에 연결해 활용하는 게 불가능한 인간적 필요와 막간의 관념을 제기하며, 그리하여 전 세계적인 현재 안에 주변과 어울리지 않는 변칙이자 위기의 현장으로 남는다. 이 분야의 모든 과학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잠은 그것을 이용하거나 변형하고자 하는 일체의 전략을 좌절시키고 곤경에 빠트린다.(26쪽)

 

이 책을 읽는 것은 쉽지 않다. 원래 책이 좀 어렵게 쓰여진 것으로 생각된다. 사용되는 단어들도 익숙하지 않고,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가 있는 것은 일반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잠에 대해 보다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있고, 자본주의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어렵지만 읽어봐야 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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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 느린걸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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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라는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실제로 읽은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 곧 충격에 빠졌다. 경쟁이라는 학생시절을 거쳐 어렵사리 취업을 하지만 사회생활 역시 만만치 않다. 자영업도 마찬가지, 현재 우리는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플러그 인 되어 버렸다. 이런 구조를 타파하려고 하면 겉은로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불리지만 뒤돌아서면 있는집 자식 아니면 미친 놈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 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현대의 이 새로운 무력함은 너무나도 깊이 경험되는 것이라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6쪽)

·········

현대의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죄악이거나, 또는 두가지 다 일수 있다. 소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경제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8쪽)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는 이런 구조를 공고히 할 뿐이다. 사람은 없어지고 생산과 소비라는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고,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그것이 문화 속으로 한번 배어들면 '가난의 현대화'가 생겨난다. 현대화된 가난은 상품이 확산하면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부정가치의 형태이다. (34쪽)

 

'현대화된 가난'이 주요하게 가난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으며 그 본성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 일상 대화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이제부터 그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가져다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던 멕시코 오악사카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35쪽)

 

그리고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사회는 끝없이 분화되고, 이반 일리치는 그것을 전문가의 시대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미래의 역사가는 전문가의 시대를 정치 소멸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유권자들이 대학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필요를 법률로 제정할 권력과 누가 무엇이 필요할지를 결정할 권한, 그리고 그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에 대한 독점권을 기술관료에게 위임한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이 시대는 학교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은 무엇을 처방받아야 할지 배우고, 나머지 3분의 2는 자신의 습관을 관리하는 저명한 전문가의 고객으로 살았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55쪽)

 

심지어는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처방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조금 늦은 아이로 평가받았던 이들이 요즘은 ADHD라는 질병으로 진단되어 치료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결혼 준비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결혼생활이며 육아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전문가에 의해 진단받고, 그 처방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세상.

 

검붉은 표지에 활자만 있는 책, 두께도 140쪽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쓰여졌다. 하지만 놀랍다. 지금 현대의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의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삶의 주체성,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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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고 앉아있네 3 - 김상욱의 양자역학 콕 찔러보기 스낵 사이언스 Snack Science 시리즈 3
원종우.김상욱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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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앞으로 두어시간 동안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을 가진 어처구니 없는 미로속에서 헤매다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나가게 됩니다." 과학같은 소리하네의 양자역학편에서 사회자 파토 원종우는 이렇게 시작한다. 유명한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 조차 양자역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말한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자역학이 어렵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기존 물리학의 법칙들이 부정되기 때문인데, 문제는 인간이 양자역학을 이해하도록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뇌는 양자 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 모양으로 만들어진 게 아닙니다. 인간의 뇌가 진화해 온 오랜 시간동안 그것의 용도는 포식자를 피해서 먹고 싸고 자고 또 매력적인 이성을 만나서 번식을 하는 것이었죠.

이런 인간의 뇌를 가지고 머리카락의 수십만분의 1보다 작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 지를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겠죠. (138쪽, 과학수다1)

 

인간의 두뇌라는 것이 자연법칙을 잘 이해하도록 진화한 건 아니거든요. 우리의 뇌는 맛있는 것을 찾거나, 아니면 예쁜 여자, 멋진 남자를 찾거나 하는 그런 것을 잘하도록 진화해왔죠. 우리가 이해를 못한다고 자연이 이상한 게 아니라, 잘못은 우리한테 있다는 겁니다.

