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 조직 - 조직은 어떻게 우리를 속이고 병들게 하는가?
앤 윌슨 섀프 & 다이앤 패설 지음, 강수돌 옮김 / 이후 / 2015년 6월
평점 :
절판


한 동안 비전기업이라는 말이 유행했다. 기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성과만을 내는 것이 아니라 조직구성원들 모두가 비전을 공유하고 그 비전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오랫동안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조직원이 조직과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그렇게 믿어 왔다. 그런데, 이 책은 그런 생각에 의문을 제기한다.

 

초일류 기업은 일에 대한 집착을 바람직한 것으로 촉진하려는 경향이 있다. 피터스와 오스틴*은 기업에 대한 헌신이 사람들의 삶에 목적을 부여하며 자아 존중감을 회복하게 해 준다고까지 이야기한다. 그러나 우리는 바로 이런 태도에 의문을 품는다. 제법 긴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우리가 깨닫게 된 것은, 여태껏 기업들에서 수용가능하고 바람직하다고 여겨져 온 것들이 사실은 개인과 조직이 갖고 있는 치명적인 질병, 그것도 빠르게 진행되는 질병이란 점이다. (40쪽)

(* 우리가 혁신의 문제를 좀 더 완전하게 숙고하려면 피터스와 워터스만이 쓴 "초우량기업의 조건"이나 피터스와 오스틴이 쓴 "탁월성을 향한 열정"같은 책도 검토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조직이 돌아가는 것은 그렇지 못하다. 비전기업이 대두되면서 조직은 점점 더 실제와 거리가 먼 비전을 강조한다. 실제와 동 떨어진. 

흥미롭게도 우리는 조직이 내세우는 사명이 고상할수록 실제 행동은 표리부동할 확률이 높다는 점을 발견했다. 여기서 표리부동은 명시적 목표와 비명시적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할 때 두 목표가 일치하지 않을 때, 조직은 경직된 부인의 시스템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행동에는 꼭 과장된 허장성세가 뒤따른다.

...

사명이라는 이름의 허장성세는 일종의 마약과 같다. 사명감은 우리가 중요한 사람이며,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다. 이러한 착각이 조직이 내세우는 사명이나 목표의 본질적 목적이다.(184쪽)

 

조직자체가 사람들에게 일종의 중독물로 기능하는 경우, 조직의 사명이나 비전을 계속 강조하는 일은 그 조직의 유지에 매우 중요하다. 직원들이 조직의 전망에 눈이 멀어 있는 한, 현실에 존재하는 괴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혹시 구성원이 눈치를 챈다 할지라도 조직 내에 별 탈 없이 머물기 위해 아마도 침묵하는 편을 선택할 것이다. 조직의 사명은 조직 구성원들에게 일체감을 부여하는 강력한 원천이다. (186쪽)

 

우리 사회가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것 중의 하나가 미쳐야 한다. 아니 사실 중년들에게도 미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 성공한다고. 하지만 그 이면에는 하나에만,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정치적인 문제에는 관심을 갖지 말라는 말이다. 알콜중독자가 알콜 하나에만 관심을 갖듯이 그렇게 사회에 중독을 강요한다.

 

우리의 사회 시스템 자체가 중독을 조장하고 있는지 모른다. 면밀히 살펴보면 사회는 분명 중독을 촉진한다. 사회 생활에 가장 잘 적응한 사람이란 따지고 보면 죽은 것도 아니요. 산 것도 아닌 존재, 그저 무감각한 좀비 같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만일 당신이 죽은 존재라면 당신은 이 사회가 요구하는 일을 전혀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만약 당신이 완전히 살아 있는 존재라면 당신을 사회가 요구하는 숱한 일들이나 돌아가는 과정(일례로 인종차별, 환경오염, 핵 위협, 군비경쟁, 식수 오염, 발암 음식 섭취 등)에 대해 계속해서 '아니오'라고 말할 것이다. '모난 돌을 정으로 쳐 내고','중독물fixes'에 휩쓸리게 하고, 우리를 '넋이 나간' 좀비처럼 만드는 것은 이 사회의 이익과도 일치한다. 결국 사회 자체가 중독을 적극 부채질할 뿐 아니라 중독자로도 기능하는 것이다. (92쪽)

 

그리고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에 미쳐야 한다고 이야기하는데, 중독을 강요하고, 조직의 문제를 발견하기 보다는 조직의 지속을 위해 일에만 집중하기를 강요한다.

