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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제는....
브리지트 지로 지음, 편혜원 옮김 / 관수재 / 2002년 11월
평점 :
품절
오늘 밤 클로드가 죽었다. 나는 클로드를 사랑했다. 내 삶은 멈춤과 동시에 다시 시작되었다. 그 사건을 입에 담지 않으려고 나는 이전과 이후라고 말한다.
오늘 밤 클로드는 죽었고 나는 살아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던 사람의 육체는 이제 시신이 되었다.
당신 눈앞에 20년을 함께 살아온 남자가 오토바이 사고로 죽어 비닐커버 속에 싸여 있고, 다시는 눈을 뜰 수 없는데 당신은 아직도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를 연발한다.
아직, 나는 걸을 줄도, 계단을 내려갈 줄도, 난간을 잡을 줄도 안다.
내가 없는 동안, 내가 등을 돌린 사이에 죽다니. 이해가 안된다, 이해할 수 없다. 한 마디, 내게 마지막 한 마디, 포옹 한 번도 없이.
나는 병원에 가고, 경찰서에 가고, 장의사에 가고, 교회에 간다. 뭔가 끊임없이 행동해야만 하는 시간의 한 단위로 전락한다. 가장 힘든 일은 샤워하는 것이다. 허벅지, 어깨에 바닐라향 비누를 바른다. 냄새가 우스꽝스럽다. 바닐라향이라니, 대체 그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나는 어떤 눈치도 채지 못했고, 아무것도,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커피를 마시고 있었지만, 창문으로 들어온 나비도 없었고, 시계도 멈추지 않았고, 그 순간 햇빛을 가리는 구름 한 점도 없었고,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오늘에서야 내가 행복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아무 것도 없는 지금 나는 진정으로 옛날이 얼마나 좋았었는지 말할 수 있다. 그에 대한 나의 사랑을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