그런데 잘못이라고 보기도 힙든 것이 두뇌는 그냥 생존과 번식에 유리하도록 진화된 겁니다. 그래서 모르는 게 너무 당연하니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27쪽) 

 

사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을 만든 과학자들은 '우주는 문제가 없고, 이걸 이상하다고 느끼는 인간한테 문제가 있다'라고 이야기를 합니다. 이중성을 지니는 파동과 입자는 원래 하나인데, 인간의 언어가 파동과 입자라는 걸 따로 기술한다는 거죠. 이미 사람들 머릿속에 그 개념이 그렇게 따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거지, 우주에서는 그것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 자체가 자연스러운 것이고 문제가 없다는 거에요.(55쪽)

 

사실 양자역학에 대한 부분을 몇 번 본적이 있다. EBS다큐 '빛의 물리학'에서도 몇 번 봤고, 책으로도 봤지만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내 잘못이 아닌 것이다. 인간이 양자역학을 이해할 수 없도록 진화했으니까.

 

책은 물리학의 기본 법칙부터 설명을 한다.

유닛의 위치를 시간에 따라 기술한 것이 바로 운동이죠.(13쪽)

 

속도라는 것은 어려운 것이 아니라 한 위치, 지점을 알 때 시간이 조금 지났을 때 위치가 얼마만큼 변하는지에 대한 정보입니다.(15쪽)

그리고 이것은 수학으로 표현할 수 있다.

속도가 변하는 것, 즉 가속운동에 이유가 있다면, 그 이유는 힘이라고 부르자 하는 게 바로 운동법칙입니다. 이것을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수식으로 굳이 쓰면 'F=ma'가 됩니다. (20쪽)

 

이제 이 식으로부터 속도의 시간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속도와 위치를 끄집어 낼 수 있다면 우주를 다 이해하는 거죠. 'F=ma'로 부터 속도와 위치를 끄집어내는 수학적 과정을 적분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전 세계에 모든 이공계 학생들은 이 적분을 배워야 돼요. 'F=ma'는 미분방정식입니다. 우주의 법칙은 미분으로 쓰여 있고, 이로부터 위치를 추출하는 과정이 적분입니다. 미분을 알려면 극한을 알아야 하고, 극한을 알려면 수열을 배워야 하죠. (21쪽)

 

그럼 양자역학이 무엇인가. 양자역학이란 이런 물리학의 법칙이 뒤엎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원자라고 부르는 똑같은 걸로 되어 있다는 겁니다. 모든 것은 원자로 되어 있죠. 물리학은 모든 것을 운동으로 이해합니다. 결국 물리학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 바로 원자의 운동을 이해하는 겁니다. 원자가 어떤 식으로 운동하는지를 기술하는 분야가 바로 양자역합입니다. ... 한마디로 양자역학은 원자를 기술하는 학문입니다. (36쪽)

 

이제 양자역학의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등장한다.

전자는 하나다. 그런데 두개의 구멍을 통과한다. 전자는 하나뿐인데,

그리고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 두 상자안에 고양이와 독극물이 있다. 한상자가 괜찮다면 다른 상자는 독극물 병이 깨져야 한다. 고전역학,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는 한마리의 고양이는 살고, 다른 고양이는 죽어야 하지만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으면서도 죽어있는 상태다. 음 모르겠다.

 

하여간 책을 좀 더 읽어보면,

양자역학은 근본적으로 개별 사건에 대해서는 예측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즉, 뉴턴역학의 결정론을 포기하는 겁니다. 그리고 확률론의 세계로 들어서게 되죠.

....

사실 이렇게 확률이 도입되었을 때 물리학자들의 저항이 굉장히 거셌습니다. 왜냐하면 물리법칙이라고 하면 미래를 완벽하게 예측 가능하게 해주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죠. 특히 저항의 선봉에 선 사람은 다른 사람도 아닌 아인슈타인이었습니다. 아인슈타인이 죽을 때까지 양자역학을 거부한 이유의 하나가 바로 이 확률 해석 때문입니다.(60쪽)

 

전자의 위치를 정확히 알려고 하면 더욱 큰 에너지의, 즉 짧은 파장의 빛을 써야 하고, 그러면 전자가 더 많은 영향을 받게 되지요. 이 말은 전자의 속도가 불확실해진다는 겁니다. 하이젠베르크는 이것을 불확정성원리라고 불렀습니다. (72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원리가 갖는 중요한 의미는 고전역학의 결정론이 양자역학에서는 왜 통하지 않느냐는 것을 설명한다는 겁니다. 고전역학에서 꼭 필요한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아는 것이 보장되지 않는 것이죠. 이 때문에 확률이 나오는 겁니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이 양자역학이 틀렸다, 불완전하다며 공격을 할 때 그 공격의 가장 중요한 타깃이 바로 불확정성원리였습니다. (73쪽)

 

 

양자역학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양자역학이 뭐?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이미 양자역학은 세상을 뒤엎어 버렸다. 지금 우리는 이해도 되지 않는 양자역학의 헤택을 보고 있다.