일중독이란 다루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중독이다. 일중독자들은 설사 그 질병이 그들을 죽음으로 이끈다 할지라도 일중독에 빠져 있을 때라야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끼기 때문이다.(194쪽)

 

중독 시스템 안에서는 어떤 개이이나 아이디어에서 무언가 잘못된 점을 발견할 경우, 그 사람이나 아이디어가 완전히 폐기 처분되기도 한다. 그 역도 성립하는데, 한 가지만 좋으면 모두 좋은 것처럼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만일 일중독에서 뭔가 한 가지라도 좋은 게 발견되면, 그 전체 과정이 '좋은'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

일중독의 밑바탕에는 누구도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애착이 자리하고 있기에 일중독을 부정하거나 숨기는 일이 그만큼 어렵다. 그 애착이란 다름아닌 경제에 기반한 시스템, 즉 자본주의이며 그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사회구조이다. 그리고 프로테스탄트 노동윤리와 기독교가 이 둘을 모두 지탱한다.(201쪽)

 

사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바로 이런 중독이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사회가, 특히 조직구성원들에게 강요하는 것이 결국은 중독을 강요하는 것이라는 것을 지적한다. 그래서 저자의 첫번째 진단은 중독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중독 조직이 아픈 조직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273쪽)

 

이 책은 1988년에 나왔다. 그런데 지금 읽어도 굉장히 뛰어난 지적으로 느껴진다. 아니,우 오히려 사회는 점점 더 중독되기를 강조한다. 점점 더 세상을 가혹하게 만들고 있다.

 

이 책의 번역은 강수돌 교수께서 했다.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속에서 주체적 개인에 고민을 하셨던, 그의 이야기가 이 책을 제대로 읽는 법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하나의 거대한 중독 시스템 처럼 보인다. 기업은 이윤과 경쟁에 중독되어 전 구성원을 일중독이나 돈 중독으로 몰아간다. 조직 구성원들은 조직 자체에 중독되기도 한다. ...

그리하여 온 사회가 중독 분위기에 물든다. .. 길거리에서 쉽게 마주치는 광고들은 우리에게 소비를 통해 누추하고 비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식의 광고는 소비 중독뿐 아니라 소비를 통해 얻어지는 권력 중독까지 정당화한다.(338쪽)

 

내가 이 책을 본격적으로 번역해야 겠다고 결심한 것은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 이후이다. 세월호 사건의 발생 원인과 그 이후의 대응 과정을 보면서 우리 사회가 얼마나 총체적으로 병들어 있는지 절감했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이라는 배가 성장과 부에 중독되어 침몰하고 있음을 알려주는 끔찍한 신호였다. 대한민국 전체가 일종의 중독 조직이요. 중독 사회였다. 우리 자신을 들여다 볼 시기라는 생각이 절박하게 들었다. 그리고 이 책이야말로 그 과정에서 중요한 디딤돌이 될 것이라 보았다.

물론, 이 책 하나가 중독조직과 중독가 개인, 나아가 중독 사회를 치유해 주지는 못한다. 이 책은 다만 입문서일 뿐이다. 그러나 이 책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개념과 통찰을 가지고 우리 자신과 조직의 현실을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면.... 우리 삶의 사각지대, 조식 생활의 사각지대를 구석구석 비춰주는 손전등이 될 것이다. (340~3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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