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나를 쓸모없게 만드는가 - 시장 상품 인간을 거부하고 쓸모 있는 실업을 할 권리
이반 일리치 지음, 허택 옮김 / 느린걸음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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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일리치라는 이름은 여러 차례 들어봤지만 그의 책을 실제로 읽은 것은 처음이다. 하지만 읽기 시작하자 곧 충격에 빠졌다. 경쟁이라는 학생시절을 거쳐 어렵사리 취업을 하지만 사회생활 역시 만만치 않다. 자영업도 마찬가지, 현재 우리는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고 있다.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바로 플러그 인 되어 버렸다. 이런 구조를 타파하려고 하면 겉은로는 용기있는 사람이라고 불리지만 뒤돌아서면 있는집 자식 아니면 미친 놈 취급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현대화된 가난'은 과도한 시장 의존이 어느 한계점을 지나는 순간부터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가난은 산업 생산성이 가져다 준 풍요에 기대어 살면서 삶의 능력이 잘려나간 사람들이 겪어야 하는 풍요 속의 절망이다. 이 가난에 영향을 받는 사람은 창조적으로 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데 필요한 자유와 능력을 빼앗긴다. 그리고 플러그처럼 시장에 꽂혀 평생을 생존이라는 감옥에 갇혀 살게 된다. 현대의 이 새로운 무력함은 너무나도 깊이 경험되는 것이라 겉으로는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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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새로운 가난이 만연하는 세상에서 상품에 중독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하거나, 죄악이거나, 또는 두가지 다 일수 있다. 소비를 하지 않고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 경제성장의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곳 어디서든, 직장에 다니지 않거나 소비를 하지 않는 사람은 쓸모없는 인간으로 취급된다. (8쪽)

 

하지만 현대 산업사회는 이런 구조를 공고히 할 뿐이다. 사람은 없어지고 생산과 소비라는 시스템에 종속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하고, 생존을 하기 위해서는 그 시스템에 들어갈 수 밖에 없다.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풍요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그것이 문화 속으로 한번 배어들면 '가난의 현대화'가 생겨난다. 현대화된 가난은 상품이 확산하면서 어김없이 발생하는 부정가치의 형태이다. (34쪽)

 

'현대화된 가난'이 주요하게 가난한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때는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알아차릴 수 없으며 그 본성 또한 파악하기 어렵다. 일상 대화에서조차 드러나지 않는다. 발전이나 현대화가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면 그때까지만 해도 시장 경제에서 배제되어도 생존할 수 있던 이들은 구매 시스템으로 끌려 들어가 물건을 사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게 체계적으로 강요를 당한다. 이제부터 그들은 시장에서 나오는 찌꺼기를 가져다 살 수 밖에 없게 된다. 학교라는 곳에 가본 적 없던 멕시코 오악사카주 인디언이 지금은 졸업장을 '따기'위해 학교에 끌려간다. 이들에게 졸업장이란 자신들이 도시인보다 얼마나 열등한지를 정확하게 측정해주는 증서이다. 그나마 이 종이 한 장이라도 없으면 도시에 나가 빌딩 청소부도 할 수 없다. 정말로 중요한 문제는 이런 것이다. '필요'가 현대화될 때마다 가난에는 새로운 차별이 하나씩 더 붙는다. (35쪽)

 

그리고 그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 사회는 끝없이 분화되고, 이반 일리치는 그것을 전문가의 시대라고 부른다. 예전에는 공동체에서 해결해야 할 일이 전문가의 조언이 필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미래의 역사가는 전문가의 시대를 정치 소멸의 시대라 부를 것이다. 유권자들이 대학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자신의 필요를 법률로 제정할 권력과 누가 무엇이 필요할지를 결정할 권한, 그리고 그 필요를 충족하는 수단에 대한 독점권을 기술관료에게 위임한 시대라고 말할 것이다. 이 시대는 학교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 인생의 3분의 1은 무엇을 처방받아야 할지 배우고, 나머지 3분의 2는 자신의 습관을 관리하는 저명한 전문가의 고객으로 살았던 시대로 기억될 것이다.(55쪽)

 

심지어는 전문가에 의해 만들어진 처방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예를 들어 예전에는 조금 늦은 아이로 평가받았던 이들이 요즘은 ADHD라는 질병으로 진단되어 치료받아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심지어는 결혼 준비도 전문가의 도움을 받고, 결혼생활이며 육아 모두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결국 전문가에 의해 진단받고, 그 처방에 의해 살아가야 하는 세상.

 

검붉은 표지에 활자만 있는 책, 두께도 140쪽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40년전에 쓰여졌다. 하지만 놀랍다. 지금 현대의 문제가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반 일리치의 현대 산업사회에 대한 성찰이다. 그리고 삶의 주체성, 자율성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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