양자역학이 없으면 우리는 19세기로 돌아가야 합니다. 19세기와 20세기는 과학기술의 관점으로는 양자역학이 있느냐 없느냐로 나눌 수 있습니다. 19세기에도 열역학과 전자기학이 있었죠. 내연기관과 전기기기가 있었다는 겁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없었던 것의 하나가 양자역학입니다. 그래서 반도체 같은 걸 이해하지 못했죠. 양자역학이 없으면 전자를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따라서 양자역학이 없으면 단연코 컴퓨터는 없습니다. 반도체도 없고, 스마트 폰도 없습니다. 지금 스마트폰이 있을 수 있는 것은 1920년대 양자역학을 이해해서 전자를 제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자를 제어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나온 학문이 전자공학입니다. 양자역학이 없으면 전자공학이 없어요. 전자의 운동을 기술하는 게 바로 양자역학이거든요.(108~109쪽)

 

이해는 안가지만 하여간 양자역학은 기존 물리학과는 다른 세계라는 것이고, 우리는 그 세계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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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고 앉아있네 2 - 외계 문명과 UFO는 있다? 없다? 스낵 사이언스 Snack Science 시리즈 2
원종우.이명현 지음 / 동아시아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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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하고 앉아있네는 과학전문팟캐스트의 방송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의미있는 작업이다. 그 중에서 과학과사람들 팟캐스트의 터줏대감이라 할 수 있는 이명현박사와 함께 우주에 대해 이야기해본다.

 

지구에서는 우주의 신호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전파를 찾기 위해서 왜 전파일까? 

빛이라는 게 우리 눈에 보이는 걸 이야기하지만 좀 더 구체적으로는 눈에 볼 수 있다는 뜻의 가시광선을 말하는 거죠. 수백만년 동안 인류라는 종이 자연에 적응을 해오면서 지구상에서 어떠한 것을 감지하고, 정보를 얻기에 가장 좋은 영역이 가시광선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거기에 적합하게 진화한 거죠. 빛은 다른 말로 바꾸면 전자기파인데, 그 전자기파 안에는 가시광선과 전파라는 것이 있고, 자외선, 적외선, 이런 것들도 있어요. 파장의 크기에 따라 다른 이름이 붙은 건데요, 가시광선은 파장이 짧다면, 전파는 파장의 길이가 길어요. 파장의 길이가 길면 어떤 장점이 있나면, 짧은 것은 장애물 통과가 어렵지만 파장이 긴 전파는 장애물을 그냥 넘어간다는 거죠. 그래서 멀리까지 갈 수 있으면서, 또 가장 속도가 빠른 1초에 30킬로미터나 가는 빛이니까 빨리 정보를 보내면서도 방해하는 장애물들이 있더라도 성큼성큼 뛰어넘어 우리에게 온다는 거죠. (21쪽)

 

그 전파를 찾기 위해 전파망원경을 사용한다. 케플러 망원경등이 대표적이다.

핸드폰은 우리가 전화벨 소리가 울려서 귀에다 대고 소리를 듣는 기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전파를 송신하고 수신하는 장치가 들어 있어요. 전파라는 건 빛의 일종인데, 눈에는 보이지 않는 파장이 긴 빛을 전파라 하거든요. ... 핸드폰의 경우를 보자면 송신을 누르면 여러분들의 목소리가 그 속에서 전파 신호로 바뀌어 중계소로 날아가지요. 중계소에서 그것을 다른 사람의 핸드폰에 전달하면, 다른 사람의 핸드폰에서 그 신호를 받아서 다시 소리로 바꿔 여러분의 귀로 전달하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조그만 핸드폰들은 아주 작은 전파망원경이라고 얘기할 수 있죠. 그런데 천문학자들은 외계인으로부터 오는 전파를 받아야 되는데, ... 전파망원경은 엄청나게 큰 핸드폰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12쪽)

 

이 책의 미덕이다. 이제 이야기하려는 전파에 대한 이야기가 이해가 간다. 그래서 그 전파를 위해 디지털, 수학적 패턴이 필요한 것이다. 즉 수학을 통해 외계와 신호를 주고 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기본적인 생각을 해보는 거죠. 자연계가 아닌, 문명을 가진 사회에서 빠져나가는 신호들은 어떤 패턴들이 있을 텐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텔레비전을 볼 때도 우리가 2차원 화면에서 보잖아요. 그런데 그게 어떻게 들어오는가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모르고 보지만 시간에 따라 일렬로 들어오는 신호를 화면에 뿌려주는 거에요. 행드폰도 마찬가지로 전파 신호를 소리로 바꿔주는 것이고요. 그렇게 들어오는 신호들은 0과1로 조합되어 있는 디지털로 된 신호들이 들어오는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우리가 어떤 신호를 외계인에게 보낸다거나 받는다거나 할 때는 그런 방식으로 받게 되거든요. 그래서 그것을 받아서 처리하고, 또 그것을 배열하는 과정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수학적 마인드, 수학적인 테크놀로지, 수학적인 기반이 있어야 한다는 거죠. (26쪽)

 

외계의 신호를 받기 위해 많은 기술을 동원하고 있지만, 지구 역시 외계로 전파를 통해 신호를 내보내고 있다. 그렇게 지구와 비슷한 행성을 찾고 있고, 물이 있는, 생명의 기원을 찾고 있다. 물론 한계는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가 탄소를 기반으로 하다보니 물, 탄소 등을 중심으로 찾고 있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탄소라고 하는 원소 주위에 어떤 다른 원소들이 붙어서 분자를 형성하고, 그런 분자를 기반으로 한 세포로 형성된 생명체인데, 다른 별에서는 전혀 다른 경로로 생명체가 생겼을 수도 있잖아요. 그런데 문제는 전 우주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생명체는 오로지 지구의 생명체밖에 없는 거에요. 그리고 지구생명체는 전부 탄소 기반 생명체* 로 이루어져 있거든요. 그러니까 어게 지구 중심적인 사고방식이긴 하지만 아직은 대안이 없죠. 만약에 화성에서 탄소가 아니라 실리콘을 기반으로 한 생명체가  발견된다고 하면 우리의 인식 범위를 확장시킬 수 있겠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이 지구 생명체와 유사한 것을 찾는 데 집중하는 것 훨씬 더 논리적이라고 생각하죠.(37쪽)

 

만약 외계인이 발견된다면 외계인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는 외계인이 굉장히 다를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범위는 생각보다 굉장히 좁다는 거에요. 그래서 늘 지구라는 환경조건을 가정해요. 지구와 거의 비슷한 유사 행성을 찾겠다는 거고, 그런 행성을 집중적으로 관측하는 것이죠.

....

눈은 우리가 2개를 갖고 있잖아요. 눈은 최소 2개가 필요할 것 같아요. 그래야 멀고 가까운 원근을 구분하니까요. 눈이 10개 정도 된다면 좋을 것 같지만, 그러면 정보가 많아서 뇌가 커져야 하거든요. 그러면 정보처리 때문에 에너지를 많이 쓰고, 그러자면 또 많이 먹어야 하죠. 그렇다면 생존에 유리하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눈은 많아봐야 3개 정도일 거고, 결국 우리랑 비슷할 거죠. 다리도 한 100개쯤 되면 좋겠다 싶지만, 그걸 다 제어하려면 뇌가 터져버릴 거 아니에요? 적정하게 효율적으로 적응해서 잘 수 있으려면 비슷한 외양으로 진화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하는 거죠. ... 그래서 실제로 지구와 비슷한 환경 속에 사는 생명체를 찾는다면 우리와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는 생각을 하는 거에요.(39쪽) 

 

이런 기본적인 개념부터 시작해서 스타트렉 이야기라던지 우주선은 어떻게 움직이는 지 등에 대한 내용들이 잘 설명된다.

 

과학하고 앉아있네 2권을 읽었다. 왠지 똑똑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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